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누스 4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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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16년 |
사망 | 1374년 |
(1316년 ~ 1374년)
1. 개요
스웨덴 폴쿵 왕조의 4대 국왕,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폴쿵 왕조의 초대 국왕. 스웨덴에서는 망누스 4세, 노르웨이에서는 망누스 7세로 불린다.2. 생애
스웨덴 국왕 망누스 3세의 차남 쇠데르만란드의 에리크 망누손과 노르웨이 국왕 호콘 5세의 딸 잉에보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1319년, 겨우 만 3세의 나이로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어머니 잉에보리가 섭정을 맡았다. 1323년,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군주를 겸한 모스크바 공작 유리와 뇌테보리 조약을 체결하여 스웨덴과 러시아의 최초의 국경 조약을 설정하였고 핀란드와 카렐리야의 범위를 정하였다.1331년이 되어서 친정을 시작했고 1년 뒤인 1332년에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토페르 2세의 실정으로 망가진 덴마크 영토였던 스코네, 블레킹에, 할란드를 편입시켰다. 1336년 7월 21일엔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노르웨이의 국왕 대관식을 거행했으나 1343년 8월 15일에 노르웨이의 귀족들은 망누스를 노르웨이의 왕위에서 퇴위시키려는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망누스 4세는 차남 호콘 6세가 성년이 되면 노르웨이 왕위를 물려주기로 타협하였다.
1356년엔 스코네를 편입시키기 위한 세금 부과 정책에 반발한 스웨덴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장남 에리크 12세를 국왕으로 추대했지만, 에리크 12세는 3년 뒤인 1359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