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2:39:50

후폐제(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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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97E8><colcolor=#ece5b6>
남제 제6대 황제
후폐제 | 後廢帝
출생 483년
남제 남난릉군 난릉현
(現 장쑤성 창저우시 우진구)
즉위 498년 9월 1일
남제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501년 12월 31일 (향년 18세)
남제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동혼후묘(東昏侯墓)
재위기간 남제의 황태자
494년 12월 22일 ~ 498년 9월 1일
남제의 황제
498년 9월 1일 ~ 501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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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97E8><colcolor=#ece5b6> 본관 난릉 소씨
명현(明賢) → 보권(寶卷)
부모 부황 고종
모후 명경황후
형제자매 11남 1녀 중 차남
배우자 저영거, 반옥아
자녀 1남
지장(智藏)
작호 부릉왕(涪陵王) → 동혼후(東昏侯)
묘호 열종(烈宗)[1]
시호 양후(煬侯)
소숙황제(昭肅皇帝)[2]
제호 후폐황제(後廢皇帝)
연호 영원(永元, 499년 ~ 5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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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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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남제의 제6대 황제. 재위기간 동안 영원(永元)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는 지장(智藏).

폐위되었기에 묘호와 시호는 없고 주로 불려지는 제호(帝號)는 폐제(廢帝). 하지만 조롱의 의미로 동혼후(東昏侯)[3]라는 봉호(封號)가 더 유명하다.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유송유자업/유욱과 더불어 사이코패스가 황제로 즉위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4]

2. 생애

영명 원년(483년)에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명현(明賢)이었으나, 아버지 소란의 정치를 보좌하면서 보권으로 이름을 개명했다. 명제 소란과 명경황후(明敬皇后) 유씨(劉氏)[5]차남이었다.

건무 원년(494년) 11월에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그에게 사실 이복형이 있었지만 이복형이었던 진안왕 소보의(蕭寶義)[6]는 폐질을 앓는 벙어리였기 때문에 그가 황태자가 된 것이다. 명제 소란은 소보권에게 "융창(隆昌)의 고사를 잊지 말거라"라는 유언을 남겼다.[7] 하지만 소보권은 태자였을 때부터 공부와 독서를 싫어했고, 장난이 심했다. 특히 를 잡는 것을 좋아해서 밤새도록 쥐만 잡았다.

또 눌변이고 말더듬이라서 대신들을 접견하기를 꺼렸으며 아버지 소란의 관이 궁에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빨리 땅에 묻으려고 했다. 그런데 소란의 충신 태중대부 양천이 곡을 심하게 하다가 두건이 땅에 떨어지자 크게 웃었는데 그가 대머리였기 때문이었다. 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곡도 하지 않고 그냥 땅에 묻으려고 하다가 강력한 간언으로 예법에 따라 시일이 흐른 후에 안장했다. 그런 후에는 밤낮으로 말 타는 놀이를 하고 북을 치며 뿔피리를 불었고 좌우 시종 수백명과 소리지르며, 오랑캐 노래를 섞어 제멋대로 여러 음악을 연주했다.

이놈의 싹수를 미리 알았는지 이듬해 8월에 우복야 강석이 명제 소란의 3남이자, 소보권의 동복 아우였던 강하왕 소보현(蕭寶玄)을 옹립하려고 했다. 또 위위 유훤은 소란의 6남이자 소보권의 동복 아우인 건안왕 소보인(蕭寶夤)[8]을 옹립하려고 했고, 양주자사 시안왕 소요광은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했다. 이렇게 반란 세력들이 분열되었는데 강석은 결정을 못 내렸고 영군 장군 소탄지는 모친이 사망해서 돌아갔으며, 유훤은 소요광이 황제가 되는 것에 반대했다. 이에 소요광은 자객을 보내어 유훤을 암살하려고 했으나, 유훤은 이를 소보권에게 일러바쳤는데 결국 강석 형제는 주살당하고 소요광은 유훤을 죽인다는 구실로 군사를 일으켰으나 주살당했다. 그런데 소보권은 유훤까지도 죽여버렸고 대항 세력의 싹을 완전히 잘라버렸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아우 소보현의 목숨도 빼앗았다. 사실 소보권이 얼마 전에 상서령 서효사를 죽였는데 이때 그의 딸 서씨도 죽였다. 서씨는 소보현의 부인이었는데 소보현은 이에 앙심을 품고 강석과 손을 잡아서 친형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소보권은 나름 친동생 챙겨준다고 부인 2명을 하사했으나, 역모가 드러나자 강석과 소보현은 모두 주살되었다.

이때부터 소보권은 마음을 놓았고, 측근들과 함께 후당에서 북장구를 울리면서 말타기를 하고, 해가 뜰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대신들은 황제를 만날 수도, 상소를 올릴 수도 없었으며 소보권은 대신들을 함부로 주살했다. 또 정사에 관심이 없고, 기밀 문서를 함부로 다뤄서 대각과 오성(행정부)에서 상주한 서류를 아무 곳에나 던졌다. 한 환관이 고기와 생선을 이 종이에 싸서 귀가했는데 알고 보니 기밀 문서라는 것을 알 정도였다. 11월, 태위, 강주 자사 진현달은 심양에서 난을 일으켰으나 이것도 실패하여 12월에 주살되었다. 그 후 소보권은 자기 운만 믿고 더욱 방자해져서 꺼리는 게 없었고, 더욱 방탕하게 놀았다. 이놈도 울림왕 소소업처럼 이빨로 굄목을 들어올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걸 하다가 이빨이 부러져도 그만두지 않았다.

궁전 여러 누각에 남녀의 외설적인 형상을 그리기 위해, 명제 소란이 거두어들인 금은보화를 모두 써버렸다. 그것도 부족하여 부호들에게 금을 팔라고 하여 외상으로 거둬들이고는 그대로 먹튀했다. 그는 무뢰배 500여 명을 좌우에 두고, 한 달에 20여 차례나 분주하게 돌아다녔는데 시간, 장소 모두 정하지 않고 랜덤으로 나가 절대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게 했다. 그가 출병하면 사방에 북장구를 울리고 불을 환하게 비추면서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을 살육하며 인가를 지나갔다. 이때 놀란 남녀노소가 놀라 울부짖으며 갈 곳을 몰랐는데 죽은 사람은 묻히지 못하고, 병든 자는 길에 버려졌으며 임산부는 집에 방치되었다. 위흥 태수 왕경빈은 죽은 지 얼마 안됐는데 식구들이 집에서 쫒겨 달아나는 바람에 염습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돌아와보니 쥐들이 그의 눈을 모두 파먹고 없었다고 한다.

시냇가에 있던 어떤 병든 자를 발견한 관리들은 소보권이 그를 죽일까봐 물 속에 넣고 진흙으로 얼굴을 덮었는데 그는 끝내 질식사했다. 한 승려는 몸이 아파 풀밭에 숨어 있었는데 발각되어 무수한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가 되었고, 한 임산부도 숨어 있었다가 발각되어 뱃속의 아기가 아들인지, 인지 본다는 이유로 산채로 배가 갈라져 과다출혈로 죽기도 했다.

영원 2년(500년) 8월, 후궁에 큰 불이 났는데 소보권이 학살 레이스를 하러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아 궁 안의 사람들은 나가지 못하고 궁 밖의 사람들은 감히 문을 열지 못했다. 소보권이 뒤늦게 돌아와 처리를 늦게 하는 바람에 결국 30여 칸이 불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보권은 후궁을 재건할 때 사향으로 벽을 칠하고 황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에 붙였다. 소보권은 맨발 모에라서 반귀비(반옥아, 혹은 반옥노)에게 이 황금 연꽃을 맨발로 밟게 했는데 그걸 보고 기뻐했다.[9]

반귀비는 소보권을 조종하여 사치를 누렸는데 방락원을 지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동산의 돌에는 모두 오색을 칠했다. 여름에도 나무를 심었는데 아침에 심으면 저녁에 말라 죽고 다시 심어도 결국 한 그루의 나무도 살지 못했다. 민가에 좋은 나무나 대나무, 수석이 있으면 민가나 담을 허물고 가져왔으며 296개의 사냥터를 만들고 거기 있던 민가들은 모두 없애 버렸다. 거기에 후원인 화림원에 시장을 열고[10] 자신이 반귀비, 구인 등과 함께 장사를 했다. 반귀비는 시령, 자신은 시리녹사라고 칭하니 백성들은 '지존(황제)은 고기를 잡고 반비는 고기를 파네'라고 노래부르며 조롱했다. 소보권에게 황후 저씨(저영거)[11]가 있었으나, 자식도 없었고 총애도 받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호화사치를 부리니 명제 소란이 애써 축적한 국고는 금방 바닥났다. 그러자 국고를 채우기 위해 가렴주구를 일삼으며 백성들을 수탈했다. 또 귀신을 믿어 귀신을 맞아들이고 기도를 올렸는데 낙유원에서 놀다가 사람과 말이 갑자기 놀란 적이 있었다. 이에 측근 주광상이 "이는 선제가 노여움을 내는 것"이라고 하자 소보권은 칼을 빼들고 아버지를 찾다가 짚으로 아버지의 형상을 만들고 목을 베어 그 목을 원문에 걸어놨다.

소보권은 부친 명제의 유언을 명심하여 의심나는 자들을 속전속결로 처단했는데, 그야말로 대신을 나 고양이 죽이듯 죽였다. 10월에 소보권은 상서령 소의를 독살하고, 11월에는 소의의 동생인 옹주자사 소연을 죽이려고 했다.

영원 3년(501년) 정월, 오히려 소연이 양양에서 군대를 이끌고 명제 소란의 8남 남강왕 소보융을 황제로 옹립했다. 소연은 10월, 마침내 건강에 이르러 포위했다. 11월 6일, 지금까지 여러 반란들을 운 좋게 계속 진압해 왔기에 안심하고 놀던 소보권은 놀다가 만취해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에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정로 장군 왕진국과 연주자사 장직은 소연과 내통하여 그날 밤에 군대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갔다. 소보권은 발가벗고 자고 있다가 병사들의 소리에 놀라 깨어나서 그대로 달아났다. 하지만 머지않아 잡혀 죽임을 당했으며, 시해한 이들은 기름칠한 누런 명주에 소보권의 머리를 싸서 성문을 열고 소연에게 바쳤다.

소보권은 4년 동안 재위했으며, 이때 나이가 19세였고, 동혼후로 강등되었다. 소연은 반귀비를 교살했고, 소보권과 숙의 황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태자였던 소송도 살해했다. 소보권의 딸이자 반귀비 소생이었던 공주는 요절했으며 유일하게 소보권의 차남이자 미인 오씨(오경휘)의 소생이었던 예장왕 소종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소종은 소보권이 처단된 지 약 7개월 후에 태어났는데 이것 때문에 소보권의 유복자라는 설과 양무제 소연의 아들이라는 설이 대립한다. 자세한 것은 소종 항목 참조 바람.

중흥(中興) 2년(二年, 502년) 정월(正月), 동혼후(東昏侯)의 사종질(五從姪)이자 조정을 장악한 대사마(大司馬) 소연(蕭衍)은 옛날 동혼후의 행보를 비판하며 조서를 내렸다.
「무릇 동혼(東昏)의 시대에는 들떠서 소비했으니,예악의 의식을 익히는 일이나、갑옷과 무기를 수선하는 것이 아니면,나머지는 모두 금지하여 끊도록 해라。」
「凡東昏時浮費,自非可以習禮樂之容、繕甲兵之務者,餘皆禁絶。」

3. 둘러보기(계보)

남제서(南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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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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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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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권 「순리전(循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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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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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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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생 소보인이 추존[2] 동생 소보인이 추존[3] 동쪽의 혼미한 후작이라는 뜻. 혼(昏)이 붙는건 조롱용으로 내려지는 일이 이후에도 있었다.[4] 사실 만행의 질로 따지면 그 유자업과 유욱보다도 더한 수준이다.[5] 이름은 유혜단(劉惠端).[6] 귀빈 은씨(殷氏)의 소생이었으며 최종 작호가 파릉은왕이었다. 동복 형제로 명제 소란의 10남 진희왕 소보숭(蕭寶嵩)이 있었는데 남제가 멸망할 때 다른 소씨들과 함께 피살되었다.[7] 융창은 울림왕 소소업 치세 때 쓴 연호다. 즉, 소소업이 우유부단하고 무능해서 자신, 즉 소란을 죽이지 못하다가 오히려 역으로 당해 죽음을 당한 고사를 말한 것으로 만사에 결단을 내리라는 유언이었다.[8] 남제에서의 최종 작호는 파양왕. 동혼후 피살 이후 북위로 망명해서 황녀와 혼인하고 삼공까지 지냈으며 최종 작위는 제왕이었다.[9] 이것이 전족의 시초라고도 하는데 정설은 아니다.[10] 유송의 소제도 후원에 주막을 열어 술장사를 했다.[11] 태상 저징의 딸로 어머니는 유송 문제 유의륭의 딸 여강공주 유씨다. 저징의 아버지는 경후 저담지로 어머니는 무제 유유의 딸 오군공주 유씨였다. 저담지는 오군공주가 죽자 유유의 7녀 시안공주와 재혼했다. 저씨는 소보권 피살 후에 폐서인이 되었고, 그 후에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