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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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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노자(老子/라오쯔), 태상노군(太上老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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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실존에 대한 논의
3. 서적 노자(老子)4. 가족5. 평가6. 여담7. 관련 고사성어8. 둘러보기

1. 개요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도덕경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고 할 수 있으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며, 이름을 이름 붙일 수 있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도덕경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제자백가의 시초격인 인물로서, 당대 최초로 사람이 지향해야 하는 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道)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인물이다. 대표 저서로는《도덕경[4]이 있으며, 이 때문에 도가의 창시자로 불린다. 후한 말기 이후 종교화된 도교에서는 노자를 신격화하여 태상노군이라고 부른다.

2. 생애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매우 부족하여, 여러 전설이 전해져오고 그런 연유로 노자로 추정되는 고대 인물들도 많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 뿐이다. 사기의 열전의 <노자한비열전> 기록에 의하면, 노자는 초나라의 고현(苦縣) 여향(厲鄉) 곡인리(曲仁里) 출신으로, 춘추시대 주나라에서 왕립 도서관장, 또는 왕실 문서고 관리관 비슷한 직책을 지냈다고 한다.[5]

공자가 주나라에 잠깐 머무를 때, 노자에게 찾아가 예()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노자와 공자는 서로에 대한 평가를 남겼는데, 이게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난다. 노자는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며 비판했다고 한다.
"그대가 말하는 사람들은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어버리고 단지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또한 군자는 그 때를 만나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못 만나면 이리저리 날려 다니는 쑥대처럼 굴러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오. 내가 듣기에 뛰어난 장사꾼은 물건을 깊이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보이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간직하고 있으나 외모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들었소. 그대의 교만한 기색과 탐욕, 태도를 꾸미는 것과 지나친 욕망을 버리도록 하시오. 그런 것들은 모두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말할 것은 단지 이것뿐이오."
공자는 노자를 만난 후 돌아와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구절은 대체로 공자가 노자를 두고 자신이 가진 제한된 인식을 초월하는 식견을 가진 인물로서 높이 평가한 대목으로 해석된다.[6]
"새가 잘 날아 다닌다는 것을 나는 알고, 고기가 잘 헤엄치는 줄 알며, 짐승이 잘 달리는 줄 안다.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줄로 잡을 수 있으며, 날아다니는 것은 화살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에 이르러서는 나는 능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노자를 만나보니, 그는 용과 같았다."
노자는 주나라에서 오래 거주하다가, 주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그곳을 떠났다. 노자가 관문[7]에 이르자, 관문의 책임자인 윤희(尹喜)가[8] "선생님께서 앞으로 은거하시려 하니, 귀찮으시더라도 저를 위해 저서를 남겨주십시오."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노자가 윤희에게 5000자로 된 책을 전수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이다.

노자는 관문 밖으로 나가서 종적이 묘연해졌고, 그 후로 아무도 그의 최후를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대체로 노자는 160여 살 혹은 200여 살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노자가 도를 닦아 수명을 양생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에 노자의 실존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다면서, 몇가지 설을 소개했다. 먼저 초나라 사람이었던 노래자(老萊子)가 노자라는 일각의 주장을 언급하면서, "15편의 저서를 남기어 도가 사상의 효용을 논하였으며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기록해 두었다. 또는 주나라의 인물인 태사담(太史儋)[9]이라는 사람이 노자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하면서, 그가 진(秦)헌공을 만나서 "진나라와 주나라가 통합되었다가 500년 후에 나뉘어지고, 갈라진 지 70년 후에 패왕이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사마천은 이러한 일련의 주장을 모두 나열하면서, "세상에는 그 진위 여부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고 결론 짓는다.

2.1. 실존에 대한 논의

사마천이 사기 열전에서 서술한 것처럼, 노자의 실존은 매우 불분명하다. 노자의 정체에 대한 논의는 사마천의 사기가 세상에 알려진 이래 수 천년 동안 있어왔으나, 뚜렷한 결론은 없다. 가장 핵심적인 논쟁은 노자와 태사담, 노래자와의 관계이다. 사마천 본인 조차도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써놓았을 정도이다. 어쨌든 이러한 불분명한 기록 때문에 노자가 실체가 있는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고, 가공의 인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심지어 도덕경이라는 저작물이 한참 후대인 한나라 시대에 편집되고 창작된 텍스트라는 주장도 학계에서 꽤 오랫동안 강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1993년에 후베이성에서 기원전 4세기 중반~기원전 3세기 초 시기로 추정되는 초나라 무덤에서 노자 도덕경의 사본인 '곽점본' 죽간이 발굴되면서, 일단 해당 주장은 완전히 기각되었다.

어쨌든 노자를 실존 인물로, 또한 도덕경도 노자 및 그 후대의 여러 인물들이 편집하고 변형시킨 텍스트로 보는 의견도 있고, 반대로 도덕경은 동시대 다른 문헌인 논어 등과 달리 '텍스트의 중심 축'이 없기 때문에 노자를 실존 인물로 볼 수 없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한편 중국 의고학자 고힐강은 '노자는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저자명이며, 도덕경은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으며, 역사학자 곽말약은 아예 '도덕경은 관윤(關尹)이 기록한 텍스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공자와 대담한 사람은 노자이지만 관윤(關尹)을 위해 책을 저술한 사람은 태사담이라는 주장, 노자라는 사람과 도덕경 텍스트는 완전히 별개라는 주장, 노자, 태사담, 노래자 등이 모두 도덕경 텍스트 편집에 참여하였다는 주장 등 여러 의견이 있다.

일단 사기 열전에 기록된 바와 같이, 태사담(太史儋), 노래자(老萊子)와 관련하여 있어왔던 노자 실존에 대한 일련의 주장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노자와 태사담(太史儋)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의 근거[10]
    • 노자의 자인 '담(聃)'과 태사담의 이름인 '담(儋)'의 음(音)이 같고, 한자 사용의 관습상 음이 같은 글자는 얼마든지 통용할 수 있다.
    • 노자는 주(周)나라의 수장실지사(守藏室之史)였고, 태사담은 주나라의 태사(太史)였는데,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주나라 왕실의 사관(史官)이었다.
    • 노자는 함곡관(函谷關)을 넘어 서쪽으로 갔다는 전설이 있고, 태사담은 진(秦)나라에 가서 헌공(獻公)을 만났는데, 이는 동일하게 서쪽으로 이동한 일이다.
  • '노자와 태사담(太史儋)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의 근거[11]
    • 노자는 공자와 거의 같은 시기인 춘추시대 말기 인물인 반면, 태사담이 등장한 시기는 공자 사후 129년이 흐른 뒤이므로, 이는 기원전 350년경인 전국시대 중엽이다. 즉, 두 사람은 약 200년의 시간적 괴리가 있다.
    • 노자의 사상을 이은 장자의 생몰 연대는 태사담이 활동하던 시기와 겹친다. 그런데 장자의 텍스트를 보면, 노자의 실존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노자와 태사담은 별개의 인물이다. 특히 장자의 직접적 저작으로 알려진 <내편>을 보면, 노자의 실존에 대한 내용이 여러번 나온다. 만약 노자와 태사담이 동일 인물이거나, 허구의 인물이라면, 장자가 이를 밝혀 놓았을 것이다.
    • 특히 장자 <내편> 양생주에는 노자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장자가 노자를 태사담과 구분된, 엄연한 실존 인물로 보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 사마천은 노자의 일생에 대해서는 열전에 따로 기록해 놓았지만, 태사담에 대해서는 진나라와 주나라의 운명에 대해 예언했던 것만 사기 이곳저곳에 여러번 인용해 놓았을 뿐, 그의 신상이나 일생에 대한 다른 정보는 기록해 놓지 않았다.
  • '노자와 노래자(老萊子)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의 근거[12]
    • 노자와 노래자는 모두 초(楚)나라 사람이며, 공자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 노래자가 저술한 책 15편은 도가 철학에 대한 것이다.
    • 노자(老子)의 ''는 성(姓)이 아니라 '오래 살았다'는 뜻이다. 즉, '노자'는 '나이 많은 선생님'이라는 존칭으로써,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닐 수 있다.
    • 초나라에서는 '李(이)'자를 쓸 때 위쪽의 '(나무 목)' 대신 '(올 래)'를 썼는데, 이것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萊(명아주 래)' 자로 굳어진 것이다. 즉, 고문자학 관점에서 볼 때, '노래자(老萊子)'는 '노이자(老李子)'가 초나라 방언으로 표기된 또 다른 이름이다.[13]
    • 장자, 전국책 등의 문헌에서 공자가 노래자에게 가르침을 받은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 사기의 <중니제자열전>에 보면, '공자가 주나라의 노자와 초나라의 노래자를 존경했다'는 서술이 나온다.
  • '노자와 노래자(老萊子)는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의 근거[14]
    • 사기 열전 내용을 보면, 노자는 도(道)와 덕(德)의 뜻(道德之意)을 설명한 5000자의 책을 지었지만, 노래자는 도가의 쓰임(道家之用)을 설명한 15편의 책을 서술했다고 되어있다. 두 텍스트의 분량과 주제는 완전히 다르다.
    • 노자는 주(周)나라 중앙 정부의 고위 관료인 사관(史官)으로 일하던 사람이지만, 노래자는 초나라의 은자(隱者)로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 제왕으로부터 수차례 관직을 권유받았으나 이를 모두 사양하고 몽산(蒙山)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사람이다.
    • 노래자는 나이 일흔 살에도 효(孝)를 실천하기 위해 늙은 어버이 앞에서 아이의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재롱을 부려 희채오친(戱綵娛親)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긴 주인공인데, 이는 노자의 철학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이다.

한편, 위에 언급된 대로 1993년에 기원전 4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초나라 무덤에서 노자 도덕경 사본인 '곽점본' 죽간이 발굴되면서 논의의 새로운 국면이 발생하였다. 이 곽점본 죽간은 기존에 알려져 있던 도덕경 판본에 비해 약 40% 분량에 불과한 2000자 정도였는데, 이는 사마천이 사기 열전에서 표현한 '5000자' 텍스트와는 달랐던 것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가설이 생겼다. 이를테면, 노자와 태사담이 각자의 텍스트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즉 노자가 도덕경의 원형이 되는 2000자 텍스트를 지었고, 태사담이 노자의 텍스트를 이어 받아 5000자 텍스트를 지었으며,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파악하고 있던 도덕경 텍스트는 바로 태사담이 노자의 텍스트를 개정한 5000자 버전이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통용되어 온 바로 그 도덕경이라는 것이다.[15]

3. 서적 노자(老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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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

당나라 황실이 노자의 후손을 자처하고 그의 부모와 노자 본인을 황제(皇帝)로 추존함으로서 본인의 가문도 황가(皇家)가 되었다.
  • 부황(父皇): 선천태상황(先天太上皇) 이경(李敬) - 당현종 추존.
  • 모후(母后): 선천태후(先天太后) 익수씨(益壽氏) - 당현종 추존.
  • 아내: 불명
    • 황자: 이종(李宗)
    • 황손: 이주(李注)
    • 황증손: 이궁(李宮)
      • 잉손: 이가(李假) - 이궁의 현손(4세손).
      • 운손: 이해(李解) - 이가의 아들.

5. 평가

노자의 사상은 '억지로 하려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하게 놔두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마음가짐과 '이름을 알리려하지 말고 혹시라도 명성을 얻더라도 위상이 커질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된다'는 공수신퇴(功遂身退)의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명성이나 재물을 가득 채우면 이후에 잃어버릴 일만 남게 된다고 하여 '비어 있음'을 강조하였고, 모두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미추(美醜)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인데 이를 굳이 구분해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하였다. 노자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비웃을 것이라 하였는데, 노자는 도리어 '뛰어난 재주는 오히려 서툴게 보인다'고 말하면서, 비웃음을 받지않으면 도(道)라 하기 부족하다고 하였다.

또한 노자는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고 말한다. (上善若水) 물은 조건없이 모습을 바꾸며 손쉽게 적응한다. 또한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데로 흘러가 거기에 머물며, 약하고 순할지언정 공격해도 꿈쩍 않는다. 물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다. 이렇기에 물을 소중히하고 존중하며 물처럼 살면 인생 전체의 행복이 크다고 주장했다.

왕필본으로 대표되는 《노자》는 일반적으로 반 유가적이면서 역설적인 격언을 담은 문헌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는 특히 《장자》가 갖는 성격과 연동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출토 문헌은 그러한 이해에 대하여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가령 왕필본의 "絶聖棄智, 民利百倍(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로움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란 문장이 "絶智棄辯, 民利百倍(지식을 끊고 변론함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라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으며[16], 왕필본의 "國家昏亂, 有忠臣(국가가 혼란해져야 충신이 생긴다)"란 문장도 "邦家昏亂,安有貞臣(나라가 혼란해지면 어디에 바른 신하가 있겠는가)"으로 바뀌어 있어 반유교적인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17] 오늘날 이러한 문제는 학자들 중에서 치열하게 토론되고 있는 중이나, 지금까지 이해했던 노자의 모습은 최초의 노자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기초하여 《노자》의 사상에 대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언어, 개념, 인식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강함, 단단함, 높음, 그리고 채움에 대비하여 약함, 부드러움, 낮음, 비움, 그리고 겸손함을 강조한다. 억지로 그리고 작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함을 반대하고 명예와 이익에 대한 추구 그리고 지나친 욕망 등을 비판하고,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하여 일이 자발적 또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끔 함을 주장한다. 통치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국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가 되니, 통치자는 헛된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명령과 법률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또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맞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오래 사는 것이라는 문장도 있다. 이렇게 통치자와 관련된 구절이나 유, 무에 대한 구절들에 주목하여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왕필 등이고, 뒤의 '오래 사는 것'(장생불사)에 주목하여 양생론적, 종교적으로 보는 쪽이 하상공 그리고 도교의 노자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입장이다. 이밖에 노자의 정치 철학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다. 이는 나라는 작게 하고 백성은 적게 하라는 말로써, 노자는 원시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긴다.

간과되기 쉬운 사실은 노자의 사상은 유가법가와는 확연히 다른 수단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치자가 지향해야 할 바를 논한다는 점이다. 노자 사상의 이른바 양생론적 측면을 주목하는 입장에서는 노자 사상의 이러한 통치 규범적 측면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강했으며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도가적이라고 묶이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도덕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18]과 장자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 등을 종합하여 노자의 상대성, 자연, 부드러움 등에 대한 태도가 결국 부드러운 형태의 통치술을 논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라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특히 한비자의 해로 부분이나 황로학파 등은 노자가 유가, 법가, 묵가 등보다도 더 섬세한 고도의 통치술을 이야기한다고 보았으며 이 때문에 후대의 왕필본에서는 이게 권모술수에 대한 서술인지, 자연적 원리에 대한 서술인지 애매하게 읽히는 부분들이 나온다. 실제로 이렇게 애매한 몇몇 부분들은 죽간본에는 없다. 다만, 죽간본에 있는 부분들만 놓고 봐도 유가와는 대비되는 통치 기술서로 읽을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 이런 면을 보면 왜 한비자가 노자에 주석을 달았고 병법가나 무술가들이 은근히 노자에서 영감을 얻거나 비유를 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전한 초기, 특히 한문제는 '무위지치의 도'라고 해서 노장사상의 이념으로 국가를 통치했고 그의 부인인 효문황후 때문에 한무제 초기까지도 통치이념으로 남았다. 억지로 의도를 내비치면 상대가 반발할 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시의적절한 때에 몇 수 앞을 읽어 행동하는 교활한 통치자나 전략가야말로 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일 수 있다.

병법서에서도 거국적인 외교술을 다룬다. 격투기나 무기술에서도 음양수라고 해서, 실로 허를 치고, 허로 실을 치며, 허를 드러낸다. 도덕경을 이러한 맥락으로 읽을 가능성도 충분이 있음이 도덕경의 묘미이다. 당연하지만 말 그대로의 자연에 가까운 사회를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평하는 학자들은 노자를 '권모술수를 담은 책'이라 부름을 싫어한다. 둘 다 노자를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읽은 관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서들과는 달리 시적 운율이 중시되어 상당히 많은 구절에 압운이 되어 있고, 역사상의 고유 명사가 단 하나도 출현하지 않는다. 저작 연대나 작자를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6. 여담

  • 일부 학자들은 노자가 실존 인물이라고 보긴 어려우며, 도덕경 또한 주나라 왕실문서에 전해지는 '처세술 모음집'이라고 주장한다.[19]
  • 실제 도덕경 텍스트를 보면, 지배자 계급이나 지식인 계층을 위한 지침서의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20] 도덕경에서 드러난 노자의 사상은 '백성들을 시켜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말라'는 '무위자연'[21]과, '권력과 재산을 더 가지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지 말라'는 '공수신퇴'[22]로 요약된다. 이는 《노자 도덕경》이 백성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라, 권력자의 입장에서 쓴 처세술이라는 증거이다. 다시 말해, '남을 가득 채우려고 하지도 말고, 나를 가득 채우려고 하지도 말아라'는 뜻이며,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자신의 힘을 '매번' 100% 쓰지는 말라는 의미가 된다.[23] 즉, 100% 수준의 인생의 꼭대기(peak)를 만들어 놓으면 몸이 위태로워지고 앞으로 내려갈 일밖에 없으므로, 7~80%의 힘으로 오래가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참된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을 잡고 부와 명예를 얻었다 싶으면 자리에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고, 가진 게 많다면 주변에 적당히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고 노자는 조언한다. 이것이 장자의 텍스트와는 크게 다른 점인데, 노자가 권력의 현명한 운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장자는 반대로 아예 아나키즘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 노자의 사상적 계승자로는 장자열자를 거론한다.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크게 보면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장자는 노자의 주요사상 중 상대주의[24]를 극대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또한 노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바로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이다. 한비자는 노자가 주창한 '천지'와 '자연'의 개념을 국가의 정교한 법률 체계와 같이 규정하였는데, 실제 한비자 텍스트를 보면 노자의 도덕경 텍스트를 매우 상세하게 인용하고 해설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발전시키는 모습이 나타난다.
  • 설화에 따르면 노자가 관령 윤희에게 글을 남겼다고 하지만, 사실 노자는 학문이나 책 자체를 그가 주장하는 도에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보고 아주 몹쓸 것으로 여겼다. 도덕경만 봐도, 이미 책읽고 공부한 '학자'라는 인간들을 평범한 백성들을 상대로 현혹하고 선동이나 하는 자들로 간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하는 '인위'에 맞서 도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은 백성이 무지하고(無知) 바라는 게 없는 것(無欲), 즉 무위라 봤다. 참고로 여기서 무지(無知)는 기존의 서술과 같이 무식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나 작위적인 것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근현대적인 의미의 작위라는 것도 부족한 설명으로, 노자의 '무위'에서 핵심이 되는 관점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 판단할 기준을 두지 않는 것'이다.
  • 노자가 서쪽으로 떠나 인도에 도착해 펼친 가르침이 불교가 되었다는, 이른바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시기에 퍼지기도 했다. 도교의 도사들은 이를 가지고 자신들이 불교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청정법행경》이라는 위경을 지어 공자는 유동 보살(광정 보살)의 환생이고 노자는 가섭 보살의 환생이라는 삼성화현설(三聖化現說)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질 때, 불경을 번역하는 번역가들이 중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교 등을 비롯한 중국의 토착 사상에서 비롯된 용어들을 여럿 차용하여 번역했기 때문이다. 실제 불교가 중국으로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인 오호십육국시대 때 불경을 번역한 쿠마라지바는 직역을 피하고,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용어와 개념을 차용하거나 창작하여 최대한 의역을 하였다.
  • 물론 당연하게도 노자와 석가모니는 서로 사상이 다르다. 노자의 사상은 무위자연과 공수신퇴 등이 핵심인 반면, 석가모니의 사상은 사성제팔정도가 핵심이다. 다만, 불교의 공 사상만이 노자의 사상과 비슷한데, 공(空) 사상은 인도 불교 고유의 사상이기 때문에, 노자와 불교의 선후를 구별하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25]
  • 당나라의 추존 황제이기도 하다. 당나라 때 도교를 숭상한 당나라 황제들은 노자가 같은 씨라는 이유로 조상이라고 윤색했고, 당현종은 노자를 아예 황제로 추숭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를 이용한 패드립도 있었는데, 당태종에게 법림(法琳)이라는 승려[26]가 도교와의 분쟁 문제로 잡혀와서 심문 받다가 '폐하가 노자의 후손이라고 하시는데, 노자의 아버지가 절뚝거리며 귀는 어둡고 눈은 흐리기에 처가 없어, 나이 칠십에 이웃집 노비와 간통하여 노자를 얻었다는 것은 아십니까? 그리고 폐하가 노자의 후손이 아니며 농서 이씨 출신이 아니란 것은 모두가 아는데 왜 사실을 숨기시는 겁니까?' 라고 말하자 당태종이 분노하여 범림을 죽이려다 추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 사마천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노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고 하며, 이때 노자는 공자를 위선자라고 비판했으나, 공자는 오히려 노자를 범접할 수 없는 용같은 존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법가유가도가를 동시에 까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이제이적 이야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한비자의 책을 보면 도가의 처세술을 설명하면서, 유가의 고리타분함을 까는 글들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도가가 당대 제자백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기에 이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 역시도 적지 않다.[27]
  • '도가도비상도명가명비상명'같이 말장난 같이 들릴 수 있는 말을 많이 했는데[28] 그 이유는 당시엔 책이 비쌌기 때문에 말을 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해 말에 운율을 넣었고, 이게 중국어의 특성과 합쳐지며 그 효과가 한층 극대화되었다. 그래서 번역된 노자의 말이 아닌 원문은 문학적으로 매우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며, 한국어로 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도덕경에서 이를 느껴보고 싶다면 한문으로 낭송하며 읽기를 권한다.
  • 중국에서 우주의 만물에 대해 최초로 생각한 사람으로, 그가 발견한 우주의 진리를 (道)라고 이름지었다. 이러한 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도교'라 하며, 그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라고 설명한다.
  • <사기> '신한노장열전'에 따르면 본명은 이이(李耳), 는 담(聃)이다. 도교의 태상노군 전설에도 이씨라고 나온다. 노자(老子)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후 선천태후의 뱃속에서 70년을 태아 상태로 있다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옆 오얏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를 나의 성씨로 해 주시오'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이 오얏나무 '李'(리)가 되고, 이후에 성장하면서 귀가 컸기 때문에 이름은 '耳(귀 이)'자가 되었다. 중국의 설화집인 《태평광기》에 따르면 본명은 이중이(李重耳) 자는 백양(伯陽)으로 초나라 고현 곡인리 사람이라고도 전해진다.
  • 현대 일부 학자들은 노자의 성씨가 노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학자 카오헝(高亨)은 저서 《노자전전증(老子傳箋證)》 에서 춘추시대에는 노씨성이 있었으나 이씨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노자의 본래 성은 노(老)라고 주장했다.노자의 성씨가 李인가 老인가
  •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윤리와 사상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이다.

7. 관련 고사성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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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春秋)
]]
파일:음양.svg 시집: 시경(저자미상)
[[전국시대|
전국(戰國/战国)
]]
파일:음양.svg 초사: 굴원(초사)
[[후한|
후한(後漢/后汉)
]]
파일:음양.svg 서사시: 공작동남비(저자미상)
[[삼국시대(중국)|
삼국(三國/三国)
]]
파일:음양.svg 한시: 조조(단가행) · 조비(전론 · 연가행) · 조식(칠보시 · 낙신부)
· 소설 [[춘추시대|
춘추(春秋)
]]
파일:음양.svg 신화집: 산해경(저자미상)
산문 [[주나라|
주(周)
]]
파일:음양.svg 점복학: 문공(주역)
[[춘추시대|
춘추(春秋)
]]
파일:음양.svg 철학: 노자(이이)(도덕경) · 공구(논어 · 춘추)
파일:음양.svg 병법: 손무(손자병법)
[[전국시대|
전국(戰國/战国)
]]
파일:음양.svg 철학: 자사(중용) · 장주(장자) · 맹가(맹자) · 묵적(묵자) · 순황(순자) · 한비(한비자)
파일:음양.svg 병법: 오기(오자병법)
[[진(영성)|
진(秦)
]]

파일:음양.svg 병법: 황석공 등(육도·삼략)
[[전한|
전한(前漢/前汉)
]]
파일:음양.svg 역사학: 사마천(사기) · 상서(저자미상) · 유향(전국책)
파일:종교표지_유교_검은색.png파일:종교표지_유교_흰색.png 유교: 예기(저자미상)
[[후한|
후한(後漢/后汉)
]]
파일:음양.svg 자전: 허신(설문해자)
파일:음양.svg 역사학: 반고(한서)
[[삼국시대(중국)|
삼국(三國/三国)
]]
파일:음양.svg 표문: 유비(한중왕표), 제갈량(출사표), 이밀(진정표)
위진남북조 · 수당시대
(3~10세기)
· 서사시 [[동진|
동진(東晉/东晋)
]]
파일:음양.svg 한시: 도연명(귀거래사)
[[남북조시대|
남북조(南北朝)
]]
파일:음양.svg 서사시: 목란사(저자미상)
파일:음양.svg 교육서: 주흥사(천자문)
[[당나라|
당(唐)
]]
파일:음양.svg 한시: 왕발(송두소부지임촉주) · 왕지환(양주사 · 등관작루) · 왕유(녹시 · 송원이사안서 · 구월구일억산동형제) · 이백(정야사 · 장진주) · 고적(연가행) · 두보(춘야희우) · 맹교(유자음) · 한유(조춘정수부장십팔원외) · 백거이(비파행 · 매탄옹 · 부득고원초송별) · 유종원(강설), 이하(상심 · 금동선인사한가) · 이상은(무제 · 춘우) · 두목(청명)
· 소설 [[동진|
동진(東晉/东晋)
]]
파일:음양.svg 지괴소설: 간보(수신기)
[[남북조시대|
남북조(南北朝)
]]
파일:음양.svg 지인소설: 유의경(세설신어)
[[당나라|
당(唐)
]]
파일:음양.svg 연애소설: 원진(앵앵전) · 백행간(이와전)
파일:음양.svg 신이소설: 이조위(유의전)
산문 [[남북조시대|
남북조(南北朝)
]]
파일:음양.svg 시문집: 소통(소명문선)
[[당나라|
당(唐)
]]
파일:음양.svg 여행기: 현장(대당서역기) · 유종원(영주팔기)
파일:음양.svg 역사학: 오긍(정관정요) · 한유(소선등전 · 마설 · 사설)
파일:음양.svg 시문집: 두목(번천문집)
송원 · 명청시대
(10세기~1912년)
· 서사시 [[북송|
북송(北宋)
]]
파일:음양.svg 부(賦): 구양수(추성부) · 소식(적벽부)
[[남송|
남송(南宋)
]]
파일:음양.svg 한시: 이청조(취화음 · 하일절구), 육유(시아)
[[금나라|
금(金)
]]
파일:음양.svg 한시: 원호문(안구사)
· 소설 [[원나라|
원(元)
]]
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장편극: 왕실보(서상기)
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잡극: 기군상(원보원조씨고아)
[[명나라|
명(明)
]]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연의소설: 나관중(삼국지연의 · 수호전) · 견위(초한지) · 풍몽룡(열국지) · 시내암 · 봉신연의(저자미상)}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풍속소설: 소소생(금병매)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모험소설: 오승은(서유기)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화본소설: 탕현조(모란정환혼기)
[[청나라|
청(淸/清)
]]
파일:청나라 국기.svg 희곡: 공상임(도화선)
파일:청나라 국기.svg 인정소설: 조설근(홍루몽)
파일:청나라 국기.svg 풍자소설: 오경재(유림외사)
파일:청나라 국기.svg 무협: 석옥곤(칠협오의)
파일:청나라 국기.svg 기담집: 포송령(요재지이)
산문 [[북송|
북송(北宋)
]]
파일:음양.svg 역사학: 사마광(자치통감)
파일:음양.svg 설화집: 이방 등(태평광기)
[[남송|
남송(南宋)
]]
파일:종교표지_유교_검은색.png파일:종교표지_유교_흰색.png 유교: 주희(소학)
[[원나라|
원(元)
]]
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역사학: 증선지(십팔사략)
[[명나라|
명(明)
]]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양명학: 왕수인(전습록)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수신서: 범립본(명심보감) · 홍응명(채근담)
[[청나라|
청(淸/清)
]]
파일:청나라 국기.svg 정치학: 황종희(명이대방록)
파일:청나라 국기.svg 에세이: 고염무(일지록)
파일:청나라 국기.svg 자전: 장옥서 등(강희자전)
민국시대 · 현대
(1912년~21세기)
· 서사시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中華民國/中华民国)
]]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낭만주의: 궈모뤄(여신) · 쉬즈모(재별강교)
[[중국|
중화인민공화국(中國/中国)
]]
파일:중국 국기.svg 몽롱시: 베이다오(북도)
· 소설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中華民國/中华民国)
]]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사실주의: 루쉰(아Q정전 · 광인일기)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향토주의: 선충원(변성)
[[홍콩|
홍콩(香港)
]]
파일:영국령 홍콩 국기.svg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무협: 김용(사조삼부곡 · 설산비호외전 · 천룡팔부 · 소오강호 · 녹정기)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추리소설: 찬호께이(13.67)
[[대만|
대만(臺灣/台湾)
]]
파일:대만 국기.svg 무협: 와룡생(비연경룡 · 옥차맹) · 고룡(절대쌍교 · 초류향)
파일:대만 국기.svg 모더니즘: 바이셴융(타이베이 사람)
파일:대만 국기.svg 탈식민주의: 양솽쯔
[[중국|
중화인민공화국(中國/中国)
]]
파일:중국 국기.svg 사실주의: 마오둔(자야) · 바진(격류삼부곡) · 라오서(낙타상자 · 찻집)
파일:중국 국기.svg 사회주의 리얼리즘: 딩링(소피의 일기 · 태양은 쌍간강에서 빛난다)
파일:중국 국기.svg 사회파: 빙신(두 가정 · 어린 독자에게) · 첸종수(위성) · 차오위(뇌우)
파일:중국 국기.svg 혁명문학: 왕멍(청춘만세)
파일:중국 국기.svg 상흔문학: 루신화(상흔)
파일:중국 국기.svg 반사문학: 구화(푸룽진)· 장현량(남자의 반은 여자)
파일:중국 국기.svg 심근문학: 루야오(평범한 세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모옌(붉은 수수밭)
파일:중국 국기.svg 선봉문학: 쑤퉁(나, 제왕의 생애)
파일:중국 국기.svg 신사실주의: 류전윈(닭털 같은 나날) · 츠리(번뇌하는 인생)
파일:중국 국기.svg 자전적 소설: 장룽(늑대 토템)
파일:중국 국기.svg 아방가르드: 위화(인생 · 허삼관 매혈기) · 옌롄커(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찬쉐(마지막 연인)
파일:중국 국기.svg SF: 류츠신(삼체)
[[미국|
미합중국(美國/美国)
]]
파일:미국 국기.svg 리얼리즘: 장아이링(경성지련 · 금쇄기 · 색, 계)
[[프랑스|
프랑스(法國/法国)
]]
파일:프랑스 국기.svg 아방가르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가오싱젠(영혼의 산 · 도망)
[[싱가포르|
싱가포르(新加坡)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모더니즘: 옝 페이 응온(英培安)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馬來西亞/马来西亚)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모더니즘: 리쯔수(黎紫書)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실존주의: 허수팡(許素芳)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포스트모더니즘: 응킴추(黃錦樹)
산문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中華民國/中华民国)
]]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모더니즘: 주쯔칭(아버지의 뒷모습)
[[중국|
중화인민공화국(中國/中国)
]]
파일:중국 국기.svg 혁명문학: 마오쩌둥(사령부를 포격하라 · 모순론 · 실천론)
파일:중국 국기.svg 실존주의: 스톄성(나와 디탄공원)
[[홍콩|
홍콩(香港)
]]
파일:영국령 홍콩 국기.svg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에세이: 린위탕(생활의 발견)
[[싱가포르|
싱가포르(新加坡)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리얼리즘: 팡슈(方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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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SNS 시나 웨이보에서 발표한 중국인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중국인' 명단이다.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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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시황제 노자 채륜 한무제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마오쩌둥 맹자 수문제 주자 덩샤오핑
11~25위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사마천 한고제 장자 당태종 장중경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이사 송태조 주문공 굴원 동중서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홍무제 석도안 염민 장건 상앙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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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楚 苦縣 厲鄉 曲仁里[2] 영어 위키백과엔 허난성 저우커우시 루이현으로 나온다.[3] 한어병음:Lǐ Ěr[4] 《도덕경》을 《노자도덕경》, 또는 《노자》라고 하기도 한다. 다만 이 도덕경 텍스트는 노자의 단독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여러 사람들이 창작과 편집에 참여한 텍스트라는 설이 정설이다.[5] 사기의 '노자한비열전'에 따르면, 노자는 '周守藏室之史(주수장실지사)'였다고 한다. 즉, 관직이 주나라 수장실의 '사'(史)'였다는 것이다. 갑골문금석문을 통한 분석에 따르면, 원래 갑골문의 시대에 '史'는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람을 뜻하던 말인데, 그들이 손에 쥐고 있던 의식/주술 도구를 글자로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훗날 그러한 사(史)라는 관리들이 왕(王)의 명령이나 국가 기록을 전담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史'라는 글자의 의미가 지금의 '역사'의 의미로 변했다.[6] 참고로 사마천은 사기 열전의 <중니제자열전>에 "공자가 초나라의 노자를 존경했다."고 적어 놓았다.[7] 보통 노자가 지나간 이 관문이 '함곡관'이라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 열전 원문을 보면 '함곡관'이라는 표현은 없고, 그저 관(關)에 도달했다고만 적혀있다. 참고로 함곡관이 지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먼저 서주 시대인 기원전 11세기, 또는 기원전 10세기 경에 지어졌다는 전설상의 주장이다. 두번째로는 전국시대 중기인 진(秦)나라 효공 때 이곳을 점거하고 처음 관문을 지어 '함곡관'으로 명명했다는 설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통전(通典)에 기록이 남아있다. 만약 노자가 지나간 관문이 진짜로 '함곡관'이고, 두번째 설이 사실이라라면, 노자는 최소한 전국시대 중후반 시기의 사람이 되며, 공자와 만났다는 이야기는 거짓이 된다. 따라서 '함곡관'을 지나갔다는 식의 이야기는 후대에 덧붙여지거나, 창작된 설화로 추정되기도 한다. 아무튼 노자가 이 함곡관을 지나갔다는 설화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인지, 중국 허난성의 함곡관 관광지에는 아예 거대한 '황금 노자상'을 세워 뒀다.[8] 사기 열전의 기록에는 관령 윤희(關令 尹喜)라고 되어있다. 그가 맡았던 관직의 이름을 따서 관윤(關尹)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때 노자의 가르침을 받은 윤희는 이후 중국 주나라와 전국시대 진나라의 도가 철학자로 알려지게 된다. 관씨 연원에 따르면, 윤희가 관직 이름을 따서 관(關)을 성으로 지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장자(莊子)》의 〈천하편(天下篇)〉에 관윤의 말이라 하여, "사람은 아집(我執)을 버리면 자연스럽게 동작이 발휘된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가 물과 같고, 그 고요함이 거울과 같으며, 고요함이 맑음과 같다"라고 한 말도 나와있다. 잡가(雜家)의 대표작인 《여씨춘추(呂氏春秋)》 〈불이편(不二篇)〉에는 "관윤(關尹)은 맑음을 귀히 여긴다"고 평하고 있다.[9] 노자에 비해 약 200년 뒤의 인물. 이름이 담(儋)이고, 관직이 태사(太史)이다. 노자의 자로 알려진 담(聃)과는 한자가 다르다. 노자와 태사담을 구분하기 위해 노자는 노담(老聃)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10] 대표적으로 양계초의 제자인 고전학자 루오근쯔(羅根澤, 1900~1960)가 주장했다.[11] 가장 일반적인 주장이다.[12] 대표적으로 중국의 역사학자 첸무가 이 주장을 지지했다.[13] 북경대 중문학과 리링(李零, 1948~) 교수의 주장이다.[14] 가장 일반적인 주장이다.[15] 서울대학교 철학과 곽기(郭沂, 1962~) 교수의 주장이다.[16] 성과 지라는 한글자가 바뀌었는데 뜻이 바뀐다. 글씨 일부만 조금 지워져도 둘이 모양이 헷갈리는 형태의 글자다.[17] 기존에는 반유가적인 성격이 많이 부각되었다. 군사 정권 시절 다석 류영모, 함석헌 등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사상가들이 노자 연구를 많이 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물론 노자에 반유교적인 모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측면이 발전되고 부각됐을 뿐이다.[18] 왕필본 이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서본인 죽간본 출토의 영향이 컸다. 함축적인 운문 형태인 노자 텍스트의 특성상 한 글자만 다르게 읽어도 뜻이 천지 차이로 벌어진다.[19] 갑골문 전문가인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김경일 교수의 저서 「유교탄생의 비밀」에 해당 주장이 소개되어 있다.[20] 심지어 군대를 운용하는 지혜에 대한 언급도 있다. 진촌퇴척 항목 참조.[21] 무위자연(無爲自然):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그러하게 놔두라는 뜻이다.[22] 공수신퇴(功遂身退): 공을 이루고 나면 스스로가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다.[23] 또는 남의 힘을 100% 사용하게끔 강제하지 말라는 뜻도 된다.[24] 장자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거피취차 정신, 즉 저것(=먼 것, 어려운 것)을 거부하고 이것(=가까운 것, 쉬운 것)을 취한다는 정신을 여러 이야기를 통해 여러 상황에 적용되는 예로써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이라 평가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매우 보수적일 수도 있는 이데올로기.[25] 닐스 보어가 이 부처와 노자가 논한 인식론적 문제 해석이 원자론 해석의 실마리로 보기도 했다. - Atomic Physics and Human Knowledge, (edited by John Wiley and Sons, 1958) 20페이지[26] 불교사에서는 꽤 유명한 승려다.[27] 실제로 노자는 사기에서 한비자와 함께 실렸다. 법가가 도가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이 당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8] 노자만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중국 철학자나 고대 서양의 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운율이 담긴 말을 많이 했다. 공자는 한술 더 떠 '군군신신부부자자'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29] 금과 옥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어진 신하들이 많다는 비유로 쓰인다. 참고로 원문에서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킬 수 없으니 더 채울려고 하지 말라는 뜻으로 나온다.[30] 큰 그릇이 늦게 채워진다.[31] '지족불욕 지지불태'라는 말로써,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32] 한 치를 나아가다 한 자를 물러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