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01:33:44

악의(전국시대)

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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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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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樂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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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호 창국군(昌國君)[1], 망제군(望諸君)[2]
(子)
(樂)
(毅)
영패(永霸)
최종직위 상장군(上將軍)[3], 상방(相邦)[4]
고향 중산(中山) 영수(靈壽)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1. 소개2. 초기 생애3. 연나라에 등용되다4. 제나라의 암군인 민왕을 치다5. 실각6. 말년7. 기타8.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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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전국시대 후기 연나라의 명장. 한때 진(秦)나라와 함께 중원에서 최고의 세력을 다투던 제나라를 멸망 일보 직전까지 몰아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국시대를 넘어서 중국 역사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장수이나, 한국에서는 어지간히 중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는 왠지 듣보잡 신세다. 그나마 더 유명한 《삼국지연의》에서 관중과 더불어 제갈량이 자기 자신을 비견했던 사람이라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이름은 알려져 있는 정도이다.[5][6] 그런데 그 《삼국지연의》에서도 사마휘가 "관중, 악의가 아니라 강태공, 장량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평가하며 관중, 악의가 강태공, 장량보다 못하다는 뉘앙스로 나왔다. 아무래도 후자는 장기적으로 존속한 왕조를 세운 공신이라 더 높이 평가받는듯 하다.

악의의 할아버지가 바로 위(魏)나라의 군주인 문후(文侯)를 섬기며 중산국(中山國)을 멸하여 명성을 떨친 명장 악양이었다.

2. 초기 생애

악의의 일생은 당시 파란만장한 전국시대의 정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악의의 출생지는 할아버지인 악양이 멸한 중산 땅이었는데, 훗날 조나라무령왕(武靈王)이 이곳을 점령했다. 무령왕은 군제를 전차병에서 기마병 위주로 개편하며[7] 한때 천하를 넘봤던 호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상여염파, 조사 등을 비롯한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여 조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군이었다.

악의는 무령왕이 왕위에 있었던 시절에 조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며 경력을 쌓게 되었다. 악의로선 장차 웅지를 펴볼 만했던 상황이었으나, 무령왕이 두 아들의 골육상쟁에 휘말려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사구정변[8]). 이후 조나라는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악의는 이 난장판을 피해 조나라를 떠나 할아버지가 몸담았던 위나라로 옮겨가서 다시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할아버지 시절에만 해도 천하를 넘보던 위나라는 마릉 전투에서의 참패 이후 쇠락하기 시작하여 한창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었다. 옛날의 그 위세는 거짓말처럼 사라져서 다른 나라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다 못해 수도를 옮길 지경이었으니...[9]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연나라에 등용되다

한편 연나라에서는 연왕 쾌가 옛날의 제요 도당씨제순 유우씨를 본받는다고 하여 총애하던 재상이었던 자지(子之)에게 왕위를 넘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났다.[10] 당연하게도 태자였던 희평이 이에 빡돌아서 자지와의 내란이 터졌고, 그 와중에 제선왕이 보낸 광장 휘하의 군대에 의해 쾌왕이 자살하고 찬탈자인 자지가 처형되어 연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렇게 연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제나라 군대가 연나라를 침공하는 바람에 연나라는 그대로 개박살이 나버렸다. 내란을 진압하고 간신히 왕권을 회복한 연소양왕 희직은 이를 박박 갈며 오직 국력을 회복하고 군대를 키워서 제나라에게 복수할 기회만을 노렸다.

소양왕은 스승이었던 곽외에게 제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인재를 모으겠다는 뜻을 밝히며, 우수한 인재들을 모을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이에 곽외가 계책을 일러주었는데[11], 소양왕이 이를 그대로 행했더니 과연 천하 각지에서 능력있는 인물들이 연왕의 초청에 응하여 연나라로 몰려들었다. 당시 추연이나 극신 등의 인재가 앞다투어 연나라로 몰려들었는데, 악의 또한 이때 연나라에 와서 소양왕에게 병법을 피력하고 휘하의 신하가 되었다.

소양왕은 이때 모은 인재들을 고루 등용하여 무려 28년 동안이나 군대를 키우고 재정을 튼튼히 하는 등 내실을 다져가며 숙적인 제나라에 복수할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악의는 병법에 무척 밝았기에 연나라의 장수가 되어 북쪽 변방의 소국이었던 연나라를 강력한 군사 강국으로 키웠다.

4. 제나라의 암군인 민왕을 치다

연소양왕이 복수를 위해 열심히 칼을 갈고 있을 무렵에 제나라는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심지어 중원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던 진(秦)나라조차 제나라를 내심 상대하길 꺼릴 정도였으니, 나머지 5국이 시달리는 정도는 더 심했다. 선왕의 뒤를 이은 제나라의 민왕(愍王)은 이때문에 밑도 끝도 없이 교만해져서 이웃 나라들을 괴롭혀 쓸데없는 원한을 사는가 하면 끝내 맹상군과 같은 걸출한 인물을 쫓아내는 등 갖은 실정과 삽질만 반복했다.

제나라 삽질의 화룡점정은 유서깊은 역사를 가진, 상나라의 후예인 송나라의 멸망 과정에 있었다. 제나라를 필두로 형성된 연합군이 당시 폭정으로 어그로를 한창 끌고 있었던 송강왕을 멸망시켰는데, 자기 힘에 취해있었던 제민왕이 나머지 국가들을 뒷통수치고 홀라당 송나라 영역 전체를 먹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여 전 중화의 분노를 유발시키고 말았다. 악의는 연나라 혼자의 힘으로는 제나라를 상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연합군을 결성할 구실이 필요했는데, 이 사건은 악의에게 있어 천금같은 기회로 작용했다.

악의는 기원전 284년 연소양왕에게 청하여 다른 나라들과의 연합군을 결성하도록 했고, 마침내 연나라 군대의 상장군에 임명되었으며 한•위•조 등의 삼진, 그리고 초나라와 함께 5국 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침공했다.[12] 당시 중원의 강대국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드림팀이었으니...[13]

아무리 제나라가 강하다고는 하나, 5국 연합군의 공세 앞에서는 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5국 연합군에게 공격당한 제나라는 멸망 일보 직전의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이윽고 제나라의 전 국토가 연합군에게 유린당했고, 즉묵과 거 2개 성만이 남게 되었다. 오만한 성격 탓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원한을 샀던 민왕은 거성에 숨어 있었으나 그곳에서 초나라가 보낸 구원군의 장수인 요치에게 건방진 자세로 일관하다가 밉보여 살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래도 거는 끝까지 연합군에게 항거하여 함락당하지는 않았다.

제나라의 수도 임치는 이미 제-연 전쟁 초반에 함락당했으며 연나라는 제나라 규성 전씨 왕실의 종묘를 화끈하게 불사르고, 보물을 약탈함으로써 기어코 28년 전의 복수를 달성했다. 또한, 악의는 불과 6개월 동안에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공략하며 먼치킨스러운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때 연나라는 진나라와 세력을 다투던 제나라를 꺾음으로써 수백년 동안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제-연 전쟁 기간 중, 의리가 강해 제나라 내에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인 왕촉(王蠋 혹은 王燭)을 악의가 회유하려 했으나 되려 거절당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왕촉이 완강하게 귀순을 거부하자 악의는 왕촉에게 고집을 꺾지 않겠다면 그의 일족을 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왕촉은
"열녀가 두 남편을 두지 않듯이, 충신은 두 주군을 섬기지 않는다."
는 말을 남기고 끝내 자결함으로써 암군인 민왕에 대한 충의를 저버리지 않았고, 천하의 악의마저 이에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한편, 목숨이 두려워 달아났던 제나라의 대부들도 벼슬도 없던 왕촉이 끝까지 충의를 지켜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돌아와 용감히 싸웠다고 한다.

5. 실각

악의는 제나라의 콧대를 꺾어 놓은 공으로 연소양왕으로부터 창국군(昌國君)에 봉해졌다. 악의는 마지막으로 남은 즉묵성과 거성 등의 2개 성에 총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이미 궁지에 몰릴대로 몰린 제나라는 왕족 출신의 명장 전단의 분전으로 3년 동안이나 악의의 공격을 악착같이 버텨냈다. 그래서 악의는 점령한 지역에는 선정을 베푸는 한편, 남은 두 개 성이 스스로 항복해 오기를 기다리며 장기전을 펼쳤다. 이때 악의와 사이가 나빴던 연나라의 세자 희악자가 부왕인 소양왕에게 가서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되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
고 모함하자, 소양왕은
"악의가 제나라를 정복하면 안 그래도 그걸 그대로 넘겨주려고 했다(!)"
면서 되려 세자의 볼기를 마구 쳤다.

기원전 279년 중흥지주였던 소양왕이 승하하고, 스팽킹을 당했던 세자 악자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연혜왕이었다. 즉묵성을 지키고 있었던 전단은 혜왕이 악의를 미워하고 있음을 알고는
"악의가 일부러 제나라의 남은 성을 치지 않는 것은 반역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소문을 퍼뜨리며 이간계를 걸었다. 혜왕은 이를 듣고 '옳거니! 내 진작 악의가 역적임을 알았지'하며 해고를 먹였다. 이대로 멀뚱히 있다가는 혜왕의 손에 죽겠다 싶었던 악의는 처자마저 내팽개친 채 서쪽의 조나라로 달아났다.

한편 혜왕은 달아난 악의 대신에 기겁이라는 장수에게 대장을 맡겼다. 그러자 전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겁이 이끄는 연나라 군대를 즉묵 전투에서 단 한 방에 와장창내고 잃었던 땅을 전부 수복했다(화우지계). 혜왕은 그제서야 기겁해서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일이었다.

6. 말년

조나라로 달아난 악의는 그곳에서 망제군(望諸君)에 봉해져 연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던 시절 못지 않은 높은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연혜왕은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면서도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잘못을 꾸짖는 내용의 친서를 악의에게 보내 다시 연나라로 돌아올 것을 요청했다. 이때 악의가 혜왕의 요청을 거절하며 보낸 답서인 <보연혜왕서>(報燕惠王書)가 상당히 유명한데, 그 중 한 대목은 이렇다.
君子交絶 不出惡聲 忠臣去國 不潔其名
군자는 친구와 교제를 끊더라도 그 친구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14]
사마천 《사기》 <악의 열전> -보연왕서- 중...
악의는 연혜왕에게 섭섭한 감정이야 있지만, 선왕인 연소양왕으로부터 워낙 믿음과 총애를 듬뿍 받은 몸이었기에 연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남아있었다. 그때문에 악의는 조나라로 달아난 이후로도 연나라에 위해를 끼칠 행위는 일절 하지 않겠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연혜왕은 그래도 악의가 조나라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두려움에 떨었고, 그래서 악의가 남긴 아들과 종제를 후히 대접했다.[15] 악의는 죽을 때까지 조나라와 연나라를 오가면서 객경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악의의 일족들은 연나라에서 살았으나 이후 연왕 희장평대전에서의 참패 이후 피폐해진 조나라의 뒤통수를 치려는 계획에 악의의 아들 악간(樂間)이 반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대조 원정에서 일족인 악승이 포로가 되자 어쩔 수 없이 일족 전체가 조나라로 망명하게 되었다.[16] 이후 조나라에 충성하며 연나라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이후 그 유명한 염파와의 사이에서 조나라 군대의 지휘권을 두고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17]

여담으로 악의를 실각시킨 전단도 훗날 조나라에 정착하여 두 사람의 일족이 같은 나라에서 살기도 했다고 한다.

7. 기타

훗날 한고조 유방이 옛 조나라 땅을 지나가다가 명장 악의의 후예를 수소문하여, 악숙이라는 후손이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그에게 봉호를 내리고 대접했다. 이후 악의의 일족은 노자의 학설로 유명해진 대학자 악하와 악신을 배출했다.

악영이라는 조카가 있다고 전해진다. 전단이 고토를 수복할 때 요성이라는 곳을 점거하여 버텼으나 노중련이 나서서 연나라 왕의 의심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자 절망해서 자결했다고 한다.

8. 대중매체에서

8.1.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022.jpg
삼국지 12, 13, 14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조조와 능력치가 유사한 S급 고대무장으로 고대무장 중에서 총합 1위의 능력치를 보인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98/무력 76/지력 90/정치력 95의 능력치에 기병, 수군을 제외한 병법들이 1개 정도 있고, 지식계 병법, 모략계 병법이 3개로 총 11개가 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98/무력 75/지력 90/정치력 94/매력 90에 특기 24개의 능력치이다. 제갈량이 본인을 관중과 악의에 견주었다는 이야기를 반영한건지 제갈량과 상성이 똑같다. 최강급 통솔력에 전투 특기를 모두 가지고 있어서 활용도가 높고, 유인, 혼란 특기에 무력도 중간 정도는 된다. 다만 삼국지 10의 시스템상 무력, 지력 중 어느 하나에 특화되는게 더 낫기 때문에 미세하게 아쉬운 감은 있고, 정치가 94나 되는데 그걸 살릴 특기가 없는건 더 아쉬운점. 그래도 군사 특기 + 통솔98 + 지력90에서 이미 특급 무장이고, 명사 특기가 있어 평상 시에도 이동이 수월하며, 수명이 70세나 되기 때문에 활용도는 아주 높다.

삼국지11에서는 능력치는 통솔력 98/무력 75/지력 92/정치력 91/매력 92으로 통솔력은 사마의와 동급최강(98)[18]이고 무력은 70대 중반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며 지력, 정치력, 매력도 모두 90대 초반으로 능력치 총합이 조조보다는 1 낮다. 특기도 심공으로 쓸 만하고,[19] 수군이 C인 것을 제외하면 병과적성이 A급에 극병, 노병이 S다.

삼국지 DS 2에서는 능력치는 11과 동일한데 무력이 '88이 되었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삼국지 11 때의 능력치에서 매력만 삭제됐으나 총합은 조조와 같다. 병종은 창병이며 특기는 상재, 병심, 연병, 인맥, 보수, 변설, 신속, 공성, 냉정, 군사. 전법은 전군맹공 참고로 전군맹공을 가진 무장 중에서 무력이 70대다.

삼국지 13에서도 고대무장으로 등장한다. 통솔력 98/무력 75/지력 92/정치력 89의 능력치에 상업 1, 농업 3, 훈련 9, 순찰 6, 교섭 7, 위풍 7, 신속 8, 연전 8, 공성 9, 견수 8의 특기를 지녔으며 전수특기는 위풍이다. 병과적성은 창병 A, 기병 A, 궁병 S. 전법은 조조와 같은 용략지휘다. 중신 특성은 공정무사.

삼국지 14에서 능력치는 통솔력 99/무력 76/지력 93/정치력 88/매력 93으로 삼국지 11의 능력치에서 정치력이 3 떨어지고 나머지 능력치가 1씩 증가했다. 개성으론 황금 개성인 신장, 신안 나머지 개성으로 영명, 구심, 주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관우랑 개성이 유사하다. 전법으론 군신, 연노, 혼란, 고무, 진정, 충차를 갖고 있으며 내정과 전투 양쪽에서 뛰어난 특급 무장이다.

8.2.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

파일:attachment/악의/Example.jpg 파일:kingdom21.jpg 파일:kingdom20.jpg
공식능력치
시기 무력 지휘력 지력 대장군도
가이드북 93 100 98 100

작중에서는 천하를 진동시킨 군신으로 설명된다. 킹덤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이라 실제 등장은 없다.

킹덤 등장인물 가운데 염파와 함께 능력치 총합이 1위이다. 무력 100인 방난과 지력 100인 이목과 마찬가지로 통솔력이 100이며, 지력은 이목과 백기를 제외하면 비교할 인물이 없고 무력 또한 섭맹, 임무군, 윤호 등 무투파 장군급이다. 대장군도 또한 염파와 같은 100이며, 경험치 또한 혼자서 SS를 마크한 먼치킨.

연재분 252화에서 극신의 과거 이야기가 나올 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데, 거구[20]에 긴 삼각 수염을 한 덕장의 풍모[21]를 지니고 있다. 또한 작중 설명으로는 서쪽 진나라에 육대장군, 중앙 조나라의 삼대천이 있다면 동쪽 연나라에는 군신 악의가 있었기에 중화 전장의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22]

그 후 연재분 264화에서 최초의 합종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침공하는 모습으로 잠시 회상에 등장하지만 그 후로는 출연이 없다.

작중에서 드러난 그의 전술로는 자신의 열세를 적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여 전세를 반전시키는 것이 유일하다. 극신이목과의 싸움에서 이를 활용하였다.

8.3. 영걸전 시리즈

파일:The Legend of Cao Cao Yue Yi.png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전국칠웅의 패라는 계보로 등장할 무장이었지만, 등장하기 전에 서비스 종료가 되면서 미등장 데이터로 남았다.


[1] 연나라 시절[2] 조나라 망명 이후[3] 연나라에서 내린 직위[4] 조나라에서 내린 직위[5]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손권을 만나기 전, 동오의 신하들에게서 "너님이 감히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했냐?"고 질문을 받자 "나와 딱히 비교할만한 사람은 없지만 그나마 그 둘이 나랑 비교할만하다"(!)라는 투로 얘기했다.[6]정사 삼국지》에서 저자인 진수가 직접 "국정 운영 능력은 관중소하와 비견될 만하다."라며 "군사적 재능이 떨어지는 것은 한신이 있었던 소하, 왕자 성보가 있었던 관중과 달리 촉한에는 뛰어난 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7] 춘추시대는 물론이고 전국시대 초기까지도 주력부대는 전차부대였고, 기마병을 도입한 것은 오랑캐의 풍습을 본따 소매도 줄이고 바지를 입기 시작한 이때부터였다.[8] 무슨 난리통 가운데 창칼에 죽은 것도 아니고, 자식들에 의해 연금당했다가 굶어죽었다(...).[9] 위나라가 땅을 크게 떼먹히고 수도를 안읍에서 대량으로 옮긴 이후엔 대량의 '량'에서 따와 양나라라 부르기도 한다.[10] 실존 자체가 의문스러운 요•순을 제외하면 중국사 최초의 선양이었다.[11] 곽외는 자신과 같은 보잘것없는 인물에게도 포상을 하면 '곽외 정도의 인물에게 후한 대접을 하면 실력있는 인재는 어떻게 대접할까?'라는 궁금증을 가진 인재가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매사마골, 사마골오백금 문서 참조.[12] <악의 열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고, <연소공세가>·<전경중완세가>·<초세가>에는 연·진·초·삼진의 6국이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진본기>·<조세가>·<위세가>에는 연·진·삼진의 5국 연합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한세가>에는 진나라의 소양왕과 만난 뒤 진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공격했다고 되어 있다. 후에 제나라를 도와주러 온 초나라의 장수 요치가 오히려 제민왕을 죽인 사건 때문에 초나라가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13] 소설 《열국지》에는 조나라 군대의 장수가 염파, 진나라의 장수가 백기였다고 나오지만, 이건 소설의 얘기다. 염파는 기원전 283년에 제나라를 친 기록이 있으므로 종군 가능성이 있지만…전단이 연합군을 물리치고 영토를 회복한 279년에도 염파가 제나라를 친 기록이 있는데, 전단이 수복하기 전인지 후인지는 불명이다.[14] 직역: 군자는 교제를 끊더라도 나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옛날 임금을 욕하지 않는다.[15] 전국시대의 냉혹한 시대상과 악의에 대한 악감정으로 시야가 좁았던 연혜왕의 성품을 생각하면, 만약 악의가 흔쾌히 연나라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말년이 절대 평온하진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안 돌아갔으니 악의의 일족 생존이 보장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16] 참고로 이렇게 조나라의 뒷통수를 친 연나라는 오히려 역공을 당해 수도인 계가 포위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그러다가 결국 원정에 반대했던 장거가 연나라의 상국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조나라와의 화의가 맺어졌다. 참고로 도망친 악승은 이후 연왕 희의 사죄 서신을 받았는데도 씹었는지 답장은 없었다고...2대에 걸쳐 통수를 당했으니 빡칠만도...[17] 이 대립은 결국 악승에게까지 이어져서 도양왕이 염파를 경질하고 악승에게 일을 맡기자 빡친 염파가 악승을 공격해 악승은 달아나고 염파 또한 멋대로 아군을 공격한 것이었기에 그도 튀었다(...) 이후 도양왕이 다시 등용하려고 했지만 간신 곽개의 농간 때문에 그러지 못했고, 결국 초나라에서 쓸쓸하게 사망했다.[18] 백기와 한신을 포함하면 동급 3위.[19] 다만 심공이 무난한 특기인지라 계략계 특기를 주는 게 더 좋다.[20] 말을 탄 상태에서 옆에 있는 극신보다 머리 1,2개가 더 있는 수준.[21] 극신이 자신의 전장을 엿보는 것을 눈치채면서도 눈감아주며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야심가라며 극신을 칭찬하며 눈여겨보는 인자한 모습을 보였다.[22] 그렇다면 진나라 육장 = 조나라 삼대천 = 연나라 악의라는 등식이 성립하는데 이는 6=3=1로, 어찌 보면 진나라 육장이 듣보잡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진나라는 강대국 초나라와 국경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흉노와 겨루고 있는 데다, 진나라를 경계하는 열국들의 견제로 당연히 더 많은 인재와 더 넓은 전선의 구성이 필요했다. 어찌 보면 연나라는 인재풀이 적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왜 그냥 설정 놀음이란 말을 못 하니 하여간 작중 설명에 따르면 악의는 육대장군, 삼대천과 비교해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능력을 가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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