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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암군/목록 문서의 실존인물 예시 목록 문단에는 나무위키에서 정한 근거 신뢰성 순위 6순위 이상의 자료들에서 명확하게 암군, 혹은 부정평가가 높다고 명시된 군주들만 추가하며 각주로 그 근거 출처를 반드시 밝혀놓는다. 또한 암군이라는 평가의 근거 출처가 전혀 확인이 되지 않는 군주들은 목록에서 삭제를 원칙으로 한다.
-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을 경우나, 전제군주제에 가까운 태국, 모로코,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한 완전한 입헌군주제하의 군주는 제외한다.
- 공화정 체제의 지도자도 기입하지 않는다.
- 독재자 역시 기입하지 않는다. 단, 군주에게 실권이 없는 국가의 실권자들(예: 막부 정권의 쇼군 등 전근대 일본의 실권자[1])이나 군주 없는 군주국의 섭정으로서 독재를 저지른 인물은 예외로 간주한다.
- ★: 폭군으로도 평가를 받는 경우
- ◆: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경우[A]
- ◇: 육체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A]
- ▲: 시해 또는 전사당한 경우
- △: 폐위되거나 강제로 양위당한 경우
- ◎: 역사 왜곡, 관점 차이 등의 논란이 있어 평가가 극명하게 갈려 암군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경우. 논란이 있는 경우 관점에 따라 충분히 명군이라고 볼 수 있다.
2. 실제 사례
2.1. 동아시아
2.1.1. 한국사
2.1.1.1. 고구려
- 모본왕(48 ~ 53)★▲◎: 성품이 사납고 잔인하여 사람을 깔고 앉거나 베개로 삼는가 하면, 함부로 죽이는 등의 폭정으로 인해 신하 두로에게 시해당했다.[4] 다만 역사 왜곡일 가능성이 있다.
- 봉상왕(292 ~ 300)★△: 재위기간 동안 자연재해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백성들을 동원해 궁궐을 증축하는 등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등의 폭정을 저질렀고 의심이 많은 성격 탓에 동생 돌고를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로 인해 창조리에게 폐위된다.[6]
- 문자명왕(492 ~ 519): 치세를 들여다보면 할아버지 장수왕이 나라를 강력하게 만들며, 아들 안장왕이 다시 복구 했으니 망정이지 다른 시기 였다면 그대로 고구려가 퇴락했을 수준이었다. 말년의 의자왕이나 연산군 같은 폭군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암군의 반열에 들어가며, 고구려가 남쪽으로 더 진출하지 못하게 만든 원흉이다.이 시기 무령왕에게 한강 유역을 내주고, 안장왕때 한강 유역을 되찾았기 때문.[7]
- 안원왕(531 ~ 545)◎: 사실 기록상으로 실정을 벌인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도량이 넓었다는 긍정적인 뉘앙스의 평가 및 재위 말을 제외하면 왕이 국정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고 조정 내의 구체적인 혼란상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하는 평가가 있을 정도. 그런 것처럼 재위 중반까진 그냥 평범히 보냈다. 다만, 안원왕의 왕위계승 문제와 왕권이 약해지고 대대로의 권력이 강화되었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점차 두드러지게 되는 후계자 선정 실패는 안원왕의 실정으로 보고 있다.[8] 물론 문자명왕 때부터 생긴 문제점이 안원왕 시기에 터진 것이라 안원왕 한 명만의 잘못으로 몰빵해버리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 표를 추가한다.
- 영류왕(618~642)▲◎: 지나친 친당(親唐) 정책으로 내부의 불만을 초래하였으며, 신라가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여 빼앗으면서 신라와의 대외정책도 실패로 돌아갔고, 빈약한 정치력으로 무리수를 두다가 정치세력 간 갈등이 심화돼 본인 목숨도 잃었다.[10][11] 다만 고구려-수 전쟁 당시 명장이었던 만큼 능력은 있었고[12] 마냥 폭군 + 암군은 아니었기에 ◎ 표를 추가한다.
2.1.1.2. 백제
- 개로왕(455 ~ 475)▲△◎: 도림과의 바둑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했다는 이야기와 도미 부부 설화로 암군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있지만, 최근에는 여러 연구들을 통해 나름대로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애썼다는 긍정적 평가도 발굴되었다. 다만 왕권의 권위와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화려한 왕궁 건설과 개로왕의 무리한 토목공사의 추진으로 민심과 평판은 갈수록 악화돼가고 백제의 국력은 날로 피폐해져서 이 실책으로 인해 개로왕의 전제왕권은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붕괴되기에 앞서 내외적인 모순이 격화되면서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13]
- 말년의 동성왕(479 ~ 501)▲△◎: 집권 중후반까지만 해도 왕권 강화 정책과 대외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어 웅진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명군으로서 백제의 중흥기를 잘 이끌어갔지만, 집권 말기 측근 정치에 빠지고 대규모 토목공사와 자연재해로 민심 이반을 겪으며 신하들의 구휼 요청도 무시하고 궁에 틀어박혀 향락만 실컷 즐기는 등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위사좌평에까지 임명하며 신임하던 신하 백가가 일으킨 반란에 휘말려 시해된 점에서 동성왕의 정치적 한계로 지적된다.[14]
- 말년의 의자왕(641 ~ 660)△◎: 집권 후 15년까지는 부친 무왕 대 쌓아온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 정국을 이끄는 등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당나라와 거리를 두면서 신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영토를 확장하는 등 업적이 많았다. 그러나 집권 15년을 지나면서 말년에 여색과 향락에 빠져 충신을 멀리했고 대외관계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대당관계가 파탄나서 당나라가 신라와 동맹을 맺은 뒤 협공을 초래해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15]
2.1.1.3. 신라
- 선덕여왕(632 ~ 647): 당시 대외 전쟁이 빈번했던 시기에 무리한 토목공사를 강행하여 비용과 인력 문제에서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였다. 선덕여왕은 불교를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타파하고자 했으나, 무리한 사찰 및 사탑의 건립 사업과 숭불사업으로 인하여 기층민의 여러 계층의 불만이 생겨났고, 이는 비담의 난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란을 마주한 상황에서 그 위기를 해소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뭐라도 제시하지 않고 불사에 과하게 치중하여 국력 탕진을 가속화하는 등 여러 실책으로 인해 대중의 인식과 달리 학계에선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16][17]
- 진성여왕(887 ~ 897)◎: 흔히 매체에서의 언급 탓에 암군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기록만 가지고 마냥 암군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묘한 게 사실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실책을 일방적으로 다 떠넘겼다는 평가 역시 공존하는 중이며 더군다나 이 무렵의 신라는 이미 진성여왕 즉위 전부터 몰락하고 있었던 나라였다.[18] 다만, 중요한 인재활용에서 실패하였고 군사력 지지기반에서도 통치력 부재의 허약한 리더십을 가진 점과 농민들이 각지에서 못 살겠다며 난을 일으키는 혼란기였음에도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해 혼란상을 나 몰라라 하고 방치만 한 점은 명백히 쉴드 여지가 적은 편이다.[19]
- 경애왕(924 ~ 927)▲△◎ : 과거에는 한국사 대표 암군 중 한 명이라는 악평을 들어야 했지만, 제사 장소인 포석정에서 술이나 마시며 놀고 먹다가 후백제군에게 잡혀 견훤에 의해 억지로 자살했다는 부분은 왜곡이라는 견해가 많으며, 실상은 계절 문제로 간절히 제사를 지내다가 정보 부족으로 습격에 당한 것으로 보는 설이 많다. 다만 종교에 대한 의존으로 방어에 대한 대책 대신 포석정에서 신들의 가호를 비는 행사나 현실적인 대응 대신 무모한 외교 정책을 나서게한 점은 경애왕의 실책으로 본다.[20]
2.1.1.4. 고려
- 목종(997 ~ 1009)◆▲△◎: 초창기에는 적극적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업적도 많이 남기는 등의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자신을 지지해주어야 할 모후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불륜을 저지른 걸로도 모자라,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왕위에 올리려는 짓 후계 문제가 발생했고, 이 문제는 대부의 기름창고에 일어난 불이 번져 천추전을 태운 사고로 인해 정치적으로 표면화됐다. 또 이 일 때문에 목종은 병이 나서 칩거한 채 궁궐을 폐쇄하고 정무를 보지 않아서, 정국의 혼란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21]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면과 수반된 은전의 내용과 성격 등이 당시 추진된 정책의 방향 등을 미리 제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심지어 내부 갈등으로 정권의 몰락까지 초래한 요인 등을 낳기도 했다.[22]
- 의종(1146 ~ 1170)▲△: 무신정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암군이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는 임금이다.[23] 그러나 의종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무신들은 더더욱 막장이었는지라, 의종 복위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는 게 아이러니다.[24]
- 충렬왕(1273 ~ 1298.3)(1298.10 ~ 1308)△: 원종대에 원 간섭기가 시작됐지만 그때까지는 외면적인 지배를 당했다면 충렬왕대에는 아예 원의 부마국이 되어 일본정벌에 동참하는 과정을 통해 원의 복속이 더욱 강화되어 갔다는 점과 카다안의 침입 당시의 행적 및 고려의 노비개혁을 반대했고, 원의 통해 왕권을 강화해 충렬왕 이후 고려는 원에 의존하는 자세가 더욱 심화되어 갔으며 고려 관원 또한 이에 대한 저항의식은 보여지지 않으며, 고려는 이제 내재적으로까지 원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25]
- 충선왕(1298)(1308 ~ 1313)△◎: 국정 전반에 걸쳐 강도 높은 개혁을 했지만 개혁안들을 정치세력과 연결시켜 경제현상을 정치사에 함몰시켰으며, 당시 개혁이 지녔던 한계로 인한 국정실패로 고려가 성장하기 못한 걸로 지적된다.[26]
- 충혜왕(1330 ~ 1332)(1339 ~ 1343)★▲△: 고려판 해릉양왕으로 온갖 난행을 펼치다가 원나라에 끌려가 죽었다. 사실 도덕적 측면에선 영락없는 사이코패스 왕이었지만, 21세기 들어선 정치 운영과 정책적 측면에선 또 일부 개혁적 요소도 있었다는 식의 약간의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하는 53권짜리 《한국사》 중 제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에 역대 '충(忠)' 자 돌림 왕들의 항목을 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일반적으로 충혜왕에 대해서는 왕이 음행을 일삼았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 운영과 정책 시행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이 왕은 상업 활동의 진흥과 유통 구조의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했고, 사급전의 혁파 등 토지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27] 더불어 각종 세목을 신설해 권력층을 견제하였다.[28] 원의 간섭으로 폐위당한 경험이 있어 악소배를 비롯한 측근 세력을 광범위하게 형성하여[29] 왕권 강화를 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부원 세력인 기철, 고용보와 대립하게 되었다. 즉, 충혜왕의 개혁 시도는 전방위적으로 친원파들을 압박하는 것[30]이었고 고려 정국은 충혜왕파 대 친원파로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이 같은 정치 상황 속에서 충혜왕은 고용보 등에 의해 체포당하여 원에 압송되었고 곧 악양현에 유배되었다가 사망했다. 기철 등 부원 세력은 충혜왕의 왕권 강화로 위축당하자 왕을 체포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위기 국면을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다. 원으로서도 충혜왕의 개혁 정치가 원나라의 고려 종속 정책에서 일정한 수준 벗어난 것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즉 충혜왕의 폐위에는 원의 고려에 대한 종속 정책과 부원 세력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개입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원은 충목왕 즉위 후 충혜왕 대의 정치를 전면 부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왕의 폐위에 대한 고려 정치 세력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개혁을 표방할 수밖에 없었다.《한국사》 제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그가 이런 권력을 개인의 폭정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용했으면 고려의 운명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렇게 권문세족을 짓누르고 획득한 재정이나 권력을 백성을 위해서 썼다면 지지가 높았겠지만, 왕과 신흥 세력인 악소배들이 깽판치는데 사용해 버렸으니 백성들 입장에선 왕이나 권문세족이나 똑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31] 그가 폐위된 것도 결국 자신의 행실로 인한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탓이라고 본다면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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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정왕(1349 ~ 1351)★△◎: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 폭정과 외척의 전횡으로 국정을 문란케 했다.[32] 다만 당시 충정왕은 나이가 너무 어려 스스로 정치를 주도해가지 못했고, 승자인 공민왕 측에서 폐위의 정당성을 위해 조작한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는 반론도 있다.[33]
- 말년의 공민왕(1352~1374)★◆▲◎: 반원정책으로 고려를 개혁하여 각종 정책으로 망해가는 고려를 일으켜 세운 좋은 면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고려 말기의 인재들을 의심하여 함부로 숙청하거나 노국대장공주 사후에는 각종 기행과 난행으로 겨우겨우 일으켜 세운 고려의 멸망을 가속화 시킨 암군으로 전락한채 암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34]
- 우왕(1374 ~ 1388)★▲△◎: 정국운영 과정에서 자신을 추대한 측근 세력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인임을 중용해 대다수의 정치적 문제를 이인임에게 맡겼고, 이는 측근에 의한 정권 농단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게 된다. 최영이 정국을 장악했을 때도 우왕은 똑같은 방식으로 변화된 상황에 대처했다. 이는 우왕에게 있어 취약한 지지기반을 보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이러한 선택은 새로이 대두하고 있던 정치세력들과의 공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종국에 우왕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안겨주게 됐고, 특히 이 상태에서 요동 정벌을 무리하게 시도했다가 우왕대의 측근정치의 폐단으로 위화도 회군이라는 사건이 터져 우왕이 폐위되는 원인이 됐다.[35]
2.1.1.5. 조선
- 연산군(1494 ~ 1506)★△: 무오사화 이전까지만 해도 폭군은커녕 암군과도 동떨어진 군주였고, 무오사화 때 잠시 흔들리다가도 갑자사화 이전까지는 나름 진정되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사화 이후 2년간 저지른 패악이 그 원인과 그 이전 10년의 행적으로도 도저히 옹호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36] 갑자사화가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수를 위한 것이라는 쉴드가 있지만, 이게 뭔가 말이 안 되는 것이 성종의 두 후궁은 윤씨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으며[37], 조선 시대의 율법으로는 부친의 후궁 역시 모친과 같은 수준으로 대우해야 하므로 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은 명백한 패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록상으로도 이미 연산군은 즉위 혹은 그 이전부터 모친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갑자사화는 윤씨의 죽음을 빌미로 양신을 숙청하고 전제권력을 얻기 위함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나 연산군은 전제권력을 거머줬기는 했지만, 권력을 무분별하게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놀아재끼면서 권력남용을 했기에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 및 시스템을 망가뜨렸고,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연산군 시대가 조선 시절 전체 중에 가장 왕권이 강한 시기였던 만큼, 이후에는 군약신강 기조가 이어지게 된다[38]. 아이러니하게도 연산군은 폐비의 소생인데다가 이후 중전이 된 정현왕후가 중종을 낳았는데도 불구하고 즉위할 때도 모자란 데 없이 즉위하였다.
- 중종(1506~1544)◎: 재위 기간 내내 자신의 왕권 강화만을 위해 조광조, 김안로 등의 공신들을 꼭대기에서 고꾸라뜨리는 권력 암투에만 골몰하였다. 조광조와 김안로의 행적에 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권력의 최정점에서 한순간에 고꾸라트리는 식의 권력 암투로 인해 중종 재위 내내 수많은 사화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중종은 폭군의 대명사인 이복형 연산군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신하들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 복성군까지 죽이기까지 했다.[39] 중종 뿐만 아니라 당시 사대부들의 인식으로는 몰랐겠지만, 연산군 대에 개발된 연은분리법을 폐지한 것은 일본의 경제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는 나비 효과가 되어서 돌아왔다. 어쨌든 자신의 아버지인 성종을 본받겠답시고 《동문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覧)》, 《대전속록》을 각각 《속동문선》, 《신증동국여지승람》, 《대전후속록》으로 이른바 속찬증보(續撰增補)[40] 한 것 정도의 업적은 남겼다. 이 시기에 강원도 양전이 1522년(중종 17년, 중종 17년 11월 30일), 전라도 양전이 1524년(중종 19년, 중종 19년 12월 28일 1, 중종 19년 12월 28일 2), 평안도 양전이 1544년(중종 39년, 중종 39년 12월 28일)에 이루어졌다.
- 선조(1567 ~ 1608)◆[41]◎: 그나마 왜란 종결 후 여민휴식(與民休息)이라는 기조를 내세워서 토지 복구, 국가 재정 감축, 세금 감면 등을 행하기는 했으나 당장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발한 정책을 내놓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현종 대에 숙종 대에 입안절수(立案折受) 규제 강화[42]와 같은 선조 대에 규제 완화[43]의 부작용들을 수습하기 위한 해결책들을 제시해야 했던만큼 세부계획에 있어서 치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기에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이거나 하는 대안을 선조 대에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이후에 실시된 대동법 같이 국가의 구조적 문제를 직접 건드리는 대안을 제시하고 제대로 실시한 적은 선조 대에 전혀 없었다.[44][45] 어떻게 보면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고상하게 돌려서 이것을 원칙으로 간주하겠다고 승인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선조라는 왕이 집권한 동안에는 무엇인가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온 개선책이 실시되고 성과를 낸 적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전란 전에는 원칙이 없었고[46] 전란 후에는 그나마 여민휴식(與民休息) 같은 그것 자체로는 합리적인 원칙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세부계획이 뻔하고 허술해서 민간의 자생능력에 대부분 의지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47] 업적이 없는 것이야 관대하게 넘어가 줘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조선 정부의 세제나 세수구조가 어떠한지 파악조차도 못하고 조선이라는 국가 전체의 가난으로 치환하는, 그것도 심지어 수백 년 전의 고려와 비교하며 한탄하는 그 유명한 망언[48][49]을 보면 도첩제 존폐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연산군만도 머리는 좋기라도 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50] 정책적 성과를 내는 능력은 하다못해 중종, 명종 부자보다도 좋다고는 할 수도 없고[51] 출범 이후 아무런 일도 제대로 못해본 정공도감(正供都監)을 스스로 날려먹은 것을 보면 이정청(釐整廳) 설치 그리고 이정절목(釐整節目) 도출까지는 어떻게 이뤄낸 철종만도 한참 못하다. 그나마도 앞서 언급한 왕들조차도 전혀 명군 축에 못 드는 범부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머리를 따지기 이전에 그냥 사람 자체가 왕으로서 거의 전적으로 문제해결력이 없다시피 극도로 무능했는데 전제군주제 사회라서 자동으로 왕 자리를 거저먹은 폐혜가 아닌지 의심을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광해군(1608 ~ 1623)★△◎: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연산군과 더불어 폭군으로 여겨져 왔고, 근현대에 와서는 재평가의 기류도 많았으나, 결국엔 연산군 급은 아니더라도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평이 다수다.[52] 세자 시절 광해군은 임진왜란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줌으로써 명군의 재목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었는데,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53] 열심히 국가를 말아먹었고 결국은 폐출됐으므로 긍정적인 총평을 내리기엔 대단한 무리가 있다. 특히 내정에서 가혹한 궁궐 공사로 재정파탄을 초래했으며, 세자였을때와 달리 민간 사회의 복구에 별 관심을 주지 않았고, 대동법 같은 산업 혹은 구휼 정책 확대에는 대체로 반대를 해왔으며,[54][C] 많은 신하들과 왕족을 죽이는 옥사를 벌이고 국가를 망가뜨렸다. 특히 영창대군을 무리하게 죽이는 등 패륜을 일삼았고 간신배들을 끼고 살며 그 똥물에 본인도 자멸했다. 세자 시절의 활약으로 국민 영웅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왕위에 올라 존호가 전체 조선 국왕 중 가장 긴 48자나 될 정도로 왕권이 안정적이었음에도 방계이자 별다른 능력도 없는 인조에 의해 폐위되었다는 것은 광해군의 폭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최근 일각에선 임진왜란을 비롯해 이순신 등을 주제로 한 영화 및 드라마가 성행, 전술한 선조의 의심병 말기 환자짓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각인되었고, 마치 사도세자의 비극과 같은 류로 광해군도 저것에 악영향을 받은 바람에 미쳤을 것이라는 동정 여론도 많이 생겨났으나, 후대나 선대에 못지 않은 오히려 더 나쁜 암군 / 폭군이라는 평을 피하기 어렵다.
- 인조(1623 ~ 1649)◎: 다방면으로 말아먹었지만 특히 외교적 측면에서 실책(=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많이 저질렀다는 평가가 있다. 외교적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인조와 그의 신료들이 국가위기시에 요청되는 공론정치의 적극적 측면을 이용하지 못했고, 신하들이 소극적으로 자문만하거나, 전쟁이 임박해 있는 데도 시비의 문제를 따지며 회의만 거듭하는 우유부단함을 보이곤 했다.[56] 또한 아들인 소현세자가 청나라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의심하여 잔인하게 학대했다. 다만 민생 구휼에 힘쓰는 태도를 보여서 기우제를 친제하거나 내탕고를 열어 빈민을 구제하는 등의 행위는 민생 구휼에 인조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기록이 있어 이러한 상황은 인조대 진휼청의 역량이 향상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업적은 남겼다.[57]
- 순조(1800 ~ 1834)◆◇: 세도정치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여 삼정의 문란을 방치한 왕으로 평가된다. 사실 순조는 인간적으로는 호인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어지러운 시국을 자각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어느 정도 개혁의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증조할아버지였던 영조와 아버지 정조에 의해 만들어진 강력한 왕권에만 의존된 정국을 어린 순조는 잘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홍경래의 난을 계기로 지쳐버려 이후 정치적 식물인간이 되어 수십년간 정무에 손을 놓아버렸다.[58] 애초에 순조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문제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홍경래의 난 이후 순조는 정신 건강을 해치게 되어 국가운영에 일관성을 잃게 되었고, 11년경에는 결국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후 12년 3월에 회복은 되었으나 정치력의 복구는 이루지 못하여 이전까지의 그의 노력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59] 자연재해, 홍경래의 난, 안동 김씨의 발호, 건강 악화 등을 겪은 순조는 1814년(순조14) 이후 국정에서 한 발 물러섰다. 신료들이 순조에게 적극적으로 국정에 임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순조는 이후 10년이 넘도록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1819년(순조 19) 임선(任㸁)은 상소에서 임금이 너무 침묵을 지켜 이해와 공사(公私)의 분별이 권력자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결재가 밑에서 처리된다고 비판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순조는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임선은 조정 신하들을 없애려 한다는 반격을 받아 유배당했다.[60] 계속 건강이 나빠지면서, 순조도 본인의 문제를 자각은 하고 있어 나중에는 아들인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는데 원래 대리청정을 맡기면 신하들이 형식적으로라도 반대를 하겠으나 이 때는 신료들 모두가 이 대리청정을 환영할 정도로 당시 조선은 왕권의 권위 공백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왕권에 의해 돌아가는 나라에서 왕이 정무를 이런식으로 아예 던져버리자 외척이 거대한 왕권을 손에 넣고 나라를 뒤흔드는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고, 조선은 본격적으로 몰락한다. 물론 고조할아버지 숙종 이래로 직계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운영체제에서, 험난한 정치적 풍파와 여러 암살 위협 속에서 살아남아 우여곡절 끝에 즉위한 영조, 정조와는 달리 순조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즉위하여 초기부터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핸디캡이 있었다. 그래서 적절한 타이밍과 시절만 잘 만났더라면 암군 정도까지 평가받을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동정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세도 정치의 씨앗을 남긴 부왕 정조도 최근 들어서는 평가가 나빠지고 있다.[61] 어쨌든 결과적으로 순조는 유능한 지도자가 아니었으며, 조선 몰락의 시초를 제공한 암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거기다 자신의 왕위를 이어받아야 할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는 도중 23세에 요절한 것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 고종(1864 ~ 1907)△◎: 우유부단하고 사실상 조선(대한제국)을 멸망시킨 망국의 군주라고 까이기도 하고, 선대들의 실책을 떠안은 채 나름 독립을 위해 힘을 쓴 비운의 군주라고 동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고종은 장성했음에도 계속 섭정으로써 활동하려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못 마땅해 하였고 이에 자신의 아내인 중전 명성황후의 친인척인 여흥 민씨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여 아버지에 맞서기 위해 그들을 끌어들였다. 흥선대원군은 결국 중립파와 여흥민씨 일파의 단합으로 강제로 물러나갔으나 안동김씨처럼 자리를 잡은 여흥민씨들과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할 수 있는 체제를 구상하지 못한 고종의 한계로 인해 여흥 민씨 세력이 개항 이후 권력을 독점해 국왕이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 실책을 저지른 점이 있다.[62]
2.1.2. 중국사
- 상나라
- 제신(B.C.1075 ~ B.C.1046)◎: 하걸상주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위의 걸왕과 함께 걸주로 엮이며, 성군의 대명사가 요순이라면 이들은 폭군의 대명사격이나, 현재는 명군과 거리가 먼 것과는 별개로 주나라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나치게 폄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춘추시대
- 위선공(B.C.718 ~ B.C.700)
- 위영공(B.C.534 ~ B.C.493):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춘추나 논어에서 대놓고 깔 정도로 무능한 군주다. 특히 말년에 후계자선정에서 진짜 한국에서 방영하는 일일드라마 수준의 정치암투를 벌여놓는데 크게 기여했다. 시호가 영공(靈公)인데 靈이라는 한자가 정신적으로 혼탁해서 나라를 망치는 군주에게 주는 시호로 역시 후한의 영제의 영도 바로 이 靈이다. 그만큼 위나라에서도 나라를 망친 군주라고 판단한 것.
- 제양공(B.C.697 ~ B.C.686)★▲: 난세에 막장 군신이 들끓었던 춘추전국시대 뿐만 아니라 중국사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개막장 패륜 군주였다.
- 관이오 사후 제환공(B.C.685 ~ B.C.643)▲
- 제경공(B.C.547 ~ B.C.490)◎: 전성기에는 안영과 전양저를 중용하여 그럭저럭 나라를 꾸려가기는 했으나 후계자 선정에서 실책을 저지르고 망명 공족 전(田)씨의 세력 확장을 방조하여 여(呂)씨가 끊어지는 원인을 초래했다.
- 전국시대
- 위혜왕(B.C.369 ~ B.C.319): 인사면에서 실정을 저질러 손빈, 공손앙 등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들이 타국에서 뜻을 이루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결국 하서지방을 진나라에게 내주고 대량으로 천도하게 된다. 옛 수도권인 하동 지역은 이후로 진나라에 계속 털리다가 결국 반세기 이후 진나라에 완전히 뺏기게 된다. 제위왕과의 회견에서 보물 에피소드는 덤.
- 초회왕(B.C.328 ~ B.C.299): 진나라의 연횡책에 넘어가 친진파를 중용하여 타국의 신용을 잃었으며 이마저도 진나라의 유인에 넘어가 억류되어 객사라는 최후를 맞게 된다.
- 연혜왕(B.C.278 ~ B.C.272): 제나라 정복으로 잘나가는 악의를 시기하여 반간계에 넘어가 이를 내쳐서 결국 거의다 먹기 직전이었던 제나라를 토해내었다.
- 조도양왕(B.C.244 ~ B.C.236): 군사적인 업적이 없지는 않아서 연나라를 네번 싸워 이기고 제나라를 쳐서 땅을 점령하는 능력은 있었으나 간신의 참언을 듣고 염파를 내쳤으며 멀쩡한 적장자인 조가를 폐하고 총첩출신의 아둔한 조천을 세우는 등의 실책을 저질렀다. 장평의 대패 이후에도 그나마 나름 버텨오던 국가의 역량은 본격적으로 도양왕 대에 이르러 기울어지게 된다.
- 송강왕(B.C.328 ~ B.C.286): 초기에는 주위 소국들을 정복하며 송나라를 전국칠웅에 버금가는 강국으로 키웠으나 시간이 지나며 교만해졌고 결국 본인 대에 나라가 망한다.
- 제민왕(B.C.324/B.C.300 ~ B.C.284): 전국시대 진나라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제나라를 확실하게 말아먹은 암군이다. 초창기에는 그럭저럭 잘 다스렸지만 지속적으로 성과를 거두면서 점차 거만해지고 다른 국가들의 정치에 간섭하고 맹상군 등 명재상들을 내쫓으면서 제나라를 국제적 왕따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결국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 대군에 의해 제나라가 전국칠웅 중 가장 먼저 멸망할 뻔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부하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건 덤이다. 심지어 마지막까지 제정신 못 차리다 죽었다.
- 제왕건(B.C.264 ~ B.C.221): 진나라와 가장 멀리 떨어진 지리적 이점을 누렸다지만 군왕후가 섭정하던 시절에는 그럭저럭 나라를 꾸려간 편이었다. 하지만 군왕후 사후 내부로는 후승의 전횡을 방조했고 외부로는 세객들의 말만 듣고 진나라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아 결국 망국의 군주로 전락했다. 나라가 망한 뒤 옛 백성들은 그의 한심함을 한탄하는 노래를 지어서 부를 정도였다.
- 전한
- 성제(B.C.33 ~ B.C.7)
- 애제(B.C.7 ~ B.C.1): 초기에는 개혁에 열의를 가지고 임하였으나 한계에 부딪혀 절망한 나머지 동성애에 빠졌다
- 후한
- 안제(106 ~ 125)
- 순제(125 ~ 144)
- 환제(146 ~ 168): 당시 후한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외척 양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환관들, 즉 십상시의 힘을 빌림으로서 후한 조정이 십상시의 손에 놀아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 영제(168 ~ 189)★: 환제가 후한의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영제는 후한의 멸망을 못박은 인물로 정치적으로는 당고의 금을 통해 자신에게 간언하는 청류파 지식인들과 신하들을 탄압했고 관직을 채소 등 물건처럼 팔아치우고 환관에게 휘둘려 사실상 후한을 멸망시킨 장본인. 이러한 막장 통치로 소제와 헌제가 동탁에게 휘둘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삼국지의 시작. 실권이 있던 마지막 황제인데도, 그 실권을 외척과 환관에게 휘둘리는 데 사용했다.
- 삼국시대
- 조위
- 조예(226 ~ 239):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 위나라를 지키고, 내정도 여태껏 잘하더니 말년에 과한 사치와 향락을 부렸고, 계통이 불명확한 조방을 무리하게 후계로 지명하여 조상의 실정 및 이후의 고평릉 사변으로 이어지는 길을 닦아주었다. 또한 위서 양부전을 보면 조예는 일시적인 기쁨과 노함으로 신료들을 대하였으며, 자주 궁전을 짓느냐고 인부들을 대거 차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말년에 타락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씨앗이 있었던 셈이다.
- 촉한
- 유비(221~223) : 유장 부하들의 처자식을 인질로 잡고 잔치를 벌여 방통한테 쿠사리먹는 것이나, 성도를 점령한 뒤 민간재산을 수탈, 수염을 놀렸다고 신하를 처형[63]한 것을 생각하면 말년의 모습은 타락 그 자체. 최후에는 신하들이 뜯어말리는 전쟁을 벌여 8만명에 가까운 장병들의 목숨과 친위 부곡집단을 싸그리 말아먹고 갓 건국한 나라를 존망의 기로에 처하게 했다. 황실의 기반조차 날려먹어 후계자인 유선이 권신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게 되는 근원 되시겠다. 제갈량이 찬탈 욕심이 있었거나 나라를 재건할만한 정치력이 없었다면 촉한은 그대로 끝장났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군벌의 수장으로서는 몰라도 군주로서는 암군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황제로서 별다른 내치 성과가 없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 손오
- 손호(264 ~ 280)★△: 즉위하자마자 자신을 옹립한 복양흥과 장포를 숙청하였다. 재위 기간 내내 왕권 강화를 위해 손씨 친족들을 많이 죽였다. 이외에도 잦은 숙청, 잦은 천도, 잦은 연호 교체 등 전형적인 왕권 강화 행보를 보여 중신들과 작지 않은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오나라의 멸망이 단순히 폭군 손호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위나라-오나라 간 국경은 천혜의 요새인데 반해 촉-오 국경은 평지라서 촉나라가 진나라에 복속된 이후로 오나라는 훨씬 불리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64] 그래서인지 손호를 비롯한 망국의 군주들은 아주 막장이 아닌 이상 재평가 여론이 생기기도 한다.
- 동연[65]
- 서진
- 사마충(290 ~ 301)◆: 백치 황제로 유명했으며, “곡식이 없다니,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가?” 이 한마디로도 유명하다.[66] 아내 가남풍이 전횡을 저지르고, 이로 인해 팔왕의 난이 일어나며 사마충 이후로 서진은 사실상 재기불가 상태에 놓이게 되고, 낭야왕 사마예가 간신히 살려내어 동진이 들어서게 된다.
- 5호 16국
- 유요(319 ~ 328): 폭정을 벌였으며, 술에 취해 군대를 지휘할 정도였다.
- 석호(334 ~ 349)★: 후조를 멸망으로 몰고 갔다.
- 모용보(396 ~ 398): 후연의 제2대 황제. 아버지와 달리 무능하였고, 결국 난한의 반란으로 후연이 쇠퇴하는 계기를 만들어내었다.
- 모용희(401 ~ 407)★▲: 후연의 제4대 황제. 수양제의 전생이 아닐까 정도로 폭군이자 암군이다. 게다가 상대는 광개토대왕과 북위의 탁발규 등이 활약하고 있었는지라, 상당수의 영토를 상실한 것은 덤이다. 다만 황제가 되기 전에는 고구려의 남소성과 신성을 함락시키는 군재를 보여주긴 했다.
- 남북조시대
- 동진: 사마진의 모든 황제들이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명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황제들이 방탕하거나 큰 병을 앓는 등 황제감으로는 여러모로 실격인 인물들이었다.
- 환초
- 환현(403 ~ 404): 능력도 없으면서 황제가 되었으나, 곧바로 유유에게 격파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동진 멸망의 씨앗이었다. 한당-한종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호부견자 사례에 해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 송: 창업 군주 유유, 그나마 내정을 제대로 하여 국가의 기틀을 잡은 유의륭,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던 마지막 군주 유준 제외하고는 무슨 저주라도 걸린양 암군과 폭군으로 도배가 된 최악의 막장 왕조였다. 유구한 중국사를 통틀어도 순위권 안에 들어갈 만큼 뛰어난 군재를 갖춘 위진남북조 시대 최고의 명장 창업군주 유유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황하 이남의 땅을 대부분 장악했고, 무엇보다 촉한 멸망 이후 오랫동안 대가 끊겼던 '한의 유씨 황실 복원'이라는 국가 이념까지 계승하게 돼, 한황실 400년의 치세를 겪어 '황제는 유씨만이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던 당시 중국의 민중들을 매혹할만한, 당대 기준으로 엄청나게 매력적인 대의명분까지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암군과 폭군들이 줄줄이 출몰한 끝에 59년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유의륭 이후 정말이지 명군까지는 아니더라도 걍 범군 정도만 두세 명 정도 더 출현했더라면 우리가 아는 남북조 시대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북한의 백두혈통과 함께 부탄의 왕축 왕조와 정반대인 셈.
- 유의부(422 ~ 424)★△▲: 정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황음무도한 암군이라 결국 폐위당했다.
- 유준(453 ~ 464)★: 간언하는 자를 탄압하고 지나친 사치를 부려 국고를 바닥나게 하는 등 전형적인 암군의 모습을 보였다.
- 유자업(464 ~ 466)★▲: 사치향락과 근친겁탈에 빠져 온갖 기행을 저지르다 재위 1년 만에 살해당했다.
- 유욱(466 ~ 472)★◆: 이 사람도 사치향락과 음란행위에 빠져 살았다.
- 후폐제 유욱(472 ~ 477)★▲: 살인이 일상이던 미치광이 소년.
- 제: 유송 못지않은 막장 왕조였다.
- 양: 송, 제와 비슷하다.
- 효원제(552~555): 개인적으로는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긍정적인 면모를 보였으나 의심이 많고 우유부단했다. 서위가 수도를 포위한 상황에서 태평하게 백관들에게 노자를 강의하는 답없는 행보를 보였고 죽기 직전에는 자신이 수집했던 책 14만권을 전부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 한
- 후경(551 ~ 552): 반란을 일으켜 양무제를 실각시키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의 정치적 역량이 형편없었던 탓에 후경의 정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 반란으로 양나라는 사실상 망했다. 결국 이익을 본 것은 서위뿐이었다.
- 진
- 진숙보(582 ~ 589)
- 북위
- 선무제(499 ~ 515): 제위 초반부터 외척인 고조에게 국정을 맡겼고, 이들에게 휘둘리는 정치를 했다. 자귀모사[67]라는 악습을 폐지한다는 점은 좋았으나, 문제는 그 수혜자가 바로 북위 후기를 말아먹은 주범인 영태후라는 점에서 이것마저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정책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 효문제가 실시한 한화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황족고관들의 사치를 방관하였다. 결국 그의 사후 북위는 육진의 난의 혼란에 휩싸여 휘청거리다가 동위와 서위로 분열하며 멸망하게 된다.
- 북주
- 북제
- 당나라
- 당중종(684, 705 ~710)▲: 흔히 위황후 일파에게 휘둘린 암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복위하자마자 돌궐의 흥기를 막기 위해 노력하였다. 708년에는 장인원으로 하여금 삼수항성을 쌓게 하고 또 튀르기시, 힐알사(키르기즈)와 동맹을 맺어 돌궐 포위망을 형성하였으나 돌궐 북벌이 실현되기도 전에 암살당해 뜻을 이루지 못한다.
- 당숙종(756 ~ 762): 반란으로 엉망이 된 당나라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인물. 당 의종을 제외한다면 당 최악의 암군으로 불릴 만한 정도의 인물이다.[69]
- 당목종(820 ~ 824): 아버지 헌종이 원화중흥으로 살린 나라를 말아먹은 군주로, 제2차 환관 시대를 연 군주이다.
- 당경종(824 ~ 827): 목종의 아들로, 똑같다.
- 당의종(859 ~ 873): 당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당나라 최악의 암군.
- 당희종(873 ~ 888): 황소의 난이 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상격구와 도박에 빠지고 국정을 손에서 놓은 군주.
- 연: 안록산이 칭제하고 수립한 나라.
- 오대십국시대
- 후량
- 주전충(907 ~ 912)▲: 기껏 당나라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개창했건만 주색은 기본이고 자식들과의 갈등도 심해 아들들에게 살해당한다. 그나마 이존욱과는 달리 백성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 후당
- 이존욱(923 ~ 926): 초반에는 주전충을 관광보낸 뒤 후량을 멸망시키고 주변 번진을 전부 쓸어버림으로써 후당을 개창하고 심지어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거란군도 격퇴하는 등 명군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안정기에 접어들자 해이해진 것인지 평소 즐기던 음주가무 및 연극으로 소일했고 내정에서도 막장 가도를 달린 끝에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 후진
- 요나라
- 요세종(947 ~ 951)★▲: 선대 왕들과 달리 외치 확장에 실패하였으며 알코올 중독자라서 폭정을 일삼았다. 결국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는데 기여해줬던 야율찰할에게 죽임을 당했다. 묘호가 세종인데 왜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는지 모를 정도로 암군이자 폭군이다.
- 요목종(951 ~ 969): 야율찰할을 제거한 것과 시영이 연운 16주를 되찾기 위해 침입해오자 잘 막은 걸 말고는 업적이 전혀 없다. 요세종처럼 알코올 중독자인 데다가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국사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 게으른 임금이라는 수왕이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 요흥종(1031 ~ 1055) : 잦은 전쟁과 종교적 사치, 그리고 정부의 분열 등 요나라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요인을 제공했다.
- 요도종(1055 ~ 1101)
- 천조제(1101 ~ 1125)△
- 송나라
- 북송
- 송휘종(1100 ~ 1126)★: 예술가로서의 재능은 뛰어났으나, 중요한 건 이 사람의 신분은 황제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가신 채경을 등용하고 지나친 사치를 부리는 등의 행동으로 민심을 잃었고 외부적으로는 금과 힘을 합쳐 요를 멸망시킨 뒤, 요의 패잔병을 끌어들여 금을 치려 했지만, 이를 듣고 화난 금 태조가 군을 몰아 쳐들어오자, 무책임하게 아들에게 제위를 넘겨주고 자신은 물러났다. 그리고 결국 자신은 정강의 변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 흠종(1126 ~ 1127)◎: 기껏 금나라와 화의를 맺어놓고 쥐뿔도 없는 신세에서 그걸 깨버려 정강의 변의 진짜배기 굴욕을 겪는다.[71]
- 남송
- 명나라
- 명 4대 암군
- 정덕제(1505 ~ 1521)◎: 혼자놀기의 진수. 그러나 이 양반은 국정운영에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재위기간 내내 놀기만 한 게 아니기 때문에 평가가 갈리며, 심지어는 명나라 최후의 명군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밑의 3명의 황제와는 격을 달리하는 모습이 많았다.
- 가정제(1521 ~ 1567): 명나라의 명대신 해서가 이 양반 앞에서 대놓고 연호 '가정'의 의미를 다르게 불러서[72] 깠으니 말 다했다.
- 만력제(1572 ~ 1620)◇: 중국사 최악의 암군으로 평가받을 정도의 희대의 암군으로, 명나라를 무너뜨린 결정적 원인은 만력제가 30여 년간 정무에 손을 놓아서라고 후대의 역사서인 명사에서도 언급하기도 한다. 중국사 최초로 파업을 한 황제다. 자국이 우선인데도 조선에 병력과 구휼미를 무리하게 보내 고려천자라는 멸칭을 얻은 일아 파업을 시작한 만력제가 유일하게 정무를 펼친 일이다.[73] 자식을 차별하여 후계자인 태창제와 천계제의 권력이 불안정해진 결과를 낳았다. 건강이 좋지 않았고, 우울장애가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그의 황릉과 유골을 작살내는 바람에 자세한 건 알 수 없게 되었다.
- 천계제(1620 ~ 1627)◎◆: 마에스트로. 동생인 숭정제는 실책은 있었을지언정 망국이 확실한 명을 구하려고 고군분투 했지만 자신은 정무에 무관심하고 목공에만 몰두했으며, 옛 금나라 황릉터를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후금이 빡치는 실책을 만들었다. 다만 천계제는 할아버지인 만력제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사연이 있다. 해당 문서로.
- 숭정제(1627 ~ 1644)◎★[74]: 무능력했던 할아버지와 형과는 다르게 본인은 망해가는 나라를 어떻게든 건지려 노력했지만 특유의 의심병과 가혹함으로[75]나라를 지킬수있는 명장들을 처형해서 결국엔 나라는 물론이고 본인 또한 파멸로 이끌었다.
- 청나라
- 도광제(1820 ~ 1850): 검소하고 청렴했으며 아편 척결에 앞장섰지만 그 외에는 무능했다. 그의 시기에 제1차 아편전쟁을 치르는 등 서구 열강의 중국 침탈이 가속화되고, 그 결과 홍콩을 영국에 내주는 등 국가 위신이 치명타를 입었는데도 국가를 재건해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 함풍제(1850 ~ 1861): 만장일치로 문종이라는 묘호가 아까운 청 최악의 암군으로 평가받는다. 함풍제 사후에 동치중흥이 없었다면 청나라의 멸망은 실제보다 더욱 앞당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완전히 재기불능이 된 청나라는 그의 사후 서태후에게 넘어갔으며, 광서제가 청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기득권을 잡은 권신들에게 휘둘린 끝에 독살당하고 만다. 청 조정에서 권신이 활개치는 씨앗을 만든 장본인이기에 더욱 더 평가가 안 좋다. 청나라 이전의 왕조들에서 권신이 국정을 농단한 사례가 많은데도,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나라를 돌보지 않았다.
- 서태후(1861 ~ 1908) : 자기 권력을 위해 권신을 등용하고 황제를 조종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개혁파를 탄압하고 개혁 지지자였던 광서제를 유폐시켜 청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본인도 많은 사치를 부려 청의 재정난을 불러왔다.
2.2. 유럽
- 그리스
- 그리스 왕국
- 비텔스바흐 왕조
- 오톤(1832 ~ 1862)△
- 글뤽스보르 왕조
- 콘스탄티노스 1세(1913 ~ 1917, 1920 ~ 1922)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와 척을 지면서까지 그리스를 동맹국에 가입시키려 했다. 결국 베니젤로스의 독단으로 그리스는 협상국에 가맹하여 승전국이 되지만, 자칫 콘스탄티노스 1세의 판단은 그리스 왕국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 요르요스 2세(1922 ~ 1924, 1935 ~ 1947) : 상술한 콘스탄티노스 1세의 아들이다. 여러 번의 실각과 복위를 거듭하다가 요안니스 메탁사스에게 실권을 내주고 뒤로 빠지게 된다. 메탁사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리스가 쑥대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그리스가 추축국의 공격으로 철저히 짓밟히게 된다.
- 로마 제국(서로마 및 동로마 포함)
칼리굴라(A.D.37 ~ A.D.41)▲◎ : 사후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고, 근친상간이나 국고 고갈 등은 후대 정적들과 호사가 수에토니우스의 조작으로 밝혀져 짧은 재위 대비 암군이라는 타이틀도 애매모호한 황제에 가깝다. 명군은 아니라도 로마사 전체에서 크게 문제있는 군주라 하기는 어려운 황제답게, 그가 취한 행정, 경제, 속주 정책 등은 당하는 원로원에게만 욕 먹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 전체로 봤을 때는 프린키파투스(원수정)에 도움이 된 결단이 되었기 때문에, 후임 클라우디우스나 이후의 플라비우스 왕조 아래에서도 이 황제의 정책들은 계속 유지됐다.- 네로(A.D.54 ~ A.D.68)★◎ : 흔히 폭군으로 평가를 받지만 사실 암군+폭군에 가깝다. 물론 파르티아 문제도 잘 해결했고, 화폐 개혁에서도 성과를 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국고 고갈이나 기원전 27년 이후 로마 제국의 조정 헌법 위반 등 각종 실책과 직방계 친인척, 아내들을 연달아 죽인 행적이나 고모이자 누이에게 근친상간을 시도했던 일들은 재평가 여지가 없는 악행으로 비난받고 있다.[76] 이런 이유로 네로는 기독교 박해 등 임팩트 있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오늘날까지 암군이자 폭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현제 중 한명인 트라야누스의 발언으로 네로의 재위 초반이 고평가됐지만 이 역시 겉으로만 정치를 잘 했을 뿐, 모후와 주변 권신들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며 각종 음모 사건이 연이어 터져 실제 평은 생각보다 좋지 못하다.
- 비텔리우스(A.D.68)△: 내전 과정에서 자국군인들이 죽음을 두고 적의 피는 향기롭구나라는 망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를 부린 탓에 다음 황제에게 빚더미를 남겼다. 오죽했으면 타키투스 조차도 그를 두고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평가했을 정도
- 콤모두스(180 ~ 192)★◆▲△ : 호부견자의 대명사로, 당대 로마인들에게 일찌감치 네로와 도미티아누스를 합친 무능하고 잔인한 폭군으로 대차게 욕먹고 암살 다음날 기록말살형 선포를 받았다. 다행히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그의 성씨 안토니누스를 정통성 향상목적으로 자처하고 스스로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정치적 양자로 칭하면서 기록말살형은 해지됐다. 허나 세베루스를 시작으로 이후 로마황제, 원로원에게 "네로, 도미티아누스에 버금가는 암군+폭군"으로 공인돼, 사후에도 안 좋은 사례로 매일같이 욕먹었다. 어느 정도로 욕을 먹었는지, 그를 비난하고자 동시대, 후대인들은 이를 위해 콤모두스의 외조모 대 파우스티나, 모후 소 파우스티나, 숙부 루키우스 베루스까지 콤모두스 비난을 위해 왜곡, 묘사해 이들을 부도덕하고 음탕한 이들로 선전했다.
아버지 생전과 단독황제 등극 후 첫 2년 간은 무난한 황제였고, 공동황제 등극 전부터 원로원, 로마군에게 자발적으로 밝은 미래를 보장받은 후계자였다. 하지만, 맏누나 루킬라에게 콜로세움에서 암살당할 뻔한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어, 이후부터는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따라서 동시대 사람 디오 카시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는 콤모두스가 맏누나 루킬라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 속에게 폐인이 되고,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인해 모든 인생이 뒤틀린 불우한 삶을 살게 됐다고 약간의 위로까지 남겨줬다. - 엘라가발루스(218 ~ 222)▲ : 로마 제국의 77명 황제 중 최악의 인물 1위에 뽑힌 로마 최악의 암군. 실제 이 황제를 능가하는 사람은 동서고금 인류사에서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진 칼리굴라의 이미지를 실제 그대로 한 암군으로, 대중들에게 서양판 연산군으로 유명한 네로, 콤모두스조차 초라해질 만큼[77] 로마 제국과 이후 동로마 제국 시대까지 남긴 해악이 상당하다.
즉위 직후부터 암살당한 4년 내내 일반인들이 상상해볼 법한 무법, 불법, 초인, 변태적 망상을 다 했다. 따라서 시체는 갈기갈기 조각난 뒤 테베레 강으로 통하는 하수구로 버려지고, 원로원과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 근위대 모두에게 사실상 기록말살형에 처해져 로마 사회 전체에서 금지어가 됐다.
즉위 당시부터 성행위를 벌이면서 퍼포먼스를 하고, 해괴한 레반트식 신상을 로마 시 한복판에 세웠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희생자로 찍은 총독, 장군에게 자살을 강요해 죽이고, 국가 요직에는 아부꾼, 자신의 향락을 도운 후원자, 동성애인 등을 임명해 제국의 법과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이후에도 여사제를 검열삭제 하고, 난교 파티를 하면서 이를 공개하는 등 온갖 기행을 벌였으며, 자신이 모시는 시리아 향토신 엘라가발 외의 모든 신들(심지어 유대교와 기독교까지)을 '엘라가발의 노예이자 종"으로 규정하고 이를 강요했다. 여기에 더해 돼지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할례를 한다거나, 제국 안의 원로원 의원이나 장군들을 성희롱 하면서 세베루스 왕조와 황제의 권위 자체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참다 못한 외할머니가 아예 포기하고 대체자로 또 다른 외손자를 차기 황제로 일찌감치 낙점해버린다. 얼마 뒤,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프라이토리아니에게 제위경쟁자인 사촌동생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가, 대놓고 조롱받은 뒤 본인이 도리어 근위대장과 병사들 손에 살해됐다. - 고르디아누스 3세(238 ~ 244) : 과거에는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를 통해 훌륭하지만 운 나쁜 소년황제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실제 비문과 유적, 유물 등의 발굴과 연구 등으로 군인황제시대의 혼란을 장기화시킨 암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즉위 직후, 죽은 외조부와 외삼촌을 위해 북아프리카 내 유일한 로마군단을 강제해산시켜 이곳을 서로마 제국 분할 전부터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제국 서방 방어선 침공 이민족들에게는 원칙없는 교섭 전략을 취해 문제를 일으켰다. 이 외에도 국가손해배상을 이상하게 바꿔, 로마 제국 이후 황제들에게 큰 짐을 안겼다. 다행히 장인 티메시테우스가 등장해, 더 큰 삽질은 하지 않았지만,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섭정인 장인이 급사한 뒤 무리하게 페르시아와 전쟁을 강행했다가 본인은 전사. 제위는 근위대장 필리푸스 아라부스 손에 넘어간다.
- 호노리우스(393 ~ 423) : 비록 즉위 당시 서로마 제국이 망가진 상태이긴 했으나, 고쳐보려는 시도조차 안 한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서로마 제국의 영웅이었던 스틸리코를 죽이고 고트족들의 침입 당시 요구사항을 들어주든 남은 병력을 모아서 결사항전을 펼치든지 대책을 찾은 게 아니라 괜한 자존심 때문에 천 명도 안되는 병사로 대책 없이 뻗대다가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가 철저하게 약탈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혼자 힘으로 제국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어떻게든 쇠퇴를 늦춰보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멸망을 가속화시켰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암군이다.
- 발렌티니아누스 3세(425 ~ 455)▲
- 포카스(602 ~ 610)★▲△ : 서양의 수양제
- 유스티니아노스 2세(685 ~ 695, 705 ~ 711)▲△ : 유스티니아노스[78]라는 이름값을 가진만큼 능력은 뛰어나지만 그의 정신과 권력욕, 지나친 야망과 복수심이 모든 걸 말아먹었다.
- 필리피코스(711 ~ 713):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시해하고 즉위하였나 정작 본인도 무능하여 이슬람과 불가리아의 침입에 무능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 콘스탄티노스 6세(780 ~ 797)△
- 알렉산드로스 2세(912 ~ 913)
콘스탄티노스 8세(1025 ~ 1028) : 최근의 연구로 재평가가 되고 있다. 해당 문서로.- 로마노스 3세(1028~1034)▲ : 바실리오스 2세의 사후 동로마 제국의 침체기를 열은 장본인.
- 콘스탄티노스 10세(1059~1067)◎ : 문민 통치로 인해 당대에는 평가가 좋았으나 이사키오스 1세의 쿠데타 직후 튀르크족의 침입에 대응해야할 군부가 약해진 상황에서 이를 재건하기는 커녕 오히려 군축을 통해 약해진 군을 방치하여 훗날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아나톨리아가 튀르크족에 의해 함몰되는 결과를 불러왔다.[79] 다만 인성은 훌륭했다는 점,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점에서[80]◎표 추가
- 미하일 7세(1067 ~ 1078)△ : "-1/4"이라는 특이한 별명이 붙었는데, 이는 그의 재위기간 동안 화폐 가치가 3/4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 안드로니코스 1세(1183 ~ 1185)★▲△ : 사실상 로마 제국 멸망의 제일공신. 제4차 십자군 원정의 씨앗[81]도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결국 시민들에게 폐위된 뒤 비참하게 죽었다.
- 이사키오스 2세(1185 ~ 1195)△ : 안드로니코스 1세가 폐위되면서 시민들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군사적 능력은 좋았지만 관직을 시장의 채소처럼 판매하여 동로마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다.
- 알렉시오스 3세(1195 ~ 1203)△◎ : 형제를 폐하고 찬탈함으로써 정통성 문제를 불러일으켜, 도처에서 내분과 반란을 불러일으켰고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했다.[82]매관매직으로 인해 군의 약체화가 절정에 달하는 가운데, 4차 십자군의 공격을 받아 거금을 챙기고 수도를 버린[83]황제로, 일반적으로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 다만 그가 처해있었던 상황이 워낙 안 좋았던지라 동정론과 재평가가 없지는 않으나, 이러한 '재평가'는 세간에 최악의 황제로 알려져 있는 포카스나 안드로니코스 1세, 이사키오스 2세에 대해서도 학계 일각에서 재평가가 시도되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일 뿐이다.
- 알렉시오스 4세(1203 ~ 1204)△ : 4차 십자군을 제 손으로 불러일으킨 인물로,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 알렉시오스 5세(1204) :
- 미하일 8세(1261 ~ 1282) : 니케아 공동 황제로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이라는 과업을 이룬 덕분에 명군처럼 보였지만, 동로마 황제로서의 재건 과정에서 과도한 증세로 많은 아나톨리아 로마인들의 불만을 샀고 권력 쟁탈을 위해 당시 11살이었던 황제 요안니스 4세의 눈을 뽑고 폐위시켜 큰 비판을 받으며 황가의 정통성을 추락시켰고 서방 세력과 외교에서 많은 실책을 저질러 제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불러오는 등, 실상은 암군에 가깝다. 차라리 요안니스 4세가 정상적으로 성장해서 제국을 다스렸다면 콘스탄티노폴리스 환도는 좀 늦어질지언정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여러 폐단은 생겨나지 않고 제국은 수십 년 가량 더 존속했을 수 있다.
- 안드로니코스 2세(1282 ~ 1328)◎ : 전임 황제이자 아버지가 만든 난장판을 수습하느라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 중에서도 해군 해체는 가뜩이나 외우내환에 시달리던 제국을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
- 요안니스 5세(1341 ~ 1376, 1379 ~ 1390, 1390 ~ 1391) : 상술한 미하일 8세가 제국 멸망의 문을 열었던 암군이라면 요안니스 5세는 그 문을 열린 채로 고정해버린 장본인이다. 비록 흑사병과 오스만의 흥기라는 불운도 있었지만 가만히 있던 요안니스 6세를 건드려 내전을 일으켰고 이것이 제위기 내내 이루어진 건 명백한 실책이다. 다음 군주인 마누일 2세가 유능하지 않았다면 제국은 반세기 빨리 멸망했을 것이라 여겨질 정도의 암군.
- 바티칸
- 교황령
- 스테파노 6세(896 ~ 897)
- 요한 12세(955 ~ 964)
- 베네딕토 9세(1032 ~ 1044, 1045, 1047 ~ 1048)
- 보니파시오 8세(1294~1303)
- 식스토 4세(1471~1484)
- 인노첸시오 8세(1484~1492)
- 알렉산데르 6세(1492~1503) : 세속 정치가로서는 교황령 최고의 명군들 중 한 명이지만, 종교적 관점으로 보면 최악의 부패 교황이자, 종교 개혁의 불씨를 키운 최악의 암군이다.
- 레오 10세(1513 ~ 1521)
- 율리오 3세(1550 ~ 1555)
- 바오로 4세(1555 ~ 1559)
- 우르바노 8세(1623 ~ 1644) : 갈릴레이 재판 때문이 아니라 그 특유의 고집불통적 성격과 독선 때문이다.
- 비오 9세(1846 ~ 1878)◎ : 개인적으로는 매우 검소하고 소탈한 성격이었으며, 점차적으로 쇠퇴해가던 교황령을 일으켜 세우고자하여 신자들의 무수한 존경을 받고, 2000년에 시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통치를 하여 그 자신이 교황령을 쇠퇴시키는 원흉이 된데다, 비록 양아들로 삼고서 평생을 아꼈다고하나 멀쩡한 유대인 가정의 아이를 납치한 것도 모자라서, 아이의 의견도 무시하고 강제로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희대의 병크를 터뜨린지라서,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비오 9세를 절대로 암군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지않는다.
- 비오 11세 : 무솔리니와 라테란 협정을 맺어(1929) 바티칸의 독립을 인정받는 대가로 이탈리아 왕국을 승인하고 세계의 군사, 외교적 분쟁에 대한 중립을 선언해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팽창주의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 비오 12세(1939 ~ 1958) : 유럽 사회의 급격한 세속화로 인해 탈권위주의 개혁의 목소리가 드높아지는 와중에, 오히려 더욱 철저한 권위주의 행보로 일관하여 가톨릭 교회 내외로 무수한 반발을 샀다. 게다가 최근에는 나치 독일 및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더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 영국
- 잉글랜드 왕국
- 플랜태저넷 왕조
- 리처드 1세 (1189 ~ 1199)◎ : 암군으로 평가받았으나 군주로서의 능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훌륭한 모습을 보인 적도 많기에 ◎표를 추가한다. 그러나 무리한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국내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다.
- 존 왕(1199 ~ 1216) : 잉글랜드 국왕으로서도, 노르망디 공작으로서도 모두 답이 없는 막장 군주였다. 그나마 초기에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귀족들의 압력에 억지로나마 마그나 카르타라는 중요한 유산을 남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영국 왕실에서는 왕위 계승권 1순위인 인물은 '존'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있다.
- 헨리 3세 (1207 ~ 1272)△
- 에드워드 2세(1307 ~ 1327)▲△ : 배넉번 전투에서 털렸다.
- 에드워드 3세(1327 ~ 1377)◎ : 프랑스 왕위를 빼앗아 가려고 백년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다만 일반적으로는 업적이 더 크기에 ◎ 표시.
- 리처드 2세(1377 ~ 1399)△ : 정치 감각이 처참하게 결여되었다.
- 랭커스터 왕조
- 헨리 6세(1422 ~ 1461, 1470 ~ 1471)▲△
- 요크 왕조
- 리처드 3세(1483 ~ 1485)▲
- 튜더 왕조
- 메리 1세(1553~1558)★◎ : 그녀의 종교정책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녀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와 외교적인 부분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인 펠리페 2세가 결혼동맹을 근거로 영국군의 파병요청을 하였는데, 당시 신하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하다가 영국 최후의 대륙이라고 불렸던 칼레 항구를 프랑스에게 영원히 빼앗기게 되었다. 칼레 항구는 지리적인 이점 외에도 양모 수출에 3분의 1을 담당할 정도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라서 이후 재정 위기 상황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녀가 죽은 후에 즉위한 군주인 엘리자베스 1세가 역대급 명군이라 칭찬받을만큼 뛰어난 정치능력을 보여준 덕분에 그녀의 암담한 정세능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결코 국가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점들로 인해 그녀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 스튜어트 왕조
찰스 1세(1625 ~ 1649)▲△◎ : 찰스 1세가 폭군이었다든가 무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헌군주제를 반대하고 전제군주제를 선봉하고 있었던 것 때문에 평가가 그렇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의 정치 상황은 무작정 국왕이 독단적으로 정무를 수행하기엔 무리가 따랐는데, 찰스 1세는 이를 유연하게 대응할 정치 감각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우직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왕정 자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게다가 재정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제임스 2세(1685 ~ 1688)△☆◎ : 다만 현재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매우 유능하고 근면한 군인이요 행정가였으나 정치가로서는 한계가 있었던 인물 정도로 재평가받고 있다.- 스코틀랜드 왕국
- 잉글랜드 연방
- 크롬웰 정권 : 크롬웰 부자의 직위였던 호국경은 본래 전근대 영국에서 섭정을 맡은 귀족(방계 왕족 제외)이 받는 칭호였으므로, 크롬웰 정권은 왕 없는 잉글랜드 왕국 · 아일랜드 왕국 · 스코틀랜드 왕국의 섭정 체제였다고도 볼 수 있다.
- 올리버 크롬웰(1653 ~ 1658)★◎ : 올리버 크롬웰이 청교도 근본주의에 입각한 공포정치로 민심을 잃는 바람에 결국 크롬웰 정권이 2대만에 멸망하고 영국에서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만 1290년에 잉글랜드 밖으로 추방당한 잉글랜드 유대인의 후손들이 잉글랜드로 돌아올 수 있게 하고, 기존의 전근대적 군대를 근현대적 군대로 발전시킨 군사적 업적을 남기는 등 긍정적인 면모도 없지는 않아서 ◎표가 붙었다.
- 리처드 크롬웰(1658 ~ 1659)◎ : 아버지와 같은 폭군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에 비해 국가지도자 및 군사지도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던 탓에 결국 크롬웰 정권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 프랑스
- 프랑스 왕국
- 발루아 왕조
- 장 2세(1350~1364) : 왕으로서 완전히 무가치했다는 평을 들었다.
- 샤를 6세(1380~1422)
- 프랑수아 1세(1515~1547)
- 앙리 2세(1547 ~ 1559)◎
- 샤를 9세(1560 ~ 1574)
- 앙리 3세(1574 ~ 1589)▲ :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으로 2년 즉위하기도 했는데,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도 나라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음주와 도박으로 소일하다 돌아간, 도대체 왜 왔는지 모를 인간 취급받고 있다.
- 부르봉 왕조
- 루이 14세(1643 ~ 1715)◎ : 스스로 태양왕이라고 칭하고 콜베르를 등용해 중상주의 정책을 폈다. 하지만 업적은 고작 이 뿐이다. 검소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이 외에도 수많은 전쟁으로 재정을 파탄내는 상황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증축했다.[87] 낭트 칙령을 폐지하여 기술자들인 위그노들을 유출시켰다.[88] 제 나라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를 스페인 군주로 앉혀 스페인을 위성국화하려 했지만 그 결과는...영국만 좋았다. 결국 프랑스 대혁명의 씨앗을 만든 셈이다. 물론 반대로 프랑스를 당대 유럽에서의 최강국으로 끌어올린 군주이기는 하다. 이렇듯 긍정적인 면모도 존재하는 점에서 ◎표가 붙었다.
- 루이 15세(1715 ~ 1774) : 퐁파두르 부인에게 그저 휘둘리기만 했다. 그 사례로 3부인 동맹에서 촉발된 7년 전쟁을 들 수 있다.
- 루이 16세(1774 ~ 1792)▲△◎ : 프랑스 혁명에 대한 부정적 재평가가 나오면서 루이 16세의 성품과 능력이 긍정적 재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래도 혁명을 촉발시킨 원인이 그에게도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루이 16세를 옹호하는 측에서도 바렌 사건은 쉴드쳐주지 않으며 그의 능력으로 혁명을 막기란 불가능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 샤를 10세(1824 ~ 1830)△
- 노르망디 공국
- 러시아
- 루스 차르국
- 고두노프 왕조
- 보리스 고두노프◎(1598 ~ 1605) : 옛 류리크 왕조는커녕 방계도 아니라 선출된 차르라서 정통성이 빈약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으며, 소빙하기와 외적 침공 등 온갖 악재가 겹침으로써 혼란 시대가 시작된다.
- 왕조 없음
- 러시아 제국
-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
- 표트르 3세(1762)▲△ : 7년 전쟁의 결과를 완전히 엎어버린 브란덴부르크 가의 기적만으로도 암군의 자격이 충분하다.
- 파벨 1세(1796 ~ 1801)▲ : 어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를 증오한 나머지 어머니의 개혁을 모조리 뒤엎어 버렸다. 결국 암살당했다.
- 니콜라이 2세(1894 ~ 1917)▲△ : 러시아 혁명에서의 비참한 최후 때문에 동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등용 등 본인에게도 러시아 제국을 파탄으로 몰고 간 정치적 책임이 엄연히 없지 않다. 그리고, 당시 제국의 역량이 낮고 볼셰비키들이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나 다름없는 경제라고 폄하했을 정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대 동맹국 강경파인 사조노프를 중용하여 7월 위기를 대전쟁으로 확대시킨 인물이다.
- 독일
- 신성 로마 제국
- 바츨라프 4세(1378/1376 ~ 1419/1400)
- 카를 5세(1519~1556) : 잦은 전쟁에도 성과가 거의 없었고, 종교전쟁을 촉발했으며, 막대한 부실 재정을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말년에는 권력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렸을 정도. 다만,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인물이었고 가톨릭을 매개로 세계 제국을 꿈꾼 인물이었으나, 그럴 역량은 되지 않았다.
- 루돌프 2세(1576 ~ 1612)
- 페르디난트 2세(1619 ~ 1637) : 그의 아집과 광신, 불관용으로 끝낼수 있었던 30년 전쟁을 장기화시켰다. 이로 인해 나라가 피폐해졌고 결국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북독일에서 영향력을 상실했다.[92]
- 바이에른 왕국
- 루트비히 2세(1864 ~ 1886)△ : 인간성만은 소탈했지만 군주로서는 정치에 무관심했으며, 거기에 성 만들기에 대한 지나친 집착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루트비히 2세 본인이 폐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 빌헬름 2세(1888 ~ 1918)△ : 즉위하자마자 비스마르크를 내치고 제국주의 정책을 강화했다.[93] 이로 인해 영국이 독일을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독일은 고립되어 갔다.[94] 더군다나 고립되어 가는 상황에서도 식민지를 지배하겠다고 칭다오를 공격해서 청나라로부터 99년 동안 조차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고,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난 헤레로족의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자신의 딸랑이 베른하르트 폰 뷜로를 수상으로 임명해 제1차 발칸 위기 당시 동맹국의 세계적 평판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1914년에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정세를 오판해서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데 일조하였으며[95], 제1차 세계 대전 중반부터는 실권을 에리히 루덴도르프에게 내주고 꼭두각시가 되었다.[96] 결국 킬 군항의 반란과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해 제정이 폐지되고 퇴위된 후에는 네덜란드로 망명했으나 호시탐탐 독일 제국의 복원을 노렸다. 다만 내치에 한정하면 때때로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독일 제국의 경제력을 대영제국에 준하는 수준까지 향상시키는 등의 모습도 있었지만, 무리하게 세계 정책을 추진하다가 다 말아먹었다.
- 폴란드
- 폴란드 왕국
얀 1세 올브라흐트(1492 ~ 1501): 코스민 숲 전투에서 대패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받는다. 고작 전투 하나 패배했다고 이런 평가를 받는 게 박하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그가 재위기간에 한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 암군보다는 무능한 군주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알렉산데르 야기엘론치크(1501 ~ 1506): 점점 권력을 넓혀가는 귀족과 그들은 반대하는 귀족들의 싸움을 막지 못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1648 ~ 1668)◎ : 폴리투의 가장 실패한 군주라는 평가도 있지만, 조국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 용감한 군주라는 평가도 있다.
- 아우구스트 2세(1697~1706, 1709~1733) : 외세의 영향력 확산을 막지 못했다.
- 아우구스트 3세(1733~1763) : 재위기간에 사치를 즐겨 폴리투를 암흑의 길로 영도한 장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스타니스와프 2세 아우구스트(1764~1795)△◎ : 현대까지도 평가가 가장 갈리는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파보면 업적도 많지만, 폴란드 분할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암군으로 평가받는데, 스타니스와프 2세의 재위기는 이전의 군주인 아우구스트 2, 3세가 싼 똥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사실 스타니스와프 2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로 보는 것이 맞다.
- 스페인
- 압스부르고 왕조[97]
- 펠리페 2세(1556 ~ 1598)◎ : 원주민 노예제 폐지, 콩키스타도르 개혁, 레판토 해전 승리, 포르투갈 합병 후 동군연합 체제 형성 등 많은 업적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책도 커서 알짜배기 땅인 네덜란드를 상실하였다. 또한, 그의 치세에 스페인의 재정이 여러 차례 파탄났으며[98], 부왕과 마찬가지로 가톨릭만을 고수하는 종교적 보수주의를 추구했다. 게다가 무적함대가 드레이크 경에게 대파되었고, 이로 인해 사실상 스페인은 열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표를 추가한다.
- 펠리페 3세(1598 ~ 1621) : 압스부르고 왕조 최악의 암군.
- 카를로스 2세(1665 ~ 1700)◆◇ : 암군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그래도 나라를 살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펠리페 2세 이후로 쌓인 폐단 + 카를로스 2세 본인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 보르본 왕조[99]
- 카를로스 4세(1788 ~ 1808)
- 말년의 페르난도 7세(1808, 1813 ~ 1833)
- 이사벨 2세(1833 ~ 1868)
- 알폰소 13세(1886 ~ 1931) : 국내의 여러 불안과 소요를 해결을 오로지 모로코 식민지화 등 팽창주의로만 풀으려고 했고 제대로 된 해결은 하려 들지 못했/않았다. 게다가 리프 전쟁 초반의 패배에 대한 책임 회피용으로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100] 장군의 군사독재를 허용하면서 완전히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만다. 결국 폐위당하고 스페인 제2공화국이 들어섰으니, 스페인 내전의 씨앗을 제대로 뿌린 셈이다.
- 프란시스코 프랑코(1936 ~ 1975) : 왕 없는 왕국의 섭정 신분으로 스페인국을 이끌었다. 하지만 무자비한 철권 독재 정치를 폈을 뿐만 아니라 정적들을 나치에게 무너진 프랑스로 보내고 이들을 나치가 학살하는 것을 도왔다.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검열과 공포 통치를 실시했다.
- 포르투갈
- 이탈리아
- 토스카나 대공국
- 프란체스코 1세(1574 ~ 1587) : 정치에 관심에 많이 없었다. 하지만 신하들에게 많은 세금을 매기고, 그 세금도 신성 로마 제국으로 흘러가거나, 과학이나 예술에 쓰였다.
- 코시모 3세(1670 ~ 1723)
- 잔 가스토네(1723 ~ 1737) :토스카나 판 카를로스 2세다. 정신적으로도 카를로스 2세보다 불안정했고 성불구자였다.
- 양시칠리아 왕국
- 페르디난도 2세(1830 ~ 1859) : 재위 초반에는 친자유주의 성향과 국가 현대화 노력으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내 보수화되어 자유주의 세력을 탄압하였고, 시칠리아 혁명 무력 진압과 그에 이은 대대적인 정치범 탄압은 국내외의 지지가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양시칠리아 왕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 이탈리아 왕국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1900 ~ 1946)△ : 즉위 직후 국내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문제 해결은커녕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등 팽창에만 골몰하였다. 이 전쟁에서 이탈리아군은 졸전을 거듭했지만 오스만군의 더 큰 졸전으로 겨우 이겼음에도 군사력을 증강시키려는 노력은 일체 없었고, 오히려 제 1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어 졸전만 치르고 영토는 조금밖에 얻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내어 사회주의 운동이 터지는 결과를 마련했으며[101]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자'를 바랐다. 그리고 베니토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단이 일으킨 쿠데타를 진압하지 않고 사실상 무혈 입성시켰기에 추축국의 전쟁범죄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가 다시 에티오피아를 침공할 때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이탈리아는 2차 대전 기간 졸전만을 거듭하여 오히려 민폐만 끼쳤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본인은 결국 패전이 가까워지자 무솔리니를 실각시키지만 이미 이탈리아는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전쟁 중에도 패전을 거듭하자 저항하려는 생각조차 없이 남부지방으로 피신을 하는 행보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2차대전 패전 후 분노한 국민에 의해 왕정이 폐지되었고 자신은 물론 왕세자였던 아들까지도 살아있을 때 이탈리아로 돌아오지 못했다. 게다가 이탈리아 사보이아 왕조 왕위 요구자들도 파시즘 신봉 및 선조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무사안일한 행보 때문에 자국민들한테도 좋지 못한 대우를 받는다.[102]
- 스웨덴
- 구스타브 4세 아돌프(1792 ~ 1809)△ : 핀란드를 상실하였다.
- 벨기에
- 레오폴드 2세(1865 ~ 1909)★ : 콩고 자유국 군주로서의 행적은 말할 것도 없이 폭군의 행보였으며, 벨기에 본토에서는 명군이었다는 주장이 많지만 사실 벨기에 국왕으로서의 평가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자신의 정부를 위해 도가 지나친 수준의 사치를 부린 탓에 검소한 성향의 벨기에인들에게는 평가가 좋지 않았으며, 복지에 있어서도 매우 소홀했다. 무엇보다 플란데런(플랑드르)의 네덜란드계 벨기에인들을 무시하고 소외시킨 점 때문에 벨기에에서 프랑스계와 네덜란드계의 마찰이 더욱 심각해지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 되었다. 심지어 콩고 자유국을 지키려고 정부와 국회를 무시한 점 때문에 자국에서도 폭군, 독재자 소리를 들어야 했다. 콩고 자유국 군주로써의 잔악한 행위로 인해 벨기에가 나라망신을 당한 것은 덤. 벨기에를 초콜릿 강국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자신의 탐욕 때문에 덤으로 얻게 된 것.
- 오스트리아
- 합스부르크 제국[103]
- 카를 6세(1711 ~ 1740) : 이 시기에 아버지인 레오폴트 1세의 업적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또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씨앗을 남긴 것도 명백한 실책이다.
- 페르디난트 1세(1835 ~ 1848)◆ : 합스부르크 가문판 사마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실제로 그의 치세대에 통치는 메테르니히와 그의 일가친척들이 도맡아했다. 결국 1848년 혁명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자 조카인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양위하고 제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 프란츠 요제프 1세(1848 ~ 1916) : 1848년 혁명 이후 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전제적 통치로 일관했으며, 1848년의 혁명을 계기로 드러난 자국의 허약한 군사력을 다시 강화시키는 데 무관심했다.[104] 그 결과 이탈리아 통일 전쟁과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대패하게 되고, 제국의 주요 영토인 헝가리에서 소요사태까지 발생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헝가리 귀족들과 대타협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도 전제적 통치를 고수하면서 제국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또한, 그는 제국역량 강화에 매우 소홀히 하였는데, 동시대 프로이센과 그 후신인 독일제국이 산업화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룬 반면[105], 프란츠 요제프 1세 시대에 제국 내의 산업 지역은 오스트리아 대공국, 보헤미아 왕국, 모라비아 변경백국, 이스트리아 반도 정도였고 나머지 지역은 낙후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지도 않았다.[106] 게다가 그는 보스니아 합병 문제로 삼제 동맹을 깨뜨려버리는 우를 범한다.[107] 또한, 독일에 과잉 의존했으며, 독일 제국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카이저에게 빈번한 조언조차 하지 않았다.[108] 그는 오로지 자기권력 지키기에만 집중했으며[109], 나라의 분열을 막기 위한 방책을 제시하던 조카를 멀리하는 모습을 보여 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짓들만 벌였다.[110] 또한, 1914년에 사라예보에서 조카가 살해당하자, 이를 핑계로 세르비아 왕국과 몬테네그로 왕국을 병합하기 위해 군사력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전쟁을 도발했다. 결국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벌여[111] 국가를 파탄냈으며, 그의 사후 즉위한 황제인 카를 1세는 대단히 유능하였으나, 그의 치세대에 제국이 살아날 가능성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 헝가리
- 헝가리 왕국
- 울라슬로 2세(1471/1490 ~ 1516) : 헝가리 왕국을 단 4년 만에 말아먹은 헝가리 역사상 최악의 암군.
- 호르티 미클로시(1920 ~ 1944) : 왕 없는 왕국의 섭정이자 바다 없는 내륙국의 제독인 이 사람은 명목상으로 왕정을 유지하지만, 정작 군주가 됐어야 할 카를 1세나 오토 황태자가 헝가리의 군주가 되는 것을 가로막고 이를 이용해 독재를 했다. 트리아농 조약 이후의 상황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고[112][113], 2차 대전 때에는 추축국으로 가담한다.[114] 그래도 후임이 워낙 막장 전범이기에 평가가 마냥 박하지만은 않기도 하다.
- 세르비아
- 세르비아 제국
- 스테판 우로시 5세(1355 ~ 1371)
- 세르비아 왕국
- 오브레노비치 왕조
- 밀란 1세(1868 ~ 1889)
-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1889 ~ 1903)▲
- 루마니아 왕국
- 카롤 2세△(1930 ~ 1940) : 왕자였을 때는 마그다 루페스쿠에게 반해 마그다와 파리로 사랑의 도피를 했고, 마그다가 별정을 사는 데에 국가의 1년치 예산에서 20%에 가까운 보충 예산을 편성하고 사치를 부리는 행각을 자행했다. 또한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가 이끄는 철위대를 지원하다가 갑작스럽게 지도부를 사살하는 등 루마니아의 정치를 혼란 속에 몰아놓고 군주 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결정적으로 여러 주변국의 압박으로 소련의 베사라비아·북부코비나 점령, 북부 트란실바니아를 헝가리 왕국, 남부 도브루자를 불가리아 왕국에 할양하게 되자 결국 총리 안토네스쿠의 압력으로 퇴위하였다.[115]
2.3. 아프리카
- 에티오피아 제국
- 이야수 5세(1913 ~ 1916) : 기독교(정교회) 국가인 에티오피아에서 친이슬람 정책을 펼치고 친독정책을 펼치는 등 정치감각이 결여돼 기어코 폐위되었다. 다만 에티오피아 내 무슬림들에게는 평가가 나쁘지 않은 편이며, 이들은 오히려 이야수 5세가 폐위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경향이 강하다.
- 줄루 제국
- 샤카(1816 ~ 1828)★◆▲ : 남아프리카의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들소 전략'이라는 전술을 창안한 뛰어난 지략가였던 샤카는 줄루 제국을 건국하고 매우 빠르게 그 세를 넓혔으나, 홀어머니를 여의고 그 충격으로 정신병에 걸려 폭군이 된 뒤 백성들이 농사짓지 못하게 만들어 기근에 시달리게 하거나, 임산부들과 임신한 소들을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잔혹한 기행을 벌이는 암군이자 폭군이 되었다. 이 때문에 샤카의 이복동생 딩가네 카센잔가코나와 믈랑가나가 그를 암살하게 된다. 그래도 줄루족에게는 강력한 지도자라 추앙받고 있다.
===#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 #===
비록 암군이긴 하나 암군이라고 하기엔 논란이 있는 경우들 중, 암군 쪽에 좀 더 기울어진 경우 윗 문단들에, 거의 반반이거나 별 일이 거의 없었거나 긍정적인 면모도 많아 관점에 따라 명군이라 평가하고 있는 이도 충분한 경우는 여기에 서술.
- 한국사
- 고구려
- 안원왕(531 ~ 545)◎: 사실 기록상으로 실정을 벌인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도량이 넓었다는 긍정적인 뉘앙스의 평가가 있을 정도. 그런 것처럼 재위 중반까진 그냥 평범히 보냈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직접 친정했다가 백제에게 패배하기도 했고, 말년에는 추군과 세군 측의 왕위 계승 다툼에 휘말려 결국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막을 힘도 없었는지 궁궐 문을 잠군 채 수수방관하기만 했다고 한다. 물론 상술했듯이 이미 부왕 문자명왕 때부터 고구려는 쇠퇴할 기미가 보였는지라 안원왕 한 명만의 잘못으로 몰빵해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 양원왕(545 ~ 559)◎ : 이쪽도 할아버지 문자명왕으로부터 내려온 실책을 떠안은 것에 가깝다.
- 신라
- 선덕여왕(632 ~ 647)◎ : 사실 그녀가 집권할 때의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양면 전선에 휩싸인 최악의 상황이었고, 이는 그녀가 집권하기 전부터 시작된 문제라 이 부분은 비판하기 어렵다. 허나 전란을 마주한 상황에서 그 위기를 해소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뭐라도 제시하지 않고 불사에 과하게 치중하여 국력 탕진을 가속화하는 등 여러 실책으로 인해 대중의 인식과 달리 학계에선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불교 후원과 김춘추 세력을 끌어들어 이런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표를 추가한다.
- 발해
- 대현석(872 ~ 894?)◎ : 사실 이 무렵의 발해는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지 한참 지난 상태라서 마냥 암군으로 칭하기는 어렵다.
- 대인선(906? ~ 926)◎ : 이 쪽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망국의 군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암군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다.
- 고려
- 성종(981 ~ 997)◎ : 자신의 명군 시절 개혁을 말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그러한 말년의 실책(특히 노비환천법)은 후대의 문벌귀족들이 고려 사회를 어지럽히는 원인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사상에 입각해 노비환천법 등 친공신 정책을 무조건 좋게 평가하였고 특히 조선의 공신 우대가 절정에 달했던 세조 치세에 고려 성종의 친공신 정책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렇듯 조선시대에 고려 성종을 바라보는 시각은 결점 없는 명군에 가까웠으나, 현대에 고려 성종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명군이었으나 나중에는 폭군까지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암군에 가까운 모습으로 타락했다는 부정적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
- 인종(1122 ~ 1146)◎ : 물론 갑자기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는 점과 그 당시엔 문벌귀족들의 힘이 너무 막강해져서 제대로 된 실권을 휘두르기 힘들었다는 탓도 있었지만, 이자겸에게 휘둘린 나머지 고려의 멸망 당시까지 이어진 첫 쇠퇴기를 열었다는 점에서는 옹호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유신지교 15개조를 발표하는 등 능력은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인성은 훌륭하였고 국정을 돌보는데 최선을 다했기에 암군으로서 평가하겠냐는 등 논란이 있다.
- 중국
- 당나라
- 당고조(618 ~ 626)◎: 무능력한 배적을 감싸고 돌면서 이를 위해 중신 유문정을 처형하였다. 게다가 당 건국 초에 설인과 등 유력 군벌들을 정리하는 데에는 나중에 태종으로 즉위하는 이세민의 공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3남 이원길의 좋지 않은 행실들을 그저 묵과하였다. 결국 이러한 불공정한 처사와 돌궐의 침입이라는 명분이 맞아떨어져 현무문의 변이 일어난다. 다만, 그 기록이 아들인 태종측의 주장으로 쓰여있는지라 역사왜곡이라는 시선도 있다.
- 남송
송고종(1127 ~ 1162)◎: 악비 문제로 많은 지탄을 받는 군주이나[116] 소흥화원이나 남송관요 등을 만들어 남송의 문화융성에 꽤 신경을 썼다는 점에서보면 업적을 꽤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황 휘종의 적장자인 형 흠종의 귀환을 가로막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17]- 명나라
- 정통제(1435 ~ 1449, 1457 ~ 1464)◎: 토목의 변 이전, 난신 왕진에게 휘둘렸던 영종. 그래도 천순제로 복위하자 정신을 차리고 간신들을 처단하고 우겸의 일을 제외하곤 괜찮은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청나라
- 이란
- 팔라비 왕조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1941 ~ 1979)△ : 말년에 비상계엄령을 발동했지만 이는 1973년 석유 파동으로 인해 뒤숭숭해진 정세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의 여지도 존재한다.
- 프랑스
- 발루아 왕조
- 프랑수아 2세(1559 ~ 1560)◎ : 애초에 재위기간이 1년밖에 안되는데다 불과 16살에 요절해서 뭐라도 해볼 껀덕지도 없었다.
- 부르봉 왕조
- 루이 18세(1815 ~ 1824)◎ : 적어도 동생보다는 나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샤를 10세는 관용 없이 절대왕정을 무조건 고수하려는 입장이어서 오죽하면 그가 후사가 없을 때 차라리 루이 18세가 최대한 장수해 샤를 10세가 왕위에 오르는 걸 늦추는 것을 바랐을 정도.
- 부르봉-오를레앙 왕조
- 루이필리프(1830 ~ 1848)◎ : 개인적인 성품은 인자하고 너그러웠으며, 높은 신분의 귀족임에도 검소하게 지내는 등 긍정적인 면모가 있어 샤를 10세의 폐위 이후 입헌 군주정 체제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술트 내각과 기조 내각의 실책을 제어하지 못했으며, 이로인한 불만은 프랑스 2월 혁명과 제2제국의 도래를 불러왔다. 샤를 10세처럼 완전히 무능하기만 했다고 보기는 무리인 측면도 있어 ◎표를 추가한다.(마리우스의 할아버지도 손주녀석에게 "왕의 잘못이 아니라 꼬붕이 패거리들 탓이다"라고 했다.[118])
- 프랑스 제1제국, 프랑스 제2제국
- 보나파르트 왕조
나폴레옹 1세(1804 ~ 1814, 1815)△◎ : 19세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의 전 유럽에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전파하는 업적을 이루었으나, 1805년의 트라팔가르 해전 이후 대륙 봉쇄령을 반포해 역으로 고립을 자초한다. 또한, 전쟁 과정에서 나폴레옹 일파들과 군대는 폴란드나 독일 서부지역을 제외한 전 유럽 지역을 약탈하고 폭정을 저질렀으며, 이는 피지배민족들의 반발을 사게 되어 여기저기서 나폴레옹 지배에 반발하는 봉기가 발생하게 된다.[119]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꽃피우기는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대륙봉쇄령을 어긴 러시아 제국을 응징하겠다고 원정을 단행했다가 대패했으며 이는 제1제국의 몰락의 계기로 작용한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이 이길 수 있었던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본인의 실책과 휘하 원수들의 불화 등으로 영국의 아서 웰즐리와 프로이센의 블뤼허 등 반불연합군의 명장들에게 패했다. 그래도 프랑스 내 민심은 잘 휘어잡았으며, 가족들이 사치스럽게 지내는 와중에도 본인은 검소했다. 말년에 여러 실책들을 저질렀으나, 거의 전 유럽을 제패하여 유럽의 모순을 깨뜨리고, 라틴아메리카 독립에도 영향을 주는 등[120] 많은 업적을 남겼다. 당대 인물들의 평은 호불호가 모두 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에 대해 전쟁의 신 그 자체(Der kriegsgott selbst.)라고 극찬했고, 헤겔 역시 유럽의 낡은 체제를 부수는 그를 긍정하는 평을 남겼으나, 베토벤 등 그가 황제가 된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그의 행보를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으며, 그 위상은 현재까지도 유지되어 프랑스를 넘어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장 란이나 루이니콜라 다부같은 유능한 원수들을 발탁해 중용한 것도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 3세(1852 ~ 1870)△◎ : 크림 전쟁 개입 등으로 제국 쇠퇴의 빌미를 제공했고 프로이센 왕국과의 외교 문제에서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결국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배하고 자신도 프로이센군에게 항복하여 포로가 됨으로써 비참하게 몰락했다.[121] 게다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생인 막시밀리아노 1세를 멕시코의 괴뢰 황제로 두어 북아메리카에 영향력을 확보하려다 막시밀리아노 1세가 처형되면서 오히려 멕시코에서 프랑스의 평판이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전반적인 국정 운영 능력도 큰아버지[122]에 비해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래뵈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강화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복지 정책을 확충하기 시작하면서, 뒷날 프랑스가 복지국가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한 뚜렷한 업적도 남겼으므로, 마냥 암군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 스웨덴
- 크리스티나 여왕(1632 ~ 1654)◎ : 전격 퇴위 때문이 아니다. 오해금물. 르네 데카르트 과로사에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 칼 12세(1697 ~ 1718)◎▲ : 반면 명장이라는 평도 존재한다.
- 러시아
- 마리아 테레지아(1740 ~ 1780)◎ : 느슨한 연합체였던 합스부르크 제국을 강력한 개혁 정책을 통해 하나로 묶은 것은 분명 그녀의 업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녀가 암군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그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거나 일으킨 두 차례의 큰 전쟁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124], 오히려 막대한 전비만 소모하며 합스부르크 제국에게 부담을 안겨주었다.[125] 또한, 여성 군주임에도 여성을 억압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자신의 통치철학인 금욕주의, 도덕주의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126], 남편인 프란츠 1세가 죽고난 후에는 통치의욕을 잃는 모습을 보여 기껏 강화시켜 놓은 황권을 깎아먹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자식농사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공동 통치자인 첫째 아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고[127], 특정 자식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여 어머니로써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그녀는 느슨한 연합체인 합스부르크 제국을 하나의 국가로 묶은 업적이 있으며, 이를 통해 그녀는 당대에 국모라고 평가받았으므로 ◎표를 추가한다.
- 독일 제국
- 호엔촐레른 왕조
빌헬름 1세(1871~1888):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재임기에 1875년 전쟁 위기, 1878년 베를린 회의, 1879년 영국과 러시아의 대독 항의, 1880년대의 불황과 외교 각축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개인의 역량에 모든 것을 걸고 본인은 능동적으로 뭘 해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비스마르크를 끌어들인 게 본인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명군으로 평가하고 있다.
- 스페인
- 보르본 왕조
말년의 후안 카를로스 1세△(1975 ~ 2014) : 명암이 크게 갈리는 왕. 스페인 군부의 꼭두각시로 내세워질 운명이었으나, 프랑코의 후계자인 블랑코 제독이 암살당하는 등의 행운을 틈타 실권을 장악한 뒤 프랑코 체제를 해체하고, 이에 반발하는 쿠데타를 진압하고, 재분열의 위기를 맞이한 스페인을 왕의 권위를 이용해 진정시켜 2차 스페인 내전의 위기를 넘기고, 마지막으로는 절대왕정이었던 스페인 왕가의 실권을 내려놓고 민주정을 확립하는 등 명군의 명모를 보여 스페인 민주주의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으나 재위 말년에 보츠나와에서 벌인 사치와 향락이 발각되면서 사실상 반강제로 퇴위했고, 퇴위 뒤에도 발각된 스캔들 때문에 기록말살형에 준하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공화정 복귀여론까지 돌 지경. 아들이자 후임자인 펠리페 6세가 개념인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스페인 제3공화국이 들어섰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128] 그나마 나라를 말아먹은 것도 아니고, 나라를 말아먹을 만한 권력은 이미 재위 초에 스스로 다 내려놨으니 나라망신으로만 끝난 것이 다행.
- 에티오피아
- 하일레 셀라시에(1930 ~ 1974)△ : 말년에 사치에 빠진 탓에 결국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쿠데타를 일으킬 명분을 제공한 꼴이 되었다. 다만 이는 과장도 많이 섞여 있으며 이탈리아로부터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이끌어냈고 경제성장, 6.25 파병 등의 공로가 있으므로 대체로 명군으로 보는 추세이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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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상의 암군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암군/창작물#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암군/창작물#|]][[암군/창작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쇼군이 아니었다.[A] 당연하지만 이런 군주는 어쩔 수가 없다. 장애에 의한 실수 또는 무능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A] [4] 한국사 연대기 > 고대 > 태조대왕[5] 한국사 연대기 > 고대 > 태조대왕[6] 한국사 연대기 > 고대 > 미천왕[7] 한국사 연대기 > 고대 > 무령왕 4번 항목[8] 安原王代의 政局 運營과 大對盧 爭鬪[9] 평원왕대 정국 운영의 특징과 그 함의[10] 618-629년 영류왕의 대외정책과 고구려-당ㆍ신라 관계의 변화[11] 고구려 영류왕 후기 대외정책의 변화와 연개소문의 정변[12] 다만 장군으로써의 능력과 군주로써의 능력은 별개이다.[13] 개로왕의 왕권강화와 국정운영의 변화에 대하여[14] 한국사 연대기 > 고대 > 동성왕[15] 한국사 연대기 > 고대 > 의자왕[16] 조원숙, <新羅 善德王代 度僧 施行과 佛敎政策> (2009)[17] 서영교,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18] 신라 진성여왕대의 재이와 농민반란[19] 신라시대 선덕, 진덕, 진성 여왕의 정치리더십 비교연구[20] 신라의 멸망과 朴氏王家#, ##[21] 고려 초 康兆의 政變과 中臺省의 등장 — 선휘원·은대와 중대성의 치폐과정에 담긴 의미 —[22] 고려 목종·현종대 실시된 사면과 은전의 내용 분석과 그 특징[2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2. 귀족사회의 전개와 동요 4) 의종대의 정치혼란[24] 그 예가 김보당의 난. 주도자인 김보당의 경우 평소 의종의 실정에 비판적인 인물이라서 무신정변 당시에는 무사했었던 것이다.[25] 원 간섭기 원종ㆍ충렬왕의 정치적 행적[26] 고려 충선왕의 정치개혁과 元의 영향[27] 고려 후기에 친원파 권문세족이 전국의 땅을 집어먹은 상태에서 왕들은 토지개혁 부문에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걸 건드리는 건 기존 권력층한테 "한번 겨루어볼래?"라고 파이트 신청하는 거랑 다를 게 없다.[28] 당시 권문세족 농장은 면세 면역이었다.[29] 이 부분이 진짜 독특한 건데, 우리 역사상 왕권을 강화할 때 임협 집단을 이용하는 경우는 없다. 보통 기존 권력 집단과 타협, 흡수하거나, 시종 공신들을 낙하산으로 투하한 다음 권력을 밀어줘서 거물을 만들거나, 통혼을 통해 처가빽을 만들거나 친가빽을 만들어 동원하지, 천한 건달, 조직들을 끌어들여 왕권 강화한 건 충혜왕이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전한 고조 유방과 명 태조 주원장의 사례가 있긴 한데, 그 쪽은 아예 출신이 임협집단이니 같이 시작한 인재들도 그 쪽 출신인 것이었다.[30] 쉽게 말해 기존 친원파들이 장악하고 있던 상권과 유통 구조를 탈취하고, 토지를 집어먹는 수단을 없앴으며, 보란듯이 권문세족들에게만 적용되는 세금을 걷는 데다 자기들하고 통혼 같은 걸로 타협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왕이었다. 때마침 친원파들의 음행이 심하다 하니 왕이 그들을 제거할 명분은 충분했다.[31] 물론 어느 정도 충혜왕에게 불리한 기록만 남았을 공산도 있지만, 저 재평가 역시 남은 기록을 통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32] 원의 쇠퇴와 공민왕의 반원정책[33] 한국사 연대기[34] 고려사[35] 한국사 연대기 > 고려 > 우왕[36]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2. 사림세력의 진출과 사화 4) 갑자사화[37] 게다가 애초에 성리학 군주 끝판왕인 성종이 엄연히 왕위에 앉아 있는 마당에 후궁 주제에 중전인 윤씨한테 감히 대들었다가는 그 즉시 끔살 당했을 것이다. 당장 후궁은 자신의 친자한테도 무조건 존칭을 써야 했다.[38] 다만, 조선이 워낙 왕권이 강한 나라다보니,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군약신강 기조가 된 것일 뿐이다. 때문에, 효종 시기부터는 다시 왕권이 강해지기 시작해서, 숙종 시기부터 정조 때까지는 연산군과 맞먹는 수준의 절대왕권이 구축되었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진짜 군약신강 기조가 나타난 것은 철종 대부터다.[39] 패륜의 대명사인 증조부 세조와 이복형 연산마저도 자신의 친자식들은 끔찍히 아꼈다. 애초에 왕이 공식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것은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와 중종 단 둘밖에 없다. 그나마 자식을 굉장히 미워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인조까지 셋이다. 소현세자는 청이 소현과 원손들을 볼모로 인조의 왕권을 위협했고, 사도세자는 아예 정신병자가 되어 도저히 왕위를 이을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도 인조, 영조의 자업자득이다 그런데 복성군은 어떠한 이유도 없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아 죽은 셈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적장자 인종이 18세로 성년이었기에 혈통 면에서 밀리는 복성군을 죽여야만 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40] 중종대(中宗代) 속찬증보(續撰增補) 사업과 그 정치적 함의[41] 임진왜란 이전부터 심질(心疾) 즉 조현병이 있다고 스스로 고백했고, 날이 갈수록 증세가 점점 심해졌다. #[42] 현종 3년 9월 5일, 현종개수 3년 9월 5일, 현종 4년 4월 13일, 현종개수 4년 4월 13일, 현종 4년 9월 18일, 현종개수 4년 9월 18일, 현종 9년 4월 13일, 현종개수 9년 4월 13일, 비변사등록 숙종 14년 1688년 04월 15일 (음)[43] 인조 1년 8월 10일,인조 1년 윤10월 28일, 인조 1년 12월 7일, 인조 3년 11월 24일, 인조 4년 2월 11일, 인조 4년 2월 13일, 인조 4년 3월 16일, 인조 4년 12월 13일, 인조 14년 8월 1일[44] 율곡 이이는 명종 대에 발생한 해주의 수미법(收米法)으로 불렸던 사대동(私大同)을 본떠서 공물작미(貢物作米) 그리고 공안개정(貢案改正) 등의 대책을 주장했고, 류성룡은 이를 거의 받아서 이를 실현하려 했으나 애초에 1결당 1두만 걷어도 될 정도로 공물부담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해주의 사정이 전국에 적용될 리가 만무했고 그마저도 중앙으로 들어온 얼마 안 되는 쌀은 군량으로 대기에 급급했다. 건의한 류성룡은 몰라도 군량 부족과 같은 매번 그때그때 벌어지는 단기적인 문제외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선조에게 '공납제 폐단을 개선하겠다.' 같은 식의 장기적인 정책 목표에 대한 관념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전혀 성과를 얻지 못한채 공납제 폐단을 개선하는 수단인 공물작미(貢物作米)에 대해서는 이후로도 선조가 떡먹다가 죽을 때까지 거의 15년간 논의 자체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45] 이것이 제대로 시행된 것은 광해군 즉위 직후 이원익의 건의로 이루어진 경기선혜법이라는 경기에서의 시범사업이 처음이었다. 단지 왕 하나 바뀌었는데 어느 관서가 재원을 관리할 것인지 어느 관서의 누가 경각사(京各司)의 공물 납입 담당자인지 누가 경각사(京各司)에 직접 공물을 납입할 것인지 사주인(私主人)을 인정할 것인지 같은 주요 쟁점이 이전에는 전혀 논의 자체가 안 되다가 이 정도 성과를 집권 몇년 만에 바로 얻어낸 것이다. 다들 개혁 주장하는 와중에 말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는 무능하고 수구적인 왕 하나가 개혁의 걸림돌로 40년 동안 죽지도 않고 있었으니까 이원익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선조 29년 10월 21일 딸깍 버튼 한번 누를 의지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무능의 극치였다.[46] <동서분당과 선조의 리더십: 당쟁의 기원에 관한 재해석>[47] 물론 광해군 대에 보듯 '그 시간도 됐고 궁궐이나 짓겠다'라는 발상보다야 나았다고 할 수 있겠다.[48] 선조 38년 9월 28일 당연히 조선이 고려보다 부유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조선초기 농업생산량 증가와 사회의 안정화로 인한 인구증가로 국가생산은 크게 증가했고 여러 가지 폐단으로 골머리를 앓던 선조시기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무정부상태에 가까웠던 고려말기보다는 정부재정도 튼튼했다고 봐야 한다. 출처[49] 임진왜란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3~400명으로 조선군 1만을 대적할 수 있다는 여진족(여진족 1명당 조선군 25~33명에 대적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들이 3만(앞의 기록을 감안하면 사실상 75만~99만에 달하는 대군이다.)대군으로 공격해온 니탕개의 난을 결과적으로 막아낼정도는 되었다. 강대국 명나라가 건국 100년도 안 되어서 2만 정도 적들에게 50만 대군이 참패한 토목의 변같은 굴욕을 겪은걸 생각하면 조선은 200년간 여러가지 폐단으로 군사력이 약해졌음에도 상당히 선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 업적은 병조에서 이이가 해낸 것으로, 선조는 이이의 십만양병설 같은 국방 강화 대책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동시기 1억이 넘는 인구대국 명나라가 장부상 병력 300만이 무색하게 사르후 전투에서 10만 동원하는 것도 버거워했던 것에서 보이듯이, 전근대 농업국가가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폐단들을 전부 해결하고 국가의 모든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나라가 가난하고 약하다고 불평부터 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질이 훌륭했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이는 선조의 '남탓' 버릇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말이라도 최대의 책임감으로 진력하여 나라를 살리려 애썼는데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해 한탄한 군주라면 평가가 달랐으리라.[50] 연산 2년 1월 3일[51] 선조(조선)/평가/부정적 평가/치세의 핵심 업적이 부족하다는 견해[52] 재위 4년까지는 괜찮았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광해군의 재위기간이 15년이 되는데 거의 재위기간 약 3분의2, 즉 11년 동안 막장 암군/폭군 짓을 한 것[53] 선조의 찌질한 견제와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광해군의 흑화에 한몫했다는 의견도 있다.[54] 다만 경기선혜법(京畿宣惠法) 같은 업적 이후 백년간 개혁의 효시가 되었다. <광해군대 京畿宣惠法의 시행과 선혜청의 운영>[C] [56] 10년 간의 위기: 정묘-병자호란기의 공론정치 비판[57] 인조(仁祖)대 재이(災異)에 대한 인식과 대응[58] 순조대 전반기 정국 변동과 의리론의 추이[59]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2. 세도정치의 전개 > 1) 순조대의 세도정치 > (2) 순조 친정 초기(순조 4년∼11년)[60] 순조(純祖) 19세기 전반, 세도 정치 극복에 실패하다[61] 정조가 비상한 두뇌를 가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똑똑하다고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는 법이다.[62] 고종의 친정체제 형성과 그 성격[63] 심지어 자기가 먼저 놀렸다[64] 실제로 전대 황제인 손휴도 촉의 멸망 이후 나라 걱정을 하다가 요절했다.[65] 표면상으로 조위에 복종했으나 사실상의 독립국이었다.[66] 다만 이마저도 마리 앙투아네트 본인이 실제로 한 말이 아닌 왜곡된 발언이다.[67] 태자의 생모를 죽이는 제도[68] 이 개짓이 얼마나 심했는지 아버지 수문제가 난세를 정리하자마자 최고치로 끌어올린 국력을 당태종의 정관지치 시대에도 수문제의 국력에 한참 못미칠 만큼 중국을 수십 년에서 백 년 가까이 퇴보시켰다.[69] 굳이 의종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국가를 재건하려는 의지도 없이 대놓고 말아먹은 의종과는 달리 적어도 황제로서 노력은 했다는 것 정도이지만, 결과는 앞에서 말했듯이 파멸적이었다.[70] 그런데도 홍농, 장안과 동관까지 함락되었느니 당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71] 휘종이 참사를 열었지만 흠종이 잘 수습했다면 송나라는 요나라 시절보다도 더 기어야 하지만 화북일대는 보존할 수 있었겠지만 흠종의 실책 때문에 정강의 변이란 대참사가 터졌다. 당장에 이름의 어원이 된 '정강'은 그의 재위기에 쓰인 연호다.[72] 원래 의미는 도타울 가(嘉), 아름다울 정(靖)인데, 같은 발음의 다른 의미로 집 가(家), 깨끗할 정(淨)이라고 바꿔 불렀다. '집이 깨끗하다' 라는 의미인데, 청소를 해서 깔끔한 게 아니라 가난해서 집안에 아무것도 없다라는 의미다.[73] 다만 조선이 망하게 두었으면 본토가 전란에 휩싸일 것이 뻔했으므로 그의 판단이 옳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본국은 전혀 돌보지 않아서 다 말아먹은 것이다.[74] 관료들에 대한 태도 한하여[75] 숭정제는 관료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지나치게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대하였다.[76] 네 황제의 해를 수습한 베스파시아누스는 네로가 구멍 낸 국고를 회복하기 위해 오줌세 같은 자잘한 간접세까지 만들어 징수해야만 했고, 네로가 방치한 로마군 입영 문제 등도 플라비우스 왕조 아래에서 개선됐다.[77] 당장 네로는 파르티아 문제나 화폐 개혁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콤모두스도 친누나의 배신 전까지는 최소한 평타는 치는 황제라는 평을 받고 있어서 참작이 된다.[78] 유스티니아누스의 그리스식 발음[79] 더군다나 군부 약화의 원인 된 이사키오스 1세의 쿠데타는 콘스탄티노스 10세 본인도 쿠데타에 조력한 전적이 있었기에 본인 또한 직접적인 원인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80] 당시에는 이사키오스 1세의 반란으로 군부에 대한 반감이 극심한 상황이었고 재정악화로 인해 군비 지출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재정이 개선된 이후에도 군을 재건하려는 시도조차 안한 것은 옹호해주기 어렵다.[81] 라틴(서방)인 대학살[82] 물론 로마 역사에서 찬탈로 즉위한 황제가 알렉시오스 3세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들 또한 알렉시오스 3세와 마찬가지로 찬탈의 결과로 내전이나 외부의 침입을 겪었다.[83] 물론 이건 단순히 수도를 버린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구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일종의 몽진을 한 것이었으나 수도가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저항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황제로서 수도를 떠난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당장 선조가 왜 비판받는지 생각해보자.[84]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 부인과 결혼해 그녀를 왕비로 세우려 했지만 당연히 의회와 영국 국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시달려 끝내 왕위를 동생 조지 6세에게 넘기고 퇴위했다.[85] 당시 영국은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제2차 세계 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해 수많은 군인들을 잃고,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영국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문자 그대로 나치라면 치를 떨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왕이었던 사람이 나치를 옹호하고 있으니 그 반응은 가히... 정작 동생 조지 6세는 버킹엄에 있다가 폭격에 죽을 뻔한 적도 있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전쟁을 수습하고 영국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잦은 스트레스와 폭연으로 결국 폐암에 걸려 형보다도 먼저 죽었다.[86] 다만 폐암에 걸려 죽은 것은 조지 6세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에도 아돌프 히틀러처럼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고 경고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조지 6세는 그걸 다 무시했다.[87] 궁전 증축 자체는 그리 큰 재정 낭비는 아니었지만 여러 악재 속에서 궁전을 지은 것은 실책이 맞다.[88] 단, 역으로 개신교권 국가에서 가톨릭 망명객을 수용했기에 마냥 손해는 아니었으며, 낭트 칙령의 폐지 자체는 루이 13세 시절부터 특권을 남용하여 지속적으로 왕권과 충돌하였던 위그노 세력을 꺾고 절대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의 일환이기도 했다. 당대 프랑스 여론 또한 이 결정을 지지했다.[89] 첫 가짜, 그리고리 오트리피예프. 이 가짜만 차르로 즉위했으며 나머지 가짜들은 차르가 되지 못했다.[90] 망상증 환자였다.[91] 바실리 슈이스키는 1606년 5월 가짜 드미트리에게 불만을 품은 세력들을 규합하여 "드미트리를 자칭하는 저 더러운 폴란드 앞잡이와 그 똘마니들을 몰아내고 러시아를 구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반기를 들었다.[92] 그리고 아들 페르디난트 3세부터는 합스부르크 가문도 독일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반쯤 포기하고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등 세습 영토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니 독일 역사와 오스트리아 역사가 갈라지는 원인까지 제공한 셈.[93] 대표적인 사례로 모로코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마찰을 두 차례 빚은 것이 있다.[94] 다만 삼제동맹은 비스마르크의 역량 덕에 성사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95] 어느 정도로 오판했나면, 분명히 정황상 세계대전급으로 커질 조짐이 보이는데도 황제라는 사람이 개인요트를 타고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다만, 이 여행은 당시 수상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으며,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대신 뱃놀이와 북유럽 여행을 택한 것은 주위 협상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오히려, 프랑스와 러시아가 7월 위기를 전쟁으로 확대하려는 의도를 보였다.[96] 빌헬름 2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카이저가 군사적으로 문외한이었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에리히 폰 팔켄하인을 해임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독일 제국에는 명장이 많았는데, 팔켄하인을 대체할 원수를 임명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루덴도르프와 힌덴부르크에게 굴복했다.[97] 스페인계 합스부르크 가문.[98]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나오는 막대한 재원을 담보로 재정을 빌려 쓴 결과 스페인은 아메리카산 자원의 중간 경유지로 전락했다.[99] 스페인계 부르봉 왕조.[100] 이 사람의 아들이 스페인의 파시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이다.[101] 이 참전도 어이가 없는게 당시 모든 정치세력은 중립을 희망했는데 혼자 아득바득 참전을 우기며 비상대권을 쓰겠다고까지하며 참전을 결정했다.[102] 그의 증손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판테온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알다시피 판테온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묻혀 있다. 만약 에마누엘레 3세가 판테온에 묻힌다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나라 망친 손자 꼴 보기 싫다고 온갖 쌍욕을 퍼부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도 희망해서 판테온에 묻힌 건 아니다만 그래도 본인은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업적이라도 있지 이 인간은 왕으로 있으면서 남긴 업적은커녕 제 할아버지의 이름에 먹칠만 한 인간이니...[103]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역시 황가는 합스부르크 가문이므로 이에 포함시켜 서술[104]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헝가리의 반란은 결코 진압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크림 전쟁 때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의 편을 들어 러시아의 통수를 친다.[105] 심지어 1880 ~ 90년대에 이르게 되면 독일의 산업역량은 이미 산업혁명의 종주국인 영국과 강대국인 프랑스를 추월할 정도였다.[106] 특히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은 제국 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손꼽혔으며, 지역민들조차 굶주림이 가득한 땅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지역에 대한 착취는 실로 엄청났다. 이 사실을 반영해서인지 하츠오브아이언4의 the great war redux모드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는 갈라치아 지역 착취라는 나쁜 국민정신이 붙어있다.[107] 다만, 이는 1878년에 약속된 사안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삼제동맹은 이미 균열된 상태였다.[108] 독일 제국이 무너지면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결코 무사할 수 없었다.[109] 본인의 존재가 제국의 구심점이었는데도 전제적인 권력 수호에만 급급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110] 심지어 본인의 존재만이 제국을 그나마 결속시킬 수 있는 요인이었음에도 자신의 사후 제국이 운영될 수 있게 할 체제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고 퇴보에 불과한 대타협에 만족한 것은 최대최악의 실책이었다.[111] 대전쟁 확대는 빌헬름 2세의 책임이지만,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를 등용해 러시아 제국과의 관계를 더욱 파탄낸다.[112] 헝가리는 1925년에 초인플레이션으로 기존 화폐를 갈아엎고 펭괴를 발행해 화폐로 사용했다. 그 펭괴화 역시 대전 말의 초인플레이션으로 폐지되고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113] 부르겐란트가 오스트리아에 할양되고, 트란실바니아 전역을 루마니아에 넘겨주어 영토가 많이 축소되었고, 수복 운동이 일어난 상황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114] 뮌헨 협정과 빈 중재 등으로 남부슬로바키아와 북트란실바니아, 카르파테니아-루테니아 등을 챙겼지만 전후에 다시 상실한다.[115] 이후 안토네스쿠는 카롤 2세의 퇴위에 협력한 철위대와 점점 대립하게 되면서 결국 철위대가 부쿠레슈티에서 무장 폭동을 일으켰지만 안토네스쿠가 이끄는 정부군에 진압되었고, 이후 철위대는 해체되었으며 당원들은 숙청되었다. 그리고 안토네스쿠 이 인간도 마찬가지로 줄을 잘못 서서 루마니아를 파탄냈다.[116] 사실 악비 자체가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는 평도 많다. 악비라는 인물의 평가에 따라 송고종을 명군으로 보느냐, 암군으로 보느냐가 갈린다.[117] 물론 이는 어쩔 수 없었다. 고종의 즉위 자체가 휘종과 흠종의 동의가 없었고 정통성도 이들보다 딸려서 이들이 귀환하는 순간 고종은 정통성 문제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심하면 그 갈등 끝에 폐위되거나 죽을 수도 있고.[118] 그런데 사실 이런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한 거다. 왕이 문제고 왕정 자체를 몰아내야한다라고 명분을 세우면 국가 전복 시도로 찍혀 목이 짤리기 딱 좋다. 그래서 왕을 직접 비난하지는 못하고 그 신하들이 무능하니 왕에게 국민의 현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봉기의 목적으로 내세운다. 당장 동학농민혁명도 이를 봉기의 목적으로 내세워서 전근대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도 듣고 있다.[119] 대표적으로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있다. 이 전쟁 덕에 나폴레옹 군대는 항상 전쟁을 치를 때 이중전선을 형성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120]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위성국으로 삼은 틈을 이용해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121] 본인의 실책과 비스마르크의 노련한 외교술의 결과였다.[122] 사실 유전학적으론 큰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자세한 것은 루이 보나파르트나 나폴레옹 3세 문서로.[123] 이 시기의 일화중 하나로 나치 독일은 왕궁에 독일 깃발을 걸어두었는데 그게 꼴보기 싫었는지 독일에 그 깃발을 내릴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럼 내일 군인 1명을 동원해 강제로 내리겠다고 했다. 이에 독일이 그럼 그 군인을 총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는 "그 군인은 짐이 될 것" 이라는 말로 입닥치게 만들었다. 결국 크리스티안 10세가 원한대로 독일 국기는 내려졌다.[124] 물론 전쟁의 근본 원인은 프로이센의 도발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이 선전포고도 없이 슐레지엔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7년전쟁때는 표트르 3세라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악재도 있었다.[125] 그 전비가 오스트리아의 11년치 예산이었으며, 만약 남편인 프란츠 1세의 재력이 아니었다면 오스트리아는 이때 망국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12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와중에 쇤브룬 궁전을 건축하는 모습, 100여년 전 자국을 멸망위기에서 구해준 국가를 프로이센, 러시아와 함께 멸망시키는 모습이 그 사례라고 볼 수 있다.[127] 이러한 일이 생긴 이유는 바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는 살리카 법에 의거하여 남성만이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제국도 원래는 살리카법에 따라 남성만이 제위에 오를 수 있었으나, 아들이 없었던 카를 6세가 국사조칙을 통해 이를 폐지함으로써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스트리아 대공위·헝가리 왕위·보헤미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128] 물론 펠리페 6세도 카탈루냐 독립파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적어도 흑화한 후의 아버지에 비하면 개념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29] 비록 하일레 셀라시에의 치세에도 에티오피아는 최빈국 신세를 벗지 못했던 건 있지만, 내륙국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한편, 척박한 자연 환경으로 인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도 사실이다. 단지 이 시기에 가뭄이 극심해진 것과 마약인 까트의 재배가 성행했다는 점때문에 무엇을 해도 해결이 나지 않는 불운을 겪었을 뿐이라서, 그동안 암군으로 평가받던 것과는 다르게 황실도 멩기스투도 사라진 오늘날에는 긍정적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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