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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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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 사진. 노벨상 수상자만 17명이다.
시인들과 한 부류에 속하는 자들로 책을 출판하여 불멸의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내게[나 우신에게-註] 굉장히 많이 신세 진 부류인데, 특히 순전 헛소리를 천연덕스럽게 종이 위에 그려 놓는 글쟁이들이 그러합니다. 이와 달리 오로지 소수의 학자들만이 알아들을 주장을 현학적으로 휘갈기며 페르시우스와 라엘리우스가[즉,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註] 이를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들 학자들은 오히려 행복하기보다 불쌍하게 여겨야 할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고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덧대고 바꾸고 치우고, 또다시 가져다 돌이키고 두들기고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또 9년을 묻어 두지만 결코 스스로도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나마 얻는 보잘것없는 보상은 칭찬 몇 마디, 그것도 몇몇 소수의 칭찬일 뿐인데도 이것을 얻기 위해 이들이 지새운 밤은 그 얼마며,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달콤한 잠을 설친 세월이 그 얼마며, 흘린 땀은 그 얼마며, 산고의 진통은 그 얼마입니까? 그러는 사이에 육신은 병들고 청춘은 찌들어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눈은 침침해지고, 쾌락은 멀리했건만 가난과 질투심에 시달리다 노년은 때이르게 찾아오니, 요절은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은 것들이 이들에게 들이닥칩니다. 이 모든 불행 가운데 학자들은 단 한 명일지라도 자신을 인정해 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93(번역은 김남우 역을 전재)
그리고 이렇게 실로, 말하자면 말 눈가리개를 하고서 자기 영혼의 운명이 여기-자기가 이 필사본의 이 개소에 대한 이, 바로 이 판독을 옳게 하는지-에 걸려 있다는 관념에 몰입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는, 학문과는 그저 정말 거리가 멀 뿐입니다. 결코 그는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자기 안에서 겪지 못할 것입니다. 이 기이한, 모든 국외자들로부터 비웃음을 사는 도취, 이 열정, 이 "네가 태어나기 전에 수천 년이 지나야 하였고, -네가 이 판독에 성공하는지를-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며 기다리고 있다."라는 것이 없다면, 학문을 직업으로 갖지 말고 다른 일을 하십시오. 인간으로서의 인간에게,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지 아니한 가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1]

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이나 연구소 등의 연구기관에서 연봉을 받으면서 전문적으로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을 말한다. 교수, 시간강사, 연구원 등으로 나뉘며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예비 학자로 취급한다.

보통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해당 학위에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며[2], 석사를 받고 연구직에 종사하는 연구원들도 여기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어쨌든 최소한 석사 이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교육수준이 높은 엘리트로 여겨진다.

일삼아 공부하는 만큼 일정한 성과를 의무적으로 내야 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정말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일반 회사처럼 일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 시간이 대강 정해져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구는 개인플레이라서 뛰어난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머리 못지않게 성실함, 자기관리, 절제가 필요하다.[3] 그리고 창의적인 연구라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거듭되는 실패에도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한 주제를 파고드는 인내심이 많이 요구된다.

논문이나 연구보고서와 같은 글을 읽고 쓸 기회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직종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나 담배를 하는 경우도 많고교수들이 술 강요를 하는 게 이유가 있었구만 커피는 거의 포션 수준. 흰머리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생긴다.괜히 아인슈타인 같은 흰머리 박사 이미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

성격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학자 소리를 듣는 수준까지 공부했다면 대체로 체계적인 것을 중시하고 매사를 엄밀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으며[4]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와 가까운 이야기가 나올 경우 끊임없이 화제를 제시한다(...). 그래서 이런 걸 비꼰 nerd 같은 표현도 생겼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니,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다만 학문의 세계란 끝이 없이 깊고 넓은 만큼 각종 학문의 역사를 보면 진리탐구의 일념하에 온갖 기행을 벌인 학자들의 이야기도 보이는데, 세균설을 반박하기 위해 (정확히는 콜레라가 세균 '따위'에 의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학회 강단에서 배양한 병균을 원샷한 독일의 과학자 막스 폰 페텐코퍼의 이야기나[5], 동료 학자와 함께 MRI통 안에 들어가 자신의 성관계 장면을 MRI 영상으로 찍어서 남긴 여성 인류학자[6]나, 대만 열차 성행위 사건에서 현대의 성행위에 대해서 논문을 쓰겠다고 문란한 파티에 참가했다는 학자 등...

경제학이나 경영학, 정치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미 벌어진 문제를 보고 "내 그럴 줄 알았다! 이건 이미 예견된 인재(人災[7])다!"라고 손뼉치며 득의양양하는 인물들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해당 분야의 일선에서 뛰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경우도 많고 학자들 자신이 그렇게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RPG 게임에서는 주로 마법사인 NPC 들이 학자로 등장한다.[8]
[1] "... 학문적 활동은 여가 선용의 개념과 확고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동의 분업으로 학문적 활동은 오직 전인격을 헌신함으로써만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는 학문이라는 것이 근대 이전에는 여가시간을 보내는 취미나 호기심 정도에 머물렀다면 근대 이후에는 전문화되면서 학자가 그의 모든 열정과 능력을 바쳐서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베버는 이러한 생각을 뒷날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하게 된다(김덕영,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61면).[2] 다만 평소에는 전공에 관련 없는 생업에 종사하며 취미로 전공 관련 저술이나 간단한 실험 등을 하는 아마추어 학자도 일단 학자로 인정을 해주긴 해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아마추어 학자이다.[3] 물론 전공이 무엇이고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한다. 예컨대 인문대학 교수라면 강의시간 이외에는 자기 시간을 99% 컨트롤할 수 있는 반면, 랩에 소속된 공대 석사 1년차라면 죽어라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4] 이게 극단적으로 발현된 사람이 미드 빅뱅 이론의 쉘든 쿠퍼.[5] 참고로 페텐코퍼는 가벼운 복통과 며칠의 설사만 호소하고는 아무 탈이 없었다는데, 페텐코퍼가 콜레라에 항체가 있었거나, 위장이 튼튼해 병원균을 뱃속에서 그냥 죽였거나(...), 병원균이 제대로 배양되지 않은 덕분에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후대의 추정이 있다. 페텐코퍼가 그렇다고 미치광이 3류 과학자였던건 아니고, 굉장히 유명한 위생학자이다. 병균에 의해 많은 질병들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진 현대에 콜레라균을 고의로 먹은 그의 행동은 분명 미친 짓이지만... 어쨋든 그는 자기가 옳았다며 좋아했다고(...).[6] 2000년도 이그노벨 의학상 수상 사례[7] 인간으로 인해 벌어진 재앙,재난.[8] 마법이 체계적이고 정립된 형태로서 교육제도나 방법, 기관이 있다면 학문이기 때문. 다르게 말하자면 파고드는 만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마법실력=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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