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7 03:01:47

촌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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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모습은 망나니 장군에 출연한 마츠다이라 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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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川鰕蔵の竹村定之進>[1], 토슈사이 샤라쿠 작, 에도시대

1. 개요2. 상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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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髷 (ちょんまげ)

일본의 헤이안 시대에서 에도 시대까지의 헤어스타일로 일종의 상투다. 이마 위쪽부터 정수리를 비롯한 머리 윗쪽을 거의 밀고 옆머리와 뒷머리만을 길러 상투로 틀어 올린 모양이다. 머리의 위에서 보면 고무래 丁(정)자와 비슷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다만 후술되어있듯 가마쿠라 시대까진 흔히들 생각하는 모양이 아닌 머리를 기른 형태였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양은 전국시대 쯤 유행해 에도 시대에 정착된 케이스라고 한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당시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인구 밀집 지대였던 일본 남반부는 여름에 한국보다 훨씬 더우면서 습한 기후를 보였는데,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전투를 하다 보면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기 마련이다. 갑옷은 벗기가 매우 힘들고 투구는 벗어도 머리카락이 있어 체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체온을 쉽게 떨어뜨리기 위해 윗머리를 밀어버린 상태를 유지했던 것이다. 즉 변발과 비슷한 이유라고 볼 수 있겠다.

전국시대 때 특히 유행해 에도 시대까지 흔했으나, 메이지 유신 및 일본의 문호개방 이후로 일본 조정에서 단발령을 내려 자르게 했다. 처음에는 다들 반발 했지만 덴노가 잘랐다고 하자 큰 저항 없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조선의 상투가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는 유교적인 철학에 기반한 데 비해 일본의 촌마게는 그냥 흔한 풍습 정도였기에 쉽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촌마게는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완전히 사라졌기에 사극배우나 스모선수들이나 하는 수준이 되었으며 현대 들어서는 탈모인들에게 좋았던 시대가 에도시대라거나, 에도시대 때의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탈모인들이 멋쟁이였을 것이라는 식의 유머소재로 취급되기도 한다.

2. 상세

사실 가마쿠라 시대까지만 해도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거나, 관을 썼을 경우 관 밖으로 삐져 나오는 머리카락을 밀어주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2] 그런데 무사들의 경우 늘상 투구를 쓰고 격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해 머리를 밀 필요가 있었는데, 상술한 관을 쓰는 방식 때문에 관을 쓸 때 필요한 머리카락은 남겨둬야 했다. 따라서 관을 고정시킬 뒷머리는 남겨두고 윗머리를 민 스타일이 무사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촌마게의 기원이다. 이후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전국시대) 전후로 헤어스타일이 변하면서 코지에 비녀 대신 흰 종이끈으로 머리와 턱을 둘러 고정하게 된다.

전국시대 때 사무라이들이 이런 머리를 많이 하게 되었다. 전쟁이 계속 되는 상황이었기에 실전적인 이유가 주였지만, 평화로운 상황에서도 '난 항상 출전할 준비가 되어있다'라고 보여주는 허세 과시적 용도로 촌마게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다 전국시대가 끝난 이후에는 일종의 사무라이 특징 중 하나로 굳어졌고, 관료가 되어버린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들도 이런 머리를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계층에게도 유행하기 시작해 그냥 상인들이나 농민들도 했다고 한다. 다만 에도 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촌마게를 한 건 아니고 의사,[3] 유학자, 수도승 등은 예전처럼 머리를 밀지 않고 길러서 뒤로 묶는 꽁지머리 소하츠(総髪)라는 머리 모양을 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정부에서 단발령을 내리면서 결국 성년남자 모두 촌마게를 자르게 되었다. 물론 반발이 없던 건 아니지만 메이지 덴노가 머리카락을 잘라냈다는 소식이 나오자 바로 잠잠해졌다. 물론 단발령 때는 그나마 저항감이 적었지만 폐도령이 시행되는 등의 조치가 지속해서 이어지자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할 사무라이들이 대거 반발을 하여 전쟁이 터지기도 했다.

청 시대 이후의 변발과 마찬가지로 옛 일본인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여겨지는 헤어스타일이라 여러 그림이나 매체에서는 고대 일본인이나 헤이안, 가마쿠라 막부 시대 사람들까지 촌마게를 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전국시대 즈음부터 유행해 에도 시대에 완전히 자리잡은 헤어스타일이므로 잘못된 고증이다.

한국의 상투와 달리 의외로 관리가 필요한 머리였는데, 부분적으로 짧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민머리였기 때문에 그 부분은 면도를 자주 해줘야 해서 당시엔 나름 럭셔리(...)의 상징이기도 했다고.[4] 당연히 본인이 하긴 힘들기 때문에 종자가 깎아 주거나 해주는 사람을 따로 고용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탈모가 될 경우에는 관리 비용이 줄지만 뒷머리까지 탈모가 된 경우[5]나 원형 탈모의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서 상당한 고민거리였고, 이 정도까지 오면 보통 은퇴하고 여생을 보냈지만 젊은 사무라이가 한창 일할 때 은퇴를 할 수 없는 노릇이라서 가발을 쓰고 다니기는 했다. 사치를 멀리 하는 풍조의 집단에 속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이 검소함을 신조로 삼은 경우엔 머리를 길러서 촌마게를 하기도 했다.[6] 이를 상술했듯 소하츠(総髪)라고 한다. 실제로 도망다니는 낭인의 상징 중 하나가 덥수룩한 산발 머리. 전국시대 일본을 다룬 영화를 보면 아시가루 같은 말단 무사나 평민들은 이마 위로 반삭처럼 짧게 머리가 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영주들이나 가신 같은 고위층은 말 그대로 맨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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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마게 후 일정기간 동안 머리를 밀지 않으면 대충 이런 머리가 된다. 위쪽은 스포츠 머리 같은데 옆은 길어 뒤로 바싹 묶어 올렸다.

덕분에 일본 중세 사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아역이 아닌 이상 촌마게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 삭발을 해야하는(...) 아픔이 있다. 위의 마츠다이라 켄처럼 사극에만 고정출연하는 배우들은 편하려고 아예 스킨헤드 혹은 1mm 삭발을 하며 그걸 계속 유지한다. 다만 무로마치 시대~센고쿠 시대 배경이면 윗머리를 완전히 밀지 않고 묶는 촌마게도 존재했기 때문에 비주얼이 중요한 배역은 삭발을 안 해도 핑계가 있지만, 에도시대 중후반이 배경이라면 고증 지키려면 얄짤없이 빡빡 밀어야 한다.

실제 이 시대를 다룬 드라마 <노부나가 콘체르토>에서는 가신들이 최신 헤어스타일(...)을 상경 준비를 하는 주인공에게 권하지만, 주인공이 못 하겠다며 땡깡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은 모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라고 묻는 주인공의 말에 뜨끔하는 가신 일당의 모습이...#[7]

한국에서는 그 부분을 대머리 가발처럼 처리한 가발을 쓰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은 일본 배우들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청나라 변발과는 달리 옆머리를 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모양. 그리고 아무래도 현대 관점에서 보기엔 이질감이 좀 심하기에, 일본 창작물 중에선 덥수룩한 산발이나 꽁지머리로 떼울 수 있는 낭인이 주인공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조연 지못미

순정만화 청루 오페라 2권 후기에 의하면 순정만화 잡지인 베츠코미에는 촌마게 금지령이 있다고 한다(...). 조연은 허용되지만 남주인공급은 안되는 듯.

중종실록 42권, 중종 16년(1521년) 8월 12일 신묘 두 번째 기사에는 '방망이 상투(椎結)'라고 언급한다.


[1]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에비조(市川鰕蔵)가 타케무라 사다노신 역으로 분장한 모습. 이 배우는 후에 5대 이치카와 단주로로 개명한다.[2]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관모인 칸무리를 쓸 때 머리를 막대 모양으로 모은 뒤 비녀로 뚫어 관에 고정시켰다.[3] 그러나 에도시대 의사들 중에는 정 반대로 위생 때문에 완전 삭발한 경우도 많았다.[4] 후쿠스케 인형의 모습에서 당시의 이러한 인식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5] 속칭 '주변머리가 없는' 유형의 탈모가 제일 심각했다. 정작 길러야 하는 부분이 빠지고 밀어야 하는 부분이 남기 때문이다.[6] 물 부족으로 변발이 효율적인 중국과 정반대로 일본은 강수량이 풍부한 기후대가 많았기 때문에 머리를 길러서 감는 게 더 효율적이기도 했다.[7] 링크에선 '사카야키'라고 나오는데, 사카야키는 머리를 미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촌마게는 상투 자체 및 스타일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