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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엘레오노라

<colbgcolor=#D0C191><colcolor=#000000> 스웨덴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왕비
마리아 엘레오노라
Maria Eleonora von Brandenburg
파일:Maria_Eleonora_,_1599-1655,_drottning_av_Sverige,_prinsessa_av_Brandenburg.jpg
이름 마리아 엘레오노라
(Maria Eleonora)
출생 1599년 11월 11일
프로이센 공국 쾨니히스베르크
사망 1655년 3월 28일 (향년 55세)
스웨덴 스톡홀름
배우자 구스타브 2세 아돌프 (1620년 결혼 / 1632년 사망)
자녀 크리스티나 여왕
아버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한 지기스문트
어머니 프로이센의 안나
형제 게오르크 빌헬름, 안나 조피, 카타리나, 요아힘 지기스문트, 아그네스, 요한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 크리스티안, 힐데가르트
종교 루터교회
1. 개요2. 생애3.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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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왕비. 크리스티나 여왕의 어머니이다.

2. 생애

1599년 11월 11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요한 지기스문트와 프로이센의 안나의 차녀이자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한 지기스문트는 게으르고 술주정뱅이였지만 어머니 안나는 굳센 성격의 여성이었다. 요한 지기스문트가 루터파에서 칼뱅파로 개종했음에도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를 따라 루터파로 남았다.

혼기가 차자 수많은 구혼자들이 마리아 엘레오노라에게 청혼했다. 그중 마리아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부모님의 마음에 가장 든 사람은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였다. 그런데 혼담이 오가던 도중 요한 지기스문트가 사망하고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게 적대적이었던 오빠 게오르크 빌헬름선제후로 등극하면서 혼사가 파토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안나는 딸을 데리고 직접 프로이센 공국까지 가 결혼 협상을 마저 진행했다. 1620년 11월 25일에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와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스톡홀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파일:Mary_Eleanor_of_Sweden_c_1630.jpg
스웨덴의 왕비 마리아 엘레오노라, 1630년

부부는 결혼 초기에는 매우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잦은 전쟁으로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자주 전장에 나가 있어야 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추운 스웨덴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했으며, 궁중에서 인기있는 왕비가 되지 못했다. 스웨덴 귀족들은 왕비가 아름답긴 하지만 노는 걸 좋아하고 사치스럽다고 여겼다. 게다가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스웨덴어를 배울 의지가 전혀 없었는데, 이 또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후계자 문제였다. 1622년에 구스타브 2세의 동생인 칼 필리프가 리보니아 원정 도중 이질로 사망하면서 왕실에는 살아있는 남성 구성원이 한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국왕 부부의 아이들은 모두 사산되거나 유아기에 요절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또 임신해 아이가 잘못될까봐 두려워하는 동시에 후계자를 생산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렸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우울증에 걸렸다.

네번째 임신 때 점쟁이는 왕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딸이었다. 왕과 궁인들은 왕비의 상태를 염려해 아이의 성별에 대해 한동안 함구했다. 딸을 낳았다는 걸 안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걸렸다. 그녀는 딸을 추한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꺼렸으며, 몇 차례 아기를 해치려 들었다. 이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엄청난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기 때문에 크리스티나의 양육은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누나 카타리나 공주[1]가 도맡았다.

1632년에 구스타브 2세 아돌프뤼첸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정신 질환은 더더욱 악화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매장을 거부하고 하루종일 시신의 곁에 있었다.

선왕의 유일한 자식인 크리스티나가 왕위에 올랐다.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정신적인 문제를 이유로 섭정단에서 제외되었다. 매일 눈물로 지내는 그녀가 여왕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염려된 신하들은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거주지를 그립스홀름 성으로 옮겼다.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당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과 스웨덴은 적대관계였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1640년에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몰래 덴마크로 떠났다. 이후 스웨덴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 평화 조약을 맺자 1643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1648년 여름에 스톡홀름으로 돌아왔다. 크리스티나가 스웨덴 왕위에서 퇴위하고 1년이 지난 1655년 3월에 숨을 거두었고 유해는 리다르홀름 교회에 안장되었다.

3.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크리스티나 여왕
(Drottning Kristina)
1626년 12월 18일 1689년 4월 19일


[1] 칼 10세 구스타브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