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7 19:18:13

신기남

역임한 직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강서구 갑)
제14대
박계동
제15~17대
신기남
제18대
구상찬
제18대
구상찬
제19대
신기남
제20대
금태섭

{{{#!wiki style="color:#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181818"
초대
김원기
2대
정동영
3대
신기남
4대
이부영
비대위
임채정
5대
문희상
비대위
정세균
비대위
유재건
6대
정동영
7대
김근태
8대
정세균
새천년민주당 총재 및 대표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
}}}}}}}}} ||

}}} ||
파일:신기남-1.jpg
이름 신기남 (辛基南)
출생일 1952년 10월 16일 (만 [age(1952-10-16)]세)
출생지 전라북도 남원시
학력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5, 16, 17, 19
현직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1. 개요2. 경력3. 논란4. 여담5. 선거 이력
파일:신기남-2.jpg
△ 신기남 前 의원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열린우리당 의장, 15~17,19대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 경력

1952년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한민국 해군 장교(교수사관)로 만기 전역(1979년부터 1982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최종 계급은 항해중위.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당선된 정동영, 천정배천신정 소장파 트리오로 활동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5년까지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해군 출신답게,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을 제작하는 데 힘을 보태는 등, 제2연평해전 유가족 및 전상자의 보훈 활동에 힘썼다. 이 때 대립하는 정당인 새누리당 소속 이병석 의원과 적극 협력하였는데, 이는 당파를 초월한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91년에 발생한 대흥동 국교생 살인 누명 사건 때 대한변호사 협회 소속 변호사로서, 검경의 수사 과정의 의혹을 제기하여 피의자 권 모 군이 강압 수사를 받았음을 밝혀내는 데 일조했다. 1993년에 권 모 군의 가족은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손해 배상에서 일부 승소하여 8,000만 원을 받았다. 기사

3. 논란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대대적인 친일잔재청산활동을 주도하던 중, 아버지 신상묵일제강점기 당시 잔학하게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해댄 헌병 오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생존중인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자신들이 당한 잔인한 고문장면을 그려 언론에 공개되었다. 신기남 의원은 이를 부정하다가 도리어 큰 역풍을 받았다. 결국 아버지의 악랄한 친일행적이 논란이 되자,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하였다.[1] 그 결과 노무현 정부의 친일잔재청산운동은 큰 타격을 입고 흐지부지되었으며 노무현 정부의 이른 레임덕에 영향을 미쳤다.

2015년 11월 27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떨어진 아들을 위해 학교에 찾아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아들이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낙제하여[2] 2016년 변호사 시험에 응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로스쿨 원장을 찾아가 "아들을 구제해주면 법무부에 얘기해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80%까지 올려주겠다"며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신 의원은 학교 측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 "부모 된 마음에 상황을 알아보고 상담하고자 찾아간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참고로 신 의원의 딸은 인하대학교[3]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왔는데, 변호사시험에 이미 불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당무감사원의 조사를 받아 2016년 1월 25일에 당원자격정지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따라서 2016년 1월 25일부터 2016년 4월 24일까지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을 수가 없고, 20대 총선이 2016년 4월 13일이므로 만약 총선에 출마하려면 탈당 후 다른 당에 입당하여 공천을 받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금지와 같은 징계를 받은 것이다.

2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기사, 3월 17일 김민석의 원외 민주당에 입당하여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다.

10월 31일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다시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이미 아들의 로스쿨 특혜 논란도 있고,[4] 원 지역구에는 금태섭이 현역으로 버티고 있으며, 다음 총선거 때에는 이미 나이가 70을 넘어서기에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도 있으나, 신기남은 기본적으로 친노계 인물로 분류되는데다, 강서구 을[5] 등으로 지역구를 옮길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정치생명의 존속 여부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현재 법무법인 한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되어 4월 9일부터 직무를 수행 중이다. 신 전 의원은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4. 여담

  • 신기남이라는 인물 자체가 친노계 파생 정치인에 속하는 만큼 천신정으로 꼽히면서 비노였던 천정배, 정동영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물 및 주류 세력들이랑의 관계는 허물없이 친한 관계이지만, 20대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적이 있었는데, 그 주역이 김종인이었던지라, 신기남이 이에 반발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할때도 국민의당으로 이탈한 이들이 친노패권같은 소리를 했던 것과는 다르게 김종인을 맹비난하면서 다른 갈라져나온 민주당으로 갔다. 이후 신기남이 소속돼있던 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과 합당하면서 2016년부터 다시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2018년에 신기남이 친노계 소속인데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인물이라는 것 덕분인지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직무를 수행중이다. 자신을 20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낙천시킨 주 원인이 김종인이어서 그런지 김종인과의 사이는 나쁜 편이다.
  • "신영"이라는 필명으로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 갑) 새정치국민회의 29,671 (33.6%)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 갑) 새천년민주당 45,406 (50.4%) 당선 (1위) [6]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 갑) 열린우리당 63,331 (51.2%)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 갑) 통합민주당 41,833 (41.3%)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 갑) 민주통합당 64,187 (48.7%) 당선 (1위) [7]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 갑) 민주당 6,496 (6.4%) 낙선 (5위) [8]

[1] 당시 소설가 이문열은 신기남을 직간접적으로 저격하는 컬럼인 「겜뻬이 고쬬오니 게이부」를 중앙일보투고, 당시 친일청산 아젠다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역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2] 졸업시험을 모두 세번 치렀는데, 그 중 한번만 합격해도 되는 것을 세번 모두 낙제했다고 한다.[3] 전에는 연세대학교라고 되어있었는데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인하대학교이고 이 딸도 졸업시험에 두번이나 떨어졌으나 세번째에 붙어 이번 사건처럼 그 때도 신기남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며 고시생들이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4] 다만 이 건은 무혐의 판결이 나왔다.[5] 다만 이곳은 20대 총선에서 이곳에서 출마했던 진성준이 21대 총선에서 다시 출마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신기남이 이곳으로 지역구를 옮기더라도 공천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6] 2003.11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7] 2016. 3. 17 공천 배제에 반발해 민주당으로 당적변경[8] 2016. 10.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자동 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