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16:06:05

신계군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e40001>
파일:북한 국장_White.svg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wiki style="margin: -16px -11px;"
도인민위
사리원시
송림시 }}}
곡산군 금천군 린산군 봉산군 상원군
서흥군 수안군 승호군 신계군 신평군
연산군 연탄군 은파군 중화군 토산군
평산군 황주군 장단군
}}}}}}}}}



新溪郡 / Singye County
신계군
新溪郡 / Singye County
국가 북한
인구 78,573명
광복 당시 면적 819㎢
광역시도 황해북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 8면
시간대 UTC+9

1. 개요2. 역사3. 유적4. 지리5. 교통6.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1. 개요

황해도(황해북도)의 군.

2. 역사

삼국시대 초기 고구려가 차지한 후 이곳에 수곡성현(水谷城縣)을 설치했다.

신라가 이후 차지한 뒤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하며 단계현(檀溪縣)이 되었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에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 패강진을 신라 서북면에 설치했다는 설을 긍정한다면 여기도 위치상 패강진 관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협계현(陜溪縣)으로 불렸다. 협계 태씨의 본관이 바로 이곳이다.

한편 협계현 외에 훗날 신계가 될 일부분은 신은현으로 불렸다. 1019년, 제3차 여요전쟁시기 거란군의 소배압이 수도 개경에서 100리에 불과한 신은현에 이르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고려군이 기습, 금교역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1445년(세종 27)부터 신은과 협계의 두 현을 합하여 비로소 신계로 불리기 시작했다.[1] 수안군, 곡산군과 함께 이른바 '산중삼읍' 중 한 곳이지만, 평야지대와 산간지대와의 중간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광복 당시 819.9㎢로 8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남북분단 이후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행정구역이 거의 원래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나, 사지면 북반부는 수안군에, 촌면은 곡산군에 넘어갔다. 한편 신계는 기상청이 현재 북한지역 기상예보 서비스를 하고 있는 27곳(황해도에서는 4곳) 의 지점중 한 곳이다.

3. 유적

촌면 궁암리에는 고려 명종 때 조영한 북소궁터가 있다.

4. 지리

군내(郡內)를 예성강이 흐른다. 지질적으로는 4기 현무암 대지가 주류로 곡산에 이르기까지 현무암 평야 지대(신계곡산평야, 소위 미루벌)가 펼쳐져 있다. 곡산군과의 사이에 신곡저수지가 있다.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에는 불리하고 밭농사가 성한데, 특히 고구마의 주산지라고 한다. 일제와 북한은 이 평야의 지형적 이점을 이용해 군사훈련장 및 기지를 설치하기도 했다.

5. 교통

도로는 3번 국도 철도는 청년이천선이 통과한다.

6.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545b96>
파일:황해도 휘장(이북5도위원회) 하양.svg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해주시 상징.png
해주시
파일:송림시 상징.png
송림시
||<-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545b96> ||
파일:벽성군 상징.png
벽성군
파일:연백군 상징.png
연백군
파일:금천군 상징.png
금천군
파일:평산군 상징.png
평산군
파일:신계군 상징.png
신계군
파일:장연군 상징.png
장연군
파일:송화군 상징.png
송화군
파일:은율군 상징.png
은율군
파일:안악군 상징.png
안악군
파일:신천군 상징.png
신천군
파일:재령군 상징.png
재령군
파일:황주군 상징.png
황주군
파일:봉산군 상징.png
봉산군
파일:서흥군 상징.png
서흥군
파일:수안군 상징.png
수안군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50%> 파일:곡산군 상징.png
곡산군 ||<width=50%> 파일:옹진군 상징.png
옹진군 ||
명목상 도청소재지 : 해주시
}}}}}}}}} ||

파일:신계군기.png
파일:신계군.jpg
  • 신계면(新溪面)
    • 관할 리 : 향교(鄕校), 능수(陵水), 마산(馬山), 석정(石井), 성북(城北), 회동(回東)
    • 향교리에 면사무소와 군청이 있었으며, 이름처럼 향교리 동쪽에는 1530년 창건된 신계향교가 있었다. 청년이천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신계역이 있다.
    • 신계읍내를 신계천(新溪川)[2]이 관통하며, 남천교(南川橋)가 놓여 있다.
  • 고면(古面)
    • 관할 리 : 정봉(丁峰), 무고(武庫), 성내(城內), 왕당(汪唐), 입암(立巖), 직동(直洞), 천개(天開), 태을(太乙), 화개(華蓋), 화천(花川)
    • 청년이천선 철도가 지나며 관내에 정봉역이 있다.
  • 다미면(多美面)
    • 관할 리 : 추천(楸川), 가무(歌舞), 강성(江城), 금성(金城), 무시랑(武侍郞), 백암(白巖), 백오(柏塢), 부용(芙蓉), 사암(笥巖), 신성(新城), 중산(中山), 지(芝), 효자(孝子)
    •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신계군 수면(水面)과 토산군 미원면(美原面)이 미수면(美水面)으로 합병되었다가 1937년 다면(多面)을 흡수하여 다미면으로 개칭하였다. 강성리·부용리·사암리·신성리·지리는 토산군 미원면(부용리와 신성리는 구 대룡정리, 지리는 구 소룡정리였다), 금성리·중산리·효자리는 다면의 영역에 해당한다.
  • 다율면(多栗面)
    • 관할 리 : 구만(九灣), 삼미(三美), 반시(班市), 백곡(白谷), 송릉(宋陵), 죽서(竹棲), 침교(砧橋)
    • 청년이천선 철도가 지나며 관내에 침교역이 있다.
  • 마서면(麻西面)
    • 관할 리 : 초탄(草灘), 갈현(葛峴), 구락(龜洛), 번지(番地), 삼거(三巨), 신촌(新村), 은점(銀店), 증영(增永), 천곡(泉谷)
  • 사지면(沙芝面)
    • 관할 리 : 석교(石橋), 굴원(屈源), 막대(幕垈), 사이곡(沙伊谷), 산북(山北), 신(新), 원교(院橋), 주답(注畓), 태봉(胎峰), 화성(花城)
  • 적여면(赤餘面)
    • 관할 리 : 대평(大坪), 대정(大井), 목전(木田), 사정(沙井), 삼합(三合), 승평(昇坪), 신대(新垈), 화야(花野), 흑천(黑川)
  • 촌면(村面)
    • 관할 리 : 사현(沙峴), 궁암(宮巖), 세림(細林), 율암(栗巖), 이탄(梨灘)
    • 북쪽 끄트머리의 외진 곳에 위치하며, 크고 아름다운 신곡저수지로 인해 신계군의 다른 면에서 바로 접근할 수 없고 곡산군 도화면을 거쳐서 들어가야 하는 실질월경지이다. 북한에서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때 아예 곡산군에 편입시켰다. 사실 신계읍보다 곡산읍이 더 가깝기도 하다.
    • 궁암리에는 고려 명종 때 조영한 3소궁(蘇宮) 중 하나인 북소궁(北蘇宮) 터가 있다.

[1] 1396년에 이미 신은과 협계를 합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긴 했는데, 지리지가 작성된 후 다시 분리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2] 예성강으로 합류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