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10 20:55:39

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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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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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과도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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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장면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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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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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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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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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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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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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7대
이강래
8대
문희상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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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개편[3]초대
문희상
2대
최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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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0대 후반기 국회의장
문희상
文喜相 | Moon Hee-sang
파일:2018102901002109100165391.jpg
출생 1945년 4월 14일[4] ([age(1945-04-14)]세)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5]
본관 남평 문씨[6]
최종 학력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신체 167cm
병역 해군 중위 만기전역
종교 천주교 (세례명: 바오로)
가족 배우자 김양수, 슬하 1남 2녀
소속 정당 무소속[7]
지역구 경기 의정부시 갑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4, 16, 17, 18, 19, 20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제20대 후반기 국회의장
약력 학교법인 경해학원 이사장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제26대 대통령비서실장
국정자문회의 의장
열린우리당 의장
제18대 국회 부의장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외부 링크 공식 사이트 블로그

1. 개요2. 생애
2.1. 정치 활동2.2. 국회의장 시절
3. 논란
3.1. 천황에게 사과 요구
3.1.1. 잘못이다3.1.2. 잘못이 아니다3.1.3. 결론
3.2. 임이자 성추행 논란
4. 이야깃거리5. 선거 이력6.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며 현직 국회의장이다.

의정부시 행복로 근처에 위치한 서점 숭문당의 창업주. 호는 정흥(正興)인데 사실은 개명 전 이름은 문정흥이었다. 야구인 김영조사위이며,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외삼촌이다.

대한민국의 제14대, 16대~20대 국회의원이며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에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2번이나 역임한 거물급 인사다.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어 국회법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적이 소멸되고 현재는 무소속.[8]

동교동계 직계와 친노계에 모두 해당하는 인물이며, 친노계의 큰형님격인 인물이다.

2. 생애

1945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9] 아버지가 의정부 지역의 대지주였다. 말하자면 금수저. 경복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생운동에 투신, 여러 번 감옥을 들락날락거렸다. 이 때문에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그만두고 1980년대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 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인다. 의정부시가 전방 지역이고 원래 실향민이 많아서 레드 콤플렉스가 심한 지역인 데다가, 아버지 역시 열혈 박정희 지지자로서 매우 보수적인 인사였기 때문에, 당시 "빨갱이"로 매도되던 김대중 밑에서 일하는 아들의 행동에 대노했다고 한다.

2.1. 정치 활동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이 총재로 있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김문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홍문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김대중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대중이 당선된 날 아버지 묘소에 가서 "아버지! 제가 간 길이 옳았죠!" 라고 오열했다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현직 국회의원인 홍문종과의 공천경합에서 이겨서 출마했고 무소속 홍문종, 한나라당 김문원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자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10]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홍문종을 상대로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2005년에는 전당대회를 통해 열린우리당 의장이 되었으나, 연이은 재보궐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정세균 원내대표에게 의장직을 물려주고 사임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김상도 후보를 상대로 당선되었다. 이후 18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을 지냈다.

다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다시 김상도 후보를 꺾고 당선, 5선 의원이 되었다. 이어 열린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 지도부가 사퇴하자 첫 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계파색이 옅었기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후문.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사퇴하자 두 번째로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정세균 상임고문, 원혜영과 더불어 당내 여러 인사들과 친화력이 높아 당내 대표적인 관리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셋 다 모두 범 친노계 인사로 꼽힌다.

2014년 말 땅콩회항 사건이 터진 가운데 2004년, 처남의 대한항공 취업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희상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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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3일 6선 당선 직후 기뻐하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컷오프됐는데 "도대체 왜 짤린 거지?"가 대체적인 전문가의 의견이다. 취업 청탁 의혹이 있지만 이미 12년이나 지난(…) 문제일뿐더러, 문희상의 지역구에 딱히 대체할 인물도 없어서[11]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분개했다고 한다. 결국 원래 지역구에 '전략공천'되었고, 6선에 성공했다.

야권의 승리와 더불어서 2016년 4월 현재 20대 국회의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계파색이 옅고 이제 나이도 많아서 이석현, 정세균보다 정계은퇴에 대한 부담도 크기 때문. 다만 2004년 취업청탁에 대한 구설수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의장직을 건 당내 경선에서 정세균에게 패배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가 되었다. 사실 일본통까지는 아니어도 일본과 나름대로 연이 있는 인물이다.

5월 17일날 열린 일본과의 외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한일 양국, 한미일 삼국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위안부 합의를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특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재협상 등의 요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경우 회담에서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추후 유지 여부는 새 정부가 정할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아베 신조와의 만남에서 아베는 높은 위치의 의자에 앉고 문희상 특사는 낮은 의자에 앉게 해서, 일부러 이렇게 무시한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MBN 기사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여기서도 문희상이 앉았던 의자와 똑같은 의자에 앉았고, 이때도 홀대론이 나왔다.

2017년 국회 본회의 출석율 100%(!)를 기록했다. 다선의원들이 대체로 정당 활동이나 지역구 활동에 전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기록이다. 문 의원을 제외하고 출석율 100%를 기록한 의원들이 모두 20명인데 모두 초선이나 재선, 높아봐야 3선 의원들이다.

2.2. 국회의장 시절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거에 박병석과 함께 출마했다. 묘하게 민주당은 재수 성공률이 높기 때문에(…) 차기로 유력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18년 5월 16일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거에서 총 116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박병석(47표)을 넉넉하게 제쳤다. 이후 여야 간 상임위 분배 기싸움으로 의장 선출이 연기 되었으나, 7월 10일 여야 원내대표들이 7월 13일 국회의장 선출을 위한 본회의를 합의하면서 13일 본회의를 통해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와 동시에 국회법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적이 국회의장 임기 동안 소멸되어 무소속이 되었다.

당 차원에서는 문희상의 지역구인 의정부시 갑은 당분간 직무대행체제로 한다고 했으나, 상임부위원장에 당 활동도 없이 서점만 운영하던 아들이 임명되면서 지역구 세습을 하려는 게 아니냔 불만이 있는것 같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합의를 이끌어내며 "의정사에 남을 쾌거"라고 자화자찬했지만, 교섭단체 몫만 폐지하고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 몫 특활비는 반으로 삭감하는 수준에 그쳐 '꼼수 폐지'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과의 협의를 통해 상임위원장단 몫은 완전 폐지하고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의장단 몫 일부만 남기기로 하였다. 문 의장은 이 자리에서 완전 불용을 주장했으나, 유 사무총장이 끝까지 5억 원 정도의 특활비 유지를 주장해 관철시켰다고 한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국민'의 뜻과 등가한 국회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두 달 전에는 '국민'의 국회 신뢰도가 바닥임을 인정했다. #

나경원 원내대표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논란으로 국회가 시끄러워졌을 때, 양 당의 모습은 공멸의 정치라며 의원들을 진정시키고 나 원내대표에게는 말이 안되는 소리라도 경청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며 연설을 계속 하도록 했다. 이에 나경원이 '역시 민주당 소속 의장'이라는 발언을 하며 서로 간에 기싸움을 하기도 했다.

정세균에 이어 내각제 개편 내지는 국회 권한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 국회의 뜻이 국민의 뜻과 동치되야 한단 주장외에도 국회의원의 개별적인 외교 참여를 장려하고 있으며, 중국에 미세먼지 관련으로 국회차원의 사절단을 파견하려 했다가 중국 쪽에서 거절의사를 밝히기도 했다.#[12] 이미선 헌재 재판관 임명에 대해서도 헌법에 있는 대통령 임명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부적격이란 판단한 결의가 있으면 대통령은 임명을 안 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야 한단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2019년 제헌절 축사엔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것이 촛불의 민심이란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19년 5월, 문 의장 발 의원외교 개혁 차원의 12개국 의회외교포럼이 출범했는데# 7월, 일본의 대한국 수출 제재 사태가 불거지며 한·일 의회외교포럼을 가동시키는 등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의원연맹과 별도 조직인 한일의회외교포럼은 구성이 화려한데, 문 의장은 그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가장 오랫동안 맡아오기도 했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대일 특사단 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이 포럼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회장은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던 원내 최다선인 무소속 서청원 의원이 맡고 있다. 또한 현재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과 경제부총리 출신 김진표 의원 등 중진-원로들이 포진해있다.

또 한일의회외교포럼 자문위원단에는 각각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에서 주일대사를 지낸 최상용, 라종일, 신각수 전 대사. 한일협정 관한 한 국내외 최고 전문가인 이원덕 국민대 교수[13],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등이 포진해 있는데, 정파를 떠나 국익을 위해 대일관계에 관한 최고 역량과 경험을 갖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다소 감정적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을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 의장에 따르면 한일의회외교포럼을 중심으로 한 국회 대표단이 7월 말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데, 현재 양국의 갈등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 국회 대표단의 일본 방문에서도 이른바 ‘홀대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0년대 이후 일본의 정치 경제적 위상 축소가 이어지며 양국 정계에서 지일-지한파 정치인이 점점 사라져 왔는데, 원로급 인사들의 움직임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3. 논란

3.1. 천황에게 사과 요구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공식 명칭인 '천황' 표현을 쓰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발언과 아키히토 천황의 언행을 존치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2019년 2월 8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천황을 "전쟁 범죄 주범의 아들"이라 칭하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일왕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 이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즉각 반발했고 아베 총리 또한 놀랐다며 문 의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기사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문희상 의장의 발언에 대해 철회를 권고할 뜻은 없다고 밝혔다.기사

이에 대해 문희상 의장은 "일본이 제대로 사죄한 적이 없다"면서, "지도자의 진정 어린 사과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밝혔다. "깜짝 놀랐다"는 아베..전범 국가의 '머나먼' 반성

또한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일본 측이 사과를 요구한다는 소식을 듣자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내가 한 말은 평소 지론이며 10년 전부터 해온 얘기"이라며 "근본적 해법에 관해서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소신을 거듭 밝혔다. 이어 "위안부의 기본적인 문제는 딱 하나로, 진정 어린 사과"라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왜 이리 오래 끄느냐'에 내 말에 본질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합의서가 수십 개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피해자의 마지막 용서가 나올 때까지 사과하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 의장은 "김복동 할머니가 원한 것은 일본을 상징하는 사람인 아베 총리가 사과한다는 엽서 하나만이라도 보내달라는 것"며 "그런데 터락만큼도 (그런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을 보니, 이렇게 번져서는 마무리가 안 된다"고 밝혔다. 문희상 "일왕 사죄 요구, 사과할 사안 아냐"

일본 내에서는 총리 같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가의 상징인 천황을 건드려서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하다. 일본 네티즌들은 "(일본 정부는) 유감 표명만 하지 말고 실력행사를 해야 한다", "천황 폐하에 대한 언급은 역린을 건드린 것", "조심해줬으면 하는 수준이 아니다. 큰 문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은 문 의장의 이번 발언이 한일 간 화해를 모색하는 와중의 발언으로 보이지만 천황의 정치적 이용을 촉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라 비판을 받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일왕, 위안부에 사죄해야"…日네티즌 '뜨거운' 논쟁

문 의장의 해당 발언에 대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해 우려스럽다.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펠로시, 문희상 면전서 "김정은, 남한 무장해제 원한다" [14]

한편 비슷한 성격을 가진 예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과요구 때와는 다르게 정치 성향에 따라 보수, 진보 네티즌들의 평가가 180도 달라지는 진영논리도 보인다.

3.1.1. 잘못이다

그리고 아키히토 천황은 일본이 한국에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한국에 사과한 바 있으며, 반전과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언행을 다수 했던 인물이다.

이 발언은 국내의 여론과는 달리 문희상의 가장 큰 실책으로, 아키히토는 전쟁에 대한 법적 책임이 전혀 없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1998년에 사과를 했다. 그런데도 또 천황의 사과를 요구한다는 것에서 비판을 면할수가 없다. 이미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 사과 요구로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적이 있었는데, 문의장의 이러한 발언은 또 다시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전쟁의 책임은 히로히토에게 있으며, 현재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실권을 가진 수상에게 받아야 하는 거지 허울뿐인 천황에게 받을 명분은 전혀없다. 한국은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연좌제를 폐지했으며, 1948년 제헌헌법을 통해 완벽히 명문화되었다. 한 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이를 어겼던 건 군사정권 시절뿐이다.

3.1.2.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천황은 단순 자연인 일개 개인으로 취급될 수 없다. 천황은 상징으로서의 정치체이다. 그리고 이 상징은 신(천황)의나라 일본을 수호해야한다는 식으로 전쟁에 동원되었다. 또한 천황은 계승되는 지위이기 때문에 그 지위는 전쟁책임을 지고 있다. 법적취급은 당연 연좌제 없는 자연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천황이 달라져도 천황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이유는 천황지위의 정치체적 성격때문이다. 왕이라는 지위가 가진 개인적 성격과 정치체적 성격의 중첩은 옛 프랑스 왕국의 "왕이 돌아가셨다, 왕 만세!"라는 언뜻 보면 고인드립스러운 문구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그리고 반드시 화목하게 오족협화마냥 한일관계가 이루어져야한다는 의무는 없다. 또한 한일관계 파탄은 일본 정치인들의 사과는 하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유치하고 그에 참배하는 반성이 없는 태도가, 그리고 이런 태도를 문제삼지 않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더 근본적이고 더 큰 원인이다. 이를 이명박과 문희상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3.1.3. 결론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만나 이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이 발언에 대해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해할만한 발언이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천황까지 언급한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거라는 의견을 표했고 문 의장 역시 이에 공감했다.

3.2. 임이자 성추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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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국회의장실 항의 방문 도중 몸다툼에서 문희상 임이자의 볼을 수 차례 만진 장면이 포착되었다. 처음의 접촉은 자유한국당 의원이 위력[16]으로 문희상 의장을 막는 과정에서 일어난 데다 이후로도 임이자는 자신을 만지면 성추행이라며 몸을 들이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본인이 논란을 위해 일부러 몸을 들이댄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양손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감싸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 맞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임이자 성추행 논란이 터지고 겨우 1시간만에 '동료 의원 성추행한 문희상 의장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을 공개한 것으로 보아 이 사태가 이미 자유한국당이 기획했던 사태라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실제 현수막 제작업체에서 당일 현수막을 제작하는 경우 실제로 1-2시간안에 출고가 가능하며, 당 차원에서의 대응이므로 기존에 거래하고 있던 인쇄소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기획된 사태라는 지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여성단체들은 문 의장이 잘못하기는 했지만 한국당이 정쟁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4. 이야깃거리

  • 의정부 시 지역(구 양주목/양주군 자북곡면, 시북면, 시둔면)에서 수십 대째 살아온 진정한 토박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 힘입어 다선 국회의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안병용 의정부시장도 문희상을 엄청 예우한다고 하며[17], 의정부시청에 문희상이 등장하면 의정부시청은 장관급 인물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예우를 하고 있다고 한다.[18]
  • 현역 정치인 중에서 상당히 독보적인 인상파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주류 언론에서 외모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본인도 외모를 이용한 자학 개그를 만들 지경이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유순한 성격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취미도 서예이며, 국회의 서예 동호회 회원이라고 한다.
  • 언론이나 정계에서 불리는 별칭으로 '장비', '포청천' 등이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부동명왕'이라는 별명이 새로 떠오르고 있다. 그나마 칭찬해 주는 말이 "문희상, 겉은 장비 속은 조조"일 정도로 아무리 칭찬해줘도 외모는 결국 장비라는 반응.
  • 인상이 강경 보수파 정치인으로 보여서 잘 모르는 젊은 지지자들 사이에선 '자유한국당 의원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있다.
  • 조카 이하늬는 2015년 12월 23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이 살 찌면 외숙부 문희상과 닮았다고 자학개그를 쳤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 2007년 미스 유니버스 4위에 오른 국제공인 미녀가 친 개그다(...) 꽤 알려진 사실이라 네이버에 문희상 치면 연관 검색어가 '문희상 이하늬'고, 실제로 외숙부의 선거 유세 지원을 나오기도 했다. 이하늬의 아버지, 즉 문희상의 매제인 이상업[19]은 문희상이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경찰청장 후보에 이름이 올랐었지만, 정작 이 문희상과의 관계 때문에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의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국민들이 어찌 납득하겠냐'라는 논리를 펴서 임명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문희상 본인도 반박할 수 없는 지적이라 받아들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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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외모를 나누자면 인상파에 분류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일한 스타일로는 이해찬이 있다고. 다만 이해찬은 까칠함이 많이 드러난다.
  • 19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이해찬과 문희상이 나란히 앉았는데, 이 두 사람의 표정만 보면 "강성 반문 성향의 원로 의원들이 억지로 온 것 같다"는 반응들이 올라왔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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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당시 한나라당 국방위 간사가 유승민이었는데, 2009년 당시 제2롯데월드 논란에서 당시 유승민은 여당 간사임에도 매우 신랄한 비판으로 제2롯데월드를 반대했었는데 이것이 꽤 인상적이였던 모양. 당시 국회 속기록에서 "이런 분이 있기에 이명박 정권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 존경의 염(念)을 표한다." 라고 하였으며. 훗날 문재인 대선 선대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유승민 후보는 대통령감이다. 자질과 역량을 모두 갖춘 정치인." 이라며 이례적인 상대후보 평을 한 적이 있을 정도.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평화민주당 22,492 (27.50%) 낙선 (3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민주당 40,171 (38.66%) 당선 (1위) 초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새정치국민회의 37,490 (33.01%)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새천년민주당 59,722 (45.76%) 당선 (1위) 재선[22]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갑) 열린우리당 42,823 (52.12%) 당선 (1위) 3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갑) 통합민주당 32,211 (47.50%) 당선 (1위) 4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갑) 민주통합당 39,252 (47.02%) 당선 (1위) 5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갑) 더불어민주당 38,739 (42.84%) 당선 (1위) 6선[23]

소속 정당인 민주당계 정당이 워낙 개편이 잦아서 선거마다 당 이름이 다르다. 이건 민주당계 최다선 의원인 이해찬 의원도 그렇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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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원직 사퇴[2] 의정부시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이다.[3] 국가안기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개편[4] 음력 3월 3일.[5]경기도 의정부시. 그리고 조상 대대로 양주 지역에서 수대째 뿌리를 내려온 양주시, 의정부시 토박이다.[6] 문재인과 같은 본관이다.[7]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임되면서 국회법에 따라 당적 없이 의정 활동을 하게 됐다. 원 소속정당은 더불어민주당.[8] 국회의장 임기 후 정당 복당 신청은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전임 국회의장이었던 정세균의 경우도 임기를 마친 직후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했지만, 타 국회의장도 거의 대부분이 임기 만료 직후 원 당으로 복당하였다. 예외가 있다면 19대 국회 하반기에 국회의장을 역임한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친이계의 정의화가 있다. 20대 국회의원 경선 관련해 박근혜, 친박의 전횡으로 인해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고 친이계 인물들과 신 세력을 형성하겠다고 선언한 것. 의장 시절 박근혜 대통령 및 청와대와 각도 많이 세웠어서 만에 하나 청와대의 오더를 통한 복당거절로 쪽을 줄 수도 있었다.[9] 아버지는 1918년 파주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는 양주군에서 태어난 관계로 진정한 토박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그의 선조 역시 대대로 양주군에 뿌리를 두었다고 한다. 언론에 따르면 10여대째 토박이라고 한다.[10] 이후 한나라당 후보로 나온 홍문종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온 강성종을 상대로 이겼다.[11] 기껏해야 의정부시장인 안병용 정도인데, 안병용은 정황상 3선 끝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12] 중국에서도 국회를 무시한 게 아닌 게, 이미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미세먼지에 대한 논의를 했기 때문이다.[13]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경대에서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했다. 한일협정과 관련된 양국의 외교 문서를 모두 해제, 편찬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징용·징병 피해자 보상을 위한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기도.[14] 그런데 펠로시 자체가 과연 한일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의 목소리도 나온다. 예를 들어서, 펠로시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일본이 존중했으면 좋겠다"란 말을 했는데. 이 합의가 우리가 아는 위안부 합의라면 이거는 펠로시가 한일 관계나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단 것이 된다.[15] 당장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건 그의 아버지이자 부왕인 히로히토 천황이었다.[16] 당시 영상을 보면 임이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직접 '여성의원들이 막아야 해'란 발언을 했다.[17] 산하 선거구가 4~5개 정도 되는 대도시(수원, 창원, 성남, 용인, 고양, 부천 등)가 아닌 곳의 기초단체장들은 지방선거 공천에서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뭐 당연한 거긴 하다. 참고로 저 대도시 기초단체장 공천은 국회의원이나 시도당위원장 수준이 아니라 중앙당에서 직접 신경쓴다.[18] 지역 주민들도 문희상에 대한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인데, 특히 의정부, 양주, 동두천, 포천, 연천군 출신이 더욱 더 그렇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기 북부의 수장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전방 군사지역이라 보수 성향이 강해서 민주당 인사에게는 불리한 지역정서를 지역연고로 메꾸고 있는 셈.[19] 문희상의 여동생인 문재숙 교수와 결혼했다.[20] 뒤에 보이는 인물은 장병완, 심재권, 이석현, 양승조다.[21] 이때 오히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측에서 특사로 온 문희상에게 자신보다 낮은 소파를 제공하여 외교 결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22] 참여정부 비서실장 임명으로 인한 의원직 사퇴[23] 후반기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