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3:15:31

남평 문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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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남평 문씨 종문.svg
南平 文氏
남평 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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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ece5b6><colbgcolor=#000> 관향 <colbgcolor=#fff,#191919>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시조 문다성(文多省)
중시조 문익(文翼)
집성촌 전라남도 담양군
전라남도 화순군
전라남도 장흥군
전라남도 영암군
전라남도 보성군
대구광역시 달성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충청남도 서산시
충청북도 옥천군
함경남도 함흥시
인구 445,946명(2015년) | 국내 21위
링크 남평문씨대종회
1. 개요2. 설화3. 역사4. 종파5. 특이사항6. 집성촌
6.1. 서울·경기6.2. 대구·경북6.3. 부산·울산·경남6.4. 광주·전남·전북6.5. 충남·충북·대전·세종6.6. 제주6.7. 북한 지역
6.7.1. 황해6.7.2. 평안6.7.3. 그 외
7. 항렬표8. 인물9. 관련 항목

[clearfix]

1. 개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한국 문씨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감천 문씨와 정선 문씨를 제외한 대다수의 다른 문씨들은 남평 문씨다.[1]

2. 설화

전설에 따르면 남평 문씨의 시조는 문다성(文多省)이다. 472년(백제 개로왕 18년) 무진군(武珍郡)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동쪽에 장자못(長者池)이라는 큰 못이 있고, 그 못가에는 큰 바위가 솟아 있었다. 현재에도 문암(文巖)이라는 이름으로 바위가 남아있다고 한다.

하루는 군주가 그 바위 아래서 노는데 갑자기 바위에 오색구름이 감돌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군주가 신기하게 여겨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석함이 놓여 있었다. 함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피부가 옥설(玉雪)같이 맑고 용모가 아름다웠던 갓난아이가 있었다. 군주가 기이하게 여겨 아이를 거두어 기르니, 나이 불과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武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지라 문(文)을 성(姓)으로 삼고 이름을 다성(多省)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삼중대광(三重大匡)[2] 벽상공신(壁上功臣, 신흥사(新興寺)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라간 개국공신)으로 남평백(南平伯)의 작위에 봉해지고 98세까지 살았다고 하여 후손들이 남평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전라남도에 아주많이 분포해서 산다.

설화에 따르면 시조 문다성은 삼국시대백제 개로왕 때 사람이라 하지만 고려의 개국공신이라는 족보 기록과 연대가 맞지 않아 대종회에서는 후삼국시대 사람인 것으로 정정하였다고 한다.

472년이면 백제도 한성백제 시대라 아직 본관인 나주시 남평읍에 위치해 있던 마한의 소국들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나주 지역에는 마한의 불미국(不彌國)이 있었는데 대형 고분군이 여러 개 발견된 걸로 비추어 마한 소국들 중에서도 강한 세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나주시 남평읍은 백제에 흡수되어 무진군(武珍郡)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 되었다가 여러 번의 명칭 변경을 거쳐 고려시대에 나주목(羅州牧) 남평현(南平縣)이 된다. 나주보다 아래인 영암군에서 해남군에 걸쳐 위치했던 침미다례[3] 백제측에선 남만이라는 멸칭으로 일컫기도 했는데 이는 정말로 야만스럽다고 그랬던 게 아니라 그만큼 세력이 강력해서 백제의 정복시도에 극심하게 저항했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는 성가신 상대를 이렇게 멸칭으로 부른 사례가 상당히 많이 나타나는데 그렇게 불리기도 했던 건 그만큼 강력해서 존재감이 컸던 것이라고 봐야한다.

문다성은 태조 왕건의 밑에서 무신으로 봉직하였으며 고려가 후삼국의 통일을 이룬 후 삼중대광(三重大匡, 1품 1등위 품계) 품계와 벽상공신(壁上功臣,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라간 개국공신)공신호와 남평백으로 봉작을 받고, 식읍 3천호를 하사받았다. 본관인 남평읍이 위치해 있던 나주시 일대는 태봉의 장군이던 시절 왕건이 나주 공방전을 통해 직접 장악하고 근거지로 삼았던 지역인데 문다성은 그때 왕건에게 호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시조 문다성은 역사적 인물이라기 보단 설화적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삼국시대 인물이라면서 시대가 안 맞아 손쉽게 후삼국시대 인물로 바꿔버렸다는 것 자체가 교차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허구의 인물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시조단을 만들어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시조 밑으로는 자료가 없으므로 대수를 정할 때는 중시조 문익(文翼)을 1대로 쳐 계산한다.

문익은 숙종 대의 인물로 고려시대 문공원의 금석문에 등장하는 최초의 실존인물이다. 문다성부터 문익까진 꽤 족보가 먼 편이다. 문익의 아버지는 2군 6위 소속의 무관이었고 문익은 중서문하성의 관직을 거쳐 문관이 되었다.

문익의 세 아들 문공인, 문공원, 문공유 삼형제의 등장으로 가세가 매우 크게 성장했다. 문공유는 남평현 개국자로, 문공인은 평장사로, 문공원은 배향공신이 되었다.

이 기세로 무신정권 대에는 매우 잘 나가 문벌귀족 가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고려 때의 대표적 인물로는 무신정권 때의 네임드급 문신 및 무신인 충숙공 문극겸이 유명하다. 딸이 이의방의 제수다. 이의방의 동생 이린의 아내. 즉 문극겸이 장인, 이린은 사위이다. 이린과 문극겸의 딸의 6대손이 이성계이다. 그리고 고려 말의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도 유명하다. 초명은 익첨(益瞻).

제주도에 있었던 탐라국의 최고 권력자인 성주(星主)를 세습하던 고씨와 연합해 성주의 권력을 넘보던 왕자(王子)를 세습하던 제주 양씨를 밀어내고 남평 문씨가 약 400년간 왕자를 세습하기도 했다. 여기서 뜬금없이 남평 문씨가 등장하는 이유는 제주 고씨의 탐라 서쪽 지역이 동쪽의 제주 양씨에게 위협받자, 육지의 세력인 고려의 중앙정부 귀족들과 권력적으로 연대하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려는 무신들간의 다툼으로 혼돈의 상태에 놓여있었기에, 무신들에게 잘못 줄을 대었다가는 역으로 숙청될 위험이 높았다. 따라서 문신 출신이면서 무신들과 가깝고, 또한 지리적으로 제주도에 가까운 남평(나주)의 문씨가 정치적 차선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고려사절요 제14권에서 제17권 그리고 씨족원류에 따르면, 제주 고씨는 탐라에서의 지위를 지키고자 재상이자 상장군이었던 문극겸에게 지속적으로 접촉하였고, 문극겸의 아들들인 문후식, 문유필때 되어서야(고려 고종시기) 군사를 보내어 제주 양씨를 축출하고 제주 고씨는 탐라의 서쪽, 남평 문씨는 탐라의 동쪽으로 함께 권력을 분점했다. 그 결과, 제주 고씨는 고려의 중앙정부와 연줄을 대고, 지속적으로 성주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남평 문씨는 약 400년간 탐라의 동쪽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다만 조선조 때에는 별로 가세가 흥한 편이 아니다. 1406년 문가학이 역모를 꾀해서 그런지, 조선조 때의 유명한 인물을 찾아보려면 대충 의병장이니 그저 그런 관료가 나올 정도다. 아마도 현 족보상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문익점이 여말선초에 고려 라인을 타다가 배제당했던 듯하다. 그나마 목화 버프로 사후 공신은 됐지만 중앙 정계에선 멀어져서 당장 그 아들만 해도 빈곤해져 문익점의 동문인 권근이 태종에게 문익점 아들에게 벼슬 하나 주라고 했을 정도. 오히려 현대에 들어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하고,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문희상 의원이 당선됨에 따라 국가의전서열 1, 2위를 모두 남평 문씨에서 차지하는 등 더 잘나가는 양상이다.

4. 종파

종파는 총 10개이다.

큰 줄기는 중시조 문익의 손자인 문극겸의 두 아들 대에서 갈라진다. 장남 문후식의 후손들로 구성된 파는 충혜공파감천군파남제공파ㆍ(충선공파)헌납공파ㆍ(충선공파)순질공파ㆍ(충선공파)의안공파ㆍ(충선공파)시중공파ㆍ(충선공파)성숙공파이다.

저 중 충선공파가 붙은 파들은 전부 10세손 문익점의 자손들이다. 충혜공파는 문익점의 형인 10세손 문익겸이 파조이고, 감천군파는 9세손 문구에서 갈라졌다. 남제공파는 문극겸의 손자인 5세손 문착을 파조로 한다.

문극겸의 차남 문유필의 후손들은 충익공파판도판서공파이다. 원래는 저 둘을 통틀어 순평부원군파로 분류하였으나 1995년 대동보에서는 파주와 전주가 집성촌인 9세손 문달한의 후손을 충익공파로 하고 합천지역이 집성촌인 8세 문근의 후손들은 판도판서공파로 분리하였다.

5. 특이사항

지금은 많이 잊힌 이야기이긴 하지만, 순흥 안씨랑 혼인을 꺼린다. 옛날 문씨 청년이 중국에 유학을 하러 가는 길에 순흥 안씨를 만나서 길동무 삼아 같이 가게 되었는데, 두 청년이 너무나 죽이 잘 맞았던지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형제니 한 집안과 같다! 라고 하여 후손들의 배우자 후보 가문을 하나 지워버린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각각의 가문 어르신들에게 자주 전해듣는 전설이기도 하다.

6. 집성촌

6.1. 서울·경기

6.2. 대구·경북

6.3. 부산·울산·경남

6.4. 광주·전남·전북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청풍동 - 독립유공자 문동길이 이 마을 출신이다.
  • 전라남도 광양시 옥곡면 원월리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월전리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서리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서산리
  •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구산리
  •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갑향리
  •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풍수리·황금리
  •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 용정리 - 독립유공자 문장호가 이 마을 출신이다.
  •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서당리·영천리·천포리·회령리
  • 전라남도 순천시 연향동 - 독립유공자 문재교가 이 마을 출신이다.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남강리
  •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자라리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이천리
  •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진덕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독립유공자 문사훈·문성선)·풍덕리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송평리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 문병호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
  •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늑용리·단산리·덕산리·대리·송정리·신풍리·오복리·조양리
  •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 봉림리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대사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천암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마산리·무포리
  •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봉암리·신리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화림리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방축리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제말리·회룡리
  •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6.5. 충남·충북·대전·세종

6.6. 제주

  • 제주특별자치도제주시 도두동 - 현 제주도에 있었던 탐라국의 최고 권력자인 성주(星主)를 세습하던 고씨와 연합해 성주의 권력을 넘보던 왕자(王子)를 세습하던 제주 양씨를 밀어내고 남평 문씨가 약 400년간 왕자를 세습하기도 했다. 여기서 뜬금없이 남평 문씨가 등장하는 이유는 제주 고씨의 탐라 서쪽 지역이 동쪽의 제주 양씨에게 위협받자, 육지의 세력인 고려의 중앙정부 귀족들과 권력적으로 연대하려 했기 때문이다.

고려사절요 제14권에서 제17권 그리고 씨족원류에 따르면, 제주 고씨는 탐라에서의 지위를 지키고자 재상이자 상장군이었던 문극겸에게 지속적으로 접촉하였고, 문극겸의 아들들인 문후식, 문유필때 되어서야(고려 고종시기) 군사를 보내어 제주 양씨를 축출하고 제주 고씨는 탐라의 서쪽, 남평 문씨는 탐라의 동쪽으로 함께 권력을 분점했다. 그 결과, 제주 고씨는 고려의 중앙정부와 연줄을 대고, 지속적으로 성주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남평 문씨는 약 400년간 탐라의 동쪽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 독립유공자 문도배가 이 마을 출신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조수리·청수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한림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1리

6.7. 북한 지역

6.7.1. 황해

6.7.2. 평안

  • 평안남도 순천시 동암동 - 구 순천군 선소면 간동리
  • 평안남도 순천시 평리 - 구 순천군 순천읍 중리
  •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사리
  • 평안남도 덕천군 잠상면 서학리
  • 평양시 강남군 문암리 - 구 평안남도 중화군 양정면 문정리
  • 남포시 항구구역 동전리 - 구 평안남도 용강군 다미면 동전리
  • 평안북도 피현군 정산리 - 구 의주군 피현면 정산동
  • 평안북도 구성시 용풍리 - 구 구성군 동산면 용풍동
  • 평안북도 태천군 송태리 - 구 태천군 서성면 송귀동
  • 평안북도 녕변군 남등리 - 구 영변군 소림면 원등동. 독립유공자 문성각이 이 마을 출신이다.
  • 평안북도 정주시 오성리 - 구 정주군 덕언면 덕성동 / 오산동 - 구 정주군 갈산면 광동동
  • 평안북도 곽산군 관상리 - 구 정주군 관주면 관삽동 -
  • 평안북도 운전군 원서리 - 구 정주군 마산면 원서동 -
  • 평안북도 철산군 금산리 - 구 철산군 정혜면 어산동
  • 평안북도 룡천군 인흥리 - 구 용천군 북중면 용주동 -
  • 자강도 송원군 회목리 - 구 평안북도 초산군 도원면 회목동
  • 자강도 중강군 중강읍 중평리 - 구 평안북도 자성군 여연면 중평동
  • 자강도 중강군 중상동 - 구 평안북도 자성군 여연면 중상동

6.7.3. 그 외

7. 항렬표

30세 ○호鎬, ○현鉉, ○
31세 제濟○[4], 승承○, 홍鴻○
32세 植, ○모模, ○상相
33세 희熙○, 형炯○, 병炳○
34세 ○주周, ○기基, ○균均
35세 종鍾○, 용鎔○, 련鍊○
36세 ○영泳, ○수洙, ○
37세 동東○, 학學○, 환桓○
38세 ○노魯, ○섭燮, ○훈勳
39세 재在○, 시時○, 규圭○
40세 ○선銑, ○일鎰, ○석錫
41세 택澤○, 태泰○, 해海○
42세 ○표杓, ○根, ○
43세 석錫○, 선銑○, 시諡○

순평군파판도판서공파는 항렬이 조금 다르다. 이 때문에 과연 남평 문씨의 모든 파가 한 뿌리에서 갈라졌는지 의심스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참고로 저 두 파는 다른 파들과는 다르게 대부분 경상도에 본적을 둔다. 그렇지만 호적이 근대적인 모습을 하게 된 시기는 갑오개혁 입법 일환으로 1896년 호구조사 규칙과 호구조사 세칙이 공포되면서이다. 또한 이때도 호주의 직계존속, 직계비속이라도 함께 살지 않으면 호적을 달리 했다.

그런 근대적인 호적조사마저도 일제에 의해서 폐지되고, 일제가 1909년에 민적법을 시행하면서 '본적(本籍)'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한다. 즉 '본관'과는 달리 '본적'이 어느 지역이라고 자기 조상들이 옛날에도 그 지역에서 살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대동항렬이라는 개념이 생긴 게 교통, 통신이 편리해진 근현대에 와서이다. 그 전까지는 같은 가문 같은 파 안에서도 집성촌별로 항렬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국에 분포한 문중 사람들끼리 연락이 쉽지 않았기 때문
28세 ○주柱, ○동東,
○식植, ○환桓
29세 병炳○
30세 ○곤坤, ○균均
31세 종鍾○
32세 ○연淵
33세 상相○
34세 ○환煥
35세 규奎○
36세 ○호鎬
37세 위渭○

8. 인물

이름 생몰년도 비고
근대 이전
문다성(文多省) 남평 문씨의 설화적 시조
문익(文翼) 남평 문씨의 역사적 시조, 남평 문씨 1세
문공원(文公元) 문익의 차남, 고려배향공신
문공유(文公裕) 문익의 삼남, 자작
문극겸(文克謙) 문공유의 아들, 고려배향공신
문익점(文益漸) 여말선초의 유학자
27세손
문순득(文順得) 1777 ~ 1847 순질공파 조선의 인물, 족보명 순득(淳得)
문창래(文昌來) 1885 ~ 1951 헌납공파 독립운동가
문덕홍(文德洪) 1902 ~ 1949 헌납공파 독립운동가
28세손
문상익(文相翊) 1890~1930 헌납공파 독립운동가
문양목(文讓穆) 1869 ~ 1945 성숙공파 독립운동가
문호주(文虎柱) 1967 ~ 판도판서공파 만화, 웹툰작가
29세손
문달환(文達煥) 1851 ~ 1938 순질공파 독립운동가
문공학(文孔學) 1897 ~ 1946 의안공파 독립운동가
문경섭(文瓊燮) 1883 ~ 1941 순질공파 독립운동가
문병란(文炳蘭) 1935 ~ 2015 순평군파 시인
문태준(文太俊) 1928 ~ 2020 순질공파 보건복지부장관
문성유(文盛裕) 1964 ~ 헌납공파 공무원
문정복(文貞福) 1967 ~ 순질공파 정치인
30세손
문위동(文渭東) 1903 ~ 1976 의안공파 독립운동가
문치무(文致武) 1877 ~ 1942 순질공파 독립운동가
문희상(文喜相) 1945 ~ 의안공파 국회의장, 족보명 상호(相鎬)
문정인(文正仁) 1951 ~ 헌납공파 정치학자, 교수
문태곤(文泰坤) 1957 ~ 판도판서공파 공무원, 공기업인
문지훈(文志勳) 1986 ~ 의안공파 래퍼
31세손
문영박(文永樸) 1880 ~ 1930 의안공파 독립운동가
문도석(文道錫) 1882 ~ 1968 순질공파 독립운동가
문창학(文昌學) 1882 ~ 1923 의안공파 독립운동가
문우석(文禹錫) 1893 ~ 1953 순질공파 독립운동가
문석균(文晳均) 1971 ~ 의안공파 숭문당 대표
문선민(文宣民) 1992 ~ 충익공파 축구선수
32세손
문광채(文光彩) 1861 ~ 1919 의안공파 독립운동가
문태수(文泰洙) 1880 ~ 1913 의안공파 독립운동가
문성혁(文成赫) 1958 ~ 순질공파 교수, 해기사, 공무원
문진석(文振碩) 1962 ~ 순질공파 국회의원, 족보명 광석(光錫)
문승훈(文昇勳) 1966 ~ 순질공파 야구선수, 심판
문천식(文天植) 1977 ~ 순질공파 코미디언, 배우
33세손
문도배(文道培) 1908 ~ 1953 남제공파 독립운동가
문선명(文鮮明) 1920 ~ 2012 의안공파 종교인, 통일교 창시자
문태갑(文胎甲) 1930 ~ 의안공파 정치인, 족보명 희응(熙膺)
문희갑(文熹甲) 1937 ~ 의안공파 정치인, 족보명 희좌(熙佐)
문재인(文在寅) 1953 ~ 의안공파 19대 대통령
문병호(文炳浩) 1959 ~ 순질공파 정치인
문미옥(文美玉) 1968 ~ 순질공파 교수, 정치인
문희준(文熙晙) 1978 ~ 순질공파 가수
문정원(文貞媛) 1980 ~ 판도판서공파 플로리스트
문선재(文善載) 1990 ~ 순질공파 야구선수
문진제(文珍堤) 1991 ~ 순질공파 야구선수, 족보명 선제(善提)
문경찬(文京贊) 1992 ~ 순질공파 야구선수
문혜령(文惠鈴) 1996 ~ 순질공파 디자이너
34세손
문무일(文武一) 1961 ~ 순질공파 검찰총장, 족보명 창주(昌周)
문국현(文國現) 1949 ~ 순질공파 정치인, 족보명 국주(國周)
문장규(文章圭) 1963 ~ 남제공파 가라데 선수, 재일, 통명 마쓰이 쇼케이(松井章奎)
문대림(文大林) 1965 ~ 순질공파 정치인
문대성(文大星) 1976 ~ 순질공파 태권도 국가대표, 정치인
문준용(文畯鏞) 1982 ~ 의안공파 게임 개발자
문근영(文瑾瑩) 1987 ~ 순질공파 배우
문성곤(文星坤) 1993 ~ 순질공파 농구선수
문빈(文彬) 1998 ~ 2023 순질공파 아이돌
문수아(文秀雅) 1999 ~ 순질공파 아이돌
문성빈(文誠斌) 1995 ~ 남제공파 조종사
35세손
문동주(文東珠) 2003 ~ 순질공파 야구선수
문상흡(文相翕) 1876 ~ 1944 의안공파 독립운동가
36세손
문창기(文昌基) 1962 ~ 순질공파 사업가
문창우(文昌宇) 1963 ~ 남제공파 종교인
37세손
문송면(文松勉) 1971 ~ 1988 순질공파 산업재해 피해자

계보 미상

9. 관련 항목


[1] 감천 문씨의 일부도 남평 문씨의 분파이고, 정선 문씨는 2015년 통계청 조사상 19명에 불과한 소수성이므로 사실상 한국의 문씨는 남평 단본이다.[2] 1품 1등위 품계.[3] 다만 침미다례를 전남 해남으로 추정한 최초의 인물이 쓰다 소키치 와세다 대학 교수로 친일논란이 있는 역사학자 이병도의 지도교수였던 인물이고, 전남 강진으로 추정한 최초의 인물이 경성제대 교수이자 조선사 편수회 간사였던 스에마쓰 야스카즈였으며, 침미다례를 전남 해남, 강진 일대 영산강 유역 세력으로 추정하는 논문의 저자들이 '한국고대사학회'에서 이러한 사조를 이어받은 회원들이라는 점에서 그 근거와 의도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현재 그 당시 나라들의 위치를 표기한 지도라면서 돌아다니는 지도들은 대부분 쓰다 소키치와 쓰에마쓰 야스카즈가 비정한 위치를 근거로 삼고 있다.[4] ○제濟 로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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