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23:26:02

둔황시

둔황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ee1c25>
파일:중국 국장.svg
}}}
{{{#!wiki style="color: #ffff00;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rowcolor=#fff> 지급행정구
지급시 12, 자치주 2
현급행정구
시할구 17, 현급시 5, 57, 자치현 7
란저우시
성도
兰州市
청관구
城关区
치리허구
七里河区
시구구
西固区
안닝구
安宁区
훙구구
红古区
란저우신구
兰州新区
융덩현
永登县
가오란현
皋兰县
위중현
榆中县
자위관시
嘉峪关市
현급행정구 없음
진창시
金昌市
진촨구
金川区
융창현
永昌县
바이인시
白银市
바이인구
白银区
핑촨구
平川区
징위안현
靖远县
후이닝현
会宁县
징타이현
景泰县
톈수이시
天水市
친저우구
秦州区
마이지구
麦积区
칭수이현
清水县
친안현
秦安县
간구현
甘谷县
우산현
武山县
장자촨 후이족 자치현
张家川回族自治县
우웨이시
武威市
량저우구
凉州区
민친현
民勤县
구랑현
古浪县
톈주 티베트족 자치현
天祝藏族自治县
장예시
张掖市
간저우구
甘州区
민러현
民乐县
린쩌현
临泽县
가오타이현
高台县
산단현
山丹县
쑤난 유구르족 자치현
肃南裕固族自治县
핑량시
平凉市
쿵퉁구
崆峒区
화팅시
华亭市
징촨현
泾川县
링타이현
灵台县
충신현
崇信县
좡랑현
庄浪县
징닝현
静宁县
주취안시
酒泉市
쑤저우구
肃州区
위먼시
玉门市
둔황시
敦煌市
진타현
金塔县
과저우현
瓜州县
쑤베이 몽골족 자치현
肃北蒙古族自治县
아커싸이 카자흐족 자치현
阿克塞哈萨克族自治县
칭양시
庆阳市
시펑구
西峰区
칭청현
庆城县
환현
环县
화츠현
华池县
허수이현
合水县
정닝현
正宁县
닝현
宁县
전위안현
镇原县
딩시시
定西市
안딩구
安定区
퉁웨이현
通渭县
룽시현
陇西县
웨이위안현
渭源县
린타오현
临洮县
장현
漳县
민현
岷县
룽난시
陇南市
우두구
武都区
청현
成县
원현
文县
당창현
宕昌县
캉현
康县
시허현
西和县
리현
礼县
량당현
两当县
후이현
徽县
린샤 후이족 자치주
临夏回族自治州
린샤시
临夏市
린샤현
临夏县
캉러현
康乐县
융징현
永靖县
광허현
广河县
허정현
和政县
둥샹족 자치현
东乡族自治县
지스산 바오안족 둥샹족 사라족 자치현
积石山保安族东乡族撒拉族自治县
간난 티베트족 자치주
甘南藏族自治州
허쭤시
合作市
린탄현
临潭县
줘니현
卓尼县
저우취현
舟曲县
뎨부현
迭部县
마취현
玛曲县
루취현
碌曲县
샤허현
夏河县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background-color: rgba(255, 0, 0, .2)"
색인: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padding: 3px; text-align: center"
}}}}}}}}}



1. 개요2. 역사3. 생활4. 교통5. 기타6. 같이보기

1. 개요

敦煌(돈황), Dunhuang

중국 간쑤성 주취안시현급시.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1,850km, 서울에서 서쪽으로 2,800km 떨어져 있다. 고대~중세 시기 중원에서 서역으로 향하는 실크로드 관문 도시로 번영하였다. 현재는 막고굴(돈황석굴)과 월아천, 옥문관, 양관 등 고대유적들로 유명하다.

2. 역사

파일:한장성.jpg
오랜 시간이 지나 풍화된 한나라 대의 장성
파일:양관 유적.jpg
시가지 서남쪽 40km 지점의 복원된 양관 유적

기원전 2세기, 한무제대에 건설된 도시로 실크로드에 속한 주요 상업 도시의 하나였다. 한나라강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둔황 북쪽 외곽에 장성을 설치했다. 장성의 관문은 무위, 장액, 주천, 돈황 네 개 군에서 수도로 보내는 호탄산 옥이 드나들었다고 해서 옥문관(玉門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다 남쪽에는 양관(陽關)을 설치했다. 오호십육국시대에 전량(前凉)은 이 지역에 사주(沙州)를 설치한다.

전진 시기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불교 관련 물품들을 막고굴을 만들어 보관했다. 수나라 대에 위구르튀르크 등 이민족들의 아래 있었고, 당나라 대에는 안서도호부가 설치되어 무역 거점으로 번영했다. 그러나 안사지란 때 하서, 농우 일대를 지키던 당의 군대 상당수가 반란 진압에 투입되자 토번의 군대가 하서, 농우를 점령하였고 781년에는 토번 왕국의 명재상 상치싱얼의 군대가 월아천에서 당, 회흘 연합군을 대패시킨 뒤 돈황을 점령한다. 이후 851년에는 장의조가 돈황 일대의 토번군을 몰아내고 량주를 제외한 농우도 대부분을 당에 바쳐 귀의군 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장의조 사후 농우도는 다시 회흘인들에게 빼앗기고, 귀의군 절도사의 영역은 돈황 일대로 축소된다. 이후에는 서하의 지배 아래 있다 원나라로 넘어갔고 명나라가 잠시 차지했다가 야르칸드 칸국의 지배 하에 놓여 청나라 옹정제 시기가 되어서야 다시 중화왕조의 영토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 들어서 문화대혁명으로 피해를 볼 뻔하기도 했다.[1]

3. 생활

파일:당허1.jpg 파일:당허2.jpg
위성사진에서도 보이는 글자, 당허 저수지. 둔황 시내를 흐르는 수로.
과거에는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세운 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당허(党河)라는 저수지의 물을 끌어 수로로 둔황 시 중심부로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둔황 시내는 전혀 삭막하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나무를 볼 수 있다. 둔황 시 도심 밖의 향(乡)급 행정구에서는 밭농사도 짓는다. 밭농사를 위한 저수지나 제방, 오아시스 등이 여기저기에 있다. 사막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들어선 얼둔춘(二墩村)에서는 품종이 개량된 옥수수감자 등을 재배한다.

간쑤성 둔황 시의 경계는 꽤나 넓지만 이는 산맥과 사막을 포함한 것으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은 둔황 시 중심지와 그 주변, 황쉐이바(黃水坝) 저수지를 수원으로 하는 둔황 시 양관젠(阳关镇) 등이다. 옥문관 터는 황량한데 반해 양관 터 옆에는 행정구 진(镇)이 만들어졌다.

막고굴과 사주성 고성, 오래된 관문과 모래산, 사막 등 관광 산업도 진행하고 있다.

4. 교통

둔황 막고 국제공항이 있어 관광지에 접근하기도 편리하다. 국도와 성도(省道),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아예 이름이 '막고 톨게이트(莫高收费站)'.

5. 기타

파일:양관 1.jpg

파일:양관 3.jpg

파일:양관 4.jpg
양관 인근의 한나라 대의 돈대 유적

파일:둔황 중국.jpg
시가지 남쪽의 주요 관광지인 명사산(鸣沙山)과 월아천(月牙泉)의 모습

파일:옥문관.jpg
시가지 서북쪽 50km 지점의 옥문관 (玉门关, 위먼관) 유적

주취안 시 하위의 현급시로 위먼 시(玉门市)가 있는데, 실제 옥문관이 있던 둔황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있다.

일본의 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이 도시와 돈황석굴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역사 소설, 돈황을 1959년에 집필했다. 우연과 찰나의 선택에 의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인생무상이라는 불교적인 주제를 다룬다.돈황 1988(敦煌: The Silk Road)이라는 중일합작영화로 제작, 세트장은 관광지가 되었다.

코에이의 게임 징기스칸 4에서는 서하, 몽골 제국, 원나라, 명나라의 도시 중 하나로 나온다.

6. 같이보기



[1] 거리가 워낙 멀어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하며 문혁 시기 둔황을 방문한 공산당 인사는 고작 2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