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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J-POP은 기존의 일본 대중가요가 서양 대중음악에 영향을 받아 일본 문화와 융화되어 탄생한 대중음악을 뜻한다.좁은 뜻의 J-POP은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크게 흥행한 팝 스타일 장르를 묶은 용어로 쓰였다. 현재는 주로 일본 대중음악 전체를 총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1]
2. 특징
J-POP이라는 용어는 원래는 단순히 "ポップス, poppusu"로도 알려져 있었으며, 1990년대에 일본 대중음악 주류에 진입한 대중음악의 한 형태에 대한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현대 J-POP은 일본의 전통 음악에서 기원했고, 특히 1960년대 팝 음악과 록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J-pop은 일본 음악계에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일본 대중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인 가요쿄쿠(kayōkyoku)("Lyric Singing Music")를 대체했다.#
1988년 10월에 개국한 도쿄의 FM방송국 J-WAVE에서 J-POP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었다. 1989년 가을에는 J-WAVE에서 'J-POP 클래식'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저널리스트 우가야 히로미치에 의하면, 1985년 일본전매공사가 민영화되어 일본담배산업(JT)이 되거나 1987년 일본국유철도가 민영화되어 JR이 출범하는 등, "J"라고 하는 문자가 정착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런 풍조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냈다.
현대 J-POP의 원점은 비틀즈와 같은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일본어 록 음악이라고 한다.ORICON 뉴스 가요쿄쿠라는 일본 음악 장르와 달리 J-POP은 영어와 비슷한 특별한 발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사용한 유명한 가수로는 일본어 단어 karada("몸")를 kyerada로 발음한 Keisuke Kuwata가 있다.
또한, 서양 음악과 달리 장 2도('솔'과 '라')는 록 음악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전까지 예술 음악을 제외하고는 일본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는데, 일본에서 서양의 록에서 영감을 받은 그룹 사운드[2]가 유행하면서 일본 대중음악은 장 2도를 채택하게 됐다. 이는 비틀즈의 노래 "I Want to Hold Your Hand"와 롤링 스톤즈의 노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의 마지막 사운드에 사용된 음이었다.#
일본의 대중음악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식 5음 음계와 왜곡된 4화음을 기반으로 한 음악에서 보다 서양적인 음악으로 바뀌었지만, 시이나 링고같은 전통적인 일본 노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도 여전히 인기를 유지했다.
과거 가요쿄쿠 시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가요계는 싱어송라이터의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오자키 유타카, 우타다 히카루가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일본 연예계에서 싱어송라이터들은 최상급의 대우를 받으며 인기도 많다.
일본어가 현대적인 '대중 음악'으로서의 서양 음악의 발성에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발성의 핵심은 모음이다. 일본어의 모음은 다섯 개에 불과하며 (사실상 자음으로 치는) 반모음도 네 개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성을 구사할 때 핵심적인 요소인 모음 변이(vowel modification)를 훈련하기 매우 불리하다. 이는 유사한 음가라 하더라도 더 깊고 어두운 배음을 가진 소리로 변환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ɑ/ → /ɔ/) 한국어의 경우 유사한 음가로 밝고 어두운 배음의 차이가 있는 모음의 쌍이 확실히 존재하여(/ㅏ/와 /ㅓ/, /ㅗ/와 /ㅜ/, /ㅐ/와 /ㅔ/ 등) 한국어 화자는 소릿값의 밝음과 어두움에 대해 본능적으로 인지하지만(퐁당퐁당/풍덩풍덩 등) 일본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 화자에게 'あ'음을 더 어둡게 내라고 하면 당황하겠지만 한국어 화자라면 'ㅏ' 소리를 'ㅓ'에 가깝게 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일본어는 같은 음가라 하더라도 다른 언어에 비해 배음의 음형대(formant)가 좁다. 이는 즉 공명(resonance)이 적다는 뜻이며, '닫힌' 소리의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어에는 닫힌 소리인 격음(청음)이나 비음의 비중이 많이 쓰인다.
물론 이런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천재나 근성인들은 언제나 있다. VOW WOW의 보컬 히토미 겐키나 엘르가든의 보컬인 호소미 타케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일반적인, 보편적인 차원에서 서양 발성을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빌보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인 추세와 동떨어진 행보를 걷고 있다는 것도 특징. 전세계적으로 사운드 위주의 이지리스닝 중심으로 3분을 넘기지 얺는, 심지어 1분대의 짤막한 곡들이 유행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4분을 넘어가는 벌스가 3개인 긴 곡들이 넘쳐난다. 사운드보다는 가사의 스토리텔링의 전개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1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록 음악이 쇠퇴했음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J-ROCK을 비롯한 록 음악 스타일이 스테디셀러로써 강세를 보인다. 그만큼 독자적인 개성이 강렬해 세계적인 추세에 묻어가지 않아 주류에서는 밀려있어 갈라파고스 취급을 받는다.
3. 역사
3.1. 1960년대~1990년대
J-POP은 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급속히 발전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등장한 핫피 엔도를 분수령으로 일본의 록이 틀을 갖추게 된다. 핫피 엔도는 1960년대 말부터 불어닥치던 일본어 록 논쟁에 대해 불후의 명반 風街ろまん으로 응수하면서 일본어 록 음악의 진정한 시작을 알렸다. 핫피 엔도의 뒤를 이어 1972년 야자와 에이키치의 밴드 캐롤은 완전한 정착을 알렸고, 이마와노 키요시로가 이끄는 밴드 RC 석세션 역시 이 시대에 등장하여 현재의 일본 콘서트, 라이브하우스 문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1960년대부터 쌓아올린 일본 밴드의 연주력 또한 점차 무르익어가며 사디스틱 미카 밴드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도 탄생했다. 이들의 절륜한 연주력은 외국에서도 인정받으며 黒船라는 앨범은 영미권에서 발매되는 등 외국 진출의 발판이 마련됐다. 카르멘 마키, 요닌바야시 등의 프로그레시브의 대성기도 이때. 이후 The Alfee, LAZY와 같은 기라성과 같은 밴드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에서 록 음악은 점차 기존의 가요, 엔카를 대체하는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게 된다.
1978년에는 쿠와타 케이스케가 이끄는 일본 국민 밴드 사잔 올 스타즈[3]가 勝手にシンドバッド를 발표하면서 충격적인 데뷔를 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오다 카즈마사가 이끄는 Off Course가 포크 그룹에서 록 밴드로 변신을 하여 활동한다. 이들의 등장을 기점으로 록은 완전히 일본 음악계의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한다. 대략적으로 1970년대 중반을 '제1차 밴드 붐'이라고 부른다.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시티 팝 또한 록의 흐름에서 생겨난 음악 사조이다. 상기한 핫피 엔도의 멤버였던 오타키 에이치의 A LONG VACATION이라는 역작을 통해 시티 팝의 개막을 알리고 야마시타 타츠로라는 뮤지션으로 하여금 꽃을 피웠다고 평가받는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일본의 록 뮤지션들이 남긴 유산은 다양한 장르로 영향력을 뻗어나갔는데, 핫피 엔도는 떠오르는 키보디스트 사카모토 류이치를 발굴하여 일렉트로닉 뮤직의 발전을 꾀했고, 당시 록 음악계에서 새로운 장르로 부상한 뉴 웨이브는 물론, 신스 팝, 테크노 등에 영향을 끼쳤는데, 플라스틱스, P-MODEL, 젤다[4]등의 밴드들이 그렇다. 앞선 록 뮤지션들의 자양분을 받으며 그렇게 J-ROCK은 일본 가요계 전체를 통틀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1980년대 일본 록 전성시대의 출발은 메탈 음악이었다.[5] LAZY 출신의 기타리스트 타카사키 아키라와, 일본 메탈[6]계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니이하라 미노루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LOUDNESS[7], 세계적인 보컬리스트 겐키 히토미와 거물 기타리스트 야마모토 쿄지가 이끌던 VOW WOW[8], 건즈 앤 로지스와 함께 투어를 돌기까지 한 E.Z.O, 사카모토 에이조라는 거물 보컬을 주축으로 한 ANTHEM 등의 전설급 밴드가 속출하였고, 이들은 해외 진출까지 하며 쟈파 메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편 일본 국내에서는 히무로 쿄스케와 호테이 토모야스가 이끌던 슈퍼밴드 BOØWY[9]가 등장하였다. 보위는 J-ROCK의 판도를 뒤엎어 버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1990년대 J-ROCK을 대표하는 LUNA SEA, L'Arc~en~Ciel, GLAY 세 밴드 모두 보위의 후계 밴드라 해도 좋을 정도다.
보위와 함께 또 다른 전설인 블루 하츠가 1987년 일본 음악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 The Blue Hearts를 발매하면서 데뷔하였다. 블루하츠는 이후 JUN SKY WALKER(S), UNICORN, THE BOOM[10]과 함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제2차 밴드 붐'을 이끌었다. 일본 사회의 버블과 맞물린 이 시기의 2차 밴드 붐은 블루 하츠를 중심으로 한 펑크 록이 중심이었고, 90년대의 Hi-STANDARD를 중심으로 한 멜로코어 열풍, 2000년대 MONGOL800을 중심으로 한 청춘 펑크 열풍으로 이어진다.
이외에도 코무로 테츠야의 TM NETWORK[11], 레베카, 포크 록의 안전지대, "Season In The Sun"의 TUBE 등의 밴드들이 히트곡을 연발하면서 80년대 일본 록 음악씬의 인기를 견인하였다. 또한 X JAPAN과 BUCK-TICK을 중심으로 하여 소위 '비주얼계'라고 하는 화려하게 분장한 밴드들이 등장한 것 역시 이때부터였다.[12] 여성 멤버들로만 결성된 걸즈 록이라는 또다른 조류 또한 80년대를 기점으로 대성하기 시작했다.
1989년 헤이세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하드 록을 대표하는 최고의 인기 밴드인 B'z[13]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아성찰적인 가사와 음악으로 J-POP에 큰 축을 남긴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했는데, 바로 오자키 유타카이다.[14]
또한, 1980년대는 아이돌 황금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아이돌은 마츠다 세이코[15], 나카모리 아키나, 야마구치 모모에, 코이즈미 쿄코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경우 197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아라이 유미가 마츠토야 유미[16]로 활동을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1970년대 후기부터 1980년대에 걸쳐 일본의 경제성장과 함께 일본 가요계에는 AOR[17]로 대표되는 영미권 대중음악계의 최신 유행 장르들, 곧 재즈, 펑크, 디스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록 스타일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디사이저와 전기악기, 이른 디지털 음악 등을 기반으로 짜여진 그루브한 일련의 곡들이 소개됐는데, 이것이 이른바 오늘날 '시티 팝'으로 이름 붙여진 음악적 사조의 등장이었다.[18] 장르적 독립성이 있다기 보다는, '느낌적인' 범위의 구분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뉴에이지 음악, 이지 리스닝같은 케이스다. 이러한 시티 팝이라는 음악 사조의 유행도 존재했다.[19]
기술적으로는 세계적인 추세처럼 1970년대부터 보급화된 카세트 테이프의 대중화가 소니에서 개발한 워크맨과 함께 1980년대~1990년대 일본 가요계의 팽창화의 크나큰 공을 세운다. 1980년대 초에 개발되어 보급화된 CD도 그렇고, 특히 음악인 입장에서는 1984년 Apple에서 만든 Macintosh 128K를 필두로 컴퓨터의 대중화가 가속되면서 마스터링과 프로듀싱이 한층 더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를 거쳐, 1990년대 전반에 '제3차 밴드 붐'이 일어나게 되고, 일본의 대중음악과 J-ROCK은 1990년대에 최전성기를 이뤘다. 일본의 영화는 정점을 찍었을 때가 1970년대라면, 일본 대중음악계는 1990년대에 정점을 찍은 것이다. 이전까지는 1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가요 싱글, 즉 밀리언셀러도 흔치 않았지만 1990년대에는 밀리언 셀러는 물론이고 200만장의 판매량도 넘긴 더블 밀리언 셀러도 수두룩하게 나왔다.
이 시기를 대표한 음악가들은 B'z, 코무로 테츠야, 사잔 올 스타즈, GLAY[20], Mr.Children[21], 마츠토야 유미, CHAGE and ASKA, 드림스컴트루, ZARD, 스핏츠, 라르크 앙 시엘, 아무로 나미에, 마츠다 세이코, 하마사키 아유미, 우타다 히카루 등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일본 가요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일본의 모든 장르의 음악이 호황을 이뤄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까지 진출하여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B'z와 우타다 히카루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들은 일본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해외에서는 진출은 했어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이는 당시 대부분 J-POP 뮤지션들이 그다지 외국 진출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탓도 있다. 일본은 꾸준히 세계 음악 시장에서 4위권 이내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당시 일본 가수들과 레코드사는 외국 진출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곳이 거의 없었다. 사실 시도는 있었지만 영미권과 큰 차별성이 없었던 탓에 위축된 감이 크기도 했다.
3.2. 2000년대~2010년대
21세기에 들어서, 버블 경제의 후폭풍으로 일본 대중음악 시장이 가장 활발했던 1990년대에 비해 활기가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뮤지션들과 큰 경제적 이익으로 일본 대중문화계의 중심이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미스터 칠드런 현상(미스치루겐쇼)"이라는 사회적 용어를 만들어낸 Mr.Children이 있다. 21세기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밴드이기도 하다.2010년대부터는 음악계를 이끌어갈 만한 재능과 카리스마 넘치는 뮤지션이 등장하지 않아서 J-POP은 갈수록 음악적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이 있는데, 맞는 말이긴 하다. 2000년대 중반 이전처럼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는 나오지 않고 있다. 쟈니스 소속의 아라시나 AKB48 등의 아이돌은 건재하지만 일본 아이돌은 대체로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연예인(엔터테이너)에 훨씬 가까운지라...[22] J-POP의 인기 하락과 더불어 일본의 음악 프로그램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시류였다.
한국에서의 J-POP은 1960년대 후반에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시작으로 일본 음악이 들어오면서 1990년대 초반에 잠깐동안 인기를 끈 여성 아이돌 Wink나 그 이후 X JAPAN 등이 매니아층을 형성했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한국보다는 중국과 홍콩, 대만 등 다른 중화권 국가나 태국같은 동남아 국가 등지에서의 인기가 훨씬 좋았다.[23]
2000년대 초반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되면서 국내에 J-POP이 많이 유입되긴 했으나 얼마 못 가 다시 매니아틱한 장르로만 남게 되었다. 2010년대에 와서는 더더욱 암울하다. 이전과는 달리 서점이나 음식점 등에서 일본 음악이 아주 가끔씩 들리긴 했으나 어딜 가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국내 소수의 팬덤이 유지되고는 있었지만 이마저도 예전 같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2010년대 초~2010년대 중반까지 J-POP은 부진한 시기를 보냈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호시노 겐[24] , 요네즈 켄시[25], 아이묭, SEKAI NO OWARI, Official髭男dism, King Gnu, 래드윔프스, 후지이 카제[26], 요루시카 등을 비롯하여 서브컬처 씬에서 유명한 amazarashi 등 일본 외 아시아 국가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J-POP 뮤지션들이 다수 나오면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아이묭같은 경우, 마리골드, 너는 록을 듣지 않아,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 등의 노래로 대한민국에서 일본 대중음악에 대한 외면을 끝낸 뮤지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아이묭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점점 J-POP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요네즈 켄시의 Lemon도 그중 하나다.[27]
3.3. 2020년대
사실상 J-POP의 중흥기. 암흑기를 벗어나 음악성, 다양성, 대중성까지 전부 다시 확립하게 되었다. 가장 큰 차이로는 쟈니스 사무소의 붕괴[28], AKB48 그룹으로 대표되는 아키모토 야스시 사단의 명확한 하락세와 니코니코 동화를 중심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던 서브컬쳐 음악이 대중화를 통해 주류로 올라왔다는 점이고, 소속사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인디 뮤지션 및 밴드들이 음악성 하나로 주류로 올라오는 등 인디펜던트적인 성향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동시에 음반 위주였던 시장이 스트리밍 중심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등 일본 음악시장의 구조개편이 많이 되었다.앞에서 설명했듯, 주로 니코동에서 활동했던 가수들이나 프로듀서들을 넷 출신 아티스트라고 칭한다. 이들 중 가장 큰 인기를 끈건 YOASOBI로 첫 곡인 夜に駆ける의 엄청난 히트와 アイドル의 세계구급 성공으로 단숨에 J-POP의 대표주자로 올라왔다. 이외에도 言って。, ただ君に晴れ등의 곡들로 유명한 요루시카, 廻廻奇譚의 Eve, 秒針を噛む와 お勉強しといてよ의 ZUTOMAYO[29], 春を告げる의 yama, 신시대의 Ado 등이 있다.
그리고 록 음악이 대표적인 밴드 음악도 엄청난 강세를 띄는데, 2020년대를 책임진다는 평가를 받는 Mrs. GREEN APPLE, Official髭男dism, King Gnu, 요루시카[30] 및 여러 밴드들은 고유의 음악성과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큰 인기를 끌고있으며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OST를 맡는 등의 타이업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크게 보면 J-POP에, 세부적으로 보면 J-ROCK에 포함된다. 일부 올드한 록 전통주의자들[31]과 록을 잘 모르는 자들은 J-ROCK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나,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일본어 위키백과와 영미권 음악 웹진에서는 이들의 음악을 록 음악으로 표기하고, 록 밴드로 소개한다. ** 록은 모두 메탈같을 거라는 편견이 있는 한국에서는 어려운 이야기다. 소프트 록 중에서 유명한 존 레논의 Imagine*을 공중파에서도 팝 장르로 소개한다던가, 파워 팝, 드림 팝, 노이즈 팝 같은 장르들이 록 음악에 포함되는 하위 록 장르들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32]
그리고 유우리, 후지이 카제, Vaundy 등 싱어송라이터들의 등장 또한 2020년대의 확실한 특징인데, 이들은 등장한지 얼마 되지않아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높은 실력과 대중성으로 무장한 이들은 2010년대의 요네즈 켄시의 뒤를 책임질 인재라는 뜻으로 포스트 요네즈 켄시 등으로 불리운다.
이러한 신인 아티스트의 발굴을 통해 J-POP은 2020년대에 이전보다 훨씬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 있다. 애플 뮤직 글로벌 차트에서는 2020년대 이후 일본 노래가 연일 상위권에 등장하는 횟수가 증가했다. 특히 최근에는 Ado의 노래이자 애니메이션 원피스 필름 레드의 주제곡 신시대가 애플뮤직 글로벌 차트 1위를 차지했다.[33]
특히 이들은 TikTok의 영향으로 혼자서 노래하며 연주하는 일명 히키가타리 가수들의 곡이 역주행하는 경우도 꽤 많이 나오고 있는 편이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에이토, 카와사키 타카야, 모사오 등이 있다. 히키가타리 외에도 타카얀, 수요일의 캄파넬라, MAISONdes 등 TikTok에서 얻은 인기를 기반 삼아 인지도를 더욱 높이는 뮤지션도 많다. 특히 YOASOBI의 인기요인 중 하나가 밤을 달리다의 틱톡 역주행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J-POP의 인기가 이 시기 쯤에 상당히 높아졌는데, 코로나로 인한 OTT 전성시대와 맞물려 일본 애니메이션 붐이 불면서 한국 음원 차트에도 애니메이션 OST들이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체인소 맨의 오프닝 KICK BACK,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OST인 第ゼロ感, 【최애의 아이】의 오프닝 アイドル, 마슐 신각자 후보 선발 시험 편의 오프닝 Bling-Bang-Bang-Born 등이 있다.
특이 케이스로 imase의 NIGHT DANCER의 경우 일본보다도 한국에서 더욱 흥행하며 J-POP 최초로 멜론 일간 차트 TOP 100에 진입하기도 했으며, 아이묭의 경우, 2010년대 초반에 주로 활동한 꽤나 오래된 뮤지션임에도 마리골드, 너는 록을 듣지 않아 같은 곡이 SNS 및 유튜브 바이럴을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도 2017년에 발매된 愛を伝えたいだとか가 뒤늦게 역주행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다시 살아나는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으로 J-POP이 기존에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일식당이나 이자카야, 혹은 서브 컬처와 관련된 매장에서 주로 재생됐다면, 2020년대 들어서는 일식이나 서브 컬처와 관련이 없는 매장에서도 자주 흘러나온다는 목격담과, 인기 음악 소개 유튜버들이 J-POP 관련 영상을 만드는 등, 과거와 비교해 한국에서 인기가 높아진 것을 체감할 수 있다.[34]
또한 2023년부터 J-POP이 최중흥기 맞이한 이후 많은 인터넷 방송인들이 J-POP 음악을 방송에서 쓰거나 J-POP를 부르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고 토너먼트식으로 대결해서 1위를 가리는 이른바 '이상형 월드컵' 즉 J-POP 월드컵[35] 콘텐츠도 흥행하면서 많은 스트리머들이 여기에 참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참여한 인터넷 방송인 목록은 이상형 월드컵/목록 문서 참고.
그 밖에도 단순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귀여워서 미안해, 강풍 올백, 기상 야자수, 숙청!! 로리신 레퀴엠☆, ビビデバ과 같은 서브컬쳐 노래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위에 나온 뮤지션들의 한국 공연이 많이 열리다 보니 이를 NHK가 분석하기도 했다.#
한일가왕전을 통한 일본의 80년대 노래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4. K-POP과 다른 점
이 문서를 읽을 때, J-POP 밑으로도 아이돌 음악, 인디 음악, 밴드 음악, 보컬로이드 음악, 우타이테 등 상당히 많은 장르가 있지만, 이 문서 내에서는 그들의 합집합인 J-POP이라고 칭하며, 세부적인 장르에 따라 특징이 상당히 다르기에 J-POP에 대한 대략적인 기조만 파악하길 권고한다.[36]4.1. 정서
J-POP이 한국에서 비주류인 가장 큰 이유는 정서가 달라서다. 한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훅이 많이 강조되며 사랑으로 말미암은 감정(행복, 슬픔, 질투 등)을 적극적인 감정선으로 강조하는 반면, 일본은 훅이 없거나 잔잔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노래들이 꽤 많다.[37][38] 물론 우타다 히카루처럼 영미권 팝 음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경우엔 그 분위기나 정서가 한국의 곡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J-POP의 가사는 사랑 노래 외에도 인간 관계에서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감과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외로움, 섬세하고 내성적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날이 서 있는 정서(우라미)가 담긴 가사가 특징이다. 시적인 표현도 많이 차용하며, 형용사나 단어도 많이 쓴다. 가사 스타일을 비교해보자면,
K-POP이나 일반적 팝송의 경우
나는 너를 항상 사랑해.
라는 식으로 직설적이게 풀었다면, J-POP의 경우에는별처럼 내 생명이 아득해질 때까지 늘 옆에서 거닐게.
라고 하는 식으로 문장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그 외에도 악기 본연의 소리를 강조하는 클래식한 사운드, 그러면서도 삶의 의지를 다잡는 희망찬 단어 선택이나 멜로디 등이 두드러진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일본어/여성어와 일본어/남성어의 문서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일본어는 인칭대명사들도 성별마다 다르고 뉘앙스도 제각각인데, 내용상 화자의 성별이 정해지면 여자 가수가 남성어를 쓰거나 남자 가수가 여성어를 쓰기도 하는 등 인칭대명사로 성별이나 뉘앙스를 정하는 정서가 있어서 이런 정서가 없는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어렵고, 일본어의 인칭대명사를 잘 알고 있을 경우 매력적으로 느끼기도 하고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는 등 호불호를 탈 수가 있다.[39] 게다가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K-POP과 달리 J-POP은 일본어를 모르면 즐길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고 이런 감정선에 한 번 빠지면 그것이 J-POP의 매력이기도 하다. 잔잔한 음악을 좋아하는 경우 J-POP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2010년대 후반부터 나오는 아이돌 그룹들은 한국 아이돌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은지라 랩의 비중이 어느 정도 느는 추세이다.
4.2. 창법
일본인 특유의 비음 섞인 창법은 한국인들로부터 J-POP의 진입장벽을 높인다. 서구권 팝의 영향은 어느 나라나 강하지만 일단 한국은 성량이 풍부하고 비음 없는 테크니컬한 창법의 보컬을 선호하는 반면, 일본은 비성이 많은 일본어 특성상 기본적으로 비음이 매우 짙기 때문에 이러한 스타일의 창법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다.[40] 또한 한국식 트로트의 원류인 엔카의 영향으로 요나누키 음계(ヨナ抜き音階)와 같은 일본식 음계를 쓰는 경우도 흔해서 한국인 입장에선 뽕짝으로 느껴지는 경향도 있다.이 때문에 일본 음악이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았다고 여겨졌던 2010년대 이전조차도 일본 음악을 별로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비음이라는 것이 한국인들이 느끼기에느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병맛이라나거나 겉멋 또는 허세 심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든가, 중2병인 듯한 느낌, 여자 가수 같은 경우는 주부가요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90년대 전후해서 한국은 소위 '고음을 지르는' 샤우팅을 중시했고 고음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사실 아직도 그런 경향이 남아있는데 일본은 이런 특징이 많지 않기 때문인 것도 컸다. 즉, 종합적으로 말해 한국인이 원하는 창법에서 거리가 너무 멀었다.
물론 록 밴드의 경우엔 장르의 특성상 비음이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숏폼이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대 이전까지 한국에서 일본 노래하면 엔카[41]나 시원시원한 록 음악, 그리고 몇몇 네타곡만을 떠올렸던 것이 이 때문이기도 하다.
4.3. 폐쇄적인 형태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엠넷이나 MTV 같은 케이블 방송을 통해서 일본 대중음악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상파에서는 일본어 가사로 부른 곡은 방송에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남아 있던 탓에 여전히 외면받았고[42], 거기에 더해서 일본 음악 업계의 갈라파고스화가 시작되면서 J-POP의 황금기가 지나가버리고 말았다.K-POP이 그러했듯이 J-POP도 당연히 영미권의 영향을 받았고, 영미권의 영향이 아직 잔존하던 시기가 아이러니하게도 J-POP의 황금기였다. 이후 갈라파고스화로 인해 영미권의 영향이 단절되고 아이돌 음악 위주의 재편이 행해지게 되면서 J-POP의 황금기는 끝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쇠락해가던 J-POP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준 것이 바로 쟈니스와 48 사단이었다.
J-POP은 현재도 유튜브 음원 공개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며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JASRAC으로 대변되는 세계적으로 엄격한 음원저작권 관리이다. 오히려 인디씬에서는 유튜브에서 음원 공개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힘은 확산성에서 나온다. K-POP과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 대중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K-POP 관련 업계가 저작권에 일본 업계처럼 엄격하게 대하지 않았던 탓에 그만큼 한국 대중 문화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K-POP에서 뮤직비디오를 유투브에 공개하는 것이 사실상 관례가 된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리고, 일본 대중 문화가 황금기를 구가했던 1980년대의 일본 대중 문화 업계도 지금처럼 저작권에 엄격하게 집착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서브컬처 문화 역시 J-POP만큼 엄격하게 저작권을 행사하지 않아서 2010~2020년대에 세계적 인기가 커졌다.
1990년대까지 대만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J-POP이 지금은 한국의 K-POP한테 밀려나게 된 것은, 일본의 연예기획사들이 저작권에 너무 집착을 해서 해외 팬들이 J-POP에 관련하여 올리는 각종 동영상들이나 사진들을 저작권 위반이라며 마구잡이로 고소해 벌금을 뜯어내는 식으로 탄압하다가, 해외 팬들이 이런 지독한 폐쇄성에 질려 J-POP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버렸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4.3.1. 변화
여전히 히트친 곡들도 많긴 했지만, J-POP은 그간 홍보가 부족한 점도 있었고 여전히 스트리밍으로 발매되지 않거나, 설령 하더라도 일본에서만 들을 수 있게 지역락을 건다거나, 전세계는 고사하고 대부분이 일부 마니아층 사이에서만 소비됐으며 아시아권에서도 대중적인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그런 J-POP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PRODUCE 101 JAPAN을 통해 K-POP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남성 아이돌 그룹 JO1이 데뷔하여 일본에서 활동 중이다. 또한 남성 아이돌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동시에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로 인해 서서히 고인물이 되어가던 쟈니스도 유튜브에 뮤직 비디오나 연습 안무 영상을 올리는 등, 기존의 관행을 깨는 행보를 보여주며 주목받고 있다.
J-POP이 한동안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음원 공개에 부정적이었던건 사실이지만 이미 다른 J-POP 걸 그룹들, 가령 AKB48은 2010년부터, Perfume과 E-Girls는 2012년부터, 캬리 파뮤파뮤는 2011년부터 유튜브에 영상을 꾸준히 공개해왔고, 그 밖에 여러 아티스트들과 레이블의 공식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고 있으며, 2010년대 중후반과 2020년대부터 많은 수의 일본 음악들이 디지털로 발매되기도 하면서 유튜브에는 일본의 보컬로이드 영상들이나 애니메이션 OST, 또는 우타이테 같은 여러 일본의 음악들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는 등 접근성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멜론, 지니뮤직, 벅스 등 음원 사이트에서도 인기 J-POP이 꾸준히 발매되고, 2020년대에도 일본의 음반사들이 새로이 진출하고 있으며 유튜브 뮤직,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과 같은 해외 스트리밍을 통하면 한국에서도 다양한 일본 음원들을 들을 수 있도록 선택지도 크게 늘어나는 모양이다.
일본 음악 업계의 갈라파고스화 그리고 쟈니스와 48 사단의 존재로 인해 촉발되었던 J-POP의 암흑기는 상기한 대로 202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끝나게 되었고[43] 다시 J-POP의 인기가 회복되기 시작하는 추세인데, 이는 J-POP이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K-POP과의 정면대결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아이돌 음악 위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대신 K-POP의 영향력이 아직 미진한 상황인 아티스트 음악 위주의 노선으로 다시 재편을 겪게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기도 하다. 한국은 K-POP/문제점 문서의 설명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인디씬의 성장이 처참할 정도로 미진한 반면, 일본은 넷출신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인디씬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인디씬이 활성화되어 있는 만큼 J-ROCK과의 연계성도 지니고 있었기에 그러한 재편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이돌 음악 분야에서 J-POP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지만 한편으로는 K-POP/문제점 문서에서도 비판하고 있듯이 아이돌 음악 이외의 타 분야에서는 여전히 발전이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K-POP과, 아이돌 음악 분야에서는 완패했고 사실상 재기불능 상황에 빠지게 되었지만 대신 아이돌 음악 이외의 타 분야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게 된 J-POP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호의적으로 평가하자면 K-POP과 J-POP은 양쪽 모두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K-POP은 아이돌 음악 위주의 노선을 택했고 J-POP은 J-ROCK과의 연계성도 활용할 겸 인디씬을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 음악 위주의 노선을 택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K-POP과의 장르적 차별화를 도모하지 않고 계속 아이돌 음악 위주의 노선을 억지로 유지하면서 K-POP을 상대로 무리한 정면대결을 시도하려 했었다면 2020년대의 J-POP의 부흥은 불가능했었으리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일본의 인디씬이 상술한 대로 유튜브를 이용한 음원 공개에 적극적으로 임하였었기에, J-POP이 긴 암흑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비로소 조금씩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이렇게 대중음악에 한정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나 일본의 소위 오타쿠, 서브컬처 음악 같은 비주류층은 여전히 폐쇄적이기에 해외에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게임의 음악들은 지금도 해외 IP에 지역락이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44] 일본의 서브컬처 문화는 상술한 대로 J-POP 만큼 저작권 행사를 엄격하게 하지는 않는 편이긴 하지만 역시나 업계가 갈라파고스화된 상황이며 일본 내수 시장의 수요층도 아직까지는 쇄국을 지향하는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편이어서 해외 팬들이 일본 서브컬처 문화로 접근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기에 그렇다. 특히 남덕 중심의 남성향 서브컬처의 경우 이러한 일본 국내 소비자들의 폐쇄성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는 편이나, 반대로 여덕 중심의 여성향 서브컬처의 경우에는 2010년대 이후부터 일본 사회에서 한국 문화가 소수의 소비자만이 향유하는 서브컬처의 영역을 넘어서서 다수의 일반 대중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의 영향으로 인해 그러한 폐쇄성이 어느 정도 고쳐지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의 한류 문서도 참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4.4. 템포와 러닝타임
이 밖에 J-POP과 K-POP의 두드러지는 또 다른 차이는 바로 템포로, 일본 쪽이 한국보다 템포가 더 빠른 편이다.템포의 경우, 한국 대중음악은 대부분 빨라봤자 140 BPM을 넘지 않는 편이지만, J-POP은 150~180 BPM의 고템포 곡이 매우 흔하며, 세계에서 BPM이 제일 느린 라틴팝과는 대척점에 있다.[45] 특히 보컬로이드 곡들 같은 경우 잡동사니 이노센스나 하츠네 미쿠의 소실[46]같이 200 BPM을 거뜬히 뛰어넘는, 미친 듯이 빠른 곡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는 한국과 다른 정서 또는 유로비트의 영향일 수도 있고, 일본어 자체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다. 일본어 자체가 개음절(받침 없는 소리) 중심이라 랩하듯이 빠르게 말하는 데 유리한데, 그렇다 보니 이러한 고템포 곡이 정착하기 쉽다. 반면에 한국어는 제아무리 각종 음운 현상이 발음을 돕는다 한들 일본어에 비하면 폐음절(받침 있는 소리)의 쓰임이 훨씬 많아서 템포가 높으면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진다. 또한 리듬 게임에서 일본곡의 고레벨 채보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며,[47] 동시에 한국곡의 고레벨 채보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러닝타임의 경우, 2000~2010년대에는 일본 쪽이 한국보다 더 긴 편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은 2~3분대[48]가 많은 반면, J-POP은 3~4분대가 많고 5~6분대인 곡도 꽤 있는 편이었다. 다만 4분이 기본이던 2000~2010년대와 달리, 2020년대 이후로는 2~3분대 곡이 많아지면서 러닝타임이 줄어든 편이다. 레코쵸쿠 인기 음원 10위 내 곡의 평균 러닝타임이 2010년에는 5분 12초였으나 2021년 상반기 기준으로는 3분 59초다. 물론 이 역시 최근에는 2분대 곡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K-POP이나 영미권 팝에 비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긴 편.
또한 긴 러닝타임은 음악 방송에서도 영향을 미치는데, CDTV 라이브! 라이브! 정도를 제외하면 곡을 풀로 완창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다만 이 역시 러닝타임이 점차 줄어드는 근래의 추세에 힘입어 타 음악 방송에서도 완창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다.
4.5. 음악 방송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시청률 저하 등의 이유로 여러 음악 방송들이 종영되었다. 특히 '뮤직 드래곤' 'MUSIC JAPAN'이 연이어 종영되어 해당 프로그램들의 출연 빈도가 높았던 한류 가수들의 타격도 적지 않았다.대한민국의 경우에는 '뮤직뱅크', '쇼! 음악중심' 등의 순위제 프로그램이 다수인 데 반해, 일본은 'CDTV 라이브! 라이브!'를 제외하면 순위제 도입이 없다시피 한다. 이 때문에 해외 팬덤에서는 곡의 인기도를 파악하는 데 비교적 어려움을 겪어 오리콘 차트와 빌보드 재팬을 주로 참조한다.
일본의 음악방송은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 많다. 그 중 인지도가 높은 프로그램은 '뮤직 페어', '뮤직 스테이션', '더 소년구락부', 'Love music', 'FNS 가요제', 'MUSIC BLOOD', '시부야 노트', 'Venue101' 등이 있다. 또한 한 회 서너팀 정도 출연하며, 밴드씬이 큰 만큼 밴드의 출연 비중 또한 높다.[49] 아이돌은 주로 쟈니즈 소속사, AKB, 46 사단 소속이 많이 나오며, 최근에는 EXILE나 JO1 같이 메이저 그룹도 많이 출연한다.
5. 유튜브 순위
2024.09.22 기준
[불가] 한국에서 시청이 불가능하다.
}}}}}}}}} ||6. 관련 문서
[1] 2000년대 중반경부터 영미권에서 이런 식의 사용이 크게 증가했다. 본래는 따로 분리해 표기했던 엔카, 일본 록, 애니메 송 등도 전부 J-POP(ular) 식으로 사용한 것. 대놓고 재패니스 메탈도 '어? 일본어인가? 그럼 J-pop' 이렇게 사용이 되간 것.[2] 로큰롤, 로커빌리, 사이키델리아, 록 음악, R&B, 머시비트와 기존 일본의 가요쿄쿠가 합성된 일본식 록 음악.[3] 활동 중지 선언만 했을 뿐인데 일본 주가가 오르내렸을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유명인 중 다수가 이들의 팬임을 밝히고 있다.[4] 여성 멤버들로만 결성되어 최초의 일본 걸즈 록으로도 꼽히기도 한다.[5] 일본에서는 하드록과 메탈을 싸잡아 HR/HM이라고 통칭했다.[6] 보통 재패니즈-메탈을 조금 줄인 쟈파-메탈로 불렸다.[7] Crazy Night라는 싱글이 빌보드 차트 74위까지 오르며 동양권에서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록 밴드가 되었다.[8] 영국에 음반이 발매되었을 때, 음악만 듣고 영어권 밴드인줄 알았다가 일본 밴드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9] 비주얼적 컨셉이나 창법 등에서 이후 등장한 비주얼계 장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래 DEAD END와는 달리 메탈 계통의 음악을 하는 비주얼 록 밴드보다는 모던록 성향의 밴드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LUNA SEA 역시도 히무로 쿄스케의 뽕삘나는 창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10] 보컬로이드 KAITO의 커버로도 유명한 시마우타(島唄)가 대표곡이다.[11] 일본 버블 경제 시기를 상징하는 만화 중 하나인 시티헌터 애니메이션의 OST로도 유명한 Get Wild가 이들의 곡이다.[12] 이러한 스타일은 이들 전에도 세이키마츠와 D'ERLANGER 등의 밴드들이 존재하였다. 그걸 대중화시킨 사람이 바로 이들이라는 것.[13] 일본 최고의 인기 록 밴드로서, 통산 1억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여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 순위 1위 기록을 가진 밴드다.[14] 그는 밴드로 활동한 경력은 없으나 적극적인 당대 영국, 미국 록 풍토를 적극적으로 적용한 음악 색깔, 10대의 감성이 가득찬 자아성찰적 가사로 당대의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청소년들이 성장하여 밴드를 결성하게 되고, 오자키가 추구하였던 모던 록과 자아성찰적이고 진실된 사랑을 추구하는 가사를 그들의 음악에 담게 된다. 즉 90년대의 3차 밴드 붐이 일어나는데에 오자키의 음악이 무시하지 못할 기반을 세워놓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일본 음악계에 서정성을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다.[15] 일본 198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 중 하나로, 이때의 마츠다 세이코가 발매한 싱글들은 푸른 산호초와 Precious Heart를 제외한 모두 1위에 들 정도로 엄청났다. 90년대에 들어서 성적은 상당히 떨어졌지만, 1996년, 직접 작사한 あなたに逢いたくて〜Missing You〜로 1위를 하면서, 본인 최고 기록인 110만장 판매를 기록해 커리어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한다. 별명은 영원의 아이돌[16] 버블 절정기였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가 그녀의 최전성기로, Delight Slight Light KISS, LOVE WARS, 天国のドア 3개 앨범이 연속으로 연간 1위를 달성하여 일명 ‘유밍 붐’을 일으켰다. 1989년에는 앨범 '天国のドア(천국의 문)'이 전년에 발매한 앨범 'LOVE WARS'와 함께 당시 일본 가요계 역사상 첫 더블밀리언을 기록하며 일본의 앨범 시장을 개척했다.[17] Album-Oriented Rock, 혹은 Adult Oriented Rock. 70~80년대 미국의 FM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주로 송출한 음악들을 통칭하는 명칭. 이름에 걸맞게 프로그레시브 록이 주를 이루었으나 재즈, 소울 음악, 어덜트 컨템포러리와 같은 장르도 포용한다. 빌 위더스부터 플리트우드 맥, 카펜터즈까지, 그 범위는 심히 광범위하다. 심지어 분위기가 전혀 다른 하드 록 음악들 중 일부를 AOR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다. 조상 격인 AOR부터 이러니 시티 팝 또한 구분이 모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18] AOR을 포함해, 소프트 록, 펑크, 부기, R&B 등 광범위한 스타일을 포함한 이었으며, 공통적으로 도시적인 느낌을 주는 테마가 기본이었다.[19] 다만 시티 팝이라는 말 자체는 2000년대와 2010년대 이후의 레트로 열풍에 덧씌워진 마케팅 용어에 가깝다.[20] 1990년대에 최전성기를 누린 록 밴드로, 1999년 GLAY의 단독 콘서트는 당시 기네스북 최다 인원 기록(폴 매카트니의 1990년 브라질 콘서트)를 갱신해 역사상 최다 관객이 참석한 단독 콘서트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21] 1992년에 데뷔한 록 밴드로,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발매한 모든 싱글을 1위에 올린 국민 밴드이다. 2019년 기준 6,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90년대~00년대 일본에서 이들의 인기는 '미스치루겐쇼'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낼 정도의 사회 현상이었다.[22] 일본에서 아이돌은 뮤지션이라기보다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집단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배우로 등장하거나, 예능 등에 활약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런 경향은 특히 SMAP이나 아라시 같은 남자 아이돌이 더 두드러진다.[23] 실제로 일본 음악이 황금기를 맞은 90년대 초부터 웬만한 급의 뮤지션은 중화권에서의 해외 공연을 많이 진행하곤 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2000년 이전까지는 일본 가수들이 내한공연이 거의 전무했다.[24] 2016년부터 2019년도까지, 일본 남성 솔로 싱어송라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내에서 건재했던 쟈니스 사무소 소속 아이돌들과 비견될 정도로 일본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한국 연예인에 비유하면 아이유 정도의 위치이다. #1, #2 이러한 유명세 덕에 안티들도 생기기 시작했으며, 쟈니스 사무소가 호시노 겐의 활동 홍보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이상한 루머도 나왔을 정도였다. (실상은 후지TV였다고 한다)[25] 후술할 니코동 출신 뮤지션의 가장 대표적이자 성공적인 예시다.[26] 일본 가수 최초로 Spotify 월간 리스너 천만을 달성했다.[27] 이들의 음악은 2010년대에 등장했으나, 언급한 내용대로 한국에서 인기를 끈 것은 2020년대 초기부터이다.[28] 2023년에 들어서 쟈니스 사무소의 창업주인 쟈니 키타가와가 연습생들을 상대로 장기간에 걸쳐 성착취를 저질렀다는 희대의 사건이 수면 위로 폭로되면서, 쟈니스 사무소가 몰락을 넘어 붕괴 수순을 밟는 중이다. 결국 쟈니스 사무소는 공식으로 폐업하고 후신 격이라 할 수 있는 STARTO ENTERTAINMENT가 새로 설립되었다.[29] 즛토마요라고도 불리며 보컬 ACAね는 우타이테나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출신이 아니나 누유리, 100번 구토 등 편곡자들과 밴드 멤버들이 대부분 보컬로이드 계열에서 활동했기에 이쪽 계열로 분류된다.[30] 앞서 넷 출신으로 언급한 요루시카가 맞다.[31] 주로 80~90's의 하드 록 & 메탈 파생계[32] 그렇다고 모든 일본의 밴드들이 록 음악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33] 이후 홍백가합전에도 가수인 Ado의 이름이 아닌 영화속 인물인 우타의 이름으로 참가하였다.[34] 그 전에도 예외적인 케이스는 있긴 했다. 누자베스, 프리템포, m-flo 등 시부야계 스타일의 재즈나 힙합 정도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꽤 일상적으로 들려오긴 했다. 다만 이명박과 아베 이후 정치적으로 경색관계가 심해지며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안 틀게 것인데 2020년대에는 다시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게 변한 부분이 크다.[35] 대표적으로는 J-POP 라이브 월드컵. J-POP 라이브 월드컵의 경우 2023년 8월 8일에 룩삼이 최초로 플레이했다.[36] 우리가 K-POP을 김광석부터 LE SSERAFIM까지 엮지는 않듯이 말이다. 트로트 = {설운도, 남진, 임영웅, ...}과 여성 아이돌 = {IVE, NewJeans, aespa, ...} 등은 모두 K-POP의 부분집합이지만, 이들 사이의 교집합은 아주 작다. 예시로 든 원소들의 공통점을 비교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37] 한국의 경우 곡 안에서 최소 한 번, 심하면 매 절마다 브릿지 부분이 전조한다. 대표적인 노래가 야생화. 보통은 발성에 강약을 주며 1절은 약하게, 2절은 강하게 부르고 3절부턴 아예 브릿지를 전조시켜 점점 감정이 고조되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는 구조의 곡이 많다. 특히나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해야 하는 발라드에 이런 케이스가 많다. 그러나 J-POP은 1절부터 3절까지 단 한 번도 전조하지 않는 경우가 그다지 드물지 않다.[38] 단적으로 발라드 곡인 오자키 유타카의 'I Love You'와 신해철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39] 일본 매체에서 자주 보이는 ~짱, ~쿤, ~상, ~사마 등의 호칭, 한국 매체에서 자주 보이는 형, 오빠, 누나, 언니, ~씨, ~님 등의 호칭처럼 번역할 수 없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언어 고유의 정취 및 개성을 외국 매체를 접하면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어권 고유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낸다.[40] 이 때문에 코다 쿠미나 아무로 나미에처럼 비음이 없는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인에게도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J-POP 커뮤니티의 이야기지만.[41] 트로트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며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은 엔카 특성상 트로트와 유사점이 많아 아무래도 거부감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42] 다만 케이블 방송에서는 일본어 가사로 부른 곡도 방송에 내보낼 수 있었고, ELLEGARDEN / 하바드 같이 영어로 된 가사로 불렀거나 T-SQUARE같이 경음악만 나오는 J-POP은 지상파에서 잘 나왔다.[43] 물론 AKB48 그룹은 야마구치 마호 자택 습격 사건, 쟈니스 사무소는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 등 아이돌 업계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들썩였던 사건의 영향으로 하락세가 가속화됐던 것도 컸다. 게다가 Nizi Project, PRODUCE 101 JAPAN 등 일본 현지화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는 시리즈제 오디션들의 흥행 또한 아이돌을 꿈꾸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면서 자국 아이돌로 데뷔하는 선택지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진 것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44] 단적인 예로 블루 아카이브가 있는데 이 게임은 엄연히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국 게임인데 정작 출시된 관련 OST, 캐릭터송의 스트리밍용 앨범들을 일본을 제외한 국가에서 들을 수 없게 되어 있고 당연히 한국 음원 서비스에도 출시되지 않았다.[45] 라틴팝은 65~100 BPM이 매우 흔하다.[46] 이 곡 같은 경우 BPM은 240이지만 곡의 대부분이 12비트라 사실상 180 BPM이다. 다만 같은 작곡가의 하츠네 미쿠의 격창같은 경우 진짜 200 BPM의 16비트로 랩을 한다(...) 따라서 격창은 현재까지도 사람이 커버한 사례가 거의 없다.[47] 예시로 든 하츠네 미쿠의 소실같은 경우 수록된 거의 모든 게임에서 준보스 이상의 위치를 갖고 있다.[48] 특히 2020년대에 들어서는 영미권과 마찬가지로 2분대 후반~3분대 초반대의 곡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한국도 아이돌이 아닌 일반 가수들의 곡이나 록과 같은 밴드 음악의 경우 4~5분대의 곡도 많다.[49] '더 소년구락부'의 경우, 쟈니스 소속사 가수 위주로만 섭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