명나라의 군대에 대한 내용은 명나라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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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군(名君)은 훌륭한 치적으로 이름을 남긴 군주를 일컫는 말이다. 현군(賢君)이라고도 한다. 특히 암군이나 폭군 다음에 나타난 명군이 치세에 성공하면 국가와 왕조의 수명을 크게 연장시킨다. 이런 경우를 중시조라고 한다.2. 상세
어느 국가건 암군이나 폭군은 나올 수 있지만 난세에는 상당 수의 군주가 암군 또는 폭군이기 때문에 명군인 경우가 흔치 않으며, 치세에는 명군으로 존재하여 끝까지 명군으로 남는 경우가 있지만 말년에 가서 암군이나 폭군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군주라는 위치 자체가 특정 무리들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집단에서 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며 구성원인 국민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국가의 보호하에 편안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직업이다. 명군은 뛰어난 개인의 역량으로 전술한 군주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함은 물론이요 자신만의 뛰어난 능력으로 국가에 새로운 이득을 얻게 하는 군주인 것이다. 영웅사관에서는 뛰어난 명군 몇몇의 존재만으로 국가의 전성기를 열거나 몰락하는 국가를 다시 중흥시킬 수 있다고 본다.
대개 창업 군주는 명군인 경우가 많다. 새로운 왕조의 창립자인 만큼 각종 국가 제도들을 정립하고 전대 국가의 병폐를 개선하였고, 무엇보다 왕조가 교체되려면 백성들의 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경우로 사실상 큰아버지, 아버지가 사실상 찬탈을 거의 완료해놓고 촉나라까지 먹어 중국 전체의 2/3 이상을 먹고 시작한 사마염이 있는데 그 사마염도 집권 초기에는 나름 호평을 받았다.
명군의 옆에는 간신이나 권신이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정치에 관여하려는 간신들은 축출된다. 그 예로 초장왕은 아예 즉위 후 3년동안 띵가띵가 놀면서 누가 간신이고 누가 쓸만한 신하인지 눈 여겨 보고 있다가 하루 아침에 지난 날까지 자기 곁에서 아첨하면서 같이 놀던 신하들을 싸그리 제거했으며 제위왕은 즉위 후에 띵가띵가 놀면서 지방의 보고 등을 통해 누가 간신이고 누가 쓸만한 신하인지 눈여겨 보고 있다가 하루 아침에 지난 날까지 그 거짓보고한 현령과 그 현령에게 매수된 신하들을 가마솥에 삶아버렸다.
역사의 승자들에 의해서 명군이 조작되곤 하는데, 특히 업적을 심하게 부풀려서 명군 뿐만 아니라 성군이기까지 할 정도로 착각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세조가 그런 경우인데 세조 역시 피는 못 속이는지라 명군의 자질은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육신을 참살하고 친조카 단종과 친동생 안평대군, 금성대군을 죽이는 우를 범하였고[1][2] 게다가 형인 문종의 무덤을 파헤쳐 형수의 관을 꺼내어 욕을 보이는 등 대단히 패륜적인 구석이 많다. 여기서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도 신덕왕후의 능묘를 파내지 않았는가 하는 반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태종이 신덕왕후의 능묘에 행한 것은 정확히는 당시 법에 따라 무덤을 도성 밖으로 이장하고 훗날 부왕인 태조 이성계 사후에 무덤의 격식을 후궁으로 낮춘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미 태조의 후계가 신의왕후 사이에 난 자신과 그 혈육으로 정해진 상태서 자신과 어머니 친어머니의 정통성 강화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조치였다. 최소한 태종은 법에 따라 이장과 위상 격하를 하면 했지 무덤에서 관을 꺼내 대놓고 욕을 보이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또 정치 스타일 역시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밀고나가 결국엔 훈구파라는 집단을 양성하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고려 후기로 퇴보시키는데 일조를 하여 명군으로 치기가 어려울 지경.
단, 이 관점과는 무관하게 백성을 착취하지 않고 탈 없게 내치와 외교를 운영하는 임금도 명군으로 친다. 가령 엘리자베스 1세가 비록 종교 건으로 최소 몇 천명을 대학살한 전과가 있지만 명군으로 추앙받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위의 세조도 사육신들에 대한 숙청과 희대의 간신인 한명회의 존재때문에 명군으로의 이미지가 전무해서 그렇지, 화폐 도입 시도, 부민고소금지법의 폐지[3] 등 업적도 꽤 되는 편이다. 좀 극단적인 예로는 대대적으로 학살을 일삼아서 현실에 지옥을 구현했다가, 이후에 이를 참회하고 반전주의 정책과 복지정책을 실시하여 인도사 최고의 성군으로 거듭난 아소카 대왕의 사례도 있다.
대개 상당수의 명군이 문무를 겸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군주 자신이 문무 중 어느 한쪽이 부족하더라도 명군 소리를 듣는 군주들은 대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 부족한 점에 전문가를 중용하는 식의 정책을 펼치는 정치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투스의 경우 내치와 외교엔 능하였으나 군무능력은 전무하였고, 대신 친구이자 명장이었던 아그리파를 크게 기용였다. 그 자신이 문무의 재능이 탁월하지 않지만 사람을 쓰고 부리는 재능이 뛰어나 대업을 이룬 또 다른 인물은 한고조 유방.
암군, 폭군과 마찬가지로 이쪽도 재평가 시도가 굉장히 자주 나오는 편. 암군이나 폭군의 재평가가 "실은 과소평가 되었거나 왜곡이 가해졌다"는 논지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반면, 이 경우는 "업적이나 능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식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가 많은 편. 그리고 명군의 경우에는 다른 의미의 재평가 시도가 있기도 한데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이 왕의 이런 행동도 높이 평가해 볼 만 하다" 는 식이 그것이다. 서점에 있는 경영학이나 리더십 관련 서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이긴 한데, 전문적인 역사 서적이 아니다 보니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도리어 사실을 왜곡하는 부작용도 있다.
현대 역사학에서는 선악 이분법이나 단순한 도식, 현대의 가치관에 따라 과거의 인물 및 사건을 평가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가능한 복합적으로 바라보고자 하기 때문에 나무위키의 군주 분류 목록은 그냥 이렇게 보기도 하는구나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3. 사례
자세한 내용은 명군/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4. 관련 문서
[1] 조카의 보위를 찬탈하고 그 조카의 목숨을 빼앗기까지 해서 세조의 업적이 파묻힌 경우도 상당하지만 공이 과를 덮을 정도로 크지 않다는 것도 함정.[2] 다만 단종의 경우 복위 운동이 계속 일어나는 상황이었고 금성대군 역시 조카인 단종을 지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안평대군을 계유정난에 연루시켜 죽인 것은 과오가 맞다.[3] 물론 지방 수령의 권한을 보장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성종때 다시 부활하게 되어 큰 의미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