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6:00:10

크리스티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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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바사 왕조 제7대 국왕
크리스티나
Kristina
파일:Queen_Christina_(Sébastien_Bourdon)_-_Nationalmuseum_-_18075.tif.jpg
이름 크리스티나 알렉산드라
(Kristina Alexandra)
출생 1626년 12월 18일
스웨덴 스톡홀름 트레 크로노르[1]
사망 1689년 4월 19일 (향년 62세)
교황령 로마
장례식 1689년 6월 2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재위 스웨덴 왕국의 여왕
1632년 11월 16일 ~ 1654년 6월 16일[2]
아버지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어머니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
종교 루터교가톨릭
서명 파일:크리스티나 여왕 서명.svg
1. 개요2. 생애3.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스웨덴 바사 왕조의 마지막 국왕.

2. 생애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와 왕비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딸.

구스타브 2세의 자녀 중에서 장성할 때까지 살아남은 이는 크리스티나뿐이었고, 구스타브 2세도 1632년에 뤼첸 전투에서 전사하자 7살의 나이에 즉위하였다. 크리스티나는 비록 어렸지만 다행히 요한 바네르(Johan Banér), 레나르트 토르스텐손(Lennart Torstensson), 악셀 옥센셰르나(Axel Oxenstierna)와 같은 중신들이 보좌를 맡아[3] 30년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스웨덴은 포어포메른을 포함한 발트해 연안에 거점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1638년에는 훗날 델라웨어주가 되는 지역의 북쪽에 식민지 포트 크리스티나가 세워졌으나 이 식민지는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1651년에 네덜란드 공화국에게 빼앗겼다.
파일:external/www.lefrancofil.com/dispute-reine-christine-vasa-rene-descartes.png
이미지 오른쪽 테이블에서 첫 번째. 왼손을 든 사람이 국왕이다. 데카르트는 M자 머리 남자 왼쪽에 있다.

나이를 먹어 친정을 시작한 크리스티나는 르네 데카르트와 같은 유명한 학자와 예술가를 스웨덴으로 초빙해 문화 발전에 힘쓰는 한편 페르 브라헤 백작을 핀란드로 보내 오보, 헬싱포르스, 타바스테후스, 빌만스트란드 등 주요 도시들의 인프라를 확충하였다. 또한 1640년에는 오보에 핀란드 최초의 대학교인 오보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하지만 미혼이었던 여왕의 배우자 문제가 거론되고, 크리스티나도 어릴 때부터 부왕의 방침에 따라 남장을 자주 한 점도 있어서 결혼에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국교인 루터교회가 아닌 가톨릭에 심취하였다. 결국 크리스티나는 1654년에 사촌 오빠인 팔츠츠바이브뤼켄클레부르크 궁정백 카를 구스타프에게 양위한 뒤, 1655년 성탄절 전날에 브뤼셀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로마에 정착해 여생을 보내다가[4] 1689년에 사망했으며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자녀가 없었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쪽 친척들은 가톨릭교도여서 계승권이 없었기에[5], 스웨덴 바사 왕조는 크리스티나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여담으로 데카르트를 스웨덴으로 초빙하기도 했는데 데카르트의 수명이 단축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데카르트는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했고 늦잠이 습관이었는데, 크리스티나는 데카르트가 자기 발로 찾아오도록 좋게 모셔온 것도 아니고 군함을 보내 반강제로 끌고 오다시피 한 주제에 새벽 5시부터 철학 강의를 시작하라[6]고 요구했다. 데카르트도 별 수 없는 노릇이라서 요구대로 강행했다. 그러나 억지로 생활습관을 바꾼것과 맞물려 과로로 체력이 소진된데다가 추운 스웨덴 기후에 몸이 상하여 오래지나지 않아 폐렴으로 앓아놓게 되었고 결국 초청 1년 만에 세상을 뜨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급작스럽게 퇴위를 하여 스웨덴의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고, 퇴위하는 시점에서 가지고 나간 궁중의 수 많은 보석과 재화들을 모두 탕진할 정도의 사치스러운 생활 때문에 퇴위 이후 외사촌오빠의 아들 칼 11세가 재위하던 시절까지 스웨덴 궁중에 손을 벌리는 등 자기밖에 모르는 행위를 통해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문화를 중흥시켰을지는 몰라도, 차후 정통성에 직결되는 왕조의 단절과 국가 방향성을 안 좋은 쪽으로 정해버린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여담으로 퇴위 후 6촌인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의 퇴위로 공위가 된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위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무산되었다.

3. 매체에서

  • 서구권에선 인지도가 높은 편이라 중심 소재로 삼은 역사소설들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 대배우들이 주연한 전기 영화들도 몇 번 만들어졌다. 대부분 영화적 상상력이 많이 들어간 허구적 내용들이다.
  • 1933년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크리스티나 여왕(Queen Christina)>가 있다.
    스페인 펠리페 4세의 결혼 제의 사절로 온 안토니오 피멘텔 데 프라도(Antonio Pimentel de Prado, 존 길버트 분)와 사랑에 빠져 왕위를 포기하지만 피멘텔은 교활한 망누스 가브리엘 델 라 갈뎨(Magnus Gabriel De la Gardie) 백작과 결투를 하다가 사망한다는 내용이다.
파일:Queen_Christina_1933.jpg}}} ||
실제로 피멘텔은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음에도 크리스티나의 측근이 되면서 염문이 돌았다. 그러나 크리스티나의 퇴위 직후에 결투로 죽진 않았고, 왕위를 버린 뒤에도 세계 정세에 관여하던 크리스티나를 향후 몇 년간 보조했으며, 이후엔 스페인의 외교관으로 계속 일했다.
  • 1974년 리브 울만이 주연한 영국 영화 <The Abdication>도 있다. 니노 로타가 작곡을 맡았다.
    왕위를 버리고 로마에서 지내던 시기에 경제 문제를 도맡아 관리하게 된 추기경 데치오 아졸리노(Decio Azzolino, 피터 핀치 분)에게 심문에 가까운 질문 세례를 받으며 지난 인생 여정이 풀려나간다. 크리스티나의 동성애 의혹도 다뤄진다. 크리스티나와 아졸리노는 사랑에 빠지지만 교황 사망 후 아졸리노는 사랑 대신 종교를 택한다.
파일:The _Abdication_1974_Liv Ullmann.jpg}}} ||
실제로 당대에 이 둘 사이에 대해서도 염문이 돌았는데, 크리스티나가 보낸 편지에 애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있기도 하다.
  •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에서도 등장하며 4편 기준으로 능력치는 행정/외교/관리 순서로 2/3/2다. 무료 DLC인 Women in History에서는 아래 조건을 만족하면 랜덤으로 등장하고 군주나 정치인(Statesman) 유형 조언가로 쓸 수 있다.

    플레이어 국가가 스웨덴이며 1626~1700년 사이에 후사가 없는 50세 이상 남성 군주가 다스릴 것.

    동군연합에 묶인 국가가 아니며 이전에 해당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아야 함. 위의 조건들이 맞고 500달 주기로 발생함.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선 로마의 NPC로 등장한다.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나오며[7] 순진하고 철딱서니 없는 성격이다. 그녀를 지켜보던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이 '쟤를 이대로 계속 로마에 둬야 하나?'라며 플레이어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설득 좀 해달라는 퀘스트들도 있다. 시대 조건이 17세기 3기일 때는 스톡홀름 왕궁에서도 볼 수 있다.
  •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선 B급의 모험 항해사로 등장하며 여기서는 크리스티나 알렉산드라로 등장한다. 직업은 예술학자이며, 현재 모험 스탯중 가장 인기가 많은 박물학 스탯이 높고 주의깊은 탐험가 스킬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키우는 유저들이 많다. 여담으로 온라인과 다르게 성숙한 모습으로 나온다.
  • 역사를 만든 여왕 리더십 시리즈 의 2부 2회차 메인 여왕으로 등장한다. 시간여행이 가능한 거울을 통해 떨어진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인공들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함께 30년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유럽과 조국 스웨덴을 구원하는데 앞장서고자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1] 현재 스톡홀름 왕궁의 전신.[2] 대관식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 열렸다.[3] 모후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정신질환 때문에 정사는 커녕 양육에서조차 배제되었다. 크리스티나 여왕의 어린 시절을 돌본 사람은 고모였던 카타리나 공주(칼 10세 구스타브의 어머니)였다.[4] 생활비는 크리스티나의 명의로 된 스웨덴 영지에서 해결했다.[5] 애초에 할아버지인 칼 9세가 본인의 자손들만 계승권을 갖도록 못박아서 요한 3세의 폴란드 바사 왕조는 스웨덴 왕위 계승권이 없었다. 다만 폴란드 바사 왕조는 계속 스웨덴 왕위를 주장하다 칼 10세 구스타브에게 얻어 맞고서 1660년에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6] 크리스티나의 기존 스케줄을 망가뜨리지 않고 시간을 내려면 비는 시간대가 그때밖에 없었다.[7] 로마가 추가될 때는 범용 모델을 쓰다가, 북방의 사자 패치로 전용 모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