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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송요찬 내각 宋堯讚 內閣 | Song Yo-chan Cabinet | ||
1961년 7월 3일 ~ 1962년 6월 15일 | ||
수립 이전 | 성립 이후 | |
장도영 내각 | 최덕신 직무대행 체제 | |
박정희 내각 | ||
대통령 | <colbgcolor=#fff,#191919>윤보선 ,/ 제4대 (~1962.3.24.), | |
박정희 ,/ 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1962.3.25.~), | ||
내각수반 | 송요찬[외무][경제] |
1. 개요
장도영 내각이 와해된 이후 국방부장관이던 송요찬[3]이 내각수반으로 선임되며 내각이 수립되었다. 송요찬은 4.19 혁명 당시 이승만 정부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개각을 통해 송요찬 본인은 외무부장관으로 이임해 겸임하였고, 이후 또 한번 개각으로 경제기획원장으로 이임해 겸임했다.
2. 활동
장면 내각에서 추진하던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수정 및 완성 작업을 주도했다.1962년 증권 파동이 발생하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그 해법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결국 박정희 의장의 뜻대로 화폐개혁안이 통과되었고, 1962년 6월 10일 화폐 단위를 10대 1로 교환하여 대한민국 환에서 대한민국 원으로 바뀌었다. 화폐개혁으로 민간 예금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 일부를 동결하여 산업자금으로 돌리려는 목적이었다.
송요찬은 여기에 반대하여 내각수반직과 장관직을 사퇴하고, 이후 박정희와 대립하는 야권 인사가 된다. (윤보선, 허정과 단일화하여 후보 사퇴했지만)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범야권 후보로 출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