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단을 하는 모습.[1][2] |
1. 개요
코단, 강담([ruby(講談, ruby=こうだん)])은 강담사([ruby(講談師, ruby=こうだんし)])가 과거 있었던 역사적 실화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3] 일본의 전통 예술이다.공연자가 혼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점에서 라쿠고와 비슷한 점이 있고, 강담 전문 요세가 사라진 지금은 라쿠고와 같이 라쿠고 요세에서 같 공연을 하는 일도 많지만, 카미가타 라쿠고처럼 앞에 탁자[4]를 두고 손에 든 하리오우기(張り扇)라는 막대형 도구를 탁자에 치면서 주의를 집중시키는 점은 에도 라쿠고와 다르다. 라쿠고와의 차이
2. 기원
기원에 대해선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부터 강담의 원형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1610년 아카마츠 호인(赤松法印)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에서 타이헤이키, 겐페이 성쇠기를 읽었던 것[5]이 현재 강담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후 비슷한 형태로 군기 모노가타리를 사람들 앞에서 피로하는 형태가 확산되며 한때 에도에만 강담 요세가 200여개 있었다고 전해진다.3. 특징
라쿠고가 '허구의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추구하는 예술이라면 강담은 '실화'로서의 전달을 추구하는 예술로, 기원이 군기 모노가타리를 교육 목적으로 읽던 것인 만큼 라쿠고처럼 '오치(オチ)'나 재미에 목적을 두지 않고, 어디까지나 '이야기'로서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예술로 볼 수 있다.[6] 그래서 주로 인물간의 대화체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라쿠고와 달리, 강담사가 상황이나 심리를 직접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또한 강담사의 역량에 따라 이야기의 길이가 크게 변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가령 오오토리[7]나 1인회처럼 주어진 시간에 제한이 없는 경우 1시간도 풀 수 있는 이야기가 공연 중간에서는 대사나 일화를 쳐내서 15분만에 끝내는 등 같은 내용이라도 때에 따라, 강담사에 따라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한편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주요인물의 각 시점, 주변 인물 시점, 혹은 전체 이야기 흐름에 따라 강담 이야기 개수가 거의 무한정 늘어난다. 가령 추신구라로 유명한 '아코 의사전(赤穂義士伝)'의 경우 이야기의 전체 흐름인 '본전(本伝)', 추신구라에 참여한 각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인 '명명전(銘々伝)'、주요인물은 아니지만 각 사무라이의 하인이나 부하, 가족과 관련된 일화를 담은 '외전(外伝)' 등등해서 이야기가 300개가 넘는 등 같은 테마여도 이야기의 가짓수가 정말 많은 편에 속한다.
4. 현재
과거 '강담조합(講談組合)'의 하나의 단체였으나, 65년 일부가 이탈해 '도쿄강담조합'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단체로 분열, 통합을 하다 현재는 크게 '강담협회(講談協会)'와 '일본강담협회(日本講談協会)'의 두 단체로 나뉘어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도 두 단체간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서로 교류도 자주 하는 등 완전 남남으로 치지는 않는다.다만 일본강담협회의 경우 라쿠고 예술협회와 제휴하고, 강담협회는 일본 연예가 연맹에 가맹해, 서로 정기 공연(定席)을 공유하진 않고, 일본강담협회는 라쿠고 예술협회에 젠자 수행을 도움을 받는 등의 차이는 존재한다.
전술했듯 옛날에는 인기가 굉장히 좋아 전용 공연장도 여러 곳이 있었다. 일본의 거대 출판사인 코단샤(講談社)의 이름에서 그 인기있던 시절의 흔적을 알 수 있다.[8]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기가 팍 식어버리는 바람에 '요세'라 불리는 전용 공연장과 공연자의 수가 계속 감소하게 되었고 결국 이제 강담 전용 요세는 완전히 전멸해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라쿠고 공연장에 얹혀 공연을 하고 있다. 여담으로 강담 전용 요세 중 가장 최후까지 버텼던 혼모쿠테이(本牧亭)가 처절한 똥꼬쇼로 유명했다. 경영이 악화됨에 따라 점점 작은 가게로 이사가고, 나중에는 가게를 음식점으로 개조해서 공연이 없을 때에는 요리를 팔며 운영을 계속하려 하는 등.[9] 그러나 이러한 눈물겨운 노력이 무색하게 상태가 계속 악화되어 결국 2011년에 완전히 폐업하고 말았다.
5. 강담사 목록
5.1. 강담협회
- 타카라이(宝井) 일문
- 이치류사이(一龍齋) 일문
- 타나베(田辺) 일문
- 칸다(神田) 일문[10]
5.2. 일본강담협회
2대 칸다 산요가 강담협회에서 제자들과 함께 독립하면서 나온 단체인 만큼, 대부분이 산요 일문의 스승, 제자 관계로 이어져 있다.- 3대 칸다 쇼리(神田 松鯉)
- 칸다 아이잔(神田 愛山)
- 칸다 요코(神田 陽子)
- 칸다 무라사키(神田 紫)
- 칸다 쿠레나이(神田 紅)
- 6대 칸다 하쿠잔(神田 伯山)
현재 강담계의 유일한 '인간국보(인간문화재)'. 21년엔 욱일소수장을 받는 등 실력으로는 최고로 인정받는다.
2대 칸다 산요가 사망하며 2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2005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엔 명예회장으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제자 중 신우치만 6명이 있는 등 영향력도 여전히 크다.
현재 강담계에 '여자강담사'의 개척자으로 유명. 3대, 7 회장으로 취임했었으며, 현재는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우에노 히로코지에서 강담교실에서 교사로 활동하는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강담사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12년 와세다대학 인간과학부에 입학해 16년에 졸업했다.
3대 칸다 쇼리의 제자로, 현재 강담계의 명실상부 인기스타.
이이노 홀에서 '칸다 하쿠잔 플러스(神田伯山 PLUS)'라는 1인회 정례 강담회를 열고 있다. 항상 매진되어 추첨외엔 취소표조차 구하기 어려울 정도.
[1] 왼손에는 'ツケ(츠케)'라는 작은 각목, 오른손엔 '張扇(하리 오-기)'라는 부채처럼 보이지만 젓가락에 나무 포장지 씌워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두 도구 모두 코단 공연 중에 장면을 넘어가거나 주의를 집중시키는 용도로 사용한다.[2] 코단을 하는 인물은 현재 코단에서 2번째로 '인간국보'(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중 한명인 칸다 쇼리(神田松鯉).[3] 물론 실제 있던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만드는 점에서 다소 각색이나 과장, 허구는 섞여있다. 즉 실화인척 거짓말을 하는 예술(...)이다.[4] 카미가타 라쿠고에선 '켄다이(見台)'라고 하지만 강담에선 '샤쿠다이(釈台)'라 부르는 점은 다르다.[5] 당시에는 강담이 아니라 '타이헤이키 읽기(太平記読み)', '강석(講釈)'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6]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재미가 목표가 아닐뿐 결말까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강담사에 따라 재미위주로 전개할 수도 있고, 진지하게 전개할 수도 있다.[7] 공연의 맨 마지막 순번으로 해당 공연의 주최자가 맡는 시간으로 가장 중요한 순번이다.[8] 이 출판사는 1911년부터 강담사라는 이름을 썼다.[9] 소형 극장/공연장들이 자주 쓰는 경영 전략이기도 하다.[10] 2대 칸다 산요가 독립할때 따라오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에 맡겼기 때문에, 잔류한 칸다 일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