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년 경? ~ 320년 경?)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 서진, 동진의 인물.수서 천문지에는 오나라의 태사령, 진서 천문지의 12차 도수에는 위나라의 태사령, 수서 경적지에는 진나라의 태사령, 진서 천문지의 천문경성에는 진무제 때 태사령, 진서 예술전에는 동진 건국 시기의 태사령으로 적혀있다. 위나라의 태사령은 오나라의 태사령과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오류로 보인다.
2. 생애
오나라에서 태사령을 지내 별점을 잘 보았고 천문과 별자리에 정통했으며, 280년에 오나라가 망하자 손호를 따라 낙양으로 옮겼다.진나라에서도 태사령을 지내고 낙양의 영대에서 일했지만 팔왕의 난이 일어났고 이 때는 태사령이 되지 못했지만 천문과 별점에 관한 일에는 참여했으며, 진나라가 망하고 동쪽에서 진나라가 새로 세워질 때 참여해 태사령이 되었다.
309년에 토성이 남두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을 보고 나라에 복이 있다고 해석했는데, 당시 사마예가 강동으로 돌아갔고 11월에 지진이 일어나자 나라에 복이 있다는 징조라고 했다고 한다. 314년 정월에는 세 개의 태양이 나타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고 317년 정월에는 세 개의 태양과 하얀 무지개가 있었으며, 중훈(重暈)[1]에는 좌우의 귀고리가 있다고 했다.
하얀 무지개는 병란의 기운, 3개 이상의 태양은 천하의 병란을 나타낸다면서 태양의 중훈은 천하에 왕이 서고 무리의 귀고리는 천하에 제후가 서는 것을 나타낸다며, 진탁은 천하가 셋으로 나뉜다고 했고 317년 3월에는 사마예가 동진을 건국하고 당시 유총, 이웅 등이 할거해 전쟁이 계속되었다.
320년 대에 향년 80여 세로 사망했다.
3. 기타
그의 저작은 천문집점, 사방수점, 천관성점, 오성점, 삼성출도분기, 진탁분야, 혼천론, 감석무현삼가성관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감석무현삼가성관은 감씨성경, 석씨성경, 무함성경 등의 세 가지의 별표를 모아 별의 지도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진탁이 그린 별의 지도는 283개의 별자리, 1464개의 별이 그려져 있었다고 하며, 진서 천문지, 수서 천문지에 나타나는 별자리나 별의 수가 진탁이 조사한 내용과 비슷한다고 한다.
수나라 때 지어진 노래인 보천가는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자세하게 수치를 재는 노래로 진탁이 조사한 내용을 3원 28수에 분속시켜 암기하기 쉽게 만든 노래라고 한다.
[1] 무지개와 어떤 기체가 해와 달을 둥글게 두르는 현상을 일훈과 월훈이라 했는데, 두 무리가 서로 교차하는 것을 교훈, 무리 바깥에 무리가 지는 것을 중훈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