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00:56:38

총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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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8월 12일 국민방위군 사령관 외 5명 총살 집행 순간.


1945년 12월 1일, 미합중국 육군에 의해 집행된 독일 국방군 안톤 도슈틀러 육군 보병대장의 처형 집행 영상. 심약자나 19세 미만은 시청하지 말 것.
급한 사람은 4:20


1945년, 연합군 진영에 스파이로 잠입했다 발각된 독일 육군 대위 1명과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을 미 육군이 처형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심약자나 19세 미만은 시청하지 말 것.

1. 설명2. 특성3. 국가별 집행 현황4. 총살형을 당한 유명인사들
4.1. 실존인물4.2. 가상인물

1. 설명

/ execution by firing squad, fusillading

사형(死刑) 방법 중 하나. 말 그대로 으로 쏴서 죽이는 방법이다.

총기가 개발되면서 생긴 사형법으로 다른 사형에 비해 절차가 간단하다는 게 특징이다.

전쟁에 쓰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특성 때문에 보통 군인 수형자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명예로운 처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의도는 국가를 지키는 무기인 총으로 상관과 동료를 살해하는 경우 그 총으로 자기가 죽는다는 의도이며 실상은 간단한 방법이기에 총살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형대를 준비하는 것 같은 귀찮은 집행 과정 따위 생략하고 총으로 그냥 쏴 버리면 되니까.[1] 일반적으로 사형 대상자를 기둥에 묶거나 벽에 세운 후[2] 사형 집행자들이 총을 쏘는 것으로 끝. 아니면 무릎꿇려 놓고 뒤통수를 쏘거나. 보통 정식 재판에 의한 총살형은 대상자를 세워놓고 사살하고, 무릎 꿇리고 뒤통수를 쏘는 총살형은 정식 재판에 의한 것이 아닌 즉결처형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공산 국가인 소련과 중국은 과거에 이 방식으로만 사형을 집행했다. 소련에서는 무릎을 꿇리고 후두부에 권총을 쐈고 중국은 소총을 쐈다.[3]

군인뿐만이 아니라, 20세기에는 일반인에게도 자주 쓰였다. 사실 총에 맞으면 즉사하여 고통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인도적이기도 하다.

능지형, 요참형, 참수형 등 각종 잔혹한 사형 방법들은 사라졌지만 총살형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는 국가가 많다.

보통 소총을(단발로) 사용하지만 경우에 따라 권총이 사용될 때도 있으며 더 심한 경우에는(일부 막장국가 한정이지만) 기관단총이나 중기관총이 사용될 때도 있다.[4]

2. 특성

총살형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단두대교수형에 비해 빠르게, 고통없이 죽는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머리나 심장에 제대로 맞을 때나 그렇고 몸통을 잘못 맞거나 악질적인 집행자에게 걸린 경우 일부러 팔다리 등을 맞춰 과다출혈로 사망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만 권력자의 미움을 받거나 죄질이 정말로 극히 나쁜 사형수에게 의도적으로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집행되는 경우도 있다.[5] 게다가 신경계통에 맞고 죽으면 최소 1초간 엄청난 고통이 느껴진 후 사망한다.

한번 집행을 했는데도 즉시 죽지 않은 경우 대개는 죽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거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확인사살을 하지만, 민간인의 사형을 약물 주사형으로 바꾸기 이전의 중국에서는 후두부에 총알을 맞고도 사형수가 살아있으면 한 발 더 쏘는 대신 총알구멍을 총신으로 쑤셔서(…) 죽이는 나름대로 경제적인 총살법도 있었다고 한다. 정식 방법이 아니라 탄환 한 발이라도 아끼려는 사정상 그랬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만...[6]

약식으로는 소련식으로 무릎을 꿇리고 후두부에 직접 총을 쏴버리거나 그냥 그것도 생략하고 현장에서 사살하는 방식도 있는데, 보통 이런 경우는 전쟁중에 자주 보인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사형 제도가 존속하는 국가에서는[7] 범죄자가 현역 군인 신분을 가진 자일 경우에는 총살형으로 집행하도록 군형법에 규정이 되어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8] 사형 제도가 존속한다고 항상 군인을 총살형으로 집행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미군은 현재 평시에는 약물주사형과 총살을 병행해서 군인 사형수의 선택에 따라 집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9][10], 1961년 이전에 사형 집행을 하던 시절에도 거의 교수형으로 집행했고[11] 총살형으로 집행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주로 전시 혹은 준장 이상의 장성급 계급을 가진 자들이 총살로 집행되었다. 지금도 미군은 평시는 총살, 주사 병행이나 전시에는 무조건 총살로 사형을 집행하며, 베트남군은 특이하게도 미군처럼 군인 사형수의 선택에 의해 총살형과 약물주사형을 선택할 수 있다.

군인에게 규정되어 있는 사형방식이기는 하나, 일부 나라는 민간인에게 집행되기도 한다. 나라에 따라서 민간인에 대한 사형도 총살형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고,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과거에 군사재판을 받은 민간인이 총살형으로 집행된 사례가 있다. #1 #2 그러나 군사재판을 받았지만 교수형으로 집행된 사례도 있다.[12] 총살형이 군형법 제 3조에 규정되어 있으니 군형법 제 1조에 해당하는 경우만 총살 당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군형법 제 1조에 "이 법은 대한민국의 영역내외를 불문하고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대한민국 군인에게 적용한다."고 되어 있으나 군형법이 아닌 일반 형법에만 규정된 죄를 범한 군인 사형수가 교수형으로 집행된 사례는 또 없다.

민간인에게 총살형을 집행하는 국가도 있긴 하나 이렇게 별도의 규정까지 만들어서 군인을 총살형으로 집행하는 국가가 많은 것은 서양에서 무기로 처형되는 것을 명예롭게 보았던 영향이다. 근대 들어 무기가 총으로 바뀌자 칼 대신 총으로 죽는 총살형이 명예롭게 여겨진 것. 전근대의 전사명예 의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군인에게는 총살형이 아닌 것으로 처형을 당하면 당신들을 군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군인의 경우에 모든 사형을 시행하는 국가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총살형으로 군형법에 규정, 시행한다.[13] 조선시대에 사약으로 죽는 것이나 중국 송나라에서 여성은 봉작두로, 남성은 용작두로 요참형 사형을 받는 것이나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족, 고위층들 즉 높으신 분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들을 예를 갖추어서 순금으로 만든 참수검으로 참수형을 시행하는 것이나 중세 서양의 귀족들이 스스로 목을 내어서 참수검에 사형 당하는 게 그나마 영광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인 듯 하다. 무엇보다 군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총과 탄약이기 때문에 다른 절차는 생략하고 가장 간편하게 집행을 할 수 있다.

빌헬름 카이텔, 알프레트 요들, 헤르만 괴링 같은 독일의 군인 전범들이 군인답게 죽고 싶다며 총살형을 요구[14]했다가 결국 기각되었다. 군인 전범들이 총살형을 탄원했지만 기각한 이유는 판사가 "적어도 전범(戰犯)의 처리가 하나나 둘뿐의 독일군 장교의 처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상, 처형의 방식을 본인 자신의 의사에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는 이유를 들어 기각했다고 한다. 카이텔과 요들 등 군인들은 결국 소련의 반대로 교수형으로 죽었고, 헤르만 괴링도 소련의 반대로 총살형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절망해서 결국 숨겨 두었던 독약으로 자살했다.

도조 히데키, 야마시타 도모유키 같은 일본군 전범들도 총살형을 요구했지만 미군이 일본군을 강제로 해산해서 더 이상 군인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반대해서 죄수복 차림으로 교수형을 집행했다. 예외적으로 혼마 마사하루만 맥아더의 명령에 의해 사형 집행 전까지는 후한 예우를 받고 총살형으로 죽었다. 이쪽은 소련에서 총살형을 반대하거나 하는 행동은 없었다.

안중근 의사 역시 본인의 신분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이라고 주장하며 총살형을 시켜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제 측에서는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간주해 교수형으로 형을 집행한 바 있다.

한국에는 전술했듯 무기로 사형당하면 명예롭게 여기는 전통이 없었고, 오히려 신체를 온전하게 하는 집행 방식인 사약이나 교형참형보다는 낫다 여겼다. 한국 법에서 민간인은 교수형, 군인은 총살형으로 나눈 것은 단순히 서양의 법과 군 체계를 받아들였기 때문.

과거 중화인민공화국은 총살형이 사형의 주된 방법이었다. 교수형도 시행하기는 했지만 주로 총살이 방법이고 교수형을 하더라도 숏드롭 방식으로 행해졌다. 총살형은 주로 죄수를 뒤돌아 세운 후, 등이나 뒤통수를 쏘는 방법으로 행해왔다. 그러나 잔혹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자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군인을 제외하고 약물 주사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인민해방군 군인은 군인들의 전통적 처형 방법인 총살형으로 처해진다. 단 중국군 헌병에 해당하는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에 의해 군 규정에서 규정된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사형 집행시에 군복을 입은 채로 범죄 사실을 적은 푯말을 걸고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소속 군인이 직접 군인 사형수에 대해 심장에 조준해서 사격을 하게 되며 뒷통수를 쏜다거나 하는 잔혹한 방식은 중국 인민해방군 군형법 상으로 금지한다.

3. 국가별 집행 현황

총살형/국가별 현황 문서로.

4. 총살형을 당한 유명인사들

소소한 인물들까지 기입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으니 공인 인명사전에 실릴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인물로 적어주기 바람. 총에 맞아 죽었더라도 암살당하거나 전사, 저격당한 사람은 당연히 제외. 체포에 저항하다 사살된 사람도 제외. 즉 '형벌로서' 총살된 사람만 기재한다.

4.1. 실존인물

4.2. 가상인물



[1] 더군다나 칼이나 도끼로 참수하거나 약물로 죽이는 것보다 더 빨리 죽일 수도 있다.[2] 필요에 따라 피형자의 심장 부위에 표적지를 설치한다.[3] 현재 중국은 사형을 약물주사형으로만 집행한다.[4] 이보다 한술 더 뜬 케이스로 과거 소련에서는 사형수를 핵실험 예정지로 보내기도 했다는데 추가바람.[5] 교수형의 경우는 일부러 천천히 올리거나 내리는 식으로, 참수형은 일부러 초보에게 저급의 칼을 주고 집행을 강요하는 식.[6] 과거 중국은 총살 집행시 유가족에게 총알값을 청구했었다.[7] 만약 민간인의 경우에는 총살형을 시행하지 않는 국가라도[8] 예를 들면 한국 군형법 제3조(사형 집행) 사형은 소속 군 참모총장 또는 군사법원의 관할관이 지정한 장소에서 총살로써 집행한다.[9] 이전 문서에는 약물주사로만 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현직 미군의 확인 결과로 병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0] 1961년 이후 군인에 대한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제로 약물주사형으로 집행된 미군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총살형도 군인 선택에 따라 집행되는데 이 경우 차출된 헌병들에 의해서 집행되며 평시에는 병행이나 전시나 약물주사 여건이 안되는 주외미군(주일미군이나 주한미군 등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 또는 해외 파병의 경우에는 무조건 총살로 집행한다.[11] 대표적인 집행관으로 헌병상사 존 클라렌스 우즈가 대표적이다. 뉘른베르크에서도 빌헬름 카이텔 육군원수를 비롯한 여러 전범을 처형한 경험이 있었다.[12]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된 8명은 사형 집행 명령은 국방부 장관 명의였지만 교수형으로 집행되었으며, 김재규와 그의 수하들은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사형 직전 이송되어서 교수형으로 집행되었다.[13] 다만 동양권은 군에 복무하는 군인이 아닌 이상은 '무기로 사형당하면 명예롭다'는 인식이 없었다. 동양권에서는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쪽의 사형을 명예롭게 여기는 관념은 있었다. 중국에서는 요참으로 죽는 것과 궁형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중 선택이 가능했는데 전자는 나름대로 명예롭게 생각하는 반면 후자는 죽는 것보다 비참할 정도로 무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한국에서 사약을 명예롭게 여기는 것도 스스로의 손으로 사약을 마시는 방식이었기 때문. 일본의 할복이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겨진 것도 스스로의 용기로 배를 가르는 것에 중점을 뒀지, '무기'로 죽는다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아니라서 (할복 형식이 아닌) 그냥 참수형은 불명예스러운 사형이었다.[14] 당시 독일 뉘른베르크 연합군 재판부 판사들은 군인 계급을 가진 자에게는 총살형을, 그렇지 않은 나머지에는 교수형을 선고하려고 했지만 당시 독일에 의해 뒷통수를 맞아 그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고 재판에 영향력이 강했으면서 독일을 증오한 소련 수석 판사인 이오나 니키첸코 육군 소장은 "이런 쓰레기들에겐 교수형만으로도 충분하다. 총살형은 무슨 얼어죽을 총살형이냐!" 하면서 길길이 날뛰면서 반대를 했다고. 그리하여 결국에는 사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들은 현역 군인들도, 그렇지 않은 자들도 전원 소련 이오나 니키첸코 장군의 반발로 인해 집행을 교수형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영화 뉘른베르크에서도 소련측 판사가 "총알은 명예로운 적군(원문에는 honorable enemy)에게 쓰는 것이지 저런 범죄자 놈들에게 쓰는 것이 아니오"라고 반대하는 장면이 나온다.[15] 총살형 대상자들 중 집행 과정 그 자체만으로 가장 유명하다. 심지어 루마니아의 마지막 사형수이다.[16]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이 '총으로 살해'된 것은 맞지만 총살형이라고 보기는 좀 애매하다. 니콜라이 2세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재판 등 최소한의 법적 절차도 없이, 어느 날 아침 그냥 끌어내어 쏴 죽여버린 것에 불과하다. 만약 이것이 형벌로서 총살형이었다면 같이 있던 주치의나 하인들까지 한번에 죽인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좀 작은 규모의) 학살 쪽이 더 맞다.[17]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18] 모리 구니조가 학살죄를 뒤집어 씌워서 총살형을 받았다. 의례 소총 5발로 총살당했다.[19]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으로는 종신형을 받았으나 전후 호리우치 도요야키 대좌에게 학살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 드러나 네덜란드 측으로 부터 다시 기소가 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구타를 당한 뒤 루이스 경기관총에 총살당했다.[20] 1883~1945. 독일국방군 해군 상급대장. 유명한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 독일 해군 측 지원 총책임자였다. 전후 소련으로 끌려가서 전쟁 범죄로 기소되어 총살형에 처해졌지만 해군 고위 장교로서 일선에 나서지 않은 그를 전범으로 볼 여지는 희박했고, 결국 1994년 러시아 법정은 그에게 내려진 판결을 번복하고 명예를 신원하였다.[21] 본인 요청에 의해 총살형에 처해졌다. 단 군인들에게 총살시켜 달라는 요청은 거부하고 만리허 소총을 이용해서 일반적인 총살에만 처해졌다.[22] 원래라면 일본군이 해산되어서 더이상 군인신분이 아니게 되어 죄수복 차림으로 교수형을 받아야 했으나, 맥아더가 이를 봐줘서 군복을 입은 채로 총살형에 처해졌다.[23]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기관총으로 집행되었다고 말했지만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기관총 사용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확인되는 사실은 많지 않으며 말을 아껴야 한다고 답변했다.[24] 사실 재판에 넘기기가 겁나서(공산권에서 구명운동을 벌일까봐) 그냥 날림으로 살해한 것에 가깝다.[25] 대한민국 육군 공병대령. 한국전쟁 초반에 육군 공병감으로 재직 중 한강철교 폭파 명령을 수행했으나, 윗선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덮어씌워 총살했다.[26] 미군 포로 15명을 무단으로 처형한 혐의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범재판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독일군 정복 차림으로 이탈리아 왕국 아베르사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27] 사실은 이때 죽을 것처럼 보였으나, 후에 생전의 모든 기록이 말소되어 431이라는 번호만을 부여받은 채 핵잠수함에 탑승하게 된다. 나머지 승무원들도 전부 번호로만 존재.[28] 연합군의 스파이가 나오는 미션 및 몇몇 요인을 호위하거나 움직여야하는 미션에서 미션에 실패하면 아군의 요인이 총살형당하는 범용 미션실패 동영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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