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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拷問, torture)은 수사기관 및 교정기관에서 원하는 정보나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타인에게 참기 어려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통해 대상자의 심리에 압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많은 사람들이 고문이 단순히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전적 '고문'의 정의에 따르면 고문은 가해자 측이 폭력을 행사하는 목적이 정보를 알아내려 하는 데에 있다.[1] 국어사전에서 고문은 '숨기고 있는 사실을 강제로 알아내기 위하여 육체적 고통을 주며 신문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폭행의 목적이 정보를 알아내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는 사전적 의미의 고문이 아닌 가혹행위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능지처참이나 낙인 찍기 등과 같은 잔혹한 형벌 역시 고문은 아니다. 다만 장기 수감이라는 형벌을 받는 비전향 장기수는 장기 수감이라는 처벌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를 통해 양심과 신념을 저버리게 하고 다시는 저항의 의지를 가지지 못하게 되며, 자괴감에 정신까지 붕괴되기에 원하는 행동(전향)을 얻기 위해 활용되는 장기 수감은 고문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고문의 한 방법으로서 이러한 인격 형해화 기법이 즐겨 쓰인다.
수 천 년 동안 발전해온 탓에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까지 괴롭힐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로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인간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다 못해 경악할 정도로 다양한 방법이 단지 고통을 준다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고, 현재 진행형으로, 새로이 만들어지고 개량되는 중이다. 비밀경찰, 정보전, 첩보전, 특히 방첩(공작원 탐지)과 아주 인연이 깊다. 이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상기한 대로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어느 방향으로건 심리에 압박을 가할 수 있으면 뭐든 가능하기 때문에 고문의 종류은 너무나도 많아서 다 쓰기가 어려울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두들겨 패기, 물고문, 성고문, 빛고문[2], 전기의자, 생손톱 빼기, 상처에 소금 뿌리기, 잠 안 재우기 등등. 사실 이 정도도 약과다. 람보는 전기 고문을 견디는 걸로 나왔지만 덕분에 자신의 PTSD 중 가장 강렬한 고통을 겪게 하는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고문을 이기는 인간은 일반적으로 거의 없다. 게다가 적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닌 이상 고문에 살아남은 인간도 얻을게 없으면 그냥 죽여버리는게 다반사다.
물론 사전적 의미의 고문과는 다르게 모든 고문이 처음부터 진실을 알아내고자 실시되는 것은 아니며 고문으로 상대의 의지를 꺾어 원하는 말을 하게끔 하는 것 역시 훌륭한 고문의 목적이다. 프로파간다나 선전선동의 도구로 충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고문피해자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것을 시킨 사람들도 알고 있다. 본인들이 시켰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거짓 자백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아주 쓸모가 있다.
그 외에도 조폭들이나 비밀 결사 조직들, 비밀 정치 조직들이 하는 보복성 고문이 있는데, 수사 기관의 고문과는 달리 불어도 고문하고 안 불어도 고문한다. 사실 이것은 고통을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인 행위이기에 사전적 의미의 고문보다 가혹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미디어 매체에서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 육군 헌병, 고등계 경찰들 및 북한이 자주 행사하는 것으로, 사악한 심문수법인 고문을 등장시켜서 '일제 및 공산주의는 악이구나'라는 정보를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그러겠지만 한국사에도 고문은 있었다. 주리를 트는 것이 대표적. 조선시대 의금부와 포도청은 물론 당장 군사정권만 해도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민 상대로 고문을 하는건 흔했었다. 당장 박종철 열사만 봐도 알수 있는데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네임드급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보수정당, 민주당계, 진보정당 할 것 없이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을 정도.[3] 그 뿐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대법관[4], 여당 국회의원[5], 고위관료, 기업인[6], 군 장성 및 고급장교[7], 판검사, 경찰간부[8] 등 힘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고문을 당했다.
지금 와서는 구시대의 악습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가기관에서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찰이나 검찰만 해도 2000년대까지는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를 무작정 고문해서 진술을 확보/조작하는 강압수사가 종종 있어왔고[9] 미국의 경우 2002년부터 운영중인 관타나모 수용소 내 고문 사건이 유명하다.[10] 또 이라크 전쟁 당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이라크의 포로들을 상대로 가한 가혹행위와 고문도 유명하다.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영미권이 저정도였으니, 다른 후진국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담으로 한국에 고문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알려주는 사례가 있다. 14대 국회 당시 민주당의 강창성 의원이 12.12 군사반란 청문회에서 불법체포 및 고문혐의로 하나회 멤버이자 민주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권익현을 추궁했는데, 권익현 의원이 열 뻗쳐서 한 말이 "X발, 자기가 잡아갈 때는 영장받고 했나."라는 거다. 윤필용 사건을 조사할 당시 대한민국 육군 보안사령관이였던 강창성은 권익현을 고문했던 것. 게다가 강창성 역시 이 사건 이후 하나회를 수사하려고 했다가 좌천되었고 12.12 군사반란 이후 전두환의 집권에 반대했다가 계엄사 합수부에 끌려가 역시 고문당했다. 말 그대로 집권 세력의 눈 밖에 나면 아무도 고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2. 관련 법률
| 대한민국 헌법[11] 제12조 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②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⑦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
| 형사소송법 제309조(강제등 자백의 증거능력)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 |
| 형법 제125조(폭행, 가혹행위)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 또는 기타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
|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2(체포·감금 등의 가중처벌) ① 「형법」 제124조·제125조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傷害)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형법」 제124조·제125조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2조(벌칙) 이 법에 규정된 경찰관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권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
|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9조(보호장비 남용 금지) ① 교도관은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보호장비를 사용하여야 하며, 그 사유가 소멸하면 사용을 지체 없이 중단하여야 한다. ② 보호장비는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
|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인도에 반한 죄) ② 민간인 주민을 공격하려는 국가 또는 단체ㆍ기관의 정책과 관련하여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5. 자기의 구금 또는 통제하에 있는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주어 고문하는 행위 |
| 제10조(사람에 대한 전쟁범죄) ② 국제적 무력충돌 또는 비국제적 무력충돌과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인도에 관한 국제법규에 따라 보호되는 사람에게 고문이나 신체의 절단 등으로 신체 또는 건강에 중대한 고통이나 손상을 주는 행위 |
3. 역사
3.1. 대한민국
3.1.1. 전근대
| | |
| 주리틀기 | 압슬 |
3.1.2. 일제강점기
전근대 시절의 고문은 영조 때 들어서 일부 심한 형벌들은 폐지되었고, 갑오개혁 때는 근대적인 사법 체계가 들어오는 등의 개선 여지를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문은 완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도 조정에 의한 고문이 이루어졌고 1907년 이후 한국통감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대한제국 경무청은 의병들을 고문하는 데 협조했다.일제강점기에는 고문이 더더욱 기승을 부렸다.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1873년에 고문을 폐지했지만 실제로는 내지와 식민지를 가리지 않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무조건 항복할 때까지 일본 제국 경찰 경찰관들의 불법 고문이 횡행했는데, 식민지 조선은 차별 대우 때문에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특히 일제 경찰관들 중 특별고등경찰관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행했던 고문은 참혹했다. 육군 헌병들의 고문 기술도 악명높았다. 특히 이 시기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잡혀온 종로경찰서, 서대문경찰서, 용산경찰서, 동대문경찰서, 본정경찰서 등은 악랄한 고문이 많이 이뤄졌으며 동네 주재소에서도 고문이 횡행했다. 그 외에 서대문형무소, 대전형무소, 목포형무소 등 교도소에서도 고문이 행해졌다. 내지와 외지를 가리지 않고 정치범 탄압이 극심했던[14] 당시 일본 제국의 교도소는 사실상 정치범수용소 수준이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노덕술, 김태석, 하판락, 신상묵, 최난수 등의 고문기술자들, 특히 같은 조선인 출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경찰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고, 이 때문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곤욕을 치르거나 아예 죽기까지 했다.
3.1.3. 해방 후
해방 이후 미군정은 노덕술 등 일제시대에 근무했던 경찰 인력을 이어받아 미군정의 경찰관 인력으로 유지하고, 이를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서 경찰의 고문은 좌익사범 혐의자를 향해 이루어졌으며, 새로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과 서북청년단, 백의사 등 정치인들의 지원을 받는 준군사조직들이 이에 합류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고문을 금지한다고는 했으나 군사정권 시절에는 장식이었다.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곳으로는 남산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 내무부 치안본부(대한민국 경찰)의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었다. 남산에는 그 악명높은 중정(중앙정보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떨쳤으며 "남산에서 나왔습니다."라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었다. 남산에 간다는 말은 곧 심한 고문을 받을 거라는 말과 같게 되었고 같은 말로는 서빙고 혹은 빙고호텔이라는 말도 쓰였는데, 악명높은 서빙고 대공분실을 뜻하는 말이다. 이곳은 김재규가 지었으나 10.26 사건 당시 정승화의 설득에 넘어가 대한민국 육군본부로 차를 돌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 육군 병력에게 체포되어 박정희 암살범으로 몰려 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국민들은 남산, 서빙고, 남영동의 서울의 세 지명만 들어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각 지역 경찰서 수사부서, 보안부대, 삼청교육대 관리부대, 각종 헌병대나 군 부대 등 지역 군사기지나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의 각종 지역 분실 등에서 고문이 이뤄졌고 보안사 소격동 본부나 치안국-치안본부 본청 청사 수사부서나 각 지역 경찰국 본청 수사부서에서도 고문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뿐 아니라 당시에는 이른바 호텔/여관 수사를 하던 시기가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취조대상자를 호텔, 여관, 사우나 등으로 끌고 가서 고문이 이뤄졌다.[15][16] 또한 검찰 수사실[17] 등에서도 증거조작이나 강제 전향 등을 이유로 검사들이 고문을 행하기도 했다. 보안사나 헌병대, 군 부대 등지에서 고문을 할 때는 일반 경찰청 수사부서나 정보기관 수사부서가 고문을 할 때와는 다르게 작업복을 입히고 고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도소, 보호감호소, 소년원 등 교정기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제 전향이나 사적 이유로 교도관, 매수된 재소자 등에 의한 고문이 이루어졌다. 대표적 고문으로 경교대에 의한 집단구타, 금치,[18] 강제급식이 대표적이었다. 1970년대 중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강제 전향공작과 1984년 박영두 고문치사 사건, 1985년 대구교도소 양심수 집단구타 사건, 1986년 서울구치소 양심수 집단구타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화 1987의 등장인물로 널리 알려진 보안계장 안유 역시 90년대 장기 비전향 수감자들에게 고문을 가한 고문가해자였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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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고문 경찰관 이근안 | 성고문 경찰관 문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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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망한 박종철을 추모하는 학생들 |
고문을 할 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눕히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발목과 무르팍과 허벅지와 배와 가슴을 완전히 동여매고 그 밑에 담요를 깝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하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 앞에 다가와(이때 방청석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 본인도 울먹이며 진술함) 이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되고 교도관들조차 숙연해짐)는 노래를 뇌까리면서 과연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러한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인간적인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
김근태의 전기 고문 증언
군사정권 시절 한국은 고문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고문이 행해졌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 ~ 대한민국 제4공화국 시절에도 서북청년단, 내무부 치안국, 중앙정보부에 의한 고문이 횡행했고 정권의 정당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던 대한민국 제5공화국 역시 수많은 공안사건을 고문으로 조작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이 부림사건, 오송회 사건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문기술자들도 수많은 활약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았던 사람이 이근안이었다. 이근안은 대공수사처 박처원 처장의 비호 아래 1970년대부터 신분을 숨긴 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고문조작 사건을 엄청나게 생산해냈고 그 덕분에 16번이나 내무부 등지에서 표창을 받고, 1986년에는 옥조근정훈장까지 받기도 했다. "이근안이 없으면 대공수사가 안된다"라는 말까지 돌 정도로 전설적인 대공수사관이었던 그는 전기 고문, 요도 볼펜심 고문 등 다양한 고문의 선구자이자 창시자였고, 전술했듯 1988년 이전까진 사진 및 구체적 신원이 공개되지 않아 '얼굴 없는 고문기술자'란 악명을 남겼다. 훗날 열린우리당의 의장까지 오르게 되는 김근태도 그에게 고문을 당했었다. 고문은 주로 국가안전기획부, 보안사 서빙고 분실,[19] 내무부 치안본부 대공분실, 삼청교육대 등에서 행해졌다. 이렇게 고문이 자행된 이유는 유신 정권과 마찬가지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민주운동 세력을 빨갱이로 몰기 위함이었다.김근태의 전기 고문 증언
그러나 점차 정권을 향한 저항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고문도 점차 폭로되기 시작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김근태도 법정에서 자신이 이근안을 비롯한 고문기술자들에게 전기 고문을 당했음을 증언했고,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고문에 대한 증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터졌다. 부천경찰서 수사과 형사이던 문귀동 경장이 위장취업을 하다 붙잡힌 서울대 여대생 권인숙에게 인천 5.3 운동 관련자들의 행방을 알아내고자 성고문을 자행한 것이다. 권인숙이 이 사실을 폭로하고, 변호사 조영래가 그녀를 변호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갔다.[20] 그러자 정부와 어용 언론은 "성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한다"며 조롱했고, 재판부는 문귀동을 파면한 채 석방하고 오히려 권인숙을 처벌했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상황이 뒤바뀌면서 권인숙은 풀려났고, 문귀동은 구속되었다.
결국 고문은 그 고문을 자행하던 독재정권 자신들을 무너뜨린 돌부리가 되었다. 1987년 1월 경찰관이 수배학생의 위치를 알아내고자 서울대학교 재학생 하나를 끌고 가 물고문을 자행하다가 죽여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고, 대대적인 시위가 뒤를 이었다. 경찰관은 고문 경관 몇 명을 잡아넣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사건의 담당검사 최환조차 이에 반발하여 부검을 진행토록 했고, 그 해 5월 정의구현사제단은 경찰관들의 수사가 축소 및 조작되었다는 것을 폭로하였다. 이렇게 되자 전두환 정권은 궁지에 몰렸고, 때마침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과 더불어 1987년 6월 10일 6월 항쟁이 발생한다. 그리고 6월 말 6.29 선언이 발표되며 대한민국은 민주화 과정에 이르게 된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 시기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운동권 세력 중에서도 소위 프락치를 색출한다는 명목 및 분풀이로 이러한 고문을 행한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21]
6월 항쟁 후 1987년 10월부터 개정 헌법에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신설해 그동안 사문화되어온 형사소송법 72조 및 209조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격상했고, 그해 11월과 12월에 형사소송법 및 군법회의법을 개정한 뒤 1988년 12월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 1989년 보안감호제도 폐지 등을 필두로 정부가 고문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1989년 공안정국 시기와 1990~1991년 범죄와의 전쟁 시기에 실적을 추구하는 경찰관들에 의해 고문 사례가 늘어나기도 했다. 그 유명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당시에도 범인 잡겠다고 고문치사 사례가 속출하는 등 계속 문제가 불거지자 1993년에 지방경찰청에 '인권침해 신고센터'를 설치한 뒤 1994년에는 안기부법을 개정하여 정치관여죄를 신설했고, 1995년에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고 행형법을 개정하여 7일 이내의 감식(減食), 2개월 이내의 접견·서신금지, 2개월 이내의 작업정지, 5일 이내의 운동정지 등 비인간적 징벌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1996년에 경찰청 훈령인 '범죄수사규칙'을 개정했고, 1999년에는 '수사경찰서비스헌장', 2002년에는 '인권보호 수사준칙'을 제정해 고문 근절에 노력을 기울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경찰서로 잡혀가면 일단 맞고 시작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고문 사건은 지금도 종종 터지고 있다. 당장 90년대까지는 전직 고문 경찰관들이 건재했었고, 안기부도 여전해서[22]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이나 1995년 '박창희 교수 간첩조작 사건', 1998년 '총풍사건'처럼 고문으로 여전히 시나리오를 짜내는 관습을 반복했다. 아직 수사현장에서는 좋게 말하면 안 분다는 인식이 있어서 21세기로 넘어와서도 알음알음 고문이 가해졌고, 그럴 때마다 수사관들은 피조사자가 자해했다는 식으로 둘러대기도 한다.[23] 서세원 범죄사건에 휘말린 서세원 매니저가 2002년 8월 법원에서(...) 법원 직원들에게 고문을 받은 뒤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이 있다.[24]
심지어 2010년에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고문 사건이 터지면서 9시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경찰서 조사실에 CCTV가 설치되자 CCTV 사각지대나 차 안에서 수갑을 채우고 팔을 꺾는 일명 '날개꺾기' 고문이 가해졌다.
여전히 고문이 근절되지 않은 이유로는 아직 사회에서는 잘못하면 맞아도 된다는 인식이 남아있고, 고문 경력이 있는 수사관들도 조직 내에 잔존하고 있어서 윗선에서 실적 압박을 받다보면 자연스레 강압수사 쪽으로 흘러가는 일이 많다고 한다.[25]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도 2000년대 초반까지 고문이 이루어졌었고[26] 피의자를 잠을 안 재우고 수사하는 밤샘수사(또는 철야수사)가 합법일 정도로 인권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나마 민주 사회니까 고문사건이 터지면 전국적으로 욕을 퍼먹어서 자제하는 것이지 확실한 고문 근절을 위해서는 현직 수사관들의 인식과 인권의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3.2. 외국
전근대에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다 보니 여기저기서 고문이 판을 쳤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고문으로 얻은 자백만이 법적으로 유효했다고 하며, 로마 공화국, 로마 제국에서도 이를 따라했다고 한다. 중세라고 다를 것은 없어서 스페인 제국, 교황령, 포르투갈 왕국 등 유럽 곳곳에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 때 남은 기록이나 당시 사용된 고문 도구들을 전시해놓은 고문 박물관(...)을 보면 직쏘나 쏘우 같은 고어 스너프 영화 저리 가라 수준이다.[27] 동양이라고 딱히 다른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의 주원장은 아예 본인이 직접 고문 방식을 개발할 정도로 혹형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에도 시대에도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카쿠레키리시탄 탄압에 온천을 이용한 지고쿠세메 등 온갖 고문 방법이 동원되었다. 무굴 제국 역시 아우랑제브 시절 시크교, 힌두교 등 이슬람교 외 타 종파를 탄압하기 위한 고문과 혹형이 이루어졌다.시간은 흘러 근대로 들어섰지만 인권의식이 냉전 시절보다도 처참했던 더 이전 시기에는 고문수사가 세계 곳곳의 국가들에 만연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 제국, 헝가리 국민단결정부, 크로아티아 독립국, 국민군단국가 및 루마니아 왕국 등 파시즘 국가들의 고문이나 스탈린의 대숙청~스탈린 사망 직전까지 소련의 NKVD, 장제스 시기 중화민국 국민정부 등의 고문이 악명 높았으며 콩고 자유국, 조선총독부, 대만총독부 등 식민제국의 통치기관들도 식민지인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다.[28] 또한 아무리 민주국가라 해도 전쟁 시 포로를 취급할 때에는 정보를 얻기 위한 고문이 이루어졌다.
중국[29], 러시아, 미얀마, 벨라루스, 북한, 이란, 이집트 등의 독재 국가들과 나라가 개판인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30]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 남한도 대한민국 제1공화국과 대한민국 군사정권 시절에는 고문이 판쳤고 반공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한 적이 있던 중남미[31], 스페인국, 수하르토 시절 인도네시아, 크메르 공화국, 대만, 튀르키예, 그리스, 태국은 물론 문민독재가 이루어지던 나라들도[32], 전제군주제 국가들도[33] 체제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공공연히 고문이 이어졌고 그 반대편인 공산주의 독재국가들도[34], 제3세계 독재국가들도[35] 마찬가지였으니 사실상 독재국가=고문이라고 보면 편하다. 당장 중국과 북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관련 뉴스가 계속 터져서 유엔 인권위에서 지속적으로 태클을 걸고 있지 않은가.[36] 그 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아프가니스탄, 브루나이는 강성 이슬람 종교국가다 보니 중세 유럽처럼 이단으로 몰리면 잡혀가고[37] 그 대척점에 있는 이스라엘도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고문을 시행하기로는 마찬가지이며 튀르키예도 북쿠르디스탄의 쿠르드족들을 대상으로 아직까지도 고문을 시행하고 있다는 의혹이 존재한다.
영국, 프랑스 등 표면상 민주국가인 곳에서도 북아일랜드나 프랑스령 알제리같이 속령에서는 본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문이 행해지기도 했다. 북아일랜드 분쟁 시기 영국에서는 제리 콘론 사건처럼 북아일랜드 시민들을 대상으로 IRA로 의심되면 아무나 잡아다가 고문을 가했다. 인도, 이라크, 동티모르처럼 일단은 민주국가일지라도 나라 사정이 좋지 않거나 사회적 인식이 저조한 경우 아직까지도 경찰이나 군대 등에 의한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 일본의 쿠레바야시 아사오처럼 일부 불량 고문 경찰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갖은 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일도 있었다. 선진적이라는 아이슬란드에서조차 아이슬란드 경찰에 의한 고문수사 사건인 구드문드르와 게르핀 사건이 있었다.
미국은 1970~1980년대 시카고 경찰국에서 흑인 등 비백인들을 주로 고문했던 존 버지(Jon Burge, 1947~2018)가 미국판 이근안으로 유명하다. 버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출신으로 1970년 경찰직에 임용된 이래 문제를 피하려고 일부러 빈민과 비백인 용의자들 위주로 전기고문과 질식, 구타, 살해 위협 등 각종 고문을 했으며, 1993년에 고문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되자 경찰직에서 쫓겨나 2002년에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후 잡혀서 4년간 조사 끝에 부당행위 및 기소범죄 등이 드러났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풀려났다. 그러나 2010년 고문 사실에 대해 증언을 할 당시 거짓말을 한 게 밝혀져 위증죄 및 집행 방해죄로 구속되어 2011년 연방법원에서 징역 4년 6개월형을 판결받았다.(시카고 경찰국 고문피해 아카이브)
한때 고문으로 악명높았던 온두라스나 칠레 등 중남미 독재국가들의 고문관들이 CIA 요원들과 아르헨티나군[38]에게 고문 연수를 받았다고 하니 미국도 필요할 때는 잘만 써먹었다고 볼 수 있다.[39] CIA의 불법 고문이 워낙 심하다 보니, 고문을 합법화하고 그에 대한 신상보고나 필요성 자체를 의회에 보고하자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될 정도였는데, 정작 CIA가 반대했다. 고문을 맘껏 못 할까봐(...)
냉전이 끝난 뒤에는 잠잠해지나 했지만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쟁포로나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에게 고문을 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종전 후 이라크 연합국 과도 행정처가 들어선 2004년에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국 육군 군사경찰들이 이라크군 포로들에게 가했던 고문사실이 폭로된 바 있었고[40], 2009년 미 해군 산하 관타나모만 수용소에서도 고문이 있었다고 폭로되었다. 2014년 12월 9일(현지시각)에 9.11 테러 이후 알 카에다 요원에게 자행한 고문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CIA 등의 정보기관 문건을 보면 Enhanced Interrogation Techniques라는 단어를 많이 보게 되는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강화 심문 기술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고문을 조금 돌려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CIA는 미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전세계 여러곳에 비밀감옥을 운영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블랙 사이트), 이러한 곳에서 대부분의 고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의해 이 '강화 심문 기술'의 유용성이 없다고 판명되었다.
라틴아메리카는 마약 카르텔이 잔혹한 고문으로 유명한데, 라이벌 조직의 조직원을 잡아 정보를 캐내기 위한 전통적인 이유의 고문도 자주 하지만 그냥 이유없이 두들겨패서 자신들에게 까불지 말라는 공포심을 심어주려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잔혹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 이들은 고문의 목적과 양식 자체가 완전히 다른데, 여론이나 국제 정세도 신경써야 하는 일반적인 국가와는 달리 그런 것을 거의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국가의 고문이 대상을 살려놓고 신체를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가능한 한 높은 고통을 주어 정보를 최대한 빨리 얻어내는 것에 치중되어 있는 반면, 카르텔의 고문은 고문 대상의 신체 보존이나 생존에 대해 그다지 고려하지 않으며 대상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느냐보다는 얼마나 고문 수행자의 만족감과 주변인들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느냐가 더 중요하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보면 NKVD가 사용했던 고문방법 중 31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는 근대화가 꽤 늦었다 보니 인명경시와 중세 마인드가 곳곳에 남아있어 일단 패고 보는 일이 많았으며, 제정 러시아 말기부터는 나라가 개판이라 오흐라나는 물론 경찰에 의해서도 고문이 잦았고[41] 소련도 전술한 NKVD-KGB 라인이 악명이 높다. 지금 러시아도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찍히면 FSB에 잡혀가서 고문이나 의문사 당한다는 뜻.[42] 같은 소련 출신인 우크라이나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레오니드 쿠치마 당시에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무분별한 고문 행위로 악명이 높았으며[43], 유로마이단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경찰특공대 베르쿠트도 붙잡은 시민들을 엄동설한에 나체로 거리에 방치하는 등 똑같은 짓을 했다.[44] 돈바스 전쟁 시기에는 친러 동부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비밀 구금 캠프를 만들어 고문을 행했다는 의혹이 우크라이나 유엔 인권 감시단(HRMMU) 및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를 통해 제기되었다.#, ## 우크라이나에 대항하고 있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역시 2014년 세워진 이졸랴치야 감옥 등 장소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고문을 자행하고 있다. 벨라루스 역시 2020년 벨라루스 시위 체포자들을 고문하는 등 똑같은 상황이다.
4. 종류
| 신체적 고문기법 | 구타 고문 | 비체계적: 마구잡이 전신 구타 | |
| 체계적: 상처, 발바닥, 임신부 하복부 구타 | |||
| 치아 고문 | 발치, 끌로 치아 갈기, 잇몸 전기고문 | ||
| 매달기 고문 | 난간에 매달기, 팔레스타인식 매달기, 통닭구이[45] | ||
| 질식 고문 | 잠수함 고문, 물고문 | ||
| 전기 고문 | 전극봉이나 전기침 이용 | ||
| 외상 고문 | 대못상자, 드라이버, 송곳, 바늘 등을 사용한 찌르기, 손톱이나 발톱을 뽑기 | ||
| 절단 고문 | 성기를 비롯한 신체 절단 | ||
| 빛 고문 | 불켜진 백열등 앞을 강제로 쳐다보기[46] | ||
| 불 고문 | 인두, 다리미, 담뱃불, 화학 약품을 이용한 고문 | ||
| 통증 유발 자세 강요 | 벽관, 부동자세 등 비생리적 자세 강요 | ||
| 심리적 고문 기법 | 박탈기법 | 사회적 박탈 | 투옥, 정신병원 감금 |
| 친지와 친구와의 접촉 단절 | |||
| 퇴학 등 교육 기회 방해 | |||
| 해직 | |||
| 문화, 정치, 종교 활동 방해 | |||
| 감각적 박탈 | 청각적 자극 줄임 | ||
| 눈가리개 및 두건 사용, 창문 없는 암실 감금 등으로 시각적 자극 줄임 | |||
| 수갑 등으로 신체활동 제한 | |||
| 독방 감금 | |||
| 지각 박탈 | 편지, 책, 전화 연락, 신문과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에 대한 검열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의사소통을 고의적으로 축소 또는 차단 | ||
| 시간과 날짜 감각을 유지하려는 능력을 의도적으로 훼방 또는 방해 | |||
| 단순 반복적인 빛 또는 소리로 과잉 자극 | |||
| 수면 박탈 | 잠을 재우지 않거나 수면 중 주기적으로 깨움 | ||
| 영양 박탈 | 저열량 식품 제공 | ||
| 수분 섭취 제한 | |||
| 저영양 식품 제공 | |||
| 오염된 음식 제공 | |||
| 위생 박탈 | 불결한 화장실 제공, 화장실 사용 제한 | ||
| 부적절한 의복 착용을 강요, 의복 교체 불허, 불충분한 세탁 절차 | |||
| 불결하고 악취를 풍기는 환경, 적절한 보호구 없이 과도한 열·저온·건조·습기·미생물·곤충 또는 맹독물에 노출시킴 | |||
| 의료 서비스 박탈 | 의료기관 이용 불허, 수준 이하의 진료 제공 | ||
| 치아 장애,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대해 불충분한 진료 제공 | |||
| 고의적으로 잘못된 치료 및 원칙에 맞지 않은 진료 제공 | |||
| 강압기법 | 불가능한 선택이나 비일관적 행동 강요 | 정보 누설, 잘못된 자백서 날인 강요 | |
| 도울 수 없는 상황에서 고문 목격 강요 | |||
| 모욕적인 행위 강요 | |||
| 터부 및 금기 사항을 어기도록 강요 | |||
| 위협하기 | 직접 고문을 가할 거라고 협박 | ||
| 영원히 신체, 정신 장애자가 될 것이라고 협박 | |||
| 모의사형이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협박 | |||
| 가족, 친구 또는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협박 | |||
| 성적 굴욕감 주기 | 언어를 이용한 성적 굴욕 주기, 비하적 언사 사용 | ||
| 발가벗기기 | |||
| 생리에 대한 모욕적 언사 사용 | |||
|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 | |||
| 성적인 춤을 추게 함 | |||
| 굴욕적인 자세와 상황을 사진 찍음 | |||
| 동성 혹은 이성에 의한 강간 | |||
| 자위행위를 하도록 강요 | |||
| 유산 강요 | |||
| 임신 강요 | |||
| 정해진 장소에서 출산하도록 강요 | |||
| 타인의 성고문을 목격하도록 강요 | |||
| 다른 죄수들을 강간하거나 성고문하도록 강요 | |||
| 의사소통 악용기법 | 복종 강요 | 규칙에 대한 맹목적 복종 강요 | |
| 반전효과법 | 찬반과 무관하게 말꼬투리 잡고 심문 | ||
| 이중구속법 | 불가능한 선택 강요 | ||
| 역정보법 | 폭력적 고문 후 호의적 정보로 회유하기 | ||
| 지각왜곡법 | 의도적인 시공간 감각 방해, 편지, 서적, 신문, 방송매체 단절, 과도한 소리와 빛에 노출 | ||
| 조건반사법 | 무비판적 복중을 위한 조건반사적 훈련 실시 | ||
| 약물, 정신병원 악용기법 | 독성약물 사용 또는 약물 오용 | 독극물 사용 | |
| 심리치료 약물 오용 | |||
| 환각제 사용 | |||
| 근신경 차단제 사용 | |||
| 정신병원 감금 | 감금 목적으로 정신병 진단서 발급 | ||
| 성고문기법 | 도구를 사용해서 성기에 행하는 폭력 | 매, 채찍, 둔기 등으로 성기 폭행 | |
| 경찰봉, 막대, 병을 질이나 항문에 삽입 | |||
| 호스를 질이나 항문에 끼워놓고 높은 압력으로 물을 유입 | |||
| 철사로 음경, 유두를 꿰뚫은 후 철사를 가열, 음낭을 서혜부로 밀어넣음 | |||
| 음경과 음낭, 유방에 무거운 물건 매달기 | |||
| 음낭에 바늘 찔러넣기 | |||
| 나무토막이나 철봉 위에 다리를 벌린 채로 장시간 앉아 있도록 강요 | |||
| 세로막대로 항문을 압박한 채 삼각목마 위에 앉도록 강요 | |||
| 성기에 가하는 전기고문 | |||
| 가슴, 음경 또는 고환, 음핵 또는 유두를 잘라냄 | |||
| 담배, 라이터 또는 달군 철사로 지짐 | |||
| 동물을 이용한 성폭력 | 훈련된 개에 의한 강간 | ||
| 생쥐나 거미, 뱀, 뱀장어, 미꾸라지 등등 성기에 접촉시키거나 성기 위에 올려 놓음 | |||
| 인간에 의한 성폭행 | 동료 피고문자에 의한 강간 | ||
| 고문자에 의한 강간 | |||
4.1. 신체적 고문
- 같은 질문 계속하기
처음에는 아주 신사적으로 시작하는 심문이라서 고문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같은 질문을 밤낮 가리지 않고[47] 수십, 수백 번을 계속 해서, 앞의 진술과 뒤의 진술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그때부터 마각을 드러내는 고문방식이다. 어휘·문법이 틀렸다든지 글자가 하나 틀리는 등의 미세한 차이조차도 발견될 때마다 구타, 물 끼얹기, 전기고문 등 갖은 폭력을 가하며, 그것도 강도를 계속 높이며 진행하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살려달라며 싹싹 빌면서 모든 걸 털어놓거나 심문자의 의도대로 말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결국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포섭되면 좋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결국 그렇게 됨으로써 더 이상의 위협이 되지 않는 점을 이용. 변종으로 진술서를 계속 쓰게 하는 것이 있다. 이 경우 폭력을 빼 버리기도 한다. - 굿캅-배드캅
이 고문은 한 사람의 고문자가 전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굿캅-배드캅이나 당근과 채찍이라 일컫는다. 먼저 신사적으로 정중히 대하는 심문자 A(굿캅)가 들어와 "선생, 선생은 핵심 멤버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니 아는 것만 솔직히 적으면 곧 풀려날 거요."라고 말하며 진술서를 받은 후 나가고 곧이어 포악하게 대하는 심문자 B(배드캅)가 들어와 "네 진술서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니 다시 써봐!"라고 하고 처음 A가 받아간 진술서와 글자나 조사가 한 자만 달라도 "이 새끼가 곱게 곱게 대해줬더니 안 되겠구만!" 하면서 이 항목에 실린 여러가지 신체적 고문을 가하고 나간다. 피심문자가 고문당해 탈진해 있을 때 다시 심문자 A가 들어와 "선생, 어쩌다 그런 거짓말을 해서 이 고생을 당하시는 거요? 선생의 거짓말 덕분에 선생을 풀어주려던 내 배려가 물거품이 되었으니 다시 사실대로 진술서를 써 주시오."라고 정중히 대하는 것을 대상자가 폐인이 될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48] 현재에도 경찰 수사기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고문이 완전히 불법화되고 인권 의식이 높아진 현재에는 폭력을 가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정중하게 대하는 형사와 거칠게 대하는 형사가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하거나 진술서를 쓰도록 시키면서 용의자를 정신적으로 몰아붙여 만약 거짓 진술이 있을 경우 모순점이나 허점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동독을 배경으로 한 독일영화 타인의 삶 초반에 이 고문이 나온다.
- 동물 고문
맹견 10여 마리를 준비하고 그 맹견들을 고문 당하는 사람에 간발의 차이로 닿지 않도록 묶어 놓는다. 언제 개에게 물릴 지 모르는 공포와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환장한다. 이 고문을 시행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는데 바로 피고문자를 개에게 한번 물리게 한다. 바리에이션으로 개 대신에 1984에 나오는 쥐 고문, 개미 · 바퀴벌레 · 거미 · 전갈 등 소형 절지동물, 뱀 등 피고문자가 특히 무서워하는 동물을 이용하기도 한다.[49] 게임 디스아너드에서는 충성파가 안톤 소콜로프에게 정보를 얻어내려고 협박을 가하는데 선택에 따라 사람을 습격해 잡아먹는 식인 쥐떼를 풀어서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CIA에서 테러 용의자들에게 곤충을 사용한 고문을 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기사) 물론 중세 시대에서 동물을 사용한 고문은 얄짤없이 죄인이 죽을 때까지 진행되기도 했다.[50]
- 고문 바퀴
희생자를 묶어놓는 형틀의 용도부터 무거운 바퀴로 팔다리 으스러트리기, 물레방아와 연결해 자동 물고문, 묶어서 높은 장대 위에 꿰어놓는 차륜형 등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는 고문장비. 중세 유럽에서는 대역죄인을 바퀴에 묶어서 죽이는 처형을 집행했었다.
- 두들겨 패기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가혹행위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방법이다. 보통 고문으로서 행해질 때에는 피고문자가 몸을 웅크리거나 팔과 손으로 흉부와 복부를 가리는 등의 방식으로 몸을 보호하려는 동작을 취할 수 없도록 몸을 묶거나 천장에 매달아 놓는 등 피고문자의 자세를 강제로 고정시켜 놓고 폭행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피고문자의 의지력이 강하다면 짧은 기간 동안은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지만, 장기간 두들겨 패면 그것만으로도 각종 질환이 나타난다. 정신력이 더 강하더라도 결국 몸이 부서지고 만다. 쇼크나 장기 파열 등에 의해 피고문자가 죽는 일이 잦고, 고문 흔적이 심하게 남기에 많이 사용되지 않은 방식이지만, 피고문자를 죽여도 상관없는 상황이라면(예시: 무가치한 적국 첩자 혹은 국제 테러리스트, 저격수 등.) 가장 쉽게 사용되는 고문이다. 명목상의 민주국가인 경우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진실의 방처럼 흔적이 남지 않는 조치를 하고 구타하는 경우도 있다.
- 채찍질
구타 고문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고문. 그냥 뼈와 살이 분리되는 참극이 벌어진다. 만화 《한마 바키》에서는 살법가 쿠니마츠가 이제까지의 자신의 행복했던 나날들을 몇 초만에 잊게 만드는 고문이라고 한다.(만화지만 실제로 해도 그럴 것 같다.)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 의하면, 입에 재갈을 물리면 견딜 수 있다고 한다.[51] 람보에서도 나온다. 그나마 명목상의 민주국가여서 피의자에게 고문을 한 것을 감춰야 할 경우에는 고무 호스나 블랙잭 등 타격은 주면서 피부가 찢어지지는 않는 고문도구로 채찍질을 한 사례도 많다. 고무 호스 채찍질은 1932년작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나 1933년작 케닐 살인사건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미국 경찰도 20세기 중반까지 많이 써먹었으며, 고무호스 암호분석이라는 업계 용어가 있을 정도.
- 마약 고문
고문 대상자를 마약에 의존하게 한 후 마약 공급을 중단하여 금단 현상으로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고문. 효과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마약의 종류에 따라서 어떤 종류의 고문보다 고통스러울 수 있다. 아래의 심리적 고문에도 포함되는데 이 부분 역시 매우 크다. 문제는 마약이 금지대상이고 비용 때문에 현대에는 별로 시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피고문자의 금단증상이 풀린다면 반복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있다. 이전에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낼 수도 있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작정하면 정신력이고 뭐고 불가능하다. 강한 약의 경우, 약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아무리 초인적인 정신력이라도 절대로 버틸 수 없다. 애초에 화학 물질로 신경과 뇌를 직접 망가뜨리고 호르몬 분비에 혼란을 줘 버리는데, 인간의 정신력 따위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약의 양이 부족했거나 효과가 크지 않은 종류여서 버틴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아무리 인간이 신체를 단련한다고 해도 만독불침이 되거나 강산성, 강염기성 물질에 면역이 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파민 수용체 자체를 작살내는 마약을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꼭 마약이 아니라 진통제나 지병의 치료제 등 대상자에게 필요한 약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다.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정치범으로 잡혀온 발렌틴이 설사병에 걸려 고생하자 감방 동기인 몰리나가 의무실에 가서 진통제[52]를 맞으라고 권하는데, 발렌틴은 "내 동지들 중 한 명이 감옥에서 병이 나서 진통제를 맞았다가 중독돼버렸어, 그래서 정치범은 의무실에 가면 안 돼"라며 거절한다.[53]
- 자백제 투여
마약 고문과 비슷하지만, 이쪽은 전문적인 향정신성 약물을 더한다.
- 머리에 비닐 씌우기
영화 《엘리트 스쿼드》에서 BOPE가 시행하는 고문법. 맛이 가지 않고 맨정신으로 고통스러워할 정도의 기간 동안만 비닐을 씌웠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하며, 생물의 기본권인 호흡을 방해하니 매우 괴롭다. 바리에이션으로 비닐 랩으로 얼굴을 칭칭 감고 질식 직전에 랩에 구멍을 살짝 뚫어서 숨쉬게 했다가 다시 새 랩으로 한겹 더 감는 것을 반복하는 방법도 있다. 크메르 루주는 아예 처형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 물고문
물을 무기로 하는 고문으로, 물 속에 얼굴을 잠기게 해서 호흡을 저지하거나 물에다가 고춧가루 등 자극적인 물질들을 넣거나, 아예 짬뽕이나 라면 등의 국물을 호흡기에 넣어 괴롭히는 방식 등이 있다. 여기서 파생된 유행어가 코렁탕. 박종철 열사도 이로 인해 사망했다. 물레방아에 연결해 빙글빙글 돌며 자동으로 물고문을 하는 고문법도 있다. 하지만 잘못하면 대상이 사망하여 자백을 못 받기에 상당히 정교한 방법으로 한다. 참고로 이 고문을 받다 죽을 경우 폐에 물이 남는데(폐수종), 거즈 등을 얼굴에 씌우고 그 위로 물을 붓는 식으로 하면 물에 젖은 천이 호흡을 방해할 뿐 사체의 폐에 물이 남지 않기 때문에 이쪽 방식이 애용되기도 했다. 제로 다크 서티에서 초반 알카에다 자금책을 고문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게 나온다. 이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끓는 물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호흡을 방해하는 고통과 화상에 의한 고통을 이중으로 가하기 때문에 피고문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할 수 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에 큰 화상 자국이 남기 때문에 고문의 흔적이 남더라도 상관 없는 대상에게 사용되었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물에 적신 종이를 한겹 두겹 얼굴에 쌓아 올리는 '도모지'라는 고문도 있는데 처음에는 얇아서 혓바닥으로 뚫을 수 있지만 종이가 점차 쌓여가면 점점 두꺼워져서 뚫지 못하게 되고 결국 호흡곤란으로 숨진다. 주로 사극에 많이 나오고 종이를 계속 올리면서 자백을 강요한다. 도모지는 전근대 사회에서 명예살인에도 악용된 바 있다. - 고춧가루 물고문
수형자의 얼굴을 수건으로 감싸고 그 위에 고춧가루를 탄 물을 붓는다. 다른 경우로는 수형자를 거꾸로 매달고 코에 잿물이나 고춧물을 붓는다. 남영동1985에 등장한다. 김근태 의원의 수기 남영동에 따르면 이근안이 코에 짬뽕을 부어 폐기종을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하며, 김근태 의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남영동1985에서도 이를 의식하듯 고문 경찰들이 고춧가루 푼 물을 코에 부으며 폐기종에나 걸려 죽으라고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 물방울 고문
과거 중국에서 개발되었다는 설이 있어서 흔히 중국식 물고문이라고도 불리는 방법으로 고문 대상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고 몇 시간에 걸쳐서 미간에 주기적으로 물방울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고문이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자극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눈가리개나 귀마개를 착용시키기도 한다. 고작 물방울인데다 구속 이외에 별다른 신체적 위해가 없어서 보기엔 굉장히 평화로워 보일 수도 있으나 실상은 신체적 고문보다는 정신적 고문에 가까운 방법으로 의외로 잔혹하다. 간지럼 고문처럼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주기적으로 같은 자극에 노출되는 방식인데 이 경우 고문 대상자는 처음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으로 매우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계속해서 자극이 들어오기 때문에 수면 방해에 도움이 되고 점점 자극이 증폭되어 느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보신각 타종소리처럼 들린다나. 고문 대상자에게 심각한 후유증과 고문 흔적을 남기는데다 까딱하면 아예 저세상으로 보내버릴 수도 있어 리스크가 큰 일반적인 물고문에 비해서 신체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위해가 거의 없어서 상당히 안전하다는 장점은 덤. 매체에서는 만화 《북두의 권》에서 남두쌍익권 형제가 받았으며 한국 연극 산씻김에서도 등장한다. 이 고문을 디스커버리 채널의 Mythbusters에서 실제로 재연한 적이 있다. 피험자를 눕혀서 포박한 후에 이 고문을 실시한 결과 거의 한 시간 정도면 극도의 긴장과 피로가 몰려오고 서너 시간도 되지 않아 공황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통제된 실험 상황에다가 처음부터 그냥 체험이 목적이라고 했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실제 상황에서는 더욱 잔혹할 지도 모른다.[54] 여담으로 짱구는 못말려에서도 나온 고문이다.
- 벽관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상자 같은 곳에 고문 대상자를 넣어놓고 뚜껑을 덮은 후 그대로 며칠씩 방치한다. 처음에는 신체적으로 별 고통이 없어 우습게 보기 쉬우나 사람의 신체구조 상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르면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기고 근육과 신경이 멈추게 된다. 게다가 이 고문은 보통 다른 고문을 받아 이미 신체에 이상이 생긴 상태에서 시행하기 때문에 이 상태로 며칠간 방치되면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서 "꺼내만 주시면 뭐든지 다 하겠다"가 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 경찰과 일본 육군 헌병이 사용한 벽관이 유명하고, 군사독재시절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일부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요덕 제15호 관리소 등 일부 정치범수용소에서도 사용되었다고도 한다.[55]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CIA가 알카에다 자금책을 물고문한 뒤 탈진한 자금책에게 벽관 고문을 가해 심신을 붕괴시키는 모습이 묘사된다.
- 불고문
문자 그대로 불로 구워버린다. 가볍게는 라이터로 시작해서 가스토치나 아세틸렌 토치까지, 신체의 말단부부터 시작해서 신체 각 부위의 신경이 괴사해서 아예 고통마저 느낄 수 없어지면 다른 부위를 태우는 식으로 진행한다. 작열통이 인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지만 후유증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은 가스토치 같은 걸로 한동안 가열하게 되면 병원에 데리고 가도 치료법으로 일단 커팅해 버리는 것을 생각하자. 역시 티가 나기 때문에 적국 스파이나 국제 테러리스트, 전쟁 범죄자 같이 죽어도 큰 상관 없는 자들을 고문할 때만 이뤄지며, 대부분의 비밀 정보 요원들이 극약을 소지하는 이유 중 하나.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오래 주는 목적으로는 가스 토치나 아세틸렌 토치는 온도가 너무 높아서 금세 뼈까지 까맣게 태워버리기 때문에 신경이 너무 일찍 탄화되어 부적합하다. 전통적으로 끓는 물이나 기름으로 삶아 죽이는 팽형이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로 손꼽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단근질, 낙형(烙刑)
인두나 불에 달군 쇠막대 등으로 맨살을 지지는 것.[56] 약간의 화상이라도 당해본 사람은 이 고통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한 게 끓는 기름이라던지 강산성 혹은 강염기성 화학약품을 피부에 조금씩 흘려가면서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SM 플레이에 사용되는 촛농 고문도 이것의 일종.[57]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당시 영조에 의해 폐지되었으나 일제강점기[58]부터 해방 후에도 전기, 인두로 지지는 고문이 있었다.
- 상처에 소금 뿌리기
문명 이전부터 발견되는 아주 역사가 오래된 고문. 상처를 내고 소금을 뿌리거나 문지름으로써 그 곳에 일어나는 삼투압 효과로 고통스럽게 하는 고문이다. 또한 상처에 소금을 바르는 것은 훌륭한 소독법이며, 혈관을 수축하게 만들어 지혈 효과까지 있기 때문에 상처 감염도 막아주고 과다출혈도 막아줘서 피고문자가 최대한 죽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고통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실로 효과가 좋은 고문법이다. 각국에 그와 관련된 관용구와 기록이 발견되는 수준. 이 외에도 소금독에 사람을 목만 내놓고 처넣어 버리는 방법도 있다. 이쪽은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서 고통스러운 고문. 이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에도 사용되었다.
- 주리틀기
사극에서 곧잘 볼 수 있는 고문. 당한 뒤엔 다리가 휘는 것은 그나마 약한 정도고, 심할 경우엔 무릎 관절의 뼈가 살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다리가 망가지다시피 하는 건 당연지사. 인권 개념이 없고 일단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하면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르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고문이다. 참고로 사극에서는 의자에 앉혀 놓은 채로 허벅지에 고문을 가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바닥에 앉혀서 정강이에다가 했다고 한다. 이걸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데, 두 손가락 사이에 육각연필을 넣고 고정시킨 다음 연필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다. - 손가락 고문
중지를 아래로 향하게 해서 손가락 사이에다 쇠막대를 꽂아 놓은 후 발로 밟는다. 그 외에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고 쑤시는 고문이나, 손가락 위, 아래에 쇠봉을 끼워놓고 그대로 눌러 손가락을 짓누르는 것도 있다. 변형으로는 중지와 검지 사이의 끝에(혹은 약지 사이) 적절한 크기의 봉을 끼우고 손으로 두 손가락을 쥐어주면 된다. 얼마나 아픈지 모르겠다면 친구나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각진 볼펜을 한번 끼운 후 돌려보자. 그런데 이렇게 고문 항목에 나와있는 것이 예전에 학교에서는 체벌의 일종으로 시행되었다.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꽂고 깍지를 낀 채로 엎드려 뻗치는 것... 보통 1분도 버티기 힘들고 10분 이상 버티다가는 몸이 망가질 수 있다. - 찰자
막대기 여러 개를 끈으로 묶은 형구로 이것을 손가락에 끼워서 조르는 고문. 중국 명, 청대에 주로 여성에게 사용한 고문으로 실제로는 그리 널리 쓰인 고문은 아니지만 한국 사극의 주리틀기와 마찬가지로 표현하기 쉽다는 이유로 중국 사극에서 늘상 등장한다. 여성 배역이 고문당하는 장면을 연출한다면 거의 십중팔구 이게 나온다고 보면 될 정도...
- 스트라파도
중세 시대에 행해진 고문으로 양손목을 밧줄로 묶은 후 등 뒤쪽으로 돌려놓은 후 결박한 양손목에 줄을 달아 공중으로 띄운다. 계속 매달려 있으면 어깨뼈나 팔뼈가 부러지거나, 묶은 양 팔에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하게 된다. 사보나롤라, 마키아벨리가 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더 고통을 주려면 묶은 상태에서 천장으로 끌어올렸다가 갑자기 밧줄을 놔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면 양 어깨뼈와 쇄골이 분쇄골절된다.
- 신체훼손
손가락이나 팔, 다리 같은 신체의 일부를 자르거나 박살내서 불구로 만든다고 협박을 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해 버린다. 후유증? 말할 것도 없다. 영화 《올드보이》에도 나온 이 뽑기가 대표적인 예시이다.[59] 그나마 이 중 가장 가벼운 축에 드는 게 손톱을 뽑아버리거나 손톱 밑에 대나무 바늘을 꽂는 고문이다.[60] 무릎과 같은 생명 활동에 지장이 없는 부위를 총으로 쏴 버리는 방식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기본적으로 신체를 훼손하는 만큼 상당히 위험한 고문 방법이고, 티가 아주 잘 나기 때문에 적국의 스파이와 같이 죽어도 별 상관 없는 자들을 대상으로만 행해진다. 이 고문의 끝판왕은 당연고로 십자가형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불에 달군 집게로 유두를 떼어냈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일본 본토 신문에 사디즘이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이렇게 고문 받은 여성은 이후 결혼은 물론 남성과 가까이 하기를 꺼리게 된다. 자손을 낳을 수 없어 자연히 독립운동가의 강골 자녀가 탄생하지 않게 된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할머니들 중에 이런 분들이 여럿 계셨다.
- 압슬(壓膝)
'무릎 누르기'라는 뜻으로 남북조 시대와 송나라 시대 기록에도 남을 정도로 유서깊은 고문이다.[61] 바닥에다 날카로운 쇳조각이나 돌조각, 사금파리, 또는 빨래판 같은 울퉁불퉁한 나무판 등을 깔아놓고 그 위에다 고문 대상자의 손을 뒤로 묶어 무릎 꿇게 만든 후 그 위에다 엄청난 두께의 석판을 여러 개 올려 놓는다. 고문 후에는 예외 없이 정강이가 작살나고, 당시 의료 수준을 생각해 보면 설령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불구가 되어 평생을 걷지 못하는 몸으로 살아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석판 대신 사람이 직접 올라타는 방식으로 시행했으며 1차에 2명, 2차에 4명, 3차에 6명 식으로[62] 점점 올라가는 사람의 수를 늘린다. 본시 중앙에서 하는 추국에서 왕명을 받아야만 행할 수 있는 고문이지만 지방 관아에서도 불법적으로 자행하기도 했다. 다리 부위는 생명 활동에 직접적으로 지장을 주는 부위가 아니기 때문에 으깨버린다고 해서 쉽게 죽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압슬을 당한 사람들의 적지 않은 수가 고문을 받다가 죽어나갔다. 상처 감염 같은 것도 물론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극한의 고통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드라마 한성별곡과 정도전, 선덕여왕, 태종 이방원 등에서 묘사되었다. 일본에서는 이시다키(石抱き, '돌 끌어안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요키바에서 이타미 신조가 자신에게 자주 행하며, 드라마 JIN에서는 주인공 미나가타 진이 카즈노미야 공주 독살 혐의로 이 형을 받았다. 영화 《사쿠라다 문 밖의 변》에서는 기녀 타키모토 이노가 이 형벌을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 종아리 각목 끼우기
무릎을 꿇리고 허벅다리와 종아리 사이에 각목을 끼운다. 그러면 허벅다리의 압력과 종아리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다리를 심하게 다쳐 평생 절름발이가 된다. 피해자는 권오설 등.
- 전기 고문
피형자의 몸에 전류를 흘려 고통을 주는 고문법.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 착혈 고문
말 그대로 피를 뽑는다. 큰 주사기로 고문당하는 사람의 피를 뽑아서 뿌리기를 반복한다. 고문당하는 사람은 출혈로 인해 의식이 혼미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술하게 된다. 하판락 항목으로.
- 척추 분리
피고문자의 팔다리를 틀에 묶고, 점점 틀을 늘려가며 하는 고문이다. 어느 기점까지는 괜찮지만, 이 후로는 가만히만 있어도 아프다. 물론 더 늘리면 장애를 입거나 사망. 통증은 기본이고 장애나 죽음을 위협하면서 자백을 받아내는 장비. 괜찮은 자백이 나오면 틀을 줄여서 고통을 감소시킨다. 이런 식으로 피고문자를 고문하는 것. 중세 유럽에서 많이 사용했다.
철의 처녀
여자 모습을 한 관 내부에 수많은 못과 꼬챙이를 박아 놓은 고문 기구. 고문 대상자를 안에 넣고 문을 닫…지는 않고, 닫겠다고 겁을 줘서 자백을 받아내는 식으로 활용한다. 진짜로 닫으면 당연히 끔살.[63] 사실은 근세기 무렵에 중세풍 장식품으로 제작된 것. 주로 유럽의 상업적인 전시회나 선정적인 서커스에서 쓰던 상품이었다. 다만 외형의 임팩트 덕분에 매체에서는 아이언 메이든을 이용한 고문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큘라 시리즈의 원작자인 브람 스토커의 단편 중 자기 새끼를 죽인 인간에게 아이언 메이든을 이용하여 복수하는 고양이 이야기가 있다.
- 대못상자
일제강점기 시절 고문. 대못이 가득 박혀있는 작은 상자에 고문 대상자를 집어넣고 양쪽에서 순사들이 발로 상자를 좌우로 밀거나 상자 통째로 굴려버린다. 상자 속에서 고문 대상자는 두손이 묶여 있기 때문에 완전 무방비가 되어 못에 온 몸이 뜯겨져 나간다. 매체에서 등장할 때는 양 손을 상자에다 묶어놓아 고정시키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그냥 상자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도록 해 놓았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고통스럽기 때문.
- 치아 신경 건드리기
이건 KGB의 전매특허. 이의 신경을 강제로 긁어버리는 종류다. 치과치료 할 때 간혹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타고 올라오는 통증을 몇 배로 그것도 맨정신으로 받아야 하는 형태의 고문. 변형으로 척추신경 건드리기도 있다.[64] 이것도 겉으로는 고문했다는 티가 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만화 다이너에서 이를 자세히 묘사한 장면이 있다.
- 치아 뽑기
중국 치하 티베트 자치구에서 주로 행해지던 고문이며 위에 서술한 치아 신경 건드리기와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마취도 안 한 상태에서 사람의 생이빨을 장도리나 펜치를 이용해 강제로 뽑아버린다. 영화 실종에서 문성근이 전세홍을 상대로 이 고문을 한다.[65] 소설 오발탄의 주인공이 한번에 사랑니 2개를 뽑은 후 과다출혈로 죽는 묘사가 나오는 것처럼 발치의 고통 뿐 아니라 그 후의 출혈이나, 요행히 살아서 풀려난다 해도 옆 치아들이 옆으로 무너지면서 결국 모든 치아가 다 못 쓰게 되는 등의 2차 고통도 있다.
- 통닭구이(고문)
군사독재 시절에 쓴 고문방식. 부림사건을 실화로 한 영화 변호인에 등장하는 고문이다. 두 책상 사이에 쇠파이프 같은 것에 팔 다리(특히 오금 쪽에) 묶어 매달어 말 그대로 통닭처럼 된다. 장시간 동안 거꾸로 매달리기 때문에 머리에 피(혈압)가 쏠려 괴롭고, 중력의 영향으로 인해 팔다리까지도 통증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굴욕감까지 느끼게 한다. 더 악질적으로 틈틈히 더 빙글빙글 돌리거나 그 상태로 다른 고문을 한다. 이근안이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게슈타포가 먼저 쓰던 방식이다.
- 피 역류 시키기
안기부 시절 가장 악랄한 고문 중 하나. 피를 강제로 역류시키는 형태의 고문이며 치아의 신경을 건드리는 고문과 더불어서 단 몇 초만으로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 관절 뽑기
일제강점기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자주 행해진 고문.
- 진공실 고문
박정희 정권 때 고문 방법. 진공 상태인 방에 고문대상자를 집어 넣는다. 피부는 찢어질 듯 부풀어오르며, 폐, 내장 등은 터질 것 같다고 한다. 비명을 지르지만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66] 물고문으로 폐가 상하고 폭행을 당해 피멍이 든 상태에서 집어넣으면 피가 맺힌 부위가 어떻게 될 지 상상해보자. 어떤 사건이 있었는데 이후 잔혹하다 하여 중지시켰다. 10월 유신 선포 후 조연하(훗날 제12대 국회부의장) 등이 대표적으로 당하였다.
- 압력챔버 고문
진공실 고문과 반대로 이 쪽은 압력챔버(감압실)를 이용해[67] 기압을 정상기압의 몇 배로 올려 고통을 주는 방법이다. 톰 클랜시 소설 위드아웃 리모스에서 주인공 존 클라크가 젊었을 때 애인을 죽인 마약상을 고문하고 죽일 때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자세히 묘사된다.
- 에비제메(海老責)
일본 에도 시대에 행해지던 고문으로, 붉어진 피부색이 새우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 팔을 뒤로 돌려서 묶고 앉힌 상태에서 머리를 앞으로 당겨서 묶어 턱이 양발에 닿도록 하는 것이다. 30분만 지나도 혈액순환 장애가 발생해서 온몸이 보라빛으로 변하고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사진
- 스테이플러 고문
중국공산당이 홍콩·마카오의 민주파, 본토파 정치인이나 인권운동가들을 납치해서 벌이는 고문행위. 자기 말 들을 때까지 팔이나 다리나 엉덩이 등에 스테이플러를 박는다. 이는 최근에도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 고뇌의 배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고문 도구. 모양이 마치 서양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고통의 배 또는 절명의 배라고도 불렸다. 도구 끝에 달린 나사를 돌리면 서양배 모양 부분이 서서히 벌어지면서 4개의 잎으로 확장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주로 신성모독을 범한 자나 동성애자, 마녀로 의심된 여성에게 사용되었다. 고문 대상자의 입이나 항문, 질에 삽입한 뒤[68] 나사를 돌려 기구가 벌어지면 해당 신체 부위는 자연히 안쪽에서부터 찢어지며, 대상자는 과다출혈과 고통으로 사망하게 된다.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의 여주인공인 카와이 마유코가 당한 고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고문이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호주 국립대 교수 크리스 비숍에 의하면 중세 유럽에서 사용한 기록도 없거니와 중세 유럽 당시에 만들어진 기구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관련 내용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인 1623년 프랑수와 드 칼비의 '도둑들의 역사'라는 책에서는 도둑들이 사용하던 약탈 도구로 애초에 고문도구도 아니거니와 도둑들이 피해자의 입에 넣어서 비명을 못 지르게 하는 재갈이었고, 열쇠를 빼면 자동으로 입구가 벌려지는 구조라서 열쇠를 피해자에게 팔아 추가적인 약탈 수입을 창출하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 수갑 채우기
수형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발이 닿지 않는 높은 담에 매달아 놓는다. 이런 상태로 장시간 있으면 팔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팔이 늘어지고 손목에도 피가 난다.
- 뜨거운 물 뿌리기
펄펄 끓는 물이나 뜨거운 기름 등을 수형자의 온몸에 뿌린다. 당연히 해당 부위에는 심한 화상을 입게 되며, 여러 차례 반복할 경우 아예 피부가 물러서 벗겨져 버리게 된다.
- 비둘기 고문
수형자의 허리를 숙이고 손을 뒤로 해 벽에 묶은 다음 다리를 구부려 비둘기가 서있는 듯한 자세로 만든다. 이런 상태에서 장시간 있으면 무리가 와서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듯한 고통을 받는다.
- 고정 자세 유지
하루종일 같은 자세로 있기를 강요하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더 가혹한 고문을 한다. 고문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나 군대에서 체벌 목적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 95도 각
몸을 95도 각으로[69]으로 서 있게 하면서 몸에 고통을 준다. 어떤 곳에선 95도 각으로 서있는 상태에서 두 손에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 있게 해 고통을 더했다. 당연히 자세가 무너지거나 하면 무자비한 폭행 등 다른 고문을 추가로 가한다.
- 거꾸로 매달기
수형자의 발을 포승줄로 묶고 거꾸로 매단다. 단기적으로는 묶여있는 발의 고통과 함께 머리로 피가 몰리고,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되면서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는데 당연히 거꾸로 매달려 있는 만큼 구토를 하게 되면 자신의 토사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장기간 거꾸로 매달 경우 머리로 피가 쏠리면서 뇌출혈이 일어나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며, 심문자들은 당연히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물 뿌리기, 구타, 채찍질 등을 병행하기 때문에 수형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 죽거나 강제로 자백을 하게 된다.
- 식고문
수형자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맵거나 짠 음식, 차가운 얼음이나 냉수, 부패한 음식, 악취가 매우 심한 음식[70] 등을 억지로 계속 먹인다. 억지로 먹다 토하면 그 토사물을 다시 입에 쑤셔넣는 등의 방법으로 고통을 가한다. 신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신적으로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고문법 중 하나.
- 물 먹이고 배 밟기
일제시대 때 쓰인 고문으로 수형자에게 억지로 물을 먹이고 물을 너무 많이 마셔 배가 부르면 그 배를 밟아 물을 토하게 만들고 토한만큼 계속 물을 먹여 수형자 입장에선 매우 고통스럽다.
- 관에 넣고 물 채우기
물고문의 바리에이션 중 하나로, 수형자를 산 채로 관에 넣어 호스로 물을 채운다.
4.2. 심리적 고문
- 가족 고문
자신의 혈육이나 가족이 눈앞에서 고문을 당하면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괴롭다. 자기 부모, 형제, 아내나 남편이 눈 앞에서 성고문을 당하거나 단근질을 당하면서 신체가 망가져간다고 상상해 보자. 실제로 조선에는 관아에서 범죄자의 부모나 형제, 자식이 끌려와서 대신 고초를 겪는 일이 잦았다. 부모는 자신의 자식들이 고문 당하는 것을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이런 모성애/부성애의 특징을 이용해 자녀를 부모 앞에서 고문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정말로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부모의 자백이 자기 자식에게 해가 가게 될 수도 있는 경우는 정말 끈질기게 버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고문은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자주 했던 편이다. 중국만 해도 자식 고기를 삶아서 먹이는 경우가 있었다. 현대에도 자행되는데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설립자 아흐메드 야신도 고문당할 때 하마스 간부들 위치와 이름을 말하지 않자 이스라엘 정부는 야신의 아들[71]을 끌고 와서 아버지 야신이 보는 앞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고문했다. 하지만 야신은 끝까지 자백을 안 해서 결국 이스라엘 정부가 고문을 포기했다.
- 고문 장면 관람, 고문당하는 사람 비명 듣게 하기
사실 당대에도 정치적으로 필요한 혐의를 다루는 재판은 각본을 만든 뒤 자백만 받는 식이고 그 외의 재판은 근거가 너무 부족하면 풀어주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주로 누구 잡기로 결정하고 나서 쓰는 방법. 고문실 내지는 고문기구를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을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문이며 의외로 여기에서 꺾여 모조리 자백하는 사람이 고문을 당하고 자백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고문관 입장에서도 직접적인 고문은 그 자체로 상당한 수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의외로 효율적인 고문 방법. 《장미의 이름》을 보면, 수도원 내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이자 이단자로 지목된[72] 레미지오 수사가 고문을 하겠다는 베르나르 기 심문관의 엄포를 듣고는 제풀에 반 실성하여 차라리 지금 죽여달라며 자기가 하지도 않은 살인을 각본까지 짜서 자백한다. 레미지오는 젊었을 때 자신이 잠시 추종한 적도 있는 이단자 돌치노가 고문을 받고 조리돌림 당하며 죽는 모습을 직접 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문 장면을 관람하는 것조차 당사자 입장에서는 수십 년이 지나도 얼마든지 트라우마로 남는다. 실제 사례로는, 푸에블로 호 사건 당시 억류됐던 미국 해군들도, 아무리 미쳐 돌아가던 북한이라지만 대상이 미국인이다 보니 직접적인 고문을 할 수는 없어서 대신 이러한 심문을 했다고 한다.
- 고문 기구 보여주기
고문할 때 쓰는 기구를 점점 더 끔찍한 것 순으로 보여주면서 "넌 앞으로 이걸로 고문받을 거야"라고 압박을 주는 방법. 바로 위의 방법과 비슷하다. 의지가 굳은 사람이 아닌 경우 이 단계에서 겁에 질리면서 알고 있는 사실을 줄줄 불게 되며, 그러면 고문을 가하는 쪽도 불필요한 수고를 덜게 된다. 고문이라는 것이 당하는 쪽에서도 고통이지만, 가하는 쪽 역시 상당히 피곤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 혐의로 이 고문을 받은 걸로 유명하다.
- 소음 고문
소음을 강제로 듣게 하는 고문. 이것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헤비메탈 같은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거의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문화권의 사람에게 강제로 계속 듣게 하면 의외로 효과가 좋아서 미군이 알 카에다 같은 중동권 출신 포로들에게 애용했다고 한다. 파나마 지도자 마누엘 노리에가도 1989년 미군의 파나마 침공 때 델타 포스를 피해 겨우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망쳤으나 미군이 초대형 스피커로 헤비메탈 음악을 몇날며칠 쉬지 않고 틀자 못 견디고 제발로 나와 항복한 사례도 있다. 외관상 상처가 남지 않는다는 장점은 덤이다. 하지만 이 고문을 며칠만 당해도 영구적인 난청이 생길 수 있다. 최근에는 방향성은 미묘하게 다르긴 한데 아기상어(...) 무한 반복 재생 고문도 있었다고 한다. 해당 피고문자는 얼마 뒤 사망했다고.
- 변호인 조력 차단
이것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피의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을 보호하려 할 때, 변호사가 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면 고립무원 상태가 되어 저항력이 상실된다.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 자체가 극도의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에, 고문자는 피의자의 변호인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하거나[73], 아예 변호사가 고문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은 다음 같은 질문 계속하기 고문, 옷 벗기기, 두들겨 패기, 벽관 고문 등을 세트로 실행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6월 항쟁 이후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헌법에 명시되면서 해당 행위가 금지되었다.
- 옷 벗기기
이것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일단 옷을 벗기면 저항력이 상실된다. 더불어 도망가지도 못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일부러 옷을 벗겨서 심문하는 게 다 이런 이유[74], 물론 성고문과 연계해서 수치심을 주기 위해 다 벗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보통 윗옷만 벗기는 것이 기본적이지만 실제로 고문당한 사람의 증언이나 수기를 보면 아예 다 벗거나 속옷만 입은 상태로 고문을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여성에게 하면 큰 정신적 고통을 주며, 노출을 죄악시 여기는 이슬람교, 기독교 신자들이 이 고문을 당하면 나중에 정신질환을 앓을 정도. 협조할 때 조금씩 옷을 주는 게 포인트. 대다수의 고문 피해자는 이후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성친구와 성관계를 할 때 "자기야, 옷 벗어."라는 말 한마디 혹은 병원에서 건강검진 따위를 받을 때 "옷 벗으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게 된다. 사족으로 현재 도주 방지를 위해서 경찰관들도 유사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물론 피의자의 옷 전체를 다 벗기는 것은 아니고 피의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발과 양말(혹은 스타킹)을 벗겨 맨발로 만들어 도망가지 못하게 도주 방지 목적으로[75] 행한다. 보통 TV에서 보는 중범죄자들이 취조받을 때 보면 하나같이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 슬리퍼도 역시 신고 뛰기 힘들다.(물론 벗고 뛰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러면 맨발에 그대로 찔릴 수 있다.) 더불어 경찰 관련 법에 근거해 피의자가 혹시 모를 자해나 자살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방지하기 위해 피의자가 입은 복장 중 위험해 보이는 것은 벗으라고 하기도 한다. 가령 남성의 경우는 혁대(바지 허리 벨트)를 벗기고 여성의 경우는 브래지어[76]나 스타킹을 여경의 입회 하에 벗게 한다. 물론 당연히 여성 피의자의 경우 브래지어를 벗게 했다면 여경이 다른 옷을 입혀서 가려준다.
- 음식 고문
반쯤 농담으로 굶겼다가 먹이거나 음식 냄새를 풍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수사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농담 같지만 물론 간혹 사용되기도 한다.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이런 고문을 당해본 경험담이 실려있다. 실제로는 고문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죽이기보다는 살아있는 쪽이 낫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오히려 대상자가 약해질 경우 고문을 버터내지 못하고 쉽게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다른 고문을 할 경우에는 영양 공급은 충분히 해주는 게 일반적이고, 만약 굶기는 행위가 시행되더라도 다른 체력을 요하는 고문과 병행되는 경우는 적다. 오히려 단식 투쟁 같은 걸 막기 위해서 다른 고문을 가할 정도.[77]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금식할 경우 호스로 들이민다는 협박까지 있었다고 한다.
-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 먹이기
그나마 위의 음식고문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이지만, 소금을 엄청나게 친 밥 혹은 모래를 섞은 밥을 주는 등 식사 자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밥에 대소변을 섞거나 개밥그릇에 밥을 주고 개처럼 핥아먹게 강요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며, 심지어 진짜 대소변을 먹이는 등 먹는 행동이 인격을 포기하는 행동이 되도록 정신적인 모독을 가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 강제급식
고문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단식투쟁을 하면 호스를 위에 넣어 강제급식하는데, 굵은 호스를 넣었다 뺐다 하며 고통을 더하거나 굵은 소금을 호스로 위장으로 넣거나 하여 고통을 더한다고 한다. 생각보다 더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단식투쟁이 있었기에 강제급식도 있었지만 가장 자주 자행된 건 1970년대 유신 시대이다.
- 잠 안 재우기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걸로 악명 높은 고문. 고문 방법 중에서도 최악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고문 방법이다. 잠들려고 하면 구타하거나 물을 뿌려 깨운다. 참고로 인간은 평균적으로 3일 이상 렘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뉴런이 재생되지 못해서 대뇌엽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 상태가 계속되다간 사망에 이른다.(그 특전사들도 천리행군이나 지옥주 도중 적어도 1시간씩은 잔다.) 죽기 전에 미쳐버리지만.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신 베트의 장기로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인 조력 차단, 같은 질문 계속하기 고문, 옷 벗기기, 두들겨 패기, 벽관 고문 등과 함께 콤비네이션으로 사용되었다. 24시간 고문 대상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없고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서 같은 질문을 계속 받으며,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옷을 벗으라 하고 두들겨 패기, 물고문, 전기고문, 성기고문, 음식고문 등이 시작된다. 이후 다시 같은 질문을 계속하며, 단 한 차례도 말이 어긋나면 안된다. 정신이 붕괴하고 의식이 혼미한 상태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할 때까지 계속한다. 인격이 남아 있으면 훗날 정신이 조금 돌아오면 발언을 바꿀 수 있으니까 인격도 같이 붕괴시킨다. 결국은 고문 기술자가 구상한 대본을 100% 머리와 신체의 기억 속에 각인하여 어디 가든 그 스토리를 이야기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고문으로 다친 몸을 좁은 벽관 속에 넣고 며칠 동안 잠을 안 재웠다 한다. 벽에 기대기라도 하면 전기 쇼크가 흘러 잠을 잘 수 없다. 이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까지 시행되었고, 이후에는 구타나 물 뿌리기 고문은 사라졌지만 그 이후 검찰, 경찰, 국정원, 기무사 조사에서도 가혹행위는 없어졌어도 고문 없는 잠 안 재우기 조사는 시행 중이다. 일선의 수사지침에까지 정당한 수사방식의 하나로 등재되어 있다.[78] 기본적으로 야간 수사는 위법하지 않지만 조사 중인 피의자나 피고인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하였다면, 위법한 수사방식으로 위법수집증거배제의 원칙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79][80][81]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인권이 매우 좋은 국가들은 피의자에게 기본적인 수면시간을 보장하며 밤샘조사를 금지한다. 그 증거로 일본도 자정 넘어서 진행된 조사 내용도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2020년대부터는 권력기관 개혁에 따라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21시 이후부터 06시까지 야간 심야 조사를 금지했다. # #
- 감각 이탈
옷을 모두 벗기고 사방은 고무로 된 빛 한 점 없는 완벽한 어둠의 방에 넣어둔다. 방은 원통형으로 만들어져서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들고, 벽이 고무여서 자해를 방지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고문 대상자는 그 안에서 자신의 감각을 찾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벽을 치고 등등 하지만 어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방을 나올 때는 정신이 반쯤 빠져있다고 한다. 동유럽의 고문 방법. 비슷한 고문 기법으로 2009년 미국에서 공개된 해외 미국군 기지의 CIA 고문 기법 중에는 알몸으로 사방이 온통 흰색인 방에 고문 대상자를 넣고 소음을 틀었다 한다. 고문 대상자는 점차 자기 몸의 감각과 자신과 분리되는 체험을 한다고 한다.[82]
- 냉궁, 냉실에 가두어 놓기
고문 대상자를 차갑디 차가운 방에 감금하는 수법인데, 고문도구가 없고 고문기술자 또한 없지만 고문대상자는 추위를 많이 떠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주로 중국에서 시행되었으며 조선에서도 이시애의 난 때 한명회, 신숙주가 냉궁에 수감 당한 적이 있다. 이 고문은 주로 고위층들에게 행해졌다.
4.3. 성고문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성고문#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성고문#|]]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성적인 폭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큰 수치심을 주는 고문이다.
5. 장·단점
5.1. 장점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리고 정상적인 심문과정에서는 장점이 단 하나도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력이 극히 부족하여 고문 이외에는 정보를 캘 방법이 매우 미흡했으며, 인권 문제 따위는 신경도 안 쓰던 과거에는 그나마 사용 가치가 없진 않았던 것과는 달리, 정보력의 향상과 지식이 증가하고 범죄자라도 인권을 존중하는 현대에서는 많은 단점에 비해 장점이 거의 없으므로 현재는 제 아무리 흉악범이라 할 지라도 모두가 동등한 국민으로써 대우를 받는 민주주의 국가에선 고문을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할 이유도 없다.- 혐의가 있는 인물로부터 정보도 얻어내고 징벌적 고통, 육체적 손상을 가함으로써 다른 관련자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런 공포감은 특히 북한이나 일제 같은 독재정권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유용한 도구다. 국민들을 학대하는 독재자들 입장에서는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 적국을 대상으로 한 첩보전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타국의 요원을 잡아다 고문하면 상대도 똑같은 짓을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미 너죽고 나죽자 수준으로 으르렁대는 사이가 아닌 이상 무분별한 고문은 잘 일어나지 않았었고, 반항하면 적당히 때려서 기만 죽여놓는 정도였지 불구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고문은 암묵적으로 피하는 편이었다.
- 자백 이외의 방법으로 정보를 얻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정보[83]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과학수사기법이나 정석적인 심문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서는 수사기관에서 확보할 수 있는 증거라고는 주변 증언들을 취합한 정황 증거 외에는 없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정황상 범인일 확률이 높아 보이는 사람을 잡아다 바른 대로 불라며 곤장을 때리곤 했다. 아래의 단점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수사나 정보 수집 용도라기 보다는 이미 용의자를 특정한 상황에서 자백을 받아내는 목적으로 사용된 일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지식이 축척되지 않은 옛날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문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게 문제.
- 바람직하지 않지만 고문 집행인들이 유용하게 쓰는 방법으로, 고문은 정치적으로 악용하기에 좋은 성능을 가졌다. 반대세력을 고문해서 억지로 거짓자백하게 만들면, 그 자백으로인해 처벌할 당위성을 허위적으로라도 만들어 주기 때문. 고문이 사용되었던 당시엔 이런 악용사례가 허다했기 때문에 현대의 법은 고문으로 인한 자백은 그것이 설령 사실일지라 하더라도 증거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다.
- 고문을 통해 정보를 얻어내는 것과 별개로, 고문 그 자체를 형벌과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잔혹한 고문을 통해 범죄자나 반체제 인사 등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중의 공포심을 조성해 이를 통제에 이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통제는 결코 용납되지 않으며, 인권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독재 국가나 무장 단체 등에서나 사용할만한 방법이다.
5.2. 단점
- 실제로는 고문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수사에 혼선만 일으킬 뿐이다. 실제 사례를 들자면, CIA가 관타나모 등에서 각종 스캔들을 감수하고 엄청난 비용까지 투자해 자행했던 고문 행위가 실제로는 그 어떤 유익한 정보도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최신의 증거이다. 자백 자체는 유용하지만 이런 자백의 대부분은 고문을 통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84] 오히려 얻어낼 수 있는 정보도 얻어낼 수 없게 하는 게 고문이다. 또한 고문을 가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신속한 정보 획득이 어렵다. 실제로 CIA는 죄수에게 183차례의 물고문을 가했으나 얻어낸 정보라고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이거나, 허위 정보였다. 고문의 횟수만 183회이다. 신속하게 정보를 획득한다기에는 횟수가 너무나도 많다.[85]
- 근본적으로 고문으로 얻은 정보가 진실된 정보라는 보장도 없다. 분명 고문 피해자는 비교적 신속하게 답변은 할 것이다.[86] 그러나 그것은 고문 대상자가 순간의 고통을 모면하려고 그럴듯한 거짓 정보를 흘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나 고문으로 취득한 정보가 즉각적인 확인이 불가능하고, 장시간의 검증 작업을 요구하는 중요한 정보인데 결국 허위로 밝혀졌을 경우 오히려 수사에 더욱 큰 혼선만 생긴다. 그리고 고문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를 반박하는 증인, 물증이 나올 경우 고문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가 허위 정보라는 반박을 당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난처해지는 쪽은 고문을 했던 쪽이다. 물론 허위 정보일 경우 죄수/포로에게 더 잔인한 고문을 가할수도 있지만, 극한에 몰리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 특성상 죄수는 고통을 모면하기 위해 또 다시 거짓 정보를 흘릴 가능성이 높다. 때때로 피고문자는 거짓 진술을 함으로써 어떤 유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석방이나 상대방의 혼선을 기대하며 고문가해자가 원하는 진술을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고문을 통한 진술은 신뢰할 수 없으며, 법적 절차에서는 고문에 의한 진술을 증거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밀라노의 한 판사는 자신이 직접 노새를 죽인 뒤, 어느 하인이 저지른 짓이라고 비난하고는 그에게 고문을 가했다. 그러자 하인은 범죄를 자백했다. 심지어 다시 고문당할 것이 두려운 나머지 교수대에서조차 자백을 철회하지 않았다. 판사는 그 길로 자신의 법정에서 고문을 철폐했다.『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 고문당한 대상은 인지적 능력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에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진술의 가치 자체가 떨어진다. 고문의 대상자는 나중에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고문으로 얻어낸 정보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나온 말이거나, 고문을 가하는 자의 회유, 협박에 자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고문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이미 획득한 정보를 확인하는 정도이지(당연히 진실성,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 새로운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낼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여인아, 너는 자신이 마녀라고 자백했다. 그런데 나는 이 두 남자가 마법사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네 의견은 어떠냐? 집행관, 래크를 한 번 더 돌리게.""그만. 그만!"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저들을 안식일에 종종 보았습니다. 저들은 염소, 늑대, 다른 동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 "마녀들이 저들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한 여자는 저들을 아비로 둔 자식을 여덟이나 낳았습니다. 아이들은 머리가 두꺼비와 같고 다리가 거미와 같습니다."... 대공은 소스라친 사제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친구들이여, 내가 당신들에게도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 내야 하겠습니까?"『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고문을 가할 경우 시간은 시간대로 소모하고 수사력만 소모하는 역효과가 생긴다. 일례로 예전 김문수의 경우 노동운동을 하다 잡혀갔을 때 심상정이 어디 있는지 정말로 몰라서 대답을 못했었는데, 이런 사람을 쥐어짜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무의미하다.
- 고문 대상이 고문 도중 사망하면 영영 정보를 취득할 수 없게 된다. 고문 찬성론자들은 숙련된 고문 전문가는 의료장비까지 갖춰놓고 고문하므로 사망 위험이 적다고 주장하지만, 후세인 시절 이라크 같은 오일 머니의 독재국가조차 체포 후 '심문' 도중 원인불명의 사인으로 사망한 수감자가 결코 적지 않다. 뇌경색이나 부정맥으로 인한 돌연사는 응급의료장비를 갖춰도 전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인권문제를 싹 빼고 보더라도 고문은 수사과정에서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는데 고문피해자는 일반적으로 범죄와 관련된 현장이나 인맥이 있는 사람이 고문받고 허위자백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이런사람은 범인일 가능성이 높기도 하지만 반대로 범인을 잡을 증인이 될 가능성도 높고 범인과 일반인의 비율을 보면 오히려 증인이 되어줄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예비 증인을 고문해버리면 그 집단 전체가 사법당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고 해당 사건과 향후수사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87]
- 고문 대상이 결백한 사람으로 밝혀질 경우 일반적인 사법 오류보다 훨씬 큰 피해를 안겨준다.
- 고문 자체가 인권을 유린하는 비윤리적 행위이다. 현실정치적으로도 고문을 자행했다는 것을 들켰을 경우 독재 정부[88]가 아닌 이상은 정권에 대한 국내 지지율 및 국제적 인식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 통념과 달리 고문을 당할 때 진범보다 무고한 사람이 허위 자백할 위험이 높다는 주장도 있는데, 무고한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고문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자신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증거도 없을것이며 따라서 재판에 가더라도 판사 등이 자신의 무죄를 밝혀줄거라고 생각해 고문의 고통을 피하고자 진범보다 더 쉽게 허위자백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 고문은 고문 가해자가 원하는 대답이 요구되기에 정보의 오염이 심각하다. 아무리 고문 피해자가 정확한 정보를 진술했다고 해도 고문 가해자가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고문이 지속된다. 당연히 고문피해자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고문 가해자가 원하는대로 정보를 만들어 진술하게 된다. 즉, 고문은 태생적으로 허위 자백이 존재하는 것이다. 괜히 고대로부터 고문이 자백용으로 쓰였던 것이 아니다.
- 실증적으로 고문의 유용성이 인정된 사례가 극히 드물다. 즉, 고문을 통해 전황을 바꿀만한 정보를 얻거나 다수의 인명을 살리거나 한 적이 없다. 일제가 대표적인 예인데, 고문을 그렇게 많이 하고 고문기술로 악명이 높았지만 한 게 없다. 기껏해야 독립운동가들의 국내 은신처를 알아내는 정도다. 고문은 홍커우 공원 의거, 사쿠라다몬 의거를 예방하지도, 기획한 사람들을 찾아내 처벌하지도 못했다.[89]
- 위와 같은 단점으로 인해 고문은 정치적으로 악용된다. 정치투쟁에서 패배한 쪽이나 정치범으로 몰린 쪽을 없는 혐의를 고문을 통해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가능하며 조선왕조실록만 뒤져봐도 그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6. 필요악인가?
적국에서 온 스파이가 대도시의 도심 한복판 어딘가에 휴대용 핵무기를 설치했다는 신뢰할 만한 첩보가 입수되었다. 정보기관은 곧 문제의 스파이를 잡을 수는 있었지만, 핵무기가 어디 설치되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스파이는 도통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자, 여기서 이 스파이 한 명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한다면 수만, 수십만의 무고한 인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럴 경우라면 고문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정도 스케일이 되면 슬슬 가치관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수십만으로 부족하다면 수백만, 수천만, 아니면 아주 비현실적 + 극단적으로 인류가 멸망한다고 가정해 보자. 보통은 1명과 80억 명 사이 적당히 큰 숫자에서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필요악으로써 허용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애초에 전제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전제[90]이니 사고실험에 불과한 비현실적인 상황을 근거로 현실상황에 적용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니 후술하는 주장들은 전제가 확실하다고 가정할 때에만 적용되는 것임을 알아두자.
고문은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91]
- 고문이 필요악이라면, 그 스파이의 무고한 자녀를 고문해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결론도 도출할 수 있다. 왜냐면 어차피 고문자체가 윤리를 어긴 행위이므로 그의 무고한 자녀를 고문하여 윤리를 어긴 것보다 사람을 살린 이득이 더 크다면 시행할 똑같은 가정이기 때문. 그의 무고한 자녀로 가정을 바꾸는 대신 스케일을 인류 전체로 바꾸고 이때 무고한 자녀는 자신이 핵에 휘말려 죽더라도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고 고문도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가정하여, 자녀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위선으로 고문하려는 꼼수를 막으면 여전히 가치관으로 뭐가 옳은지 혼란이 올 것이다.
- 미끄러운 비탈길에 발을 디디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이 있다. 일단 어떤 방식으로던 고문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고문을 시행한다 할지라도 차츰차츰 더 넓은 범위에서 고문을 시행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고문이 장기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고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 이는 입장에 따라 다른 문제기도 하다. 만약 곧 핵이 떨어질 대도시에 살고 있다면 당장 고문해라라고 말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92]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데 고문을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핵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면 괜히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대도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고문이 허용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어 사회적 혼란를 야기할 수 있기에 그냥 대도시 사람들을 죽게 놔둘지언정 고문은 하지마라라고 하는 게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아도 다른 모든 인류의 앞날을 위해 이득이다.[93]
물론 이는 전제[94]에서만 논란이 되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고문은 범인체포에 도움을 주는 것 보다는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 같이 누명피해자만 만들어 미제사건으로 만드는 일이 허다해서 현실에선 논란도 될 것 없이 고문을 사용하지 않는 게 무조건 옳다.[95]
허나 고문이 허용되는 나라에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문을 한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보다는 조금 낫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본보기식 징벌의 의미가 강하다. 스파이를 패버리고 곤죽을 만든 후 공표하여 일벌백계하면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법이 체계적으로 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법을 우회하면서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물론 선진국인 한국이라면 고문 따윈 없고, 관련 법으로 인해 처벌받을 뿐 고문 받지는 않는다.
실제 고문 피해자인 홍세화는 자신의 저서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고문을 비아냥거리며 이런 일화를 이야기했다.
일본에 이름 높은 영주가 있었다. 하루는 대신들을 불러와 진실을 털어놓게 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대신들은 고문이야말로 가장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데 그 날,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영주가 좋아하는 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영주는 식사를 담당하는 하인을 꾸짖었지만 그 하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영주는 그 하인을 감옥으로 데려가 고문 도구들을 보여주며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했다. 겁먹은 하인은 벌벌 떨면서 자신이 훔쳐먹었다고 털어놓으며 감맛을 이야기했다. 이를 본 대신들이 역시 고문이 최고라고 하자, 갑자기 영주가 분노하면서 뭣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꾸짖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몰라하는 대신들에게 영주는 보란듯이 숨겨둔 감을 꺼내들며 자신이 감을 숨겼다고 하인에게 사죄했다. 그리곤 대신들을 보며 일갈했다.
"보다시피 고문에 대한 무서움으로 이렇게 먹지도 않은 감에 대한 맛을 거짓으로 지어내 이야기하는데, 아직도 고문이 진실을 털어놓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셈이오? 경들은 이래도 고문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자신할 수 있소?"
대신들은 누구 하나 반론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많은 고문자들의 목적은 진실을 알아내는 게 아니라, 자백으로 형식적인 법적 근거를 만들어서 처벌이나 처형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보다시피 고문에 대한 무서움으로 이렇게 먹지도 않은 감에 대한 맛을 거짓으로 지어내 이야기하는데, 아직도 고문이 진실을 털어놓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셈이오? 경들은 이래도 고문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자신할 수 있소?"
대신들은 누구 하나 반론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위의 예시는 사실 고문 자체의 정당성을 논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윤리적인, 또는 정의로운(공정한) 선택이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하버드대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러한 선택에 대한 갈등을 공리주의적 정의관과 자유지상주의적 정의관의 충돌을 통해 설명하였는데, 공리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즉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행복의 총합을 최대화하는 선택이 정의로운 선택이다. 이에 비해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서는 각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는 선택이 곧 정의로운 선택이다. 이 두 관점에 따라 보면,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서 고문은 개인의 절대적으로 정당한 권리(고문받지 않을 권리-즉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에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잘못된 수단이다. 이에 비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 수단을 통해 침해되는 사회 구성원의 유익과 행복보다 사회 전체(구성원의 총합)에게 증진되는 유익과 행복이 더 크다는 점이 명백하다면 이러한 수단도 정당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들의 충돌을 설명하기 위해 사고 실험의 주제를 극단화하는 방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수십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폭탄을 설치한 테러리스트를 고문할 수도 있지 않으냐'라고 공리주의적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십만명이 아니라 수십명, 또는 수명의 사람만이 죽는다면 그때도 고문이 정당한가'라거나(한 사람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해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공동체의 이익의 총합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면) '테러리스트가 아닌 무고한 사람(예컨대 그 테러리스트의 자식)과 같이 자기 자신이 그 문제에 책임이 없는 사람을 고문해서 폭탄의 소재를 밝혀낼 수 있다면, 그때도 정당한가?'라거나 또는 꼭 테러리스트의 비유에 집착하지 않고 이것을 꼭 생명권 대 생명권의 충돌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재산의 이익 등을 보기 위해 소수가 끔찍한 고통을 겪는 것 역시 이익의 총합을 증진시킨다는 주장이 있다면 어떻게 다뤄저야 하는가' 등으로 공리주의적 입장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자유지상주의적 선택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그 선택의 결과로 인류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권리가 제한 없이 보장되어야 하는가'라거나, 고문 대상으로 논의되는 개인이 테러리스트 등 어떤 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침해되는 다른 사람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가', 또는 이 역시 테러리스트의 비유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수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침해되는 권리가 재산권이나 단순한 선택권과 같이 생명권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권리라 해도 개인의 권리가 제한 없이 보장되어야 하는가' 등의 반문이 가능하다.
즉, 이 사고실험의 경우 '고문을 통해 진실을 밝혀낼 수 있고, 그 진실이 다수에게 유익한 것이다'라는 전제를 두고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실에 실존하는 고문의 경우 이 전제를 충족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현실적으로는 제 아무리 잔혹한 고문을 시행해도 스파이가 옳은 정보를 똑바로 말할 가능성은 매우 드물다. 즉, 전제 자체가 거의 판타지다. 따라서 이 사고실험을 통해 설명한 '고문의 필요성'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일이다. 실제로 공리주의적 특성이 강한 윤리관을 가진 사람들도 '이 전제 하에서는 고문을 지지'해도 '현실적인 사례에선 고문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역시 이 때문이다. 고문이 필요악이나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고문의 실효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크며, 현실적으로 고문이란 게 얼마나 쓸모가 없고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만 더럽히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걸 필요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보아도 쓸모없는 것이 고문이다. 아무 도움도 안 되는주제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큰 윤리를 훼손하여 공리를 깎아먹는 행위니까.
결론은 현실에서는 고문은 수단과 선택지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필요악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수단과 선택지 논란도 철학적 실험으로나 가능한 이야기지 현실적으로는 고문이 해결책으로 쓰기에는 효과가 매우 미미하거나 역효과만 불러 일으키고 그 효과는 회유나 비폭력적 심문으로도 충분히 얻어낼 수 있는 효과고 오히려 이쪽이 효과는 더 크다. 다시 말하자면 공리주의적 논쟁을 말하기 이전에 대전제인 '고문으로 범죄예방이라는 공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전제다.
7. 고문 희생자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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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tablebordercolor=#000,gray><tablebgcolor=#ffffff,#1c1d1f> 급성 고문후유증 ||골절 ||
탈골 혈종(피부 내에 피가 고이는 것) 외상 화상 뇌진탕 신경손상 혈관손상 및 출혈 사망(주로 내부 혈종으로 급사) 만성
고문후유증눈 대체로 증상 없음, 만성 결막염, 복시 및 혼시 귀, 목, 코 외상, 고막 파열, 청력 손상, 현기증, 이명, 이통, 만성 중이염 치아 타박상, 발치, 치아 마모, 치아 파손, 치주염, 치아 상실, 잇몸 출혈, 씹는 기능 불량, 두통, 안면 통증 폐 대체로 증상 없음, 과민성 기침, 결핵 소화기계 식욕 상실, 위궤양증(상복부 통증, 공복통, 위산증, 구역질, 구토), 체중 상실, 척추 외상상 위통, 변비, 설사, 배변통, 혈변 비뇨 및 생식기계 빈뇨, 혈뇨, 에이즈를 비롯한 성병, 여성에게는 생식기 내외부 통증 및 만성 염증, 월경 불순, 비특이성 요통, 배뇨 및 배변 곤란, 골반근육 기능 이상, 원치 않는 분만이, 남성에게는 조루와 성교 능력 감소가 나타남 중추 및 말초신경계 긴장형 두통(머리띠를 두른 듯함), 두개골 외상형 편두통, 현기증, 피로, 뇌진탕, 혈관 및 신경 손상 증상, 말초지각 및 운동 이상으로 인한 신경 정지, 심한 근육경련성 신경통(발바닥신경통, 상완신경통) 근골격계 신체구조 변형 및 균형 상실로 인한 기능장애, 급성 및 만성 근육통, 어깨관절통, 근육 내부 혈종으로 인한 사망, 감각 상실, 피로감, 흉곽 및 명치 통증, 고문 특이 우울자세 보유, 근육 긴장으로 인한 추간판 이상 및 요통, 근육 부종, 편타성 증후군(경추 이상으로 인한 통증, 근육 강직, 전이성 사지 통증, 혼시, 현기증, 치통, 흉통, 안면근육 둔화, 소화기계 이상 증상) 피부 화상, 피부 특이반점, 피부 부식 흉터, 채찍 형태의 피부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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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tablebordercolor=#000,gray><tablebgcolor=#ffffff,#1c1d1f> 급성
심리적
후유증 || 인지반응 ||급성 뇌증후군(혼돈, 지남력, 집중력, 대응력, 의식 상실), 현실감 상실, 오보화 상태, 액조건화 상태 ||정서반응 공포, 불안, 우울, 의미 상실, 죄책감, 수치감, 굴욕감, 자아 존중감 상실, 인간 정체성 상실, 초현실세계 몰입, 신뢰감 상실, 예견력 상실, 해리 및 이인증 적응반응 비타협 전략, 재정립 전략, 내향화 전략, 협력 전략 만성
심리적
후유증성격장애 자아 정체성 상실, 자아 존중감 상실, 삶의 의미 및 목적 상실, 인간성 변질, 불신 고문사건과 관련된 특정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극심한 회피, 사건 반복 경험 및 환기 수면 장애 및 악몽, 가위눌림 정서장애 신경증, 불안증(사건 관련 불안으로 즉각적 공황 상태에 빠짐), 우울증(외부 상황에 무관심하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의지 보임) 사회적 위축 및 수동적 증후, 자해 인지장애 고문사건은 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나 그밖의 기억은 상실, 집중력 상실, 학습 불능, 독서 불능 말초신경장애 신체 활력 감소, 성기능 감소, 급작스런 땀 흘림 백일몽 장기적 불안상태에서 소망적 사고로 도피, 과장된 생각과 마술적 사고 발달, 종교적 몰입 전치 파괴적 충동을 고문 가해자가 아닌 가족 구성원에게 돌림 피해자 역할에
사로잡힘영원한 피해의식에 빠짐, 지속적 악몽과 괴로운 기억에 묶임 신체화 심리적 고통을 만성 두통, 소화불량, 근육 긴장, 심장 증상 등 신체 증상으로 느낌
- 피고문자 가족의 후유증과 사회경제적 문제 - 펼치기 · 접기
- ||<|2><tablebordercolor=#000,gray><tablebgcolor=#ffffff,#1c1d1f> 가족 문제 || 해체 문제 ||실직, 가난, 성격장애 문제 등으로 가족 해체 빈발, 신뢰감 상실로 부부 결혼생활 부적합 ||
자식 문제 두려움, 특정 사건이나 사물과 연관된 불안, 우울, 성격의 내향화, 수면 장애, 불면, 자폐, 공포, 소음 과민, 과도한 신체적 밀착, 학습부진, 부모 투옥에 대한 자책, 두통, 위통, 식욕 부진, 악몽, 야뇨증, 고문가해자의 직접적 폭력으로 인한 외상 사회경제적
문제실직 문제 신체적 불구, 뇌 외상, 기억력 및 집중력 결여로 직업훈련 불가 인간관계 문제 충동적, 신뢰감 상실로 인간관계 형성 장애 사회적 고립 군중 합류 불가, 독거, 과민한 공포 상황 회피 노력으로 사회적으로 무능력해짐 경제적 지출 문제 실직,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각종 신체 질병으로 표현하는 탓에 과도한 의료비 지출 고문을 가한 사람의 석방 및
면책이 주는 문제고문행위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관용이 사회적 정의에 대한 불신을 불러 절망감, 불안감, 두려움, 사회적 소외감, 낙오감, 분노, 절망감에 빠짐
8. 고문 방지를 위한 노력
8.1. 법제적 노력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2항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2항
| 형법 제125조(폭행, 가혹행위) 재판, 검찰, 경찰 그 밖에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형사피의자나 그 밖의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행위를 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
|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2(체포·감금 등의 가중처벌) ① 「형법」 제124조·제125조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傷害)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 「형법」 제124조·제125조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우선 이야기하지만, 고문이라는 죄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에서 고문을 금지하고, 특가법상이나 혹은 형법에서 독직폭행[97]으로 처벌하는 것이지 고문죄라는 죄목은 없다.
8.2. 국제적 노력
국제앰네스티가 가장 주력하는 활동 분야이며, 1984년 제2차 고문반대 캠페인을 전개하여 결국 UN에서 고문방지협약을 채택하는 성과를 거뒀다.국제형사재판소는 고문을 인도에 반한 죄로 규정한다.
9. 관용어로서의 고문
일반적인 '고문'과는 그 방향은 좀 다르지만, '심리적으로 좌절감, 압박을 받게 한다'는 뜻에서 보통 상대가 특정 행동을 못하게 제한이 걸린 상황에서 특정 행동을 유도함으로서 상대를 괴롭게 하는 행위도 관용적으로 '고문'으로 부른다. 예를 들면 어떤 남성이 성적인 자극을 받아서 발기가 되었는데 이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 없거나 숨겨야 할 경우, 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앉혀놓고 눈앞에서 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먹는다거나 할 때 흔히 '고문이 따로 없다'라고 한다.파생형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 헛된 희망에 매달리며 심한 심적 고통을 느끼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들어줄 것처럼 농락하는 행위를 두고, 고문처럼 심한 고통을 준다는 의미에서 희망고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본문에서의 용례와는 달리 사람이나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상품의 내구도와 신뢰성을 확보하는 절차일 뿐이다.
10. 대중매체에서
주로 악의 조직이나 악역의 사악함, 비정함이나 선역이 타락하는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문이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워크래프트 3에서 넬쥴이 킬제덴에 의해 육체가 전부 다 찢겨지는 매우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영혼만이 남은 넬쥴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울고불고 빌면서 킬제덴이 넬쥴을 용서해주고 노스렌드에 처박아버린 뒤 리치 왕으로 만들어버린다. 아서스 메네실 또한 자신에게 반항적인 영혼을 서리한에 가둬놓고 잔혹하게 고문해 타락시키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이외에도 고문을 통해 상대를 굴종시키는 것을 전문직으로 삼는 가학적인 적이 시도때도없이 튀어나온다. 불타는 군단, 느조스, 어둠땅에서는 고문기술에 능한 기술자가 보스로 튀어나온다.
데드 스페이스 애니메이션 데드 스페이스: 애프터매스에서는 신체에 외상을 입히지 않는 가상현실 고문을 시행한다. 피고문자의 트라우마를 가상현실로 재현(예를 들어 거미 공포증이 있는 피고문자의 온몸을 거미떼로 덮어버린다던지) 하는데 효과 하나는 죽여주는지 하나같이 술술 다 분다.
짱구는 못말려에서 은근히 자주 사용되는데 방법이 정말 다양하다. 간지럼 태우기, 화장실에 갈 수 없도록 막기, 동물 영상에 얼굴 합성하기, 몸 혹사시키기, 피망만 먹이기 등 별의 별 고문은 다 나오는데 저쪽 세계에선 의외로 효과가 있는 듯 하다. 물론 아동용이라서 고문이라고 해봐야 수위가 매우 귀여운 수준이다. 근데 전부 실제로 했던 고문 수법이다.
코믹 메이플스토리에서 49권에 핑크빈이 슈미를 미니빈을 통해 머리 꼬집기, 집게로 얼굴 꼬집기 등 고문을 한다.
Grand Theft Auto V에서는 트레버 필립스가 어느 선량한 시민에게 각종 고문을 가한다. 다만 이는 공무원인 스티브 헤인즈가 실적을 쌓기 위해서 본인이 주도한 것이었으며, 트레버가 오기 직전에 IAA와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자 스티브의 절친인 데빈 웨스턴이 이미 고문을 어느 정도 했다.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등 근현대 사극에서는 주로 일제치하당시의 일본 경찰이나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의 공권력이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는 묘사가 나온다. 그외에도 과거 시대를 다룬 사극에서도 고문이 자주 나온다.
소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가난한 웨이터가 퀴즈대회 우승자일리 없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끌려와 물고문, 전기고문, 항문에 칠리가루 묻힌 나무막대기 밀어넣기 등 각종 고문을 당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한국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에서는 진실의 방이라는 구타+심리적 고문 기법이 묘사되는데 영화의 특성상 관객들에게 오히려 범죄자를 응징한다는 쾌감을 주게 묘사되어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한다.[98]
범죄자들이 묵비권을 남용하면서 시간 끄는 경우에 대응하고자 공권력 기관의 요원이 법을 어기고 용의자를 고문하는 장면들도 클리셰처럼 나온다. 24의 잭 바우어, 토니 알메이다, 러네이 워커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바우어와 워커는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인해 테러 용의자를 구타하거나 협박하기도 한다.[99] 약물 고문 수준에서 끝나는 토니 알메이다나 빌 뷰캐넌 정도면 그나마 양반인 수준.
이러한 CTU (Counter-Terrorist Units)의 범법 행위로 인해 잭 바우어는 미국 법무부에 기소될 뻔하다가 사면받는다. 도를 넘는 심문 행위로 악명 높은 CTU가 시즌 7에서 해체되고 시즌 8에서 다시 부활하지만 불법 심문을 금지함에 따라서 테러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묘사된다. 시즌 9에서 등장하는 CIA 영국 지부에서도 과거 CTU 수준의 강도 높은 고문이 행해지지는 않았다.[100] 시즌 7에서 등장하는 FBI는 형사법에 묶여 있어서 잭의 과감한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테러범들을 추적하지 못했다.
10.1. 관련 창작물
- 간증
- 고문(유희왕)
- 고문게임
- 고문 아르바이트의 일상
- 고통의 바퀴
- 공주님 "고문"의 시간입니다
-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
나 홀로 집에[101]- 남영동1985
- 변호인
- 더 리포트
- 배트맨[102]
- 분근착골
- 박하사탕
- 아카네의 비극
- 외계인 고문
- 해리 포터 시리즈 - 크루시아투스 저주
- 여러분의 장난감입니다
- 언씽커블
- 범죄도시 시리즈 - 진실의 방
- 여명의 눈동자
- 토처드
- 취조
- 퍼니셔(THQ)[103]
- 휴먼버그대학교 - 이쥬인 시게오 등 고문 소믈리에 시리즈, 고몬 다코
- 24, 24: Live Another Day, 24: Legacy
- 밤이 되었습니다 - 꿈 속에서 마피아 게임이 무한히 반복되면서 등장인물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끊임없이 겪게 된다.
BLOODMONEY![104]
11. 여담
- 디시인사이드 창업주 김유식은 PC통신 논객 시절 하이텔에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한 음모론을 올렸다가 남산의 대공분실에 끌려갔지만 육체적인 고문은 받지 않았고 쉴 새 없이 자술서를 쓰는 정신적으로 피로하게 만드는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105] 실제로 이런 종류의 기관에서 자주 썼던(그리고 지금도 쓰는?) 방법이다. 강도 높게 '수사'를 해서 사람 혼을 빼놓아 고분고분하게 만들려는 의도다. 영화 남영동1985에도 고문경찰들이 구타를 동반한 고문 외에도 이런 식으로 밤샘 자술서 고문으로 주인공 김근태를 압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106]
- 독재 정권 때 민주화 운동가 중에서 고문을 안 당해 본 사람이 없고 대다수는 무지비한 고문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후유증을 안고 평생을 산 사람도 많다. 백기완같은 사람은 젊은 시절 몸무게 80kg이 넘는 거구였으나 고문으로 인해 몸이 반쪽이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은 파킨슨병 환자, 전직 국회의원 김근태도 고문 후유증으로 각종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중에 민주화 이후 갑자기 스탠스가 바뀌거나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과거의 열혈 투사를 알던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하는데(박홍 신부나 시인 김지하, 정치인 장기표같은 사람들)일종의 고문 후유증으로 PTSD가 와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하는 진지한 추론이 있다.[107]
- 암호학에서는 암호 해독 기법 중의 하나로 동원되기도 한다. 전문용어로는 고무호스 암호분석(Rubber-hose cryptanalysis)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암호를 아는 사람을 납치해 암호키를 얻을 때까지 온갖 협박과 고문을 동원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Advanced Persistent Threat이라는 용어가 나오기도 전부터 동원되어온 고전적인 사회공학 기법이다. 현대에 와서도 성공률이 높은 것도 특징.
-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여지기 가장 좋은 예시기도 하다.[108] 애초에 짐승은 고문을 안 할 뿐더러 설령 고문을 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그럴 의도인지는 미지수. 침팬지의 경우 타 무리의 개체를 납치 및 고문하는 행동을 벌이기도 하는데, 여기서의 고문은 취조보다는 유희에 가까운 것이므로 고문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 거짓말하는 아이에게 바른대로 말을 안 하냐면서 체벌을 가하는 행위는 표면상으로는 사실관계를 알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벌을 가하는 것이므로 사전적인 고문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를 크게는 교사 및 부모가 이미 사실관계와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상태에서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실시하는 훈육인 경우, 또는 교사나 부모가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폭력을 가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두 경우 다 고문에 부합하진 않으나, 후자는 통상적으로 이야기되는 고문 행위 중 일부와 그 결이 같은 점이 있다.[109] 한편 경우를 가리지 않고, 체벌에 있어 고문 수법으로 활용되는 가혹행위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상술된 고문 기법 중 학교에서도 쓰인다는 등의 서술이 붙은 기법이 특히 그러하다.
12. 관련 단체
- 세계고문방지기구 - 약칭 OMCT
- 국제앰네스티
- 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 - 약칭 IRCT
- 고문피해자재활센터 - 약칭 RCT
- 고문 생존자를 위한 벨뷰 - 고문 생존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 프로그램
- 고문 및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지지자 - 약칭 ASTT. 고문희생자 치유와 재활을 지원하는 단체
- 고문 피해자를 위한 센터 - 약칭 CVT
- 고문 피해자를 위한 캐나다 센터
- The Redress Trust(신뢰를 바로잡다) - 고문피해자에 대한 배상운동 단체
- 광주트라우마센터
13. 관련 사건·인물
13.1. 한국
- 일제강점기
- 고문조작 사건: 대부분 공안사건이다.
- 진보당 사건
- 인민혁명당 사건
- 민청학련 사건
-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 동백림 사건
- 윤필용 사건
- 오송회 사건
- 깃발사건
- 부림사건
- 아람회 사건
- 춘천 강간살인 조작 사건
- 학림사건
- 김근태
-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8차[110]
-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111]
-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112]
- 백선기 경사 피살 사건[113]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사상전향제도
-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 저놈 잡아라!
- 이석 고문치사 사건
-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
- 서울지검 고문치사 사건[114]
- 이근안
- 박처원
13.2. 해외
- 존 버지 - 1970~1980년대 미국 시카고 경찰국 재직 시절 비백인들을 주로 고문한 경찰관이다.
- 쿠레바야시 아사오
- 정치경찰 조직
- 게슈타포
- 내무인민위원부
- 보위부
- 이스라엘 형무청
- 신 베트
-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 - 당시 이 기관에 걸리면 혐의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고문부터 당하는 수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이 기관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원성이 얼마나 컸는지, 전후 GHQ 통치 시기에는 육군 헌병 출신들과 이 기관 출신들이 길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 일본 제국 육군/헌병
- 호르헤 비델라 당시 아르헨티나군 및 아르헨티나 경찰
- 판차실라 청년회
- 그리스 군사정권 당시 그리스군 군사경찰(ESA)
- 강제수용소
- 포로수용소
- 관타나모 수용소 - 2002년 개소한 미군의 포로 수용소로, 테러와의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물론 파키스탄, 예멘, 모리타니, 영국 등 수많은 국가들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테러범으로 몰아 수감하고 각종 고문 및 학대를 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나마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들어서며 테러와 관련없는 이들을 석방하고 이들의 법정 증언도 허용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폐쇄 없이 운영되고 있다.
-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사건 관련자[115][116]
- 이반 프레데릭 하사
- 찰스 그레이너 상병
- 자발 데이비스 상병
- 사브리나 하먼 상병
- 메건 앰불 상병
- 제레미 시미츠 상병
- 린디 잉글랜드 일병
- 정치범수용소
==# 언어별 명칭 #==
| 언어별 명칭 | |
| <colbgcolor=#f5f5f5,#191919> 한국어 | 고문(拷問) |
| 영어 프랑스어 | Torture[118] |
| 중국어 | [ruby(刑, ruby=ㄒㄧㄥˊ )][ruby(訊, ruby=ㄒㄩㄣˋ)](씽쑨, 형신) |
| 러시아어 | Пытка |
| 독일어 | Folter |
| 아랍어 | تعذيب |
| 일본어 | [ruby(拷, ruby=ごう)][ruby(問, ruby=もん)](고ー몬, 고문) |
| 조지아어 | წამება |
| 히브리어 | עינויים |
| 아일랜드어 | Céasadh |
| 에스토니아어 | Piinamine |
| 핀란드어 | Kidutus |
| 네덜란드어 아프리칸스어 | Marteling |
| 태국어 | การทรมาน |
| 인도네시아어 | Siksaan |
| 아이슬란드어 | Pyntingar |
| 리투아니아어 | Kankinimas |
| 베트남어 | Tra tấn |
| 튀르키예어 쿠르드어 | İşkence |
| 라트비아어 | Spīdzināšana |
| 타밀어 | சித்திரவதை |
14. 관련 문서
15. 관련 도구
16. 관련 문헌
-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 《전세계의 고문》 - 정재룡 저. 시사평론사. 1987.
- 《또 하나의 투쟁: 검거에서 석방까지, 투쟁의 원칙과 방도》 - 조한백 저. 백산서당. 1988.
- 《야만시대의 기록: 고문의 한국현대사》(전 3권) - 박원순 저. 역사비평사. 2006.
[1] 고문의 '문'자가 '물을 문'자 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2] 눈을 심하게 부시게 할 정도의 강렬한 빛을 내는 백열등 앞에서 강제로 그 강렬한 빛을 쳐다보게 하는 고문. 이는 야망의 전설 56화의 이정태(최수종 분)를 고문하는 장면 중에 잘 나와있다.[3] 당장 1970년대 및 1980년대 민주화 운동가 상당수가 보수정당, 민주당계, 진보정당으로 분화되기도 했지만.[4] 양병호 전 대법관이 서빙고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던 사례가 있다.[5] 10.2 항명 파동을 주도했던 김성곤, 김진만, 길재호, 강성원, 김창근, 김재순 등이 모진 고문을 당했다.[6] 1983년 당시에 한일합섬 김근조 이사가 고문을 당했다.[7] 윤필용 사건에 연루된 군 장성과 고급장교들이 고문을 많이 받았고 장태완, 정승화, 정병주, 강창성 등도 고문을 많이 당했다.[8] 최능진과 안병하가 고문을 당했다.[9] 검찰의 경우 2002년 서울지검에서 검사가 피의자에게 고문을 가해 사망하게 한 사건이 있었고, 같은 해 연예계 비리로 검찰수사를 받던 서세원의 매니저 역시 검사로부터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한 적이 있다. 경찰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백선기 경사 피살 사건 등에서 체포한 피의자에게 고문과 폭행을 가해 강압수사를 했고 이 중 약촌오거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최모군은 실제 형기를 확정받아 15년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기도 하였다. 물론 2016년 진범이 잡히면서 석방되었고, 현재는 재심을 통해 완전히 명예를 회복한 상태다.[10] <관타나모 다이어리>의 저자인 모하메드 올드 슬라히는 모리타니 출신으로,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몇 년간 재판도 받지 못한체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CIA 요원들로부터 각종 가혹행위와 고문을 당했다. 슬라히 외에도 77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테러 용의자, 알카에다라는 누명을 쓰고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각종 고문과 가혹행위, 비인도적인 처우를 당했다. 이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은 고작 8명에 불과하고, 3명은 항소심에서 뒤집어졌으며 나머지는 재판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모리타니안이라는 영화로 다루어졌다.[11] 대한민국의 최상위법인 대한민국 헌법에서조차 고문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12] 고문은 물론이고, 신체 부위 따위가 하나 둘씩 천천히 없어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애초에 인간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현대에 와서 였다. 그 전까지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노비 였으며, 소모품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거의 평생에 걸쳐 크게 다르지 않은 사실이다.[13] 사실 이런 형태의 고문은 형태와 방식만 조금 바뀌었을 뿐 일제강점기에도 계속 행해졌고 이승만 정부나 군사정권 내에서도 공공연하게 행해졌다.[14] 특히 좌익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15] 남영동 가야라트리호텔은 과거 대공분실 자리가 꽉 찼을 때 경찰 측에서 임의로 빌려 쓰기도 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당시 경찰은 피해자 최모 씨를 익산경찰서가 아닌 인근 모텔로 끌고 가서는 전화번호부를 던져 주며 이 중에 범인을 찾아내라 하고는 폭행을 가했다.[16]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역시 주변의 15층짜리 세종호텔과 아스토리아호텔을 주요 활동지로 썼으며 남산 자리가 꽉 찼을 때는 세종호텔이나 아스토리아호텔을 취조실로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17] 제1공화국이나 군사정권 당시에는 공안정국 유도 등을 위해 고문을 통해 증거를 조작하는 불량 검사들이 상당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서울지검 고문치사 사건 등의 사건이 터졌다.[18] 행형법을 어긴 수용자들에게 운동, 독서 등을 일체 금하고 독방에 수감하는 징벌.[19] 서빙고 대공분실은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보안사령관 시절 만든 곳이었다. 하지만 10.26 사건 이후 김재규 본인이 직접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 참고로 이곳에 끌려가는 것을 '빙고 호텔에 간다\'고 했다.[20] 고발장에는 '최고학부까지 다닌 한 처녀가 입에 담기조차 수치스러운 저 끔찍한 강제 추행을 당한 사실을 스스로 밝힌 이상 그 밖에 또 무슨 증거가 필요해서 수사를 못한다는 말인가?\'라는 문장이 있다. 고발장 링크 어찌되었건 성고문은 실제로 일어났었던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고 이는 6월 항쟁의 한 촉발제가 되었다.[21]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같은 예 뿐만 아니라 시위 때 본대에서 떨어져 나온 전·의경을 속박·폭행하는 경우도 흔했는데 이 역시 일종의 고문으로 볼 수 있다.[22] 현재 명칭인 국가정보원으로 바뀐게 1999년의 일이다.[23] 영화 변호인에도 고문 경찰 차동영이 피해자가 자해했다고 증언하는 장면이 나온다.[24] 그 외의 민주화 시대 이후의 고문 사례들은 박원순의 '고문의 한국현대사 야만시대의 기록' 3권에 나온다.[25] 희화화 된 내용이고, 고문받는 대상이 확실한 악역이기는 하지만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에 나오는 진실의 방이나 전 변호사, 드라마 야인시대의 내가 고자라니 이후 전향 강요 씬도 실상은 이와 별 차이는 없다.[26] 서울지검 고문치사 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내용 참조.[27] 가끔 이런 박물관들 중에는 일부러 구색 맞추려고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가짜 물품들을 가져다 놓은 경우도 많다. 그 시대에 존재했을 리 없는 단두대나 실제로는 근세의 중세풍 장식물에 가까웠던 아이언 메이든 등.[28] 제국주의 시대 말기에야 식민지를 뒤늦게나마 얻어낸 일본 제국, 벨기에, 이탈리아 왕국 같은 후발 주자들은 선발 국가들보다 식민지 경영 노하우가 뒤떨어져 유화책이나 민족분리 등의 수단보다는 잔혹한 무력을 통해 식민지를 굴복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무단통치이다.[29] 대표적 피해자로 천추스 기자가 있다.[30] 적도 기니, 짐바브웨, 차드, 에리트레아 등.[31] 초창기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도미니카 공화국, 소모사 시절 니카라과, 쿠바 제1공화국부터 후반기의 아르헨티나, 칠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파라과이, 우루과이, 브라질, 파나마, 볼리비아 등.[32] 베트남 공화국, 필리핀 제4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랑수아 뒤발리에 시절 아이티, 알베르토 후지모리 시절 페루, 로디지아, 리콴유 시기 싱가포르 등.[33] 예멘 왕국, 이란 제국 등.[34] 민주 캄푸치아, 북베트남,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소말리아 민주공화국,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등.[35] 바트주의 이라크,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의 적도 기니, 바트주의 시리아,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말리, 기니, 모로코 치하 서사하라, 데시 바우테르서의 수리남,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등.[36]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사람 잘 조지기로 유명하다.[37]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빈 살만이 실권을 잡으며 종교적인 면에서는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정적 및 시아파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시절에 마법으로 누명을 씌우던 것이 부정부패나 이란 간첩의 누명을 씌우는 것으로 바뀐 정도이다.[38]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더러운 전쟁 시절 자국의 '성공적 반공 모델' 수출을 위해 중남미 여러 곳에 센터를 두고 고문기술 등을 전파했다.[39] 냉전 시대에 한국 전쟁을 통해 소련에 끌려간 전쟁 포로들이 자발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 충격을 받은 정보부/학술기관의 장들이 '어떻게 하면 그들의 세뇌를 막을 것인가'라는 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 착수, CIA 주도로 대학교수 도널드 O. 헤브(Donald O. Hebb)와 도널드 유언 캐머런(Donald Ewen Cameron) 등을 지원해서 뽑아낸 결과물이 약물 투여, 전기 쇼크, 감금, 구타, 강간 등을 통한 고문 기법이었다... 세뇌 대처법 찾는 거 아니었나? 근데 햅 교수가 고문이 되기 직전에 그만둔 연구를 이어받은 카멜론 교수의 연구 목적이 인격의 백지화와 재구축이었다고 하니 뭐...책에 따르면 해당 연구의 피해자는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기억 중 일부도 삭제당해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고 거기에 공포를 느끼기까지 했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MK 울트라, 그 외의 자료들에서도 나온다.[40]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는 이라크 전쟁 이전에도 바트주의 이라크 정부에 의해 고문이 이루어지던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로 유명했다. 그러던 것이 미군에게 인수되어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전환 후에도 인권유린 사건이 또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41] 볼셰비키는 이들에게 시달린 과거를 잊지 않고 러시아 제국 경찰을 구시대의 악습으로 규정하여 '경찰(Полиция)'이라는 명칭 자체를 '노동자와 농민의 민병대(Милиция)'로 갈아치워 버렸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소련 밀리치야(소련 경찰)이다. 물론 밀리치야라고 고문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나마 그 악명 높은 NKVD 산하 조직으로 있었기 때문이다.[42] 2024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사건을 일으킨 호라산 이슬람 국가 테러리스트들은 FSB에 붙잡혀 야전전화기로 추정되는 군용장비에 전선이 연결되어 전기고문당하는 영상이 유포된 적이 있다. 훨씬 이전인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특수목적 이슬람연대(SPIR)를 이끌며 납치 및 암살을 하고 다니던 이치케리야 체첸 테러리스트 아르비 바라예프는 FSB와 러시아 연방군 정보총국에 쫓기다 붙잡혀 고문사했고, 체첸클리어를 일으킨 살라웃딘 테미르불라토프는 러시아 남부 교도소에 갇혀 있다 1년만에 흔적도 없이 증발했는데, 정황상 교도소에서 고문사한 것이 명백해 보인다.[43] 일례로 1996년 우크라이나의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아나톨리 오노프리옌코(Анатолій Онопрієнко) 수사 당시 초기에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26세의 리비우 시민 유리 모졸라(Юрія Іванна Мозола)가 누명을 쓴 채 SBU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끝에 나흘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있다.#[44] SBU 역시 이 시기에 친러 요원들이 러시아에 정보를 누출하고 시위 현장에 저격수를 배치하는 등 야누코비치 정권의 수족 역할을 했으며 일반 경찰인 우크라이나 밀리치야 역시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고문 사례를 지적받았다.[45] 기원전~후 초반에는 십자가형도 썼다.[46] 야망의 전설 56화에 나오는 이정태(최수종 분)가 당한 고문 중 하나다.[47] 강도가 세면 잠을 못 자고 트라우마가 생긴다.[48] 이것에는 비할 바 없지만 채찍과 당근은 학교 같은 곳에서도 잘 쓰인다.[49] 유형은 조금 다르지만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전격! 돼지발굽 대작전에서는 각종 동물의 CG에 피고문자의 얼굴을 디지털 합성하는 식으로 정신고문을 행한다.[50] 대표적인 예시가 쥐를 사용한 고문. 고문받을 사람을 평평한 곳에 꼼짝할 수 없게 묶어 둔 후에 쥐가 있는 상자를 배 위에 올려 두고는 천천히 가열했다. 탈출구를 찾던 쥐는 결국 고문받는 사람의 배를 발톱으로 파기 시작하고 몇 시간에 걸쳐서 희생자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다. 고문이 아니라 처형법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쥐가 공격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상자를 들어올려 고문을 멈추고 죄를 고발하게 했다고 한다.[51] 물론 태형 맞는 리코가 작전 중 실수로 부대원을 죽게 한 죄가 크지만 표면상 민주주의인 연방에서 태형을 집행한다는 것 자체가 전혀 안 맞는 전개다.[52] 정확히는 이것도 마약성 진통제인 세코날이긴 했다.[53] 작중 정황을 보면 교도소 측에서 애초에 발렌틴에게 이 수법을 쓸 의도로 음식에 약을 타 설사병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54] 여담으로 다른 실험자는 편한 소파에 앉히고 포박시키지 않은 채로 물방울을 떨어트렸는데, 그 실험자가 포기한 이유는 파리가 몸에 계속 붙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니 그냥 물방울을 떨어트리는 거 자체로는 고문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55] '독감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상자 대신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원통을 사용했다고 한다. 뮤지컬 요덕스토리에서 이 독감방이 재현되었다.[56] 참고로 조선시대가 배경인 사극에서 인두를 죄인의 몸 여기저기 대고 아무나 지지는 장면이 익숙하지만, 이렇게 마구잡이로 지지는 것은 극적 효과를 위한 연출이고 실제 조선시대에 시행한 낙형은 발바닥을 지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유배를 가던 중 고문 후유증로 사망한 선비인 박태보의 경우 발바닥뿐만 아니라 온몸을 지졌다는 기록이 실록에 있다. 물론, 신하들이 발바닥만 지져야 한다고 숙종에게 알려 중단하는 게 아닌 2차로 발바닥만 더 지졌다.[57] 다만 이 때에는 상처를 입지 않도록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녹도록 특수 제작된 양초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SM 플레이는 상호간의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행위인 만큼 실제 고문과는 같은 선에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이 적다.[58] 일본은 낙형의 폐지가 조선보다 늦었으며, 일본 제국 시기에도 말로만 고문을 폐지했을 뿐 조선인 일본인 모두 반대세력으로 몰리면 고문을 당했다.[59]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으로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남기니 이만한 것도 드물 듯.[60] 아주 가끔 병원에서 의식 확인을 위해서 쓰기도 한다. 물론 진짜로 푹 꽂지는 않고 살짝 찌르는 정도지만.[61] 정강의 변 이후 대규모 정란 시 기록에서 발견된다.[62] 균형 잡기의 달인[63] 못이 신체의 중요기관을 피하도록 설치한다 해도 당시의 의료수준을 생각하면 파상풍이나 상처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 확정이다.[64] FIMS라는 일종의 양방침술 치료가 있는데(양-한방 밥그릇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IMS 치료의 일종이다.) 척추관에 협착된 신경을 침으로 박리시키는 치료다. 엄연한 의학적 치료로서 행해져도 이렇게 아픈데 이게 고문으로 행해진다고 생각해보자.[65] 고문 사례는 아닌데 치과의사가 사랑니 발치 손님을 만났는데 요구사항이 자기 해병대 나왔으니 견딜 수 있다고 한 방에 4개 다 뽑아달라고 했는데 수술대 위에 눕고 기계 세팅 하고 마취하니까 겁먹어서 울며 갔다고. 마취해도 이 정도인데 무마취면...#[66] 소리는 공기의 진동에 의해 전달되기 때문에 공기가 극히 희박한 진공실 내에서는 소리가 나올 수 없다.[67] 심해잠수사들이 심해의 수압에 미리 적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그 장비이다.[68] 신을 모독하는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 사람은 입에, 남성 동성애자는 항문에, 여성 죄인은 질에 심지어 2개를 사용해 항문과 질에 모두 삽입했다고 한다.[69] 다리를 구부리고 손을 앞으로 뻗은 자세, 소위 말하는 투명의자 자세다.[70] 삭힌 홍어나 취두부, 수르스트뢰밍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71] 당시 16세도 안 된 한국으로 따지면 중학생 아이[72] 젊은 시절 이리저리 떠돌다 유명한 이단파의 밥술을 좀 얻어먹기도 했고, 탐욕이 많아 수도자가 지켜야 할 규칙을 깬 적도 있는 인물이라 선역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지하게 이단에 심취했다기보다는 먹고살려다 보니 이단에도 한 발 걸쳐보게 된 속물적 인간에 가깝고, 연쇄살인의 용의자라는 것은 더욱 억울한 누명이었다.[73] 신사적으로 변호인에게 고문 장소에서 나가라고 하면 차라리 다행이고, 대부분 변호인 역시 구타한 다음 강제로 내쫓는 경우가 많다.[74] 비슷한 이유로, 일부 학살 현장에서도 이런 짓을 한 사례가 있다.[75] 맨발로는 도망쳐도 길바닥을 잘 뛰어다니기가 어려운데, 길거리엔 돌조각이나 깨진 병 조각, 압정 등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군 장병들은 포로로 잡은 미군 장병들에게 전투화를 벗도록 명령하고 그 전투화조차 빼앗아가 도망조차 치지 못하게 했다. 베트남은 정글 지대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전투화가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76] 브래지어의 핀으로 자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77] 비슷한 이유로 대상자의 자살 시도 역시 직간접적으로 고문을 통하기도 하여 차단된다.[78] 최형우 내무부장관까지 월간 말 1994년 1월호에서 "사상 문제로 잡혀들어간 사람은 잠을 안 재워도 된다"라고 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79] 예시: 대법원 선고95도1964호.[80] 즉, 그 때 들은 자백이나 진술상의 모순 등은 법정에서 유죄의 근거로 쓸 수 없다.[81] 1999년 11월에 여야 의원 40여 명은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밤샘 조사 금지를 골자화한 '형사사건의 인권보호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입법화하지 못했다.[82] CIA에서는 관장이나 항문으로 강제급식을 시행하기도 했다고 한다.[83] 그렇게 끄집어낸 정보가 제대로 된 정보일 확률은 사실상 0이다. 물론 고문을 집행하는 자가 바보가 아닌이상 그걸 모를 리 없겠으나, 과거에는 그런 미흡한 정보라도 캐내기 위해 어거지로라도 수행했다.[84] CIA 찬양 영화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결국 고문으로는 정보를 얻어내지 못하고 이후 고도의 심리전이나, 속임수를 통한 유화책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묘사가 있다.[85] 2009년 미국 상원의 CIA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고문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나 수감자로부터 협력을 얻는 데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86]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비교적이지 실제 고문 피해자들의 수기를 보면 가해자에게 굴복하기까지 짧게는 10일, 길게는 30일까지 걸렸다.[87] 대표적인 경우 인종차별 문제까지 겹쳐 사법당국에 적대적인 미국 흑인 사회다. 이탈리아의 마피아도 이런 분위기에서 싹트며 오메르타 같은 정부불신 문화를 만들었다.[88] 같은 독재 정부라도 경우에 따라서 고문 스캔들이 터지면 큰 부담을 안게 된다. 바로 전두환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바로세운 6월 민주항쟁의 촉매제였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이전부터 국민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충만했고 정부의 갖가지 폭재에 불만이 쌓여 있던 참에 무고한 학생이 경찰에게 고문으로 살해당했다는 점 때문에 일제히 폭발하고 만 것이다. 아무리 독재를 일삼는 정부라도 고문 사건의 폭로는 정권 유지를 위태롭게도 만들 수 있음을 중국과 북한이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저 나라들은 정보 통제+정치 선전이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지기에 고문 사건을 숨기기도, 정치적인 이유로 덮어버리기 좋다.[89] 일제가 벌인 고문의 또다른 예시로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포로로 잡힌 P-51 조종사 마커스 맥딜다를 심문한 일이 있다. 마커스는 원폭은커녕 핵분열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고문을 받은 이후 미국에 100발 이상의 핵무기가 있고 다음 폭격 목표는 도쿄와 교토라고 자백(?)했다.[90] 현실에서는 고문따위를 해봐야 정확한 정보를 얻긴커녕 오히려 회유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역효과만 발생한다. 따라서 전제를 잔혹하게 고문하면 무조건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91] 위 예시는 하버드 법대의 더쇼위츠 교수가 제안한 상황이다.[92] 물론 전제처럼 고문하면 무조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만. 전제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 현실이라면 괜히 고문했다가 더 입을 싹닫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돈을 줘라 라는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93] 따라서 이런 가정도 배제하게하려면 전제에 지구가 아닌 인류가 사는 다른 별을 전제하는 게 나을 것이다. 지구 내에서 선진국이 고문을 자행하는 건 폭탄에 맞았을 때보다도 다른 지구인들에게 더 윤리적 문제를 간접적으로 일으키기 때문.[94] 고문을 하면 100%의 확률로 정확한 자백을 할 것이라는 전제. 이 전제 자체가 판타지기 때문에 논란은 생길 수 있는 것이다.[95] 피해자인 정원섭 씨는 "고문은 죽음보다 더 힘이 센 것이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죽어지지도 않는다."라는 말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인터뷰로 말했을 정도다.[96] 물론 이 죄목의 경우 기소율이 극히 낮기에 잘린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용의자나 피의자, 피고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인데, 이들에게 뭔 일이라도 생기거나 일부러 상해라도 입힌다면 그건 형사처벌은 안 되더라도 징계 사유이며, 중징계까지 나올 수도 있다. 특히 사람이 죽은 경우라면 형사소추가 안 되더라도 더 이상 공무원 생활하긴 어렵다고 봐야 하며, 당사자도 트라우마로 인해 공직에 머무르길 원치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래서 어렵다는 것이다.[97] 정확히 말하자면 특가법상이나 형법에서도 독직폭행이란 죄목은 없다, 단 실 죄명인 폭행·가혹행위죄가 이름이 너무 긴 데다가 이미 겹치는 죄목들이 있기에 독직폭행으로 부르는 것이다. 말 그대로 폭행으로써 직무를 모독했다는 뜻이다.[98] 물론 영화는 영화지만, 실제로 마석도 같은 형사가 나타났다간 독직폭행치상으로 더 이상 경찰생활 못 할 것이다.[99] 시즌 7에서 FBI 요원인 러네이 워커는 병원에 입원한 테러범인 앨런 테너를 고문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법무부의 내사 대상에 오른다. 이후에 잭 바우어의 작전에 따라서 백악관 비밀 경호국의 내부 첩자인 보슬러 요원의 아내를 협박한다. 최종화에서는 테러의 배후인 앨런 윌슨을 거의 죽을 정도로 고문하고 요원직을 내려놓는다. 시즌 8에서는 CTU 뉴욕 지부의 작전에 따라서 러시아 갱단에 잠입하지만 갱단의 일원인 블라디미르를 살해한다.[100] 끽해봐야 약물 고문 수준이다.[101] 영화를 보면 도둑들이 당하는게 거의 고문 수준이다... 자세한 건 나 홀로 집에/트랩 문서로.[102] 범죄자들을 상대로 자주 사용한다.[103] 플레이 중에 제압한 범죄자들을 고문할 수 있는데 고문을 하면 체력이 회복된다.[104] 등장하는 도구들을 보면 거의 고문 수준이다. 그나마 깃털 정도는 양반이지만 점점 갈 수록 위험한 도구들이 생긴다.[105] 강릉 무장공비 침투는 1996년 9월 18일 일어났으며, 마지막 간첩 두 명을 죽인 날이 1996년 11월 2일이다. 그러나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 1995년 박창희 교수 사건, 1996년 독일유학생 부부 간첩단 사건의 예에서 보듯 고문은 있었다.[106] 저렇게 정신을 쏙 빼놓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심리적으로 압박을 해서 거짓 진술을 차분히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게 만들어 거짓 진술의 허점이 포함될 확률을 높이는 것. 또한 저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게 바로 채찍과 당근 전략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이 수사기법을 새벽이나 심하면 밤샘조사를 통해 사실상 수면을 방해하는 고문으로 악용한다는게 문제다. 독재정권시절에는 여기에 구타가 덤으로 따라 왔다.[107] 일례로 김지하 시인같은 경우 젊은 시절부터 구타를 동반한 고문을 받다보니 4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요양 생활을 했고 얼굴 골격 자체가 달라졌다. 노년에 들어 치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막말에 준하는 발언을 내뱉어 빈축을 사기도 했고 기억력에 문제가 생겨 오락가락한 적도 있었다. 더 과거로 가면 일제침략기때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하던 박헌영은 아예 수감 중 정신병이 생겨 자해소동을 하고 똥을 발라먹거나 아내 주세죽, 친아버지에게도 쌍욕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박헌영이 병보석을 위해 꾀병을 부렸다는 악선전이 있지만 무자비한 고문과 동료의 죽음을 접한 충격 등으로 진짜 정신병을 앓았다는 증거가 더 많다.[108] 인간 비판 사상에서 전쟁, 학살, 환경파괴, 황금만능주의 등과 함께 자주 거론된다.[109] 이 경우와 유사한 ‘수사 과정에서 폭력을 자행해 용의자가 검사관이 원하는 대답 및 행동을 하도록 하는 행위’는 엄밀히는 고문이 아닌 가혹행위로 분류되나, 실생활에서는 고문으로 칭해지는 경우가 많다.[110] 경운기 수리공으로 일하던 22세 윤성여 씨가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고,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윤 씨에게 고문과 폭행을 가해 허위사실을 자백하게 만들었다. 윤 씨는 재판 과정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하며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훗날 20년형으로 감형되어 2009년 출소했다. 2019년 이춘재가 재수사 과정에서 8차 사건까지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하자 윤 씨는 재심을 청구하였고, 2021년 드디어 무죄를 선고받았다.[111] 경찰이 살인사건의 최초 목격자인 15세 소년 최모군을 범인으로 몰아 살인죄로 기소하였고, 10여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2016년 11월 진범이 밝혀지며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최모군을 폭행하는 등 고문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훗날 최군은 경찰들의 폭행과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허위사실을 자백했다고 밝혔다.[112] 2001년 12월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으로, 경찰이 이듬 해인 2002년 8월 용의자 3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으나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석방했다. 이 과정에서 세 사람은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을 가하여 어쩔 수 없이 허위자백을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건발생 22년 뒤인 2023년 진범이 붙잡혔다.[113] 2023년 현재까지 범인을 잡지 못한 미제사건으로, 2003년 1월 경찰이 용의자로 추정한 20대 청년 3명을 체포하여 이들의 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으나 알리바이가 맞지 않아 무혐의로 훈방조치되었다. 훗날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 3명은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을 가하여 어쩔 수 없이 허위자백을 했다고 폭로하였다.[114]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에 발생한 사건으로, 민주화가 된 지 15년이 넘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여전히 고문/폭행으로 수사하는 문화가 만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 되었다. 당시 홍 모 검사는 피의자에게 꺾기, 눈 찌르기, 물고문, 잠 안 재우기, 폭행, 머리를 땅에 박는 '원산폭격' 고문 등을 가해 피의자를 사망하게 만들었다.[115] 2004년 CBS <10 Minutes> 방송을 통해 미군 병사들의 이라크 폭로 학대/고문이 폭로되었다. 원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는 사담 후세인의 바트주의 이라크 시절 정치범수용소로 이용되던 곳이었으나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이 점령한 이후 포로 수용소로 사용하고 있었다.[116] 한국의 밴드인 N.EX.T. 5집의 수록곡 <Dear America>가 이 사건을 비판하는 노래이다. 싸이가 맡은 랩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해댄 씨발 양년놈들\'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바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을 말한다.[117] 위에 서술된 모든 사례들의 수위를 아득히 뛰어넘는, 전 세계 최악의 수용소이자 고문장소로 불리는 곳. 북한 사회에서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인민들은 ‘사람’ 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우는 기본이 폭행과 고문이 베이스로 되어있다.[118] 파생어들이 가장 많은데, Tortura(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 Tortur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Tortyr(스웨덴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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