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14:27:49

김형식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김형식(동명이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제8·9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김형식
金亨植
파일:김형식 씨.jpg
<colbgcolor=#808080><colcolor=#fff> 출생 1970년 1월 19일 ([age(1970-01-19)]세)[1]
충청남도 서천군
신분 기결수
소속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학력 한신대학교 (철학 / 학사)
가족 김근식
경력 신기남 국회의원 보좌관
노무현 후보 캠프 기획위원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정책기획위원
민선 5,6기 서울특별시의원(강서구 제2선거구)
형량 [[무기징역|{{{#F00 무기징역(청부살인)}}}]]
징역 3년(뇌물), 벌금 4,000만 원, 추징금 5억 8,300만 원

1. 개요2. 생애3.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4. 판결5. 여담6. 소속 정당7.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2. 생애

1970년 1월 19일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고 일찍이 상경해 한신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강서구 갑 국회의원(15~17, 19대)인 신기남의 보좌관을 지내면서 정계로 들어왔으며 이후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 기획위원과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서울시의원 선거에 나섰으나 낙선했고 2010년 민주당 공천을 받아 지방선거에 처음 당선되었다. 2014년에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공천을 받아 재선하였다. 시의원으로서 유명한 활동은 여름에 반바지로 의회에 출근한 것과 시정 질문에서 박원순 시장을 터는 동영상이 있다.# 직접 올린 것이고 같은 당 소속임에도 강력히 비판해 꽤 반향을 일으켰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는 외채를 내서라도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하였다.

3.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민선 5기 임기 말인 2014년 3월 내발산동 자산가 피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살인 사건 조사 과정에서 김형식이 친구인 팽용찬을 시켜 내발산동 자산가인 송승호를 살해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어 청부살인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다.

김형식은 민선 6기 시의원에 당선된 지 20일 만인 6월 24일[2]에 체포되었고 다음 날 급하게 탈당계를 제출하여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게 되었다.[3]

6월 26일 구속되었는데 김형식 의원의 친형 김근식이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임에도 과거 골프장 사장 납치감금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게 드러나면서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4]

2014년 7월 1일 청부살인을 부탁받은 팽용찬에게 김형식 의원이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 확인되었다.[5] 이 편지를 전달한 방법도 기가 막혔다. 당시 팽씨와 김 의원은 같은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고 공동세면장엔 각 수감자들의 칫솔이 이름과 함께 걸려있었는데 김 의원은 이를 이용해 팽씨의 칫솔을 찾아 칫솔 커버 안에 편지를 몰래 접어넣었다. 하지만 이미 배신감에 치를 떨던 팽씨는 편지를 바로 담당형사에게 건네주었고 이는 김 의원이 살인청부를 했다는 걸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얄팍한 머리를 쓴 게 오히려 자신을 옭아맨 셈이었다.#

또 팽용찬이 중국에 도피해 있었을 때 만약 중국 공안에 잡히면 자살하란 지시를 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후 공안에 잡힌 팽씨는 네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고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죽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들은 김의원은 "왜 안 죽었냐? 그것도 못하냐? 너랑 네 가족을 전부 죽여놔야 직성이 풀리냐?"라며 불 같이 화를 내며 아예 팽용찬의 가족까지 없애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자살을 실패한 탓에 손발에 족쇄가 채이며 구속까지 당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버렸고 이 때문에 김형식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데다 자신을 송환하러 온 형사들이 몰골이 말이 아닌 팽용찬의 모습에 '"고생 많았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자."라며 안쓰럽게 여기자 온갖 분노와 설움이 폭발해 눈물을 흘렸고 이때를 기점으로 팽용찬은 김형식을 파멸시키기 위해 자신을 배신한 김형식과 관련된 모든 살해 청부 내용 및 살해과정을 자백하며 복수하기 시작했고 위의 상술한 묵비권 행사 강요의 쪽지 역시 경찰에게 넘기는 등 김형식을 확실하게 파멸시키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2일 채널A 12시 뉴스특보에서 김형식 본인이 과거에 동성애 성향이 있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보도되었다. 과거에 서울시의회 회의장에서 어렸을 때 동성애를 나누었지만 지금은 이성애자가 되어 있다고 발언했는데 살인교사 연루로 인해 과거에 했던 발언이 화제가 된 것이다.# 정작 김형식 본인은 동성애자가 아닐 뿐 아니라 결혼하여 처자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6] 하지만 이는 논지에서 벗어난 것으로 개인의 성적 지향이 어떻게 변했는지와 이 사건은 전혀 관련이 없다. 김형식의 아내는 경찰이 함정 수사를 하고 있다며 김형식을 변호하고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범인 친구에게 "증거는 네 진술뿐이니,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쪽지를 3차례나 보낸 것이 발각되는 등 증거가 나오면서 유죄를 피하기는 어려워졌다.# 결국 7월 3일 검찰에 송치되었다. 일단 본인은 범행을 부인하였으며 심지어 국정원의 조작이라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7월 10일, 범행을 입증하는 검찰과 잠입수사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한 의원측과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10월 20일 기준으로 검찰측에서는 공범 팽씨의 진술이 결정적 증거라며 유죄를 주장한 반면 피고인 측 변호인의 주장은 팽씨에 의해 살해된 것은 맞는데 그것은 살인교사가 아닌 팽씨의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강도목적의 단독범행일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살해당한 송승호가 김형식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유력가들에게 뇌물을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반향이 일었다.

4. 판결

10월 27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려진 1심 공판에서 검찰은 김형식과 팽용찬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이 재판에서 참석한 배심원 9명 모두 유죄로 판단하였다. 배심원들 중 2명은 사형, 5명은 무기징역, 1명은 징역 30년, 1명은 징역 20년 의견을 제출했다. 법원은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무기징역 의견을 받아들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고 공범 팽용찬에게는 수사에 협조한 점을 감안해 징역 25년을 선고했다.판결문

김형식과 팽용찬은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다.[7]

2015년 4월 30일, 항소심도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형식은 재판정에서 울부짖으며 버티다가 경위한테 끌려나가는 추태까지 연출했는데 이로서 그가 의원직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영원히 없어졌다. 다만 협력자이자 실제로 살인을 한 팽용찬은 잘못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1심 판결인 25년형에서 5년을 깎아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팽용찬은 이 시점에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징역 20년이 확정되었다. #

2015년 8월 19일, 대법원은 김형식의 상고를 기각,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최종 확정하였다. 이로써 김형식은 지방자치법 제78조[8]와 공직선거법 제19조[9]에 따라 시의원직을 상실하였으며 무기징역의 최소 복역 형량을 법무부에서 최소 20년 이상으로 잠정적으로 정해 놨기 때문에 가석방의 은전을 얻더라도 70~80대 중반을 넘어야만 사회로 복귀가 가능할 전망이므로 남은 인생은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다.[10]

2016년 7월 8일 송승호가 준 뇌물을 받은 비리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고등법원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뇌물로 받은 5억 8,300만 원[11]이 전액 추징되었고[12] 4,000만 원의 벌금[13]을 물게 되었다. 2016년 11월 9일 대법원에서 원심 판결을 확정지었다.

5. 여담

  • 김형식의 형인 김근식끝장 그 자체이다. 부장 검사 출신인데 2007년에 있었던 골프장 사장 납치 강도 사건[14]으로 인해 변호사 등록이 정지되었으며 2015년엔 외제차 절도도 했지만 김형식의 수사 과정에서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였고 법률 조언도 해 주었다. 물론 정식 변호사 역할은 못 하고 무면허[15] 상태라 조언만 해 줬을 뿐이다.
  • 시 의원 시절 삼성 불매 운동을 벌였다. 시 의회 연설 때 "나는 삼성 제품은 절대 안 쓴다. 저희 집에 와 본 사람들은 다 안다."라고 큰소리쳤으나 구속된 후 그의 대포폰 중 2대가 삼성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인 것으로 드러나면서[16] '삼성 불매 레전드'로 회자되기도 했다. #
  • 귀귀의 풍자 만화 『뉴 바이블』에서는 자기가 교사한 팽용찬과[17] 함께 34화의 희생자로 등장하는데 한지우로 패러디되었다. 송선미 남편 피살 사건의 가해자와 청부 업자인 곽 모 씨&조 모 씨와 살인 교사 대결을 벌이는데 기세 좋게 팽 모 씨를 지휘하며 조 모 씨의 두 다리를 자르고 머리를 쪼개는 등 선전하다가 곽 모 씨가 팽 모 씨를 공격하기 위해 던진 조 모 씨의 칼을 머리에 맞고 사망한다.

6.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기간 비고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8 - 2000 정계 입문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3 합당[18]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3 탈당[19]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3 - 2007 창당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합당[20]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21]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3 합당[22]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합당[23]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4 - 현재 탈당

7.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강서 1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14,485 (28.28%) 낙선 (2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강서 2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33,649 (56.28%) 당선 (1위) 초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36,336 (54.15%) 당선 (1위) 재선[24]


[1] 빠른 70년생으로 사실상 69년생으로 분류되어 386 정치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2] 민선 6기 임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당선자 신분으로 체포되었었다. 민선 6기 임기는 동년 7월 1일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민선 5기 현직 시의원이자 민선 6기 시의원 당선인 신분으로 체포된 것이다.[3] 이 사건의 여파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2016년 재보궐선거 당시 해당 지역구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참고로 해당 선거구는 강서구의원 출신의 국민의당 김경자 후보가 당선되었다.[4] 김근식은 그래서 자격이 정지된 상황이었다.[5] 이는 명백한 위법사항이다.[6] 하지만 아내가 있다고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단정짓긴 힘들다. 사회의 시선 때문에 이성과 결혼했지만 다시 동성과 연애하는 사례도 많다.[7] # 현직(보통 임기제로 퇴임하고 나서 많이 잡혀 들어간다. 더군다나 김형식은 자진사퇴도 하지 않았다.) 정치인이 직무상 범죄나 외압 혹은 국가반역, 내란 음모 등의 고위급이 주로 저지르는 정치범죄에 의한 판결이 아니라 인물 자체의 문제성 행동으로 인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 자체가 개도국까지 합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사례다. 보통 수 년의 유기징역형이나 반역 음모 혹은 반역행위, 간첩 등으로 인한 사형, 무기징역이야 어느 나라에서나 간혹 한 번씩은 터지는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그런 정치적 범죄가 아닌 강력범죄에 의한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받게 된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차라리 뇌물 주던 사람이 공직자를 살해하는 거라면 몰라도 고위 공직자가 사람을 써서 뇌물 주던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은 영화 같은 데서나 메인 이벤트로 나올 법한 꽤나 극단적인 범죄 케이스다.[8] 지방의회의 의원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될 때에는 의원의 직에서 퇴직된다. (중략) 2. 피선거권이 없게 될 때[9] 선거일 현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피선거권이 없다. (중략) 2.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실효되지 아니한 자[10] 김형식이 교도소에서 복역 중 시한부 선고를 받았거나 암 말기 선고 받아서 건강과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을 때 검찰측이 형집행정지를 내리지 않는 이상 교도소에서 노역을 하고 작업상여금을 받으면서 교도소에서 계속 복역할 수밖에 없다.[11] 송씨로부터 5억 4,000만 원, 철도 부품업체 AVT로부터 3,000만 원, 모 건설회사로부터 1,300만 원[12]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7,000만 원, 변호사법 위반 5억 1,300만 원[13] 1심에서 5,000만 원이었으나 이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음을 감안해 감경되었다.[14] 참고로 이 사건은 제3공화국 당시 유명했던 정인숙 피살사건의 피해자 정인숙의 아들도 공범으로 연루되었다.[15] 자동차 운전 면허 정지 상태가 무면허로 간주되듯 의사 면허 정지, 변호사 등록 정지도 전부 무면허와 동일하게 법적으로 처리된다. 김형식의 친형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으므로 변호사 자격 자체는 있지만 변협의 변호사 등록 정지 조치로 인해 이 자격의 행사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 사실상 무자격자라 공식적인 사건 수임은 불가능하다.[16] 갤럭시 S4 화이트 프로스트 두 대.[17] 작중에서는 팽모 씨로 표기되었다.[18]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9]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20]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21] 민주당과 신설 합당[22] 시민통합당과의 합당[23]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24] 2014.6.25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2015.8.19 시의원직 상실(살인교사 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