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유승운 劉承雲 | |
출생 | 1900년 10월 14일 |
평안남도 | |
사망 | 미상 |
비고 |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의 경찰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하판락, 노덕술, 김태석, 김덕기, 이성근만큼 악랄한 친일 경찰이었다.2. 생애
1900년 10월 14일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1921년 3월 21살이라는 나이에 경기도 순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5월부터는 종로경찰서에서 일하게 된다. 1922년 1월 사립 중동학교 학생 김태원이 체포 이후 심문받을 때 통역으로 참여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종로경찰서에는 독립운동가들을 다루는 별도의 부서가 없었지만 유승운의 요청으로 인해 부서가 생겨버리고 말았다.이로 인해 조선총독부는 형사 고등계를 창설하게 된다. 이후 1924년 6월 순사부장으로 승진한 유승운은 1930년 8월까지 형사 고등계 형사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1926년 7월 6.10 만세 운동을 전개한 제2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강달룡을 체포하여 고문했고, 1928년 7월 신민부가 군자금 모집을 위해 파견한 손봉현이 체포되자 그를 직접 고문했다. 독립운동 단체에 소속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유승운한테 폭력적인 방식으로 심문을 받다 사망한 독립운동가[1]도 있었다. 이런 행적들로 인해 일본으로부터 우수 형사로 지정되기도 했다. 유승운은 일본 경찰로 활동하던 중 폐결핵으로 은퇴했고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폐결핵으로 인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