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05 21:30:32

콩고 독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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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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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독립국
État indépendant du Congo
Onafhankelijke Congostaat
파일:콩고 독립국 국기.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00px-Coat_of_arms_of_the_Congo_Free_State.svg.png
국기 국장
Travail et progrès
노동과 진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cationCongoFreeState.png
1885년 ~ 1908년 12월 18일
성립 이전 멸망 이후
국제 콩고 협회 벨기에령 콩고
국가 Vers l'avenir(미래로 향해)
위치 아프리카
수도 보마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레오폴드 2세
언어 프랑스어, 기타 토착어
민족 토착 민족
통화 콩고 프랑
1. 개요2. 상징
2.1. 국가
3. 역사
3.1. 건국 이전3.2. 건국 이후
4. 정치
4.1. 가혹 행위
5. 소멸6. 매체에서7. 관련 문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unch_congo_rubber_cartoon.jpg
- "러버 코일(의역하면 고무 사슬)에 메이다"
콩고의 재산이다.
콩고의 사람들은 짐의 노예이다.
콩고에서 산출되는 모든 것들은 짐의 것이다.
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콩고의 영토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짐이 정한 법에 따라 다루어질 것이다.
레오폴드 2세의 선언 中 (Morel 1905, 295)

1. 개요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신 국가이며 흔히 '콩고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공식적으로는 식민지가 아니라 벨기에와의 동군연합 형태의 군주국이었지만, 실상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개인의 사유지나 다름없어, 저 광활한 영토를 자기 주말농장이나 뒷마당 다루듯 했다. 1908년 가혹행위와 국제적인 비난을 보다 못한 벨기에 정부가 소유권을 가져와 직할 통치함으로써 벨기에령 콩고로 개편되었다.

2. 상징

2.1. 국가

'미래를 향해(Vers l'avenir)'가 쓰였다.
파일:Vers l'avenir.jpg

3. 역사

3.1. 건국 이전

이전부터 콩고강 유역에 눈독 들이고 있었던 레오폴드 2세는 콩고 강 지역에 꾸준히 탐험가를 보내고 있었다.[1] 그는 브뤼셀에서 지리학 학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끌어모은 뒤 1876년 국제아프리카협회를 개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통받는 흑인들에 대한 구원이란 명분을 앞세워 교묘하게 이들을 속여서 국제적인 지지를 한 몫에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후 여러 국가들을 설득시킨 끝에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포르투갈을 따돌리고 레오폴드 2세의 지배가 공인된다.

3.2. 건국 이후

콩고 독립국 정부와 레오폴드 2세는 원주민 추장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준 뒤 이들의 인권과 재산권을 빼앗는 조약을 어려운 말로 교묘히 속여서 영토를 늘렸다. 또 철도플랜테이션을 건설해 수탈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당시 동아프리카에서 마지막 세력을 쥐고 있던 오만 제국이나 수단에서 넘어오는 노예상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경 북방에 요새를 새우기도 하였다. 이런 돈이 어디서 나왔냐면 우선 벨기에의 정부에서 돈을 빌려주기도 하였고 결정적으로 원주민들을 갈아넣어 고무상아를 채집한 돈으로 이런 인프라를 건립했다.

1891년 레오폴드 2세는 법을 제정하고 1892년 상아와 고무 무역을 독점해 버렸다. 곧이어 우방기-우엘레(Ubangi-Uele) 강 근처와 숲속 주변에 살고 있던 콩고인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레오폴드 2세는 당연히도 콩고 원주민의 삶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며 자기 잇속을 채우기 위해 원주민들에게 가혹한 노역을 부과하였다. 이는 원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으나 이 때마다 콩고 독립국군과 부역자들의 학살로 진압되었다.

4. 정치

애초에 콩고 독립국은 대외적으로 식민지가 아닌 정식 국가임을 주장하며 세워졌지만 원주민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을 위해 세워진 국가이다. 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콩고 독립국은 철저히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흑인 원주민들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번은 청나라를 방문한 콩고 독립국 대표단이홍장을 만났는데 이홍장은 이들을 슬쩍 보더니 "아프리카인들은 흑인들 아니었냐?"라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말을 안 듣는 자들은 벨기에가 치안 유지를 위해 마련한 콩고 독립국군, 이른바 공공군(Force Publique, Openbare Weermacht)[2]이라 불리던 군대정치경찰이 모조리 탄압했으며, 지배층의 수탈을 돕기 위해 원주민 일부를 포섭하여 앞잡이로 삼았다, 콩고는 식민 통치 이전부터 수많은 부족이 거주하면서 갈등을 빚던 곳이라 압제자에 맞서 단합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그 중에서 전통적으로 용병 및 노예상 행위를 해 온 식인종 부족인 자포잡(Zappo zap)[3]이나 역시 호전적인 식인종으로 알려진 아잔데족[4]등 평판이 나쁜 부족들이 콩고 독립국군 또는 외부 협력자로서 노예 포획 및 수탈 강요를 도왔다.

4.1. 가혹 행위

It is an extraordinary thing that the conscience of Europe which seventy years ago has put down the slave trade on humanitarian grounds tolerates the Congo State to day. It is as if the moral clock had been put back many hours.
70년 전 인류애적인 동기에서 노예 무역을 폐지한 유럽의 양심이 오늘날 콩고국을 묵인하고 있음은 누가 뭐라 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도덕의 질서라고 하는 시계추가 몇 시간쯤 늦어진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조지프 콘래드가 1903년 12월에 로저 케이스먼트에게 보낸 편지

레오폴드 2세는 여기서 고무 채집에 열을 내어 원주민들을 혹사시켰다. 고무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마을 인근의 넝쿨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동이 나 버렸기 때문에 콩고의 원주민들은 열대우림의 넓은 지역으로 나가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들에게 보호장비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흑인 원주민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등이나 다리, 등이 부러지거나 그대로 죽는 상황이 속출했다. 게다가 연중 열대성 폭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고무나무가 자라는 지역은 습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고무채취는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들도 기피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공공군은 하마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사람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구타했고, 납치강간 역시 수시로 이루어졌다. 지시에 따르지 않는 마을은 마을째로 불태워졌다. 이는 장병들의 질이 상당히 낮았기 때문으로, 조직 내부적으로도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제대로 된 군대보다는 출세를 원하던 현지인, 콩고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 용병[5], 식인종들을 모아 둔 오합지졸 모임에 가까웠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흑인 병사들에 의해 반란도 많이 발생했으며 부정부패도 만연했다. 외딴 오지에 있던 장교들은 마치 지옥의 묵시록처럼 휘하 장병들을 사병으로 부리며 레오폴드 2세에게 갈 이익과 독립국의 외치보다는 자신의 영달에 골몰하며 군벌 노릇을 했다.[6] 이러한 공공군의 꼴은 벨기에령 콩고가 들어선 1908년 이후에서야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관리들은 각 개인에게 어마어마한 노동 할당량을 부과한 뒤 이를 채우지 못하면 처음엔 이들의 손을 잘랐고, 두번째로는 팔을, 마지막엔 '총알을 낭비하지 말자'는 이유로 참수형을 하였다. 정부 관리들과 공공군 장병들은 열심히 일한 증거로 절단된 신체 부위가 담긴 소쿠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하고는 했다. 이에 대해 반발이 있거나 할당량에 미치지 못하는 데는 군대를 보내 집단적으로 학살하거나 여자들을 인질로 잡고 강간하였으며 죽은 자의 할당량은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이양되었다. 이런 연좌제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주민 부족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도 이러한 행위들이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콩고의 정부와 레오폴드 2세는 여러 공작을 펄쳤다.

또한 각 주둔지에서 인질을 잡거나 족장의 친인척들을 납치해 노동에 응하도록 부족을 강압하는 방식도 많이 이루어졌다. 노동자 학대로 악명 높았던 영국-벨기에 인도 고무 회사(ABIR, Anglo-Belgian India Rubber Company)는 아예 주둔지마다 사람을 투옥할 사설 감옥과 울타리를 마련했다. ABIR는 할당량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지역의 족장들을 감금했다. 감옥의 상태는 당연히 열악하여 1899년에는 하루에만 3~10명의 사람들이 봉간당가와 몸포노의 감옥에서 사망했다. ABIR에 저항한 기록이 있는 자들은 강제수용소로 추방되어 강제노동에 투입되었다. 콩고 안트베르펀 상회(Société Anversoise du Commerce au Congo) 역시 노동자들을 학대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5. 소멸

이러한 잔학무도한 정책을 실행시켰음에도 적어도 당분간은 본토와 외국의 눈을 속일 수가 있었다. 허나 이러는 것도 잠시, 레오폴드 2세의 학정이 얼마 안 가 전세계 언론에 낱낱이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사회도 긴가민가했으나 선교사들과 콩고 독립국에서 화물을 나르던 무역상, 소식을 들은 영국 정부에서 파견한 로저 케이스먼트, 레오폴드 2세의 폭정을 고발한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와 같은 여러 의인들의 고발과 조사로 증거가 수집되자 콩고 독립국과 레오폴드 2세에 대해 마크 트웨인과 같은 세계의 명사들은 물론 각국 정부, 왕가의 강력한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같은 식민제국들도 벨기에의 통치는 특히 비인간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크리스티안 10세 부자는 '이런 자가 인간이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같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등 강도 높게 레오폴드 2세를 비판했다. 레오폴드 2세는 처음에는 이러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원주민 권익 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연막작전을 펼치거나 언론을 매수해 여론 돌리기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민간을 떠나 정부 차원의 비판이 들어오는 등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잠재울 수는 없었고 결국 1908년 콩고 독립국 지역을 벨기에 정부에게 위임하는 형식으로 그는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렇게 콩고 자유국은 폐지되어 직속 식민지 벨기에령 콩고가 되었다. 벨기에령이 된 이후에도 콩고인들은 어디까지나 식민지인으로서 차별받으며 살았지만 어쨌든 벨기에 정부가 레오폴드 2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나름 노력해서 적극적인 투자와 인권 보호를 진행한 이유로 콩고 독립국 시절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졌다.

콩고는 제1차 세계 대전독일 제국이 탐내어 중앙아프리카 독일령 콩고로 집어삼키려 했으나 독일의 패배로 벨기에가 독일령 동아프리카 일부 지역까지 차지하였고 이 곳은 루안다-우룬디 위임통치령이 되어 1960년에나 르완다 왕국, 부룬디 왕국으로 독립했다. 벨기에는 식민지 인수 과정에서 별 대단한 차이도 없던 투치족후투족을 나누고 지배하기 위해 갈라치기 정책을 시전했고 이는 훗날 발발하는 르완다 내전르완다 학살, 부룬디 내전의 원인이 된다.

6. 매체에서

  • 어둠의 심연
    폴란드계 영국인 작가인 조지프 콘래드가 무명 벨기에회 소속의 선장으로써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던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선진 문명의 전파란 미명 하에 야만적인 학살과 착취를 해대는 제국주의자들을 비판한 소설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차별 의식을 벗지 못한 한계가 있다. 지옥의 묵시록 등 후대의 다양한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학계의 고전.
  • 레전드 오브 타잔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의 2016년작 영화.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1914년작 소설의 최신 영화판이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리메이크하여, 메인 스토리가 타잔이 콩고 독립국에서 벌어지는 벨기에의 침략 행위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주요 등장인물 중 실존 인물이 둘이나 등장한다. 하나는 타잔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새뮤얼 L. 잭슨 분)로, 초기에는 레오폴드의 지지자 중 하나였지만 이내 진상을 깨닫고 벨기에의 만행을 최초로 고발했던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메인 악역으로 등장한 레옹 롬(크리스토프 발츠 분). 이 사람은 실제로 레오폴드 2세의 명을 받고 콩고 독립국에서의 수탈에 앞장섰던 용병대장이다.
  • 율리시스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언급만 된다. '그놈들이 콩고자유령에서 벨기에 놈들이 한 짓보다 조금이라도 심하다면 나쁜 짓이 틀림없지.', '여자들과 여자애들을 강간한 것도 모자라, 고무를 우려낼 수 있는 대로 우려내라고 원주민들 배에다 채찍질을 했다나.'[7] 정도.

7. 관련 문서



[1] 이 때 콩고 탐험에 참가한 탐험가 중에서 헨리 스탠리가 유명하다.[2] 콩고 독립국이 벨기에령 콩고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벨기에 중앙정부의 하수인으로써 활동했으며 레오폴드빌 콩고 초창기에는 국군 역할을 했다. 1960년 레오폴드빌 콩고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지 고작 5일만에 공공군 소속 현지인 병사(Askari)들이 평소에도 흑인 장교 임명에 반대해 왔고, '벨기에의 독립이 아프리카인에게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 발언한 에밀 장상(Émile Janssens) 장군의 태도에 분노하여 백인 장교들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콩고 각지를 공격하며 유혈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 이 때문에 벨기에는 콩고 국민 보호를 이유로 콩고의 허가 없이 다시금 콩고에 군사 개입을 했고 공공군은 콩고 국군으로 재개편되어 사라졌다.[3] 송예족의 일파.[4] 콩고 식민지 설립 이전부터 근처 부족들에게 냠냠족(Niam-niam)이라는 멸칭으로 불려왔다.[5] 장교의 경우 벨기에는 물론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 전직 장교들을 모집했고 병사들은 나이지리아 하우사족, 잔지바르에서 많이 모집했다.[6] 그 때문에 1890년대 대대적인 토벌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독립국의 동부는 레오폴드 2세가 아니라 사실상 오만, 수단노예상인상아 밀렵꾼들이 지배하고 있었다.[7] 출처 - 《율리시스 1》 600P. (문학동네판, 이종일 옮김)[8] 폴란드 출신 영국인 작가. 6개월간 무명 벨기에회 소속의 선장으로 콩고 강에서 배를 몰았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둠의 심연과 진보의 전초 기지를 집필했다.[9] 벨기에군 지휘관. 각종 전쟁범죄를 진두지휘했다. 어둠의 심연에 등장하는 교역상 커츠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는 크리스토프 발츠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