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14:21:40

허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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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無主義 Nihilism
1. 정의2. 역사3. 오해4. 정치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5. 예시
5.1. 현실5.2. 창작물
6. 여담

1. 정의

"신은 죽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1]
기존의 신, 구원, 진리로 대표되는 추구해야할 절대적 가치 및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다.

쉽게 요약하자면 수동적 허무주의는 현실주의 + 비관주의, 능동적 허무주의는 낙관주의 + 진보주의 + 현실주의

허무주의는 허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능동적 허무주의, 수동적 허무주의로 나뉜다. 쉽게 분류하자면, 무엇을 하려고 하는 쪽이 능동적 허무주의이고,[2] 염세적인 반응을 보이며 염세적인 행위를 제외 한다면 딱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쪽이 수동적 허무주의다. 수동적 허무주의의 특성상 페시미즘, 즉 염세주의와도 연결이 된다.

수동적 허무주의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더없이 추악한 자(Der hässlichste Mensch)'라고 부르며 비판한 유형이다. 더없이 추악한 자는 자신의 치욕과 추함 같은 더러운 구석까지 파고들어와 연민하는 목격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 견딜수가 없어 신을 죽여버린다.[3]

창작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허무주의는 수동적 허무주의지만, 이 문서는 일단 능동적 허무주의에 중점을 둔 내용이다.
낙관적 허무주의 - 쿠르츠게작트 (한글자막)

2. 역사

허무주의의 출발점은 18~19세기 계속해서 좁아져 가던 절대성과 의 모습, 그리고 경험론을 마무리 지은 데이비드 흄이 제시한 회의주의 사상이었다. 과학적 탐구를 통한 합리주의 사조에 의해 신의 자리는 점차 좁아져 이신론, 무신론에게까지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과학적 탐구 또한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퍼져 나가면서, 결국 인간이 의존할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가 확산되었다. 산업화와 잦은 전쟁으로 피폐해지던 유럽 사회의 단상은 이러한 사조를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이러한 사고는 중세의 절대신과 합리주의 사조가 추구하던 절대 진리가 모두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상으로 귀결되어, 절대성에 대한 사고를 완성한 헤겔 이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구도를 잡은 허무주의로 나타났다. 니체는 투르게네프의 허무주의 관념을 본격적으로 철학에 도입하여 방향을 상실한 유럽 세계의 단상을 지적하였다.

한국에서의 자국 혐오는 이러한 사고와도 관련이 깊다.

3. 오해

앞서 말한 철학자들의 허무주의 관념은 결국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거나 추구할 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가진 삶의 생동감을 일깨워야 한다는 주의주의(主意主義)와 실존주의 사조로 발전한다. 즉,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가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근대 허무주의 사조의 답으로 제시된 것이다. 철학사에서 허무주의는 절대성의 해체를 통한 실존주의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크다.

가령 쾌락만을 추구하는 향락주의자도 넓게 보면 허무주의자에 속한다. 향락주의자는 진리,선,질서 등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기껏해야 쾌락을 위한 도구적 가치로만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언급하는 종말의 인간(수동적 허무주의자를 뜻한다.)도 '세상 왜 이따구냐.'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을 발견했다.'라고 말한다.이러한 허무주의가 바람직한 것인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허무주의=염세주의가 아니며 허무주의는 현대에 생각보다 훨씬 넓게 퍼져있다고 볼 수 있다.

공(空)을 추구한다는 불교를 허무주의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듯하나, 불교의 공(空)은 결국 절대적인 깨달음[4]에 근거하므로 허무주의로 보기는 어렵다. 위에 나와 있듯이 허무주의는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것을 기본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5] 흔히 알려진 '세상사 좋을 것 하나 없다.' 따위의 사고를 지칭한다면, 오히려 세상을 '모두가 불성을 내재한 꽃의 바다'(화엄종 계통, '이사무애 사사무애'),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부처'(선종 계통) 등으로 바라보는 불교 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로 붓다의 중도 또한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극복하자는 의미이다.

4. 정치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

독자들은 왜 이 사상적 경향이 니힐리즘이라고 불렸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이데올로기의 당파가 다른 사람들에겐 자연스럽게 간주되는 신성한 것(가족, 사회, 종교, 예술, 전통 등)에 대한 아무런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받아 들입니까? 당신에게는 당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나 당신이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아무것도"(nihil, 無). 그렇기에 그는 "니힐리스트"인 것이다.
Anarchist Encyclopedia: Nihilism (Voline)
일반적인 염세주의가 아닌 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는 한국에는 거의 명맥이 끊겼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정당이 결성될 정도 융성했던 사회사상이기도 하다. 허무당이라고 했는데, 혁명적 민주주의의 한 분파로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며 암살과 테러 등을 통해 혁명을 이루려 했다. 아나키즘의 전술적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현재에는 '직접행동'이라 불리는 전술의 원류로 평가된다.

본래 니힐리즘은 19세기 러시아의 극도로 반동적이고 압제적인 현실에서 파생되었던 일종의 "자유사상"이었다. 이 자유사상, 즉 니힐리즘은 유물론과 개인주의라는 두개의 사상에 기반했고 그것을 극한으로 추구했다.

니힐리스트들은 유물론자로써 모든 종교, 미신, 형이상학 등 물질적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무언가, 과학으로 분석되지 않은 것, 실질적인 유용성을 가지지 않은 것을 부정했다. 한편으로 개인주의자로써 그들은 완전한 개인의 자유를 위하여 모든 족쇄, 의무, 그리고 가족, 사회, 관습, 규범, 신앙 등의 개인에게 부과된 전통을 부정했다. 이런 입장들이 니힐리즘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이었고, 이 니힐리즘은 개인의 완전한 자유라는 신성한 권리와 불가침한 사생활을 옹호했다. 이 니힐리즘이 오늘날 떠올리는 음울한 극단적 혁명이론으로 각인되게 된것은 전적으로 네차예프라는 인물의 역할이다.

그냥 "이것저것 다 허무하니 다 망해라."라는 사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전의 구 체제를 완전히 말소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쉽게 말해 세계를 포맷해야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사상적 계보로 따지면 제정 러시아 시기의 혁명적 좌파 내에서 극좌로 통했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진짜 상종 못할 정도라고 불렸던 그 미하일 바쿠닌이 극단적이라 부른 세르게이 네차예프의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기원한다. 극단의 극단의 극단의 극단 말하자면 혁명가는 인간성도, 가족도, 사랑도, 이름도 다 죽여야 되고, 세상에 대하여 무자비한 복수를 퍼부어야 한다는 식의 혁명적 좌파 이데올로기 내에서도 가장 극단에 치달았던 경향이었다.

한국에서는 1926년 허무당 선언 사건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 전술적 유사성 때문에 아나키즘과 혼동되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허무당은 개인의 상호부조나 자발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혁명 그 자체에 집중했고, 아나키즘은 자주적인 개인들의 공동체를 이상으로 제시했다는 차이가 있다. 현실 역사 속에서는 제정 러시아 시절만 해도 사제 관계였던 위의 미하일 바쿠닌과 세르게이 네차예프가 시사하듯 혁명적 테러리즘이란 수단을 공유 한다는 점에서 겹친 면이 있었으나, 네스토르 마흐노의 우크라이나 농민 혁명과 이를 승계한 스페인 내전 당시 CNT의 아나코생디칼리즘이 일단 철학적으로 파괴 자체 보다는 교육, 여성 해방, 반인종주의, 공동체 자치 등 '실질적인 사회 문제의 건설적인 해결'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면서 노선 또한 제대로 갈라졌다.

5. 예시

5.1. 현실

  • 김훈(소설가) - 역사소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김훈 문서 참고.
  • 나관중 - 삼국지연의와 (그가 썼는지 논란이 있지만) 수호지는 모두 결론이 허무주의적이다.
  • 박이문 - 철학자이며 시인이다. 사회학자 정수복과의 대담집인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에 그의 사상이 나온다.
  • 이문열 - 초기작은 허무주의적이다. 그런데 그의 허무주의는 주로 변혁운동에 대한 냉소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그놈이 그놈"이다.
  • 이시노모리 쇼타로 - 자신이 스무 살이 되던 해(1958년)에, 어릴 때부터 자신이 만화를 그리는 것을 응원해준 누나 요시에가 지병인 천식이 악화되어 사망하면서 현실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 이후의 만화들은 허무주의에 입각한 스토리 전개와 다소 찜찜한 결말을 많이 냈다.
  • 이영도 - 폴랩 이후 작품부터 니체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티가 난다. 시우쇠나 폴랩의 신, 치천제의 말에서 허무주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6] 절대적 진리의 예로 국가를 상당히 자주 제시하는 걸 보면 아나키즘 성향 역시 존제한다.
  • 정치혐오 성향을 가진 인물 전반
  • 코헬렛 - 코헬렛(전도서)의 첫 장은 허무주의의 인용문으로 유명할 정도이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인간인 이상 시간이 지나 한 줌의 흙이 될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진리를 기억하고, 영원불멸할 하느님을 믿고 인생의 참된 기쁨을 찾으라는 내용이다.

5.2. 창작물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낙관적 허무주의자보다 비관적 허무주의자가 더 많다.

6. 여담

백괴사전허무주의를 검색하면 하얀 화면 외에 아무것도 출력하지 않으며, 이것은 모든 언어 공통이다.[20] 또한 각 언어마다 구현 방식에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다. 영어판, 일본어판

[1] 허무주의의 핵심을 요약한 말.[2] 기존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의 특성과 합쳐져 능동적 허무주의는 엄청나게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곳곳에서 수동적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서 시니컬하게 말할 시간 있으면 그 도시를 떠나거나 아니면 그럴 시간에 도시를 좋게 바꾸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다든가.[4] 사성제와 12연기 등[5] 불교의 공 사상을 '절대적인 깨달음'만으로 허무주의와 구분짓기는 어렵다. 애초에 허무주의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것에 비해, 공 사상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것, 즉 자성(自性)이 없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기피하고자만 한다면, 허무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욕구에 대한 절대적 도덕률이나 가치는 존재하지 않으니 굳이 부끄러워 하며 감추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고, 공 사상을 가진 사람은 "욕구라는 것은 본디 비어있는 것이니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절대적 진리'라는 말에 오류가 있는데, 불교의 핵심교리는 번뇌를 불러 일으키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이지 벗어나'야 한다'가 아니다. 물론 불교 자체가 해탈을 추구하는 종교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하면' '어떠어떠한 상태에 이르를 수 있다'라는 사실적 판단에서 온다는 점을 1차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만약 해탈을 '해야한다'고 가정할 경우,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중생에 대한 구분이 생겨 버리는데(衆生相), 이는 공 사상에 그리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6] 본인은 등장인물은 자신이 아니라는 투의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집필한 작품마다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캐릭터가 나오고, 그 캐릭터들이 대부분 , 십만년 단위를 예측하는 천재, 완전한 존재의 찌꺼기, 세상의 주인 등의 초월적, 절대적 존재들이라는걸 보면...[7] 세상에 진실 따위는 없으며 모든 생각을 통제하는 당의 권력이야말로 세상의 유일한 진실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8] 자신의 사체에 아마존 세포를 이식되어 아마존으로 되살았을 때 한정. 죽기 전에는 구제반 멤버 답게 선량한 인물이었다.[9] 니체식으로 표현하자면 아직 어린아이의 단계까진 도달하지 못한 사자.[10] 갈로택에게 하는 일갈 부분에서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새 가치를 창조하는 허무주의자의 면모가 보인다. 주권적 개인이란 용어도 쓸 수 있을듯 하다.[11] 이영도의 허무주의 사상을 보여주는 예로 눈마새, 피마새는 니체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12] 원래는 로봇 미니언 사의 CEO였으나 매그너스(인공지능)가 단체로 맛이 가면서 쾌활한 성격의 허무주의자가 되어버렸다.[13] 초중반까지 한정.[14] 마찬가지로 미코토와 비슷하다.[15] 빈센트 보라쥬와 이하동문. 스나코가 소토바를 완전히 장악한 후 점차 시귀들의 영역을 늘려나가며, 인간들의 객체 수가 완전히 사라져가며 이 세상의 마지막 남은 하나로서 사라져버리기를 갈망했다. 다만 스나코가 자신의 비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의미를 주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마지막 자리는 스나코에게 양보할 마음이었다.[16] 작중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허무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17]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보다는 완전히 세상을 멸망시켜버리고자하는 점을 보면 극단적 허무주의자라고 바라보는 것이 옳다.[18] 안전팀에 세피라로서 모두를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어느날이든 죽지않는 사람은 없었고 열심히 하던 일도 점점 느릿하게 하다가 결국에는 일도 놓아버리고 엔케팔린에 쩔어 살게 되었다. 비관적 허무주의자.[19] 우주에 의미는 없으며 오직 살육하는 것이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다.[20] F12를 누르고 코드를 자세히 보면 "이 내용을 보고 있는 너는 변.태.다!!!"라고 적혀있다(...) 아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소스코드까지는 안 보잖아...그와중에 보이기만 한다면 이것도 로고가 바뀌는 페이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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