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5 21:41:41

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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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
崔燕
파일:최연.jpg
본명 최령(崔鈴)
창씨명 타카야마 쿠타다(高山淸只)
출생 1897년 3월 6일
함경남도 함흥시 복부동
사망 1958년 11월 14일
주요
경력
함흥경찰서 순사
혜산진경찰서 고등계 형사
경시
황해도 보안과장
경기도 형사과장
경기도 경찰부 경무과장

1. 개요2. 일생
2.1. 친일 행적2.2. 해방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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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경찰. 노덕술, 최운하와 같이 독립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하여 악명을 떨쳤던 친일 경찰이다.

2. 일생

2.1. 친일 행적

경찰로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의 행적은 밝혀지지가 않았다. 1918년 함흥부의 함흥경찰서 순사를 시작으로 해서 1922년 경부보 시험에 합격한 뒤, 함경도 지방 곳곳을 돌면서 경력을 쌓았다. 1938년에는 혜산 경찰서에서 근무를 하였으며 1942년에 경찰 내에서 최고위직인 경시로 승진한다.[1] 이후 황해도 보안과장을 거쳐 경기도 형사과장을 광복 이전까지 지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고등계 형사로서 독립운동가들을 악랄하게 탄압하는 일을 담당하여 악명이 높았었는데, 특히 혜산 경찰서에서 근무할 당시 1938년 혜산 사건을 수사하며 조국광복회 소속 박달, 박금철을 비롯한 무려 3백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을 체포, 고문하였다. 최연은 이 사건에서 이러한 공을 세워 경찰 공로기장 훈장을 수여받았다.

2.2. 해방 이후

파일:최연2.jpg
광복 이후 친일 경찰들은 미군정의 전직 경찰 등용 방침으로 그대로 현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에 최연도 경기도 경찰부의 경무과장으로서 미군정 장교와 경찰청장 장택상을 보좌하며 인사에 개입하였다.[2]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공포된 이후 다수의 친일 경찰들이 체포될 때 최연 역시 반민특위에 체포당해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반민특위가 해체된 이후 공민권 10년 정지라는 가벼운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1958년 사망하였다고 알려진다.


[1] 경시에 올라있던 조선인 출신 경찰 8명(노덕술, 전봉덕, 최연, 최경진, 이익흥, 윤우경, 손석도, 노주봉) 중 한 명이 바로 최연이였다.[2] 함경도에서 오랜 기간을 근무해왔던 최연은, 이북에서 일어난 친일 색출작업을 피해 월남한 고등계 출신의 친일 경찰들을 대거 추천하여 이들을 남한의 경찰 내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