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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


1. 개요2. 생애3. 고려사 류승 열전4. 가족 관계

1. 개요

1248년 류경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자(字)는 희원(希元)이고 '정신(貞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시조 류차달로부터 10세손이다. 그는 여러 아들들을 두어 그 후손들이 문화 류씨 지후사공파, 좌상공파, 검한성공파, 정숙공파, 수사공파, 부윤공파, 충경공파 등으로 이어졌다.

고려사 류승 열전에는 그의 아들 류인명(류인수), 류인전, 류인화, 류인기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문화 류씨 가정보 천자장(天字張)에는 류택, 류경, 류승 및 류승의 두 사위(김도, 권부)와 세 아들들(류인명(柳仁明 ; 柳仁修), 류인화(柳仁和 ; 류돈), 류인기(柳仁琦))이 기록되어 있다. 즉 둘째 아들 류인전은 16세기에 완성된 문화 류씨 가정보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2. 생애

무신정권 시기 임연이 정권을 잡은 후 1269년(원종 10) 4월 임자일 평장사 류경이 흑산도로 귀양가고, 류경의 아들인 행수(行首) 류승과 시랑 주열, 장군 김정 등도 섬에 귀양갔다. 그 후 류승은 1287년(충렬왕 13) 2월 경신일에 좌부승지, 1291년 9월 을미일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판삼사사(判三司事) 한희유(韓希愈)와 함께 강화의 진(鎭)에 머무르면서 병란으로 피해를 입은 고을의 조세를 감면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1292년 윤6월 신해일에 최유엄과 함께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임명되고 1294년 7월 병자일에 직사관(直史館) 권한공(權漢功)과 함께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파견되어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했다.1295년 1월 기사일에 지밀직사사에 임명되고 이후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에 이르렀으며 1298년 5월 임자일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류승은 예문(禮文)에 밝아 오랫동안 합문(閤門)-통례문(通禮門) 에 있었다. 합문은 조회(朝會)•의례(儀禮) 등 국가 의식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당시 당시 예문(禮文)이 산실(散失)되고 없었기에 류승이 조회의 의례에 자세한 해설을 붙인 '신의(新儀)'를 편찬하였다. 그 내용이 아주 상세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대로 본받아서 사용했다.
류승은 어버이를 섬기는 데 효성을 다하여 관직에 있으면서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기생들과 좋아하여 노는 일도 없었다. 또한 돈이나 이익이 생기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으며 탄환(彈丸-둥근 알맹이를 퉁기는 일)을 잘 하여 한 번 퉁기면 반드시 명중하였다고 전한다.

3. 고려사 류승 열전

류경의 아들은 류승(陞)이다. 류승의 자(字)는 희원(希元)인데 관직이 첨의 참리에 이르렀고 행동 거지가 예의에 맞아 볼 만한 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합문(閤門)에 있었는데 당시 예문(禮文)이 산실되고 없었기에 류승이 신의(新儀)를 편찬하였는데 그 내용이 아주 상세하였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대로 본받아서 쓰게 되었다.
류승은 어버이를 섬기는 데 효성을 다하여 관직에 있으면서도 게을리 하는 일이 없었으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기생들과 좋아하여 노는 일도 없었고 돈이나 이익이 생기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는 탄환(彈丸-둥근 알맹이를 퉁기는 놀음)을 잘 하여 한 번 퉁기면 반드시 명중하였다. 일찍이 손님이 와서 앉아 있는데 멀리서 여인이 버지기(盆)를 머리에 이고 가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사람에게 맞으면 상할 것이고 그릇에 맞으면 깨어질 것이니 환(丸)을 버지기 속에 떨어지게만 하겠다'라고 하고 환을 퉁기니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
충렬왕 24년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51세요 시호는 정신(貞愼)이다. 류인명(柳仁明), 류인전(柳仁全), 류인화(柳仁和), 류인기(柳仁琦) 등의 아들들을 두었다. 류인명은 중문사(中門使)로 되었고 류인기는 문화군(文化君)의 봉작을 받았다. 류인화는 후일 이름을 류돈(柳墩)으로 고쳤다.

한자 원문
陞, 字希元, 官至僉議叅理, 容止可觀. 久在閤門, 時禮文散失, 陞撰新儀甚詳, 後人遵用之. 事親孝, 居官匪懈, 不好飮酒嬉戱於聲色, 貨利淡如也. 善彈丸必命中. 嘗與客坐, 遙見汲婦戴盆曰, “中人則傷, 中器則破, 要令丸墮盆中耳.” 彈發果然. 忠烈二十四年卒, 年五十一, 謚貞愼. 子仁明·仁全·仁和·仁琦. 仁明, 中門使. 仁琦, 文化君. 仁和, 後改墩

4. 가족 관계

* 누님 ; 여흥 민씨 민훤(?-1310 ; 자의도첨의찬성사(咨議都僉議贊成事) 양민공(良敏公)의 부인) / 민영모 → 민식 → 민인철 → 민부 → 민훤 // 가정보에서 후손들을 살펴보면 민훤의 둘째 사위는 풍천 임씨(豊川 任氏) 서하군(西河君) 임자송(任子松)이다. 임자송 → 임경유(任景儒) → 임군보(任君輔 ;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성근익찬공신(誠勤翊贊功臣)) → 임거경(任巨卿) → 임견(任肩) → 임원준(任元濬 ; 1423-1500) → 임사홍 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임사홍은 문화 류씨 가정보(文化 柳氏 嘉靖譜) 명자장(名字張)에 등재되어 있다.
* 부인 ; 남양 홍씨 홍진(洪縉 ; ?-1266)의 딸
* 처남 ; 홍규
  • 조카들(홍규의 자녀들 / 류승은 이들의 고모부임) ; 홍융(洪戎 ; 공민왕 대 정승 홍언박의 아버지), 원나라 아고알(阿高歹)의 부인, 청주 정씨 정해(鄭瑎)의 부인, 순화원비, 원충(元忠)의 부인, 충숙왕 비이자 충혜왕,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

  • 아들 ; 류인수(柳仁修 ; 처음 이름은 류인명 柳仁明) / 1294년 12월 경진일에 우승지 류청신, 직보문서(直寶文署) 류인명(柳仁明)을 원나라에 보내 신년을 축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권지국학학유(權知國學學諭), 중문사(中門使) 등을 지냄 // 류인수의 직계 후손들의 가계는 지후사공파(祗候使公派)로 이어짐 - 유성원, 류자신(조선)
  • 며느리 ; 고성 이씨 이존비(1233-1287 ; 류경이 1260년 동지공거로서 과거 시험에서 선발한 문생(門生) / /봉익대부 동판밀직사사 좌상시 문한학사승지 세자원빈(奉翊大夫 同判密直司事 左常侍 文翰學士承旨 世子元賓)의 둘째 딸 // 고려 우왕의 국구 이림(고려)의 증조부가 이존비이다.

  • 딸 ; 광산군(光山君) 김도(金滔(?-1317 ; 金瑫) / 1302년 사관 수찬관(史館 修撰官), 1303년 밀직우승지(密直右承旨), 1305년 밀직부사(密直副使) 등을 지낸 김도는 김련(참지정사)(홍규의 장인)의 아들이다.

  • 딸 변한국대부인 류씨(卞韓國大夫人 柳氏 : 1266-1344) ; 안동 권씨 권부와 혼인함 / 사위 이제현이 지은 묘지명이 전함
  • 사위 권부 ; 권부의 직계 후손들이 안동 권씨 추밀공파로 이어짐 - 권근, 권람, 권율
    • 외손자들 ; 권준(고려), 종정(宗頂) ; 출가하여 조계종(曹溪宗) 도총섭대선사(都總攝大禪師),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 문화군(文化君) 권고(권근의 할아버지), 왕후(고려), 권겸(윤번의 외할아버지 권항의 아버지)
      • 외손녀 사위들 ; 안유충, 이제현, 종실(宗室) 순정대군(順正大君) 왕숙(王璹), 회안대군(淮安大君) 왕순(王珣)
  • 아들 류인전(柳仁全) ; 동대비원녹사(東大悲院錄事)
  • 아들 류돈(柳墩 - 처음 이름(初名)은 류인화(柳仁和) ; 1274-1349) ; 장경공(章景公) 광정대부 도첨의찬성사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상호군 판판도사사(匡靖大夫 都僉議贊成事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事 上護軍 判版圖司事) / 칙수 장사랑 광정대부 검교도첨의참리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상호군 안산군(勅授 將仕郎 匡靖大夫 檢校都僉議?理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事 上護軍 安山君) 안진(安震)이 지은 류돈의 묘지명이 전함
  • 며느리 : 승화군부인 김씨(承化郡夫人 金氏 ; 동지밀직사사 판도판서(同知密直司事 版圖判書) 김중전(金仲全)의 딸)
    • 손자 ; 우부대언 류총(右副代言 柳總), 문화군 류진(文化君 柳鎭 ; 初名은 柳丘)
    • 손녀 사위들 ; 군부정랑(軍簿正郎) 최계진(崔季眞), 응양군호군(鷹揚軍護軍) 설봉(薛鳳), 전법총랑(典法摠郎) 이몽정(李蒙正), 전객시승(典客寺丞) 김인관(金仁琯), 내부시승(內府寺丞) 박린(朴僯)
  • 아들 류인기(柳仁琦(1283년 생) ; 온정공(溫靖公) 문화군(文化君)
  • 며느리 해양군부인 김씨(海陽郡夫人 金氏) ; 김련(참지정사)의 아들 첨의중찬 김지숙(1237-1310 ; 홍규의 처남)의 딸 // 김지숙의 아들 김인연의 아들이 공민왕 시기 김원명, 김속명 형제임
    • 손자 류보발(柳甫發 ; 1304-1340) ; 고려국 정순대부 밀직사우부대언 종부령 겸 감찰집의 지판도사사(高麗國 正順大夫 密直司右副代言 宗簿令 兼 監察執義 知版圖司事) / 이곡(고려)이 지은 류보발의 묘지명이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