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7-07 04:31:20

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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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상
대도
사망 1316년 7월 18일
대도 연저[추정]
능묘 연릉(衍陵)
재위기간
고려 세자비
?[2] ~ 1298년 1월 19일
고려 의비
1298년 1월 19일 ~ 1313년 3월 24일
고려 태상왕비
1313년 3월 24일 ~ 1316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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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D592><colcolor=#3F6864> 성씨 미상
예수진[也速眞]
부모 미상
배우자 충선왕
자녀 슬하 2남
장남 - 왕세자 강릉군 왕감(王鑑)
차남 - 충숙왕 왕만(王卍)
관저 미상
시호 의비(懿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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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1. 개요

고려 제26대 국왕 충선왕의 제2비.[4]

2. 생애

의비는 본래 고려인이 아닌 몽골인이다. 그녀의 가계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으나 시호에도 공주(公主)라는 단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원나라 황족이 아니라 귀족으로 추정되는 바이다.[5][6]

충선왕은 세자로 있던 시절 원나라에 자주 머물렀는데, 아마 이때 그녀와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비 소생의 차남인 충숙왕이 1294년에 태어난 것을 볼 때, 적어도 그녀는 1296년 충선왕과 대혼을 한 계국대장공주보다 빨리 충선왕에게 시집왔을 것으로 보인다.

1316년(충숙왕 3년) 음력 7월 18일에 원나라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시신은 음력 8월 3일 고려로 들어왔으며 음력 8월 20일에 장례를 치렀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 후 가매장되었다가 사망 3년 후에 능을 마련하였고, 능호는 연릉(衍陵)이라 하였다. 그녀의 영정은 청운사(靑雲寺)를 거쳐 묘련사(妙蓮寺)에 봉안되었고 사후에 의비(懿妃)에 추증되었다.

충선왕의 후비들 중에서는 충선왕과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식을 낳았으며 또 유일하게 확실한 충선왕의 혈통을 이어내렸다.[7]

장남은 광릉군 왕감(王鑑)으로, 한때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1310년 음력 5월에 부왕 충선왕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에 의비의 차남이 대신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곧 충숙왕이다.

3. 가족관계


[추정] [2] 1290년에서 1294년 사이로 추정하는 바이다. 충선왕순화원비의 혼례가 1290년인데 의비는 순화원비 다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장남 광릉군 왕감의 출생은 미상이고 차남인 충숙왕의 출생이 1294년이기 때문이다.[也速眞] / 야속진[4] 혼인 순서로는 의비가 제3비이나, 몽골 귀족인 점을 감안해 앞서 있던 두 명의 왕비들보다 서열이 앞서게 되었다. 그러나 계국대장공주가 대혼을 한 이후에는 제2비로 강등되었다.[5] 황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 볼 일 없는 궁인 출신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으나, 고려 왕실이 정식 후비가 아닌 승은궁인과 그 소생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생각해보면 이 설은 가능성이 낮다. 당장 충선왕의 소군 아들인 덕흥군은 어머니가 궁인이었기 때문에 일치감치 계승권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러니 의비의 아들들인 광릉군충숙왕도 정말로 그녀의 출신이 별 볼 일 없었다면 계승자로 책봉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원 황실의 부마인 충선왕의 정식 후비로 들어갈 정도의 위세는 있는 집안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6] 당대 야속진의 부친으로 유력한 인사로 여몽전쟁 당시 고려와 교섭한 장군인 야속달 등이 꼽힌다.[7] 덕흥군얼자 출신으로, 충선왕과 그 궁인 출생이라 하나 심히 의심스러우며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8] 원나라 위왕 아무케(魏王 阿木哥), 즉 원나라 추존 황제 순종 다르마발라의 아들)의 딸[9] 20세기에 편찬된《신원사》에는 제31대 공민왕의 왕후 노국대장공주가 위왕 아무케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원사》에 위왕 아무케가 제27대 충숙왕 때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노국대장공주는 위왕 자리를 물려받은 아무케의 차남 베이르테무르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아무케의 딸 조국장공주는 노국대장공주의 고모인 셈이다. 위왕 아무케는 원나라 제3대 황제인 무종과 원나라 제4대 황제인 인종의 이복형이었지만, 훗날 이들과의 계승 다툼에서 밀려나 대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탐라(제주도)로 유배되어 죽었다.[10] '숙공휘령공주'라고도 한다.[11] 원나라 황족[12] 남양 홍씨 홍규의 5녀[13] 제26대 충선왕의 후궁 순화원비 홍씨(順和院妃 洪氏)의 친동생이다. 즉 이들은 부자지간이면서 동서(同婿)지간이 된다.[14] 안동 권씨 권렴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