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0 12:07:53

일본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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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남녀 공통 특징
2.1. 종합 엔터테이너2.2. 음악성2.3. 실력2.4. 상술2.5. 어두운 현실2.6. 월급제
3. 여자 아이돌 특징
3.1. 유사연애와 종속성3.2. AKB48 위주의 시장 구도
4. 남자 아이돌 특징
4.1. 쟈니즈 사무소의 독점
5. 역사
5.1. 1970년대 이전5.2. 1970년대5.3. 1980년대5.4. 1990년대5.5. 2000년대5.6. 2010년대
6. 목록7.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 아이돌에 관한 개괄 문서.

2. 남녀 공통 특징

2.1. 종합 엔터테이너

한국에서는 아이돌이라고 하면 일단 가수의 한 부류를 의미한다.[1]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이돌이라고 하면 '가수'라기보다는 '종합적인 엔터테이너'로 통한다. 애초에 idol이라는 영어단어를 일본이 들여와서 일본 대중문화계에 일본화하여 쓰게 된 유래도, 청소년들에게 마치 우상처럼 열광적인 애정을 받는 존재라는 인기 현상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지 꼭 '가수'라는 특정 장르에만 국한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즉, 가수 활동은 일본 아이돌의 본업이 아니라, 예능, 드라마, 모델 등 다양한 연예계 활동의 일부라고 인식한다. 이 떄문에 마찬가지로 어린 배우나 성우 등이 다방면에서 활동하면 '아이돌 배우', '아이돌 성우' 등으로 불린다. 아이돌 생활을 마치고 나서 프로 가수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나 모델, 버라이어티 탤런트 쪽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본 아이돌은 가창력이나 춤 실력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나 컨셉의 매력, 방송에서의 예능감 등을 중심으로 육성된다.

한국 아이돌과 일본 아이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 아이돌이 미성숙한 아이가 노력하는 등의 일종의 서사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다면, 한국 아이돌은 뛰어난 퍼포먼스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다는 점이다. 강도 높은 연습생 생활을 지속하고 대다수는 데뷔의 문턱조차 밟지 못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빠르게는 초등학생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여자 아이돌은 데뷔하고도 연습생 생활을 지속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다 보니 졸업 제도로 꾸준히 데뷔와 졸업이 반복되고 졸업 이후에는 프로페셔널로서의 기준치를 넘지 못하고 은퇴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참고로 이러한 일본의 아이돌 문화는 프랑스에서 왔고, 스모가부키에서 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2.2. 음악성

장르적으로는 다양하고 유행의 변화가 빠르다. 여자 아이돌의 경우 프로듀서 층쿠헬로 프로젝트의 그룹들, 대표적으로 모닝구 무스메펑크복고적인 댄스음악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 후 나타난 것은 여자아이들이 밴드 풍의 노래를 부르는 '걸즈 락'. 대표적으로 AKB48이 크게 성공했다. 또 Perfume이 인기를 끈 이후 디스코 풍의 신스팝이 잠깐 유행하기도했다. AKB48이 예전같지 않은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그룹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한류의 영향으로 힙합 댄스를 하는 그룹도 있다.

남자 아이돌의 경우 쟈니스 사무소 소속의 그룹이 장악하고 있다. 80년대의 콘도 마사히코, 소년대, 히카루GENJI의 인기를 이어받아 SMAP이 이전까지의 아이돌과는 다른 친근한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이어 아라시가 국민적인 인기를 물려받으며 독과점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스타더스트 프로모션, EXILE 등도 남자 아이돌 그룹을 런칭하였으나 사실상 쟈니스 사무소 원탑 체제라고 보아야 무방.

한국 아이돌 음악, 즉 K-POP은 영미권 팝을 모방하는 수준을 이미 오래 전에 초월하여 외국 작곡가들과의 송 캠프 협업을 통해 전세계 음악 씬 유행의 첨병이지만, 일본 아이돌 음악은 장르적으로는 다양하지만 총체적으로는 '일본 아이돌스러운' 일본의 전형적인 갈라파고스화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특징이다. 상대적으로 리얼세션이 자주 기용되며 '이해하기 쉽고,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 중심의 음악'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특징이다. 보컬적으로는 비음이 특징. 보컬은 믹스보이스 기반으로 음색과 리듬감, 음악적으로는 비트를 중시하며 가사의 한국어만 빼면 극도로 무국적적인 K-POP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RAMPAGE, Happiness, FAKY 등 댄스/보컬 그룹들은 영미권 팝, 또는 영미권 팝에서 영향받은 K-POP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멜로디보다는 비트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많이 하지만 시장에서 큰 반응은 없다. 오히려 2000년대 초중반 아라시 음악과 별 다를 바 King & Prince의 곡들이 2018년에 대히트를 치는 등, 업계와 대중들이 아이돌 음악을 바라보는 인식을 좋게 말하면 한결같고 나쁘게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

2.3. 실력

원래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아이돌은 솔로 위주였다. 80년대까지 활동하던 솔로 아이돌들은 오늘날의 아이돌과는 달리 가수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활동했다. 스스로 작사에 참여하는 등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아이돌도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재색을 겸비한 가수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시대를 풍미했던 나카모리 아키나는 미모 이전에 뛰어난 음악성 자체가 무기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야마구치 모모에에 이르면 엔터테이너적 성격보다는 '아름다운 뮤지션'이라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한때 아이유가 일본에서 데뷔를 했을때, 80년대 일본 여성 아이돌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던것은 이러한 당시 아이돌들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물론 그 많은 80년대 아이돌이 다 실력이 좋았을 리는 없고, 일반인 수준의 실력에 얼굴만 예쁜 아이돌 가수들은 80년대에도 널렸었다.

그러나 오냥코클럽의 데뷔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음악쪽으로 경험이 없는 일반 여중고생들이 전략과 마케팅의 승리로 인기를 얻은 것이다. 오냥코클럽의 성공은 이후 모닝구 무스메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모닝구무스메 1기의 경우에도 락보컬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인재들인만큼 가수로서의 실력은 준수했으나, 인기를 얻는 데에는 ASAYAN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힘, 그리고 친근감을 무기로 내세운 마케팅의 견인이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모닝구무스메는 후기기수를 받아들이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예능방송활동을 펼친 그룹에 속했다.

이런 형태의 아이돌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실력도 있고 아이돌성도 있는 정통파 여성 아이돌의 계보는 끊어졌다.[2][3] 하지만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여성 가수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모모에-세이코-아키나로 이어지는 여성 솔로 가수의 계보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오오츠카 아이, 코다 쿠미 등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 이어졌다.
파일:attachment/일본 아이돌/bj2ur.jpg

맨 위의 개요 문단에도 쓰여있지만 일본의 아이돌은 가수라기보다는 방송가의 모든 예능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는 종합 예능인[4] 두 집합이 비록 온전히 분리된 집합은 아니지만 활동 양태에서 차이점을 지적하는 것은 가능한데, 요컨대 가수로서의 실력(가창력, 춤)과 아이돌로서의 실력(외모,팬 서비스)을 별개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돌과 아티스트는 상하관계가 아닌 일부 영역을 공유하는 완전한 별개의 직업군이 된다. 반면 한국 시장은 아이돌 역시 가수의 일부분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으며, 아이돌에게도 가수로서의 실력을 요구한다. 이 차이를 간과하거나 반대로 너무 집착하면 양국의 아이돌 시장을 올바른 눈으로 볼 수 없다.

흔히 일본의 아이돌을 '성장형 아이돌', 한국의 아이돌을 '완성형 아이돌'로 나누고 일본 아이돌 오타쿠들은 완벽한 모습보다는 부족한 모습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아이돌로 성공하려면 오히려 실력이 부족해야 한다고 분석하지만, 아이돌로서의 성공 여부는 개인의 실력보다는 기획사의 능력과 콘셉트, 곡의 질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5]도쿄죠시류, 9nine, 페어리즈, DiVA 등이 실패한 것은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실력이 높아서 오타쿠들이 감정이입을 못 해서 실패했다'와 같은 시각은 혐오를 담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큐트, 모닝구 무스메 등도 실력과 퍼포먼스성을 내세워 활동하고 있지만 건재한 오타쿠 팬덤을 자랑한다. E-girls페어리즈, 모모이로클로버Z9nine의 차이점은 결정적으로 콘텐츠의 질이 높다는 점 뿐이다. 게다가 일본이 아이돌의 실력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아키모토 야스시쟈니스[6]의 등장 이전에는 일본 아이돌 또한 실력에 큰 비중을 두었었고, 현재도 실력없는 아이돌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7] 2000년대 후반 한류 아이돌 러쉬로 인해 대중들의 눈도 같이 높아졌기 때문에, 소속 아이돌의 트레이닝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추세다.[8]

한때 트위터 상에서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국민들이 탈력에 빠졌고,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실력이 없는 아이돌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라는 분석이 유행했던 적이 있는데 실상은 정 반대다. 거품이 무너지고 난 후인 90년대 중후반에는 걸출한 가창력과 댄스 실력을 갖춘 SPEED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였고, 반대로 거품경제의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에는 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오냥코클럽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건 경제적 상황이 아닌 연예계의 트렌드에 따른 것으로, 상단의 1990년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오냥코는 80년대 아이돌 호황기의 막차를 탄 격이었고, 스피드는 아이돌이 아닌 90년대 댄스가수 붐에 다리를 걸친 걸그룹이었다[9]. 그리고 그 오냥코 클럽도 결코 음반판매량이 높다거나 콘서트 규모가 큰 그룹도 아니었다[10] 오히려 경제적 지표를 섞어 분석하자면, 오히려 경제 호황기였기에 저런 기획도 소비해줬으나, 불황이 되자 얄짤없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불황인 시기에 기획된 오냥코의 후예들(체킷코아이돌링!!!)은 모두 실패했다.

'일본 아이돌은 미숙한 아이돌이 연예인으로서 커나가는 스토리를 중시한다'라는 분석은 초창기 모닝구 무스메나 퍼퓸, 모모이로클로버Z와 같은 몇몇 그룹을 분석하는데는 도움이 되는 설명이지만, 그것으로 일본 아이돌 시장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스토리성은 성공한 아이돌 그룹 일부의 모델일 뿐이고 스토리성이 없어도 성공하는 경우는 많다. 이전 판본에서 예로 들었던 E-girls만 해도 특별히 활동에 스토리성이 있는 그룹이 아니다. 스토리성이 있다면 인기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사실 이건 만국공통 모든 분야에 다 적용되는 사항이다. 다만 일본은 아이돌의 성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비해 스토리성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는 있는 편.

스토리적인 그룹의 예를 들어보면, 모모이로클로버Z는 퍼포먼스 이외에는 보통 정도의 비주얼과 부족한 가창력을 갖추었지만, 이것이 오타쿠에게 먹혀 친근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고, 햐다인이라는 든든한 프로듀서를 바탕으로 오타쿠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밑바닥부터 고생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 + 홍백가합전에서 탈퇴한 전 멤버를 상징하는 물건들과 가사를 그대로 들고 올라감으로서 스토리성마저 대폭발했다. 바로 푸른색 전구가 들어간 의상과 무대 피날레에서 뿌린 푸른색 리본. 멤버별 이름을 부르는 가사를 탈퇴 전 오리지날 버전으로 부른 것.

2.4. 상술

기본적으로 적으면 3가지, 심하면 10여종이 넘는 수많은 사양으로 나누어 음반을 발매한다. 물론 거기까지는 그냥 팬서비스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돌그룹들은 이 음반에 멤버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이벤트권을 집어넣어 엄청난 수의 복수구매를 유도한다. 이러한 접촉상술의 대표주자가 바로 악수회, 하이터치회, 샤메/체키회이다.

악수회는 말 그대로 그룹 멤버와 악수를 할 수 있는 이벤트로, 음반에 이 악수회에 응모할 수 있는 악수회권을 동봉한다. 악수회에 참가하면 그룹 멤버와 짧게는 10초에서 길면 1분정도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악수회 상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것이 바로 AKB48을 비롯한 48사단 자매그룹들로, 이들의 음반판매량의 약 90%는 이런 악수회 참가를 위한 복수구매이다. 오리콘 기준으로 AKB48의 싱글은 100만장이 넘게 팔리지만, 악수회권이 들어있는 극장반이 제외되는 사운드 스캔 기준 판매량은 보통 20만장 내외다. 자매그룹들은 더 심해서 60만장 넘게 나간 싱글이 사운드스캔에선 겨우 6만장 잡히는 수준. 반면 상술을 덜 쓰거나 쓰지 않는 가수들의 경우 사운드스캔 판매량과 오리콘 판매량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개중에는 도리어 사운드스캔이 오리콘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까지 있다.

하이터치회는 악수회와 비슷한데, 음반을 구매하면 이벤트장에서 멤버와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하이터치회권을 음반에 동봉한다. 이쪽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하는건 쟈니스로, 쟈니스 소속 그룹인 Sexy Zone은 사실상 3인조 유닛 활동하던 2014년 하반기 ~ 2015년 상반기에 Sexy Zone 5인 완전체[11] & Sexy Family[12] 합동(???!) 하이터치회를 개최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체키회, 혹은 샤메회, 투샷회는 악수회나 하이터치회보다 많은 수의 음반을 복수구매했을 때 참가 가능한 이벤트로, 멤버와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티켓을 음반에 동봉해서 판매한다. 사진이라는 물질적인 증거가 남는 이벤트이다보니 인기도 매우 크다. 현장에서 폴라로이드로 찍어주는 경우도 있고, 입회자의 디카나 폰카로 찍어주는 경우도 있다. 보통 발매된 사양 전부를 한데 묶은 박스셋에 동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박스셋 하나를 사면 차트에는 시디 여러장 구매로 찍힌다. 이 상술은 48사단, 하로프로 등등 많은 아이돌 집단이 사용하고 있다.

지하 아이돌이나 인디즈 아이돌까지 내려가면 아예 멤버들과 껴안을 수 있는 기회를 파는 '허그(hug)회', 벽치기를 해 주는 '카베동회', 껴안고 귓속말을 해주는 이벤트, 무릎베개 등 캬바쿠라보다도 더 악질적인 이벤트도 매우 많다.[13] 그 외에 EXILE, E-girls 등의 LDH 소속 그룹들이 쓰던 뮤직 커넥팅 카드 상술이나 콘서트 티켓 첨부 상술도 있었는데 오리콘측에서 이러한 상술이 첨부된 음반은 차트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폐지되었다.

이런 상술은 그룹의 멤버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경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AKB48이 밀리언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무려 300여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손을 팔기 때문이다. 2015년 부터 급성장한 노기자카46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피지컬 판매량은 악수회로 인한것이다. 그 외에도 개개인의 떨어지는 가창력을 떼창을 통해 감추려는 기술적인 의도도 있겠지만 2010년대 이후 현재 일본 아이돌의 인원수는 사운드 보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술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상술을 통해서 음반 판매량을 불리다 보니, 음반이 몇십만장 넘게 팔려 오리콘 차트 1위를 해도 일반 대중들은 그 노래, 그 가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오리콘 차트는 이미 '인기의 척도'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였다. 개중에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음반가격을 낮추고 갖가지 상술을 떡칠해서 인지도 없는 아이돌이 차트에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벤트를 계속 추가해서 떨어지는 낙폭을 가리는 눈속임 수법도 나왔다. 반면 Perfume이나 모모이로클로버Z 같이 실제 팬덤과 대중 관심도는 훨씬 더 높은데도 상술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음반 판매량은 적게 나오는 가수들도 매우 많다.[14]

때문에 오리콘 차트 이외의 다양한 지표를 사용해야 그 그룹과 곡의 실제 인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순수한 곡의 인기는 iTunes 다운로드 차트, 레코초쿠 착신음(벨소리) 차트, 노래방 차트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E-girls가 이 부분에서 강세였다. 콘서트 관객 동원력은 대중들의 관심과 팬덤의 규모를 확인하는 새로운 척도로 각광받고 있다. 접촉 이벤트를 통한 중복구매로 눈속임을 하지 못할 뿐더러[15], 일단 규모가 크고 '공연'이라는 가수 본연의 능력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Perfume과 모모이로클로버Z는 음반 판매량은 높지 않지만 돔 투어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정도로 인기가 있다. 또한 티켓이 잘 팔리는 지역을 통해 이 가수의 인기가 전국구인지[16]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비디오리서치, 닛케이 파워 랭킹, 오리콘의 '2만명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순위'등 공신력 있는 설문조사도 인기 척도로서 사용되는 중. 특히 닛케이의 경우 인지도와 호감도를 동시에 조사하기 때문에 그 가수의 유명세가 '악명'인지 여부도 알 수 있다. 때문에 기업의 광고모델 선정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이 부문에서는 몇 년 동안 Perfume이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일본 현지에 거주한다면 주변의 분위기나 TV등을 통해 체감 인기를 알 수 있으므로[17] 이는 한국에서 팬질을 할 때 신경쓰게되는 부분이다.

다만 오리콘 차트가 지표로서 기능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팬덤의 화력'을 측정하는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 AKB48이나 노기자카46의 판매량이 거의 악수회 티켓으로 판 물량이어도 인정을 받는 것은 그걸 감안해도 현역 걸그룹 중에서 팬덤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PASSPO☆의 사례처럼 극단적으로 상술을 몰빵해서 실제 팬덤의 구매력보다도 판매량을 뻥튀기하는 사례도 있지만 그런 경우 다음 싱글의 판매량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등 결국 티가 나게 된다.

여담으로 일본 아이돌은 CD를 사면 반드시 악수회를 갈 수 있는 반면 한국 아이돌 그룹 싸인회는 완전 추첨제라 오히려 상술이 심한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해이다. 일본에서도 CD를 사면 반드시 악수회를 갈 수 있는건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표방한 AKB48 그룹과 그를 본딴 아이돌 그룹들뿐이다. 일본의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하이터치회나 팬이벤트를 하기는 한다. 쟈니스 같은 아이돌도 때때로 할 때가 있다. 단지 대중적인 이미지 때문에 AKB처럼 대규모 악수회를 잘 열지 않을 뿐이다. 이 경우 인원이 제한되어 있으니 당연히 한국과 비슷한 추첨제다. 쟈니스 소속 King & Prince로 예를 들면 CD에 들어있는 하이터치회 응모용 시리얼 넘버를 전용 예약 사이트에 입력해 추첨한다. 당연히 한 장으로 추첨될 확률이 낮으니 여러장 음반을 사는게 기본이다. 물론 비인기 아이돌은 경쟁이 심하지 않으니 무조건 갈 수 있지만 이건 한국도 같다.

2.5. 어두운 현실

BBC의 보도를 인용한 연합뉴스의 기사.

아이돌의 소속 연예 기획사들의 과도한 권력남용에 대한 비판을 가한 영국 BBC 보도를 인용했던 연합뉴스의 기사를 링크한 것이다. 기사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연예기획사들의 '갑질'에 대한 우려는 최근에 부각되기 시작한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도 아주 없었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이나 소속사들의 갑질은 비판과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일본은 상당히 심하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별 일이 아닌 것도 일본 소속사들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단적인 예로 위의 기사에서 일본 아이돌인 SMAPAKB48 소속 멤버인 미네기시 미나미의 예를 들었는데 이 둘을 예시로 일본 연예기획사들의 횡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SMAP기무라 타쿠야를 제외한 4명의 멤버가 '탈퇴'를 결정하자 기획사가 이들을 막아 생방송에 검은 옷차림으로 출연시켜 사죄하게 한 것에 대한 것에 BBC는 고용주의 '갑질'로 간주, 이들을 '회사의 노예'로까지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AKB48 소속 멤버 미네기시 미나미가 남자친구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이유로 삭발을 하게되는데, 삭발을 본인이 한것이라고 말하긴했지만 그 상황으로 내몬것은 그간에 연애를 막아온 소속사의 횡포에 의한것이다. 미네기시는 방송에 출연, 대중에게 역시 사과를 했다는 것 역시 '개인생활까지 간섭'하는 소속사의 횡포로 볼 여지가 있다. 특히 일본 소속사들이 소속 연예인들의 연애활동을 금지하는 규정을 강조한다는 점을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일본 연예기획사의 행태는 반드시 옳다고 옹호해 줄 수도 없는 일이다. SMAP의 경우, 타쿠야를 제외한 4명의 멤버가 기획사 대표와의 불화로 탈퇴를 결심했다고 기사화 했는데 이는 한국의 경우에도 쉽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더 나은 해결책으로 보는 입장이 일반적이다. 때로는 후에 연예인들이 전 소속사에서 '부정직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 그 연예인이 비난받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전 소속사의 '갑질횡포'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SMAP의 경우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나(작성 위키러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결정권까지 박탈하는 기획사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일본은 아이돌의 연애생활을 철저하게 엄금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연예인들의 경우 직업의 특성상 같은 직종계열의 사람들과 만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보니 여성 아이돌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대개 프로듀서들, 소속사 직원들이나 매니저, 혹은 해당 기획사 소속 이성 아이돌 또는 타 기획사 소속 아이돌, 또는 다른 연예인들인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연예인도 사람이기에 연애라는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고 이를 막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라고 할 만하다. 일단 개인의 선택이나 판단이라고 존중하는 편이고 결과적으로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이니까 기획사가 규정까지 지어가면서 컨트롤하는 것은 부당하고 봐야한다.

결국 궁극적으로 기획사들이 해당 연예인들을 '동등한 위치에서의 동업자'라는 인식보다는 '갑과 을의 관계'로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대하려는 태도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다. 일본 아이돌계가 사실상 오타쿠화한 인지도 때문에 이들을 무시할 것은 아니지만 권력화 되어가는 소속사들의 횡포는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이는 일본 아이돌이 성숙해가는데에 있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항목에도 서술되었으나 일본 아이돌이 사실상 캐릭터화, 비디오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육성화 캐릭터'성의 아이돌 컨셉으로 인해 일본 아이돌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것에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문제를 제기한 측이 영국의 BBC라는 점을 염두해 둘 필요는 있다. 개인적인 선택권과 행복권을 중요시 여기는 서구권에서 단체의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 아시아권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소속사가 개인의 연애활동까지 강압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적인 여론이 있는 것도 맞다.

사실 BBC에서 지적한 점은 한국 아이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아이돌 역시 소속사 아래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상품으로서 만들어지는 구조로, 일부 성공한 그룹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아이돌들이 회사의 방침에 눌려서 개인의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 다만, 한국 아이돌들의 연애생활도 일부 비판여론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일본처럼 강압적인 터치까지는 하지 않고 팬들도 그럭저럭 용인하는 편이다.[18] 적어도 한국 아이돌은 일본처럼 열애설만으로 연예계에서 은퇴하거나, 그룹에서 탈퇴당하거나, 지방으로 쫓겨가거나, 삭발하거나, 손해배상 청구당하지는 않는다.[19] 원래 한국도 2002년까지만 해도 박준형(god)한고은과 열애설 발각으로 탈퇴까지 거론되었으나 이 때 무렵을 기점으로 대중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2.6. 월급제

일본 아이돌의 특징은 바로 월급제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월급+수당. 사실 이건 아이돌 뿐 아니라 일본 연예계 전체의 특징이다. 물론, 한국처럼 수익분배제를 시행하는 회사도 있고, 초기엔 월급제다가 연차가 쌓이면 수익분배제로 재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말하는 '탑스타'들이나 인디 출신 밴드[20]처럼 활동영역에서 소속사보다는 '연예인 본인의 영향이 큰' 경우에는 한국처럼 수익분배제지만[21], 회사의 투자비용이 크고 수명까지 짧은 아이돌 그룹 특성상 대부분 월급제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소속사가 절대적인 갑의 위치라 한국같은 정산시스템이 매우 드물다. 방송에서 모닝구 무스메 전성기 시절 멤버인 야스다 케이가 CD판매량 인세같은건 한 번도 받아본적이 없고, PASSPO☆의 멤버였던 마스이 미오는 CD 판매 1장당 0.91엔(9원)을 받았다고 밝힌바 있다[22]

그래도 인기 아이돌이 되면 활동에 따라 수당을 꽤 쳐주기 때문에[23] 몇 천만엔 이상 받는 아이돌도 아주 드물지는 않다. 일본 아이돌의 년간 수입은 발표되지 않으나 납세액은 어느정도 파악가능한데[24] 일본 연예 기자들이나 스포츠 기자들은 이를 추정해서 연간 수입이 얼마인지 기사를 작성한다. 당대 최고 인기 아이돌은 여성의 경우 4천만엔 ~ 8천만엔 정도이며 쟈니스 소속 아이돌이 간혹 1억엔 이상 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음반의 작사나 작곡에 참연한 경우에는 판매량에 따라 인세를 받지만, 아이돌에게 작사, 작곡 시켜주는 사무소는 매우 드물다. 정확하게는 음반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 아이돌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가수'가 된 것으로 대우한다.

한국은 기본 월급이 없어서 데뷔 초기엔 사실상 무급 노동자 취급을 받지만, 어느정도 위치에 오르면 정산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며 이는 수익의 n%를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탑 수준에 오른 아이돌이라면 건물 하나씩은 갖고 있을 정도로 준재벌 반열에 오르지만, 그렇지 못한 무명 아이돌들은 수입이 한 푼도 없어서 부업을 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해야 한다.

반면, 일본 아이돌은 탑급이 되어도 월급제라 인기 아이돌의 경우 한국 아이돌과 비교하면 수익이 적지만, 안팔리는 비인기 아이돌도 월급제로 생활할 정도는 된다. 그렇다고 안팔리는데도 월급을 많이 줄리는 없고 안팔리는 일본 아이돌 대부분은 일반 회사에 취업해 받는 급료보다 훨씬 낮다. 그나마 이정도라도 받는 것은 대형 기획사 이야기로, 일본 중소 기획사 아이돌은 월급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어서 먹고 살기 힘든건 마찬가지다. 탑급은 아니더라도 바다건너 나무위키에도 항목이 있을 정도인 걸그룹 멤버들이 받는 연봉이 한화로 2천만원대다. 일본 유명 기획사 중 호리프로업프론트 프로모션의 급료가 비교적 잘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반대로 요시모토 흥업의 급료가 짠 걸로 유명하다.

3. 여자 아이돌 특징

3.1. 유사연애와 종속성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본 여성 아이돌은 철저한 '유사 연애대상'이라는 컨셉에 묶여있다. 이는 연애 경험이 부족한 소년이나 청소년들에게 마치 실제로 아이돌과 연애를 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들게 함으로써 장사를 하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여성 아이돌들이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런 수법은 써먹을 수가 없으므로, 아이돌 기획사들은 아이돌 스타들이 연애를 전혀 모르는 순수한 소녀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했다.

80년대에는 청순함, 순정과 같은 깨끗한 이미지와, 첫사랑이나 짝사랑 등을 다룬 풋풋한 소재의 노래를 들고 활동하였다. 또한 방송 인터뷰에서도 '애인 같은 거 없어요'라고 대답하며 연애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이미지를 쌓았다. 아예 '연애 금지'를 내건 소속사도 많았다. 물론,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처자들이 연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관심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7~80년대 일본인들은 순진했던 건지(…) 이런 상술이 통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지속적으로 아이돌 스캔들이 터져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츠다 세이코의 경우이지만, 마츠다는 이것을 역이용해서 '당찬 여성 스타'의 이미지를 구축, 당대의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물론 안티도 많이 생겼지만... 이때문에 기존의 아이돌 이미지에는 흠집이 갔다.

또한 9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욕'이 인지되면서 '순결하고 청순한 소녀'라는 것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반인들도 잘 알게 되었다.[25] 지금까지의 여성 아이돌이 추구하던 '유사 연애대상' 상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90년대 초반 불어닥친 여성 아이돌 빙하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한가지 특이사항은 이러한 사건과 로망 포르노등 성적 콘텐츠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여성 아이돌 팬덤을 구축하고 있던 소위 친위대남성들이 대거 다른 콘텐츠의 소비층으로 이동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소위 말하는 초식남계열 오타쿠들이 채우게 되었다. 일본의 락커이자 음악평론가 오키테 포르쉐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언제까지 그런 젖비린내 나는 걸 좋아할거냐'는 분위기가 생긴것이라 표현했다.

기존의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을 자신의 우상이자 지켜줘야할 상징적 여성으로 여기는 외향적인 남성들이 많았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노는' 부류에 들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아이돌에 대한 환상이 깨진 이들이 '현실의 여성'을 소비하러 이탈한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이상적인 순결한 소녀'에 대한 갈망을 가진 오타쿠층이 현실도피의 일환으로 아이돌이라는 허상에 목메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후술되는 '왜곡된 유사연애 모델'의 범람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침 1990년대가 오면서 아무로 나미에같은 카리스마적인 여성 아티스트들이 더욱 돋보이게되면서 아이돌이 활약할 장소는 더욱 없어진다.

그렇게 아이돌 빙하기가 끝난 90년대 후반 등장한 모닝구 무스메는 이전의 여성 아이돌과는 달리 친근하고 부담 없는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모닝구 무스메는 우타방 등의 예능 방송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면서 친한 친구같은 이미지로 다가갔다. 한정된 계층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상상 속의 연애대상'이라는 컨셉 대신 '재미있고 웃긴 여자애들'이라는 컨셉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덕분에 모닝구 무스메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등장한 여성 아이돌들 역시 성애 감정보다는 친근감으로 승부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퍼퓸이 있다. 퍼퓸은 퍼포먼스의 화려함이나 높은 퀄리티의 곡으로도 인기를 얻었지만, 멤버들이 예능 방송에서 보여준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모습(특히 아~쨩) 역시 퍼퓸이 인기를 얻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렇게 여성 아이돌의 컨셉이 변함에 따라 오늘날에는 일본 여성 아이돌을 단순히 '유사 연애대상'으로만 분석하기는 힘들어졌다. 아이돌이라고 해도 소구방향과 포지셔닝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이다. 48그룹 재적시절 스캔들을 네타거리로 썼던 사시하라 리노는 유사연애가 아닌 주체적인 예능인이자 거의 준 프로듀서의 포지션에 있고, 퍼퓸(일본)멤버들은 되려 스캔들이 없는 멤버에게 팬들이 되려 '가장 예쁠 나이인데 연애도 좀 하고 그래라'고 응원을 하고 있다. 걸즈 퍼포먼스 유닛을 표방하는 이걸즈는 여초팬덤과 kpop 아티스트에 가까운 컨셉으로 아예 소속사 사장이 나서서 연애를 장려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여성 아이돌의 환상에 그대로 넘어가버리는 극성 오타쿠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안타깝게도 일본에서는 아직도 이런 유형의 소비자들이 '아이돌 시장'의 주요 소비자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술된 아이돌 팬덤의 성향 변화와 맞물려서, '유사 연애대상'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일본 여성 아이돌 업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유사 연애대상 모델이 일본 여성 아이돌 업계에 남긴 가장 큰 악습으로는 '연애 금지'를 들 수 있다. 과거의 여성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었는데, 그런 관습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1970~1980년대의 아이돌 팬들은 '나의 아이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인식했다는 것이지만, 2010년대의 아이돌 팬들은 '여자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연예계의 오랜 규칙이니까 그냥 지켜야 한다'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인기 아이돌 성우였던 히라노 아야의 스캔들때나 토요사키 아키의 스캔들이 대표적인 사레다. 굳이 한국에서 비슷한 예를 찾자면 아이유은혁의 스캔들 당시 "나의 아이유는 그렇지 않아"라고 발광하면서 과도할 정도로 아이유를 비난했던 일부 남성 팬들이 있다. 재미있게디 오히려 한국에서는 남성 아이돌에 대한 유사연애 풍조가 심한 편으로, 대표적으로 "변백현 돈 내놔" 사건이라든지, 최근에는 연애했다는 이유로[26] 소속사에서 잘린 이던-현아 사건이 있다.

AKB48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2013년 들어 'AKB48에 연애 금지 룰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고 밝혔다. 물론, 이것은 미네기시 미나미 삭발 사건에서 온 연애금지 규칙에 대한 비판 때문에 나온 변명에 가깝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하기는 했었다. 실제로 사시하라 리노가 연애 금지 룰이 없어지고 자기 책임제로 바뀌었다고 증언하는 등, 연애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대해진 것은 사실이다. 팬들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큰 논리적 모순이 존재하는데... "아이돌의 연애가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변도 없이 '아이돌이니까'라는 두루뭉술한 얼버무리기로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여성'이 아닌 '순결한 아이돌'이라는 허상 그 자체를 소비하는 형태로 변화하였음을 의미한다.

일본 아이돌들은 어린 나이에 데뷔하고, 대부분의 노래는 짝사랑이나 상대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혹은 이렇게 부족한 나지만 사랑해달라는 피동적이고 종속적인 형태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는 서툰 노래와 안무와 어우러지면서 철저하게 아이돌을 존경할만한 '우상'의 위치에서 완벽하게 끌어내려버렸다. 이는 한국의 여자 아이돌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널 좋아하니 내가 반드시 쟁취한다', '헤어질거면 찌질대지 말고 떠나라', '너 없이도 난 당당하다'와 같은 내용의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가사 내용의 노래가 나오며 대조를 이룬다. 일본에서는 아직까지도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여린 소녀 컨셉이 각광받으면서 활발히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부터 남자들에게 어린 소녀와 손잡고 이야기할 기회(악수회)나, 껴안을 기회(허그회)를 돈받고 파는 시점에서 '아이돌은 유사연애가 아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을리도 없다.

AKB48을 비롯한 48사단과 자매그룹 노기자카46등의 경우는, 악수회나 투샷회처럼 팬들이 아이돌을 직접 만나 접촉할 수 있는 이벤트를 주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유사연애 마케팅이다[27]. AKB48의 멤버들은 악수회에서 팬들에게 대하는 태도에 따라 팬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그 평가에 따라서 인기에 영향이 크게 미친다. 와타나베 미유키하타 사와코처럼 악수회에서 오타쿠들에게 웃음을 잘 지어주고 말을 잘 해주는 멤버들은 소위 '神'이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제 아무리 춤이나 노래가 뛰어나고 미모가 빼어나도 악수회에서 오타쿠들에게 아양을 떨고 비위를 맞춰주는, 소위 '설탕/카미 대응'을 제대로 못하면 인기를 얻는게 불가능하다. 물론 수백명에서 수천명까지 상대하는 악수회에서 지치지 않고 연기를 하는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지만 정작 본업인 가창력과 댄스 실력보다는 이런 부수적인 곳에서 인기가 좌우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퍼퓸의 브레이크와 곧 이어진 한국의 걸그룹의 일본 진출과 러쉬로 인해 유사연애보다는 가수로서의 능력을 전면에 내세운 아이돌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큐트, 9nine, DiVA, 페어리즈, 도쿄죠시류, E-Girls(Dream, Happiness, FLOWER, bunny)~~,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아울러 모모이로클로버 Z 도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앞의 케이스에 부합하진 않는다. 이들이 공연 위주로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유사연애 노선을 약간 변형한 쪽에 가깝다.

유사 연애보다는 가수로서의 능력을 앞세운 이런 그룹들은 자신들이 아이돌임을 자칭하고 아이돌이라 볼 수 있는 속성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긴 하다. 10대 초중반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예능 활동을 겸업하며, 자신들의 비주얼도 또한 적절히 활용한다. 이들은 기존의 AKB사단을 비롯한 유사연애를 바탕으로 오타쿠들을 집중적으로 상대하는 아이돌 산업에 염증을 느낀 대중들이나 혹은 비주얼과 가무를 겸비한 여성 가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비록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차츰차츰 팬층을 확보해 가고 있다. 한일관계의 냉각으로 인해 한국 아이돌의 인기가 식어가는 중이라 비슷한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이들의 성장이 기대되는 중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비주얼과 남성팬' vs '가창력과 음악성'을 무기로 한 노선의 대비가, 이미 마츠다 세이코나카모리 아키나때 이미 이뤄진 구도라는 점이다. 이런 황금기 시절 아이돌 노선을 잇는 아이돌로는 대표적으로 큐트스즈키 아이리가 있다. 이러한 퍼포먼스 노선을 타기 위해서는 아티스트에 준하는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컨셉을 쉽사리 선택할 수 있는 그룹도 드물고, 설령 실력이 있다고 해도 콘텐츠가 대중들의 눈높이에 들 정도로 훌륭하지 않다면 애매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28]

그래서 일반 대중이 보기에 "얘들 노래 좋네? 무대도 좋고."하는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유사 연애대상으로서 오타쿠들에게 소비되는 아이돌과 비교해서 우위를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3.2. AKB48 위주의 시장 구도

모닝구 무스메Perfume까지의 구도는 확실하게 곡의 성공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이 후에 비롯한 인기 아이돌의 계보는 상당히 독특하게 이어지고 있다.

2010년대에 가장 성공한 걸그룹인 AKB48는 극장을 기반으로 총선거, 악수회 시스템을 최초로 만들며 동시대를 지배했다. 파생적으로 48그룹을 만들었는데 이 흐름은 아키모토 야스시가 제창한 거점 아이돌 그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 등을 기반으로 해서 그것을 전국으로 연결하는 독특한 형태로 성공했다. 노기자카46의 히트는 AKB48가 기틀을 다진 악수회 시스템 + '오죠사마(아가씨)'컨셉의 아이돌. 이러한 48 그룹식 시스템을 벗어난 아키모토의 시험적인 작품. 이 역시도 빅히트를 쳤다. 케야키자카46 역시도 침묵하는 아이돌, 웃지 않는 아이돌을 기반으로해서 빅히트했다. 결국 2010년 내내 48/46 그룹, 즉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스 그룹이 여성 아이돌계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련의 아키모토 야스시가 인기 그룹을 만들 때는 '기존에 없는 아이돌'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점. 하로프로나 아이돌링 같은 기존 아이돌 시스템을 벗어난 독특함이 그들의 성공의 비결이었다. 무엇보다 아키모토는 자신의 인맥과 스폰서를 이용해 TV를 적극 활용했다. 종래의 아이돌의 성공에는 그가 만든 시스템이 기본 베이스일 정도로 시장의 선두격인 인물. 다만 그룹을 띄우는 데 있어 가무실력을 배제하고 그라비아, 악수회 등 여성의 성 상품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AKB48만 해도 '얘들이 술 안 파는 캬바쿠라 직원이지 아이돌이냐'는 극단적인 비판에도 반박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있다.[29]

48그룹 시스템을 벗어나 인기를 만든 그룹으로는 Perfume, 모모이로클로버Z, E-girls, BABYMETAL 등이 있다. 다만 2013년 이후에 데뷔한 그룹 중에서 좀처럼 빅히트하는 아이돌이 나오지 않고 있다. 케야키자카46는 '사카미치 시리즈'라는 후광에 힘을 입은 측면이 크며, 그 외에는 덴파구미.incBiSH가 그나마 메이자 음방 출연이나 아리나급 콘서트 정도의 성과를 보인 것이 전부. 종래의 컨셉을 벗어나지 못하는 양산형 아이돌이 늘어나고 있고 대부분이 소규모 라이브나 접촉 등 마이너 아이돌의 활동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어필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실력파 아이돌의 빈 자리를 한국 아이돌이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수요를 채우는 중이다.

4. 남자 아이돌 특징

4.1. 쟈니즈 사무소의 독점

일본 내 남성 아이돌은 90년대 이래로 쟈니스 사무소가 독점하고 있다. 쟈니스가 지금처럼 탑급 기획사가 아니었던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쟈니스에 경쟁할 만한 남성 아이돌 기획사가 있었다. 70년대의 신 고산케라든지 80년대를 풍미한 그룹 체커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콘도 마사히코, 소년대로 이어지는 부활기를 거쳐 히카루GENJISMAP의 히트로 인해 쟈니스는 남성 아이돌계의 1인자로 성장하였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걸쳐 라이징 프로덕션에서는 w-inds., Lead 등의 남성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켰고 w-inds.는 실제로 큰 인기를 얻었으나 언제부턴가 방송 출연이 뜸해지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이를 두고 쟈니스의 외압이 들어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설사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쟈니스의 적극적인 외압을 통한 결과인지는 입증할 수 없다.

2000년대 들어서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크게 성공하고, 이에 힘입어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 2PM 등의 한류 아이돌이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팬덤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이런 쟈니스 중심의 시장에 변화가 오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한류 아이돌의 인기는 어디까지나 '한류 팬'이라는 특정 계층에 한정된 것이라는 한계점도 있었다. 게다가 2012년 들어서 한일간의 정치적 관계가 냉각되었고, 이에 따라 한류 아이돌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응도 사그라들었다. 일본의 음악이나 오락 방송에서 한류 아이돌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음반 판매량도 폭삭 주저 앉았다.

그 대신 2012년 무렵부터는 EXILE, J Soul Brothers를 필두로 한 LDH 계열 그룹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그룹은 쟈니스에 비해 남성적인 이미지와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는 곡을 들고 나오면서 기존 쟈니스와는 달리 남성층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이를 두고 기존 한류 아이돌의 수요를 어느 정도 흡수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확하게는 일본 대중이 가지고 있던 '남성미' '강인함'에 대한 수요를 한류 아이돌들이 채워주다가, 자국 그룹인 엑자일, 산다이메 등이 등장하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추측으로, 이는 여성 아이돌판에서 역시 LDH소속인 이걸즈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해석. 실제로 한류 아이돌들이 하던 광고를 LDH계열 그룹들이 이어받은 경우가 종종 보인다.

반면 쟈니스는 TOKIO, KinKi Kids, V6는 안정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쟈니스가 데뷔시킨 아이돌 중 "국민 아이돌"이라고 부를 만큼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1999년 데뷔한 아라시가 사실상 마지막이고, 그 이후 데뷔시킨 NEWS, Kis-My-Ft2, KAT-TUN, Hey! Say! JUMP 등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해 거의 절반쯤은 그들만의 리그로 들어가 버린 게 아니냐는 평이 있다. 실제로 쟈니스 신규 그룹의 팬덤은 대부분 다른 그룹 팬질을 하다가 치비 주니어 시절부터 곁다리로 봐 온 멤버들이 데뷔했을 때 팬심이 이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그룹들이 활동하면서 판매량이 느는 게 아니라 정체되거나 줄어들고, 아예 KAT-TUN이나 Hey! Say! JUMP처럼 데뷔싱글이 디스코그래피 최고판매량인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나 국민 아이돌이라는 칭호를 얻는 그룹이 매번 나올 리가 없기도 하다. 많은 비판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남성 아이돌 시장은 "방송국에서 쟈니스 소속 연예인을 빼면 방송이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왕왕 돌아다닐 정도로 쟈니스 사무소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기우 역시 쟈니스와 쟈니스의 대결에 불과하다.

오히려, 2015년 이후 새롭게 부상한 '3차 한류'에 따라 쟈니스 출신 아이돌이 채워주지 못하는 수요량을 한국 아이돌이 메꾸는 중이다.

5. 역사

5.1. 1970년대 이전

일본에서는 1960년대 이전까지는 가수나 배우를 대상으로 아이돌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미소라 히바리요시나가 사유리처럼 인기가 있는 여성 스타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그냥 '청춘 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으나, 1970년대에 젊은 층을 대상으로 대중가요를 부르는 청순파 가수를 가리키는 의미로 '아이돌 가수'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일본의 아이돌의 경우 단어 등장 초기에는 남성을 지칭하는 것보다는 주로 여성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50~60년에 당시 프랑스 영화와 스타들이 일본인들에게 굉장한 붐을 끌었다.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아이돌을 찾아라'(Cherchez Idole!)와 같은 영화들과 영화스타들 그리고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여가수들인 ye-ye GIRL들의 붐이 일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잠깐 동안 활동하기도 하였다. 실제 당시 일본 여가수들은 엔카가수들을 제외한 LP판들은 거의 다 폰트, 디자인, 패션 등의 면에서 ye-ye GIRL의 LP판과 비슷했다.

1963년, 프랑스의 Sylvie Vartan(실비바르탕):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 (1963, Cherchez l'Idole)
이들은 프랑스에서 "ye-ye GIRL"이라고 불리며 패셔니스타로 지칭되는 등 수영복 화보를 찍기도 하였다. 그리고 1963년에 데뷔한 "65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수상자인 프랑스갈 등이 인기가 많았다.

당시 유럽가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세트구성과 룰이 비슷한 일본의 <스타 탄생>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게 되는데. 실질적인 여자 아이돌 스타들이 이곳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아마추어 가수든, 데뷔하지 않았든, 프로가수든, 신곡을 가지고 노래를 불러서 경쟁하는 룰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프랑스 출시 아이돌의 득세로 일본에서는 아예 '프랑스갈(걸)' 이라는 용어로 통칭에 여자 아이돌을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등장했던 마츠다 세이코 류의 아이돌들이 프랑스갈 스타일의 전형.

5.2. 1970년대

고 히로미, 사이조 히데키, 노구치 고로, 야마구치 모모에, 사쿠라다 준코, 모리 마사코, 아사오카 메구미, 핑크 레이디, 캔디즈 등이 대표적인 70년대의 아이돌로 아이돌 붐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기였다.

핑크 레이디가 일본 여성 아이돌 붐의 시초를 열었다고 기록되고 있으며, 이 시절은 야마구치 모모에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는데 야마구치 모모에는 아이돌의 필수 덕목(청순함, 가련함, 적당한 가창력, 외모)을 확립하며 여성 솔로 아이돌의 시작점을 열었다.

5.3. 1980년대


※ 1980년 마츠다 세이코 - 푸른 산호초

쇼와 시대에는 아이돌 산업이 엄창나게 번창하여 수많은 아이돌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아이돌 붐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80년대는 70년대부터 시작된 아이돌 붐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 아이돌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대표 격으로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콘도 마사히코, 타하라 토시히코, 히카루GENJI 등을 꼽는다. 1980년에 마츠다 세이코, 카와이 나오코, 카시와바라 요시에, 타하라 토시히코, 콘도 마사히코 등이 데뷔한 아이돌 풍작을 기반으로 82년에는 엄청난 수의 아이돌이 데뷔해, 당시 데뷔한 아이돌들을 '꽃의 82년조'라고 불렀다. 나카모리 아키나, 코이즈미 쿄코, 하야미 유, 호리 치에미, 이시카와 히데미, 마츠모토 이요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버블 경제 시절처럼 엄청나게 수많은 아이돌이 쏟아져 나왔고 그들 대부분 거품같이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인 마츠다 세이코는 야마구치 모모에가 은퇴하고 바통 터치를 하듯 데뷔해 아이돌이 어떻게 롱런 아티스트로 변해갈 수 있는지 그리고 당시 아이돌로서 치명적인 스캔들이 터져도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면서 후대의 일본 여성 아티스트의 길을 제시했다.

한편, 이 마츠다 세이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라이벌로 나카모리 아키나가 있다. 한편 나카모리 아키나가 정점에 오른 것은 마츠다 세이코가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무기한 정지한 와중이었기 때문에, 나카모리 아키나를 모모에-세이코를 잇는 후계자 격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나카모리는 82년에 데뷔한 이래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 마츠다 세이코가 결혼과 출산 등으로 주춤하던 시기에 여성가수 최초로 일본 레코드 대상 2연패를 달성하고, 가수별 연간 매상 순위에서 총 4회의 1위를 차지해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나카모리는 대세였던 기존 아이돌의 밝고 귀여운 음악에서 탈피, 특유의 프로듀싱 능력과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을 길러 마츠다와 대적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츠다와 나카모리는 각각 2900여만, 2500여만의 총 판매량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80년대 아이돌 중 최고에 달하는 수치이다. 최근의 아이돌들까지 합해도 SMAPAKB48, 아라시 정도가 이 위에 있다. 애초에 2000만장 이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7~80년대 아이돌은 이 두 사람이 유일하다.

80년대 중반에는 키쿠치 모모코, 오카다 유키코, 혼다 미나코, 사이토 유키 등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후술할 '아이돌 4대 천왕'은 전원 85년도에 데뷔했다. 또한 80년대 후반에는 4대천왕 외에도 사카이 노리코, wink, 모리타카 치사토, 와타나베 마리나, 와타나베 미나요, 오기노메 요코 등 무수히 많은 거물 급의 아이돌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끈다.

한편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후지테레비의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오냥코클럽이 국민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평범한 여고생들이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컨셉을 통해 남자 중고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쿠도 시즈카도 이 그룹 소속이었다. 비록, 오냥코클럽 자체는 3년밖에 가지 못했지만 오냥코클럽의 성공은 현재의 모닝구무스메AKB48 같은 아이돌 그룹의 초석을 완벽하게 다져 놓았다. 그러나, 실력이 없어도 전략과 상술만 좋으면 성공한다는 전례를 남김으로써 아이돌 전체의 품질 저하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또한, 이런 식으로 양성된 아이돌은 '성공의 과실'이 본인들이 아니라 '전략가'들이 가져가게 된다는 선례도 남겼다.

80년대 후반에는 포스트 마츠다 세이코 세대로서, 같은 해에 데뷔했던 쿠도 시즈카, 아사카 유이, 나카야마 미호, 미나미노 요코아이돌 4대천왕이라 불렸다. 음반 총 판매량은 나카야마 미호(1497만)>쿠도 시즈카(1487만)>미나미노 요코(563만)>아사카 유이(297만) 순이었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의 진출까지 하면서 확고한 산업체계가 구축된다. 이 아이돌 4천왕이라는 칭호는 9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었다.
80년대말 아이돌 4대천왕 메들리

이 즈음에 인기가 높았던 또 다른 아이돌이 코이즈미 쿄코. 쿄코는 사실 '꽃의 82년조'의 일원으로 나카모리 아키나와 데뷔 동기인데, 데뷔 후 점점 인기가 높아져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최전성기를 맞았다. 이 때 그녀는 "CM의 여왕"이라 불리며 '코이즈미 쿄코를 광고에 기용한 상품은 무조건 팔린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냈다. 일설에는 상품의 매상이 10%가량 올랐다고 한다. 90년대 이후로는 여배우로 사실상 전향.

그러다가 80년대 말부터 J-ROCK 밴드와 싱어송라이터들의 부상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기존 아이돌의 인기는 저하하고, 90년대의 반 아이돌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5.4. 1990년대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 JPOP

80년대 말에 이르면서 엑스 재팬이나 LUNA SEA같은 락 밴드를 필두로 '밴드 붐'이 크게 유행하며 아이돌 붐이 가라앉아 '아이돌 암흑기'라는 말이 생겨났다. 80년대까지 대형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에 대한 반감은 인디즈 시장의 확장 및 매니아 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고, 비쥬얼계의 끝물과 함께 GLAY, LUNA SEA 등의 밴드가 강력한 여성팬층(+락음악의 팬인 남성팬들)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아이돌의 지분을 침식한다. 사실상 CoCo와 Ribbon의 해체년도인 1994년을 마지막으로 70-80년대식 정통아이돌의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대신 아이돌이라는 말 자체에 '특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라는 의미가 붙었다. 그래서 아이돌 여배우, 아이돌 성우, 그라비아를 중심으로활동하는 그라비아 아이돌, CF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CM아이돌 등의 단어가 생겨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이러한 아이돌 마케팅의 히로스에 료코가 국민 여동생급의 인기를 얻으며 80년대 이후 위축되어 있었던 여자 아이돌 시장을 크게 확장하였다. 또한 주로 노래도 부르면서 댄스, 작사, 연기와 예능 등에도 강한, 엔터테이너적인 성향을 중시하는 '1인 아이돌'이 대두되었던 시기기도 하다. 이 때 인기를 얻은 아이돌은 시노하라 료코, 치넨 리나, 우치다 유키, 미즈키 아리사, 마키세 리호 등이 있다.

이렇게 배우, 모델, 그라비아 아이돌 등 여러 형태의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여성 아이돌 가수 시장은 90년대 초반 잠시 위축기(아이돌 빙하기)를 맞았다. 90년대 초반 활약했던 아이돌 중 가수만을 전업으로 하는 것은 CoCo가 유일하다.

90년대 중반에는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한 솔로 아이돌 가수인 카하라 토모미아무로 나미에가 등장하여 서로 경쟁하였으며,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스즈키 아미하마사키 아유미가 인기를 다투었다. 한편 그룹 아이돌 가수로는 SPEED가 음반 판매량 180만 장을 기록하며 거의 전설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에서 반 아이돌 기류가 가장 팽배했던 시기로, 여자 아이돌의 주고객층인 남성팬들은 애니메이션, 만화, 인디즈 시장의 고객으로 변하게 된다. 반면 남자 아이돌은 쟈니스 사무소 계열로 대표되는 특정 회사의 독식이 아주 크게 나타나며 SMAP, Kinki Kids, TOKIO, V6 등이 주류가 되었다. 그중 SMAP이 기존 아이돌의 단편적인 이미지를 깨 버리고 버라이어티에 나가며 망가지거나 진행을 하면서 '멀티 엔터테이너' 아이돌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국민 아이돌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KinKi Kids가 26년만에 아이돌 데뷔 싱글 판매량을 <유리의 소년>으로 179만장으로 갱신하면서 SMAP의 뒤를 이은 국민 아이돌로 평가받으며 5개의 고정방송이 시작하고 CD 데뷔 전부터 출연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29%가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또한 두번째 싱글인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고 싶어>가 164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2번 연속의 밀리언 싱글을 내는 등 음반 판매량에 있어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

5.5. 2000년대


2001년 모닝구무스메

2002년 마츠우라 아야

2000년대에 들어서 솔로 여성 아이돌이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2001년 데뷔한 마츠우라 아야는 히로스에 료코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솔로 여성 아이돌로 평가받는다. 노래 실력도 있고 외모도 출중하며 연예 감각도 뛰어나서 각종 오락 방송과 CM을 독차지하면서 소위 '국민 여동생'의 지위에 올랐다. 음악성도 있고 스타성도 뛰어난 정통파 여성 아이돌이 차지하던 시장은 하마사키 아유미, 오오츠카 아이, 코다 쿠미 등 솔로 여성 아티스트가 차지하였다. 이로서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선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정통파 여성 아이돌이 사라진 자리를 모닝구 무스메와 같은 헬로! 프로젝트 아이돌이 메웠다. 모닝구 무스메는 친근한 이미지와 방송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 등을 통해 기존의 아이돌 팬층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국민 아이돌의 자리에 우뚝 선다. 모닝구 무스메의 대성공 이후 여성 아이돌에게는 가수로서의 실력보다 방송인으로서의 센스를 더 많이 요구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국보다 약 10년 정도 빠르게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같은 컨셉의 '과거 아이돌 재데뷔 프로그램'이 나왔으나 역시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미 아이돌의 개념이 많이 바뀐 상황이기 때문에 예전 암흑기에 스러져간 유망주들을 발굴해 봤자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기 쉽지 않기 때문.

한편으로 새로운 아이돌 컨셉을 제창하며 등장한 4인조 밴드형 여성 아이돌 그룹 ZONE이 2000년에 메이저 데뷔하며, 밴드라는, 여성 아이돌계에 새로운 블루오션 영역을 개척하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홋카이도의 사무소에서 결성되어, SPEED를 롤모델로 하는 댄스 그룹을 목표로 연습하던 ZONE은, 인디즈 시절에 발표한 밴드 컨셉의 PV제작을 계기로 아예 밴드 아이돌로 노선을 튼다. 그리고 소니뮤직을 통한 메이저 데뷔 이후 이게 제대로 먹혀서 10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하는 등 크게 성공했다.

활동 당시 소니뮤직은 밀레니엄에 맞춘 아이돌 그룹이라며 밴돌 (밴드 + 아이돌)이라는 컨셉으로 그룹을 소개했었다. 댄스 아이돌로 연습생을 시작했던 탓에 처음에는 악기 포지션만 서로 나누어져있고, 악기를 들고 핸드싱크와 함께 춤을 추는등, 연주력은 없다시피했으나, 본인들의 노력으로 연주력과 음악성을 점차 강화했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댄스 퍼포먼스를 내세우는 순수 댄스곡도 이따금씩 발표하는 등 복합적인 컨셉으로 형태를 유지했다. 아이돌이지만, 아티스트적인 요소를 어느정도 갖추고 있었고, 점차 그러한 실력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아이유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후 에이벡스비전팩토리 등에서 시도했던 SweetS, dream, Folder5 등의 댄스 걸 그룹들은 인기를 얻지 못했다. 또한 모닝구 무스메도 2002년 이후 판매량이 급감하고, 모닝구 무스메 소속사의 장기의 포석이었던 헬로! 프로젝트도 방송을 통한 대중적인 접근보다는 투어,굿즈 위주의 수익성을 추구하면서 황금기보다는 매상이 떨어지게 된다. 이후 일본 내의 여자 아이돌은 오타쿠 전용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대중적 관심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로 일본 내에서 여성 아이돌이 침체기를 겪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 여성 그룹의 침체기와 겹친다.

다만 모닝구 무스메 이후 침체기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90년대 이후 계속 침체기가 이어졌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다. 사실 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말까지 계속해서 여성 아이돌 시장은 암흑기였다. 2000년대 초반에 모닝구 무스메가 엄청난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인기는 여성 아이돌이라는 시장 자체의 부흥이 아니라 모무스라는 그룹 하나의 인기에 지나지 않았던 데다가 그 기간도 매우 짧았기 때문.

2007년을 기점으로 퍼퓸이 7년 무명 끝에 큰 인기를 끌어 50여만 장에 달하는 음반 판매와 무도관 입성을 이루고, 뒤를 이어 모닝구 무스메 이상으로 까이던 AKB48이 연달은 히트, 싱글 20만 매 이상 판매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여성 아이돌계 탑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 두 그룹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업계 전반적으로는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으며, 2020년대가 가까워지는 현재에도 J-POP의 주류는 아이돌 컨셉이 아니라 싱어송라이터 컨셉이나 J-ROCK이다.

이 시기 쟈니스 사무소 로 대표되는 남성 아이돌은 90년대의 전성기를 이어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데뷔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아라시가 2000년대 중반부터 <Love so sweet>등의 곡을 히트시키며 대중과 팬덤을 모두 잡았으며, 이후 2018년까지 10년 연속 선배들의 뒤를 이은 국민 아이돌로서 멈추지 않는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새롭게 데뷔한 KAT-TUN이 팬덤의 지지에 힘입어 100만 장이나 되는 판매고를 올리는 등의 성과를 올렸고, 이를 통해 쟈니스는 여성 아이돌에 비해 매우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에 맞서 라이징 프로덕션에서는 윈즈, 다 펌프, 리드 등의 남성 아이돌을 데뷔시켰지만 쟈니스의 독점 등으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성우 업계에서는 이 시기에 미즈키 나나,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3명이 애니메이션 음악 쪽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성우 아이돌 고산케로 불렸으며 현재도 높은 인기를 가진 채로 성우 가수로서 활동 중이다.

5.6. 2010년대


2013년AKB48

일본 여성 아이돌계는 2010년대 중반까지 '아이돌 전국시대'라는 말이 미디어에서 통용될 정도의 호황을 이루었다. 이는 2010년 폭발한 AKB48 붐에 따라 여성 아이돌 시장 자체가 커진 덕분이었다. 모모이로클로버Z 등 스타더스트 소속 그룹은 콘서트 위주의 활동으로 막강한 동원력을 자랑하고 있고, E-girls 등 LDH 소속 그룹은 EDM 위주의 음악과 퍼포먼스성을 내세운 무대로 주로 1~20대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뮤즈 소속 퍼퓸BABYMETAL은 각각 특유의 음악성으로 롱런하였다. 또한 이 시기 여성 아이돌 업계는 지하 아이돌로컬 아이돌이 대두된 것도 특징이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여성 아이돌 시장은 축소되고 있다. 기존의 인기 그룹들의 인기가 줄어들었고, 48, 46, 스타더스트, LDH, 아뮤즈, 하로프로 등 기존 여성 아이돌 주요 사무소 이외의 신인이 두각을 드러내는 일도 덴파구미.inc, BiSH를 제외하면 없었다. 노기자카46케야키자카46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성 아이돌 시장 자체를 띄우지는 못하고 있다.

남성 아이돌은 여전히 쟈니스 사무소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아라시가 국민 그룹으로 활동하는 한편 후배 그룹들도 비록 아라시와 같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룹은 아직 없지만 쟈니스라는 기반이 워낙 탄탄하다 보니 별 문제 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SMAP의 해체와 TOKIO, NEWS의 잇따른 미성년자 음행 사건과 더불어 기대주였던 KAT-TUN이 멤버 탈퇴 등의 내홍을 겪으며 부진한 가운데, 칸쟈니∞이 선전하고 있으며 Kis-My-Ft2가 신인 중에서는 기대를 받고 있다.

LDH의 EXILE 계열 그룹은 원래는 아이돌이 아니었지만, 젊은 멤버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아이돌성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 라이징 프로덕션 남성 아이돌은 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모모이로클로버Z스타더스트 프로모션에서 이 시기 남성 아이돌 그룹을 여럿 데뷔시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2010년대에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도 큰 활약을 하고 있다. 2010년 소녀시대, 카라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K-POP에 관심이 있는 일본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져서 '한류'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한일관계가 냉각되면서 한류 붐은 냉각기에 들어갔지만, 한류의 고정 팬층과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이 지속적인 일본 진출로 인해 고정적으로 시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빅뱅, iKON, BLACKPINK, 샤이니, EXO 등을 비롯한 다양한 그룹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에는 TWICE방탄소년단이 일본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다시 한 번 식었던 한류 붐을 다시금 촉발시켰고, 여기에 힘입어 SEVENTEEN, IZ*ONE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2019년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다시 냉각되면서 앞으로의 전망은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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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한국에서도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실력 차원에서 아이돌을 디스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이돌의 직업이 일단 가수임은 인정한다. 이런 비판 자체가 이들에게 가수로서 자격이 충분한가, 즉 아이돌의 본분=가무 실력이라는 전제 하에서 나온다.[2] 등장하지 않았다는게 아니다. 유사연애 아이돌들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뿐. 단적인 예로 진정한 의미의 '정통파'솔로 아이돌을 지망했던 무토 아야미는 악수회도 하지 않고 방송활동도 거의 하지 않아 인지도가 거의 없다. 이렇게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는 셀 수 없이 많다.[3] 사실 2010년대 현재에도 '정통파'를 자칭하는 아이돌들은 많지만, 이들이 말하는 '정통파'는 7080년대의 진짜 정통 아이돌의 '컨셉 이미지'에 48사단이 구축한 '악수회형' 스펙을 섞은 아류인 경우가 많다. 진짜 정통 아이돌이 지녔던 뮤지션으로서의 능력은 그녀들에게 없다.[4] 다만 프로는 절대 아니다. 아이돌들은 이것저것 많이 하지만, '아직 서투르지만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세일즈 포인트다. 때문에 실력이 별로라도 다른 방송인들이 웃으면서 귀여워해준다. 그런데 만약 아이돌 졸업하고 혼자 나오면? 그때부터는 부족한 실력과 실수에 대해 가차없는 평가와 비판이 가해진다.[5] 한국도 이점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일본은 실력이 뛰어나든 못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고 한국은 기본적인 실력 이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90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을 지나오며 점점 상향평준화가 되어 평균의 수준이 일본보다 높아져 있다. 그렇지만 실력이 뛰어나도 아이돌의 경우 거의 대부분 본인들이 곡을 만들지 못하고 곡에 어느정도의 의견개진을 하는 정도가 최대한의 참여이기 때문에 기획사의 역량에 따라 뜨느냐와 못뜨느냐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실제로 가창력, 춤, 외모가 출중한데도 곡 선정 및 컨셉이 이상하거나 기획사의 능력부족으로 못 뜨는 아이돌이 허다하다.[6] 그중에서도 특히 SMAP.[7] 단적인 예로 AKB48과 쟈니즈는 일본에서도 '안무하나 안맞는 립싱크 군단'등 저조한 퍼포먼스에 대해 비판받고 있다.[8] 이전부터 자체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구축하고 아이돌을 제작하는 회사는 일본에도 있었다. 하로프로는 '에그' '연수생' 이라는 이름으로 연습생제도를 운영했고, 아뮤즈는 실용음악 학원인 액터즈 스쿨과 결연을 맺고 트레이닝된 인재를 데려오거나 사쿠라 학원같은 견습팀을 운영하고 있다.[9] 음악스타일만 봐도 알겠지만 말랑말랑한 아이돌용 걸팝에 아키모토 야스시가 만든 선정적인 가사를 얹은 오냥코와 미국 팝씬, 특히 R&B의 영향을 받은 스피드를 동일선상에 놓는건 무리다.[10] 데뷔곡은 20만장이 팔렸지만, 해체직전 오냥코 클럽의 싱글은 십만장도 채 안팔렸고 마지막 콘서트도 3만명 규모인 요요기에서 단발성 공연으로 이뤄졌다. 까놓고 말해 85년 말~87년 초까지 일년정도 반짝하고 끝났다.[11] 2명은 싱글 활동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하이터치회 셔틀(…) 취급이냐며 논란이 있었다. 그룹 항목 내 멤버 차별 논란 참조.[12] 이들은 쟈니스 주니어다![13] 사실 허그회까지만 가도 캬바쿠라보다 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캬바쿠라는 신체접촉이 금지다. 허그회도 말이 허그회지 대놓고 멤버들을 만지작 거릴 수 있게 풀어놓은 이벤트나 다를바 없다. 물론 개중에는 '음반전달회'라고 매장에서 CD를 구입하면 멤버가 그걸 소비자에게 건네주는 이벤트라던가 시디를 사면 미니 라이브에 초대한다거나 하는 비교적 건전한 이벤트도 있긴 하다.[14] Perfume 싱글이 70,000~80,000여장, 모모이로클로버Z의 싱글은 보통 4~5만장 정도 팔리는 정도로, 48사단의 자매그룹의 10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Perfume이나 모모이로클로버가 '48사단 자매그룹'보다 인기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15] 일례로 SUPER☆GiRLS는 각종 접촉 이벤트를 통해 싱글을 10만장 가까이 팔기도 했으나, 각종 이벤트와 티켓 떨이판매를 동원했음에도 무도관의 절반정도밖에 채우지 못했다.[16] 예를 들어 관서지방은 홀 규모 공연장이 모두 매진인데 관동지방은 제프도 어렵다면 그 가수의 인기는 관서지역 한정이라고 볼 수 있다.[17] 길거리에서 노래가 많이 들린다거나, 주변의 대화에서 화제가 된다거나 하는 식.[18] 소속사가 사귀거나 사귄적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명한 한국 아이돌 커플의 예시이다. 블랙핑크 제니-엑소 카이, AOA 설현 - 블락비 지코, 소녀시대 태연-엑소 백현, 소녀시대 윤아-이승기, 소녀시대 수영-배우 정경호, 소녀시대 티파니-2PM닉쿤, f(x) 크리스탈-엑소 카이, EXID 하니-JYJ 김준수, 티아라 소연-클릭비 오종혁, 카라 구하라-비스트 용준형, 펜타곤(아이돌) 후이-(여자)아이들 수진, 트와이스 지효-강다니엘 등. 이 중 누구도 열애설만으로 소속사 차원에서 공식적인 사과 성명을 발표(SNS 등에서 팬들에게 도의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한 아이돌은 있다)하거나 탈퇴 등 불이익을 겪은 아이돌은 없다. 탈퇴당한 경우는 소속사의 공식발표를 다음날 SNS로 뒤엎은 현아이던뿐이고 그 밖에 탈퇴한 경우는 결혼, 임신 등으로 아이돌 활동 자체가 어려워진 경우이다.[19] 손해배상 청구당한 일본 아이돌은 메챠하이(정식 명칭은 아오야마세인트 하챠메챠하이스쿨, 오리콘 차트 주간 7위까지 해본적 있어 완전 무명은 아니다)의 멤버인 미우라 세나로 소속사에서 연애금지규정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걸었는데, 놀랍게도 2015년 소속사가 승소해서 65만엔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물론 그룹에서도 탈퇴당했다.[20] 인디 밴드로 라이브 등으로 활동하다가 인디즈 앨범을 내고 이게 메이저 음반사 눈에 띄어 계약하고 메이저 앨범으로 데뷔해, 여기서 더 인기를 얻어 스타가 된 경우, 소속 레이블(음반사)은 있어도 소속 기획사는 없거나 본인 기획사이므로 이런 경우는 월급제가 아니다. 이 경우는 수익을 계약에 따라 음반사와 %로 분배한다. 일본 인디 밴드 중 이렇게 성장한 경우는 흔하다. 대표적으로 세카이노 오와리 등등. 하지만 일본의 인기 아이돌 중에서 이렇게 성장한 경우는 없고 전부 기획사의 프로듀싱을 받고 유명해졌다.[21] 이것도 엄밀히는 한국처럼 '총 순익'에서 배분하는 경우는 적고 기본급+수익에 따른 일정비율의 성과금을 지급받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매년 한해동안 해당 연예인의 매출과 순익을 바탕으로 갱신된다. 쉽게 말해 직장인들처럼 연봉협상을 한다. 기무라 타쿠야를 비롯한 탑 아이돌들은 한국같은 수익분배제로 소득을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22] 다만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회사마다 월급책정과정이나 계약조건은 천차만별이다. 야스다 케이가 소속된 업프론트의 경우 소속가수에게 가창인세를 따로 지급하지 않는 대신 기본급과 인센티브 비중이 다른 회사보다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반대로 요시모토 흥업처럼 노예계약 수준으로 착취당하는 경우도 있다.[23] 악수회수당, 콘서트 굿즈 게런티, 방송 및 행사 출연료, 여자아이돌의 경우 그라비아 촬영 등은 기본급과 별개로 추가수당을 지급받으며 콘서트의 경우 수익 대부분이 가수에게 떨어진다. 즉 음반을 많이 파는 아이돌 멤버보다 공연를 많이 흥행시키는 아이돌 멤버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구조.[24] 일본에서는 2005년까지 고액납세자명부 공시제도가 있어서 고액납세자들의 세금 납부 내역이 공시되었다. 2006년 이후 이 제도가 폐지되지만, 공시되지만 않을 뿐이지 명부 자체는 여전히 만들어지는데 기자쯤되면 간단히 입수가능하다. 참고로, 일본 야구나 축구 등 프로선수들의 연봉도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데 대부분 이 방식으로 기자들이 추정한 것이다.[25] 같은 시각 한국은 여성의 성욕이라는 개념이 조금 더 늦은 2000년대에 와서야 인식되었지만 한국의 아이돌은 애초에 방향성 자체를 유사 연애 대상으로 잡지 않았으므로 이것에 대해선 별다른 말은 없었다[26] 물론 팬이나 소속사 측은 태도, 거짓말 문제를 구실로 삼지만 결국 그 발단은 연애 문제였으니[27] 엄밀히 말해 구조 자체는 캬바쿠라시스템과 동일하다.[28] 예를 들어 큐트가 아직까지 실력파 그룹이라는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곡과 콘텐츠의 방향성이 대중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며, 페어리즈 역시 그룹만의 특유한 음악성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문제점이 있다. 결정적으로 일본인들은 아이돌의 실력에 대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29] 애초에 운영측도 캬바스카 학원따위를 찍음으로서 이런 비판을 오히려 인정하는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