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9 22:04:02

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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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암체어 제너럴 매거진 선정 위대한 장군 1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00 GREATEST GENERALS
1위2위3위4위5위
칭기즈 칸
몽골 제국
알렉산드로스 대왕
마케도니아 왕국
티무르
티무르 제국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이슬람 제국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제1제국
6위7위8위9위10위
수부타이
몽골 제국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마우리아 왕조
키루스 2세
아케메네스 왕조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스웨덴 제국
한니발 바르카
카르타고
11위12위13위14위15위
바부르
무굴 제국
묵돌
흉노
율리우스 카이사르
고대 로마
한신
전한
벨리사리우스
동로마 제국
16위17위18위19위20위
술탄 마흐무드
가즈니 왕조
셀림 1세
오스만 제국
헬무트 폰 몰트케
독일 제2제국
스키피오
고대 로마
튀렌 자작
프랑스 왕국
21위22위23위24위25위
투트모세 3세
고대 이집트
나디르 샤
사파비 왕조
존 처칠
대영제국
가르친링
토번
완안아골타
26위27위28위29위30위
곤살로 데 코르도바
에스파냐 왕국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제정 러시아
얀 카롤 코드키에비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공화국
수필룰리우마스 1세
히타이트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신성로마제국
31위32위33위34위35위
마우리츠 판 나사우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
아서 웰즐리
대영제국
이스마일 1세
사파비 왕조
헤라클리오스
동로마 제국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아시리아
36위37위38위39위40위
루이 2세 콩데 친왕
프랑스 왕국
제베
몽골 제국
에리히 폰 만슈타인
나치 독일
미힐 데 로이테르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
멘투호테프 2세
고대 이집트 제11왕조
41위42위43위44위45위
사모리 투레
와술루 왕국
크누트
덴마크 왕국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
곽거병
전한
오다 노부나가
아즈치 모모야마
46위47위48위49위50위
광무제
후한
테미스토클레스
아테네
얀 지슈카
보헤미아 왕국
시바지 보슬
마라타 왕국
이리가한
돌궐
51위52위53위54위55위
원숭환
바이바르스
맘루크 왕조
아므르 이븐 알-아스
우마이야 왕조
이순신
조선
완안진화상
56위57위58위59위60위
프랜시스 드레이크
잉글랜드 왕국
척계광
쩐흥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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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위62위63위64위6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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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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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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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위67위68위69위7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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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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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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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위72위73위74위75위
얀 3세 소비에스키
폴란드-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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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콜롬비아
곽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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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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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위82위83위84위8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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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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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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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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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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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제국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미나모토 가(家)
사부아 공자 외젠
신성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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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무목(武穆) → 충무(忠武)
왕호 악왕(岳王)
성씨 악(岳)
비(飛)
생몰기간 음력 1103년 03월 17일 ~ 1142년 01월 27일

1. 개요2. 생애3. 악비의 무덤4. 재평가5. 기타6. 대중문화에서

1. 개요

중국 북송 말기~남송 초기의 무장으로, 금나라에 대항해 싸웠던 남송명장. 는 붕거(鵬挙). 시호는 충무(忠武).[1] 남송의 영종이 1204년에 악왕(鄂王)에 봉했기 때문에 흔히 '악왕'이라고도 부른다. 중국(특히 한족)에선 거의 이순신급 명장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현대 들어선 좀 너프된 재평가도 받는다.

2. 생애

송사 <악비전>에 따르면 그가 태어날 때 고니처럼 큰 새가 지붕 위에 앉아서 이름이 비(飛)가 되었다고 한다. 또 그가 어렸을 때 황하가 범람해 그의 어머니가 악비를 안은 채 커다란 바구니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았다고 전한다. 북송이 멸망할 무렵에 의용군을 조직해 금나라에 항거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남송에서 장군이 되어 악가군을 조직해 수많은 무공을 세운 명장이다. 얼마나 강했는지 금나라 병사들은 '태산을 움직이는 건 쉽지만 악비의 군사를 움직이기는 어렵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악비는 악가군을 이끌고 금나라 군대를 여러 번 쳐부수고 낙양과 정주 등을 회복했다. 또 악비는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에서 불과 40여리 떨어진 주선진까지 점령했다. 이 때 금나라 대장 올출은 여러번 패전하자 개봉을 버리고 퇴각하려고 했으나, 한 문관의 만류로 개봉을 끝까지 수비한다. 그 문관은 올술의 말고삐를 잡으며 "예로부터 간신이 조정에서 전횡하면 외지에서 아무리 능력 있는 장군도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곧 송나라 내부에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올술은 문관의 말을 들었다.

악비는 원래 을 좋아했지만 전쟁시에는 이를 금했다. 그러나 금나라 수도 근처의 황룡부까지 진격하면 병사들에게 거나하게 먹자고 약속하고 다음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악비의 주전론은 금과 화친해야한다는 주화파 재상 진회와 여러차례 마찰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는데, 북송이 멸망한 뒤 북쪽에 있던 한족들은 여진족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남송인의 일부는 여진족과 싸워 국토를 회복해야한다는 의견이 들끓었으며 악비는 그 주전파의 대표격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송황제 고종의 마음도 진회쪽에 더 기울어져 있던 터라 그를 12번이나 불러 소환시키고 악비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로 감옥에서 처형당하고 만다. 죽기 전에 유언으로 "나의 결백한 마음은 하늘의 태양처럼 밝을 것이다."라 하였다 한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는데, 일설에는 살가죽을 벗겨 죽였다고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독살 당했을 것으로 본다.

이때 악비의 전우이자 또다른 주전파인 한세충이 "악비의 죄상이 무엇입니까?"라며 따지자 진회"아마 있을지도 모르오"(막수유, 莫須有)라는 궁색한 대답을 했고, 이에 기가 막힌 한세충은 "고작 그 세 글자로 천하가 납득하겠소이까?!"라며 한탄했다 한다.

3. 악비의 무덤

악비의 시체를 진회가 훼손할 것을 염려한 옥지기가 시신을 자신의 집에 있는 나무 밑에 묻었고, 자신이 죽을 무렵 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후에 악비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 효종때 악비의 묘는 크게 지어졌고 1204년 과거 고종때 있던 일을 재평가하여 악비를 악왕(鄂王)으로 추봉하고 커다란 동상도 만들어지게 되어 무덤은 악왕묘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매국노 진회는 물론 그 부인 왕씨, 묵기설[2], 장준[3]과 함께 무릎 꿇고 있는 동상이 만들어져 악비 동상 앞에 놓이게 된다.

참고로 아내의 동상까지 만들어진 것은, 진회가 악비를 죽일 죄명을 찾지 못해서 고민할 때, 아내의 조언으로 묻지마 처형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4]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도 부부에게 침을 많이 뱉어서 지금 악왕묘를 가보면 동상에 침을 뱉지 말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근데 사람들이 아직도 싫어하는지 침이나 쓰레기 투척은 예사고 오물 투척도 툭하면 일어난다고 한다.
파일:external/yaplog.jp/dsc00076_p.jpg
침을 뱉지 마시오

초기에는 이러한 사태로 오물이 넘치자 현장에서 관리할 수 있는 공안들을 배치했는데 정작 그 공안들이 더 적극적으로 오물을 투척하거나 심지어 경비용으로 준 총으로 내려치는 등의 문제가 있어 현재는 상시로 공안을 배치하지 않고 있으며 적발되더라도 공안이 오물 투척을 한 사람을 폭력을 안 쓰고 팔짱 끼고 끌고 가는(...) 수준에서 그친다고 한다. 하지만 악왕묘 역시 문화혁명의 마수는 피해가지 못해서 홍위병들이 악비의 묘를 파헤치고 유골을 불로 태워 재로 만들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왜 한족의 영웅을..

4.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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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을 실시하면서 여진족을 포함한 소수민족을 끌어안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악비에 대한 찬양은 좀 사그라들었다. 이를테면 교과서 등에서 악비를 가리키는 '한족의 영웅' 등의 표현을, '중국의 영웅' 등으로 소수민족들을 고려한 표현으로 바꾸는 식이다.

한편, 학계에서는 악비의 전공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악비의 전공의 상당수는 송이나 금의 공식 기록이 아닌 악비 후손들이 쓴 행장에 남아있는데, 이게 교차검증이 안 되는데다가 몇백 명의 보병으로 몇만 명의 기병을 몰살시켰다는 식의 황당한 전과가 많아[5][6]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야사가 아닌 정사인 송사 악비전을 봐도 세간에 흔히 알려진 수준으로 큰 전공들이 기록되어 있기는 한데, 문젠 이 기록들의 근거가 상술된 악비의 손자인 악가의 행장을 주 자료(...)로 하여 저술했기 때문에 그대로 믿긴 힘들다는 평이 나온다.

실제 금사(金史)를 보면 악비가 패한 기록 역시 여럿 나오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송사 악비전은 걸러봐야 한다는 분위기. 문제는 금사를 가지고 송사 악비전을 검증하자니 금사 또한 송사만큼이나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비판받는(...) 사서[7]라 악비를 까내리려고 일부러 저런 기록을 남겼다는 주장도 있는 등 사서로만 악비의 실제 행적을 온전히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긴 하다. 다만 그간 악비의 명성에 묻혀 당시 전공을 세운 종택[8] 등 다른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가려진 부분은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악비의 처세술 또한 좋지않다고 지적받는데, 그는 평소 우직한 성격답게 송고종의 어그로를 끄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데, 바로 금군에게 함락 직전이었던 임안과 송고종을 구한 후 악비는 송고종에게 황태자 책봉을 건의한 것이다. 악비 입장에선 국가의 후계 구도를 든든히 하자는 의도였을지 모르나, 송고종 입장에선 그야말로 위세등등해진 군벌 세력이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어그로로 보였을 수도 있다. 때문인지 이후 송고종은 악비를 견제하고자 주화론을 주장한 하필이면 진회를 지지한다.[9]

실제로 말 그대로 정치에는 까막눈이었던 악비는 재상 이강을 비난했던 흑역사도 있었다. 이강이 어떤 인물이었냐 하면, 금나라가 북송을 침공할 때 일개 문관의 신분으로 개봉 수성전을 지휘하여 격퇴시켰던 구국의 영웅이며, 그 능력과 명성 때문에 고종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싫어하면서도 민심 수습 차원에서 그를 재상으로 기용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인물을 황잠선, 왕백언 같은 주화파[10]와 동일하게 취급하며 비난했으니 제대로 팀킬.

현대 들어선 많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악비의 시《만강홍》(滿江紅)이 명나라 시대의 위작(...)이라는 판정도 받았으나 지금까지도 진위 여부에 대해 많은 견해가 있으며 위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찌됐건간에 중국 학계에서 악비를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있는 덕분인지 반사이익으로 그의 정적이었던 악왕묘의 진회상은 수백년만에 처음으로 일어서게 되었다(...). 일어나는게 더 힘들거 같은데 하지만 악비는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고, 악비를 모함했던 진회도 어느 정도 재평가가 일어나긴 하지만, 그건 '얼마나 나쁜 놈이었나'의 문제이지 '나쁜 놈이었나 좋은 놈이었나'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나쁜 놈 중국 네티즌들 일각에선 '진회를 (중화)민족 통일의 선구자로 봐야 한다'는 어그로주장도 나온다는데, 아무리 현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을 끌어안아야 되는 입장이라곤 하지만, 대중들에게 뿌리 박힌 인식까지 뒤엎는다는 건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고로 이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기보다는, 소수민족 혐오자 혹은 트롤러들이 퍼뜨리는 루머나 비아냥에 가깝다고 봐야 할듯.

다만 위의 문단은 중국의 역사인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중국의 현재 공식 입장은 청나라 시절 최대 강역 전부가 원래 자기들 영토라는 것이며, 그 안에 사는 모든 민족은 서로 다른 민족이 아니라 모두 같은 중화민족이라는 요상한 주장이다. 따라서 우리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동북공정이나 역사 게임에 한족 왕조 시절에는 영토도 아니었던 티베트 지역이 역사적 사실대로 독립국으로 나온다는 이유로 발매금지를 당하는 이상한 상황이 위의 주장으로 설명된다. 여하튼 정상적인 국가라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중국은 중화민족이라는 괴상망측한 개념을 들고 나와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악비를 띄워주면 여진족의 후신인 만주족들이 불만을 품을 수 있고 나아가 동북부 지역 영유권도 흔들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에 악비를 어느정도 폄하하면서 진회를 재평가하는 부분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족을 수도없이 학살한 칭기즈 칸이나 쿠빌라이 칸이 ‘중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11]유교가 지배적이던 전근대 시절에는 빼도박도 못하는 폭군이었던 진시황이 위대한 명군으로 재평가된 것과 같다. 또 원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이데올로기에 역사를 끼워맞추는 경향이 있다. 북한에서는 이순신을 나라를 지키기는 했지만 봉건 왕조에 충성한 민중의 배신자라고 주장하며 한글김일성이 창제했다고 가르친다. 절대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처럼 상식적으로 역사를 판단하고 기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5. 기타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이지란/퉁두란, 청나라의 시조 누르하치(!)가 그의 먼 직계후손이라는 카더라 주장이 있다. 족보상으로 따지면 악비 쪽이 한참 조상님이 된다고. 청해 이씨 족보에서는 남송의 명장 악비가 간신 진회의 참소로 죽게 되자 악비의 다섯째 아들인 악정(岳霆)이 화를 피해 북쪽으로 올라가 여진족 행세를 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주장을 따르면 이지란은 악비의 7대손이 된다. 물론 주장일 뿐이긴 하지만

또한 그 이지란의 여진족 사촌의 후손이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한 누르하치라고 한다. 정확히는 이지란의 출신이 여진족 중에서도 건주여진 출신인데, 종형제 중 하나가 같은 부족의 맹가첩목아(猛哥帖木耳)이고, 그의 6대손이 누르하치. 본격 동북아시아를 호령한 명문가 클래스. 하지만 머나먼 직계 후손 누르하치가 세운 나라가 금나라의 명목상 후신인 후금, 즉 청나라가 되고 말았으니(...) 영원히 고통받는 악비. 실제 청나라에서는 알게 모르게 악비 신앙을 탄압하고 그 대신 관우를 밀어줬다고 한다. 자기 조상 까는 청 황실 크라스

다만 정말 악비의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은 온갖 영웅들의 후손을 자처하기도 했으므로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악씨와 이씨간의 공식적인 교류도 하는 등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어차피 모든 인간은 태초에 한 형제~

등 뒤에는 젊었을 때 새긴 정충보국(精忠報國: 진심으로 충성해 나라에 보답한다)이라는 문신이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문신을 어머니가 새겼다고도 하나, 진위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름이 같아서인지 야사에서는 장의 환생(...)이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관우 형님!

6. 대중문화에서

김용무협 소설 중에서 남송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사조영웅전》,《신조협려》에는 악비가 쓴 병법서인 무목유서가 등장한다. 사조영웅전 본편에서는 주로 무목유서 안에 수록된 무공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며 곽정이 이것을 익히게 되는데, 후일 신조협려에서 중년이 된 곽정이 양양성을 몽고군으로부터 수호할 때는 곽정이 왕년에 무목유서로 병법을 공부했다는 말이 나온다. 일개 무림인이었고 딱히 두뇌형 캐릭터도 아니었던 곽정을 의병 비슷한 신분이긴 하지만 국가수호의 명장으로 키워낸 것이 악비가 남긴 병법서라는 떡밥.

악비를 섬기는 사당은 악왕묘라고 한다. 그런데 악비보다 약간 이전 시대를 다룬 수호전에서 악왕묘가 나온다. 후수호전에서 악비가 특별출연했다(덤으로 한세충도). 시간을 달리는 악비[12]

무협소설에서는 이 악비의 후손들이 세웠다는 무림세가산동악가가 나오기도 한다.

민중의 사랑을 받는 악비인 만큼 야사도 몇가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는 악비의 성품을 보여준다.

아직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청년 시절의 악비가 어느 부자집에 하룻밤 신세를 졌는데 그 집은 전염병으로 아리따운 딸과 하인들만 남고 가족들이 모두 죽은 상태였다. 딸이 울며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을 아내로 거둬달라 청했는데 올곧은 악비는 부모의 허락도 없는데 함부로 홀로 남은 여성을 아내로 거둘수 없다며 거절하고 대신 시신만 수습하여 극진하게 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딸이 악비와 작별인사를 하며 말하길, '선비님은 죽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 시신을 거두고 제를 올려주셨으니 훗날 그 이름이 빛날 충신이 되실것입니다. 하지만 산 사람인 저의 청을 거절하시고 거둬주시지 않으니 그 끝이 좋지 못하실듯 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악비가 떠나자 자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과연 악비는 남송의 충신으로 길이 남았지만 결국 모함을 받아 죽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야사가 있다.[13] 미소녀의 청을 거절하다니 악비가 잘못했네

만화 소녀침경(화타위전)에서는 송고종에게 북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진회가 이를 반대하자 황궁에서 퇴청한 후에 진회와 신경전을 벌이는데, 진회가 금나라에게 이길 수 없고 금나라에 있는 송휘종, 송흠종을 죽일 것이라 하자 분노하고 다음날에 9족과 함께 처형된다.

목만 남은 채로 살아있다가 엔란(앵란)으로부터 죽은 자를 3일간 살릴 수 있는 금황구침을 맞고 좀비인 상태에서 살아나면서 엔란과 함께 나머지 금황구침 8개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한세충과 함께 메이의 조부, 메이의 숙조부로부터 의학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의술, 명성을 흠모해 속가제자가 되었고 진회와도 동문이라고 한다.

청나라 시대 소설 설악전전(説岳全傳)을 각색하[14]여 만든 사극 정충악비가 있다.

소설로는 위에서 언급한 설악전전이 제일 유명하지만 퀼리티는 기대하지 말자. 스토리 라인은 판타지 급으로 아주 역사와는 거리가 멀고[15] 파워 밸런스도 엉망이라 전쟁의 승부는 우주급 맹장이 아니면 법술을 쓰는 종교인들이 좌우지한다. 그래도 800근짜리 무기가 날아다니고 혼자서 백만대군을 쓸어버리는 수당 관련 소설보다는 낫다.

6.1.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062.jpg
삼국지 12, 13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대무장으로 나온다. 일러스트도 39세의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미청년으로 나왔다. 물론 삼국지 한정으로 미래무장이다. 능력치는 정치력 빼고 삼국지 무장들과 고대무장들, 심지어 삼국지 시리즈에 잠시 등장했던 노부나가의 야망의 무장들보다 능력치가 매우 좋다. 상술되어있듯 악비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이 게임 속에선 대놓고 먼치킨형 능력치를 보여준다. 11편에서부터 지력이 78으로 내려가나 12편에서 80대 중반으로 늘어나며 거의 완전체가 되었다. 그리고 12편부터 미래무장(고숙, 양대안, 진경지, 위지공, 진경, 이세적, 진양옥, 정성공)이 대거 삭제가 되었는데 악비만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95/무력 91/지력 87/정치력 56. 보병, 기병, 궁병 관련 전법은 각각 2개 이상에 궁기병, 지식, 모략, 책략 관련 병법은 1개인 완전체 무장이다. 의리와 지력이 높으니 이간지랄과 허보도 안 통한다.

삼국지 10에서는 지력 80, 정치력 37으로 내려가고 매력 97이 추가되었다. 특기 수는 14개이며 주로 장합조운과 비슷한 편이다.

삼국지11에서는 통솔력 95/무력 91/지력 78/정치력 31/매력 98의 능력치이다. 지력이 70대 후반으로 너프됐지만 특기가 통찰이기 때문에 계략이 먹히지 않는다. 말그대로 개사기 무장이다. 다만 병종적성은 창적성 S 외에는 병기 빼고 올A란 점으로 밸런스가 어느 정도 맞는 편이다. 아무리 창병적성이 S지만 창장이 아니면 거의 방어력이 약한 부대에 불과하고, 가능한다면 지도를 가진 무장과 조합하여 병과적성(극병, 노병, 기병)를 키워주는 게 좋다. 친애무장은 관우강유. 혐오무장은 초주이다.

삼국지 12에서도 젊은 일러스트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전작보다 상승하여 통솔력 99/무력 91/지력 86/정치력 31이고 병종은 기병. 전법은 의용병으로 안 그래도 기병 자체가 완전체 병종이라 무시무시한 성능을 자랑한다. 또 내정 특기는 연병, 병심, 감시, 보수, 일기에 신무장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호걸과 귀모 특기를 동시에 가진 무장이다. 게다가 기병이라 신속도 있다. 매력 삭제로 인한 보상책인지 지력이 꽤 높아져서 군사 특기를 얻으면 군사로 사용해도 좋다.

삼국지 13에서도 등장한다. 능력치는 12편 시절과 마찬가지로 통솔력 99, 무력 91, 지력 86, 정치 31. 특기는 훈련 9, 순찰 9, 위풍 7, 신속 8, 분전 9, 연전 9, 공성 5, 수영 7, 일기 8, 호걸 8, 귀모 4에 병과적성은 창병이 S이며 기병과 궁병이 A다. 전법은 사자분진이며 중신특성은 창술조련.


[1] 1178년 송효종이 무목(武穆)이란 시호를 내렸는데, 1225년 송이종이 시호를 충무(忠武)라고 바꾸었다. 참고로 중국 인물 중 충무(공/후)란 시호를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제갈량곽자의 등이 있다.[2] 万俟卨, 여기서 万俟는 만사가 아닌 墨棋(mo qi)와 같은 발음으로 묵기라 읽는다. 진회를 도와준 간신. 후에 일을 잘못해 쫒겨나 유배생활을 했다가 진회 사후 재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고향에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묵기라는 성씨를 모두 개성(改姓)해버렸고 그 성씨는 현존하지 않는다.[3] 원래 항전파였으나 나중에 악비를 배신했다.[4] 때문인지 진회와 왕씨 사이에서는 자손이 없었다. 나름의 업보.[5] 물론 그렇지 않은 전공도 있다. 예컨데 송사 종택전을 보면 악비가 국법을 범해 벌을 받게 되었을때 종택이 악비가 장수의 재목임을 알아보고 기병 500명을 주었는데 악비가 금나라 군사들을 크게 패퇴시키니 종택이 '너의 지용과 재예는 옛날의 훌륭한 장수라도 능가할 수 없겠다'며 칭찬하는 대목이 있다.[6] 사실 송사의 열전을 보면 악비 뺨치게 과장된 전공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예시로 든 종택의 경우도 말로서 도적 70만명(...)을 이끄는 도적의 수괴를 항복시켰다든가 하는 기록이 나오고 한세충의 경우에는 1천명으로 도적 수만명을 상대해서 이겼다든가...하는 전공이 있다.[7] 그래도 원나라 때 집필된 송사, 금사, 요사가운데선 금사를 더 쳐주는 편이긴 하다.[8] 宗澤. 1059 ~ 1128. 북송 말의 장군으로, 일명 "강을 건너라!"("過河! 過河!")란 유언으로 유명하다. 남송군을 이끌며 금의 공격을 수없이 막아낸 장군이다. 북벌에 대한 의지를 죽을때까지 버린적이 없던터라 틈만 나면 고종에게 북벌을 간언했으나 고종과 문신들이 북벌은 무리임을 말하며 건의가 항상 묵살당했다. 다나카 요시키창룡전에서 해당 고사를 얘기하면서 "제갈량과 더불어 '한 사람의 죽음에 전군이 통곡한' 사례"라며 극찬한 바 있다. 악비 또한 종택에게 발탁받아 휘하에서 활동한 바 있다.[9] 사실 애초에 고종 자신이 주화론자이기도 했다. 상기된 것처럼 악비의 전공이 어느정도 부풀려진 것을 감안하면, 고종 입장에선 송의 멸망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금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꺼림칙하긴 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고종의 선대였던 휘종이나 흠종이 금에 뒤통수 치다가 결국 포로로 끌려가고, 고종의 후계자였던 효종 역시 북벌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점에서도 어느정도 드러난다. 고종 자신도 황제가 되기 전 잠시지만 금에 포로로 갔던 적이 있었고.[10] 당시 인식에서 영토를 빼앗고 굴욕을 준 철천지원수인 금과 화의하겠다는 주화파는 매국노와 거의 동등한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11] 분명 몽골인들이지만 해당 국가가 현재 중국 영토에 아무튼 한다리 걸쳐 있으면 옛 중국이고 중국인이라고 억지를 부리기 때문이다.[12] 단, 여기서 원문 언급은 악왕묘가 아닌 악묘로 악비가 아닌 오악(태산, 화산, 숭산, 형산, 항산)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다.[13] 여담이지만, 임진왜란 초기 탄금대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신립과 관련해서도 이 비슷한 야사가 전한다.[14] ...였다고는 하나 소설 자체에 병맛스런 전개가 많은편이라 오히려 정사를 뼈대로 하고 적당한 오리지널 요소와 소설의 요소들을 아주 약간 섞었다고 하는게 다 타당하다.[15] 칭기즈 칸이 타임워프로 한세충과 대결을 벌리는데 신분 설정이 훗날 황제가 될 쿠빌라이 칸의 아버지라서 쉴드가 자동으로 쳐지는가 하면, 악비가 죽자 금나라가 침공하는데 악비의 아들의 반격으로 금나라 본토까지 쳐들어가서 항복을 받아낸다는 등등 초월적인 전개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