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管理教育일본에서 유래한 군대식 교육. 용어 자체는 처음 실시했을 때 나오지는 않았고 1983년에 당시에 만연했던 권위주의적 교육법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어다.
일본 제국 시대에는 일반적인 교육방식이었고 일본 제국이 패망한 후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학생들을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로 1990년대까지 비교적 흔하게 남아 있었다. 교권 강화, 체벌 허용, 강력한 교칙의 도입과 교칙의 엄격한 적용, 학습 시수를 늘려 학생의 교육량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사용한 교육 방법론이다. 대한민국도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인해 일본보다도 이러한 교육방식이 더 오랜 시간 동안 적용되었고 2010년대 초반까지도 학교에서 제법 시행되었던 교육방식이라 대략 1990년대생까지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주로 역사가 짧은 사립학교에서 이루어졌다.[1] 지역에 따라서는 공립학교에서 시행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 고베시와 나고야시의 공립학교가 악명 높았다.
2. 특징
일본 제국 시기에는 관리교육이 일반적인 교육방식이었으며 일본군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체벌이 매우 흔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로 싸다귀로 때리거나 죽도나 방망이로 때리는 식의 체벌은 매우 흔하게 이루어졌고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로 걸어선 1930년대 이후로는 더욱 심해져서 대한민국에서도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당시 체벌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일본 제국식 교육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대한민국도 오랜 기간 동안 그 영향과 잔재가 남아 있었다.[2]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뒤에는 미국식 교육제도의 영향을 받아 체벌을 금지하고 학생들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등 이른바 민주교육론이 일선 학교에 적용되기 시작했으나 실제로는 그와 거리가 멀었다. 우선 넘쳐나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권위주의적인 교수법이 일선 교육현장에서 여전히 애용되고 있었고 1960년대에 등교 거부, 학교폭력 등 비행 청소년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중학생들의 비행이 매우 심각했는데 이 시기에 교사가 학생이 휘두른 칼에 살해당하고 학생들이 불량 써클을 결성하여 오토바이로 교내를 질주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학생들의 비행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져 보수 교육계에서 "학생을 엄격히 관리해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었으며 이런 교내 학생 문제들을 체벌과 엄격한 교칙의 적용을 통한 철저한 학생 관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실천한 학교들이 다시금 늘어났다. 미국의 교육정책이 스푸트니크 쇼크의 영향으로 한동안 주입식 교육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자 일본의 교육정책도 주입식 교육 위주로 변경되었는데 마침 관리교육은 주입식 교육과 궁합이 잘 맞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일본 교육정책의 공식기조가 되었다.
이 당시에는 학생들의 머리를 스포츠머리와 단발로 빡빡하게 깎는 학교들이 대다수였고, 때때로 반삭을 강요하기도 했다. 복장 단속도 엄히 진행된 경우가 많았으며[3] 야간자율학습과 0교시도 강제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머리카락에 고속도로를 내는것도 흔하디 흔했다. 또한 체육수업을 교련식으로 진행하거나 학교 차원에서 매스게임을 진행한답시고 혹사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며 자질구레한 것까지 학칙에 명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심한 경우에는 주말과 공휴일에도 교복착용을 강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규정은 2000년대 이후로는 형해화되었지만, 그럼에도 관성등의 이유로 규정이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그러나 반대로 학생들의 비행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대학 입시만을 강요하며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재능을 억압했기 때문이라며 전인 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거나 실현하자는 주장도 1970년대에 일교조를 중심으로 대두되었는데 이는 1980년대부터 일본의 교과과정에서 반영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 시행된 유토리 교육이었다.
관리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들은 학생들을 반 강제로 운동부에 가입시키는 경우도 있었는데 운동부 교사들과 선배들에 의해 극단적인 체벌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엎드리거나 손을 집고 야구방망이, 죽도로 엉덩이를 맞는 등의 체벌이 흔했으며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뺨을 맞거나[4], 스쿼트(앉았다 일어나기) 등의 기합이 존재했다고 한다. # 여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당시의 하반신 노출이 심한 체육복 때문에 엉덩이를 때리며 즐기는 변태적인 남교사도 많았다는 회고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알몸 체벌 등 성적인 수치심을 유발하는 체벌 방식이 동원되기도 했다. 운동부일수록 이런 일이 많았고 체육 교사에 의해 체벌이 이뤄지는 일이 잦았다.
1989년 후쿠오카시립 이키중학교(壱岐中学校)에서 생매장 체벌이 실시됐다는 게 알려졌고 1990년에는 효고현립 고베 다카쓰카고등학교(神戸高塚高等学校)에서는 지각하던 1학년 여학생이 수업종이 울림과 동시에 철제 교문이 다짜고짜 닫히자 그 교문에 부딪혀 숨졌는데 학교측은 그 여학생의 죽음을 개인 책임으로 돌렸다.#[5]
심지어 아이치현립 토고고등학교(東郷高等学校)는 체육 수업이라는 명목 하에 주말에 학생들을 공사장에 투입시키는 막장짓을 벌였다. 정작 아이치현에서도 전통 있는 학교들은 오랜 기간 쌓아 온 학교 운영 및 교내 관리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관리교육으로 인해 발생한 폐해가 상당히 덜했고 오히려 역사가 짧은 고등학교에서 관리교육으로 발생한 폐해가 심각했다. 관리교육을 아이치현에 확산시킨 나카야 요시아키(仲谷義明) 前 아이치현 지사는 자식을 공립고교가 아닌 사립학교에 보내 비판을 받았다.
체벌과 얼차려를 견디지 못해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들도 사회 이슈가 되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교내 폭력 문제와 비행 청소년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심해지는 결과가 초래되는 바람에 학생들을 옥쥐는 관리교육이 학교폭력 관리에 쓸모가 있다는 논리에 금이 갔다. 이러한 교육에 반발하여 1990년대 내내 활동한 운동가가 괴짜 정치인 토야마 코이치였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전인교육을 실시한 학교가 교원들의 노력으로 적어도 학생들의 행복 및 학생 계도에 있어서 더 좋은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관리교육의 성과에 대한 의구심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1990년대에 대부분의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유토리 교육으로 대체되었다.
2000년대에는 일반 교원들에 의해 벌어지는 체벌이 사라졌다. 이후 간헐적으로 체벌 관련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일본 정부 및 각 지자체들에서 학생 지도 가이드 라인과 폭력을 행사한 교원 및 학생에 대한 징계 및 처벌 규정을 더욱 강화하여 교원의 학생의 신체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징계의 수준이 크게 낮아졌는데 대표적으로 펜/분필 등을 학생에게 던지는 행위가 2013년 오사카에서 체벌로 인해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후 강화된 문부과학성의 학생 지도 지침에 의해 금지된 바 있다. 하지만 유토리 교육을 시행한 이후로는 학력이 저하되고 예의가 없어졌다면서 관리교육을 다시 시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왔으며 이시하라 신타로 등이 대표적인 인사였다. 다만 유토리 교육이 학력저하를 이유로 폐지된 이후로도 관리교육 시대의 체벌 용인과 두발 및 복장단속 강화 같은 조치는 재도입되지 않고는 있다. 그렇지만 유토리 교육이 폐지되면서 수업시간이 다시 늘어나고 말아 교사들의 근무시간이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에 교사가 기피직종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관리교육 내용을 체화한 당시의 학생들이 교편을 잡거나 사회에 나가면서 폭력적, 권위주의적 모습을 보이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반 교원들 사이에서는 체벌이 사실상 사라졌으나 여전히 체육 교원들이 학생을 상대로 여전히 체벌을 했다가 폭로되어 해당 교원이 해임 및 형사 처벌 당하는 경우가 있으며 관리교육 시대에 만들어진 융통성 없는 교칙들[6]이 전통을 지켜야된다는 구태의연한 이유를 내세우거나 관성, 학생지도 등의 이유로 남아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어서 수정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전인 교육으로의 전환한 후에도 교원 및 학생에 의해 행사되는 운동부 내부의 폭력 문제는 완전히 근절하지 못해 일본 교육계에 숙제로 남아 있다.[7]
3. 관련 문서
[1] 대표적인 사례로 닛세이가쿠엔이 있다. 다만 이 학교는 설립자인 아오타 츠요시(1907~1986) 이사장이 사망한 후에는 평범한 학교로 바뀌었다.[2] 사실 대한민국도 형식상으로는 미국, 유럽식 교육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일선현장에서는 빠른 성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고 말로 하는 것보다 때리는 것이 효율적인 학생 통제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편의주의적인 이유로 권위주의적인 교수법이 오랜 기간 동안 남은 것이다.[3] 1983년 교복자율화 이전의 한국 학교에서 차이나칼라 교복을 입었을 때 단추 5개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안 잠갔다거나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학교에서 명찰 하나 제대로 안 달았다고, 체육복과 교복을 혼용했다고 혼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는 당시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4] 악의 교전에서 가라테 교사에게 학생이 뺨을 맞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맥락인 듯 하다.[5] 대한민국에서도 2014년 전라남도 순천시에 위치한 순천금당고등학교에서 모 남교사가 지각한 남학생에게 머리를 벽에 부딪히게 해서 학생이 뇌사 상태로 빠지고 숨진 일이 있었다.[6] 예를 들면 외투 착용 금지와 두발규제, 하교 후 군것질 금지 등. 심지어 상당수 학교에서는 속옷 색깔까지 검사해서 무슨 변태학교냐는 소리도 나왔다.[7] 다만 운동부 내부의 폭력 문제는 비단 일본뿐 아니라 대한민국, 영국, 미국, 유럽 연합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 관리교육이 남긴 폐해로 보기는 애매하다.[8] 청소년 운동가 출신으로 1990년대 내내 관리교육 반대운동을 한 괴짜 정치인이다.[9] 관리교육의 대표적인 폐해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