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20 03:32:39

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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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들고 계신 겁니까
이름 김유식(金裕植)
출생일 1971년 2월 17일 ([age(1971-02-17)]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학력 한영고등학교(1989년 졸업)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경영학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 학사
한양사이버대학교 대학원 IT MBA 석사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 수료
가족 배우자 박유진, 슬하 2녀
소속 디시인사이드
1. 개요2. 인생 역정
2.1. 과거2.2. 디시인사이드 창업2.3. 횡령 사건
3. 개인성향
3.1. 디시 내 활동3.2. 만두 마니아3.3. 정치 성향3.4. 주식3.5. 걸그룹 덕질3.6. 김유식 대표 에세이3.7. 그 외3.8. 심형래행
4. 저서 및 칼럼
4.1. 김유식 칼럼4.2. 저서
5. 기타

1. 개요

1971년 2월 17일 서울특별시 출생. 디시인사이드의 설립자 겸 대표이사 사장. 보통 유식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키뮤식, 김무식, 기뮤식 등의 이명으로도 불린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야민정음의 영향을 받아서 '윾싀머튽'이라 불리기도 한다.

2. 인생 역정

2.1. 과거

세계일보서울신문 전산팀에서 전산 관련 업무에 종사하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아직까지 PC가 국내에서는 생소하던 80년대 초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 전산학원에서 처음 컴퓨터를 배웠다. 이를 계기로 청소년기 내내 컴퓨터게임에 몰두하는 덕후가 되었다. 이때 게임을 통해 일본어를 배워 일본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하이텔의 전신 케텔에서부터 PC통신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90년부터 하이텔 '김유식의 횡설수담'이라는 코너에서 당시 짤막한 시리즈 유머가 대부분이던 시절에 독특한 형식의 유머글을 올려 큰 인기를 끌어 하이텔에서 김현국 (PC Tools)과 쌍벽을 이루는 네임드 유저가 되었다. 당시 올렸던 유머글들은 후에 '김유식의 원조횡수'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제대 후인 92년도부터는 하이텔 '팝니다' 코너를 열어 용산에서 지인을 통해 컴퓨터 부품을 도매가로 싸게 사들여서 남성 유저가 많은 PC통신에 여자 이름으로 올리는 상술로 판매해 돈을 벌어 처음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경쟁업자들이 늘어나자 힘들어진 그는 통신판매업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93년 컴퓨터 네트워크를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일본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경영과에 입학했으나 네트워크 인프라가 한국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실망, 1년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부보다 돈벌이에 눈을 돌려 일본 전자제품을 사서 PC통신을 통해 한국에 판매하다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이라 당시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일본 게임, 영화까지 한국에 팔기 시작했다. 이를 동경유학생정보센터 줄여서 동센이라 불렀었다.

유학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한달 평균 천만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벌어서[1][2] 한국에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4월 8억 여 원의 판매고 중에서 LD 한 장이 문제가 되어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았다.[3]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CD 등 중계업체는 그 문화적 특성상 저 죄목으로 많이들 잡혀 들어가곤 했다. 김유식의 적발 기사는 현재도 확인할 수 있다. 한겨레 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

25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뒤 풀려나 하이텔 횡설수설 동호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갤질만 할 일 없이 하던 시기에 북한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지자 김유식은 당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와 방송 3사의 천편일률적인 보도 때문에 이 사건이 정부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추측성 글을 하이텔 횡설수설 게시판에 올렸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의해 검거되어 보안분실에 연행된 적이 있었다.

실컷 취조를 당한 후 어쨌건 무사히 나오긴 했는데,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PC통신에 '대공분실 이야기'라는 글을 올리다가 수신자 미상의 의문의 전화가 계속되자 겁이 나서 "해외로 뜨자"라는 생각에 영국으로 도피유학을 떠났다.[4] 떠나기 전에는 영어나 배울까 해서 갔는데 영어는 못 배우고, 카지노에 빠져 호텔 카지노만 매일 출근하다시피 드나들면서 카지노만 실컷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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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유학 시절 사진[5] 존잘?

97년 빈털터리 상태로 귀국 후 자신의 일본 체류경험을 살려서 낸 "일본인과 성문화"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지만 출판사인 학영사가 인세를 지불하지 않아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한다.

2.2. 디시인사이드 창업

1999년 7월 설립해서 하이텔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회사로 출발, 초기 직원 3명에 단칸방에서 디지털인사이드를 시작했다.[6] 창업 이후 디지털 카메라의 인기가 날로 높아짐에 따라 디시인사이드의 유저유입이 폭증, 2000년 3월 법인으로 전환하고 점점 사업규모를 늘려서 한 때 국내에서 가장 큰 디지털 카메라 공동구매 사이트가 되었다. 노트북 인사이드도 운영하였으나 이는 2008년 초에 타 회사에 매각하였다.

디시인사이드의 DC는 원래 디지털 카메라(Digital Camera)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디지털 콘텐츠, 디지털 커뮤니티, 디지털 커머스라는 뜻도 담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및 주변기기를 취급하며 기업 간 거래와 광고·홍보, 이벤트 대행, 디카 초보자들을 위한 촬영강좌, 출사[7], 자체 인터넷 뉴스사이트인 디시뉴스를 통한 정보제공 등도 했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디시에서 디지털 카메라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없애고 커뮤니티 사이트로서의 역할로 완전히 전환했다. 디카 판매 글은 사라졌고, 일부러 관련 갤러리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디카의 D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뉴비들 중에는 디시인사이드가 사실 '디지털카메라 인사이드'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외치며, 솔로였던 수많은 디시인들로부터 솔로들의 큰별로 불리었으나 2005년 3월 20일 34세의 나이로 디시뉴스 관리 직원이었던 박유진(당시 27세) 대리와 결혼해 수많은 디시인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았다. 이 둘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잘 지내는 듯하다.

2.3. 횡령 사건

디시인사이드는 150억 원의 투자를 받았고,이를 이용하여 2006년 11월, 코스닥 상장회사인 아이씨코러페이션을 320억 원으로 인수했다. 전형적인 우회상장이다. 그러나 이후 아이씨코퍼레이션의 또 다른 대표이사와 부사장이 대형 횡령을 저지르며 캐나다로 도피하였고 이 과정에서 김유식도 대표이사 자리를 이용해 수차례 횡령을 저질러 2009년 10월 8일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이후 넉 달간의 서울구치소 생활을 마치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관련 기사. 특가법상 양형재량 없는 형기 2년 6개월로 검사의 구형대로 나왔다고 한다. 김유식 본인은 집행유예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서 부인과 농담 따먹기하고, 강원랜드에서 도박도 하는 등 여유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법정구속될 때는 자기 형기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역법 위반혐의로 법정구속된 강의석이 수형생활에 대해 온갖 불만을 토로하며 징징거리자 직접 저 4개월간의 서울구치소에서의 수형경험을 강의석과의 설전에서 써먹었다. 그 상황을 캡쳐한 사진 파일이 강의석 항목에 있다.

직원이 올린 글과 판결문에 보면 김유식은 개인적으로 한 푼도 착복한 일이 없다고 되어 있다. 개인적인 이익이 없다는 것이지, 횡령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를 오인해서 간혹 무죄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판결문에는 대표이사 자리를 악용해서 수차례 횡령을 저질렀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판결문에는 김유식이 기망과 협박에 의해 해당 범죄에 가담하였으며,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는 내용도 분명히 적혀있다.

2010년 1월 13일 디시에는 수감 중인 김유식의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김유식 탄원서명 갤러리'가 개설되었다. 유식대장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디시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서명을 벌였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감형이 확정, 2010년 1월 28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재판부에서는 횡령금액 가운데 상당부분이 회수되고, 상호합의가 된 점, 그리고 개인적으로 착복한 금액이 없는 점, 기망과 협박에 의해 범죄에 가담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한다. 디시 내에서는 재판부가 '소녀시대 2집 발매에 맞춰서 석방해준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왔다.

그리고 횡령으로 판결받기 전에, 주갤횡령을 저지르세요라는 어처구니 없는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김유식 본인은 개드립 파라다이스 첫장에서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후회한다라면서 저질렀다가 후회만 남겼다고 하는데, 이는 범죄 행위이다. 디시인사이드의 이전 행적에서 알 수 있지만, 크게 뭔가 해보려고 페이퍼 컴퍼니도 몇 개씩 만들고, 구속되기 이전에도 200억 원 이상의 빚을 지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폭풍 같은 활동 중이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디시대장답다.

3. 개인성향

3.1. 디시 내 활동

은근히 디시 이곳저곳에 그의 이름을 내걸고 댓글을 달거나 게시물을 쓰면서 활동하는 등 내부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으며, 이 때문에 갖은 삽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디시의 조상이자 큰 형님이기 때문에 시비걸다가 방법당한 회원도 있다고 한다. 시비를 건 것은 아니지만 어느날 소녀시대 갤러리에서 껄떡대는 걸 아내에게 꼰지른 디시인사이드 3대 유저 중 한 명인 다빈치코드를 3년 차단 먹여버렸다. 하지만 김유식은 다빈치코드에게 역으로 낚여서 떡실신당함.

이게 정확히 맞는 정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대표 에세이에 올라온 댓글을 보면 그는 다빈치코드를 차단먹인 적도 없고 또 디시에는 3년 차단 같은 것은 없다고 본인 스스로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개설에 개인적 취향을 많이 반영시키기도 하고 아래 언급하는 횡령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기도 했으나, 디시 대부분에서는 여전히 유식대장이라 부르며 좋아하고 있다.

2008년에는 원더걸스의 멤버인 선미의 개인 갤러리를, 팬들의 개설 요청이 없었음에도 개설하기도 하였다.

2015년에는 리그베다 위키 영리화 사태를 보면서 숟가락을 얹기대체 위키를 만들기 위해 위키 갤러리를 개설, 이후 디시위키를 만들었다 이후 위키갤은 나무위키, 리브레위키, 오리위키 등 타 위키위키 이용자들의 자유 게시판처럼도 사용되고 있다.

2015년 여름부터는 디시 내에서 유행중인 헬조선, 금수저, 죽창, 노력드립 등의 국까놀이에 감명을 받았는지 헬조선 갤러리 - 국뽕 갤러리 - 노력 갤러리 - 백수 갤러리 - 흙수저 갤러리 순으로 정체불명의 갤러리를 계속 개설하는 기행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해당 갤러리의 갤러들을 제외한 디시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동명의 아이돌의 팬덤과 싸워서 갤러리를 쟁취한 헤일로 갤러리부터 아예 디시 밖에 자리를 차린 메탈 갤러리를 비롯하여 그동안 아무리 만두조공을 해도 갤러리 개설이 되지 않던 유저들의 불만이 많았던 상황이다. "유식이 만두 남아도냐"는 냉소부터 대놓고 육두문자를 갈기는 갤러들도 있을 정도.

월간디시 10월호를 통해 헬조선 갤러리와 국뽕 갤러리를 개설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명을 시도했는데, 디시 내부에서도 냉소적인 반응만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온갖 기묘한 갤 만든 게 한두해 일도 아니다. 김정일 사망 갤러리도 있었다. 자기 나름의 철학이 있나보다. 그래도 맨땅에서 돈 벌어온 사람이니 최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을 듯?

3.2. 만두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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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만들어준 김치만두를 먹고 자란 탓에 김유식은 만두, 특히 '김치왕만두'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03년부터는 만죽대장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으며, 굽시니스트 역시 그를 만두머리 캐릭터로 표현한 적이 있다.[8]

그래서 갤러리를 신설하고 싶으면 만두 한 박스를 조공으로 바치면 된다는 말이 있으며, 이를 흔히 만두조공이라 표현한다. 실제로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는 만두를 디시 본사로 반입한 끝에 개설되었으며, 엘소드 갤러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2008년까지만 해도 갤러리 하나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데[9] 2009년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별다른 노력없이도 갤러리를 잘 만들어준다. 만두까지 조공하면서 갤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이 새삼 불쌍해보여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물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갤 만들어진 당시에만 활동하고 식어버려서 정전갤(속칭 잉여갤)이 돼버린 갤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하지만 만두만 바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유입률이나 그에 따르는 광고 수익도 중요하기 때문에 만두 조공으로 갤러리가 무조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메탈 갤러리는 디씨 외부에 개인 사이트로 생기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다만 디시에 큰 수익이 되면 가끔 만두조공 없이도 갤러리가 만들어지긴 한다. 위키 갤러리가 그 예시.

만두 마니아답게 디시인들에게 통큰 만두 선물을 공약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공약이 올라온 날만우절인 게 함정.

3.3. 정치 성향

전체적으로 반공 성향도 강하고 우파, 보수성향이지만, 사회/문화적 측면에선 국가의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인종차별 등에 대해서도 상당히 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한때는 극렬 노빠였다는 주장도 있는데 다수의 노빠들도 이념적으로 개혁 보수에 가까웠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기회를 장사꾼의 마인드로 잘 캐치하는 듯. 2004년 탄핵 역풍 속의 친노적 네티즌들을 정치사회 갤러리로 많이 흡수했었다.[10] 사실 그때를 언급하면서 김유식은 자신이 친노가 아니라고 대답하며 '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며, 노무현 정권에 반대하는 입장이나 친노 네티즌들에게 개입하면 안 되고, 내가 운영자로서 권력을 휘둘러도 안된다' 라는 인터뷰를 조선일보에서 한 바 있다. 보수 디시인들이 행하던 호남에 대한 극심한 지역드립에 대해서도 비판하거나 관련글 삭제를 한 적은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올바름의 충돌의 제어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며 '내가 통제하기 힘들다' 라는 의견을 표하며 그냥 모든 걸 자유롭게 방치하기로 마음먹고 놔두었다. 어떻게 보면 대안 우파와 자유지상주의적 우파에 걸쳐있다고 볼 수 있다. 김유식의 정치성향과 별개로, 자유주의를 추구하며, 디시에서 정치성향과 관련된 탄압을 전혀 행하지 않기에, 의외로 인터넷 커뮤니티 수장 중에서는 가장 민주적으로 사이트를 운영한다. 대신 서버 운영이라던가 기존 주요 갤들의 막장화에서 보듯 방종의 한계점 역시 명백히 보여주는 게 함정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노빠보다는 조갑제에 가까운 보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후에 디시에서 해명하면서 무조건 극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일단 안보반공을 강조하는 성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민족끼리 테러 사건으로 대변되는 디시인사이드 내 반북 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7년에는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긴 손학규 지지모임인 선진연대의 공동대표로 있기도 했다. 당시 자신과 엮여있었던 iC코퍼레이션도 대선테마주로 엮여서 이득 좀 봤다고 개드립 파라다이스에서 밝히고 있으니 이 부분은 확실. 후에 보수화된 디씨에서 '왜 우파라는 당신이 손학규랑 어울렸냐' 라고 묻기도 했지만 손학규도 YS를 따르는 개혁보수 성향이 강한 운동권이었고 당시 시기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박근혜와 경쟁하던 관계이기도 했었다. 다만 이후로도 손학규를 지지했을지는 불분명.

앞서 언급했듯 젊었을 때의 코렁탕 경험 때문인지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서 개인이 쓴 글이나 언론보도에 관해서는 정부가 규제해선 안 된다는 리버럴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대형 사이트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했던 인터넷 실명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악플러에 대한 처벌은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디시 내에서의 7명의 악플러를 직접 고소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작성한 칼럼에서, "올해부터 악플러들에 대해 검찰이 강력한 사법처리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이기 전에 네티즌의 한 사람으로서 크게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일부 악플러들은 필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찾아온 손님(이용자)을 고소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으나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자 입장에서 악플러는 절대 이용자가 아니다. 오히려 선의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선량한 네티즌들을 괴롭히는 범죄자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때는 재중동포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디시인사이드 게시판 관리직을 옛날부터 조선족을 채용해왔다는 건 다 아는 일이니 관계가 긴밀하긴 하다.

2012년 쯤 쓴 칼럼 중에 인터넷에 부는 홍어 매카시즘이 있다. 지나친 홍어드립과 전라도 혐오증, 호남 차별을 비판하는 칼럼이다. 그 홍어드립의 파생지가 어디인가를 생각해보면...

방송 출연도 자주 하는데, 2007년 1월, 100분 토론에 나왔다가 시민논객과 같은 편이었던 진중권 교수가 얼라이를 풀고 공격을 시전하여 고생을 하기도 했다. 종합편성채널 창립 이후 대담프로에 등장하기도 한다.

정사갤에서 "김유식님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지금은 성역화 되어 있어 못 건드리지만 언젠가 역사가 재평가할 것입니다"라고 답변을 한 바 있다. 이것을 본 다른 사람이 해당 발언에 대해 비판하자 "책도 보시고 관련 자료도 좀 찾아보세요"라고 답했다. 관련 링크

몇 년 후, 5.18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고갤 링크 댓글에 본인이 직접 '민주화운동입니다 ㅠㅠ' 라고 댓글을 달았다. 빈말일지는 몰라도, 다른 갤에서도 그냥 '저 때는 그랬지만...'하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걸로 보아 음모론에 속았다가 정신차리고 쪽팔려하거나, 아니면 당시 글이 올라왔던 시기를 감안해 봤을 때, 시류를 은근히 타서(2000년대 초중반 친노 성향 네티즌들의 대거 수용처럼) 입장을 선회해버린 것일수도...[11]

외부 시각에서 보면, 단순히 정치적 지향성이 약하고 그 나이의 사업체 관리자에 맞는 생계형 보수 정도로 취급받는다. 김유식의 발언들을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것 다 배제하고, 단순히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만 고려해서 보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디시인사이드 운영하면서 인터넷 자유 주장 안할 수가 없고, 사이트 관리자 입장에서 악플러 처벌 환영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면 인터넷에서 의사표현 자유가 어디까지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김유식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이득이 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깟 모순 상관 없을 것이다. 조선족 고용해서 인건비 줄이면서 해당 관련 비판할 수가 없다. 정치 관련해서도 해당 시점에서 말해서 이득 보는 말인가 손해보는 말인가만 비교해보면 정확하게 손해볼 말은 쏙쏙 피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홍어드립과 지역드립은 일베 문제로 외부 이슈가 된 이후였기 때문에, 여기에 동조하면 디시인사이드가 일베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니까라고 보면 디시인사이드에서 홍어드립 쓰고 있는 것은 방치하면서 자기는 비판하는 것이 둘다 김유식에게는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이런 식이다. 페이퍼 컴퍼니에 횡령도 하는 그 나이대 사업체 대표 답게 보수적 성향이 있지만, 발언들은 당시 정권과 대중들 취향에 맞는 이야기에 가깝다는 것.

3.4. 주식

주식에 관심이 있어서 전부터 주식 갤러리를 드나들었다. 주식갤을 쓰윽 방문하여 마치 소스를 던져주듯이 코멘트를 던져줘서 많은 주갤러에게 회자가 되었는데, 결국 많은 이들이 떡밥을 덥썩 물어서 욕을 옴팡지게 먹은 뒤 주식 갤러리를 떠나게 된다.# 이후, 08년 10월 17일 화학 업체인 메이드(제조업체)에 80억 원을 투자하였으나 10월 24일 기준 단 일주일 만에 36억을 날렸다. 그 날 주식갤이 순간 개명당한 이유가 그것이다.

김유식이 주식에 얽히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이후에 아프리카TV 주식에도 투자했으나 돈만 날리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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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걸그룹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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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소녀들을 보는 김유식.

이전부터 소녀시대, 그 중에서도 특히 태연의 팬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갤에 비해서 자주 태연 갤러리에 출몰하는 편이고 한창 빠졌을 땐 본인이 상주하며 악플은 모조리 지우겠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태연이 연애를 하게 되자 디시인사이드 최초로 탱갤에 참으로 잉여로운 일을 저질렀다. 이 사항은 태연 갤러리 항목을 참조. 결혼해서 부인까지 있는 사람이 잘하는 짓이다

그렇지만 원더걸스안소희 갤러리는 조공도 없이 만들어준 걸 봤을 때 잡덕이 아닌가 추정된다. 원더걸스의 선미 갤러리도 팬들의 개설 요청이 전혀 없었으나 직접 만들어주었다.

최근 러블리즈의 덕후가 되었으며, 울림엔터테인먼트 이중엽 사장과 식사를 함께했다.

요새는 프로듀스 48을 자주 보는 듯. 프로듀스 48 갤러리에 댓글도 남기고 시타오 미우 마이너 갤러리에도 출몰했다. 심지어는 광고 잘하기로 소문난 미야자키 미호 마이너 갤러리에도 나타나 광고대행 영업을 하기도 했다...

장규리를 사이트 차원에서 지지하는 듯 하다. (개죽이를 응원해주세요) 라고... 프듀 때 사이트 홈페이지엔 ## 개죽규리 가즈아! 디시인사이드입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 위에서 언급된 3명은 모두 귀신같이 탈락했다

PRISTIN시연 덕후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시연의 나이는 2000년생으로 1971년생인 김유식과는 무려 29살 차이가 난다. 김유식에게 시연은 딸뻘인 셈이다. 2016년 3월 26일 디시인사이드의 메인 홈피에는 "퀸시연 힘내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3.6. 김유식 대표 에세이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에서 가끔씩 글을 쓴다고 한다. 2004년부터 연재했는데 지금은 잘 안 쓰는 듯. 가장 마지막 글이 2018년도에 썼고 두번째로 마지막글이 2014년도에 쓰인거를 보면...2013년에는 방콕에 다녀온 글을 쓰기도 했다.

유저들의 반응은 글 내용에 대한 얘기보다는 제발 서버 좀 해결해달라, 주작/신고처리 좀 어캐 좀 해봐라 등 평소 유저들이 겪는 불편한 상태를 토로하는 반응이 주류이다(...). 하도 서버 문제가 많이 터지고 갤러리마다 주작충들도 많은데 신고기능도 부실하고 고객센터 기능 역시 미비하다보니 여기서라도 말해서 해결해달라는 부탁이 많은 듯하다. 근데 여기도 잘은 안 보는듯 하다.

3.7. 그 외

2012년 2월, 딸을 낳아서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이쁘게 잘 크고 있다. 2013년2014년 2015년 2016년

자신의 저서이며 구치소 완벽 가이드라고 자랑하는 "개드립 파라다이스" 판매 홍보 게시물을 올리면서, 특히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 자신이 어린이 타이거즈 회원이었음을 인증했다. 실제로 공지에 김유식 자신이 일부 기아 갤러들 리플에 답글을 단 것을 보면 사실인 듯. 회원에 가입하면 라디오를 주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였고 김성한 선수를 제일 좋아했다고 밝혔다. #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 때 참고인으로 불려갔다.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다고 한다. 디씨 배너에도 부어먹는 게 낫다고 했다.

디시인들의 주된 인식과는 달리 본인은 친목질에 관대한 편이다. #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가 발생하자 에라이! 차라리 내가 위키를 만들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위키가 디시위키다. 그래서 디시위키에서 첫번째로 차단된 사용자도 '김유식'이다.

2015년 12월 26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서버운영에 관한 전문가로 출연하였다. 이 때 김상중은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자라고 소개하였다.[12] 이 때 소라넷의 운영자는 누구인가 하는 썰도 풀었고, 소라넷 서버운영이 어떠한 점이 특징인지 밝혔다.

3.8. 심형래행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2&no=845571&page=
파일:attachment/8s71RFjEzZTeUirnwyJTF4X8AYBzS7r.png

일본 배우 후지이 미나가 김유식과의 인증샷을 심형래와의 인증샷이라고 올린 글이 퍼지는 바람에 김유식과의 인증사진이 올라올 경우 김유식 사진이 아닌 심형래 사진으로 취급하는 것이 암묵의 룰이 되어버렸다.[13] 묘하게 닮은 외모뿐만 아니라 김유식, 심형래 두 사람 모두 횡령 혐의를 받은 점 때문에 심형래 드립이 더 흥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따지면 후지이 미나는?

디시위키의 심형래 항목에 들어가보면 인물사진에 심형래가 아니라 김유식이 들어가있다(...) 근데 자연스럽다 설명에는 현재는 김유식처럼 디시인사이드를 운영하고있다고 써있다. 예???

4. 저서 및 칼럼

4.1. 김유식 칼럼

2010년 12월 3일 연평도 포격 사태에 대한 칼럼을 디시뉴스올렸다. 그동안 보수 성향을 보였던 김유식의 글을 봐서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칼럼이 올라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이였고 누리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칼럼은 각 매체에 상당히 많이 기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2. 저서

  • 재미있는 일본인과 성문화(...) (1998, 학영사)[14]
  • 나는 일본 성문화가 두렵다(...) (1998, 하늘빛)[15]
  • 김유식의 원조횡수 (1999, 문화사랑)
  • 금테두른 브라자 (1999, 월간 모터바이크)
  • 맥주전쟁 (2000, 인화)
  • 심심할 때 읽는 책 (2000, 인화)
  • 인터넷 스타 개죽아, 대한민국을 지켜라! (2004, 랜덤하우스중앙)
  • 개드립 파라다이스 (2011, 가쎄)

5. 기타

  • 2017년 12월 22일에 이사회 불참 기사에서 그의 최근 모습이 드러났는데, 본문의 프로필 사진에도 나와있다시피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주름이 많이 생긴 덕에 세월의 흐름을 이기진 못한 모습을 보여줘서 갤러들의 안타까움을 지어내고 있다.
  • 2018년 3월말부터 소울워커가 엄청난 떡상을 보여주면서 소울워커 갤러리가 급격하게 활성화되었는데, 4월 초 이 갤러리에서 이어진 현물 조공 릴레이 소식을 접했는지 그중 라이언 본사로 삼겹살을 보냈다는 개념글에 직접 츄릅~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나름대로 흥하는 갤러리를 둘러보는 듯.
  • 디시인사이드와 유사한 일본의 대형 인터넷 게시판인 2ch의 설립자 니시무라 히로유키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 그의 디시 아이디는 di01이다. 갤로그는 없다고 나오지만 자신이 매니저로 있는 마이너 갤러리에서 부매니저 임명란에 아이디 di01을 넣어보면 알 수 있다. 또한 김유식 본인이 작성한 댓글은 닉네임이 굵은 글자로 표기되며 닉네임을 클릭해도 갤로그 보기나 작성글 검색 메뉴가 열리지 않는다.


[1] 그 당시 주요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이 평균 1500만원 정도였다. 한마디로 나름 잘 버는 회사원의 1년치 수입을 김유식은 한 달만에 벌었다.[2] 바가지가 엄청났지만 당시 다른 보따리상도 다를 게 없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한 사람들이 많았다. EMS 별도라 그렇지 많이사면 보따리상보다는 꽤 싸기도 했고.[3] 널리 퍼져 있는 '야동을 팔아서 디시인사이드를 세웠다'는 소문이 여기서 나왔다. 당시 적발된 LD는 음란물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인 무사 쥬베이(수병위인풍첩)였다고 한다. 이것도 야한 장면은 있다. 단지 잔인한 게 더 심할 뿐이다.[4] 이 당시의 이야기는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에 실려있다.[5] 김유식과 함께 있는 전차는 런던의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야크트판터 전차이다.[6] 디지털인사이드는 DC인사이드와 NB인사이드 두개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7] 디시 유저들이 단체로 나와서 사진을 찍는 대회[8]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만두머리 김유식 캐릭터를 써먹었다.[9] 특히 남자 연예인 갤러리의 경우 수많은 사람들이 짤방까지 동원해서 애원해도 안들어주는 바람에 만두조공을 통해서 겨우 갤러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연예인 갤러리의 경우엔 신청한 사람이 거의 없어도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많았다.[10] 한편 디시에서의 친노 성향은 탄핵 역풍때만 그치지 않고, 2007-8년 사이까지 의외로 짙게 지속되어왔었다. 2018년 현재와 비교하면 격세지감. 그때나 지금이나 오프라인에서 비주류라 여겨지는 성향을 좋아하는 것은 공통점[11] 사실 5. 18 관련 음모론이 일부 비정상적인 극우나 믿는 것이라는 걸 감안하면 성향이 아예 바뀐 것 보다는 그냥 저 음모론만 거르게 된 것 뿐일수도 있다.[12] 2014년 5월 3일 일간베스트 관련 방영분에서도 출연한 적 있다.[13] 차유람의 경우 인증샷 후 네티즌들의 지적으로 김유식으로 정정해주었다.[14] 1998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적도 있다고 한다.[15] 일본인과 성문화를 출판사와 이름만 바꿔서 출판한 거라고 한다.[16] 두 번째 선물은 김유식도 불쾌해 했고, 주갤도 별 찌질이가 디시랑 현실을 구별 못하나냐는 반응이다. 김유식은 좋게 넘어갔지만, 모욕적인 행동임은 분명하다.[17] 대부분 하즈키 카오루의 작품으로 보인다. 주갤러의 분석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