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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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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형성3. 부류4. 역사 속의 암군
4.1. 한국사4.2. 동양사4.3. 서양사
5. 가상의 암군
5.1. 게임에서의 암군
6. 관련 문서

1. 소개

暗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일컫는 단어다. 혼군(昏君), 암주(暗主)와 동의어고, 사전에선 암군과 암주의 뜻을 「=혼군」이라고만 적기도 한다. '혼군'으로도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보통 무능하거나 어리석거나 삽질을 저질러 막장을 초래한다. 군주의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암군의 치세에는 나라가 망하거나, 망하기 직전이 된다. 반대로 능력은 부족하면서 쓸데없이 부지런해서 사단을 벌이는 왕도 암군에 속한다. 왕조가 쇠퇴기에 접어드는 시기의 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전임자가 잘나거나 나라가 튼튼하면 대충 버티므로 여기에 포함시키지는 않는 편. 중국의 사서나 역사소설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야이 혼군아!"라고 욕하기 시작하면 갈 데까지 간 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왕정시대에 왕에게 욕을 한 신하는 보통 끔살당한다.

"명군 같은 암군이 더 위험하다."[1]란 말도 있다. 암군 재위 기간동안 국가적 모순이나 위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누적된 문제가 재위 말년이나, 사후가 되어서야 거대한 위협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며 막상 눈에 띄어 해결하려고 해도 어지간한 능력자도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폭군과 암군은 교집합 관계로 보는 게 합당하다. 폭군은 국가 정비 및 왕권 강화 등을 이유로 신하와 백성들을 폭압적으로 대한 경우지만, 정치를 잘 하는 경우가 있다. 조선태종이 대표적이다. 암군은 국가 막장 테크를 초래하는 행동 자체가 필수 요건이다. 암군이 폭군보다 나을 수도 있는데, 아랫사람이 유능한 경우 그럭저럭 나라를 유지할 수는 있어서이다. 예를 들어 제갈량 시절의 유선이 있다.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군주 본인은 어리석지만 적어도 백성들에게는 온화하고 인자해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가를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솝 우화의 '왕을 원한 개구리들'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여기서 '암군'은 통나무, '폭군'은 천적인 두루미다.

2. 형성

세습제의 군주가 유능할지 무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투표로 가려 뽑은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들도 무능한 자들이 있는 마당에, 가만히 있어도 핏줄 잘 타고난 대가로 거저 먹게 되는 왕이란 게 항상 유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당연히 당대에도 이런 점을 감안해서 어린 시절부터 각종 정치, 역사, 인문학에 인성 교육까지 빡세게 시키면서 능력을 키웠다. 조선 왕조에선 '경연'이라고 해서 왕이 신하한테 꾸준히 재교육을 받았을 정도이다. 경연에서 오히려 신하들한테 재교육을 시킨 먼치킨들[2]도 있긴 하지만 그런 분들은 이 항목과는 거리가 머니 넘어가자. 이렇게 교육시켜서 최대한 왕의 능력을 키워서 능력에 책임감까지 갖추게 하려고 왕실과 신하들까지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해도 왕의 자질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로또인데다가 교육으로 능력은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어도 인성이나 책임감은 어떻게 안된다. 어린 시절부터 오냐오냐 해주면서 컸는데, 제아무리 세뇌에 가깝게 인성 교육을 시켜도 기본적으로 그냥 눈 앞에 떡하니 있는 엄청난 권력을 자제하면서 그에 따라오는 책임을 그냥 순순히 따를 가능성이 더 적다. 현대에서도 재벌 2세나 3세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조그마한 완장만 차도 거들먹거리고 일은 대충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하물며 국가 지존의 자리인 왕이 되면?

그러기에 보통 명군이었던 이도 말년이 되면서 매너리즘레임덕 등으로 암군의 진가(?)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로 양귀비에게 빠져 그간의 업적을 다 말아먹은 당현종이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시대상황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문제로 자세한 내용은 당현종을 참조해보자

사실, 어느 국가건 왕정을 거쳤다면 거의 대부분 암군이 나타난다. 이는 후계자의 능력을 담보할 수 없는 왕정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근친상간이 성행한 유럽 왕실의 경우에는 왕으로서의 능력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로 장애를 가진 국왕도 이따금씩 나왔다.

암군이라는 것도 애매모호하다. 제대로 된 왕이 암군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면에서 암군 또한 의외로 자질 자체는 명군 못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비정상적인 왕권 강화로 일시적으로는 왕권이 강화되나, 제도 개혁을 제대로 이루지 않고 본인의 권력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점이다. 결국 그런 암군이 죽고 나면 구속력을 잃은 권력이 대체로 귀족이나 주변 왕족, 제후들에게로 넘어가버린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후반의 덴노들이 조오코(상황, 上皇)같은 비정상적 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권한만 후지와라가(혹은 무사들)에게 넘어가 버린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러한 나라의 능력을 생각하지 않은 무리한 왕권강화는 나중에 거대한 후폭풍으로 돌아와 나라를 뒤흔드는 사례는 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이 문제는 심지어 세도정치나 훈구파의 전횡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는 조선 정조, 세조 등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대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예상보다는 빨리 죽은 경우가 다수인지라 "암군"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느정도는 후계자의 능력에 의해서도 선왕의 암군 여부가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스스로 권력을 소유하고, 선정을 펼 기회가 주어졌는가도 중요한 전제요소이다. 암군이라고 평가되는 인물들은 충분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으면서도 그 권력을 국가 발전을 위해 쓰지 않은 자들인데, 그래서 강한 신권이나 대리청정으로 인해 사실상 장식에 가깝거나 꼭두각시였던 인물(고려의 고종 등, 조선 철종 등.)들은 보통 암군으로 여기진 않는다.

암군의 옆엔 항상 간신들이 붙어다니기 마련이다. 당 현종 말년의 이림보, 양국충, 안록산, 인조김자점 등이 있다. 다만 고려의 암군들은 간신보다는 자신의 이상이 좌절되는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가 많았는데 거듭되는 반란으로 지친 인종, 문벌귀족에게 좌절한 이후 술독에 빠진 의종과 무너져가는 나라를 되살려보려 노력했지만 평생의 반려 이자 강력한 후원자인 노국공주가 사망하면서 실의에 빠져 결국 신돈에게 정국을 맡긴 공민왕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체로 이러한 암군들은 경우는 초기는 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사를 멀리해 변해버린 왕들이 다수. 대체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암군들은 생각보다 흔했으며, 결국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암군이 되지 않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신라의 혜공왕 같이 단순히 실권이 없었던 군주를 암군이라고 단정짓긴 어렵다. 이런 논리대로면 고구려의 보장왕, 고려 후기의 임금들, 조선의 정종, 단종, 순조, 헌종, 철종, 순종 등도 죄다 암군이다. 물론 통념을 따르자면 그들에게서도 모든 책임이 없다라고 말할 순 없다. 어쨌든 그들은 왕정국가에서 국가의 톱인 왕이었지 않은가? 실권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면책되지는 않는다는 견해다. 단지, 여기서 정의한 타입의 '암군'이 아닐 뿐이다. 아비뇽 유수 시절의 교황들도 실권 없기로는 다 마찬가지다(...). 혜공왕의 경우는 말기는 아니였고, 중대기의 마지막 군주라는 점에서는 암군에서 피할 순 없다. 이는 의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것이다.

의외로 왕조의 마지막 왕이 암군이 아닌 경우도 꽤 된다. 오히려 왕조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자들도 있으며,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후한헌제는 아예 실권이 없어 나라를 망치건 뭐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실권을 되찾기 위해 조조 암살을 계획하는 등 최후의 발악이나마 했다. 명나라숭정제원숭환 처형 같은 실책도 있으나 쇠퇴해가는 명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황제였다. 그가 마지막 황제가 된 것도 후계 가운데 총명했기 때문이다. 고려의 공양왕도 고려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분석이 많다. 좀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정상적인 계승이 힘들어 구원투수 형식으로 방계의 (비교적) 유능한 인물들이 왕위에 올랐고, 가능한 한 최후의 발악이라도 했지만 이미 대세를 뒤엎을 수 없던 상태였다. 심지어 왕은 아니지만[3]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도 재능은 있는데 실권이 없어 막부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고생했다. 심지어 브라질의 마지막 황제인 페드루 2세는 퇴위하는 날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성군으로 칭송받았고,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군주인 무함마드 자히르 샤아프간에서는 국부로 칭송 받는다.[4] 다만 이러한 경우 거의 무조건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높은 확률로 전대 혹은 전전대의 임금이 암군이다.

통념은 암군이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재평가 시도가 나타나는 암군들도 적지 않다. "실은 유능했는데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이 가해졌다."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식 평가나 "결과는 안 좋았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졌지만 잘 싸웠다식의 평가. 대표적인 예가 조선의 고종이나 프랑스루이 16세, 일본도쿠가와 츠나요시 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역사학자들의 논쟁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역사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키배가 벌어지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마저도 쉴드가 안된다면 "그래도 인성은 착했다"라는 동정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능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심지어 송양공, 건문제처럼 도를 넘은 선함으로 적에게까지 자비를 베풀다가 망해버린 경우도 있으며, 이 경우에는 그 착한 인성도 무능함의 일부분으로 간주된다. 이는 현대의 재해석만이 아니라 전근대에도 제왕학을 연구하면서 지적하던 부분이다. 송양공의 행적을 가리켜 송양지인이란 말이 나오는게 그 때문이다. 해당 군주 입장에선 그저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없이 사치를 즐긴 군주'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던[5] 과거에 비하면 '성격은 착했지만 무능한 게 문제였던 군주'라는 평가가 차라리 덜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3. 부류

크게 보자면 두가지 부류가 있다. 아예 나라를 운영하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은 충분하고 의욕적인데 능력이 못 따라오는 경우. 전자의 암군들은 주로 노는 일이나 취미생활에 전념하면서 국정은 신하들에 떠넘기는 등 아예 국정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추구하려던 일이나 업적이랄 게 아예 없다. 반면 후자의 암군들은 무언가 의욕적으로 국정을 하려고는 하는데 군주 자신의 능력 부족, 혹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삽질이 되거나 망하는 결과가 나와 암군이라고 불리게 된다.

가끔 이 두가지 경우가 합쳐진 최악(...)이 역사에 나타나기도 한다. 단순히 놀고먹는걸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황음무도한데, 통치에서도 실정의 연속인지라 국력이 급격히 소모되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이다. 대표적으로 수양제를 들 수 있다.

4. 역사 속의 암군

  • 검증된사람만 추가한다.
  • 실권이 없는 바지사장이거나 입헌군주제 하의 군주인 경우는 제외한다.
  • 공화정 체제의 지도자들도 당연히 제외한다. 단 일본의 쇼군이나 북한의 독재자들은 특별히 예외로 간주한다.
  • ★: 폭군으로도 평가를 받는 경우
  • ◆: 지적장애, 정신병, 유전병, 사고 등으로 심신의 상태 자체가 정상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경우[6]
  • ▲: 시해당한 경우
  • △: 폐위된 경우
  • ◎: 역사 왜곡, 관점 차이 등의 논란이 있어 평가가 극명하게 갈려 암군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경우

4.1.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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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 모본왕(48 ~ 53)★▲◎
    • 차대왕(146 ~ 165)★▲
    • 봉상왕(292 ~ 300)★△
    • 고국원왕(331 ~ 371)▲ : 고국원왕 치세동안 고구려는 별별 난리를 다 겪었으며 심지어 고국원왕 본인은 친정중 전사했다. 물론 그 당시 적국이었던 백제가 근초고왕이 통치하는 최전성기라는 걸 감안해야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고국원왕의 무리수는 많았다.
    • 안원왕(531 ~ 545)
    • 양원왕(545 ∼ 559)
    • 영류왕(618 ~ 642)▲◎ : 고구려-수 전쟁의 전쟁영웅이지만 왕이 된 후 친당정책으로 연개소문 등 강경파의 불만을 샀고 결국 시해된다. 결국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강경노선을 타다가 멸망했기 때문에 영류왕의 친당정책이 실책이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 백제
    • 진사왕(385 ~ 392)▲
    • 아신왕(392 ~ 405)◎ : 적어도 보통 수준 그 이상 되는 군주였으나 상대는 하필 광개토대왕이었으니 문제였다.
    • 개로왕(455 ~ 475) : 도림과의 바둑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했다는 이야기와 도미 부부 설화로 암군이란 이미지가 있고, 그의 치세에 백제가 한성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연구를 통해 나름대로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애썼다는 평가도 있다. 게다가 당시 고구려는 장수왕 치세라 아신왕처럼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 말년의 동성왕(479 ~ 501)▲
    • 말년의 의자왕(641 ~ 660)◎△: 다만, 일각에서는 신라 쪽의 조작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 신라
    • 진지왕(576 ~ 579)△◎ : 방탕한 짓을 일삼다가 폐위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삼국유사에만 나오는 기록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선덕여왕(632~647)◎
    • 혜공왕(765∼780)▲◎ : 고려로 치면 의종과 비슷한 왕이었다. 초기는 그럭저럭 잘했으나 의욕을 잃고 정사를 멀리해 신라 멸망의 첫 단추를 낀 왕이 되었다. 대신 왕족들의 권한이 역사상 가장 컸던 것이 신라였고, 이후 왕족들이 계속해서 사직을 어지럽히는 반란을 일으켰고, 왕족들의 사치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이 삼국사기나 동국통감에 나왔다는 점에서 보면 왕족들도 혜공왕의 문제를 가볍게 뛰어넘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암군이라고 마냥 칭할 순 없다.
    • 헌덕왕(809 ~ 826)
    • 진성여왕(887 ~ 897)
    • 효공왕(897 ~ 912)
    • 경애왕(924 ~ 927)▲◎ : 과거에는 한국사 대표 암군 중 한 명으로 봤지만, 포석정에서 놀고먹다가 잡혀 죽었다는 부분은 계절 문제로 사실 간절히 제사를 지내다가 정보 부족으로 습격에 당한 것이었다던가, 고려와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신라군을 원군으로 파견해 돕고 거란과도 커넥션을 만드는 등, 후백제의 샌드백이나 마찬가지였던 전대 암군들에 비해 나름대로 능동적인 시도를 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부분에서 비운의 왕 정도로 보는 재평가 의견도 나름대로 있다.
  • 발해
  • 후백제
  • 후고구려
    • 말년의 궁예(901~918)★▲△ : 무리한 철원 천도, 관심법 같은 조악한 방식의 왕권 강화 등등으로 인해 호족들의 불만을 샀고, 결국 왕건의 쿠테타로 몰락하고 만다. 옹호가 있긴 하지만 반대로 궁예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역사가 역시 많기 때문에 재평가의 대상은 되지 않고 있다.[7]
  • 고려
    • 목종(997 ~ 1009)▲ : 인성은 좋았고 딱히 문제될 것도 없었던 왕이었지만 그의 어머니 천추태후가 전횡을 휘둘러서 실권이 없어서 강조의 정변을 맞았고 비참하게 죽은 비운의 군주.
    • 인종(1122 ~ 1146) : 물론 갑자기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는 점과 그 당시엔 문벌귀족들의 힘이 너무 막강해져서 제대로 된 실권을 휘두르기 힘들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자겸에게 휘둘린 나머지 고려의 멸망 당시까지 이어진 첫 쇠퇴기를 열었다는 점에서는 옹호하기가 어렵다.
    • 의종(1146 ~ 1170)▲△ : 무신정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암군 평가를 벗어날 수가 없는 임금. 그러나 의종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무신들은 더욱 막장이었는지라, 의종 복위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게 함정.[8]
    • 충혜왕(1330 ~ 1332)(1339 ~ 1343)★▲△: 고려판 해릉양왕.
    • 말년의 공민왕(1351 ~ 1374)▲: 노국대장공주 사후 한정. 그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왕은 정사에 소홀해졌고, 결국 홍륜에 손에 시해당하게 된다.
    • 우왕(1374 ~ 1388)▲△ :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이인임에게 휘둘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온갖 기행들이 기록된 것을 보면 멀쩡한 임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마저도 조선 건국 세력인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폄하되기까지 했다는 게 함정.
  • 조선 · 대한제국
    • 연산군(1494 ~ 1506)★△ : 무오사화 이전까지만 해도 폭군은커녕 암군과도 거리가 먼 군주였고, 무오사화 때 잠시 흔들리다가도 갑자사화 이전까지는 나름 진정되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사화 이후 2년간 저지른 패악이 그 원인과 그 이전 10년의 무난한 행적으로도 옹호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 사실 이 양반만큼 어느 하나 모자란 데 없이 즉위한 왕도 드물다.
    • 선조(1567 ~ 1608)◎ : 능력 자체는 인사능력을 포함해서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나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이 좋아서 대신들의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특진시킨 것도 선조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의외로 그래도 괜찮은 군주의 면모를 보였다. 동의보감 편찬 명과 훗날 대동법의 모태가 되는 대공수미법응 시행하기도 했으며 붕당을 적절히 이용해 취약한 정통성을 극복하고 왕권을 강화했고 왜란 후엔 여진족이 강세해제자 노토부락을 정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축옥사를 배후에서 조장한 측면이 있으며, 결정적으로 임진왜란과 그 이후의 활동들은 전형적인 암군 그 자체이자 의심병 환자. 충무공을 내리고 원균을 앉히는 결단은 어떤의미로봐도 대단하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신하 대신 책임을 져서 신하들에게 중압감을 덜어줘야 하는 것이 최고 지도자의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남탓으로 돌리는 데 바빴고 아들이랑 이순신이 잘 나가는 게 두려워서 끊임없이 견제를 놓은 찌질이 소인이었다. 참고로 광해군은 어차피 자기 아들이자 후사를 이을 인물이고[9], 이순신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등용해서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이들을 견제하는 것은 제 살 까먹기나 다름없는 찌질한 짓이었다. 한 마디로 리더십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인물.
    • 광해군(1608 ~ 1623)★△◎ :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왕 중 한 명. 처음엔 단순한 연산군과 더불어 폭군으로 그려져 왔으나, 이후 재평가가 일어나 그의 업적들에 두고두고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단 외치 측면에서는 그럭저럭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나 내정 측면에서는 가혹한 궁궐 공사로 재정파탄을 초래했다.(오항녕 교수)
    • 인조(1623 ~ 1649) : 외정 측면에서 을 많이 저질렀다는 평가가 있다. 그렇지만 병자호란 등의 전쟁의 책임이 그의 외교 정책이 아니라 청나라의 경제 상황의 악화 때문이라고도 한다.(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 역사평설 병자호란)(오수창 교수) 그러나 정묘호란은 누가봐도 자신의 뻘짓으로 일어난 일이고, 병자호란 때는 아예 선전포고문까지 먼저 보내는 초대형 실책까지 저질렀다. 여기에 청이 병자호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정묘호란으로 청나라가 숨통이 트여서 일어난 일이기에 자신의 무능력으로 초래한 측면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전쟁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이 개판김자점김경징을 각각 도원수와 강화 유수로 임명하고, 비상시에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는 등 위기관리능력이 선조보다도 더 개판이라는 점이다. 내정도 만만찮게 개판이라 큰아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으로 후계구도와 효종의 계승명분을 개판으로 만들어버린 결과 증손자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조선멸망의 불씨를 만들었다.
    • 고종(1863 ~ 1907)△◎ :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왕 중에 한 명. 망국의 군주라고 까이거나 나름 조국에 독립에 애를 쓴 비운의 군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 당시 3의 상황도 그렇고 애초에 조선왕조실록이 철종 이후 고종, 순종 실록 등의 편찬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놓고 보면 많은 논란이 붙을 수 밖에 없다. 다만 민비가 매관매직과 부정부패 등등을 일삼아 흥선대원군이 쌓아놓은 업적을 말아먹어 조선이 다시금 부패하게끔 만들었던 것은 남편인 고종 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는 하다.
  • 북한 : 이 아니므로 암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이 문서에는 쇼군 등의 다른 예도 있고, "군주"의 국어사전 뜻도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북한의 김씨 가문을 표현하기에 정확하니 추가하였다. 전제군주제 문서에도 북한의 예가 있으니 참조.
    • 김일성(1945/1948 ~ 1994)★ :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람을 죽고 다치게 만들었으며 이산가족을 만들어 낸 장본인. 인재풀의 씨를 말려버린 지독한 숙청을 통해 독재 3대 세습의 포석을 깔아둔 것 역시 전제군주 입장으로 본다면 업적이라면 업적.
    • 김정일(1994 ~ 2011)★ : 북한 대기근 등 경제적 파탄과 고립. 국가는 막장으로 만들면서도 독재자로서의 카리스마와 정치력 하나는 상당하여 아버지를 허수아비로 앉혀두고 권력을 차지했고 끝내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해 3대 세습을 해낸 전형적인 암군.
    • 김정은(2011 ~ 현재)★ :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둘 다 막장 독재자이기는 했어도 국제사회, 특히 미국을 상대로 도발을 감행해 기어이 국가를 유지한 것에 비해, 적대국에 손을 벌리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능력도 없다. 사실 초반에는 독재자의 면모를 보이기는 했어도 크게 말아먹은 것은 없었으나 갈수록 나라가 막장화되고 이복형인 김정남을 죽이는 등 세계적으로 평판이 악화되어 버렸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록 프로파간다 성격이 강하다 해도) 평소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 적이 몇번 있어 젊은 층 사이에서는 할아버지, 아버지보다는 정치 수완이 좋다는 견해가 돌고 있다.

4.2. 동양사

4.3. 서양사

  • 로마 제국(서로마동로마 포함)
    • 칼리굴라 ▲: 사이비 교주로 등극했다.
    • 콤모두스★▲
    • 네로★ : 흔히 폭군으로 평가를 받지만 사실상 암군에 가깝다. 그리고 집권 초기에는 비교적 정치를 잘 했다.
    • 엘라가발루스▲ : 해괴한 레반트식 신상을 로마 시 한복판에 세웠다. 여사제를 검열삭제까지 하고...
    • 호노리우스 : 410년 로마 함락-약탈 때, '로마'라는 애완용 닭과 로마 시를 분간 못한 것으로 유명(?)하다.
    • 발렌티니아누스 3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포카스 : 서양의 수양제
    • 유스티니아누스 2세 : 유스티니아누스라는 이름값을 가진만큼 능력은 뛰어나지만 그의 정신과 권력욕이 모든걸 말아먹었다.
    • 콘스탄티노스 8세 : 최근의 연구로 재평가가 되고 있다. 항목 참조.
    • 미하일 7세 : 별명이 "-1/4"인데, 그의 재위기간 동안 화폐 가치가 3/4로 떨어졌기 때문(...)
    • 안드로니코스 1세★▲△ : 사실상 로마 제국 멸망의 제일공신. 제4차 십자군 원정의 씨앗[13]도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결국 시민들에게 폐위된 뒤 비참하게 죽었다.
    • 이사키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가 폐위되면서 시민들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군사적 능력은 좋았지만 관직을 시장의 채소처럼 판매(...)하여 로마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다.
    • 알렉시오스 3세△◎ : 최근에는 오히려 실패한 중흥군주로 재평가받고 있다. 종전의 이미지가 너무 짙게 자리잡아서[14] (동)로마빠는 항목 안의 재평가를 필독!!
    • 알렉시오스 4세 : 진짜 암군은 3세가 아니라 4세 이 인간이었다. 이 인간의 뻘짓으로 4차 십자군이 일어났다.
    • 미하일 8세 : 명군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암군에 가깝다. 미하일 8세가 싸지른 똥은 후임황제가 치워야 했고 그러고도 똥은 많이 남아서 오스만한테 제국은 멸망당하고 만다.
  • 영국
    • 리처드 1세(1189 ~ 1199) : 암군으로 평가받았으나 군주로서의 능력은 나쁘지않은편이다.
    • 존 왕(1199 ~ 1216) : 잉글랜드 국왕으로서도, 노르망디 공작으로서도 모두 답이 없는 막장 군주였다. 그나마 초기에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귀족들의 압력에 억지로나마 마그나 카르타라는 중요한 유산을 남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이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영국 왕실에서 왕위 계승권 1순위인 인물은 '존' 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있다.
    • 에드워드 2세(1307 ~ 1327)▲△
    • 말년의 에드워드 3세(1327 ~ 1377)
    • 리처드 2세(1377 ~ 1399)△
    • 헨리 6세(1422 ~ 1461, 1470 ~ 1471)▲△
    • 찰스 1세(1625 ~ 1649)▲△ : 찰스 1세가 폭군이었다든가 무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헌군주제를 반대하고 전제군주제를 선봉하고 있었던 것 때문에 평가가 그렇게 된 것이다. 재정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고...
    • 제임스 2세(1685 ~ 1688)△
    • 조지 1세(1714 ~ 1727) : 하노버 선제후로서는 뛰어난 명군이다, 영국 국왕으로서의 행적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영국의 의원내각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위안이다. 어찌보면 영국 국왕은 그냥 맡아만준거에 가깝다. 조지 1세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은 하노버 선제후라는 개념이 강한 인물이다.
  • 프랑스
    • 프랑스 왕국
      • 발루아 왕조
        • 장 2세 왕으로서는 완전히 무가치했다는 평을 들었다
        • 샤를 6세
        • 프랑수아 2세(1559 ~ 1560)
        • 샤를 9세(1560 ~ 1574)
        • 앙리 3세(?)(1574 ~ 1589)◎▲ : 암군이라기보다는 명군의 업적이 더 많았다. 종교문제에 휘말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나바라 국왕 앙리(앙리 4세)와 협력하여 기즈 공을 살해하였고, 종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긴 했다. 다만 자식이 없어 앙리 4세가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앙리 3세가 앙리 4세에게 살해당한 거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 부르봉 왕조
        • 말년의 루이 14세(1643 ~ 1715)
        • 루이 15세(1715 ~ 1774)
        • 루이 16세(1774 ~ 1792)▲△◎ :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면서 루이 16세의 성품과 능력도 재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래도 혁명을 촉발시킨 원인이 그에게도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루이 16세를 옹호하는 측에서도 바렌느 배신사건은 쉴드쳐주지 않으며 그의 능력으로 혁명을 막기란 불가능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 루이 18세(1815 ~ 1824)
        • 샤를 10세(1824 ~ 1830)△
        • 앙리 5세(1830 ~ 1830) : 겨우 7일 동안 즉위한 명목상의 국왕이라서 이 문서에 넣어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진행되었지만, 1871년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고 제3공화국의 왕당파들이 입헌군주제 하의 국왕에 추대하려고 했으나 전제왕권을 포기할 수 없어서 왕위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암군이 확실하다.[15]
    • 노르망디 공국
      • 노르망 왕조
        • 로베르 2세(1087 ~ 1106)△ : 만약 그가 잉글랜드 왕위를 노리지 않고 노르망디 본토에서의 내치도 잘했다면 노르망디는 잉글랜드와 완전히 별개의 나라가 되어 잉글랜드와의 동군연합이 아닌 독립국가로서 좀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플랑타주네 왕조
        • 리샤르 4세(1189 ~ 1199)
        • 장 1세(1199 ~ 1216) : 노르망디 공국의 육지 영토를 모조리 상실해버렸다. 그나마 채널 제도를 지켜내긴 했지만 이마저도 육지가 아니라 섬이라서 사실상 그의 치세에 노르망디 공국이 멸망한 거나 다름없다.
    • 프랑스 제국
  • 독일
    • 신성 로마 제국
    • 독일 제국
      • 빌헬름 2세(1888 ~ 1918)△ :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암군이다. 비스마르크 해임, 여타 열강에 대한 도발, 제1차 세계대전 등 정치성 삽질은 그렇다 쳐도 창녀와 검열삭제 스캔들로 독일 황실의 권위를 지표를 뚫고 내핵까지 근접하게 만들었다.
  • 오스만 제국
    • 말년의 쉴레이만 1세 :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어낸 명군이지만, 자식 관리가 완전히 엉망이었다. 황후 휴렘 술탄 등의 음모에 빠져 제국 국민 대다수의 인망을 얻고 있던 장남 무스타파를 반역죄로 처형(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했으며, 막내인 바예지드 역시 반역을 의심하여 처형. 결국 바로 아래에 나오는 셀림 2세가 뒤를 이었지만, 그 정체는 오스만 제국 역사상 처음 보는 막장 황제. 자식 문제뿐만 아니라 말년에 갈수록 황후나 그녀에게 빌붙은 관료들의 말만 믿고 유능한 신하를 처형장으로 보낸다거나, 부패에 찌든 신하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의 실책도 저질렀다.
    • 셀림 2세 : 재상에게 정권을 넘긴 최초의 황제였으며, 직접 군사 지휘를 한 적이 없는 최초의 황제이기도 했다[19]. 황제를 대신하여 정치를 맡은 재상 소콜루 메메드 파샤의 재능이 일단 합격 수준이었지만, 지방 총독이나 부재상이 되려면 반드시 재상에게 '선물' 을 바쳐야 하는 상황을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영락없는 호구 인증. 이후에 황제의 권위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황제의 애첩이나 모후가 정치에 끼어들고 예니체리가 황제를 갈아치우는 등의 사태가 다 셀림의 치세에 그 싹이 텄다.
    • 아메드 3세 : 이른바 튤립 시대라 불리는, 오스만 문화의 또 한 번의 중흥기를 이루어낸 군주였지만, 그 외의 능력은 형편없었다. 그의 시대에 오스만 제국은 매년 유럽 군대에게 털렸으며,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실정이었지만 그는 수도 코스탄티니예에서 하렘의 후궁들과 놀거나 튤립 가꾸기에 여념이 없었다.(…)
    • 그 외 예니체리에게 옹립된 모든 황제들 : 사실 이 부분은 애매하다. 예니체리들의 입맛에 따라 제위에 오른 황제 가운데 정신병을 앓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국 전성기 때까지의 황위계승분쟁에서 예니체리의 지지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즉위할 수 있었던 인물도 있기 때문. 또 쇠퇴기에도 분명 예니체리가 옥좌에 올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통치에 임했던 황제도 있다.

5. 가상의 암군

5.1. 게임에서의 암군

군주제의 국가를 운영하는 많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보통 군주 각각이 몇 가지 능력치를 가지며 이것이 게임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 군주라는 것이 그냥 약간의 버프, 디버프 정도만 주는 경우라면 별 상관이 없지만 군주의 능력치가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 플레이중인 국가에 암군이 들어선다면 게임 진행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시리즈 - 게임 내 대부분의 국가가 군주제이기에 랜덤한 확률로 랜덤한 능력치의 후계자가 등장하여 왕위를 잇게 된다. 그런데 군주 능력치에 따라 받는 포인트가 게임 내 거의 모든 행동에 대량으로 소모되어 사실상 돈보다도 중요한 메인 자원이기에 암군이 등장하면 참 골치아프다.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 비교한다면 능력치 최하의 군주와 최고의 군주를 둔 나라는 기술개발만 할 경우 속도가 3배나 차이난다.
  • 크루세이더 킹즈 2 - 국가를 플레이한다기보다는 중세 영주 개개인을 플레이하는 것에 가까운 게임 특성상 캐릭터 능력치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며 능력치가 쓰레기인 캐릭터가 계승받는다면 난이도가 급증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상속법과 각종 음모를 통해 능력치 구린 자식을 죽이거나 투옥하거나 하는 등 플레이어들은 온갖 수단을 써서 암군의 등장을 막기 위해 노력하게 되며 하다보면 이것이 게임의 메인 컨텐츠 중 하나인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 토탈 워 시리즈 - 전반적으로 군주 능력치가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그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특히 시기상 현대에 가까운 배경을 가진 작품일수록 군주보다는 개별 장군들의 영향이 크며 원하지 않는 군주를 갈아치우기도 어렵지 않다. 물론 영향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고 꽤 큰 패널티를 가진 왕도 가끔 나온다. 작게는 자신이 관리하는 지역의 수입및 민심 감소부터, 크게는 모든 영토에 디버프를 걸어버리거나 외교에 페널티를 주는 경우가 있다.

6. 관련 문서



[1] 이 표현은 진순신의 소설 제갈공명에서 사마휘방덕공유표를 평하면서 한 말이다.[2] 세종대왕, 정조[3] 일본의 왕은 엄연히 천황이였다. 하지만 천황이 워낙 허수아비라서 실질적인 일본의 왕은 막부의 장군(쇼군)이나 다름없었다.[4] 병 치료로 외국에 체류중 사촌의 쿠데타로 왕좌를 잃었고, 폐주들 중 드물게 죽기 전에 명예회복은 했다. 단지 그 동안 나라가 왕정복고도 불가능해질 정도로 막장이 되었기에 복위하지 못했을 뿐이다.[5] 암군을 무조건 만악의 근원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성 같은 것은 재발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6] 당연하다만 이런 군주는 어쩔 수가 없다. 장애에 의한 실수 또는 무능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7] 더군다나 암군이 아니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는 의자왕과는 달리, 궁예는 오히려 역사학자들이 연구할수록 점점 불리하게 가고 있다.[8] 그 예가 김보당의 난. 주도자인 김보당의 경우 평소 의종의 실정에 비판적인 인물이라서 무신정변 당시에는 무사했던 것이다.[9] 왜란 때부터 자신의 정통성이 항상 의심받아와서 그런지, 이때의 트라우마로 광해군이 재위중에 무리한 정책들을 펴나가는 계기가 된다.[10] 이 과정에서 희생되거나 소외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조창, 조식, 하후상이다. 자신의 동생인 조창조식을 죽이거나 소외시킨 것은 그나마 황권강화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핑계라도 댈 소지가 있으나, 자신의 방계친척인 하후상을 죽게 만든 것은 명백한 실책이었다. 가뜩이나 기존 황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외척과 황족들을 배제하고 방계친척 위주로 그것을 대체한 상황에서 하후상이 죽자, 유사시 황실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막 역할을 할 인물은 조진, 조휴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며, 이는 두 인물이 죽을 경우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전무하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진, 조휴가 연달아 죽은 후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할 조상자기 아버지숙부에 비하면 함량미달의 인물이었고, 결국 조상 일파가 사마의 일파에 의해 숙청당하자 조위는 바로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11] 사실 악비 자체가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는 평도 많다. 악비라는 인물의 평가에 따라 송고종명군으로 보느냐, 암군으로 보느냐가 갈린다.[12] 천순제 시절에는 그래도 간신들을 처단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3] 라틴(서방)인 대학살[14] 억울하게도 위의 안드로니코스 1세만큼이나 그간 악명이 높았다.[15] 다만, 이는 자식이 없던 그가 사후 왕위가 오를레앙 가문에 넘어가는 것이 싫어서 어그로를 끌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16] 사실 유전학적으론 큰아버지가 아니다. 자세한 것은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 항목 참고.[17] 스페인계 합스부르크 가문[18] 스페인계 부르봉 왕조[19] 오스만 제국은 유목민 전사 집단에서 출발한 나라이며, 이러한 전통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에 따라 오스만의 황제는 전사 집단의 우두머리로서 수틀리면 직접 전장으로 향할 것이 요구되었으며, 실제로도 창건자 오스만 1세로부터 쉴레이만 1세에 이르기까지 모두 군사를 직접 지휘해 본 경험이 최소 한 번 씩은 있었다.[20] 아버지가 저지른 추악한 만행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암군이 되었다.[21] 회귀 전 한정. 고작 신에게 선택받은 아이란 이유 하나로 신분도 모르는 여잘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멋대로 황후로 올리고 유능한 황비를 처형시키고는 결국 나라를 거하게 말아먹었다.[22] 이 사람이 황제로서 한 일은 간신인 박중헌에게 놀아나면서 충신이자 명장군이던 김신을 자기보다 인기가 많단 이유로 질투심에 눈이 멀어 반역자로 몰아 자결하게 하고, 그의 누이이자 자신의 황후였던 김선을 비롯한 김신의 일가친척들을 몰살시킨 후 정사는 돌보지 않고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일 밖에 없다.[23] 이 사람은 그야말로 세계관 최악의 암군이다. 무능한 주제에 괜히 툭하면 끼어들기만 해 잘 될일 다 망쳐 동생 기스카르한테 걸림돌만 되었다. 특히 악당 보댕이 이 사람의 멍청함을 이용해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나라일을 얼마나 개판으로 했는지 그가 죽은 뒤 나라는 개막장이 된다.[24] 다만 맨처음부터 암군은 아니었고 나라를 발전시킨 최고의 명군이었다. 그러나 왕실의 혈통이 끊길것이라는 예언에 과도하게 집착하다 편집증이 생겨 미신을 신봉하고 며느리를 겁탈하는 패륜을 저지르며 이를 만류하는 신하들을 파면하면서 암군이 되었다.[25] 다만 끝에는 후계자 결정을 잘한편이었다. 특히 장남이 워낙 막장이어서 정식 후계자로 임명하지 않아 그가 병이 들어도 장남이 함부로 권좌를 차지하지 못했고 나중엔 정상인 차남을 후계자로 임명하여 나라를 보존할수 있었다.[26] 마검 스톰브링거의 영향도 있지만 황제로서 한 처신을 보면 빼도박도 못하는 암군이다. 이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라까지 말아먹었고 본인도 평생 마검 스톰브링거한테 이용당하는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된다.[27] 사정을 알아보고 배상만 했다면 전쟁을 피할수 있었는데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드워프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말아 패하며 본인의 목숨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엘프 왕국도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이 패배로 인해 엘프가 건설한 식민지들도 모두 상실하여 올드 월드에서 엘프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28] 정무에 큰 관심이 없고 유흥에 몰두하는 등 공식적으로는 암군이 맞다. 하지만 이따금 날카로운 뜻이 담긴 발언을 하는 등, 평면적인 암군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2차 창작 등에서는 실제로는 유능하지만 제국의 막장 상황에 회의를 가지고 차라리 멸망하길 원했다는 해석도 나온다.[29] 인품은 훌륭하나, 왕도 인섬니아의 시민들과 킹스글레이브 단원들 입장에서는 암군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자신이 어리석은 왕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본인도 인정한 부분.[30] 작중에서는 끊임없이 성군으로 미화되지만…….[31] 드라마 상에서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북벌만 추구하는 암군의 모습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이쪽은 현실에서도 암군(+폭군)이었다[32] 비록 왕은 아니지만 지구의 신인 위치에서 블루의 작중 무능함과 뻔뻔해 보일 태도 덕분에 러블리를 포함한 프리큐어들이 아니였다면 자신이 연관된 왕국과 지구는 끝장 났었을 수준이었다.[33] 이문대라는 것이 발전 가능성이 없어진 세계이며 실제 각 이문대의 왕들의 운영방식을 본다면 도저히 답이 없을 정도의 세계관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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