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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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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1] 현실[2]

1. 개요2. 전문3. 역사적 배경4. 영향5. 창작물에서6. 기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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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White Man's Burden[3]

영국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로, 백인이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것을 '미개한 인종을 개화시키기 위한 의무'로 포장한 백인 우월주의제국주의 사상을 뜻하기도 한다. 1899년에 발표한 시 〈백인의 짐 - 미국과 필리핀 제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2. 전문

원문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Send forth the best ye breed—
Go bind your sons to exile
To serve your captives' need;
To wait in heavy harness
On fluttered folk and wild—
Your new-caught, sullen peoples,
Half devil and half child.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In patience to abide,
To veil the threat of terror
And check the show of pride;
By open speech and simple,
An hundred times made plain.
To seek another's profit,
And work another's gain.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The savage wars of peace—
Fill full the mouth of Famine
And bid the sickness cease;
And when your goal is nearest
The end for others sought,
Watch Sloth and heathen Folly
Bring all your hopes to nought.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No tawdry rule of kings,
But toil of serf and sweeper—
The tale of common things.
The ports ye shall not enter,
The roads ye shall not tread,
Go make them with your living,
And mark them with your dead!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And reap his old reward:
The blame of those ye better,
The hate of those ye guard—
The cry of hosts ye humour
(Ah, slowly!) toward the light:—
"Why brought ye us from bondage,
Our loved Egyptian night?"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Ye dare not stoop to less
Nor call too loud on Freedom
To cloak your weariness;
By all ye cry or whisper,
By all ye leave or do,
The silent, sullen peoples
Shall weigh your Gods and you.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Have done with childish days—
The lightly proffered laurel,
The easy, ungrudged praise.
Comes now, to search your manhood
Through all the thankless years,
Cold-edged with dear-bought wisdom,
The judgment of your peers!
번역

백인의 짐을 져라.
너희가 기른 최고를 최전선에 보내라.
네 포로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너희 아들들을 보낼지어다.
퍼드덕대는 사람들과 야생에 맞서
육중한 마구를 차려입으라.
네 불만투성이 표정의 갓 잡아들인 포로들,
반은 악마요, 반은 아이인 자들에게.

백인의 짐을 져라.
끈기있는 인내로
공포의 위협을 덮어버린 채
긍지를 때맞춰 드러내면서.
공개적인 언설과 단순함으로
몇 번이라도 반복하라.
타인의 이득을 살피고
타인의 성과를 돕기 위해서.

백인의 짐을 져라.
평화의 야만적인 전쟁,
기근의 입을 채워 주고
역병이 끝나도록 명하라.
그리하여 너희 꿈이 가까워질 때
타인을 위한 목표도 이뤄질지니,
너희의 모든 희망을 없애버릴
나태와 이방인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라.

백인의 짐을 져라.
왕들의 천박한 지배가 아닌
농노와 청소부의 노력,
평범한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직 입항하지 않은 항구,
아직 걷지 않은 길,
가서 너희 삶의 족적을 남기라.
죽음의 족적을 남기라.

백인의 짐을 져라.
그리고 오랜 성과도 거둬라.
너희가 받을 더한 모멸,
너희가 맞닥뜨릴 증오,
너희가 다루어야 할 주인들의 통곡,
(아아, 천천히!) 빛을 향해..
"어이하여 그 자는 우리를 그 사랑스럽던 이집트의 밤에서,
속박에서 데리고 나왔는고?"

백인의 짐을 져라.
너희 피곤을 가리기 위해
너희는 몸을 덜 웅크리지도
더 크게 자유를 떠들어대지도 말거라.
너희 모두가 울부짖는지, 속삭이는지
너희 모두가 떠나는지, 책무를 다하는지
조용하고 뾰루퉁한 자들은 너희 신과 너희를 평가할지니

그렇게 어린 시절은 끝났나니.
손쉽게 주어진 명예와
마음에서 쉽게 우러나온 찬사 따위는.
이제 너희 웅대함을 시험하기 위해
그 모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세월을 통해
차갑고도 날선, 값비싼 지혜와 함께
너희 동료의 심판이 다가올지어다!

3. 역사적 배경

유럽과 미합중국을 망라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총과 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피로 물들였고 자신들의 폭력적이며 잔혹한 침략범죄를 우수한 문명으로서의 권리로 착각하고 미화하였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의 문화와 문명을 미개하고, 저열하며,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이들을 동등한 사람이 아닌 하나의 '연구감'이자 '자신들이 계몽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이 시는 제국주의 시대 구미 열강들이 어떠한 사상으로 식민 침탈에 임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899년 2월 스페인이 필리핀에서 물러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게 되자 키플링은 이를 지지하면서 본 시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반은 악마, 반은 어린애인 필리핀인을 미국인이 지배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시는 모두 일곱 연이며 각 연은 "백인의 짐을 져라(Take up the White Man's burden)"로 시작한다.

이 시에서 키플링은 "야만적인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을 개화시키는 것은 힘들고 고되지만, 그들에게서 보답은 커녕 원망과 비난을 받을지라도 백인들은 고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핏 보기엔 힘이 있는 사람들이 희생이 있더라도 약한 이들을 돕자는 좋은 주장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곱씹어 보면 잘난 백인이 못나고 무지한 유색인종을 도와야 한다는 우월의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즉, 백인이 상전이고 유색인종은 아랫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며 이 시를 통해 키플링은 백인이자 대영제국의 신민인 자신의 인종차별적 편견과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주장을 내세운 배경은 키플링 본인은 대단히 제국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지만 징병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콤플렉스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 한을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풀었다. 원래 아들은 해군에 입대하려고 했으나 시력검사에서 떨어졌고 이후 육군 장교에 지원했지만 역시 시력검사에서 떨어졌다. 키플링은 군대의 인맥을 이용해 아들을 근위 보병 제4연대에 입대시켰지만 결국 아들은 1915년 9월 18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들이 전사하자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키플링은 "높으신 분들의 욕심과 무능 때문에 희생당하는 건 어느 나라나 젊은이들"이라는 내용의 반전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남들이 전쟁으로 고통받을 때는 모른 척 하더니 자기 아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나서야 마음을 바꿨다는 점 때문에 후대에는 여전히 비웃음당하고 있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키플링 본인의 욕심으로 아들을 전쟁터로 밀어넣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4]

다만 이것은 순수하게 키플링이 만들고 주창한 사상이 아니다. 당대 유럽 지식인 사회에는 정도가 더하든 덜하든 이런 사상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 심지어 당시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순수하게 선의로 봉사한 의사와 선교사들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 역시 식민지 행정 없이는 보장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5] 알베르트 슈바이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데이비드 리빙스턴도 백인의 의무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다. 이는 단순히 인종우월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당시에는 백인들이 세운 나라들이 더 문명 수준이 발달해 있었고 이들이 식민지배하던 나라나 민족들의 대부분이 외부와 접촉하지 않는 부족이거나 오랜 기간 기술 발전이 정체된 상황이라서 기술 수준이나 위생, 시민의식이 크게 뒤떨어진 탓에 현실적인 측면에서 열강들의 발전한 문명이 이들 원주민들에게 확산되어 그 혜택을 누리길 바라는 의미로 그렇게 본 것이다. 일례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조차 이런 이유로 백인의 의무라는 개념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허버트 스펜서 같은 당대의 반제국주의자들은 열강들이 그저 제국주의적인 야욕을 채우고자 이 개념을 왜곡한 것이라고 봤을 뿐이다.

4. 영향

이 시는 당시 제국주의 사상 및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제국주의 문서에 서술되어 있듯이 식민지 경영으로 인한 이익 자체는 크지 않거나 크더라도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소수 자본가에게만 그 이익이 돌아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대중들과 정치인들은 그 이익으로 인한 달콤한 헛꿈에 현혹되었고 여기에 백인의 의무와 같은 사이비 이론이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면서 제국주의가 그 정당성을 얻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제국주의 문서를 참고하자.

21세기에는 당연히 대놓고 이런 주장을 하지는 못하지만 매체의 '백인 구세주' 클리셰처럼 여전히 좌우를 가리지 않고 암암리에 깔려 있다는 비판이 있다.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어퍼머티브 액션도 유색인종은 백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일어서지 못한다는 잠재적인 우월의식을 내재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5. 창작물에서

  • 소설 어둠의 심연커츠는 백인의 의무에서 비롯된 큰 꿈을 품은 지성인이었으나 아프리카에서 야만인들을 돕고 계몽시킨다는 본래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본인도 힘센 야만인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애초에 이 소설에서 소위 문명화, 진보라는 것의 본질이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 영화 샤이닝에서 잭 토렌스가 과거의 호텔에 잠식되어 갈 때 바에서 백인의 짐 드립을 친다. 작중 도끼에 맞아죽는 흑인 요리사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 동아시아 국가들도 유럽 국가처럼 세계로 확장하는 대체역사물에서는 보통 유자의 짐 같은 식으로 패러디된다.
    • 대체역사물고종, 군밤의 왕에서는 총 두 번 나오는데, 국내에서 '유자의 짐' 따위를 주장하는 얼치기 제국주의자들이 나타나자 '유생들이 공부 안 하고 저런 짓거리를 하는 걸 보니 시험이 쉽나 보군?'이라며 김귀남 옹이 과거 난이도를 올릴 것을 명했는데 귀남 치세부터 시작된 급격한 개혁으로 인해 안 뜯어고치는 부분이 없어 육조 모두 오랫동안 야근이 일상이었던지라[6] 유능한 실무인력이 대거 필요했던 기존 관료층이 적극 찬동하며 자기들에게 필요한 과목을 쓸어넣어 시험과목으로 채택했고, 그 뒤로도 유생들이 허튼소리를 낼 때마다 과거 시험이 무지막지하게 난이도가 올라갔다. 나중엔 하도 시험 난이도가 오르니깐 여러 번 낙방에 좌절한 유생들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라는 말에 귀남옹이 일자리 정책으로 사법부를 독립시켜 졸지에 국왕-의회-사법부로 삼권분립을 이루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국외에서는 위의 역사가 완벽하게 뒤집혔는데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손에 넣으려고 하자 선의빔으로 무장한 조선과 조선에 은혜 겸 외교적 부채를 진 프랑스, 후발주자들과의 식민지 경쟁을 막고자 한 영국, 후발주자로서 선두를 견제해야 하는 독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프랑스가 식민지 문명화에 대한 조건을 내걸고 순탄하게 문명국 대열에 합류한 조선이 그 문명화의 모범적인 예시가 되어 자국의 발전 지표를 보여주며 입증하고 영국과 독일이 프랑스의 논리에 동의하면서 이들에 의해 나비효과가 일어나 '식민지화=그 지역에 대한 근대화 지원'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위의 백인의 짐이 말 그대로 진짜 이 되어 기반시설부터 교육, 경제, 주거 환경 개선 등등 온갖 곳에 예산을 퍼붓게 만들어 유럽 국가들의 등골을 말라가게 하고 있다. 오히려 아프리카나 아시아 빈국에서 적극적으로 자기들을 식민지로 삼아 달라는 상황이며 영프 등 강대국들도 국력이 식민지에 빨려나가 함부로 식민지 확대나 전쟁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벨기에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내 2류 국가들은 매년 식민지에 투자되는 엄청난 적자에 진짜 말라죽기 직전이다. 식민지 확장을 아직 안 한(하와이 왕국도 독립국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는 의회에서 벨기에 꼴 나고 싶냐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대외확장을 비판하는 파벌이 형성되어 한참 전에 먼로 독트린을 선포해놓고도 남미에 손을 뻗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벨기에는 콩고가 벨기에의 암흑의 심연이 되어가고 있다고 공개 석상에서 발언할 정도다. 원작 소설인 어둠의 심연이 실제 콩고에서 벌어진 벨기에의 만행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개그이다. 이후 1889년 파리 엑스포에서는 식민제국들이 자국 식민지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주기 위해 잘 교육받고 잘 차려입은 '문명화된' 식민지인들을 데려와 전시하기도 했다. 그나마 영프는 식민지로 얻는 수입이 제법 되었기에 그렇게까지 타격을 입진 않았고 벨기에는 1900년대 천연고무 농사로 겨우 흑자전환을 하며 더 많은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으나, 후발주자인 독일은 날이 갈수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적자로 가득한 재무지표를 두들겨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레벤스라움을 빼고 식민지를 다 내던지겠다(해방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내놓으면서 모로코 문제로 모로코 위기가 벌어진다. 물론 처음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프랑스는 모범 사례가 되어서 다른 국가들에게 짐이 지워지는 걸 팝콘 뜯으면서 보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대전쟁이 발발하자 아직 중립을 지키고 있던 벨기에에, 벨기에 덕에 문명화의 수혜를 받은 수많은 콩고인들이 은인의 나라 벨기에(...)를 돕겠다며 벨기에 본토로 와서 벨기에군에 입대하고, 폭증한 벨기에군을 보고 독일이 벨기에 침공을 단념하게 되는 아스트랄한 모습도 벌어지게 된다.

6. 기타

한편 미국-스페인 전쟁을 처음에는 찬성[7]했지만 미군이 벌인 학살을 보고 경악해 필리핀 전쟁을 '미국이 저지른 죄악의 상징'이라고까지 비난했던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전쟁을 위한 기도》[8]에서 "하느님, 이 야만적인 백인들을 굽어살피소서. 백인들의 무식한 짐으로 피가 넘칩니다"라는 글귀로 미국과 키플링을 동시에 깠는데 덕분에 키플링은 마크 트웨인을 무척 싫어했다. 전쟁을 위한 기도는 지금 봐도 상당히 급진적이다. 비슷한 책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전쟁 교본》도 있다. 이것은 마크 트웨인의 것보다는 참혹함 대신 비꼬는 성향이 크다.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도 백인의 의무라는 사상이 결국 백인들의 탐욕과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핑계임을 비판하는 소설이다.

이렇게 마크 트웨인과 갈등을 빚었던 키플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술했던 것처럼 아들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하자 반전 사상을 설파하는 시를 쓰면서 여생을 보냈다. 결국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에 당대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자였음에도 제국주의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기 때문인지 키플링의 작품은 오늘날 정글북만 유명하고 그나마 왕이 된 사나이가 조금 알려졌을 뿐 무려 400여 편에 이르는 그의 소설과 시집 등 서적들은 서구에서도 묻혀 버렸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간다독재자 이디 아민이 "난 백인의 짐이다"라는 개드립을 치면서 영국의 백인 사업가 4명에게 무거운 자신을 짊어질 가마를 들게 한 기행을 벌인 적이 있다.

인터넷에선 유럽 난민 사태를 일컬어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백인의 의무라고 부른다.

7. 관련 문서


[1] 1899년 저지 지에 실린 빅터 길럼의 삽화. 시의 내용처럼 영국과 미국이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을 등에 짊어지고 있다. 이들은 미개, 억압, 미신, 잔혹, 범죄 등의 험난한 고지를 넘어 문명으로 향하고 있다.[2] 마찬가지로 1899년 3월 16일 라이프 지에 실린 윌리엄 헨리 워커의 삽화. 문장의 'white'와 'man's'란 단어들 사이의 괄호 안 물음표((?))에서 알 수 있듯 백인들이 짐을 진다는 인종차별적인 시의 내용을 풍자하는 삽화로 선전의 내용과 반대되게 유색인종들이 백인들을 짊어지고 고생하고 있다. 이른바 유색인종의 짐.[3] '백인의 짐'으로 번역되기도 한다.[4] 다만 키플링을 조금 옹호해 주자면 일단 키플링의 아들이 원치 않는데 키플링이 억지로 군대에 보낸 게 아니라 아들 스스로도 입대를 원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만 해도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이념 차이도 집어치우고 전쟁터로 냅다 뛰어드는 등 사회적으로 입대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입대가 권장되는 수준을 넘어서 남자라면 어떤 이유로라도 입대하지 않으면 엄청난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정도였다. 즉, 키플링의 욕심만이 비극의 원인이 아니라 시대적인 분위기도 한 몫 했다. 실제로 당시 입대를 못 한 것에 대한 절망감으로 자살했다는 얘기는 몇십 년이 지난 제2차 세계 대전까지도 심심찮게 들리던 얘기였다. 당시에는 전쟁이라고 하면 '참혹함'보다는 '공을 세우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커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너도나도 앞다퉈 전쟁터에 갔다가 죽거나 고생을 실컷 하고 돌아온 후 반전주의자가 된 사람이 많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이 제3제국을 표명하며 재무장을 하고 군국주의를 표방함에도 영국과 프랑스가 우물쭈물대며 전쟁을 피하려고 한 점을 생각하면 제1차 세계 대전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에 키플링이 이런 생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29년에 발표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통해 반전주의가 대중들에게도 널리 퍼졌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전쟁은 피하는 것이 좋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겁쟁이 취급이나 받았을 것이다.[5] 허나 동시에 정말 선의의 목적인 사람을 앞에 내세워 식민지배에 대한 명분을 만들거나 심지어 선교사가 그 앞잡이가 되는 일도 있었다.[6] 특히 호조는 그 업무 강도가 더 심해서 커피 문화가 전해지자 관원들이 일반 커피로도 감당이 안 돼서 호조탕약이라는 엄청 진한 커피 원액을 달고 산다고...[7]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 지배를 반대했기 때문에 미국이 필리핀을 독립시켜 주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8] 미국에서 1923년까지 출판이 보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