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3 16:05:09

이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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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윤형
출생 1979년 4월 26일
사망 2005년 11월 18일 (26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애스터 플레이스
부모 이건희, 모 홍라희
형제 오빠 이재용, 언니 이부진, 이서현
학력 예원학교 음악과 플루트 전공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 학사
뉴욕대학교 대학원 예술경영학 전공

1. 개요2. 생애3. 사망

1. 개요

이병철의 손녀. 삼성그룹 이건희의 막내딸이다. 모친은 홍라희. 즉, 이재용의 여동생. 언니는 이부진, 이서현.

2. 생애

20대 중반인 그 당시에도, 이건희에게 많은 재산을 이미 물려받아서, 당시 국내 재산 순위 35위(약 2천억대 자산)로 막강한 재력가였다. 삼성네트웍스 주식 292만주,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 삼성SDS 주식 257만주를 가지고 있었다.

예원학교,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아트 매니지먼트 과정으로 유학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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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사람들의 평에는 재벌딸이라 티내고 그러한 면이 전혀 없었다고 하며 오히려 매미(태풍)때 익명으로 1억원을 기부한것으로도 알려졌다.주위에 불우한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는 착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이윤형은 2004년 9월, ‘이뿌니 윤형이네~’ 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일상을 담았다. 재벌가 딸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네티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이윤형은 홈페이지에 자신과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사진들을 올렸다. 여느 홈페이지처럼 처음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과 개인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나 기타 배우려고 시도하다가 내 남자친구가 기타 잘 치거든. 그냥 남자친구한테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내가 맨날 게으름 펴서 안 늘어.^^”(2003년 10월 29일)
“스키장에서 콰당~ 어떤 여자가 와서 나를 박는 바람에 조금 놀랐어요. 아빠가 ‘이제 헬멧 안 쓰면 스키 못 탄다그래서 아기처럼 헬멧 쓰고 타고 있어요.”(2003년 12월 26일) 등의 글이 네티즌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윤형의 홈페이지에는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지 않던 아버지 이 회장과의 일화, 이윤형과 남자친구 사이의 에피소드 등이 담겨 있어 네티즌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홈페이지에는 이 밖에도 가족과 함께 보낸 성탄절 이야기, 치아 교정으로 고생한 이야기, 집에서 김장한 이야기 등 재벌가의 사생활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홈페이지가 인기가 높은 것에 대해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인기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방명록에 글이 올라오면 답글도 달아주는 친절한 모습을 보여 인기가 더 높아졌다.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하루 4백~5백 명이 방문하자 사진첩과 프로필, 다이어리 등을 제한하다가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한 네티즌은 이윤형의 홈페이지 폐쇄 소식을 듣고 “재벌 딸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모습이 귀여웠는데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평범하고 여성스런 성격은 그녀가 늦둥이[1] 막내딸로 자라서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회장들도 결국 아빠라서 늦둥이 딸을 아끼는데다[2], 나이가 훨씬 많은 언니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니 이러한 성격을 가지게 됐다는 것. 이재용이 그룹의 후계자로 기대와 부담을 한 몸에 받으며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자란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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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는 명품 치장 없이 수수한 여느 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대원외고에 다닐 때는 점심식사를 관계자들이 차로 가져와 전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서 재벌가 딸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여성스럽고 가늘어, 귀엽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낼 때는 매우 논리적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친구들과 의견이 다를 때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다음 조목조목 반박하는 성격이다.

성격이 소탈한편이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조금 불같고 본인의 뜻대로 안되면 화내고 열내는 성격이었다는 평도 있으며, 결혼반대에 관련되서도 불같은 성격 때문에 욱해서 자살로 까지 영향을 끼친것 같다는 말이 있다. 사실상 인생에 큰 걱정이 될 정도까지의 고민은 없고 장애물도 없었을텐데 결혼으로 처음 반대를 당하니 한계점에 부딪혔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 네티즌의 글에 의하면 자신이 대학생 때 모 미술관에서 전시회 준비를 돕는 알바를 했었는데 그 당시 이윤형이 24살때 쯤 참석했다고 한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도중 큐레이터도 있고 각종 스텝들이 많은데 그녀가 무언가 맘에 안들어 갑자기 어디로 전화를 하더니 "엄마, 난데 이거 내 맘대로해도 되지? 아 맘에 안들어" 라고 하였다고 카더라 그후 그 전화 한통화로 모든게 다 싹 바뀌었다고 한다.

기사나 보디가드에게도 자신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할 때는 단호한 목소리로 거부하는 모습을 학생들이 많이 봤다고 한다.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평범한 독서실에서 공부를 해서 학생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그녀와 에버랜드에 가면 모든 것이 공짜여서 학생들이 그녀와 함께 그곳에 놀러 가고 싶어했다는 후문. 이대 학생들 사이에서 ‘성격 좋고, 나쁜 소문 전혀 없는’ 학생이라는 평판을 받았다. 이대 학생들 사이에서 이윤형은 재벌가의 막내딸’이라는 꼬리표는 무의미하고, 여느 여대생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윤형의 과 후배는 “저희들에게는 언니가 재벌가의 막내딸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보통 학생들처럼 친한 친구들이랑 이야기 잘하고, 수업에도 잘 들어와요. 그래서 홈페이지 만든 이후에도 매체에서는 언니 이야기로 시끄럽지만, 학교 내에서는 전혀 이슈가 안 됐어요(웃음)”라고 말한다. 후배의 이야기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처럼 관계자들이 차로 그녀를 태우고 오가는 모습은 못 봤고. 이윤형이 입고 다니는 옷도 여느 여대생처럼 수수하다고 한다. 지금도 목소리가 가늘어서 여성스러움이 많이 느껴진다고.

대원외고 시절 학교 옆에서 파는 햄버거를 먹으려고 쉬는시간 종이 치자마자 달려가서 줄을 서서 사먹기도 하고 그당시에도 삼성그룹 딸로 유명하였는데 주변 친구들은 삼성가 딸도 저런 음식 먹는구나 했다고 한다.

모교인 대원외고에서 교생실습을 했다. 교생실습때도 굉장히 성실하고 착했다고 하며 당시 지인에 따르면 교생 끝나는 주에는 본인이 가르쳤던 반 아이들을 아웃백으로 데리고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게 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소원은 경호원 없이 친구들과 소박하게 떡볶이를 사먹는 것이였다고.

학생들은 우스갯소리로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여느 학생처럼 평범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윤형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한 것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여느 재벌가 딸과는 다른 귀여운 행동이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했다. 평범한 대학생의 생활을 했고, 모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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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재벌가 막내딸이라는 거물인데도, 이례적으로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 자신의 사생활을 일정 부분 공개하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비교적 개방적인 성격으로 여느 재벌가 3세들과는 다르다는 평이 많았다.

3. 사망

처음에는 교통사고로 알려져 있었지만, 후에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 원인은 대외적으로 신수빈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4], 집안에서 반대해서 심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풍문과 신수빈과의 교제와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부모가 반강제로 미국에 도피 유학을 시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가 뒤따라 미국에 건너가 몰래 함께 지내는 등 교제를 계속하는 바람에 다시 이 사실이 밝혀지자 가족들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는 풍문이 있다.

그 둘은 그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는데 그 이후 신수빈이 다시 미국에 들어와 따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윤형이 지금 나에게 오라고 전화했으나 이미 신수빈은 삼성가의 완강한 반대에 포기한 상태였으며 심지어 다른 여자를 만난 상황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하여 이윤형의 오라는 지시와 부탁에도 결국 가지 않았다. 이때 지금 안오면 자살을 한다는 말을 신수빈에게 했다는 풍문도있다. 그 후 조금 지난뒤 이윤형은 신수빈군이 다른 여자와 만난다는 그 충격과 우울증 여러 상실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게 밝혀진 내용이다. 결국 몇시간 후 신수빈과 그의 친구가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에서 이윤형이 전깃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장례식은 원불교식으로 치렀다.

그녀가 살았던 애스터 플레이스의 도어맨은 때로 이윤형양이 아파트를 나가지 않고 일주일 정도 그녀의 아파트 안에 머물렀다고 말했으며 또한 당시 뉴욕 현지의 한 언론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러한 말을 전했다.

사후 취재 결과, 이윤형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속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그 중 이윤형이 가장 속상해했던 부분은 미국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절하되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실제 이윤형은 한국에서만큼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최고의 딸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니었다. 여기에 갑작스럽게 바뀐 생활 패턴에 대한 부담감, 가족과 떨어져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결혼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신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심리적 상태에 이르지 않았겠느냐는 게 이윤형을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또한 이윤형 자살은 당시 삼성의 위기와도 무관치 않은것으로 파악된다. 유난히 아버지를 잘 따르던 이윤형은 당시 삼성이 X파일 사건 등과 관련 연일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이 회장이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자 불안한 심기를 보였다고 전해졌다. 특히 이윤형은 당시 이 회장의 건강상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이 회장이 미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이를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고인은 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자 이를 감당키 어려웠던 것"이라 전했다.

정리하면 삼성가의 반대 → 이양 집안의 반대와 두 사람의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버거워한 남자친구가 이윤형에게 헤어지자고 말함 → 이윤형은 헤어지면 죽겠다고 선언 → 그럼에도 둘사이의 장애를 넘어설 자신이 없던 남자친구는 떠나감 → 이윤형은 상실감과 함께 심한 우울증에 시달림 → 결국 목을 매어 자살.

신수빈은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98학번으로 재학중에는 학교 스키 동아리에 가입,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하며 나이는당시 27세로 전해진다. 일본에서 고교까지 졸업한 덕에 일본어에 상당히 능통하며 졸업 전까지 거주지는 서초동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수빈은 학교생활보다는 동아리 학생들과 잘 어울렸다고 한다. 스키 동아리의 한 학생은 "스키 동아리 회원들은 부유층 자제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랬는지 일반 학생보다는 자기들끼리 훨씬 친하게 지냈다"고 전했다. 이윤형과의 교제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아리 내에서 퍼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K대 내에서도 공개 데이트를 즐겼으며 겨울에는 이들 커플이 친구들과 함께 H스키장을 찾아 스키를 자주 즐겼다는 게 동아리 친구들의 말이다.


[1] 이재용과는 무려 11살 차이가 난다.[2] 신격호도 서미경이 낳은 신유미를 끔찍히 아낀다.[3] 사실 이건 이윤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의 오빠인 이재용을 포함해 삼성그룹 오너 일가들이 원래 주변의 서민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지내는 소탈한 삶을 즐기는 경향이 컸다. 일례로 이재용도 가난한 고학생인 친구를 위해 등록금을 지원해주거나, 친구의 자취방으로 라면을 사들고가서 함께 나눠먹기도 했다는 증언이 수두룩하다.[4] 신격호 회장의 호적에 기록안된 자식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며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 집안 자제였다고 한다.은수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