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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미상 | ||
| 원 대도 | |||
| 사망 | 1316년 7월 18일 | ||
| 원 대도 연저[추정] | |||
| 능묘 | 연릉(衍陵) | ||
| 재위기간 | 고려 세자비 | ||
| ?[2] ~ 1298년 1월 19일 | |||
| 고려 의비 | |||
| 1298년 1월 19일 ~ 1313년 3월 24일 | |||
| 고려 태상왕비 | |||
| 1313년 3월 24일 ~ 1316년 7월 1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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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 예수진[也速眞] | ||
| 부모 | 미상 | ||
| 배우자 | 충선왕 | ||
| 자녀 | 슬하 2남 장남 - 왕세자 강릉군 왕감(王鑑) 차남 - 충숙왕 왕만(王卍) | ||
| 관저 | 미상 | ||
| 시호 | 의비(懿妃) | ||
1. 개요
고려 제26대 국왕 충선왕의 제2비.2. 생애
의비는 본래 고려인이 아닌 몽골인이다. 그녀의 가계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으나 시호에도 공주(公主)라는 단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원나라 황족이 아니라 귀족으로 추정되는 바이다.[4][5]충선왕은 세자로 있던 시절 원나라에 자주 머물렀는데, 아마 이때 그녀와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비 소생의 차남인 충숙왕이 1294년에 태어난 것을 볼때, 적어도 그녀는 1296년 충선왕과 대혼을 한 계국대장공주보다 빨리 충선왕에게 시집왔을 것으로 보인다.
1316년(충숙왕 3년) 음력 7월 18일에 원나라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시신은 음력 8월 3일 고려로 들어왔으며 음력 8월 20일에 장례를 치렀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 후 가매장되었다가 사망 3년 후에 능을 마련하였고, 능호는 연릉(衍陵)이라 하였다. 그녀의 영정은 청운사(靑雲寺)를 거쳐 묘련사(妙蓮寺)에 봉안되었고 사후에 의비(懿妃)에 추증되었다.
충선왕의 후비들 중에서는 충선왕과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식을 낳았으며 또 유일하게 확실한 충선왕의 혈통을 이어내렸다.[6]
장남은 광릉군 왕감(王鑑)으로, 한때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1310년 음력 5월에 부왕 충선왕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에 의비의 차남이 대신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곧 충숙왕이다.
3. 가족관계
- 남편 : 충선왕 왕장(王璋)
[추정] [2] 1294년 이전으로 추정하는 바이다. 장남 광릉군 왕감의 출생은 미상이고 차남인 충숙왕의 출생이 1294년이기 때문이다.[也速眞] / 야속진[4] 당대 야속진의 부친으로 유력한 인사로 원나라 방계황족인 야쿠(칭기스칸의 조카) 또는 여몽전쟁 당시 고려와 교섭한 장군인 야속달 등이 꼽힌다. 만약 야속진의 부친이 야쿠라면 야속진도 방계황족이지만 야속달이 부친이라면 아속진은 그저 귀족에 지나지 않는다.[5] 야쿠의 아들이 야속달이고 야속달의 딸이 야속진이었을 수도 있다. 애초 야쿠 친왕부터가 방계라 그 아들 대부터는 황족 대우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6] 덕흥군은 얼자 출신으로, 대도에서 출생했다고는 하나 그의 출생 자체가 심히 의심스러우며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7] 원나라 위왕 아무케(魏王 阿木哥), 즉 원나라 추존 황제 순종 다르마발라의 아들)의 딸[8] 20세기에 편찬된《신원사》에는 제31대 공민왕의 왕후 노국대장공주가 위왕 아무케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원사》에 위왕 아무케가 제27대 충숙왕 때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노국대장공주는 위왕 자리를 물려받은 아무케의 차남 베이르테무르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아무케의 딸 조국장공주는 노국대장공주의 고모인 셈이다. 위왕 아무케는 원나라 제3대 황제인 무종과 원나라 제4대 황제인 인종의 이복형이었지만, 훗날 이들과의 계승 다툼에서 밀려나 대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탐라(제주도)로 유배되어 죽었다.[9] '숙공휘령공주'라고도 한다.[10] 원나라 황족[11] 남양 홍씨 홍규의 5녀[12] 제26대 충선왕의 후궁 순화원비 홍씨(順和院妃 洪氏)의 친동생이다. 즉 이들은 부자지간이면서 동서(同婿)지간이 된다.[13] 안동 권씨 권렴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