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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da3f3a><colcolor=#ece5b6> 동주 제13대 국왕 평왕 | 平王 | |
| 시호 | 평왕(平王) |
| 성 | 희(姬) |
| 휘 | 의구(宜臼) |
| 아버지 | 유왕 |
| 생몰 기간 | 기원전 ???년 ~ 기원전 720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770년 ~ 기원전 720년 |
1. 개요
주나라의 제13대 왕이자, 동주의 첫 번째 왕이다. 유왕의 아들이며, 환왕의 할아버지이고 휴왕의 조카였다. 그는 진(晉)과 정나라 등 주나라에 충성하는 제후들의 도움을 받아 낙읍[1]으로 천도해 주나라의 명맥을 이어갔다.2. 즉위 전
그는 유왕의 정실 부인인 신후의 딸의 소생으로 태자로 낙점되었으나, 유왕이 절세 미녀 포사를 총애하여, 그 소생인 백복을 태자로 삼고, 그를 폐했다. 그런데, 포사의 봉화 사건 때문에 유왕과 정백우가 견융족의 손에 죽임을 당하자 제후들은 견융에게 위기 의식을 느끼고 그를 왕위에 올리니 그가 바로 평왕이다.3. 재위 기간
평왕 원년(기원전 770년), 평왕은 견융족의 추격을 피해 낙읍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진(秦)나라 군대가 평왕을 호송했다. 그리고 낙읍에 무사히 도착하자 평왕은 자신을 보위한 공로를 세운 당숙 정무공을 사도로 삼았으며, 진문후도 공로가 있었으므로 그도 국정을 돌보게 했다. 역사가 들은 이 시대를 동주시대라고 부르며, 유왕 이전의 주나라인 서주와 구분을 하였고, 이 시대를 춘추시대라고 불렀다.그런데 이 혼란을 틈타 유왕의 동생인 희여신(姬余臣)이 왕을 칭하니 그가 바로 휴왕이다.[2] 그리하여 주나라는 둘로 갈라졌다.
평왕 21년(기원전 750년), 진문후는 평왕을 도와 휴왕을 죽였다. 평왕은 그 공로를 기려 거창과 규찬을 내렸다. 그리고 거기에 진후지명이라는 글자를 새겼다.[3] 그리고 휴왕이 죽자 그에게 휴(携)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휴는 [ruby(怠, ruby=태)][ruby(政, ruby=정)][ruby(交, ruby=교)][ruby(外, ruby=외)] 즉 정사를 게을리하고 바깥에서 놀아났다는 의미의 악시다.[4] 그 일로 주나라는 다시 통합 되었다.
평왕은 진(秦)양공을 백작으로 봉하고 견융에게 빼앗긴 땅을 봉지로 내린다.
평왕은 51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다. 장남이었던 예보(洩父)는 요절, 차남 호(狐)는 정나라에서 인질 생활 중 왕이 죽어 귀환하였으나 병사했다. 그리하여 요절한 장남의 아들이자 평왕의 손자인 희림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환왕이다.
[1] 바로 《삼국지》의 후한과 위의 수도로 이름난 낙양이다.[2] 달리 혜왕이라고도 불리나 훗날 혜왕이 있기 때문에, 이 양반은 휴왕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3] 청화간에 의하면 기원전 761년에 진 문후에게 죽었다고 나온다.[4] 여담이지만 이 사례는 한국의 헌덕왕, 고려 숙종, 조선 세조나 중국의 영락제 등의 사례와는 달리 조카가 이긴 케이스다. 무엇보다 당장 그를 돕던 진 문후도 조카로서 숙부인 상숙을 죽이고 진후가 된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