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6 20:08:01

임종석

파일:청와대 반전.png 대통령비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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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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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31대 32대 33대 34대 35대 36대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이원종 한광옥 임종석 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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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TzLTWj.jpg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박원순 시정 (2011 ~ 2022)
제46대
기동민
제47대
임종석
제48대
하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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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최규성
제3대
임종석
제4대
박선숙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성동구)
선거구 통합
이세기[1]
김학원[2]
제16대
임종석
선거구 분리
최재천[3]
임종석[4]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성동구 을)
선거구 분리
임종석[5]
제17대
임종석
제18대
김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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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menu.mt.co.kr/2017051109378025915_1.jpg
이름 임종석 (任鍾晳)[6]
출생일 1966년 4월 24일 ([age(1966-04-24)]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생지 전라남도 장흥군
신체 176cm
본관 장흥 임씨
학력 용문고등학교 -1 ([[졸업]])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1 (무기재료공학 / [[학사]])
종교 천주교(세례명: 프란치스코)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6, 17
가족 관계 아내 김소희, 딸 임동아
현직 대통령비서실 외교특별보좌관(UAE 특임)
병역 제2국민역[7]
약력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
열린우리당 원내 대변인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제3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
대통령비서실장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1. 개요2. 생애
2.1. 정치 입문2.2.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2.2.1.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
3. 약력4. 사건
4.1. 주사파 활동 논란 관련 사건
4.1.1. 임종석 본인의 주장
5. 논란
5.1.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5.2. 축구대표팀 관련 발언5.3. 비서실의 제왕적 권한 및 자기 정치 논란5.4. 군 정보 누설 논란5.5. 청와대 특수활동비 논란5.6.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논란5.7. 김경수 응원 논란
6. 선거 이력7.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전대협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제16대~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으며, 줄곧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해 오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 후보 비서실장으로 합류했다. 뒤이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친문계로 분류되지만 일부에서는 박원순계로도 분류하기도 한다.[8]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남요원 전 문화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 문재인 정부 1기 참모진이 2019년 02월 18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2. 생애

1966년 4월 24일생으로 전라남도 장흥군이 고향이다. 이후 상경하여 서울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특히 국회의원쯤 되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거나(예 : 문재인, 은수미) 특정 분야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정치에 뛰어든(예 : 이회창, 이명박) 경우가 많지만, 임종석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1학년 때, 노래패에 가담하면서부터 운동권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88년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되어 1989년 한총련의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일명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으면서 학생 운동권의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 당시 주도한 것이 바로 임수경의 불법방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따른 경찰 수배에서 도피하다가 결국 1989년 말 체포, 3년 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당시 임종석은 1년 가까이 수배를 따돌리며 도망쳤고, 전국에 10만 장의 수배 사진이 붙었으며, 임종석 담당 형사(청량리 경찰서 신중현)가 과로로 사망할 정도였다는 후문이 있다. 교묘히 수배망을 따돌리던 임종석은 '임길동'이라 불렸다.

1990년 12월 26일 대법원에서 임수경의 밀입북을 몰래 도와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판결을 받았다.# 유죄판결에 따른 실형으로 인해 공식적 병역사항은 미필이다. 1993년 5월 원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8월에 한양대 4학년에 복학하였고, 1995년 8월 대입 10년 만에 졸업했다. 졸업식에서 총동문회장상과 공로상을 수여받았다.

2.1. 정치 입문

1994년 말부터 시민운동 쪽에서 활동하였다. 가까운 동료들과 만든 청년활동단체인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소장직을 맡았다.

1995년 모래시계 세대 정계진출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오던 때부터 정계진출 유력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다. 그러나 1996년 총선에는 자격이 되지 않아 출마하지 못했다.

1999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사면복권 당시 복권되면서 출마 자격을 얻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창 386 운동권 출신 영입이 활발할 때 새천년민주당에 입당, 서울 성동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9] 4선의 이세기 한나라당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다만, 임종석 자신은 의외로 전대협 의장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원은 되지 못했는데,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당선되고, 열린우리당 대변인도 했다지만, 당내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거나 거물급 의원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정계 입문 후 임종석의 의정활동은 국가보안법 폐지,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 교류사업 등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초선 의원 시절인 2000년 7월 임종석은 국보법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보완책으로 간첩죄에 대해 형법상 처벌을 강화하면서 대북 접촉, 통신교류에 대해선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 규제하면 된다.” 또 2004년 7월에는 의원실 주최로 ‘국보법 폐지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고, 같은 해 8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위원모임에서는 “국가보안법은 위헌적이며 반(反)민주악법의 상징이기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04년 12월에는 국보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임종석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수사에도 적극 반대했다. 대북송금 사건은 김대중 정권 때인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5억 달러를 불법송금한 사건을 말한다. 2003년 3월, 임종석 등 당시 민주당 소장파 의원이 주축이 된 모임인 ‘정치를 바꾸는 젊은 희망’은 대북송금 특검 수사 반대성명을 냈다. 같은 해 6월에는 민주당·개혁당(대표 유시민) 소속 의원 61명과 함께 대북송금 특검 수사 마무리를 촉구하는 성명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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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가결을 저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위 영상은 당시 YTN 돌발영상의 장면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열풍에 밀리면서 한나라당 김동성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당내에서 활동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출범 당시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문제는 이 당시 임종석이 정치자금법 문제로 재판에 걸려 있었다는 점. 결국 19대 총선 직전 나온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면서 총선 출마가 좌절되었다. 사실 출마 자체는 할 수도 있었지만, 재판 문제로 인해 공격을 받을 것 같자 결국 포기한 것. 한명숙 당시 대표가 끝까지 만류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는 사퇴를 선택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사무총장으로서 공천권과 관련하여 소위 노이사 공천(친노-이대-486 위주 공천)을 주도했다는 공세도 한몫 했다. 성동구 을 지역구는 그의 친구인 홍익표 교수에게 넘어갔고, 그는 사무총장직도 내놓게 되었다. 그의 사퇴 원인이 된 정치자금법 문제는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면서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났다.

2014년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해당 재단은 남측 방송을 대리하여 대한민국 내 북한 저작물 이용의 저작권료를 북한에 지불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0]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 캠프에서 활약하면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2015년까지 재직하였고, 때문에 박원순계의 대표주자 정치인으로 분류되었다.

2014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임종석은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노선이나 정책이 상당히 치우쳐있다"며 "과도하게 사회, 정치적 문제에 집착하고, 국가 운영과 관련된 의지에는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총선 출마를 위해 정무부시장 직을 내려놓은 후, 은평구 을 출마를 선언한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의 거물인 이재오와 겨뤄서 정치적인 재기를 모색하였는데, 그만 당내 경선에서 무명의 신인이지만 은평구 내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만들었던 강병원 후보에게 패하면서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많은 기대를 받으며 정치에 입문했지만, 18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세 번의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10년 넘게 원외에 남게 되었다. 임종석과 함께 국회의원 자리에 도전한 다른 박원순계 정치인들도 기동민을 제외하면 경선과 본선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물 간 정치인으로 잊혀지는 줄 알았는데...

2.2.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2017년 문재인 캠프의 비서실장으로 영입되었다. 임 실장은 19대 대선 국면 동안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전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문재인 당시 후보를 상대로 극단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다만 유시민 작가는 썰전에서 임종석을 박원순계로 분류하는 이 같은 시선에 대해서는 꼭 그런 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면서 '편견이다'라고 비판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 11월, 국회 국감장에서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과 충돌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주사파 · 전대협이 청와대를 장악했다"면서 "전대협의 강령과 회칙을 보면 미국을 반대하고 모든 외세에 부당하다고 본다. 회칙을 보면 민족과 민중의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 구현을 밝히고 있다. 지금 청와대에 있는 전대협 인사들이 이런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임종석 실장을 비판했다.

임종석은 실장 이에 대해 "전희경 의원님 말씀에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아주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제5, 제6공화국정치군인들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전 의원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제가 살펴보진 않았습니다.[11] 그러나 지금 의원님께서 거론하신 대부분의 그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의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습니다."며 발끈했다.#

'비서실장 자리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고, 박근혜정부 시절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왕실장'으로 군림하며 대통령 참모 그 이상의 과도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기춘대원군'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임종석 또한 이를 반복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다. 이는 아래에 있는 대통령비서실 권한 관련 문단 참조. 반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인수위 기간 없이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초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내각 구성을 끝나고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면서, 자연스럽게 청와대 비서실의 리더인 임 실장이 보폭이 커졌다. 그 덕에 청와대에 머물지 않고 대외적으로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해결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른팔로서, 추미애 여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장미꽃을 선물하며 당청 불화설을 일축하였고, 추경 통과를 위해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에게 대통령 대리인으로서 사과하면서 막힌 정국을 해결해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또한, UAE에 특사로 파견되어 양국의 외교적 갈등 봉합에 핵심 역할을 했다. UAE는 UAE 논란으로 야당과 언론에 뭇매를 맞고 있는데도 침묵을 지킨 임 실장을 보고 신뢰를 느꼈다고 한다. #

1년차가 되면서 제왕적 비서실 및 자기 정치로 비판을 받았으며, 음주운전, 음주폭행 등의 공직기강 해이가 청와대에서 일어나는데 비서들은 SNS에 집중하고 있다, 겉멋만 들었다는 지적이 여당에서도 나온다. 또한 통신사고가 일어났는데도 관심밖이 었다.#

이렇게 이번 정권의 실질적 2인자으로 활약하면서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하면서 야권에서 행적 하나하나를 비판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한편 임 실장에 대한 여론은 긍정평가 48.9% VS 부정평가 38.7%로 드러났다.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보다 높긴 하지만, 자기 정치 논란이 일면서 과거에 비해 지지율이 약 10%p 하락했다. 또한 매우 잘 한다, 매우 못한다 등으로 여론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사

2019년 1월 청와대 인사 개편안을 발표하고 퇴임하였다. 후임 비서실장은 노영민 주중대사.

2.2.1.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확정된 뒤인 2018년 3월 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7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할 준비위원회를 꾸리라는 지시를 내렸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북정상회담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준비위원회가 구성된다고 발표되었고, 3월 16일 첫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는 중요 사항을 결정할 전체회의를 매주 또는 격주에 한 차례 열기로 했다. 준비위 전체회의와 별개로, 실무 논의는 위원장과 총괄간사, 3명의 분과장이 참석하는 분과장 회의에서 논의하며, 이 회의는 주 3∼4회 열기로 했다.

2018년 4월 28일,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오전 남북정상회담장에 자리했다. 서 원장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카운터 파트였다면, 임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가장 곁에서 보좌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카운터 파트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은 1달 동안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회담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북측과 꾸준히 사전 의제 조율 작업을 벌여 한반도 비핵화를 뺀 나머지 의제들에 대해선 회담 전에 상당부분을 남북이 합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러한 임 실장의 역할에 주목해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전 의원의 방북을 주도하는 등 학생운동 시절부터 그가 거쳐온 인생역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최룡해와 함께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평가 받고 있는 김여정 제1부부장과 호흡을 맞춘 것이 임 실장이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를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18년 9월, 임종석은 국회의장단과 외통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등 총 9명을 제3차 정상회담에 초청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애초 불참의사를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회담 며칠 전 언론을 통해 일방적 재초청을 공표한건 정략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주영,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정기국회와 국제회의 등의 일정으로 불참한다고 했다.#

3. 약력

4. 사건

4.1. 주사파 활동 논란 관련 사건

이 문서는 토론을 통해 임종석과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해방실천연대 관련 논란 등재 금지(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1 #2 과거 대학 재학 시절, 전대협 의장으로서 임수경 방북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지명수배 되어 크게 논란이 됐었다. 지명수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포위망을 빠져나와 각종 운동권 활동에 참가하는가 하면, 기습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덕분에 당시 임종석의 포상으로 2계급 특진과 1000만 원의 보상금이 걸려 있을 정도였으며, 임종석을 잡기 위해 12만 명의 경찰이 동원됐었다. 국보법·집시법 위반 외 10여 개의 볍률 위반 혐의와 임수경의 방북을 도와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서울 고등법원 형사4부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3 한번 더 항소하여 1990년 12월 26일 대법원 형사1부(주심 윤관 대법관)은 임종석의 상고를 기각해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 되었다. 여담으로 임수경은 탈북자들에게 변절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

또한 김정일의 사망 당시 임종석은 북한에 조문을 써 보냈고, 북한에게 답신을 받게 되었다. 이후 임종석은 그 조문에 대한 답신을 박정근의 구속 사유를 비꼬기 위해 트위터에 올리게 되었는데,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되자 각종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통일부의 허가를 받고 통일부에 활동내역 신고를 한 상태에서 진행된 남북교류라서 실정법을 위배하는 사안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으나 근거는 없다. 근거가 있다면 추가바람 # 트윗 아카이브, 사진 아카이브

자유한국당에서는 비서실장 임명에 대해 과거 행적을 들어, 이런 주사파 출신으로 알려진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는 게 합당하냐며 반발하였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 수사 반대, 美 북한인권법 항의출처,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대하고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에는 북한 핵실험의 원인이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때문이라며 대북유화정책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 또한 임종석은 의원 시절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이적단체 규정 철회에도 적극 나섰다. 2002년 9월 당시 의원으로서 한총련 이적 규정 철회를 위한 국회의원 탄원서를 작성해 사법부에 제출했다.

4.1.1. 임종석 본인의 주장

1989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은 전대협의 핵심 간부들이 김일성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주사파라는 지적에 대해 “전대협이 지향하는 이념은 자주 민주 통일이며 북한주체사상은 결코 전대협의 지도 이념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임종석 당시 의장은 “전대협이 북한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대협은 북한을 찬양한 적도 없었다. 전대협이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나 정부가 주장하듯 북한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이적단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5. 논란

5.1.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사실 임종석 본인의 문제보다는 이후에 이명박자원외교에 따른 실정으로 인한 문제라는 게 밝혀지면서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2. 축구대표팀 관련 발언

임종석 비서실장은 2018년 6월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멕시코에 1-2로 패한 뒤 부진한 경기력 등으로 대대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신태용호)에 대한 의견을 남겼다. 임종석 "독일전서 근성·투지 강요말자…맘껏 즐기라"

글의 요점은 "팬들이 선수들에게 너무 가혹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였지만, 첫 문단부터 "선수들에게 근성과 투지를 강요하지 말자" 라는 발언이, 안 그래도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근성과 투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대표팀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축구팬들의 심기를 다시 한 번 자극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5.3. 비서실의 제왕적 권한 및 자기 정치 논란

"내각과 장관들이 소외되고 대통령비서실의 권한이 너무 크다", "행보가 비서 본연의 역할을 벗어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10차 개헌안 발표가 대통령비서실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보여주는 예시로 꼽힌다. 해당 문서의 절차적 논란 문단 참고.

사실 이러한 지적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초반부터 일자리창출, 적폐청산 등 국정현안을 다룰 때부터 제기되었다. 줄곧 주무부처가 아닌 청와대 비서실을 핵심에 두고 움직였다는 것이다. 2018년 3월 16일 출범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서는 '부통령급' '국무총리급' 비서실장이라는 뒷말도 나왔다. 기사1 또한 "청와대 참모들이 정책을 뒷받침하고 내각 장관들이 정책 전면에 나서야 하는데, 지금은 청와대가 정책방향을 정해 '톱다운'식으로 내려보내 내각과 청와대 간 소통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우려도 나타났다. 기사2
파일:임종석 선글라스.jpg
이후에는 자기 정치를 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임종석 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유럽 순방 중 서훈 국가정보원장 · 정경두 국방부장관 ·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대동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의 화살머리 고지를 시찰하고, 이후에는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에 임 실장의 내레이션을 실은 방문 영상을 올렸다.[12] 이를 두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 또 하나의 최순실을 보고 싶지 않다"며 "비서실장은 나서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 정치를 하려거든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했다. 기사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국방위원회 질의응답 때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맥아더 흉내를 내며 자기정치를 하냐고 비판하였다.[13]

이외에도 전여옥 전 의원 또한 "비서실장이 권력을 과시하고 다닌다"고 임 실장을 비판하였으며,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 또한 "참 특이한 비서실장이다. 대부분의 역대 비서실장들은 대통령 그림자도 안 밟으려고 했다"고 평했다. 반면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글라스 끼는 것은 자유다"라며 "앞으로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하면 되는데 마치 큰 사고를 친 것처럼 몰아세우니 과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러한 야권에 반응에 대해, 차기 대권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우려해 이를 견제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있다. 청와대는 임종석 실장의 자기 정치 논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표했다.

임종석 자기 정치 논란과 리선권 냉면 논란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3.2%p 하락한 55.5%로 조사되었다.

5.4. 군 정보 누설 논란

위의 문단에서 임 실장이 비무장지대 시찰 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영상을 올렸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자기 정치 논란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공개해서는 안 되는 군 정보가 드러난 것이다.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 즉 GP로 들어가는 우리 측 통문이 고유 번호와 함께 위치가 공개되었는데, 통문은 우리 장병들이 지뢰를 피해 다니는 길목이자 유일한 비상구이다. 또한 건너편에 있는 북한 초소의 위치도 드러났다. 국방보안업무 훈령에서는 경계 상태를 드러내는 내용은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청와대는 "북한 GP 초소와 국군의 무기류, 통문 숫자는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언론에 요청했지만, 정작 청와대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기사

그리고 임 실장의 군 정보 누설은 과거의 주사파 경력과 엮여 같이 까이고 있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임 실장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안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그의 과거 주사파 경력 때문에 그가 대북문제와 안보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매우 불안해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결국 청와대는 문제의 동영상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사과했다. 해당 동영상은 수정 전까지 조회수 2만 회를 기록했다.

5.5. 청와대 특수활동비 논란

2018년 11월 13일,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회도 줄였는데 청와대는 특수활동비를 줄이지 않았다고 비판했고, 자유한국당 이양수 의원이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50%를 삭감하는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책용역비도 삭감하겠다고 밝히자 임종석 실장은 "구체적인 정책은 부처가 만들겠지만, 정책이 적절한지, 부처 간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지, 국민 여론과 부합하는지는 저희가 해야 하는 업무라서 관련 용역은 더 필요하다"며 "의원님 저 삭감하지 말아주십시오"고 요청했다. 이에 김수현 정책실장을 비롯한 좌중이 미소를 띄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181억원을 책정했고, 2019년도 예산안에서도 동일한 181억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2017년도 대비 50억원, 2016년도 대비 80억원을 이미 선제적으로 삭감한 수치로 최근 10년간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평균 258억원 규모였던 점을 고려하면 적은 편이다. CBS는 예산 자체를 '하나도 안 줄인' 것은 맞지만, 2018년도 예산부터 눈에 띄게 낮아서 오는 착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5.6.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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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김경수 응원 논란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해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경수야! 이럴 땐 정치를 한다는 게 죽도록 싫다. '정치 하지 마라'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언이 다시 아프게 와서 꽂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함께 만감이 쏟아져 내린다"라면서 "경수야, 우리는 널 굳게 믿는다. 사람 김경수를 좋아하고 믿는다. 정치인 김경수를 한없이 신뢰하고 응원한다. 항상 널 보며 친구로서 더 맑아지려 노력한다. 항상 널 보며 정치적 동지로서 더 반듯해지려 노력한다"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

해당 글을 두고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기가 차서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뭘 견뎌서 이겨내 달라는 거냐"며 "대한민국 헌법과 사법부와 민주주의와 진실에 맞서서, 거짓과 기만, 불법과 조작, 인민독재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얘길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 아니냐"고 발언했다. #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새천년민주당 68,481 (48.4%)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을) 열린우리당 36,467 (49.6%) 당선 (1위)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을) 통합민주당 26,718 (46.7%) 낙선 (2위)

7. 여담

  • 전국에 지명수배된 상황에서도 여장을 하는 등 신군부 정권의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리면서, 임길동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파일:임종석 현상지명수배.png
    추적을 피하기 위해 쓰여진 수법 중에는 그와 비슷한 체구의 학생들이 클론처럼 돌아다니는 수법이 있었다고. 호감형 외모투사 이미지 그리고 신출귀몰한 행적, 전대협 의장이라는 신분 등으로 인해 당시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며 여고생들이 주로 보는 하이틴 잡지에서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 1996년 결혼했고, 결혼식 기사가 경향신문에 났다. 부인은 그가 교도소에 있을 때 편지를 주고받으며 알게 되었다고 한다. 슬하에 1녀를 두고 있다.
  • 한총련이 2003년 미군 훈련장 난입 사건 때 과격했다고 한총련을 깠다. 임종석은 위에서 봤듯이 임수경 방북 사건과 각종 사회 운동을 주도한 전대협 제3기 의장이었다. 한총련의 문제를 최소한 인식은 하고 있을 뿐 아니라, 80년대 전대협의 행보와 90년대 이후 한총련의 행보는 성향에 다소 차이가 있다 여겨진다.
  • 2005년에 디시인사이드에서 정사갤러들과 간담회를 가진 이후 '본인의 요청'으로 정치인으로는 최초로 임종석 갤러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7년대의 디시 갤러리들은 우후죽순 마구 만들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만두 조공을 바치고 리플로 찬성 여론을 만들어도 겨우될까말까한 갤러리 개설이 김유식과 임종석의 이해관계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잆이 손쉽게 그것도 정치인의 갤러리가 개설된 것에 대한 반발이 매우 심했다. 예를 들면 당시에 매우 인기있던 문근영, 이나영 등의 여배우들은 관련 팬덤들이 만두 조공도 바치고 각종 팬카페 및 디시 갤러리에서 이용자들의 동의 리플을 부탁하는 이른바 '화력 지원'을 거쳐 갤러리가 생기는 게 관례였는데 임종석은 이러한 과정도 없었고 정치적으로 딱히 거물급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갤러리 관리 또한 다른 곳과는 다르게 본인이 직접 했었는데 과도한 글 삭제와 필터링 때문에 말이 많았으며 나중엔 본인의 이름까지 금지어로 설정해 '금지어 갤러리'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다 관련이미지 이를 비꼬는 의미에서 "종석이 얼굴만 보면 고추가 커져요.", 영어로 줄여서 JGK :) 같은 뻘글성 꾸준글이 생기기도 하며 명맥을 잇기도 하였고, 후에 찌질열전을 통해 이런 일화들이 알려지게 되기도 했다.
  •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성덕선이 동생 성노을을 보호하려고 성노을의 여자친구와 여친의 친구들과 싸우다 파출소에 잡혀갔을 때 동생을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 벽에 붙은 수배전단에 등장한 것. 단순 소품이 아니라 작가가 일부러 옛날 자료를 구해서 재현하여 붙인 것이라고 한다. 지인의 제보로 임종석 본인도 찾아보고 크게 웃었는데 키를 170cm로 표기해서 섭섭하다고 트위터에 올렸고 이에 작가진은 옛날 자료라 인쇄상태가 나빠 176을 170으로 잘못 보고 적었다고 답글을 보냈다. #
  • 문 대통령이 초청하는 만찬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오면 국무총리가 가서 인사를 나누고 임 실장이 곁에서 지킨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한 문재인 정부이지만 대통령이 귀빈 여러 사람들을 영접해야 하다보니 위안부 할머니를 세심히 챙길 수 없어서 대통령비서실장이 곁에 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듣고 알려달라고 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
  • 주사파 논란 등으로 림종석이라고 까이기도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 任씨는 두음법칙 적용과 관계가 없어 항상 '임'으로 발음하기 때문. 북한처럼 두음법칙 적용을 받아 '림'씨가 되려면 林씨여야 한다. 북한에서도 림종석이 아닌 임종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헷갈리는지 림종석으로 부른 사례가 있는 듯#. 반대로 림수경이라고 까이는 임수경은 林씨이기 때문에 제대로 읽으면 림수경이 맞다. 2007년에 대법원은 성이 사람의 혈통을 표시하는 고유명사로, 일상생활에서 본래 소리 나는 대로 사용해 온 사람에게까지 두음법칙을 강제해 기존에 쓰던 표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인격권 또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예규를 개정했다.
  • 정치성향 내지는 진영상 반대편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14] 배우 정준호와 친하다. 임종석이 2016년 2월 은평구 을에 예비후보로 출마했을 때, 정준호가 선거사무소로 찾아와서 응원해주는 장면이 찍혔다. 홍익표 의원 블로그에 의하면, 정준호와 임종석은 서로 형동생 하는 관계라고 하며, 정준호가 사무소에서 "임종석 후보가 꼭 국회에 들어가셔서 대한민국을 위해 더 큰일을 해주셔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
  • 차기 총선 종로 출마설이 1월 비서실장 퇴임 이후 수면 위로 대두되었는데, 점점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190516 기사)


[1] 성동구 갑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2] 성동구 을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3] 성동구 갑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4] 성동구 을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5] 성동구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이다.[6] 林이 아니다. 따라서 일부 집단에서 임종석을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인 "림종석"은 국문법 상으로도 오류이다.[7] 사유: 실형(징역 5년)[8] 다만 유시민 작가의 해석처럼, 서울시가 다른 지자체에 비해 워낙 규모가 크다보니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해서 現 범여권(민주-진보-개혁진영)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데려오다보니(?) 발탁된 것일 뿐, 박원순계라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9] 그의 모교인 한양대학교가 있는 지역이다. 임종석 외에도 지역구 출신이 아니지만 자신이 나온 대학교나 일했던 공장 소재지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이 있는데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 출신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우 의원의 지역구인 서대문구 갑 지역에 연세대학교가, 홍 의원의 지역구인 부평구 을 지역에 한국GM 부평공장이 있다.[10] 그러나 북한은 국가간 저작권을 존중하는 베른 협약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타 국가의 저작권물 이용에 관해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고,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11] 굳이 설명하자면, 전희경 의원은 1975년생으로 6월 민주항쟁 때 12살이었다. 반면 임종석은 6월 항쟁에서 운동권으로서 시위에 앞장선 대학생이었다.[12] 해당 사건은 자기 정치 논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군 정보를 누설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행동이다. 아래 문단 참조.[13] 애초에 임종석은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현장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 자격으로 현장을 방문했기에 김성태의 비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14] 정준호는 선거 때마다 자유한국당(및 그 전신) 소속으로 충남권에서 선거출마설이 나온다. 최근의 2018년 재보선에도 천안의 3곳 중 2곳이 재보선 대상이 되자, 천안 출마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