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20:13:20

이은석(범죄자)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정 사건사고 문서는 유머성 서술과 비하적인 표현이 제한되며, 사실관계를 작성할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야 합니다.
이 틀의 삭제 토론이 진행중입니다.

파일:59011_69643_5255[1].jpg

당시 KBS 뉴스9 보도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1. 개요2. 이은석의 성장 배경3. 사건 발생4. 재판5. 기타6. 유사 사례7. 둘러보기

1. 개요

2000년경기도 과천시에서 친부모를 토막살해한 범죄자이자 아동 학대학교폭력의 피해자. 현재 무기수로 복역 중.

아동 학대존속살해로 이어진 극단적인 사례들 중 하나이다.[1]

1994년에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인 박한상과 세트로 묶여서 패륜아의 대명사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금수저인 데다가 동정조차 없는 명백한 패륜아인 박한상과는 경우가 다르다. 이은석에게는 가정과 학교, 군대까지 그가 거쳐온 사회 대부분이 가해자였다. 그래서인지 동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심지어는 그의 형도 그의 심정을 이해해 줄 정도라고. 이훈구 교수가 쓴, 이은석의 방대한 일기와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에서는 심지어 이은석의 '무죄'를 주장할 정도다. 미국 같은 경우였다면 정당방위로 판결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2]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학교폭력에서도 해방되고 군 복무까지 마치고 전역하였으나, 결국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은석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형은 독립해서 나갔으며, 부모는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이은석은 독립하지 못한 채 단절된 생활을 계속하였으며, 부모와 크게 말다툼을 벌인 끝에 결국 충동적으로 자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살해해 버리고 만다.[3]

2. 이은석의 성장 배경

이은석은 1976년 8월 29일생([age(1976-08-29)]세)으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병대 장교(최종 계급은 중령)[4] 출신인 아버지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어머니[5]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정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었고, 이은석 자신은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진학했으니, 겉보기에는 훌륭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부모를 비롯한 이은석의 가정은 이미 안에서부터 썩어 있던 상태였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 그것도 해병대이자 엄격한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부하 장병들을 다루는 것처럼 어린 두 아들에게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으며, 자신이 장교로서 자수성가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해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다.[6] 그나마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자신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면서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지 않는 등 굉장히 나르시시즘적이고 이기적인 경향과 함께 결벽증도 있는 사람이었다.[7] 비록 해병대 중령 출신으로 군에서는 장군의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대신 예편 후 꽤 괜찮은 기업의 간부로 취업해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긴 했다.

어머니 황모 씨 또한 사이비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데다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였으며[8], 히스테릭 증상이 심했다.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부부 사이도 매우 좋지 않아 자식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각방을 쓰고 있었고[9], 부부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한 달 이상 서로 말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 일이 예사였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부부싸움의 여파가 겨우 며칠만 간다고 해도 집안의 그 쌩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운데, 그 기간이 한 달 이상이라면 같이 사는 자식들의 심정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했을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10]

게다가 이 부부는 단순히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부 사이가 아예 파탄난 상태였는데, 1999년 11월에 쓴 황씨의 수첩에는 "저 자(남편)는 양의 탈을 쓴 이리이며 사탄과 친한 자, 악의 업보다."라고 기록한 내용이 나올 정도였다.[출처] 어이없게도 자신이 남편에 대해 기록한 내용은 이은석과 그 형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자식에게는 어머니라는 가면을 쓴 악마, 망언, 폭언, 폭력과 친한 자였으니... 그리고 악의 업보를 받았다.

당시에 보도되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적자면 "이은석의 어머니가 해병대 장교인 이은석의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는,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처럼 영부인이 되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라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에는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사례로 인해 군에서의 출세가 곧 민간에서의 출세로 이어지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 원래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만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시대 상황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12] 대신 영부인을 꿈꾸는 것으로 선회한 것이다.[출처]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이 장군은커녕 대령도 못 달고 전역하는 바람에 남편에게는 기대를 끊어버렸고, 그것이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그 후로 남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대신 아들의 출세에 더욱 매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애초에 남편은 한국에서는 육방부화로 인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대한민국 해군 출신이고, 5.16 군사정변에 동참했던 덕분에 해병대가 박정희 빽으로 잘 나간 적도 있었으나, 1975년에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가 흡수 해체[14]됨과 동시에 좋은 시절도 금방 가며 성공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운 좋게 대령 이상으로 진급해 윗사람 눈에 들어 정계 입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 봐야 애초에 대한민국 해병대최고로 높은 사람의 계급중장에 불과한 엄청난 핸디캡이 있는 데다 육군 출신들을 이길 순 없었다. 굳이 육군과 해병대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계급부터 밀리고 들어갔으므로.

그리고 부모 양쪽 모두 자식들, 특히 차남인 이은석에게 항상 불만을 표시했고, 말도 안 되는 잔소리와 폭언을 자주 퍼부었다. 그래서 이은석은 어릴 때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다. 신체적, 정신적 학대 양쪽을 모두 당했는데, 유치원생 시절에 신발끈 못 묶는다고 체벌을 하거나,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15],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뜯는 식의 폭력이었다. 그의 부모는 늘 아들을 남들과 비교했고, 성적과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일 정도의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뭔가를 못하면 당연히 혼나고, 잘하더라도 결코 칭찬받지 못했다. 오히려 왜 더 잘하지 못하냐며 혼이 났다. 이은석이 어릴 때는 만약을 대비해 야구방망이까지 숨겨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부모, 특히 어머니[16]는 그를 매번 심하게 질책하고 구박하고 모욕을 주기만 했다. 그에 딸려오는 폭력은 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고 혼을 낸 후에는 항상 회개 기도를 강요했다. 정말로 회개해야 할 사람은 본인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는 내성적으로 변해가고 대인기피증이 생기게 되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이러한 성격에 작은 키[17] 때문에 놀림받았고,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학생까지 있었다. 어찌나 그 학생을 증오했는지 사건 후에도 언젠가는 그 학생을 죽여 버릴 거라며 이름을 되뇌일 정도였다. 또 부모는 이은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도시락도 싸 주지 않았다고.[18] 혼자 틀어박힌 그에게 위안이 된 게 영화 감상과 게임이었는데, 그가 감명 깊게 본 것은 택시 드라이버매그놀리아로, 그의 일생과 비슷한 영화이다.

당시 키 180cm에 몸무게 100kg가 넘는 육중한 체격의 급우가 이은석을 모욕적인 멸칭으로 부르며 장난감 취급하고[19][20], 반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놀리는 등 심하게 괴롭혔다고 한다. 이런 모멸감은 특히 정서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리고 8월 29일 국치일에 태어났다는 것을 트집 잡아 놀려대기도 했다. 게다가 물건을 나눠 쓰자는[21] 혈서를 쓸 것을 강요한 급우도 있었다. 결국 그 급우 때문에 다른 친구들마저 자신을 별명으로 부르고 무시하는 듯해서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이면 아무리 부모님과 사이가 원만하고 활발한 성격의 아이일지라도, 점차 성격이 어두워지고 폐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때 저런 일을 겪게 되면 말이다.

사실 사춘기 때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고 또래 집단에게 큰 영향력을 받는 시기이기에 학교에서의 급우 관계가 정말 중요한데, 이은석이 만약 정상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더라도 친구들에게서 위안을 받으며 정상적인 성격을 형성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찮은 친구가 한둘이라도 있었다면 형처럼 친구의 집을 방문하거나 혹은 친구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가정 환경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을 것이며, 형처럼 대놓고 부모와 대립하지는 못하더라도 조용히 자립을 준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헌데 학교에서도 극심한 상처를 받은 판국에 집의 부모님마저 살갑지 않다 못해 지독한 성격이니, 어디에서도 그 상처를 치료받지 못한 이은석의 분노가 결국 극단적인 방향으로 터져 버렸던 것이다. 괜히 책 제목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인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은석은 법정에서 "부모님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남들은 하나도 견디기 힘든 가정폭력학교폭력을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겪었으니 성격 파탄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이은석이 당했던 가정폭력의 수준이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기에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데, 동시에 이처럼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실제 이은석은 체포된 후 그 학창시절 괴롭혔던 동급생의 이름을 언급하며 '칼로 찔러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확실히 그 가해자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운선 소아정신과 교수는 "압력솥에 압력이 꽉 차면 언젠가는 터져 버리지만, 공기를 조금씩 빼 주면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라는 말을 방송에서 한 적이 있는데, 이은석이 억눌러 왔던 분노의 압력솥에는 단순히 부모의 학대만 존재했었던 게 아니었다. 학창시절 동급생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 역시 압력솥에 가득 담겨 있다가, 부모까지 못 살게 구니까 터져 버린 것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고 하며, 딱히 그 뒤로는 동창들을 만난 적도 없었다. 군대까지 전역한 지 한참 지나고 부모님과의 갈등이 악화되어 살인까지 한 뒤에 뜬금없이 학창시절의 가해자를 언급하며 죽여버리고 싶다고 한 것만 봐도, 그에 대한 분노지수가 얼마나 높았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은석이 폭력 영화를 많이 봤다며 이것과 연관시킨 언론도 있었는데, 정운선 교수의 해석을 빌리자면 오히려 진작에 터졌을 이은석이 영화로 폭력 욕구를 조금씩 빼내며 버틴 것에 가깝다. 사실 이은석은 진작에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나마도 위안을 주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를 보면서 버텨오다가 터진 것이지, 멀쩡하던 이은석이 이유 없이 폭력 영화를 보고 사이코패스가 되어 부모를 살해한 것은 아니다.[22]

대신 학업 성적은 탁월했고[23], 상기한 대로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 사실 이은석의 성적은 서울대를 노려도 충분히 들어갈 정도였으나, 논술고사를 추가로 치르는 게 싫어서 응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서울대는 특차 제도가 없었기에 논술을 거쳐 정시로만 가야 했으며[24] 고려대는 수능으로만 뽑는 특차 제도가 있었기에 그냥 고려대로 굳힌 것이다. 당연히 특차 합격의 평균 수능 점수는 정시보다 높았는데, 특차로 무난히 합격할 정도였다면 이은석의 수능 점수가 꽤 고득점이었다는 소리. 이는 그간 부모 때문에 원치도 않음에도 죽어라 해 온 공부를 더는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고. 실제로 이은석은 대학 입학 후 공부에 손을 놔 버렸고, 성적도 그가 정말 그 우등생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떨어졌다.[25] 게다가 부모는 이은석이 서울대학교를 반드시 가기를 원하였고, 고려대 역시 대단한 명문대였음에도 자식을 단 한 번도 칭찬해 준 적 없는 사람들답게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한 자식이라며 "너처럼 멍청한 자식은 필요 없어. 나가 죽어."라는 폭언을 하였다. 만약 이은석의 부모가 혼낼 땐 호되게 혼내더라도 일단 성적이 좋게 나오면 그 때마다 칭찬해주고, 이은석이 고려대에 들어갔을 때도 칭찬해주었다면 이은석은 대학생이 된 뒤에도 계속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식이었으니, 이은석이 정말 서울대에 합격했더라도 부모가 칭찬한다거나 만족하는 등 행동이 바뀌었을지는 의문이다.

공군 으로 입대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성격 탓에 군대에서는 기수열외급 대우를 받아 왔으며, 후임병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의 한 달 후임이 그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 광경을 목격한 선임들이 오히려 이은석을 나무랄 정도였다.[26]

하지만 부모는 아들의 고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장교라는 직업상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아들을 본 체 만 체 했고, 그런 아버지를 기피하면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이라고 쏘아붙였다. 해병 장교인 그의 입장에서 해병들이 유달리 편하다고 군기가 빠졌다며 무시하는 공군에 자신의 아들이 입대했다는 것도 이를 더했을 것이다. 그가 군대에 가 있는 3년 동안 부모는 면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27]

전역한 후에도 부모의 인격적 모욕과 멸시는 끝없이 이어졌다. 이은석은 부모로부터 "네가 뭘 잘 하냐? 공부나 해라. 공부도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너 같은 놈은 사회 생활 못한다.", "너 같은 자식 필요 없다."라는 식의 상처를 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살았다.

이은석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다. 형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을 다녀 부모가 더 구박했다. 다행히도 형은 이은석과는 달리 꽤 과격하고 불 같은 성격이라, 부모의 막장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사춘기에는 이은석과 달리 계속 반항하면서 부모와 충돌하곤 했다. 부모는 이은석의 형을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그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스트레스를 발산했기 때문에 동생 이은석에 비해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훨씬 적은 셈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고 제대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은석은 형에 비해 부모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속으로 쌓인 것이 형보다 훨씬 컸다. 결국 형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가 버렸다. 어머니는 이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형에게 화해를 청하며, 독신자 아파트를 마련해 주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28] 그런데 이 아파트를 마련할 돈을 이은석의 명의로 대출받을 것을 요구했다. 이 일로 이은석은 안 그래도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인데[29], 형의 아파트 이사를 도와주고 온 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머니[30]가 또 혼을 내자 결국 참았던 것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어머니와 무려 4시간에 걸친 말싸움을 했다. 이 때가 살해를 저지르기 열흘 전이며, 이은석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한 반항이었다.[31] 말싸움을 하면서 그동안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을[32] 모두 쏟아냈지만 어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냔 말이냐?", "정신병원에 갔다오라"며 오히려 이은석을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다.[33]

그리고 사건 일주일 전,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모두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야단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그 동안의 분노를 울면서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런 건 그때그때 이야기해야지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34]라는 식으로 멸시하고 모욕을 줄 뿐이었고[35], 이은석은 그제서야 부모와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단절을 느낀 이후 이은석은 무려 엿새 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식사 등은 부모의 외출 및 수면 시간을 이용해 해결했으며, 굶는 일도 예사였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와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밖에 부모가 있어서 화장실 가기도 뭣 같았던 상황에서는, 소변 정도는 아로나민 골드 빈 상자를 요강 대용으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부모가 그런 이은석을 보고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은석이 밤에는 몰래 나와 음식들을 먹는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어머니가 식탁에 먹을 것을 챙겨놓긴 했었다. 또 아버지도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고 있었다. 주기 전에 살해당하는 바람에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배려를 한다 해도 그동안 저질러 왔던 학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정말로 자식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면 그들은 이은석에게 사과를 했어야 한다. 그랬으면 이은석도 본인 입으로 말했듯 마음을 가라앉혔을 것이고, 최소한 살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훈구 교수의 설명대로 편지가 전달되었다고 해도 상황 개선에 별로 도움은 안 되었으리라 싶다.

공개된 편지의 내용을 보면 처음에는 "아버지는 일이 바빴고, 내 자식들이 알아서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잘 하고 있겠지 싶어서, 가정에 별로 신경을 못 썼다"고 잘못을 인정하는 듯 쓰다가 중간부터 적반하장으로 "부모가 돼서 자식을 위해서 그 정도 야단도 못 치냐, 세상에 어디 그 정도도 안 하는 사람 있는지 시장 나가서 사람들 일일이 잡고 물어봐라"고 나오며 "너는 네 부모들을 뭐라고 하기 전에 네 자신이 잘못된 점은 생각도 하지 않느냐. 지금 이렇게 부모 잘잘못을 갖고 대드는 네 버릇 없는 행동에 평소 부모 눈에 거슬리던 네 자신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걸 하나도 안 듣고 여전히 그대로 행동하는 건 반항이냐 배짱이냐" 이런 식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전달되었다면 아마도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가 첫번째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저 글은 불 난 집에 물을 뿌리는 게 아니라 되려 기름을 붓고 부채질까지 하는 꼴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시간 내어 쓸 정도라면 일단 아들과 최소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기에, 이 편지를 받았다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원래 이은석의 최대 분노 대상은 어머니였고 아버지가 아니었다. 실제로 먼저 살해한 건 어머니였으며,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살해했는데, 아버지가 잠에서 깨서 이 광경을 보고 혼낼 상황이 두려워 아버지도 살해해 버렸다고 증언했다. 이은석의 부모는 각방을 쓰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살해당한 후 한동안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는 얘기. 이은석은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으나, 일단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에게 가 죽여버렸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버지는 바로 살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방으로 돌아와 이성을 차리다 보니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벌어질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니,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분노와 복수심보다는 사건 은폐 목적에 더 가까웠다.

다만 아버지가 가정에 무관심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이은석-어머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던 데다가, 당시에는 '사랑의 매' 운운하며 과한 폭행조차 훈육이라며 미화되던 시대였고, 군대에서는 구타가 용인되던 시절이었기에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아이들 어머니가 때려봐야 뭘 얼마나 때렸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은석이 어머니나 아버지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3. 사건 발생

2000년 5월 21일 새벽, 이은석은 양주[36]를 연거푸 마신 후 어머니를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막상 어머니를 죽인 후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고 4시간 동안이나 방 앞을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 못했지만, 날이 밝아오자 아버지가 잠을 깨서 이 광경을 보고 "혼낼 것"을 걱정한 나머지 결국 아버지도 살해한다. 둘을 한 번에 죽이지 않고 4시간의 시간차를 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이틀에 걸쳐 시신을 토막내어 여러 곳에 유기하고 청소 및 뒤처리를 했다. 시체를 오븐에 넣어 태우려 했으나,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37]

이후 시신을 청소부가 발견하였고, 사체의 지문을 토대로 신원을 확인하였다. 이 후 이은석은 경찰의 가택수사 과정에서 검거된다.[38] 사건 직후 경찰서 진술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라며 울먹였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은석의 형이 했던 말인데, 부모를 죽인 동생을 원망하기는커녕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동생을 이해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공범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기도 했다. 물론 동생이 잘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사건 현장에 없었다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공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자기 부모를 죽인 사람을 두둔하고 나선 것을 보면 같은 집에 살아오면서 함께 멸시와 폭력을 당하는 가운데 그 역시 느낀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애초에 형제간의 우애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형이 동생을 많이 지켜줘서 이은석이 그나마 버틴 것이다.

심지어 사건 이후 동생의 감형에 힘쓰기 위해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었을 정도라고 한다. # 만약 형이 나가지 않았다면 계속 버텼을지도 모를 일.[39]

항소심 법정에서 형이 이은석을 변호하면서 말하기를, "우리의 부모가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갖는 만큼의 애정만 우리에게 줬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 말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정상이라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친밀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친부모자식 관계가, 완전히 남남에 철저하게 업무 관계로 만나 서로의 이해 관계만을 따지는 사회생활과 비교될(정확하게 말하면 그보다도 못했을!) 정도라니, 이 가정의 황폐함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은석의 고등학교 동창들 역시 그를 두둔했는데,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은석이의 몸을 보면 언제나 피멍 투성이었다."라고 말하며 가정폭력을 증언했다.

위에 링크된 KBS와 MBC 보도에서 입장차가 드러났는데, KBS에서는 '인륜의 실종'에 초점을 맞춘 반면, MBC 측은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에 초점을 두었다.

범죄 예방을 위해선 제3자 또한 범죄자들이 범죄까지 이르게 된 상황과 사정을 철저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그 상황을 줄여 나가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득이고 옳은 것이다. 물론 아동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모두 다 부모를 죽이는 것은 아니고 존속살해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문 일이긴 하다. 극악한 살인마조차 인권이 보장되어 사형이 사실상 폐지된 판국에 아동 학대를 한 부모들은 죽여도 정당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이런 논리면 학교에서 친구 괴롭히거나 군대나 사회에서 갈구거나 구타한 사람들도 다 죽어야 한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감형을 해 주는 경우가 있다. 즉, 살인이라고 다 일괄적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는 것.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아동 학대가 발단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존속살해 범죄로 그칠 게 아니라 아동 학대 방지 교육의 대표 사례로 적극 알려 이런 비극은 막아야 한다는 것. 단순히 '아동 학대하면 부모를 죽일 수 있으니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동 학대를 하면 아이에게 끔찍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길 수 있기 때문에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은석의 친형이 "내 동생이 잘못한 건 맞지만, 나는 그런 내 동생을 이해하고 우리 부모 같은 사람 밑에서 언젠가 어떻게든 벌어질 일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피폐해진 가정 환경이었으며, 이은석의 급우 중에서도 그의 가정폭력에 대해 증언해 준 이들이 있어서 재판정에서도 그 점을 참작해 원래 사형이 구형되었던 것을 무기징역으로 한 단계 감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은석이 살인 전에 폭력 영화 비디오나 게임을 즐겼다고 언론에서 날조를 하는 바람에 영화나 애니 덕후, 겜덕후들이 억울하게 몰매를 맞기도 했다. 그저 동네북 취급이다.

그런데 이은석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혹한 학대를 자행한 이유는, 이들도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장 환경을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되는데, 우선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성깔을 아득히 능가하는 홀어머니(즉, 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더 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소설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맞았을 정도였다.[40] 그리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고 자신은 본체만체하는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41] 밑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으며, 성격이 놀랄 만큼 이은석과 유사했다.[42] 자신은 가족들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서도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한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 부부의 정신 나간 학대 행위는 절대로 옹호되선 안되는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이은석 사건은 남녀 양쪽 모두 결코 행복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끼리 만나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긴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가정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고, 극단적인 아동 학대의 대물림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결국 이은석의 부모는 그들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자식에게 사랑을 베푸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아동 학대 피해자라고 모두가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 자식한테만큼은 나와 같은 경험을 겪게 하지 않겠다, 나는 부모와 별개의 인간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라면서 훌륭한 부모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은석 형제에게 불행하게도 이들은 그런 부모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이은석의 형은 스스로 도망쳐서 살 길을 찾았지만, 이은석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패륜아에 중범죄자가 되어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으며[43], 부모들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낳은 친자식 손에 끔찍하게 살해당한 이후 시신마저 토막나 유기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비극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다만 부모 쪽은 자업자득이나 다름없다.

4. 재판

이후 재판에 회부된 이은석에게 법원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2심은 그 동안 당해온 가정폭력을 참작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되어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현재처럼 사형이 거의 사문화되어 어지간해서는 무기징역으로 대체하는 시절이 아니라 사형이 매우 적극적으로 내려지던 2000년대 초반[44]이니까 존속살인범, 그것도 양 부모를 살해한 경우는 사형을 피할 수 없었는데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가정폭력이 감형 사유로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극악한 살인으로 취급되는 존속살인에, 심지어 토막살인에 시체 유기까지 했음에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 때 대단한 선처였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다르겠으나 그런 가정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결코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면 보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즉 뒤늦게나마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는 결과로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 판결로서 보일 수도 있다.[45]

불행 중 다행으로 보이는 것은 형이 동생 편을 들어 주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토막 살인이라 하더라도 사건이 벌어진 지 10여 년 이후인 2010년대의 관점에서 볼 경우, 이은석이 어머니에게 당한 수준을 생각하면 무기징역도 가혹하고 징역 10년 이하로 형량을 조정하든가 심하면 정당방위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실제로 부모를 살해하는 것은 천인공노가 극에 달할 짓임은 분명해도 이은석이 당한 학대 행위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2014년 아동학대 특례법이 제정된 만큼 2010년대에 벌어진 사건이라면 이은석도 무기징역보다는 현저히 낮은 형량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무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드물게나마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은 부모의 차별과 아동 학대로 인한 피해가 큰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렸으며, 사건 이후로 많은 사람들도 아동 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에다 군대식이나 스파르타식 강압적 교육이 훗날 집안의 큰 화를 부르게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임을 알 수 있다.[46]

5. 기타

  • 『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47]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은석의 형이 자신의 동생 허락 없이 책을 출간하였다며 저자와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냄에 따라 일찍 절판되었다. 그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출간이 문제였다고 밝혔고, 이후 법원의 조정 내역에 따라 피고가 1천만 원을 부담하되 이를 원고인 그와 피고 공동의 이름으로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에 기부하게 되었다. # 현재는 절판되어 열람을 원하는 위키러는 인근의 도서관을 이용해야 할 듯. 짧게나마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었고, "살인자는 말한다"라는 방송에서 이은석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왔다. 단, 작중에서는 가명을 사용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저자인 심리학과 교수의 2001년 6월 19일 마지막 면담일지인데, 다음과 같은 구절로 마무리된다. "그와 작별하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는 간수와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마치 돌아가던 비디오 플레이어에 정지 버튼을 누른 듯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마 그의 정지 버튼은 10년 내지 15년 후에야 플레이 온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덧 책 출판 후 [age(2001-01-01)]년이 지났으나 이은석이 아직 석방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6. 유사 사례

  • 2년 뒤인 2002년 경기 분당 서현동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람 역시 범행 당시 젊은 대학생이었고 명문대 출신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억눌려 살아 왔다가 어느날 밤에 집에 늦게 들어왔다고 혼난 뒤 이제 이런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고 있는 아버지를 살해한 점이 유사하다. #,#
  • 훗날 11년 후 서울 구의동에서 이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 사람은 시체 유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에 대한 최소형량인 5년을 면하고 징역 3년 정도로 끝났다.[48] 이 사건의 가해자는 범행 당시 청소년이었기에 형량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긴 하지만.

7. 둘러보기

문서가 있는 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목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조선/일제 강점기 살인사건
임오화변 (1762년) · 민승호 암살 사건? (1874년) · 치하포 사건 (1896년) · 제암리 학살사건? M (1919년) · 백백교 사건M (1920년~1941년) · 이판능 사건M (1921년) · 주문학 살인사건 (1921년) · 김립 피살 사건 (1922년) · 진남포 소아 참살 사건? (1924년) · 빈주 사건M (1925년) · 고무신 살인사건 (1926년) · 전주 소학생 유괴 살인사건W K ? (1926년) · 불륜처 변사사건 (1927년) · 머슴 살인사건 (1928년) · 이관규 사건S (1929년)· 청양 소년 살인사건? (1930년) ·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 (1931년) · 이승만 살인사건? (1932년) · 평남 모친 살해 사건 (1932년) · 사천 복수극 사건 (1932년) · 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1933년) · 옥관빈 피살사건 (1933년) · 신의주 비행장 여성 시체 사건 (1933년) · 순안 유부녀 알몸 살인 사건 (1936년) · 강원도 유부녀 독살범 사건S (1939년)
광복~1979년 살인사건
여운형 암살사건 (1947년) · 백범 김구 암살사건? (1949년) · 열차내 강간 살인 사건W ?(1953년) · 불륜처 타살사건N (1954년) · 장기 훈수 살인 사건 (1960년) · 최영오 일병 살인 사건N (1962년) · 창신동 치정 살인 사건 (1962년) · 고재봉 살인 사건M N (1963년) · 수원 지지대고개 살인 사건 (1963년) · 평창동 불륜처 살해 사건 (1965년) · 김근하 유괴 살인 사건K ? (1967년) · 이천 여교사 알몸 피살 사건? (1968년) · 육군 하사 수류탄 투척 사건M N (1968년) · 종암동 여관방 유부녀 살인 사건W (1968년) · 정인숙 살해사건? (1970년) ·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 (1970년) · 공덕동 유부녀 반나체 피살 사건 (1971년) ·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W ? (1972년) · 육영수 암살 사건 (1974년) · 인천 일가족 살인사건 (1974년) · 김대두 사건S (1975년) ·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S ? (1975년) · 이팔국 아내 살인 사건 (1975년) · 백화양조 여고생 살인 사건Y (1978년) · 금당 골동품상 부부 납치 살해사건M K (1979년) · 10.26 사건N (1979년)
1980년대 살인사건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K (1980년) · 주남마을 총격사건M N (1980년) · 우순경 사건N M (1982년) · 죽음을 연출한 사진? (1982년) · 청산가리 우유 독살 사건I (1983년) · 공주 연쇄살인 사건S (1983년~1987년) ·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1986년) · 김선자 연쇄 독살사건S (1986년~1987년) · 화성 연쇄살인 사건S W ? (1986년~1991년) · 원혜준 유괴 살인 사건K (1988년) · 심영구 사건S (1989년) · 서울 노량진 살인 사건 (1989년)
{{{#!folding 1990년대 살인사건 1990년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K · 부산 새마을금고 권총 강도 살인 사건 · 지춘길 사건S · 유명 공인회계사 피살사건 · 이완희 유괴 살인 사건K ·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S
1991년 대구 성서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K M ? ·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K ? · 김부남 사건 · 정선 음주운전 뺑소니 살인 사건 · 이득화 유괴 살인 사건 · 거성관 방화 사건M A ·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 · 대천 영유아 연쇄유괴살인 사건S K ? (~1994년)
1992년 김보은 양 사건 · 김순경 살인 누명 사건 · 주한미군 윤금이씨 살해사건W F
1993년 지존파 사건S
1994년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 · 부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 배병수 살해 사건 ·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 · 온보현 사건W (~1995년)
1995년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1996년 막가파 사건 · 대구 양궁선수 살인사건 ·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F · 잠실파출소 경관 피살사건 · 안두희 폭행치사 사건
1997년 대구 동구 연쇄살인 사건S ·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K · 관덕정 살인사건? · 서귀포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 이한영 암살 사건? · 이태원 살인 사건F · 화순 서라아파트 모녀 살인 사건Y
1998년 송파 7인조 떼강도 사건G · 노원 가정주부 살인 사건G ·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 ·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 대전 갈마동 월평산 여중생 살인사건 · 영훈이 남매 사건 · 황영동 사건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 박정자 살인 사건? · 삼척 신혼부부 살인 사건 · 영웅파 사건 ·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 · 정두영 사건S (~2000년)
}}} ||
{{{#!folding 2000년대 살인사건 2000년 서울 종로구 여중생 살인사건Y · 김해선 사건S W · 안산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S F · 무기수 김신혜 사건? · 이은석 존속살해 사건 · 인천 계양구 놀이터 살인 사건? ·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 만봉천 예비간호사 살인 사건? ·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S I (~2005년)
2001년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W · 산골 소녀 영자 사건 · 부천 탈영장교 살인사건 ·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N ? · 서울 성동구 여아 토막 살인 사건K W · 친동생 도끼 살인사건Y · 영동 여고생 살인 사건? · 부산 배산 여대생 피살사건? · 용인 교수부인 살인 사건 · 부산 온천동 커피숍 여주인 피살사건? · 속초시 콘도살인 암매장사건? · 제7호 태창호 사건 · 부산 고교생 교실 살해사건Y · 대전 세 모녀 인질극 사건 · 홍성열 살인사건 ·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 · 잠실 아파트 일가족 살인사건 ·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G ? ·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
2002년 부산 괘법동 태양다방 종업원 살인사건? ·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 용인 연쇄살인 사건S · 춘천 후평동 택시기사 살인 사건? ·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 · 제천 독신녀 토막 살인 사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M A · 의성 뺑소니 청부살인 사건I · 거여동 밀실 살인 사건 · 포천 여중생 살인 사건? · 김지연 군 살인 사건F · 인제 광치령 토막 살인 사건? · 울산 우정동 청산가리 살인 사건? · 인천 작전동 이발소 여주인 살인사건? · 둘째딸 독극물 살인 사건S · 인제대교 추락 사망 사건W ? · 영주 택시기사 살인사건? · 동작대교 유아 투기 살인사건 · 부산 대교동 여관 살인사건? · 유영철 사건S (~2004년)
2004년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 사건? · 이학만 사건 ·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W ? · 서천 카센터 살인사건A ? ·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 · 대구 송현동 여고생 강간 살인사건W K · 대구 달성공원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 · 반포동 빌라 지하방 살인사건 · 석촌동 연쇄살인 사건S(1995년~2004년) · 평택 영아 청부납치 모친 살해사건K · 대구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 (~2009년) · 정남규 사건S (~2006년) · 부평 콘크리트 암매장 사건? (~2008년)
2005년 강릉 노파 쪽지문 살인 사건? · 개성중학교 폭행치사 사건Y · 서초동 오피스텔 살인사건W · 울산 무거동 야산 토막살인사건? · 대한송유관공사 살인 사건W · 돈암동 살인사건? · 스튜어디스 납치 살해사건K G · 대전 갈마동 빌라 살인사건? · 2005년 천안 연쇄살인 사건S · 대전 문화동 일가족 살인사건A I · 광주 주유소장 살인 사건? · 양구 전당포 노부부 살인사건? · 돌산도 컨테이너실 살인사건? · 신정동 연쇄폭행살인사건? (~2006년)
2006년 강화도 모녀 납치 살해 사건S W K G · 용산 아동 성폭력 살해사건W · 동해 학습지 여교사 살인사건? · 대전 송촌동 택시기사 살인사건? · 무안 저수지 살인 사건? · 2006년 천안 연쇄살인 사건S · 울산 초등생 방화 살인 사건A ? · 인천 십정동 부부 살해사건? · 제주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 ·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W ? · 부산 해양대학교 맨홀 변사 사건? · 군포 안양 연쇄살인 사건S · 천안 토막 살인 사건?
2007년 대전 백합다방 종업원 살인사건S · 인천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 보성 어부 살인 사건S W ·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 모텔 정화조 살인 사건? · 드들강 임산부 살인사건I · 춘천 남산면 식당 주인 피살 사건? · 안산역 토막시체 유기사건F ·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W K ·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G · 양지승 어린이 살인 사건W · 성민이 사건 · 화천 할머니 피살 사건
2008년 대구 초등생 납치 살인 사건K ? · 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 · 양주 여중생 살인 사건W F · 이호성 살인 사건 · 광주 대인동 살인사건? · 부여 노파 살인 사건? · 흥해 토막 살인사건? · 수원 신대저수지 토막 살인 사건? · 의정부 여중생 살인사건W ? · 인천 병방동 60대 여성 엽기 살해사건? · 2008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2009년 강호순 사건S W (2004년~2009년) · 부천 여고생 집단성폭행 사망 사건W A Y · 초등학생 공기총 살해 사건 · 익산 모친 성폭행 살해 사건W · 17억 보험 친구 집단 살인 사건I ·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 · 청주 비닐봉지 살인 사건W ? · 경산 임산부 스토킹 살인사건 · 순창 손목없는 백골 사체 사건? · 정읍 화물차 사무실 살인사건? · 영암 연쇄살인 사건S
}}} ||
{{{#!folding 2010년대 살인사건 2010년 김길태 사건W · 목포 여대생 살인 사건? · 부산 시신 없는 살인 사건 ·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 암매장 사건W Y · 하왕십리동 방화 살인 사건A Y · 산낙지 보험 사망 사건I ? · 함안 방앗간 노파 살인 사건? · 홍은동 여중생 살해 시신 유기 사건Y · 화성 여고생 살인 사건F · 부산 부전동 모텔 여주인 살인사건? · 남양주 아파트 밀실 살인사건? · 울산 부곡동 살인 사건?
2011년 가방모찌 살인 사건 · 경찰 간부 모친 보험 사망 사건I · 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Y ·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 박근혜 5촌 살인사건N ? · 부천 여월동 살인 사건? · 안산 리어카 토막 살인 사건? · 유명 블로거 살인 사건 · 일산 여중생 자매 백골 시신 사건 · 필리핀 관광객 연쇄 표적납치 살인사건S K · 포천 농약 살인 사건S I (~2014년)
2012년 보성 형제교회 유아 사망 사건 · 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Y · 수원 토막 살인 사건W F · 용인 50대 부부 피습 사건 · 강릉 보복살인 사건 · 수원 장안구 흉기난동 살인사건W · 수원 묻지마 살인 사건 · 울산 자매 살인 사건 · 제주 여성 피살 사건W · 중곡동 주부 살인 사건
2013년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살인 사건 · 군산 경찰관 내연녀 살인 사건N · 군산 정화조 백골 사건 · 용인 10대 엽기 살인사건W Y · 보은 콩나물밥 독극물 사건? · 인천 과외 제자 살인 사건 · 정치, 사회 갤러리 피살사건 · 인천 모자 살인 사건 · 2013년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살인사건Y · 구례 편의점 여주인 살인사건G ·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 2013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2014년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N · 굴삭기 암매장 사건 ·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W Y ·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 · 부산 영아 투기 살인사건 · 포항 단란주점 여주인 살인사건W · 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F · 트랜스젠더 살인사건 · 파주 전기톱 토막살인 사건 · 안산 남성 변사 사건? · 포천 빌라 고무통 살인사건 · 캄보디아인 만삭 아내 사망 사건I ? · 2014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 양양 일가족 방화 살인 사건A · 진돗개교 3세 아동 살인 사건 (~2017년)
2015년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 · 금호강 살인 사건I · 김포 20대 주부 피살사건 · 수원역 여대생 납치 살인 사건K ·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F · 아산 트렁크 살인사건K · 수원역 PC방 묻지마 살인사건 · 공릉동 살인사건N · 서초동 세모녀 일가족 살인사건 · 안산 인질극 사건W · 울진 백골 유기사건? · 여자친구 시멘트 암매장 살인 사건 · 용인 아파트 벽돌 투척 사망 사건 · 울산 모텔 살인사건 · 천안 피해망상 이웃살해 사건 · 무학산 살인사건 ·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 화성시 총기 난사 사건 · 대구 주부 살인사건 · 제주 한경면 야산 살인사건W G ·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 봉천동 성매매 여중생 살인사건
2016년 화성 공장 정화조 백골 시신 사건? · 마포 가방 시신 사건 ·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 · 부천 초등학생 토막 살인 사건 · 홍성군 영아 폭행치사 사건 · 경남 고성 초등학생 암매장 살인 사건 · 평택 아동 암매장 살인 사건 · 광주 남매 존속살인 사건 · 조성호 살인사건 · 하남시 층간소음 살인사건 · 시흥 딸 살인사건 · 포천 6세 입양딸 살인 사건 · 증평 할머니 살인사건 ·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 · 김포 아동 폭행 살인사건 · 남편 니코틴 살인사건I · 완도 아령 살인 사건?
2017년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K Y · 신혼여행 니코틴 살인사건I · 한겨레 동료기자 폭행치사 사건N · 양산 아파트 밧줄 절단 살인 사건 · 충주 인터넷 설치기사 살인사건 · 부산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 ·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K · 왁싱샵 살인 사건W G ·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W K ·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부친 피살사건 · 용인 일가족 살인사건 · 전주 5세 여아 살해 사건 · 속초 영랑동 백골 사건?
2018년 종로 여관 방화 사건M A · 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K · 강서구 6세 여아 살인사건 · 떡볶이 배달청년 살인사건 · 군산 유흥주점 방화 사건M A · 강진 여고생 살인사건 · 화곡동 어린이집 영아 사망사건 · 변경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 옥천 일가족 살해사건 · 공군 상사 아동학대 사건N · 제주도 여교사 금품갈취 및 폭행치사 사건 · 울산 천곡동 살인사건 · 구리시 강변북로 음주 사망 사건 ·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 서울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 종로 고시원 화재 사고 · 부산 사하구 일가족 살인사건 · 거제 신오교 살인사건 · 춘천 예비신부 살인사건 ·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Y ·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의사 살인 사건
2019년 이희진 부모 살해사건 ·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M A · 광주 의붓딸 살인사건 · 정치인 아내 살인사건N · 의정부 일가족 사망 사건 · 고유정 전 남편 살해 사건 · 순천 아파트 강간 살인사건W · 오산 모텔 살인사건 · 군포 존속살해 사건 · 인천 영아 사망 사건 · 광주 10대 집단 폭행 살인 사건Y
}}} ||
M: 대량살인, S: 연쇄살인, N: 국가행정조직 연루, W: 성범죄 결합 살인, K: 납치 후 살인, A: 방화 결합 살인, G: 강도살인, I: 보험 관련 살인, Y: 청소년 범죄, F: 외국인 범죄, ?: 미제 사건
}}} ||


[1] 사실 아동 학대 부분이 유난히 부각되어 알려졌을 뿐이지, 한 사회가 한 사람을 얼마나 지독하게 망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2] 물론 실제로는 정당방위가 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이은석은 당시 군대까지 제대하고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어엿한 성인이었다는 점, 당시 부모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한 게 아니라 자고 있는 부모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살해했다는 점, 게다가 범행 이후 자수하지 않고 토막살해로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법적으로 무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비해 유교적 정서가 훨씬 강했던 2000년에 부모 살해범이 사형을 선고받지 않고 이례적으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법원에서도 이은석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최대한 정상참작을 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3] 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존속살해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김보은 양 사건과 비슷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심리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김보은은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렸다. 의붓아버지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 없던 적이 이미 있고, "이 나라 경찰은 모두 내 손아귀에 있다"며 틈만 나면 겁을 주어 도망쳐 볼 엄두도 못 낼 만큼 엄청난 공포심에 완전히 세뇌되어 있었다. 이은석이 이와 유사한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증언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김보은이 이은석과 달리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최종 선고받은 사실로, 두 사건 당시자간의 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참고로 2심 재판부에서 선고 당시에 '정신감정, 심리분석 결과와 성장과정 등을 종합해 보면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 피해의식 등으로 인해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라고 밝힌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4] 원래의 꿈은 서울대학교 진학이었지만, 입시에 낙방하면서 군인의 길을 갔다고 한다.[5]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10살 연상이었다.[6] 물론 자수성가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것 자체는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다. 자수성가는 자기 능력이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고, 자기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을 너무 남발하지 않은 이상에야 큰 문제는 안 된다. 문제는 이은석의 아버지가 그것을 너무 남발했다는 것이다.[7] 군인 시절, 3달만에 집에 들어오고도 자식들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본 척 만 척 했다고.[8] 참조. 이 성격 때문에 주위 사람에게 아는 척과 있는 척을 많이 하여서(즉 허영심이 강한 성격)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9] 이 때문에 이은석의 형은 "국민학교 2학년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의 부모님이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 전까지는 부부가 원래 각방을 쓰는 것인 줄 알았다."라고 증언했다. 형의 친구는 같은 방을 쓰는 부모님을 보고 놀라는 형을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는데, 형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가정이 비정상적인 곳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후 부모의 막장 행동에 대항해 충돌하면서 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10] 게다가 좀 컸을 때야 그러려니 하거나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마음도 여리고 상처받기 훨씬 쉽다.[출처] 주간동아 2001년 8월 9일호 기사.[12] 결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2012년에야 선출되었다. 그나마도 탄핵으로 인해서 흑역사가 되었고.[출처] 주간동아 2001년 8월 9일호 기사.[14] 해병대가 해군으로 흡수되었고, 해군에는 보병 병과가 생겨났는데 해군에서 보병이란 바로 해병대였다.[15] 이 젓가락에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유리창에 금이 갔다고 한다.[16] 이은석은 어머니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은 무시하고 잘난 사람들에게는 열폭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17] 일기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 때 키가 163cm였다고 한다.[18] 지금처럼 학교 급식을 하던 시절이 아니라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생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점심과 저녁) 갖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이은석의 부모는 도시락도 안 싸 주고 항상 2,000원을 주며 김밥이나 을 사서 먹으라고 했다고.[19] 옆자리로 와서 하루종일 같이 있었다고 한다.[20] 하지만 이 급우와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서로 키가 비슷해 장난도 치고 놀았다고 한다. 이랬던 급우가 이은석의 학교 생활마저 망가뜨린 괴물로 변한 거다.[21] 말이 나눠 쓰자는 것이지, 이들이 대등한 친구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임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은석의 물건을 마구 강탈하겠다는 뜻이다.[22] 애초에 영화나 게임이나 종교나 술에 광적으로 빠져드는 사람을 보면 현실 도피 차원에서 현실이 너무 괴롭기에 잊으려고 의지하다가 중독되는 것이지, 가정과 사회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느닷없이 사이비 종교에 집착하며 빠져들거나 하루종일 술만 마시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져드는 경우는 드물다.[23] 사실 이은석이 당한 가정폭력학교폭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저 정도로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것도 용할 지경이다. 어머니가 엄청나게 성적을 가지고 괴롭혀 댔고, 성적이 떨어지면 정말 죽어라고 시달릴 것이 두려우니 필사적으로 공부했다고. 중학교 때는 시험 기간에 늦은 밤까지 공부하다 깜박 졸았는데, 그 장면을 어머니에게 들켜 심하게 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24] 즉, 수능 끝나고 정시 대비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소리.[25] 그래도 범행 전까지도 영문학과로의 편입 준비를 가족들 모르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학업을 아예 포기했던 건 아닌 듯하다.[26]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나요>에서는 고학력자인 이은석이 온갖 잡다한 사람들이 모이는 군대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으나, 육군이 아닌 공군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좀 어폐가 있다. 2016년까지는 공군 병 선발시 내신 혹은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뽑았기에 타 군에 비해 고학력자들이 많이 분포해 있었으며, 또한 고학력자들이라고 해서 육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워낙 학창시절 괴롭힘과 가정에서의 학대로 인해 성격이 어두워졌기에 대인관계에 서툴러서 기수열외급 대우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27] 물론 집이 부대에서 지나치게 멀다든지, 형편이 어려워 365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면회 갈 시간을 낼 수 없는 등 특별한 사정 때문에 면회를 가지 못하는 부모 자체는 많이 있다. 부모가 군인인 경우에는 해당 부대에 영향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안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전화로 목소리라도 듣거나 휴가 나온 아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에 서술했듯이 이 집 부모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아니고, 직업적으로 그렇게 바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은석은 이 일로도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던 듯하다. 인터뷰에서 살해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26개월 군 생활을 한 형은 자주 면회를 다녔지만 30개월 군대 생활을 한 나에게는 단 한 차례도 면회를 안 올 정도로 멸시했다.'는 대목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이 정도면 군 생활을 무사히 끝내고 전역한 것부터가 기적인 수준이다.[28] 시사 저널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형이 본격적으로 따로 살기 시작한 것은 사건 1년 전인 1999년으로 보인다.[29] 그런데 이은석 본인이 이훈구 교수와의 감옥 면회에서 말하길, 자신의 명의로 대출받은 거에 대해서는 그리 섭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나 형의 이름으로 대출받으면 형이 직장에서 보조받는데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고.[30] 형의 아파트가 어땠는지 어머니한테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어물거렸다는 이유라고 알려졌다.[31] 반항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그저 조용한 반항일 뿐이었고 이 정도로 적극적인 반항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32] "왜 형하고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냐?"라는 말이었다.[33] 사실 이 상황에서 옛날 이야기를 꺼낸다며 되려 자녀를 다그치는 대응을 하는 부모들은 전문가의 개입이 없으면 정말 개선의 여지가 없다. 자녀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마음 대신 훈육하고 통제할 욕심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잊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모와 소통이 없었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반증인데, 이를 모르는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부모였다면 이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게 보통이다. 이 정도면 부모가 될 자격조차 없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34] 이 말 자체가 터무니없는 게, 애초에 이은석의 부모는 이은석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이은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부모인 본인들은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했으면서, 자식이 알아서 그때그때 자기 심정을 말해주길 바라는 게 좋은 부모의 모습인가? 만약 이은석이 부모의 말대로 그때그때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했으면, 오히려 그때그때 호되게 혼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이은석의 형이 그랬듯이. 그때그때 불만을 표출해서 알아먹을 위인들이면 이은석의 형도 집을 나가는 선택은 안 했을 것이다.[35] 아들의 불만을 불만으로 여기지도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의 행위를 잘못으로 생각하지조차 않는다는 증거다.[36] 아버지가 생전에 애지중지 보관해 오던 양주였다. 이것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37] 사실 글로 쓴 것만 보면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사건 발생 상황을 되돌려 보면 어지간한 호러 영화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무서운 상황이다. 일단 시체를 유기하기 위해 토막을 내야 하는데, 매일 얼굴을 마주했던 부모님의 몸을 냉정히 썰어서 잘라내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이미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다른 몸통이라면 몰라도 특히 부모님의 얼굴을 태연히 쓰레기봉투에 담아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넣어 쓰레기장으로 보내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소각했는데, 한때는 굉장히 잘 나가며 남들이 부러워했던 두 남녀의 말로치고는 너무나 비극적이다. 그것도 다른 악당도 아닌 자신의 아들의 손에 그렇게 되었으니까. '미운 정'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그저 부모를 눈 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어했던 이은석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마지막 살해 당시에는 분노고 뭐고 없이 그냥 엄마란 존재 자체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빠져있다가 술까지 들어가니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살해해 버렸고, 그러다가 정신이 든 후 아버지가 깨어날 상황이 두려워 아버지마저 살해했고, 빨리 시체를 없애 버리고자 하는 일념으로 시체를 토막내어 쓰레기 봉투에 담아 여기저기 유기했던 것인데, 부모란 존재를 '빨리 폐기처분해야 할 쓰레기'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졌는지, 그리고 이은석의 부모가 얼마나 부모로서 자질이 없었는지 알 수 있다.[38] 당시 이은석은 집에 있었다.[39] 집을 나가면서 동생도 같이 데리고 나가지 그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형이 집을 나갈 때는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였고 많아야 이은석은 만 18세도 되지 않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였다. 현실적으로 20살에서 21살 정도에 자취할 집을 구하고 집세나 식비 같은 경제적 여건을 해결하는데, 이제 막 사회로 나온 20~21살 대학생으로서는 그 와중에 자기 한 사람 건사하기도 어려울 판이다. 형이 집을 나갈 때는 이은석은 아직 경제적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였을 테고, 알바를 구하려고 해도 미성년자는 당연히 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한데 이은석의 부모 상태를 생각하면 그런 걸 써 줬을 리도 없다. 또한 보통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하고 1, 2년 정도(빠르면 한 학기) 지나면 군대에 가야 하는데, 형이 집을 나오면서 이은석을 데리고 나왔다 한들 형이 군대에 가 버리고 나면 다시 2년 동안 이은석은 자신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같이 살 수밖에 없다.[40] 이 외할머니라는 사람은 훗날 이은석의 가족과 한 집에 살면서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히스테릭한 이은석 어머니의 성격을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쉽게 말해 만악의 근원.[41] 큰아들은 사업하다가 실패해 집안을 말아먹을 지경이 되어도 절대 혼내지 않고 감싸주기만 하는데, 다른 자식에게는 그런 애정을 보이지 않고 무조건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를 부양해야 할 것 아니냐'며 의무만을 강요했다고 한다.[42] 이런 뒷배경 때문에 이은석의 집에는 단 한 번도 친척들이 방문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43] 만에 하나 감형되든 사면되든 해서 나온다고 해도 이번엔 전과자, 살인자 딱지가 그를 기다린다. 게다가 본인 역시도 망가졌던 정신을 제대로 치유하기란 힘들 뿐더러, 존속살해에 시신 유기까지 저질렀다는 트라우마에 정상적 사회 생활을 해 내기도 힘들 것이다.[44] 단, 사형 선고만 계속 있었을 뿐, 사형 집행 자체는 1997년 12월에 했던 것이 마지막이고 1998년부터 계속 한국은 사형 집행을 하고 있지 않다. 지금도 한국에는 수십 명의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당하지 않고 감옥에 살고 있다. 늙어서 자연사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45] 한 마디로 최악의 막장 가정에서 자랐으니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어려운 현실인데, 그게 무기징역이 보상으로 보일 정도로 커진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만큼 씁쓸함은 더 클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46] 여담이지만, 한국 특유의 경직되고 강압적인 전근대적 상명하복 마인드 때문에 민항여객기의 경우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같은 대형 참사가 터지기도 한다.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가야 발전할 수 있다. 꼭 이러한 대참사들이 벌어진 후에야 바뀌는 불행을 반복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47] 여기 이쪽을 보면 얼마나 그가 고통과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심정이 이해가 갈 정도이다.[48] 이 가해자의 아버지는 이은석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아동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고 밝히면서 자식을 이해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