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12 02:19:43

김일손


金馹孫
(1464년 ~ 1498년)

조선시대문신. 김종직의 제자이기도 하다. 출생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청도군이며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시호는 문민(文愍).

김일손은 1486년(성종 17년) 문과에서 2등을 하고 승문원(承文院)에 배속되어 벼슬길에 나섰다. 그는 이후 홍문관, 승정원, 사간원, 사헌부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는데, 이는 조선 시대 엘리트 관원들이 역임하는 청요직(淸要職)이었다.

무오사화는 바로 김일손이 성종 재위시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썼던 사초(史草)에서 비롯되었다. 이 일로 인해 김일손은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여러 학자들과 함께 처형을 당하였다. 이때 수많은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 <연산군 일기>는 이 과정을 생중계하듯이 낱낱이 적어서 후세에 전했다.

김일손은 일찍이 스승으로 섬긴 김종직을 닮아 사장(詞章)에 능했으며 당시 고관들의 부패와 불의를 규탄하였다. 사림파 중의 한명으로 무오사화의 희생양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이극돈의 평을 보면 인성과 능력 면에선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이극돈이 김일손의 이조 좌랑 추천을 거부했을 때 김일손을 평하기를 "사람이 경망스럽다"고 하였다.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을 때 세조에 관한 소문을 확인 과정도 안 거치고 사초에 기록하였는데, 그 내용이 "세조가 죽은 맏 아들의 후궁과 수상한 사이였고, 다른 후궁과도 찝적댔다."라는 위험 수위의 내용이었으며 그나마도 소문이었을 뿐, 확인된 것이 아니었다. 김일손이 세조에 대한 비판과 훈구파의 전횡을 사초에 올린 것은 분명 죽기를 각오하기 전에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일처리는 경솔했던 모양. 애초에 사관의 일이라는 게 완전한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었으므로 사적 감정을 담아 조의제문을 사초에 기록한 것은 사관의 책무에서 많이 벗어난 행동이었다. 무오사화 문서는 파면 팔 수록 김일손 문제 많다 쪽으로 결론이 나오는 모양새이다.

김해 김씨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로 고등 문관에 진출하는 일이 드물어지게 된다. 그나마 기술직이나 중인층에서는 조선 후기에서도 활약이 여전히 두드러졌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그림 부문에서 단원 김홍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왕과 비에서는 1958년생 배우 이경영이 연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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