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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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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형
2.1. 가족 구성원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을 경우2.2. 가족의 관계가 비정상적인 경우2.3. 가족 구성원들이 악할 경우
3. 현실 속의 콩가루 집안들
3.1. 주요 사례
3.1.1. 한국 사회의 콩가루 집안
3.1.1.1. 연개소문 일가3.1.1.2. 신라 하대 국왕 일가3.1.1.3. 견훤 일가3.1.1.4. 백두혈통 김씨 일가3.1.1.5. 일부 재벌3.1.1.6. 박정희 일가
3.1.2. 로마 왕족황족 상당수3.1.3. 측천무후 일가3.1.4. 후세인 일가3.1.5. 고대 아일랜드 밀레시안 왕가: 기원전 1700년(?)~(?)3.1.6. 양무제 소연 일가3.1.7. 프랑크 국왕 3.1.8. 오스만 황제 일가
3.2. 그 외
4. 픽션 속의 콩가루 집안들5. 관련 문서

1. 개요

Q: 63빌딩에서 일가족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왜일까?
A: 아빠는 기러기 아빠, 엄마는 새(bird)엄마, 큰아들은 비행(飛行)청소년, 작은아들은 날라리

-콩가루 집안과 관련된 블랙 코미디 중 하나.[1]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단어로 본래 가족 간의 사이가 매우 나쁘고 화합이 되지 않아 가정불화를 겪는 가족을 뜻한다. 콩가루는 웬만해선 서로 뭉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이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콩고물로 쓰이는데, 콩가루의 이런 성질에 빗대서 '콩가루 집안'이란 말이 생겼다. 하지만 현재는 그 의미가 확장되면서 정상적인 범주에서 아주 심하게 벗어난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모두 싸잡아 콩가루 가족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2. 유형

콩가루 가족의 몇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해놨는데 심한 경우엔 저 유형 중 둘 이상이 나타날 때도 있다. 특히 옛날의 왕조들에게서는 저 세 가지의 부류를 모두 발견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이 모든 케이스를 섭렵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1. 가족 구성원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을 경우

가족 간에 분란이 일정 수준을 지나치면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 혹은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을 병원에 보내려 하지 않고 무조건 환자 탓만 하며 병을 키우는 경우 등이다. 심지어는 가족 구성원끼리 서로 고소하고 존·비속상해, 살해 등으로 치닫는 경우도 드물게 나타난다. 이 케이스가 '콩가루 가족'의 본래 의미다.

즉,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남보다 못한 경우를 말한다.

2.2. 가족의 관계가 비정상적인 경우

가족 간의 항렬이나 촌수 등이 엉켜 일반인이 보기에 심히 불쾌감을 느낄 지경일 때 이 표현을 쓴다. 이는 사람마다 취향이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다고 정의하기는 힘들다. 한 가지 예로 겹사돈[2]이 있는데 유전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문제가 없지만[3] 많은 사람들이 겹사돈에 대해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며 보고 또 보고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의 드라마에서도 소재가 되었다.

그나마 이는 그래도 상식적인 범주이지만 몇몇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출생의 비밀급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면 이런 집안을 흔히 '개족보' 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이보다도 더 시궁창으로 떨어질라 치면 가족 구성원 사이의 육체적 관계까지 가게 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근데 따지고보면 지금이야 근친혼이 금기시되지만[4] 옛날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특히 왕족 및 귀족 계층에서 권력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근친결혼이 성행했다는 점이나[5], 문화권마다 근친혼으로 인식하는 범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6] 마냥 창작물 속의 얘기는 아니다.

2.3. 가족 구성원들이 악할 경우

위의 두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악질이라거나 아예 가족 단위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에도 이 표현을 쓰기도 한다. 가문에 흐르는 악의 피와도 관련 있는 경우일 수 있다.[7] 사실 이 경우는 콩가루 가족이란 말에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 단위의 범죄자들은 가족 구성원들끼리 잘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야 공범으로서 행동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기술한다.

3. 현실 속의 콩가루 집안들

목록을 보면 왕족, 귀족, 정치인 가문 등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콩가루 집안 사례가 많은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과 권력 앞에 부모, 형제, 자식도 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보여준다.

물론 높으신 분들이 다 막장이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워낙 대중의 주목을 받기 쉬운 자리에 있다 보니 그만큼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쉬워서 그런 측면이 있긴 하다.

특히 재벌 가문들을 보면 상속 문제나 경영권 문제로 형제자매끼리 사이가 나빠지는 일이 흔한데, 돈과 권력 말고도 부모가 자녀들을 편애한 결과 성인이 된 자녀들 사이에 상속문제가 생기기 이전부터 사이가 안좋았던 경우도 많다. 편애가 없었다면 서로 타협점을 찾기가 그나마 수월했겠지만 편애로 인해 서로 타협은 커녕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 것이다.

범현대가의 경우 형제간의 우애는 범LG가와 마찬가지로 좋은 편이나 왕자의 난으로 인하여 현대그룹현대자동차그룹, 현대그룹 등으로 쪼개지는 일이 생겼었다.

3.1. 주요 사례

3.1.1. 한국 사회의 콩가루 집안

3.1.1.1. 연개소문 일가
연개소문은 642년 영류왕과 100여명의 중신들을 한꺼번에 살해하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고씨의 나라인 고구려를 사실상 연씨의 나라로 만들었다.

연개소문 본인이 살아있는 20여년 동안은 어떻게든 나라를 유지했지만, 문제는 그가 늙어 죽은 후에 터졌다.

연개소문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구심점이었던 그가 사라지자, 연개소문의 세 아들을 비롯한 연씨 일가는 서로 의심하며 싸웠는데, 차남 연남건과 삼남 연남산이 승리하자, 장남 연남생당나라에, 삼촌 연정토신라에 성을 바치며 항복했다.

결국 이들이 불러들인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의 700년 사직이 무너지는 건 연씨 일가가 집권한 지 불과 26년만의 일이었다.
3.1.1.2. 신라 하대 국왕 일가
통일신라의 지배층인 진골은 모두 혈연으로 엮여 있었는데, 이는 김알지[8] 또는 김성한[9]을 시조로 하고 18대 내물 마립간 이래 왕위를 독점하던 기존 신라계 김씨 일가는 물론이고, 이전의 왕실인 박씨 일가[10]김유신[11]으로 대표되는 금관가야계 김씨 일가도 마찬가지였다.[12]

통일 이전의 28대 태종 무열왕부터 시작된 신라 중대 왕실은 36대 혜공왕 치세까지 부계 혈통으로 세습을 이어갔고, 덕분에 신라는 200여년에 걸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혜공왕 치세에 일어난 온갖 사건사고로 인해 정국이 불안해졌고, 급기야 국왕이 살해되기에 이르렀다.

혜공왕이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13], 이로써 신라 중대는 막을 내리고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신라 하대의 첫번째 국왕인 37대 선덕왕 김양상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은 후, 38대 원성왕 김경신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왕위 계승 서열이 더 높았던 김주원을 제치고 즉위했으며[14], 그의 아들인 39대 소성왕이 요절한 후 즉위한 어린 손자인 40대 애장왕은 삼촌인 41대 헌덕왕에 의해 살해당했다.

헌덕왕의 동생으로서 왕위를 계승했던 42대 흥덕왕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을 때는 김균정과 김제륭이 왕위를 다투다가, 김제륭이 김균정을 살해하고 43대 희강왕으로 즉위했으나, 협력자였던 김명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살해하고 44대 민애왕으로 즉위했다.

그런데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이 청해진을 이끌던 군벌 장보고에게 의탁하며 와신상담하고 있었고, 그가 장보고와 함께 민애왕의 군대를 격파하고 45대 신무왕으로 즉위했다.[15]

이후에는 유혈사태를 동반한 왕위 계승권 분쟁이 더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고, 결국 호족이 급성장하여 문무왕 이래 통일국가를 유지하던 신라는 다시 셋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셋으로 쪼개진 신라에서는 52대 효공왕 사후, 왕위가 53대 신덕왕 박경휘에게 넘어가며, 아달라 이사금 이후 728년만에 박씨 왕이 즉위했다.

이후에는 박씨 일가가 신라를 지배했지만, 55대 경애왕서라벌을 침공한 후백제 국왕 견훤에 의해 살해당하는 참사가 터진 후, 다시 왕위가 김씨에게 넘어갔다가, 56대 경순왕 김부가 935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며 박혁거세 이후 천여년을 이어온 신라의 사직을 마감했다.
3.1.1.3. 견훤 일가
3대에 걸친 콩가루 집안이다.

아들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 아자개상주[16] 일대에서 독립 세력을 유지하다가, 아들의 라이벌고려 태조 왕건에게 그 땅을 바쳤다.

견훤 본인도 장남 견신검 대신 넷째 견금강을 후계자로 삼으려다가, 결국 신검이 그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까지 금산사에 유폐시켰다.

곧 견훤은 금산사를 탈출하여 과거의 주적인 왕건에게 귀순했고, 왕건과 함께 고려군을 이끌고 출정하여 본인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멸망시켰다.

이후 신검은 왕건에 의해 사면받았지만 더이상 기록에 등장하지 않아서 비밀리에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견훤은 후백제 멸망 이후 등창이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하는데, 신검이 사면받은 것에 울분이 터져서 그랬다는 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3.1.1.4. 백두혈통 김씨 일가
백문이 불여일견. 형제끼리는 김정남 피살 사건이 발생하고 부자간에는 김일성 암살설 같은 괴소문까지 돌 정도로 가족 구성원 간의 불화가 매우 심한 데다가 여성편력으로 비정상적인 관계도 여럿 있다. 다만 현재 김정은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김정은이 요직에 앉힐 정도로 사이가 좋으므로 예외.
3.1.1.5. 일부 재벌
재벌은 그 지나치게 큰 재산과 이권을 가족의 확대로 나눠갖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재산권 분쟁이 발생하고, 이중 상당수는 이후 그룹이 찢어지고 나서 원수지간이 된다.

왕자의 난으로 유명한 삼성그룹 2세 승계가 그러하고, 형제들끼리 일일이 그룹을 이리 찢고 저리 찢은 롯데그룹신격호와 그 형제 및 아들들 분쟁도 잘 알려져 있다.[17] 물론 이들도 조양호 일가에 비하면 약과다.

한진그룹 조양호 일가가 콩가루 재벌 가문 중 가장 극심한데, 아버지 조양호부터 비리를 저질러서 전혀 깨끗하지 못한 인물인데다 조남호를 비롯한 동생들과의 분쟁으로 한진그룹이 찢어지게 만든 과오를 저질렀다. 장녀 조현아땅콩 회항으로 대한항공의 명예에 먹칠을 했고, 아들 조원태누나보다 더 심각한 울트라 막장 행실을 보여줬다. 막내 겸 차녀 조현민언니의 행패를 임직원 전부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듯한 발언 같은 경박하고 무책임한 언행들로 물의를 빚었고, 내부고발에 대한 복수를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가 회사 직원과 광고대행사에 갑질과 욕설로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콩가루 집안의 끝장은 그룹 오너가 노쇠해서 경영을 못 하게 될 때 2세로 승계하는 과정에서 비리, 횡령 등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검/경에서 수사할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오너가 고령에 노쇠하면 형 집행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비리혐의를 다 떠넘기고 치사하게 자기들만 살려는 후레자식들이 재판정에서 속출한다. 대표적으로 최순실 게이트 이후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던 신동빈이 청탁과 뇌물 출처에 대해 아버지 신격호가 시켰다고 떠넘기거나, 지난 2008년, 차명계좌 비자금 수사 때 돈의 출처를 아버지 이병철의 돈이라고 떠넘긴 이건희 등이 있다. 이건희는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2020년에 작고하기까지 6년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못한 가운데 3세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아들 이재용이 대납한 다스 소송비의 자금 출처를 아버지의 것이라고 떠넘기면서 10년 전 자신이 했던 걸 고대로 돌려받았다.
  • 범삼성가 - 이병철 대에 장남 이맹희와 차남 이창희가 아버지를 청와대에 고발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이건희는 훗날 자신의 큰형을 두고 "어디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 내 얼굴도 똑바로 못 보고 집안에서 내쳐진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이맹희의 자서전을 보면 별장에서 칩거하는 자신에게 원조교제 혐의를 씌워서(동네 어린이들에게 용돈을 줬는데 이걸 가지고 별장에서 음란 파티를 벌였다고 음해했다고 한다.) 정신병원에 집어넣을려고 했으나, 이맹희가 사냥용 엽총으로 강하게 저항하면서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창희가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서 위험을 경고했다고 쓰여져 있다. 이건희의 누이 중 한 명은 이건희를 향해서 '엘리베이터걸의 자식'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했고, 이덕희는 이복누이이며, 이덕희의 남편인 이종기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LG그룹으로 시집간 이숙희 역시 삼성의 전자 사업 진출로 남남이 되었다고 한다. 이건희는 이숙희를 향해서 "우리 집안의 애녀였는데 금성으로 시집을 가더니 같은 전자 쪽을 한다고 그 쪽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라며 "우리 집에 와서 떼를 쓰고, 보통 정신 가지고 떠드는 정도가 아니었다."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 외에도 확인된 것들로는 이병철 회장은 최소한 3명의 부인이 있었고 그중 일본인 첩 사이에서 아들 한명과 딸 한명을 낳았다느니, 이맹희와 이창희는 이 일본인 첩에게 대들다가 이병철 회장에게 얻어 맞았다느니 등의 일화가 자서전에 쓰여 있다. 이후 3세대에도 콩가루 집안은 이어져서 아들과 장녀는 모두 이혼, 막내딸은 자살, 조카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 또다른 조카는 미행을 붙이고 검찰에 비리 혐의를 고소함으로서 현재 CJ그룹이재현 회장은 재판을 받고 있다. 이맹희 회장(+누이, 시누이) 사후까지 이건희는 유산 상속 소송으로 치고 받았고, 현재 CJ와 삼성 일가는 제사도 따로 지낼 정도로 심각하게 틀어졌다. 이건희는 2016년 기준, 성매매 혐의가 사실상 인정되고 있으며, 삼성그룹에서는 급하게 선긋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고로 이건희의 막내딸인 이윤형도 일반인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을 집안에서 결사반대한 탓에 미국에서 자살하였고, 외아들 이재용과 장녀 이부진도 이혼하였다.
  • 범롯데가 - 롯데그룹/경영권 분쟁 문서로.
  • 범한진가 - 한진그룹 문서로. 재벌 가문 중에서 조선일가, 남양유업 일가와 함께 가장 콩가루 집안이며, 직계들 모두 조선일보 가문, 남양유업 가문과 최철원, 신동학, 김동선과 더불어 악명높다.
3.1.1.6. 박정희 일가
1974년 광복절 행사 당시, 배우자 육영수문세광쏜 총격에 사망하고, 5년 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본인이 자기 부하에 의해 피살된 이후 자녀들이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두고 두 차례씩이나 싸움을 상당히 벌였다.
  • 박근혜: 정치인 시절에 비판과 논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18대 대통령이 되어서 성공하나 싶었지만, 대통령 집권 기간 내내 여러 논란과 사건사고들, 부패와 무능함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결국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새누리당이 완패하면서 완전히 국민들로부터 민심마져 잃어버림과 동시에 동년 가을에 터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로 인해 이듬해인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를 받고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게 되어 정치인으로서 완전히 파멸했다.[18]
  • 박근령: 재혼한 남편인 신동욱과 함께 언니 박근혜를 사사건건 방해하였거나 박근혜를 맹렬히 비난하였다.[19] 그리고 여러 망언과 폭언들로 비난을 받은 바 있고,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에도 부정부패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가 하면, 2018년에는 사기죄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박근령의 재혼한 남편인 신동욱은 여러 극우적 언행들과 많은 논란들로 인해 아내 박근령과 함께 정신나간 부부 취급을 받았다.
  • 박지만: 문민정부국민의 정부 시절에 상습적으로 사창가에서 마약 범죄를 저지르다가 6번이나 구속되었던 마약사범이었으며, 이로 인하여 살인 교사와 범죄 개입 의혹이 나돌았다.

그나마 박정희와 전처인 김호남 소생의 장녀박재옥과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 박재옥의 사촌누나/언니이자 박정희의 형 박상희와 형수 조귀분의 딸인 박영옥[20][21], 육영수의 여동생, 박정희의 처제이자 박근혜와 박근령, 박지만의 작은이모 육예수, 육영수의 언니, 박정희의 처형이자 박근혜와 박근령, 박지만의 큰이모 육인순의 딸, 이종사촌언니/누나인 홍소자는 현재 이들과 달리 별다른 구설수나 논란거리 없이 조용히 살았거나 살고 있지만,[22] 이들 박정희 가문과 육영수 가문의 여인 4명은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 - 육영수 소생의 자식 3남매들과는 거의 남남 수준으로 거리를 두었거나, 전술한 1979년 10.26 사건과 1974년 문세광이 저지른 총격 테러로 사망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가 남긴 국가 재산들을 놓고 일으킨 그들의 싸움에 불개입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박지만과 박근령은 현재에 와서는 논란과 비판거리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3.1.2. 로마 왕족황족 상당수

로마기원전 753년[23]부터 기원후 1453년까지 2,206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였고,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콩가루 집안이 있었다.

3.1.3. 측천무후 일가

측천무후 본인은 물론이고, 3대에 걸쳐 아들, 딸, 손자, 손녀 할 것 없이 정치적 암투와 숙청으로 얼룩진 집안이다.

측천무후 본인은 자신의 소생인 장녀 안정공주와 장남 의종을 죽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으며,[33] 차남인 장회태자를 쫓아냈다. 그 이후 끝내 자신의 아들들인 삼남 중종과 사남 예종을 차례로 폐위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34]

측천무후가 노쇠하자 신하들이 그녀를 태상황으로 물러나게 하고, 중종을 재옹립하며 안정을 찾아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중종의 황후인 위황후가 막내딸 안락공주와 모의하여 태자 이중준을 모함 끝에 죽이고 정치를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급기야 모녀는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황제인 중종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위황후와 안락공주의 정치적 능력은 측천무후에게 뒤떨어졌고, 이번에는 예종의 아들인 이융기가 고모인 태평공주와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위황후와 안락공주를 제거한 후 아버지인 예종을 다시 옹립한다. 그 이후 이융기는 태평공주마저 정치적 암투 끝에 숙청해 버리고 최후의 승자가 되어 당 현종으로 즉위한다.

이후 현종은 개원지치라는 태평성대를 열었으나, 웃기게도 현종 말년에 이르러 당나라는 점점 기울기 시작한다.

3.1.4. 후세인 일가

  • 사담 후세인(1937년 4월 28일 ~ 2006년 12월 30일)
    전직 이라크 대통령(재임: 1979년 ~ 2003년). 어렸을 때 양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산 기억 때문에 아들에게 손찌검도 제대로 못하고 거의 방목 수준으로 놓아 기를 정도로 아들을 너무 사랑하며(물론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딸들 결혼도 손수 챙겨주는 등 자상한 남자. 그러나 한편으론 이미 유부녀에게 청혼하여 둘째 부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 뒷통수를 쳤다고 딸네미들의 사위들을 총살해버리고 뇌내망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가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걸프전 당시 뒷통수를 쳤다고 쿠르드족 씨를 말려버린 희대의 독재자였다. 결국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권좌에서 축출당했고 2006년 연말, 약 10여개의 인륜범죄 유죄 판결을 받고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 사지다 탈파
    사담 후세인의 첫번째 아내. 1963년 사담 후세인과 맞선으로 결혼했다. 힘 있는 바트당 수뇌부 가문 출신이라 사담이 권좌에 오르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 아줌마도 남편 뺨치는 만만찮은 인간 말종이어서 우다이가 카멜 한나를 증오하다 못해 살해하게 된 것도 사지다가 옆에서 계속 원수를 갚아달라고 충동질한 탓. 그 외에 자기 정적들을 고문하라고 지시하는 등 이쪽도 심히 무시무시한 아줌마. 2003년 이후 행적을 감추었다. 현재 이라크 반군을 금전적으로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이 침공할 당시 이라크 중앙은행 금고를 싹싹 긁어갔다고 한다.
  • 우다이 후세인(1964년 6월 18일 ~ 2003년 7월 22일)
    사담 후세인의 장남. 사실상 현대판 순화군이라고 할 만한데,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다가 천장에 총질하는 건 기본. 아버지의 둘째 아내를 소개시켜줬다며 파티장(그것도 이집트 대통령 영부인까지 참석한 파티서)에서 자기 아버지 최측근 카멜 한나를 지팡이로 죽어가기 직전까지 구타한 다음 죽어가는 카멜 한나를 전기톱에 가까운 전동식 음식 자르는 칼로 숨통을 끊어버렸으며 이라크 올림픽 위원장 시절에는 경기에서 진 선수들을 고문하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35] 거기다가 자기 집 지하에 감옥을 만들곤 정치범들을 수시로 고문하였으며, 반송장이 된 수감자를 바로 옆의 개인 동물원 표범들에게 던져주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어찌나 추악한 악행들을 해댔는지 참다 못한 아버지 사담조차도 카멜 한나 사건 때는 개인 감옥에 4년 처박은 후[36] 스위스 대사관 직원으로 쫓아냈지만, 얼마 후 우다이는 어느 레스토랑 직원을 찔러 죽이겠다고 위협한 죄로 재송환당했고, 결국은 1996년 총알을 한 다발 얻어맞고는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동생 쿠사이와 함께 도피생활 도중 발각, 치열한 교전 중 미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사망. 참고로 최후는 비참했는데, 죽은 후 미군은 죽은 우다이와 동생 쿠사이 후세인의 시체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전세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 쿠사이 후세인(1966년 5월 17일 ~ 2003년 7월 22일)
    사담 후세인의 차남. 그나마 이 콩가루 집안에선 상대적으로 제정신인 사람. 여자를 매일 갈아치운데다 부인과도 이혼한 우다이와는 달리 결혼 생활도 나름 평온했고, 아들도 셋이나 낳았다. 그러나 잔학성 자체는 부모는 물론 지 형과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아서 1991년 걸프전 직후 벌어진 시아파 반란 분쇄와 남부 습지대 파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언젠가는 감옥이 꽉 들어찼다고 수천 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을 빈 공간 만들려고 쓸어버리는 짓을 감행한 적도 있다. 역시 2003년 우다이와 함께 도피 중 폭사. 당시 14살(!)이었던 장남 무스타파도 아버지와 같이 미군 장병들을 향해 AK를 난사하다가 그때 같이 죽었다.
  • 후세인 카멜&사담 카멜 형제
    사담 후세인의 사위들이자 먼 친척. 각자 사담의 삼녀 라그하드 후세인, 그리고 사녀 라나 후세인과 1986년 결혼했다. 우다이를 바보라며 멸시하고 우다이도 벼락출세한 이 둘(특히 이라크 무기 개발 책임자가 된 후세인)을 "골든 보이"라고 부르며 이죽대긴 했어도 사이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지만, 88년 발생한 카멜 한나 사건 당시 후세인이 카멜 한나 사건과 그 이전에 우다이가 벌인 기행을 죄다 일러바치면서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다.

    그 후에는 우다이가 사사건건 후세인에게 총을 들이대는 등 목숨이 위험해지자 1996년 전격적으로 아내들을 데리고 요르단으로 망명했다. 물론 좋은 의도는 아니었고, 실상은 미국에게 이라크 무기개발 정보를 넘겨주고 CIA의 도움을 받아 장인 사담 대신 권좌를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 후 사태가 꼬이면서(정확히 말하자면 사담이 무기개발 혐의를 죄다 카멜 형제에게 전가하면서 제대로 역관광을 태워버렸다) 오갈 데가 없어지자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사담의 꼬임에 넘어가 다시 이라크로 돌아왔다. 그 직후 강제로 이혼 당했으며, 얼마 후 같은 집안 사람들이 "배신자를 처단하러 왔다"며 총을 난사하며 그들의 집에 쳐들어와 둘을 사살했다. 사담 본인은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한 터라 죽일 수 없으니 같은 집안 사람이 너희 명예에 똥칠을 했으니 너희가 처리해라며 둘의 가문인 알 - 마지드 가문을 협박한 것.

3.1.5. 고대 아일랜드 밀레시안 왕가: 기원전 1700년(?)~(?)[37]

밀레시안은 투어허 데 다넌을 축출한 뒤 에린의 패권을 잡았지만 데 다난과 싸우는 도중 왕인 에베르 돈이 마나난 막 리르의 마법에 걸려 사망해버렸다.

그래서 이후 에베르 돈의 동생인 에레원과 에베르 핀이 공동으로 통치를 했는데 에베르 핀이 반쪽 왕으로는 만족을 못하고 형을 공격했다가 패배, 모가지가 잘린다.

이후 에레원계와 에베르계가 피똥싸게 싸우며 서로서로 번갈아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 에후르 막 쿠일, 테오르 막 케흐트, 카이호르 막 그레네 (투어허 데 다넌)
  • 에레원, 에베르 핀 (공동 통치)
  • 에레원 (단독 통치, 에레원계)
  • 뮈네, 루인, 라인 (에레원계)
  • 에르, 오바, 페론, 페르그나 (에베르계)
  • 이리얼 파이스 (에레원계)
  • 에스리엘 (에레원계)
  • 콘마엘 (에베르계)
  • 취허른마스 (에레원계)[38]

자세한 사항은 위키백과(#)에 나온다. 에베르 핀에서부터 후임자 링크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 된다.

3.1.6. 양무제 소연 일가


앞서 황족들끼리 황위를 노리고 논쟁을 벌였던 사건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양나라는 이를 겪고 얼마인가 무너졌다. 황태자로 임명된 소통은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황제에 오르지 못하고 요절했으며 소종은 북쪽으로 망명했다. 때문에 삼남인 소강은 후경(侯景)에 의해 즉위했으며 소적과 소속은 그전에 죽었다. 한편 소윤과 소역, 소기는 황위를 다투었고 이 과정에서 소윤이 후경에 의해 피살되었고 소역과 소기는 황위를 위해 다투어 이때 소기는 소역에게 피살되었다. 후에 소강이 살해되고 소역이 황제로 올랐으나 얼마 안 가 서위에 의해 피살되었다.

3.1.7. 프랑크 국왕

프랑크 왕국게르만족의 분할 상속 관습으로 인해 초대 국왕 클로비스 1세 사후 아들들이 넷으로 갈라먹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분열과 통합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이 절대 평화적이진 않아서, 분할 상속으로 나눠 먹은 영토를 통합하는데는 내전이 수반되었고, 그렇게 내전에 승리한 자도 아들들에게 분할해서 물려주고, 그 아들들이 또(...) 내전을 거쳐 다시 합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왕족들이 땅따먹기에 열중하는 동안 왕궁집사장에 불과했던 궁재의 권한이 강화되어, 나중에는 궁재가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슬람 제국서유럽 정복을 저지하는 업적을 세워 군사적 명성과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종교적 권위를 동시에 획득했고, 그의 아들 피핀교황의 승인을 받아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기존 왕실인 메로베우스 왕조를 대체하는 카롤루스 왕조를 세웠다.

카롤루스 왕조는 피핀 - 카롤루스 대제 - 루도비쿠스 1세의 3대에 걸친 세습을 이어갔으나, 루도비쿠스의 아들들이 내전을 벌인 끝에 나라를 셋으로 쪼갰다.

이때 형성된 세 왕국 가운데 서프랑크프랑스, 동프랑크독일, 중프랑크이탈리아[39]의 기원이 되었고, 지금까지 세 나라는 각자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3.1.8. 오스만 황제 일가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술탄 바예지트 1세티무르에게 포로로 잡힌 후, 그의 다섯 아들들이 각자 술탄이라 주장하며 내전을 벌였는데, 그 중에서 메흐메트 1세가 모든 형제들을 처단하고 내전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이게 영 좋지 않은 교훈을 남겨서 이후의 오스만 술탄들은 내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즉위하자마자 남자 형제들을 모조리 살해해야 한다는 악법이 생겼고[40], 이는 1453년에 오스만 군주가 술탄에서 황제[41]로 격상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이는 당장 황제의 정통성을 위협할만한 형제가 없다는 점 덕분에 황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으나, 정작 황제가 갑자기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해서 황실의 혈통이 끊어지는 참사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17세기 초에 즉위한 아흐메트 1세는 형제들을 죽이진 않는 대신 새장이라 불리는 밀실에 유폐시킨 후, 황족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식주만 제공하여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을 차단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100% 죽음 뿐이었던 이전에 비해 나아졌을 뿐, 밀실에 감금된 남자 황족은 언제든지 황제의 입맛에 따라 처형될 가능성이 존재했고, 실제로 밀실에 감금됐다가 끌려나와 처형된 황족도 꽤 있었다.

또한 황제가 갑자기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는 바람에 밀실에 감금되었던 황족이 새 황제로 즉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수십년 동안 방구석 폐인으로 살아서 정치 이전에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 황제가 돼서 삽질을 일삼는 바람에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형제 간 골육상쟁과는 별개로 모자 간 갈등과 고부갈등도 오스만 제국 정치를 막장으로 몰아간 원인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브라힘 황제의 어머니이자 섭정으로서 통치하던 쾨셈 술탄은 친아들과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그를 살해하고 손자 메흐메트 4세를 옹립했다.

그런데 쾨셈 술탄의 며느리이자 메흐메트 4세의 어머니인 '투르한 하티제 술탄'이 '아들도 죽였는데 손자라고 못 죽이겠냐'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떨다가,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그게 성공하여 쾨셈 술탄은 자신의 며느리에 의해 살해당했다.

3.2. 그 외

  • 헤롯 왕가[42] - 이 분야의 주인공. 성적으로도 많이 문란했고, 도덕적으로도 많이 더러웠다. 초대 헤롯왕의 경우는 베들레헴 내의 아기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으며, 2대 헤롯왕의 경우는 자기 이복동생(헤롯 빌립보 1세)의 아내(헤로디아)와 짜고[43] 불륜을 저질렀다. 이것 때문에 세례 요한에게 저격당하자 헤로디아에게 사주받아 그를 참수한다. 3대 헤롯왕의 경우는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사도 베드로를 투옥시키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안 돌려 갑자기 건강했다가 벌레먹혀서 즉사했다고 나온다.
  • 헨리 2세 : 정식 왕비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사이가 나빠 진작에 연금 시키고 바람을 피웠다. 여기에 아들들이 한창 자랄 시기에 잉글랜드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서 당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아무리 비정한 부모라도 폐하보단 나을 겁니다.' 고 꼬집었을 정도로 아들들에겐 신경을 개뿔도 안 썼다. 이러다보니 아들들은 만날 수 없는 아버지에 애정을 가질 수 없었고, 유폐된 어머니와 자연스럽게 사이가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헨리 2세는 나름대로 아들들을 챙겨준다고 후계자 교육을 하긴 했으나 영지 분배도, 권한 분배도 제대로 해주질 않아서 아들들이 더욱 반감을 품었다. 여기에 오랜 기간의 연금생활에 질린 엘레노오르가 아들들에게 바람을 살짝 넣어주니 적자 4명 중 3명이 친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박살났고 첫째와 셋째가 급사한 후엔 둘째인 리처드 1세가 어머니의 영지인 아키텐 문제를 두고 이전부터 쌓였던 불만이 폭발해 다시 반란을 일으켰는데, 리처드가 이전에 어머니의 연금생활이 지나치게 길다고 아버지한테 분노해서 다툰 전력이 있었다. 이번 반란에는 막내아들 존 왕까지 가담해서 평상시 아꼈던 그가 배신했다는 것이 크게 상심하여 실의에 빠진 끝에 죽었다.
  • 조선 태조 - 두 번째 부인이자 조선 최초의 왕후인 신덕왕후 소생의 왕자이자 막내인 이방석을 세자로 삼고, 정도전이 사병 혁파 등을 비롯하여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을 견제 및 숙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주살하고 세자였던 이방석과 우유부단하게 굴던 이방번을 죽였다. 이후에는 이방간이 권력욕 때문에 멍청하게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2대 임금인 정종이 '어디서 헛소리를 듣고 형제를 죽이겠다니 너 미쳤냐? 그만둬라.'라고 꾸짖고, 이방석을 죽인 일로 이방원과 앙숙이던 태조까지도 '방원이 그놈은 적어도 동복형제는 안 죽였는데 넌 무슨 미련한 짓거리냐!'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그리고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되고 얼마 안 지나서 이성계의 사주로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면서 이성계와 이방원 두 부자가 서로 전쟁을 펼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나마 말년에는 화해하면서 좋게 끝난 편.
  • 조선 고종 - 이 쪽은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과 자신의 부인 명성황후가 대립한다. 며느리는 아버지를 중국으로 납치시키고, 시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있는 며느리의 장례식 치른다.[44]
  • 야곱의 가족 - 어렸을 때 아버지 이사악의 쌍둥이 형 에사오를 편애하고, 어머니 리브가에게 편애를 받고 성장한 원인이었다. 외삼촌이자 장인어른인 라반에게 약 20년 동안 이용당하다가 말년에 두 번째 아내인 라헬과 그녀의 아들들인 요셉과 베냐민을 편애하여 의도치 않게 나머지 아들들을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되게 만들어버렸다. 장남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근친상간을 하여 장자권을 박탈당하고,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는 친여동생 디나를 강간한 세겜 일가를 학살했고, 사남 유다는 큰며느리 다말과 근친상간을 하여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게다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이자, 최대 피해자인 요셉은 이복 형들의 질투로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다가 이집트 시위대장의 아내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또 다른 피해자인 디나는 히위 족속 수장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다행스럽게도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후에 아들들과 화해하게 된다.[45]
  • 다윗의 가족 - 다윗은 초반에 정상적이였지만, 자기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장남 암논은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해 그 여동생의 오빠 압살롬이 죽여버렸고, 나중에 그 압살롬은 내전을 일으켰다.[46] 그 이후 넷째 왕자 아도니야가 쿠데타를 준비하려다가 다윗의 지지를 얻은 솔로몬이 먼저 왕으로 등극해버렸으며, 그 아도니야도 나중에는 솔로몬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솔로몬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말년에 솔로몬이 우상 숭배를 하는 바람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일가 - 문선명 본인도 이혼 및 재혼. 결혼 생활 중 불륜으로 낳은 혼외자식 2명.[49] 자식 중 6명이 이혼함. 장남의 알콜 • 마약 중독, 가정폭력, 갑질. 3녀의 불륜 및 사생아 출산. 3남의 갑질 및 폭행, 재산 먹튀. 7남의 패드립 및 총기 숭배 논란. 4녀, 3남, 4남, 7남은 부모와 연을 끊고 삶. 6남의 투신 자살 논란. 10남 7녀의 자녀 중 장래 후계자 전무. 통일교 내부 파벌 싸움과 분열을 했다.
  • 조선일보 일가 - 조선일보 인수자이자 일가의 먼 조상인 방응모는 친일 행적이 있고, 사장 방상훈과 차남 방정오는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었고, 전 코리아나호텔 사장 방용훈은 자식들과 함께 아내를 폭행에 시달리게 하여 죽게 했다. 사장 방상훈의 손녀이자 방정오의 장녀는 운전기사에게 갑질하여 비난을 받았고, 이에 조선일보는 침묵으로 일관하다 아버지 방정오가 결국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 장윤정의 가족: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문서에 잘 나와 있다. 이 때문에 장윤정은 친가와는 거의 절연하다시피 했고, 장윤정의 남편 도경완은 처음엔 복권 당첨자 같다는 비아냥을 받았으나, 이후엔 이런 가정불화까지 감수하며 결혼을 결정한 성인군자 같다는 씁쓸한 평가를 받았다.
  • 삼국지에 나오는 원씨네 가족 - 특히 원소 사후의 원씨 형제.
  • 육조시대 유송 왕조 - 단 한 줄 요약하자면, 남자 친척은 죽이고 여자 친척은 겁탈하는 가문. 물론 정상인도 나오긴 했지만 얼마 안 되었고, 슬프게도 유송의 뒤를 이은 남제도 유송 못지않게 막장이었다. 이후 들어선 양나라도 막장이었지만, 그래도 앞서 나온 두 왕조보다는 나았다.
  • 전두환 일가 - 전두환은 12.12 쿠데타5.17 쿠데타를 일으켰고, 5.18 민주화운동 때 민간인 대량학살을 일으키고 폭정을 저질렀으며 이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51] 아내 이순자와 동생 전경환은 비리를 저질렀고, 자식들의 경우를 보면 위의 박정희 일가 자식들처럼 인성이 영 안 좋은데, 장남 전재국은 시공사와 북스리브로 사장으로 있으면서 횡령 및 배임을 저질렀고, 차남 전재용은 두 번 이혼하고 배우 박상아하고 세 번째로 재혼했으며, 전효선서경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예습을 안 해 왔다는 이유로 예습 안 한 학생들을 강의실 밖으로 쫓아낸 뒤 결석 처리하여 논란이 일었다.
  • 모나코 공국을 통치하는 그리말디 가문 - # 모나코 문서로. 아예 13세기 이후로 결혼 실패의 저주가 흐르는 집안이다.
  • 예카테리나 2세, 표트르 3세 부부와 파벨 1세 -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데다가 국정을 무능하게 이끌던 표트르 3세는 부인 예카테리나 2세의 쿠데타에 의해 제위에서 쫓겨난뒤 의문사, 부부의 아들인 파벨 1세는 아버지를 쫓아낸 어머니와 평생 다투었고 파벨이 표트르의 친자식이 아니라 예카테리나 2세의 정부에게서 난 핏줄이라는 소문이 당대부터 돌았다. 예카테리나 2세는 싫어하던 아들 대신 손자인 알렉산드르에게 제위를 물려주려 시도하나 알렉산드르의 거절로 무산. 어머니를 증오한 파벨은 즉위하자 마자 여자가 러시아 제국의 제위에 오를 수 없도록 법을 뜯어 고쳤다.[52]
  • 이반 4세의 가족들 - 이반 4세가 워낙 성질이 괴팍한 나머지 임신한 며느리가 얇은 복장을 했다고 폭행해서 유산하게 만들고 그걸 두고 아들이 불만을 가지자 아들을 때려죽였다. 결국 얼마 안 가 류리크 왕조는 단절되고 로마노프 왕조가 열린다.
  • 구용서의 가족 - 친가, 외가, 처가가 모두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연계되었다. 아버지 구연수(具然壽, 1866~1925)는 을미사변 당시 우범선의 부하로서 일본인 낭인들을 안내하고 시신 소각을 감독했으며, 일진회의 어용시위를 조장해 고종 퇴위에도 관여했고, 한일합방 직후에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의 유일한 조선인 경무관이자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무려 송병준의 외손녀였다.[53] 어머니 사카이 와키는 우범선의 처제[54]였기에 이모부도 악질 친일파였던 셈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본인은 어떠한 친일 행위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55]
  • 임택근 아나운서의 가족 - 임택근은 여자 관계가 상당히 문란했다. 손지창은 아예 아들로 인정을 하지도 않았고, 임재범 역시 정실 부인 소생이 아니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가족 - 프로이센 2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프로이센 역대 국왕들 중에서 최악의 남편이자, 막장 아버지이었다. 아내 조피 도로테아 왕비[56]를 폭행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다.[57] 심지어 장남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왕자의 세례식 때 강제로 머리에 왕관을 씌워서 머리에 생채기가 나도록 죽게 만들거나 차남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가 대포 소리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대포를 쏴서 쇼크사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가족들에게 증오를 받았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사망하자마자 가족들 전체 다 국민들과 함께 기뻐했다.
  • 프란츠 요제프 1세 가족 - 프란츠 요제프 일가는 존재 자체가 콩가루 집안의 대명사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 본인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선량하고 성실한 군주였지만, 가정사는 막장 드라마를 초월한 환상적인 콩가루 집안이었다. 동생 막시밀리아노 1세는 멕시코 황제가 되었다가 총살, 아내 시씨는 엄격한 가풍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식들을 내팽겨친 채로 여행만 다니다가 암살, 어머니 조피 대공비는 자식들 교육한답시고 엄격하게만 키우기만 하지, 외아들 루돌프는 이런 할머니와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특히 아버지인 요제프 1세, 아내인 스테파니와 매우 심각한 갈등을 겪다가 외도녀와의 충격적인 동반자살, 후계자로 선택한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전대미문의 대전쟁의 서막을 자신의 죽음으로 열었다. 손녀딸은 사민당원과 사귀다가 황족 신분을 버리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건 덤. 오죽하면 요제프 본인도 "나는 운이 없는 놈이야!"라고 셀프 디스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심지어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런 비극적인 가족사를 연속으로 겪고도 86세까지 장수했으니 보통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 응게마 일가 - 한마디로 아프리카판 김씨 일가이다. 응게마 일가는 2대째 적도 기니의 대통령을 역임한 집안인데, 초대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별명이 '아프리카의 폴 포트'가 별명이었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독재자였고[58], 조카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는 그런 응게마의 최측근으로서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 '블랙 비치' 교도소의 소장을 역임하며 수많은 정치범들에 대한 고문과 처형을 명령한 악인이었다. 그런데 삼촌인 마시아스 응게마가 조카인 오비앙의 막내동생이 수개월간 밀린 임금을 줄 것을 요청하자 응게마는 가차없이 그 조카를 처형하도록 명령했고, 이에 분개한 오비앙은 삼촌에 대한 충성심을 접고 쿠데타를 일으켜 삼촌을 몰아내고는 적도 기니의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으며, 삼촌을 군사재판에 회부한 후 처형시키고는 무덤도 공동묘지 근처 구덩이에 던져놓고는 표식도 없이 대충 파묻는 것으로 처리했다. 참고로 테오도로 오비앙은 2024년 현재까지도 45년째 현역 독재자로 집권하고 있으며, 나라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유천연가스로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는데도 그 부를 자신들 일가와 측근들이 독점해 일반적인 적도 기니의 국민들은 일반적인 최빈국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빈곤하게 살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테오도로 오비앙의 아들 또한 적도 기니의 부통령으로 세습 의혹에 휩싸이고 있는 데다가 사치 행각으로 여러 번 물의를 빚었으며, 심지어 삼촌의 사생활도 막장 그 자체였는데, 응게마의 첫째 아내는 10대 소년과 불륜을 저지른 게 발각되어 이혼당했고, 응게마는 둘째 부인과 결혼한 후에도 첩을 두다가 첩과 사랑에 빠져 정실부인과 이혼하고 첩과 다시 결혼했는데, 셋째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부부끼리 한 방에 자는 적도 거의 없던 것은 물론이고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데다가 심지어는 국민들에게 아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그나마 마시아스 응게마의 막내딸인 모니카는 아버지의 축출 직전부터 북한에서 유학 생활을 한 후 아무런 물의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으니[59] 논외.
  • 카리모프 일가: 아버지 이슬람 카리모프는 2005년 안디잔에서 비무장 반정부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해 수백 명을 학살한 안디잔 학살을 일으킨 우즈베키스탄판 전두환이고, 장녀 굴나라와 차녀 롤라는 모두 아버지의 재력과 정부의 비호를 바탕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하면서 초호화 생활을 즐긴 부패한 인물들이다. 가족 관계도 매우 좋지 않아 아버지는 장녀를 우즈베키스탄으로 송환한 후 가택연금시킨 바가 있으며, 두 자매는 2001년 무렵부터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극단적으로 나쁘다고 한다.
  • 조등, 조조: 중국판 민병석 부자이자 그 원조격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조조는 조등의 양손자이다. 조등은 환관 집단 십상시의 스승격으로써 후한 말기의 혼란상의 흑막격이고, 조조는 망탁조의로 묶일 정도로 중국사의 대표적인 간신으로 꼽힌다.
  • 가규 - 가충 - 가남풍: 3대가 세 다른 나라[65]를 망국으로 몰고 갔다.[66] 스케일로 보면 민병석과 미르 자파르 일가 이상이다.
  • 미르 자파르 & 이스칸데르 미르자: 정확히는 부자가 아닌 9대 차이가 있지만 행각으로 보면 영락없는 남아시아판 민병석 부자&가규 3대이다. 조상 미르 자파르는 뱅골 지역의 나와브 지위를 얻기 위해 플라시 전투에서 일부러 영국에 져 주며 나와브에 오른 대가로 영국의 무굴 제국 점령의 핵심 인물이 된 인도판 이완용이고, 후손 이스칸데르 미르자는 독립한 파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으로써 동파키스탄에 대한 강경 정책으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떨어져나갈 기반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집권 말에는 친위 쿠데타아유브 칸의 쿠데타를 야기해 파키스탄을 군부독재의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 정윤회&최순실 일가: 정윤회와 최순실은 현재는 이혼. 비선실세 의혹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났으며, 딸인 정유라도 희대의 교육 특혜 비리를 저지르다가 덴마크에서 체포되었다. 일단 정유라부터 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엄마인 최순실에게 셀프 패드립을 날리고, 게다가 정윤회와 최순실 간의 관계도 대단히 나쁜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도 매우 복잡하다. 그나마 정윤회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정우식은 평범한 배우 활동을 하는 듯 했지만, 이 쪽도 정윤회가 방송사에게 특혜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있다. 정윤회와 정우식의 관계도 이전부터 매우 험악한 편이라서 정우식은 이 특혜가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여기서 언급된 3가지 유형에 모두 속하는 셈.
  • 보나파르트 가문: 나폴레옹의 형제들은 재능은 그저 그러면서도 정치적 야심만큼은 대단해서 나폴레옹과 권력 싸움을 계속했다. 이는 나폴레옹이 혈족에게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사실상 자신의 능력만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두 아내와의 관계도 매우 나빴는데, 첫번째인 조제핀은 인품은 선량했지만 사치가 심하고 바람도 심하게 피워서 결국 이혼했고, 두번째인 마리 루이즈는 처음부터 강제로 한 정략 결혼이라서 순탄치가 않았다. 결국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관계도 끝난다. 정작 나폴레옹 본인도 지독한 바람둥이여서 여자가 여럿 꼬여 있었고, 직접 아들을 2명이나 뒀다. 그나마 끝까지 나폴레옹을 지지하고 따라 준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와는 혈연 관계가 없었던 의붓자식(조제핀이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와 오르탕스 보아르네 남매 뿐이었다. 유일한 적통인 나폴레옹 2세의 경우 나름대로 친부 나폴레옹을 좋게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 어릴 때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해서 제대로 된 관계고 뭐고 없었다. 또한 진위여부는 불명이나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 친모의 불륜으로 사실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현재 나폴레옹 3세의 직계 후손이 없기에 이 주장은 현재로서는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는 주장이다.
  • 고구려 유리명왕과 아들들: 유리명왕 문서로... 이에 대해 김부식삼국사기에서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 베이클랜드 가문: 세계 최초의 인공 합성수지베이클라이트를 만든 레오 베이클랜드가 이끌던 가문이다. 이 가문의 상속자인 브루스 베이클랜드는 아내 바바라 몰래 아들의 여자친구랑 불륜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아내랑 별거를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고통을 잊기 위해 바바라는 아들 안토니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정도가 아들을 연인으로 여길 정도로 매우 심해졌고[67] 결국 바바라는 그녀의 엄청난 집착에 괴로워한 자기 아들 안토니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게다가 안토니는 어머니를 죽인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출소한 후에는 할머니까지 죽이려고 했고 결국 다시 감옥에 들어가 그 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마츠카타 히로키와 자녀들 : 아버지는 일본판 신성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고, 이는 아들 중 하나에게도 이어져 불륜 현행범으로 잡히기도 한다. 하필 여동생이 소개시켜준 여자를 냅두고 불륜하던 거라 여동생과 거의 의절까지 갔다.
  • 이재선이재명 - 해당 문서로 둘은 결국 이 생애에서는 화해하지 못했다.
  • 말론 브란도의 집안 - 아내도 자식도 사생아도 많았던 말론 브란도다. 그 중 압권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인 타히티 혼혈 딸 샤이엔의 말만 듣고 애인을 죽여버린 장남 크리스천. 정작 애인을 죽이고 난 후 샤이엔의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되자 후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샤이엔은 당시 만삭이었다. 결국 샤이엔도 그 아기가 5살 때 자살해버렸다.
  • 마우로 이카르디의 집안 - 이카르디는 그의 친가와 거의 연락하지 않는데 이게 모두 다 불륜으로 결합한 현 아내 완다 때문이다. 완다가 대놓고 시댁 식구들과 남편을 이간질시키는 건 물론, 자기 시누이에 대한 악성 소문을 퍼뜨리고 다닐 정도. 그리고 마침내 자신은 물론 남편의 경력까지 끝장내려고 하고 있으나, 본인들은 모르고 있다. 완다는 궁지에 몰리자 기어코 입페미가 되어버리기까지 했다.
  • 델레 알리 - 델레에게는 4명의 이부 남매들이 있는데 모두 각자 다 아버지가 다르다. 심지어 델레의 친부는 델레 친모가 델레를 배고 있던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친모는 델레를 잘 키우기는커녕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려 델레는 결국 친모와 격리돼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된다. 다행히 친구네 집안 사람들이 정말 잘해줘서 사이가 친가족 못지않게 매우매우 좋다.[71] 한편 친모는 갑자기 나타나 계약에 개입하려고 했고 이게 법정 공방으로까지 가서 델레가 매우 짜증냈다. 지금도 델레는 친모와 이부남매들에게 도리상으로 생활비를 보내주긴 하지만 직접 접촉은 전혀 안하고 있다. 다만 친부와는 저런 사연을 감안해 연락을 하고 있다.
  • 박수홍의 집안 - 자신의 친형 가족이 박수홍의 매니저 노릇하며 그가 데뷔부터 지금까지 벌어들인 100억을 웃도는 재산을 가지고 온갖 부동산을 사들이고, 재산을 쌓고, 명의도 박수홍의 명의가 아닌 본인들 명의로 설정하고, 심지어 그 조카들도 자기 재산도 아닌 삼촌의 돈으로 사치를 부렸다. 그리고는 한 푼도 그 재산을 넘겨주지도 않았고, 박수홍의 편을 든 가족은 한 명도 없었으며 친형 일가는 해당 폭로가 밝혀지자 미국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박수홍이 진지하게 만남을 갖던 연인과 이별하게 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박수홍의 인생에서 도움되기는 커녕 태클만 걸고 있다. 다만 박수홍의 부모는 장남이 차남에게 벌인 짓을 모르고 살았다고 하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어도 비판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박수홍과 그 형 & 형수 내외는 서로 법정에서 선전포고하기에 이른다. 허나 어머니는 과거 박수홍이 어릴 적에 두부 심부름 늦게 갔다왔단 이유로 두부를 박수홍의 얼굴에 던진 적이 있었고, 대질 조사 과정에서 부친은 폭언을 내뱉고 검찰 출석 때는 아예 폭행까지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어 그 정상참작의 여지마저 사라졌다. 자세한 것은 박수홍 횡령 피해 의혹 논란 항목으로.
  • 안정환의 집안 - 이혜원과 결혼하기 전 어머니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 디에고 마라도나 - 본인이 인정한 사생아만 2명이고, 친권 소송 중에 있는 사람들도 아직 몇 명 있다. 그래서 차녀 지아니나가 아예 이럴 거면 애들로 축구팀을 짜라고 화를 낼 정도였다.
  • 마리오 발로텔리 - 가나에서 이탈리아로 이민 온 친부모는 어릴 때 병약했던 마리오의 치료비를 감당할 돈이 없어 동생과 함께 입양을 보냈고, 마리오는 동생과 함께 현지인 발로텔리 일가로 입양돼 국가대표팀 축구선수까지 됐다. 친부모가 그제야 나타나 돈을 요구하자 마리오는 강력하게 이들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발로텔리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자 친부모는 몰래 영국까지 따라왔다. 그러나 발로텔리도 이탈리아인 애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기 딸을 한동안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
  • 이은석의 집안 - 부모가 어느 정도로 악랄했냐면 형이 동생의 범행을 알았을 때 동생을 이해한다고 한 것은 물론, 심지어 미국에서는 이은석의 살인이 정당방위로 판결되어 무죄를 선고받았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72] 참고로 형도 부모에게 시달렸지만, 동생보다는 그래도 덜 시달렸다.[73] 그런데 부모만 자식들을 학대한 게 아니라 부부간에도 사이가 엄청나게 나빴다.[74] 심지어 부모라는 작자들도 둘 다 정상인이 전혀 아니었다.[75][76] 그나마 자식들은 서로 관계가 좋았다.
  • 안토니오 카사노 - 아버지가 부재중이라 한부모 가정에서 커 축구선수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가 찾아오자 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카사노 본인도 별명이 카사노바였을 정도로 사생활이 상당히 문란했다.
  • 미키 바추아이 - 애인이었던 여성에게 사생아의 양육비를 제대로 안 줬다고 고소당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바추아이는 그 아이의 친부임을 부정한다고 한다. 그 여성을 만나기 전에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도 아이를 봤다.
  • 제이크 로버츠의 집안 - 제이크 로버츠의 아버지 그리즐리 스미스는 애인의 12살 짜리 딸 폴라를 강간하여 제이크 로버츠를 낳았고, 즉 그리즐리 스미스는 제이크 로버츠의 아버지 겸 할아버지이자 어떤 의미로는 매제가 된다. 그리고 폴라는 제이크 로버츠의 누나이자 엄마가 된다. 훗날 폴라는 그리즐리 스미스의 강간으로 인해 딸 조린 스미스까지 낳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조린은 제이크 로버츠의 여동생이자 조카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막장 가정 환경 속에서도 제이크 로버츠는 꿋꿋하게 성장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 이규현, 이규혁: 이규현은 과거 음주운전을 하다 행인을 쳐 사망에 이르게한 전과가 있고 나중에 미성년자인 제자 강간미수를 저질렀다. 그의 형 이규혁도 성폭행 의혹이 있고 아버지 이익환도 과거 강간미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 유일하게 어머니 이인숙만 사건사고가 없다.
  • 르펜 일가 -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을 이끌던 장 마리 르펜은 정계에서 은퇴하며 딸 마린 르펜에게 당권을 물려줬는데, 마린 르펜이 중도우파 노선을 수용하여 당을 이전보다 온건하게 만들자 장 마리 르펜은 딸을 비난하며 갈등을 빚었고, 마린 르펜이 아버지를 출당시키면서 장 마리 르펜은 본인이 만든 당에서 친딸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 2차 세계 대전 직후 세계에 공산주의가 퍼지던 시절에는 멀쩡했던 집안들이 이념 차이로 인해 한순간에 콩가루 집안이 되는 사례들이 매우 많았는데, 공산주의인 자녀가 자신들한테 반대되는 부모를 반동분자로 몰아서 죽게 만드는 식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점령지에서는 자기 부모를 밀고해서 인민재판으로 죽게 만든 일들이 많았다.
  • 중국에서는 홍위병들이 판치던 시절에는 이 홍위병들이 자기 부모에 대해 자신들 또는 당에 조금이라도 반대된다는 이유로 상부에 고발해서 죽거나 장애가 생기게 만드는 식의 콩가루 집안들이 많았다.

4. 픽션 속의 콩가루 집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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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프로레슬링에서

프로레슬링에서도 콩가루 집안 각본들이 꽤나 많은데, 주로 형제, 자매끼리 그런 사례들이 많고, 사촌간에도 그러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되기도 한다.

프로레슬링에서의 콩가루 집안 각본들은 갈등과 화해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도 실제로는 원만한 가족이거나, 각본상 가족이라도 실제로는 매우 친한 경우가 많다. 진짜 콩가루 그 자체인 헐크 호건은 예외이다.

보통 프로레슬링에서 콩가루 집안 각본이 나올 경우 어느 한쪽 또는 구성원 모두한테 싱글로서의 푸쉬를 주거나 하이 미드카더 또는 메인이벤터로 키우기 위해 그러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경우는 비혈연 태그팀이나 스테이블에 대해서도 어느 한명 혹은 구성원 모두한테 싱글로서의 푸쉬를 주거나 하이 미드카더 또는 메인이벤터로 키우기 위해 태그팀이나 스테이블을 해체 시키는 일들이 많다.

특히 WWE에서는 이런 콩가루 집안 각본이 잊을만하면 나오곤 했다.

프로레슬링에서의 대표적인 콩가루 집안 각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맥맨 일가: WWE에서 대표적인 사례. 부모와 자녀 사이, 사위와 장인 사이에 대립과 화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곤 했었다. 물론 실제로는 매우 원만한 집안이다.
  • 파괴의 형제: 역시나 WWE에서 대표적인 사례들중 하나. 대립과 화해를 반복적으로 해왔지만 실제로는 사실상 의형제다.
  • 더들리 보이즈: 서로 이복형제들인 이들 또한 특히 핵심 3인방인 버버레이, 디본, 스파이크는 서로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는데, 이들의 태그팀 기술인 3D에 처음 맞은 사람도 바로 스파이크 더들리다.
  • 사모아 선수들: 서로 사촌지간인 더 락리키쉬가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기도 했고, 이들 다음 세대들인 우소즈로만 레인즈도 사촌끼리 서로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다.
  • 하디 보이즈: 형인 매트가 동생인 제프한테 열폭하다가 공격하며 갈라졌다가 화해하고 다시 재결합 하기도 했다.
  • E&C: 형인 에지가 우승 욕구에 눈이 멀어서 동생인 크리스찬을 배신했다.
  • 도미노, 체리: 각본상 남매로 체리는 동생이 속한 태그팀인 듀스&도미노 태그팀의 매니저였으나 동생인 도미노가 팀 파트너인 듀스랑 합심해서 누나인 체리를 내쳤고, 체리는 이 팀과 대립중이었던 팀인 제시&페스터스에 붙었었다.
  • 롤러 부자: 제리 롤러가 가족들을 잘 챙기지 못해 상처받고 자란 아들인 브라이언이 아버지한테 자식이 받은 상처를 알기나 하냐면서 화를 내며 갈라섰다.
  • 로즈 형제: 골더스트와 코디가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으며, 특히 골더스트는 과거 코디 이전에 또다른 동생인 블루 미니랑도 대립과 화해를 했었다. 반면 블루 미니와 코디는 그렇다할 묘사가 없다.
  • 디비아시 부자: 롤러 부자와 비슷하게 가족한테 무책임했던 아버지인 테드 디비아시로 인해 상처받은 주니어가 아버지를 폭행할 정도로 큰 갈등을 맺었다.
  • 로스 게레로스: 조카가 삼촌을 배신한 케이스인데, 조카인 차보가 삼촌인 에디와 태그팀 전선에서 활동하면서 자꾸만 손해를 보다가 결국 폭발한 차보가 악역 전환하면서 삼촌을 배신한 경우였다.
  • 스타이너 브라더스: 동생인 스캇이 챔피언 욕심에 형인 릭을 배신했다.
  • 미스테리오 부자: 아들인 도미닉이 아버지인 레이를 배신했다.

5. 관련 문서



[1] 80~90년대 버전으로 똑같은 상황에서 아빠는 바람둥이 혹은 강남 제비, 엄마는 날라리, 딸은 비행 청소년, 아들은 덜떨어진 애...라는 것도 있다.[2] 한 집안이 다른 집안이랑 두 명 이상의 혼인 관계를 맺는 것.[3] 이 때문에 유교의 영향으로 근친 문제에서 가장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겹사돈의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4] 사촌간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들도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가능은 하다일 뿐이지, 사회적으로는 경멸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올라프 5세처럼 특수 신분에 속하는 인물은 당연히 논외다[5] 그 때문에 유럽 일부 왕조에서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이 상당히 많았었다.[6] 가령 사촌간의 결혼은 법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꺼리는 문화권이 적지 않지만(유럽권의 경우 과거에는 드물지 않았지만 현대에는 상당히 감소) 이슬람권의 경우에는 전혀 꺼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오히려 흔하다.[7] 단, 이는 어디까지나 도시전설에 불과하다.[8] 삼국사기, 삼국유사, 족보에서 언급되는 시조[9] 금석문에서 언급되는 시조[10] 8대 군주 아달라 이사금 이후로는 군주를 배출한 적 없지만 꾸준히 왕후를 배출하는 외척으로서 세력을 유지했다.[11] 태종 무열왕의 아내이자 문무왕의 어머니인 문명왕후가 그의 여동생이었다.[12] 김씨, 박씨와 함께 돌아가면서 이사금을 배출하던 석씨는 통일되기 훨씬 이전에 중앙정계에서 영향력을 상실했다.[13] 정사에는 김지정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를 진압하고 즉위했다고 기록된 김양상김경신이 혜공왕 살해의 진범이고 김지정은 죽은 뒤에 억울하게 뒤집어썼다는 설도 있다.[14] 홍수로 인해 입궐을 못하는 바람에 왕위를 포기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선수를 쳐서 조정을 장악한 김경신에 의해 반강제로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15] 덕분에 장보고는 신무왕의 아들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킨다는 약조를 받았으나, 정작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에 의해 암살당해서 실현되지 않았다.[16] 지금의 경북 상주시보다는 범위가 넓은 지역이었다.[17] 다만 롯데그룹창립자 분은 존경을 받지만 형제들과 아들들은 오만 쌍욕은 다 들어먹는다.[18] 현재는 사면되어 사실상의 고향인 대구광역시로 낙향해서 거주 중이다.[19] 박근령이 류청 풍산그룹 회장과 이혼 이후 신동욱과 재혼하려고 하자 박근혜는 여동생 박근령이 신동욱과 재혼하려는 것에 대해 결사반대하였다.[20]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21] 다만 박영옥과 박계옥, 박준홍 등 박상희와 조귀분의 자녀들도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녀들처럼 부모가 사망한 이후에 콩가루 집안 수준으로 싸워대지 않아서 그렇지 이들 자식 3남매들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박상희의 외동아들인 박준홍은 그 동안 뻑하면 사고를 치며 매형 김종필과 누나 박영옥과 박계옥, 어머니 조귀분의 속을 썩일 정도로 행실에서도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는데, 자세한 건 김종필/사건사고 및 논란, 박준홍, 박상희 문서로 다만 박준홍은 비리 혐의로 교도소에 갔다 온 후 말년에 노환으로 죽어가는 누나 박영옥, 매형 김종필 부부와 화해하고 누나 박영옥이 사망했을 때 누나의 장례식에서 상주 역을 담당하는 등 어느 정도 개념 있는 행보를 보였다.[22] 박영옥은 2015년에 노환으로 투병 중 사망했다. 이어 박재옥도 2020년에 타계했으며, 육예수와 홍소자는 아직 모두 생존 중이지만, 이들도 나이가 무척 많은 고령의 노파들인지라(육예수 - 1929년 생, 홍소자 - 1939년 생) 박영옥과 박재옥처럼 언젠가 노환으로 임종할지도 모른다.[23] 로마 건국 신화 기준[24] 로마는 왕위를 반드시 부계 혈통으로 세습해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고,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세습이 아니라 선거로 뽑힌 왕이었다. 후대의 로마 제국황제를 선거로 뽑진 않았지만, 사위가 장인의 뒤를 이어 즉위하는 게 합법적인 계승으로 인정받았고, 피가 섞이지 않은 양자에게 물려주는 것도 가능했으며, 동로마 제국에선 황제가 죽은 후 황후가 재혼하여 새 남편을 황제로 추대하는 것도 가능했다.[25] 동로마인들은 프랑크 왕국을 비롯한 게르만 왕국들을 '야만 왕국'이라 부르며 멸시하고 있었다.[26] 그러나 니키포로스 왕조는 불가리아와의 전쟁에서 초대 황제 니키포로스 1세가 전사하는 등 온갖 불운에 시달리는 바람에 겨우 11년만 존속했다.[27]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이나 북마케도니아와는 상관 없으며, 성씨마케도니아인 게 아니라 시조의 고향이 '마케도니아 테마'라는 행정구역이라서 붙은 명칭이다.[28] 아이러니하게도 니키포로스 2세와 요안니스 1세는 둘다 뛰어난 군사적 업적으로 동로마의 중흥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황제다.[29] 조이는 콘스탄티노스 9세보다 먼저 사망했고, 콘스탄티노스 사후에는 테오도라가 여제로 복위했는데, 테오도라의 죽음을 끝으로 마케도니아 왕조가 단절되었다.[30] 물론 장님이라서 실권을 행사할 순 없었다.[31] 니케아 제국(라스카리스), 트라페준타 제국(콤니노스),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앙겔로스의 방계)[32] 이후 디미트리오스는 오스만 황제 메흐메트 2세에게 토사구팽당해 가택연금 상태로 살다가 죽었고, 토마스는 교황령으로 망명하여 명목상의 황제 대접은 받았으나, 그의 아들 안드레아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로마 황제 작위를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스페인이사벨 1세&페르난도 2세 부부왕에게 팔아넘기고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여, 명목상의 계승권마저 단절되었다.[33] 다만 의종의 건강이 악화되자 고종과 측천무후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의종이 죽자 고종 부부가 크게 상심하여 황제로 추존했다는 기록도 있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만 차남과 몇몇 손자손녀들을 자신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고 죽여 버린 건 사실이다.[34] 다만 중종은 후술하듯 위황후 때문에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35] 축구선수들에게 맨발로 몇 시간씩 콘크리트 축구공을 차라고 했다고 한다.[36] 그나마도 죽이겠다고 펄펄 뛰는 걸 아내 사지다와 요르단 국왕이 뜯어말려서 겨우 참았다고 한다.[37] 에린 침략의 서가 출전인데, 오늘날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기독교색이 들어간 신화라고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밀레시안 부분은 완전히 기독교적인 부분.[38] 크룸 크루어히에게 살해. 이후 7년간 왕위 공석.[39] 남부는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서 프랑크 왕국과 접점이 없었지만, 통일을 주도한 건 북부 세력이었다.[40] 그래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이복동생 오르한 첼레비는 동로마 제국으로 망명한 후, 동로마군 소속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 참전했다가 함락 이후 처형되었다.[41] 로마 황제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세리 룸'과 페르시아어로 '왕들의 주인'을 뜻하는 파디샤를 칭했다. 또한 기존 군주의 칭호였던 술탄은 황족이나 고위 귀족에게 하사하는 칭호가 되었고, 여성 황족들도 수여받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발리데 술탄'은 황제의 어머니가 받은 칭호였다.[42] 성경에 언급되는 내용으로는 에서와 야곱 형제 중 에서의 후손 측인 에돔 족속의 후예로 나와 있다.[43] 헤로디아 역시 멀쩡히 살아있던 남편을 버리고 헤롯 안티파스에게로 갔다.[44] 백성의 노여움을 산 며느리를 보호하려 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있다.[45] 물론 장남 르우벤과 차남 시므온은 완전히 저주를 받았고, 삼남 레위는 두 형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긴 했지만, 후손 모세와 아론의 대활약으로 약간의 저주를 빗나가게 되었고, 사남 유다와 11남 요셉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많은 축복을 받았다.[46] 압살롬이 죽은 이후 다윗은 너무나 슬퍼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47] 역시 콩가루인 코무로 케이와 결혼했다.[48] 나루히토 천황과 마사코 황후, 아이코 공주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 마사히토 친왕과 하나코 비 등은 가족관계가 원만하므로 해당하지 않는다.[49] 문희진, 박사무엘.[50] 사실 미나모토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분이 이어진 집안이다.[51] 결국 본인이 사망하기 전까지도 끝까지 사과 한마디 없이 사망해 죽기 전에 아들을 통해 뒤늦게나마 사과의 뜻을 전한 절친 노태우보다도 인식이 훨씬 좋지 않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이 사죄의 뜻을 전한 것도 할아버지의 사망으로부터 1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이다. 게다가 MBC PD수첩의 취재에 응하면서 집안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52] 다만 이는 시대적 필요도 존재했는데 예카테리나 2세까지만 해도 차르 계승은 지명제라서 차르가 지명하면 아내가 즉위하는 것도 가능한 시대였다. 문제는 이렇다 보니 힘 좀 있으면 즉위하는 것도 가능해서 앞서 말했듯 예카테리나 2세 역시도 그런 식으로 즉위했고 때문에 당대 볼테르는 이를 두고 '점령제' 라고 비웃었을 정도로 또 러시아의 귀족들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러시아의 계승방식이 후졌던건 사실이다. 물론 프랑스와 혈연적 근친도가 없다시피했던[78] 로마노프 왕조에서 살리카 법을 도입한 것은 정말 파벨 1세가 어머니를 싫어했기 때문이다.[79][53] 가끔씩 송병준이 구용서의 외할아버지라고 언급하는 기사가 있는데, 정확히는 처외할아버지, 즉 처의 외할아버지다.[54] 구용서의 아내가 우범선의 아내의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우범선의 아내는 우장춘의 어머니이기도 한데, 우장춘도 친일 행위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으며, 오히려 유명한 생물학자로서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55] 조선은행의 도쿄 지점에서 근무하긴 했으나 이 정도로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오지 않는다. 시인 이상이 한때 조선총독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음에도 친일인명사전에 오르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다만 아버지의 직책 덕분에 조선인임에도 도쿄에서 근무하는 특혜를 받는 등 집안 내력으로 인한 특혜를 누린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 당연히 귀국 후에는 자신의 집안 내력을 철저히 감춰야만 했다.[56] 조피 왕비는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1세가 어머니랑 강제로 이혼하여 오빠 조지 2세와 함께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한다.[57] 특히 삼남 프리드리히 대왕과 장녀 빌헬미나 공주가 피해를 많이 입었다.[58] 얼마나 악랄했는지 그가 집권할 동안 인구가 30만 명 남짓이던 적도 기니에서 그 어떠한 전란도 없이 5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해외로 도피하여 인구 손실이 인구의 절반에 달할 정도였다. 참고로 응게마가 집권한 기간은 고작 11년이었다.[59] 2006~2009년 대한민국에서 생활하기도 했으며, 2013년 '모니카 마시아스'라는 이름으로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회고록을 출판해 국내에서는 아버지 이상으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60]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61] 궁내부대신 & 대법원장[62] 한일합방 &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63] 이용구 & 이석규 부자, 조병갑 & 조강희 부자도 다른 체제(여기서는 조선 & 일제강점기)에서 악행을 저지른 부자들이지만, 적어도 이들은 2대가 최고위직을 역임한 사람까지는 아니다.[64] 그나마 매국노의 후손이 최고위직에 오른 경우는 민복기와 (을사삼흉 이하영의 손자인) 이종찬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으며, 나머지 매국노 후손들은 모두 해방 후 일제강점기 시절의 입지를 완전히 잃었다. 정미칠적 이재곤의 아들 이순용이 내무부 장관에 오르긴 했으나 애초에 이순용은 한국광복군과 협업한 독립운동가였기에 논외.[65] 가규: 후한, 가충: 조위, 가남풍: 서진[66] 다만 가규만큼은 조조의 부하였던 데다가 조위의 건국공신으로 볼 여지도 있어서 아들과 손녀와 동렬에 놓기에는 다소 억울한 감이 있다.[67] 심지어 아들에게 동성 연인이 생기자 이를 질투해 그 동성 연인을 유혹해 둘 사이를 갈라놓기까지 했다.[68] 다만 원래 내명부의 수장인 왕비는 비워두면 안 되는 자리여서 영조도 60 넘은 나이에 새왕비를 들였다.[69] 다만 이는 야사다.[70] 단, 조식은 조비와 계승 문제로 얽혀 있어서 좀 그럴 만한 사유가 있긴 하다.[71] 다만 정식 입양은 안했다. 친구 아빠가 사업가인데 혜택 받으려고 입양한다는 시선이 싫었다고 한다.[72] 형뿐만 아니라 동창들도 이은석의 형과 입장이 비슷했다. 결국 당대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아도 모자랄 범죄인데도 사정이 감안되어 무기징역이 내려졌다.[73] 부모가 형 쪽만 편애해서는 아니고 그냥 형 쪽이 좀 더 부모에게 반항해서 부모도 반항 안 하는 동생 쪽을 학대했고, 특히 아버지 쪽은 정말로 형 쪽을 지나치게 편애했다.[74] 이유는 사랑 없는 중매혼이었던 데다가 남편 쪽의 잦은 출장 및 출타+적은 봉급+성격차+나이차+아내 쪽의 과한 욕심이 맞물렸기 때문이다.[75] 아버지 쪽은 전형적인 군인스타일(직업 자체가 대한민국 해병대 군인이었다. 이은석의 어머니는 군인이라는 점을 보고 결혼했는데, 당시가 군사정권 시절이라 영부인 자리를 노리고 결혼한 거였다고 한다. 하지만 해병대 출신인 이상 그럴 일은 없었고, 그마저도 전역해버려 그 대신이라고 선택한 게 자식들의 출세였다고 한다.)+원칙주의+자기중심적+가부장적+나르시시즘+내로남불+이기주의+결벽증, 어머니 쪽은 사이비 종교 신자(그래서 남편을 사탄이라 욕한 적이 있고 자식들에게 회개 기도를 강요하기도 했다.)+자존심 강한 성격+원칙주의자+욕구불만과 그에 따른 좌절과 분노+히스테릭+스파르타식 교육[76] 이런 막장 인간이 된 이유도 가관인데, 이들도 이들 못지않은 막장 부모 밑에서 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들 뒤에 숨겨진 진짜 원흉들은 조부모들과 그 친척들이다. 실제로 이은석의 형이 동생의 구명활동을 벌일 때 친척들은 모두 모른 척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친척 전체가 콩가루 집안.[77] 조형기의 경우 풀려난 뒤로 한동안 잊혀졌으나, 인터넷의 발달로 이 사건이 재조명되어 입지가 점점 좁아지다 사촌 동생미투 사건에 말려듦과 동시에 연예계에서 사실상 매장되었다. 그 후 사촌 동생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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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보통 살리카 법은 프랑스 혈통의 왕조에서 나왔다. 애초에 살리카 법에 근거한 계승 방식부터가 프랑스왕 필리프 5세가 침소붕대하여 만든것이다.[79] 이것과 관련해서는 또 파벨 1세의 부계가 독일계인 것과 연관짓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