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21:00:52

기원전 2세기

세기 천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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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표3. 주요 사건
3.1. 아시아3.2. 유럽3.3. 아프리카
4. 사망5. 탄생6.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7. 연도 목록

1. 개요

기원전 2세기는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전 101년까지의 기간이다.

2. 연표

3. 주요 사건

3.1. 아시아

동아시아에서는 건국된 지 얼마 안 된 한나라가 외척의 득세와 왕족의 반란으로 휘청거리지만 이내 군현제라는 중앙 집권 시스템을 확립해 위세를 떨친다.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 걸친 대제국 흉노와는 충돌이 불가피, 초반에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기도 한다. 문경지치라고 불리는 한문제한경제의 치세가 끝난 기원전 2세기 말에는 한무제가 집권한다. 무제는 흉노, 조선[1], 남월을 박살내 한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힌다.

고조선은 연나라의 왕인 연소왕의 조선토벌을 진개로 하여금 토벌한다. 진개에 의해 단군조선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왕검성 일대만을 유지한 상태로 심한 국력 손실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위만이 단군조선 마지막왕인 준왕을 몰아내고 주변세력을 무너트리며 전성기를 이루고 주변국과의 교류/무역으로 크게 성장하나 흉노와의 접촉을 경계한 전한으로 인해 위만조선은 막을 내리게된다. 위만조선은 한나라에게 합병되고 한사군이 설치된다. [2] 한편, 진국로 남하한 조선의 유민들은 사로국(신라)에 정착해 신라의 건국에 많은 기여를 해준다.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시초가 된 장건의 파견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실크로드 중간에서 파르티아는 한과 로마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큰 이득을 봤다. 파르티아는 기원전 2세기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까지 닿는 대제국이 된다.

남아시아에서는 아소카 대왕 사후 흔들리던 마우리아 왕조가 마침내 멸망, 분열기에 들어간다.

오리엔트 지방에서는 패권이 헬레니즘 국가들에게서 고대 로마로 넘어가는 시기에 해당한다. 기원전 4세기에 거대했던 헬레니즘 제국이 생기고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로 나뉜 뒤 오리엔트는 프톨레마이오스 대 셀레우코스, 즉 이집트와 시리아의 싸움이었다. 이 과정에서 유대 지역은 두 국가의 각축장이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유대 지방을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빼앗긴 후 셀레우코스 왕조는 강압적인 헬레니즘화 정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을 제국으로부터 무력으로 해방해 줄 독립운동가인 메시아 의식이 싹트게 되고, 이는 1세기예수기독교가 발생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3] 실제로 유대인들은 독립에 성공하여 하스몬 왕조를 세운다. 그리고 오리엔트에는 로마 제국파르티아라는 두 제국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3.2. 유럽

로마에서는 카르타고와의 전쟁 후 노예에게 농업을 시키는 라티푼디움 경영으로 인한 폐해가 속출했다. 일자리를 잃은 자영농들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안에 동의하며 형제를 지지했다. 집정관 형제는 이 이상의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라티푼디움 경영자인 부유층의 토지를 제한하고 그 토지를 농민들에게 재분배하겠다는 개혁안을 밀고 나갔다. 토지를 돌려준다고 하여 가난이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곡물을 배급하는 법률도 제정했다. 하지만 로마 원로원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았고, 원로원 최종 권고를 통해 형제를 처리해버린다.

사실 당시 로마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라티푼디움으로 인해 자영농이 고통을 받든 말든 알 바가 아니었고, 그들에게 있어 문제는 자신들이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지키는 것 뿐이었다. 진짜 문제는 당시 로마는 군인들이 스스로 무기를 구입해서 무장을 했는데, 평민들의 재산이 줄어들면서 병사 수급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원로원 최종권고 이후 원로원의 권력 조정이 실패해 정계에서는 폭력이 난무했다.

이 과정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나타나 모든 시민들에게 군대를 개방했다. 그리고 이 책임을 장군에게 넘겼다. 당시의 로마는 병사들이 한 번 자신의 장군을 선택하면 운명이 결정되는 것과 같았고, 이 과정에서 장군의 책임이 커지자 병사들은 충성의 대상을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장군에게로 돌린다. 그렇게 수많은 평민들이 입대한 로마군은 점차 특정 장군들의 사병처럼 변해갔고, 가이우스 마리우스 또한 장군 출신이었던고로 결국 이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권력을 위한 일이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이렇게 손쉽게 평민들을 등에 업었다. 이후 기원전 1세기로 이어진다.

3.3. 아프리카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역에 악숨 왕국이 성립된다. 악숨 왕국은 로마 제국과 이집트, 인도 등의 주변국들을 상대로 상아, 금, 거북 등껍질, 향신료, 노예, 흑요석 등을 팔면서 짭짤한 이익을 취했고 이 무역으로 발생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강성한 해군력으로 중무장하기까지 했다.

북아프리카카르타고는 전후 폐허가 되어 방치된다. 이들 페니키아 도시들은 모두 이들의 어머니 도시였던 티레에 속하였으며 어느 정도의 상납금을 티레에게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티레 본국은 페르시아와 같은 강력한 중동의 제국들과 싸우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4. 사망

  • 위만조선의 마지막 왕 우거왕 (? ~ 기원전 108년)
  • 위만조선의 장군 성기(성이) (? ~ 기원전 108년)
  • 위만조선의 비왕 장 (? ~ 기원전 109년)
  • 위만조선의 인물 노최
  • 전한의 사신 섭하
  • 장건 (? ~ 기원전 114년)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기원전 185년 ~ 기원전 129년)
  • 가이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54년 ~ 기원전 121년)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63년 ~ 기원전 133년)

5. 탄생

  • 한 무제 (기원전 156년 ~ 기원전 87년)
  • 사마천 (기원전 145년? ~ 기원전 86년?)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기원전 185년 ~ 기원전 129년)
  • 가이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54년 ~ 기원전 121년)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63년 ~ 기원전 133년)

6.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

7. 연도 목록



[1] 위만이 단군조선 마지막 왕인 준왕을 몰아내고 단군에서 위만조선으로 정권교체를 하고 진나라전한과의 무역으로 크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한과의 마찰이 생기고 왕검성 전투이후 전한에 합병된다.[2] 한사군은 5세기가 돼서 완전히 사라진다.[3] 물론 예수의 메시아는 기원전 2세기의 호전적 메시아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폭력적 운동을 원했지만 예수는 비폭력적인 저항 방법을 고안해낸 것도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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