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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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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에도 시대2.2. 일본제국 경찰2.3. 패전 이후
3. 조직
3.1. 경비경찰과 공안경찰
4. 계급5. 활동
5.1. 수사권5.2. 무장5.3. 제복5.4. 전화번호5.5. 황궁호위관5.6. 자위대와의 알력
6. 기타사항
6.1. 갤러리6.2. 야쿠자 대처
7. 문제점
7.1. 반말7.2. 외국인 차별7.3. 불심검문
8. 미디어에서
8.1. 엔자이8.2. 경찰이 나오는 작품8.3. 가상의 경찰

1. 개요

日本の警察

일본의 경찰은 일본 경찰법 2조 1항에 근거한다. 육상자위대의 전신이었던 경찰예비대는 법적 근거가 다르나 어느 정도 폭동진압경찰로서의 성격을 갖췄다. 기능에 따라 범죄 예방과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행정경찰, 이미 발생한 범죄 등을 수사하는 사법경찰로 구분한다. 그 외에도 보안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공안경찰과 특별사태에 대비하는 경비경찰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이들은 일반적인 경찰과는 좀 분리하여 본다.

2차세계대전 일본 제국 시절 당시 조선인중국인들을 비롯한 옛 식민지인들을 탄압하고 박해를 일삼았던 일명 왜경과는 사실상 다른 조직이라 봐도 된다. 계보로는 계속 이어 오지만 패전 후 미군정에 의해 대대적 물갈이가 실시되어 내무성을 폐지하고 도도부현 경찰로 제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일본 소방청이 경찰 소방대에서 독립했고 소방청에 구급 업무도 맡긴다. 특별고등경찰 및 각 경찰서의 고등계도 없어지고 고등계를 대신해 야쿠자나 우익단체, 적군파 같은 공산주의 무장단체를 마크하는 공안경찰을 둔다. 즉 사실 상 다른 조직으로 봐도 무방하다. 장비도 바뀌었다.

특별사법경찰이 일본에도 존재한다. 일본 내에서 특사경으로 분류되는 기관들에 대해서는 특별사법경찰관리 문서 참고.

2. 역사

2.1. 에도 시대

한국의 경찰이 포졸 등이 활동했던 포도청에 근거한 것처럼 일본도 에도 시대의 봉행소(奉行所) 같은 기관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고 에도막부를 열자 전쟁이 없어졌다. 따라서 하급 사무라이들은 실직자 신세를 면하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실직대책을 겸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1]
직책 에도 전체 인원 역할 신분
요리키 50 검찰 겸 판사 중급 무사
도신 200 경찰 간부 하급 무사
고요키키 3,000 탐정, 경찰보조원 평민

요리키(与力)라 불리는 말을 타는 것이 허용된 중급 무사가 에도 전체에 약 50여명 있었다. 이들은 경찰 실무자가 아니라 검찰 및 판사 역할을 하는 관료였다. 요리키의 앞에 끌려나온 시점에서 죄인은 유죄가 확정된 셈이었고 거기에 필요한 조사는 모두 도신이 행했다.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은 도신(同心)이라고 불리는 하급무사 계급이 있었다. 에도의 도신들은 원래는 도쿠가와 집안을 섬기는 직참(직속 신하)의 하급무사 아시가루 계급 출신이었다. 이후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설립될 때, 도쿠가와 집안의 아시가루 계급을 모두 도신으로 통칭했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결같은 마음(同心)'으로 도쿠가와 집안을 섬긴다는 뜻이다. 같은 도쿠가와 막부의 직참이었지만, 하타모토가 아닌 그 아래 계급인 고케닌(御家人)이라는 세습제 신분이었다. 이들 중에 에도의 치안을 담당하던 도신을 '마와리가타 도신(廻り方同心)'이라 불렀다.
도신은 실제로 서민과 부대끼며 활동한다는 점이나 경찰업무를 담당한다는 점때문에 평민들에게는 꽤 인기있었고 그런 강력한 권한이 더불어져서 부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신은 원래 유래가 유래인 만큼 세습제였으나 표면적으로는 신규채용의 형태를 취했다.
도신은 소수의 인원으로 에도의 치안을 지켜야했기 때문에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져서 조사부터 체포까지 단독으로 정할 수 있었다. 용의자를 무죄로 풀어주는 것도 유죄로 만드는 것도 도신에게 달려있었다.

에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 요리키는 각 25명, 도신은 각 100명, 총 200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경찰업무 담당자인 마와리가타 도신은 다 합쳐도 고작 30명도 안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사적으로 고요키키(御用聞き)라는 평민 신분의 수하를 고용해서 부렸다. 이들은 사설 탐정이자 정보원 역할을 했다. 고요키키도 1~2명의 개인 수하를 고용했다.

고요키키는 범죄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담당하다 보니 원래 범죄자 출신으로 이제는 손을 씻고 개심한 사람이 많았다. 요즘도 경찰이 범죄자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신분상 평민이라 사무라이처럼 카타나를 차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서 짓테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일본 시대극 드라마와 영화에서 짓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고요키키라고 보면 된다.

고요키키는 사실상 에도의 치안유지를 담당한 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정식으로 막부를 섬기는 막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녹을 먹지는 못했고 따라서 도신이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식사와 잘 곳을 제공하는 등 뒤를 돌봐주었다. 다만 도신은 엄연한 사무라이지만 계급은 낮았기 때문에 사실 막부에서 나오는 급료는 적었으나 다이묘나 상인계급이 좀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주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고요키키를 고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래봐야 한계는 있었기 때문에 고요키키는 그것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부인이 미용실, 식당을 하든가 하는 다른 부업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고요키키는 에도에서는 자기가 모시는 도신을 위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체포에도 동행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정식으로 고요키키를 고용해서 운용했으나 한 편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정보제공역으로 그치기만 했다.

에도시대 내내 막부의 관리들은 에도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 50명의 요리키, 200명의 도신, 3000명의 고요키키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하급이라고는해도 사무라이인데다가 세습이니 함부로 늘릴 수도 없었고 에도 막부의 재정은 대를 거듭할 수록 악화되어 증원이 불가능했던 한편 에도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막부에서도 자위를 위해 민간이 와키자시 정도로 무장하는 것은 허용했다.[2] 다만 역시 재정적인 문제로 경찰인력을 늘린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취하지는 못한 탓에 에도의 치안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고요키키는 에도에서는 비속어로 오캇비키(岡っ引)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는 경찰을 짭새라고 부르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러나 사극에서 고증을 따진답시고 남발과 오용을 거듭하다가 정식호칭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에도에서는 오캇비키라고 불렸지만 지방에서는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에도 막부 말기(막말)에는 혼란한 사회 상황에서, 존황양이파에 의한 테러가 발발하자, 쇼군 경호를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뽑은 로우시쿠미(신센구미)나, 수도였던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는 견회조처럼 강력한 권한과 대테러 수행능력을 지닌 특수한 형태의 치안 담당 조직이 생겨나기도 했다.

2.2. 일본제국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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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의 경찰관. 세이난 전쟁에 참전한 경찰관들. 그 당시 경찰은 일본군(신식 군대)의 별동대로 간주되어 같이 참전한 적도 있다.

메이지 유신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면서 만들어진 경찰. 일본제국 경찰,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 문서 참조바람.

2.3. 패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GHQ는 중앙집권적인 경찰 제도를 개혁했다. 미국처럼 지방마다 경찰청을 둔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다. 다만 미국처럼 순경부터 시작하여 올라가는 시스템을 확립하진 못 하고 캐리어조라 불리는 고시 합격자 간부 출신들이 일본 경찰을 끌고 나가게 된다.

3.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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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건물은 도쿄도의 경찰인 경시청 본부이다. 사진 왼쪽 건물이 국가공안위원회와 일본 경찰청이 입주한 정부합동청사 건물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치경찰제로 이뤄지고 있지만, 국가경찰 조직으로 내각부의 외국(外局)으로 일본 경찰청이 설치되어 있다. 정확히는 내각이 직접 관할하는게 아닌 국가공안위원회라는 조직이 중간에 설치되어 있고 그 하부 기관으로 경찰청이 놓인다. 경찰청과 별도로 지방자치경찰로 도도부현에 경찰본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단, 수도인 도쿄의 경찰은 도쿄 도 경찰본부가 아닌 경시청으로 일컫어 진다. 수도경찰을 특별 분류한 유래는 일본이 메이지유신 후 유럽의 제도 및 문화를 흉내낼때 경찰제도를 본딴 영국의 런던광역경찰청(스코틀랜드 야드)에서 따온거..

일본의 경찰제도는 국가경찰로 국가공안위원회 - 경찰청 - 관구경찰국으로 이어지며, 관구경찰국은 토호쿠(東北), 칸토(関東), 츄부(中部), 킨키(近機), 츄고쿠(中国), 시코쿠(四国), 큐슈(九州)가 7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해당 지역의 자치경찰을 감찰하며 광역사건의 조정 및 연락을 맡는다. 단지, 도쿄도와 훗카이도는 경찰청이 직접 관구경찰국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방자치경찰은 지방공안위원회 - 도도부현경찰본부로 이어지며 지방공안위원회는 도도부현경찰본부장을 관할하여 가장 큰 권한은 각 경찰본부장을 임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단, 수도인 도쿄는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경시청의 수장인 경시총감은 국가공안위원회의 승인도 거치도록 되어 있다. 경시총감을 임명할려면 국가공안위원회 - 도쿄도공안위원회 2곳의 승인 및 추인이 있어야 한다. 사실 경시총감의 지위는 일본에서는 경찰청장관과 맘먹는걸로 볼 정도로 중요 포스트이기도 하다.

경시청은 경찰청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지 않는다. 단지, 경시청은 어느정도 국가경찰의 모습을 띄는 것뿐이다.

3.1. 경비경찰과 공안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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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備警察, 말그대로 경비경찰은 공공의 안녕과 시위 및 폭동진압을 위해 존재한다 생각하지만 실제 경찰에서는 그 범위가 넓다. 경비경찰안에는 공안경찰도 포함되고 경찰청 본청도 경비국안에 경비경찰과 공안경찰이 조직내에 합쳐져 있지만 사실 임무가 좀 특화돼서 따로 볼 때가 많다. 사실 공안경찰의 역할은 경시청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방경찰도 경비부안에 포함되어 있다.

경비경찰의 기동부대라고 할수 있는 경비대는 지방경찰의 경비부내에 편제되어 있다. 대한민국 경찰특공대가 상설중대와 별개로 취급되는 것과 달리 일본 경찰의 특수급습부대는 총 8개 지역에 배치된 기동대 산하의 대테러부대로 취급되고 있으며 이들은 일본 전역에서 발생하는 테러 대응 업무를 모두 담당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8개 부대만으로는 이들이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기에 초등조치를 담당할 목적으로 각 지역 기동대 산하에는 총기대책부대라는 부대가 별도로 조직되어 운영 중이다.

이들의 집회시위 관련 전술경험은 대한민국 경찰청 기동부대들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60년대 일본에서 있었던 전공투가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이 동원되는 등 과거 대한민국의 폭력시위와 상당히 유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들 기동대원들도 기본적으로 화염병과 투석에 대한 대응 노하우가 어느정도 잡혀있기 때문이다.

公安警察. 공안(public safety)을 담당하는 곳으로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경비경찰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경시청에선 별도로 공안부가 분리되어 있으며 나머지 도부현 경찰본부에선 경비부 공안과에 배속된다.

패전 후 GHQ가 일본의 고등경찰제도를 폐지하면서 그 인적자원과 운용 노하우를 공안에 그대로 배속했다. 주요 표적은 극좌단체, 조총련, 시민활동가, 우익단체, 야쿠자 등이다.

치요다(チヨダ)라는 일본 경찰청 경비국 경비기획과 소속 특수반이 있다. 정식명칭도 불명으로 단지 일본의 매스미디어에서나 묘사되지만 조직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곳의 지휘관은 '숨은 이사관(ウラ理事官)'이라고 하는데 조직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캐리어 관료가 갑자기 불명이 되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알음알이로 다 알게 된다고 한다.

대테러 활동 등은 외사과(外事課)에서 담당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공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근데 한자는 같다

4. 계급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본 경찰/계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활동

5.1. 수사권

검찰에 수사권이 종속된 한국 경찰과는 달리, 일본 경찰은 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을 지배하게 된 미군정의 목표는 중앙으로 집중된 일본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자치경찰제를 도입했다. 동시에 미군정은 중앙행정기관인 검찰이 자치 경찰의 수사를 계속 지휘하게 내버려두면 일본의 민주화 달성은 요원하다고 보고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경찰을 1차적 수사기관으로, 검찰을 2차적, 보충적 수사기관으로 규정했다.기사자료[4]

법률적으로 경찰과 검찰은 대등한 협력관계임이 명시되어 있으며,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기 전에는 검찰이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수많은 사건에 대해 1차적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형사 사건의 대부분을 수사해 검찰에 넘기고 검찰은 송치 사건에 대한 2차적, 보충적 수사와 기소 및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
다만, 도쿄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를 위시한 일부 지검의 특수부, 특별형사부에서 부패 범죄와 대형 경제 사건 등을 직접 수사하므로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경찰은 기본적으로 자치경찰제라 관할 도도부현 이외의 지역에서는 수사를 할 수 없다. 단, 사이버범죄의 경우에는 이런 제한이 없다.

5.2. 무장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진 군도단검을 소지했으나 현재는 곤봉권총을 휴대한다.[5]

군도는 민주 경찰 시대에 목제 곤봉으로 교체되었으며, 1994년까지 동일 모델을 사용하였다.[6]
손잡이 부분을 나타내주는 부분에는 끈이 달려있으며, 이는 벨트에 껴서 고정시키거나, 손에 묶어 사용중에 떨어뜨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당시 미국 경찰의 T형 곤봉과 한국 경찰의 곤봉등에 비교했을때 효율성이 떨어졌다.
결국 1994년에 경찰제복 및 장비 변화로 사라졌다.

민주 경찰은 미군일본군을 해체시키면서 일본 육군에서 압류한 남부 권총을 지급받아 사용하기도 했지만 바로 몇년 후에 미국에서 사용하던 콜트 리볼버를 지급받았다. 1960년엔 미네베아 뉴 남부 M60의 초기형 몇년뒤에는 그의 후기형 모델을 지급받아 사용했다. 현재는 M60J 사쿠라 모델로 대체대는 추세인듯 하다. 황궁호위관들의 경우 32구경 발터 PPK를 휴대하며 시큐리티 폴리스는 USP와 글락 17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국시절때 부터 1994년까지의 일본 경찰 특징 중 하나는 견장술이 권총 피탈방지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왼쪽 어깨에 착용하는데, 이 견장술의 유무로 경찰의 권총 무장 확인이 한 눈에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고 불편하까지하여 결국 1994년에 폐지된다

5.3. 제복

모든사진들은 왼쪽부터 1960~1970년대, 1970~1990년대, 1990년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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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복 계열
1994년까진 정복이자 기동복으로 사용했다. 신형 제복의 등장당시 있었던 갈등은 정복은 멋있지만 불편했고, 활동복은 편하지만 못생기기 짝이 없었다.[7] 결국 실용성등을 따져서 2000년대부턴 정복은 행사때나, 경찰 본부 간부들만 사용하며, 그외에는 활동복을 사용한다. 1994년까진 샘 브라운 벨트를 사용하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1994년 신 경찰제복엔 벨트 자체를 폐지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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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복 계열
1994년까진 연회색과 청회색 계열의 제복이었다. 딱딱하고 친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밝은 남색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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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복이다. 1994년까진 회색계열의 제복이였으며, 1960년대 제복은 연한 회색이다.[9] 마찬가지로 친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밝은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5.4. 전화번호

긴급 신고 전화번호는 110이다.[10] 긴급하지 않은 단순민원은 #9110번. 참고로 한국 경찰의 긴급 신고 전화번호는 112이고 단순민원은 182이다.

일본의 지역 경찰서마다 번호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110을 누르면 자신이 살고있는 현경 본부에 전화가 간다. 정말 급한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이 살고있는 시경의 전화를 외워두는것도 좋다. 대부분 (지역번호) -0110이다.

5.5. 황궁호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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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宮護衛官. 경찰청 소속의 별도 경찰로 고쿄황족을 호위하는 경찰을 말한다. 이들은 특별사법경찰로 경찰관은 아니다. 정원은 920명 수준인데 이는 법률에 명시된 최대 인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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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사연이 있는데 일본군제2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항복할 무렵에 근위기병대 등의 일부 군사조직를 황실 경비 등을 이유로 남겨두어 일본군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차후를 도모하려고 수작을 부리려고 하였으나 당시 GHQ 책임자인 더글러스 맥아더가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일본 경찰에게 황실 호위를 맡겼다. 그 때문에 군대가 근위대를 맡는 다른 입헌군주국과 달리 일본은 경찰이 호위를 맡는다.

이들의 소속은 일본 경찰청 소속 황궁 경찰 본부[11]로 되어 있으나 경찰 수첩에는 소속부서를 왕궁 경찰 본부로 표기되는 게 아니라 일본 경찰청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들 호위관의 계급은 일본 경찰 계급에 황궁자를 붙이는 것 정도이며 이들의 평시 장비 수준은 일본 경찰에 준하도록 되어 있어서[12] 이들 소속으로 경찰차,오토바이 등이 배속되어 있다. 이들은 법률적으로 고쿄와 다른 중요 황족 거주지 등에서의 화재 진압 임무도 부여되어서 각 호위서 마다에는 소방차가 있고 매년 이러한 소방차를 이용한 화재 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들 대원들은 어디까지나 황궁을 경비하고 덴노황족의 외곽 호위를 담당하는 임무를 하는 인원일 뿐 근접 경호[13]를 담당하는 건 시위관이라고 해서 황궁 호위관들 중에서 선발한 다음 차도나 궁실 예절, 승마술, 스키[14] 등을 철저하게 익히게 한, 그야말로 정예 중에 정예인 사람들을 뽑은 근접 경호 요원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

참고로 덴노의 생일이나 새해 그리고 신덴노 등극시 일반 국민들 앞에 왕족들이 나와서 인사하는 일반 참하 때 참하가 이루어지는 고쿄 조화전 발코니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은 황궁 경찰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대원들을 뽑아서 세운다. 황궁 경찰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근무를 서는 걸 근접 경호요원들 다음으로 상당한 영광으로 여긴다고 한다.

물론 이들 인원들만으로는 황족 경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 경시청 경비부 산하에 경위과를 세워서 부족한 황족의 경비 임무를 부담시키고 있다. 참고로 황족의 약혼자나 결혼으로 강하[15]공주[16]에 대한 경호 임무도 경위과 3계 담당.[17]

5.6. 자위대와의 알력

자위대는 경찰의 급료체계를 따른다. 준장이나 대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경시감과 경시총감이라는 경찰 계급을 장성급 계급으로 바꾸며 장보(將補)와 장(將)으로 바꾼 탓이었다.[18] 그나마 막료장 때문에 4성 장군은 존재하지만 1성 장군인 준장은 아직도 없다. 여단장에 소장인 장보가 보임되고 사단장에 중장인 장이 보임되는 상황. 자위대 특히 육상자위대의 형성과정에서 경찰예비대엔 내무성 출신의 관료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내무 군벌이라 불렸고 일본군에서 흡수된 간부 자원들과 알력을 빚었다. 특히 합동막료회의의장을 10년이나 지낸 하야시 게이조(林敬三)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에 소련미그기가 귀순할 땐 경찰이 자위대가 진입 못 하게 막는 바람에 자위대는 밖에서 구경만 하기도 했다.

6. 기타사항

6.1.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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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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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의 교통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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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白バイ)를 탄 경찰관.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한국은 중앙 입찰제로 구입한다.)경찰차량을 지역 경찰별로 구입을 하는데, 이때문에 지역마다 경찰차량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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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차 중 하나

모두 토요타 크라운이다. 맨 마지막 차량(크라운 컴포트)는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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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차시에 경광등이 올라가 뒤에 오는 차량에게 경고할 수 있다. 이는 일부 한국 경찰의 LF 쏘나타 경찰차도 마찬가지.




가장 최근에 나온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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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크라운




내부는 이렇다. 이 차도 역시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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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알리온복면 패트카(覆面パトカー). 형사차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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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찰청은 RX-8도 쓴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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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웨건 R 미니순찰차(ミニパ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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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 레거시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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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 레거시



프리우스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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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다 C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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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스카이라인 어? 그런데 뒤에 삼성 SM5 보인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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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 위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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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VFR1000 시로바이(白バイ). 주로 교통 단속 업무에 활용하는 오토바이의 명칭[21]. 정식명칭은 아니며 하얀색으로 도색된 데에서 유래된 별칭이다.
정식명칭은 "교통단속용 자동이륜차(交通取締用自動二輪車)" 또는 "교통지도단속용 자동이륜차(交通指導取締用自動二輪車)"라고 한다.
일본 경찰의 공문서에서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특이할 사항으로는 회전식 경광등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 LED가 보편화 된 이후 지속적으로 회전식 경광등을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6.2. 야쿠자 대처

일본의 90년대까지 야쿠자는 일반인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폭력단대처법이 등장한 이후, 대표적으로 야마구치구미 같은 경시청에서 등록한 지정폭력단의 관리를 시작으로 현재에 와서는 일반인들에겐 그냥 양아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야쿠자 문서에도 쓰여 있으나 야쿠자 조직원이 자신이 야쿠자임을 밝히는 것만으로 폭대법 처벌대상에 들어간다. 야쿠자들이 양지에서 날뛰지 못하게 억누르고 제압하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기에 정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야쿠자간의 항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경찰은 치안관리를 위해 인원증강과 순찰강화를 실시한다. 그리고 평시에도 야쿠자 관련 사건이 접수되면 1차적으로 지역시경이 출동하여 제압하고, 이것으로도 해결이 안돼면 현경단위로 출동해 제압하는데, 전경처럼 진압방패와 곤봉을 든 기동경찰들이 몰려와 제압한다. 대부분의 야쿠자들은 이 정도 선에서 해결된다.

그리고 폭대법의 일환으로 신고자에 대한 보복을 막기 위해 신고자의 신변 보호를 철저하게 해준다. 제아무리 야쿠자라고 해도 일반인을 건드리면 조직 내에서도 문제가 생길 뿐더러 사회적 다시 도마 위에 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진짜 야쿠자들은 일반인들에게 시비 걸려도 무시하고 지나간다. 만약 먼저 자신이 야쿠자임을 밝힌다? 휴대폰 꺼내서 신고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이렌 켜고 흰&검 조합의 도요타 크라운이 매섭게 달려올 것이다.

7. 문제점

7.1. 반말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일본 경찰은 일본 자국민에게조차 반말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에서도 이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은 편.

하물며 외국인에게는 더 차별을 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당하면 기가 찰 노릇인데, 처음에는 존댓말을 하면서 친절하게 굴다가 외국인신분증, 여권 등으로 외국인이 확인된 경우 갑자기 반말을 하면서 범죄자 취급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일본인과 시비가 붙었을 때 경찰이 잘잘못 안 가리고 일본인 편을 들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이 많이 생긴다.

이럴 경우 "왜 반말을 하느냐? 일본 경찰은 외국인한테 반말을 하는 게 기본 메뉴얼이냐?"라고 말하면 오히려 어버버 거리면서 당황한다. 이래도 대화에 큰 변화가 없다면 "대사관, 영사관에 연락하겠다. 당신 소속과 계급 성명, 그리고 상관이 누군지 말하라!"라고 강하게 나가는 방법이 있다. 보통 일본 경찰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어가 안 되니 공권력으로 밀어 붙일려고 하는 것이니 일본어를 안다면 이렇게 대응을 하면 되고 일본어를 잘 못한다면 왜 나한테 반말을 하는지를 최대한 어필하고 대사관, 영사관에 연락하겠다고만 말해주면 최소한의 대처는 가능해진다.

하지만 말싸움을 벌이기 전에 과연 외국에서 경찰과 말싸움을 벌이는 일이 자신에게 유리한 일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본 사회 자체가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 편이고, 미국 다음으로[22] 입국 심사에 대해 까다로운 나라라 외국인 신분으로 경찰서를 가면 좋을 게 단 한 가지도 없다. 아무리 일본어가 능숙하다고 해도 외국인이라는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매우매우 높다. 게다가 유학,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의 경우 잘못하다가는 비자가 취소당할 수도 있다. 유학생과 워홀러들 사이에서 일본인과 싸우는 것은 무조건 피하라는 말이 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일 좋은 것은 경찰과 싸울 만할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의를 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찰과의 말싸움에서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는 이상 그냥 현장선에서 끝난다. 이런 사소한 일에 대한 항의 가지고 입국 심사에서 결격 사유로 체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일본어가 익숙한 사람들은 오히려 경찰이 이렇게 반말을 찍찍 갈겨도 되는 것이냐? 외국인이라서 지금 그런 것이냐 라고 맞받아 처버린다.

예외로 후쿠오카 시 경찰들은 한국인들에게도 대우가 좋은데, 이는 후쿠오카쪽이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과의 교류가 있어서 한국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7.2. 외국인 차별

자국인에게도 반말 논란이 있는 판국에 외국인에 대해서 일본 경찰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자세한 말은 생략한다. 특히 일본어가 아직 서툰 외국인에 대해선 더 고압적으로 나온다. 반면 외국인이 일본어에 아주 숙달되서 경찰에게 항의하면 당황하는 경우도 흔하다.

7.3. 불심검문

일본에 가면 상당히 빈번한 불심검문에 놀라게 되는데 한국 경찰들이 불심검문에서는 상당히 친절한 편이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게 된다.

자전거 등록 확인이 상당히 빈번한데 인상이 단정하지 못하고 튀는 스타일이면 자주 해대는데 심할 경우엔 하루에 몇번씩 당한다.

신분증을 안가지고 다니다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산책 나왔다가 이거 가지고 실랑이를 당하게 되면 상당히 짜증난다.[23]

8. 미디어에서

일본에서 탐정물이 워낙에 인기가 있기 때문에 그와 관계되기 쉬운 경찰도 뻔질나게 등장한다. 다만 한국 영화처럼 주인공 보정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 경찰들은 항상 상황 끝나면 달려와서 뒷정리만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매체도 있지만.

실제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따와서 그런지 대체로 경찰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 거기다 윗 문단에서도 서술했지만 일본 경찰은 시민들에게 반말 쓰는 습관이 남아있어서[24] 이미지가 나쁜 편인데 미디어에서도 이런 점이 종종 반영된다. 자국 경찰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미국 드라마와는 대조적인 특징.

8.1. 엔자이

일본 사법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엔자이는 사실 일본 경찰에도 책임이 있다.

성추행 사건에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인데 일본 경찰에서도 성추행에 대해선 피해자의 증언에 우위를 두고 피의자가 성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것에 크게 비중을 두고 수사한다. 문제는 이를 반박하는 증거들이 나옴에도 그렇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타카 버스 사건이 있다.

8.2. 경찰이 나오는 작품

8.3. 가상의 경찰



[1] 이 때 전업에 실패한 많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은거하거나 사관을 꿈꾸며 각지를 방랑하는 로닌이 되었다. 고장의 지식인으로서 서당 또는 의료원을 운영하거나 무술을 갈고 닦아 무도가로 이름을 남긴 긍정적인 사례도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은 도적이나 꼴에 사무라이 랍시고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폭력배가 되었고, 또는 갑작스러운 실직에 절망에 빠져 정줄 놓고 마을의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2] 칼이 비싸고 거추장스럽기도하니 보통사람들까지 차고 다녔던 것은 아닌듯 하지만 도박꾼이나 양아치들은 위협을 받는 일이 많고 치안이 악화되는 밤길을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많이 차고 다녔는데 자기들의 뿌리가 에도시대의 도박꾼등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야쿠자들이 칼을 들고 다니는 것도 다 거기서 유래된 것이다. 다만 예전부터 폭력단은 있었지만 현재의 야쿠자라고 할 만한 조직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에야 생겨났으니 완전히 헛소리고 단순히 싸움을 할 때 날붙이로 사람을 잡기 위하여 들고 다니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러시아나 북한, 중국등에서 권총을 밀수입하고 일본이 법률을 정비하여 폭력단에 가중처벌을 하도록하자 실제로 들고 다니거나 사용하는 예는 매우 감소했다.[3] 이는 한국의 정치적 특수성과 역사에서 기인하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소수의 검사로 대규모의 경찰을 통제하기 위해 일제는 검찰에게 수사지휘권을 부여했다. 광복 후 경찰을 이용한 이승만 정권 때는 경찰이 지금의 검찰과 비슷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4.19혁명을 초래한 원인중 하나가 곽영주같은 부패경찰의 비리때문이라, 박정희 정권은 검찰에게 독점적인 영장청구권을 부여하는 등 경찰의 권한을 축소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고 사정기관 통제를 했다. 다만 실질적인 지휘권은 중앙정보부에 있었다. 반대로 신군부는 안기부를 권력기관의 정점으로 두고 검경을 통제했으며 경찰의 대공수사국은 안기부의 직접 지휘를 받으며 권력을 누렸다. 반면 이 시기 검찰은 경찰이 일으킨 사고의 뒷수습을 하는 처지였으며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한편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사회 전반에 폭력 대신 법에 의한 지배가 자리잡으면서 무법 통치의 상징이었던 안기부, 대공 경찰 대신 수사권,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부상하게 되었다.[4] 당초 미군정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영미식의 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검찰 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실패했다. 형소법 개정 이후에도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독점적 기소권은 유지되었다.[5] 물론 일반 경찰에 한해서다.SAT등 경찰특공대는 중무장을 한다.[6] 이게 왜 문제냐면, 일본국유철도의 공안대는 1970~80년대에 이미 삼단봉을 휴대하고 있었다는 것 이다.[7] 이는 신형 춘추복 또한 마찬가지다.[8] 대신 정복 아랫주머니 밑에 권총집이나, 곤봉집, 무전기 거치대 등을 고정할 수 있도록 구멍을 길게 만들었다.[9] 일본국 건국 당시에는 베이지색이었다[10] 현지에서는 "햐쿠토오방(110番 (ひゃくとおばん))"이라 읽는다.[11] 해당 본부 휘하에는 음악대, 호위부, 경비부, 호위서 4곳, 황궁경찰학교 등이 소속되어 있다. 이 중 경비 2과의 경우에는 특별 경비대라는 이름의 경찰기동대도 배속되어 있다. 참고로 이 50명의 특별 경비대원들은 평시에는 일반 호위관들과 다를 바 없이 활동하면서 종종 시설 경비 업무와 의장 업무를 본다고 한다.[12] 복장에는 일반 경찰과 구별할 수 있는 악세사리 등을 달리하는 데 이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안 띄는 부분이라서 일본인들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그나마 구별할 수 있는 건 호루라기끈 색상이 짙은 붉은 색을 하고 있으면 이 사람이 황궁호위관이라고 한다.[13] 이들 호위관 사이에서는 이런 업무를 두고 경위 업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호 업무는 덴노, 황족 이하의 황실 인사들의 신변경호를 의미한다고 한다.[14] 스키를 배우게 하는 이유는, 동계 요양시 황족들은 스키를 주로 타기 때문이다. 그러한 황족들을 경호하기 위해서는 이들도 스키를 수준급으로 타야 할 필요가 있다.[15] 신적강하. 황족의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됨.[16] 과거 쇼와 덴노의 3녀 다카츠카사 카즈코와 5녀 시마즈 타카코가, 결혼 후에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카즈코는 강도를 당했고, 타카코는 납치 미수 사건을 당했다. 그래서 시집가서 평민이 된 공주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내정외황족(內廷外皇族)에 대해서 경찰이 경호를 하도록 규정을 바꾸었다.[17] 단 황족의 약혼자가 도쿄도 외에 거주할 경우 현지 경찰이 경호를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18] 또 자위대라는 조직 자체가 정식 군대가 아닌 준군사조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군대라고는 하나 명목상으로는 어찌됐든 군대가 아니기 때문.[19] 이 차는 고속도로 경찰대 순찰차(高速隊パトカー). 고속도로 경찰대 대원들은 순찰차를 운전시 오토바이처럼 헬멧을 착용하고 운전한다. 이는 복면 순찰차도 마찬가지이다.[20] 아마 SM5 2세대의 원본인 닛산 티아나일 듯 하다.[21] 한국에서 치면 "싸이카"이다.[22] 미국의 입국 심사 까다로움은 상상 초월인데 사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입국 심사가 타국에 비해 유연한 편이였다고 한다. 지금처럼 깐깐해진건 이 사건의 영향 때문이다.[23] 산책이나 편의점에서 간단한 거 사러 나와서 신분증을 꼬박꼬박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24] 다만 이런 습관은 범죄피해자를 비롯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는 비교적 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밤길에 불심검문을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한참 젊은 경관이 중년의 시민에게 반말로 까칠하게 심문하기도 한다.[25] 폭탄 해체 도중 순직[26] 퇴직했다.[27] 검은조직 잠입 중 사망[28] 위 서술한 모로후시 타카아키의 동생이다[29] SAT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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