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16:00:52

CoCo

파일:cocoー.png

란마1/2 TVA ED3 'EQUALロマンス

1. 개요2. 상세3. 멤버
3.1. 미야마에 마키(宮前真樹)3.2. 하네다 에리카(羽田惠理香)3.3. 오노 미키요(大野幹代)3.4. 미우라 리에코(三浦理恵子)3.5. 세노 아즈사(瀬能あづさ)
4. 여담

1. 개요

일본 아이돌의 전성기였던 1989년부터, 아이돌 빙하기[1]인 1994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5인조 아이돌 그룹으로, 리드보컬이던 세노 아즈사가 탈퇴한 후에는 4인조로 활동했다.

2. 상세

1989년 후지테레비의 연예인 발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파라다이스 GoGo》를 통하여 데뷔하였다. 출연자들은 전원 오토메쥬쿠의 멤버였다.[2] 코코 이외에도 Ribbon이 같은 식으로 데뷔하였다. Ribbon과는 활동 시기가 겹치며, 당시 팬들은 Ribbon파와 CoCo파로 나뉘는 모습을 보였다.

《파라다이스 GoGo》를 통해 미야마에 마키(宮前真樹), 하네다 에리카(羽田恵理香), 세노 아즈사(瀬能あづさ), 미우라 리에코(三浦理恵子), 그리고 오노 미키요(大野幹代)의 5인이 CoCo로 데뷔한다. 데뷔곡은 《EQUALロマンス(EQUAL 로망스)》로, 란마 1/2의 주제가로 유명하다.

1992년 팀의 리드보컬이었던 세노 아즈사가 솔로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탈퇴한다. 이때가 CoCo의 전성기로 세노 아즈사의 고별공연을 겸하여 무도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세노는 란마의 주제가인 《もう泣かないで(더 이상 울지마)》 로 정식 솔로데뷔한다. 원래 멤버추가계획이 있었으나 팬과 멤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원래 가수가 목표였던 아즈사는 아이돌로 놔두기에는 아까운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다. 데뷔 후 팀내 인기도 예상치를 뛰어넘었으므로, 회사에서는 아이돌인 CoCo와 가수인 아즈사를 분리시켜 윈윈으로 가는 전략을 생각했던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리드보컬이 빠져버린 코코나 아이돌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솔로의 아즈사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팀 해산 이후 30년 이상 지난 현재까지도 '역시 CoCo는 5명이어야 한다'라는 식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 당시 팬들이 아즈사의 탈퇴를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알 수 있다.

CoCo는 세노의 탈퇴이후 점차 하락세를 보였으며 1994년 정식으로 해산 발표를 가진 뒤, 라스트콘서트를 끝으로 해체하였다.[3] 정식으로 해산발표를 가졌던 몇 안되는 여성그룹중의 하나. 6장의 오리지널 앨범과 14장의 싱글을 발표하였다.

해산이후 멤버들은 연예계활동을 계속했으나 그룹 시절 이상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2000년대 초반, 미우라 리에코와 미야마에 마키가 토크쇼에 나와서 활동 당시 멤버들과의 신경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점 등[4]을 가감없이 말하여 남아있는 올드팬들을 충공깽시킨적이 있다.

참고로 미야마메 마키는 스타더스트, 미우라 리에코는 프로덕션 오기에 소속되어 있으며 하네다 에리카는 예명을 한자 하나만 바꾼 羽田惠理香 및 はねだえりか로 바꾸면서 여전히 활동 중이다.

3. 멤버

3.1. 미야마에 마키(宮前真樹)

73년생, 니가타현 토오카마치시 출생. 미우라 리에코는 미야마에 마키를 'CoCo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2004년 3월 연예계 활동 중지를 발표하고, 르 꼬르동 블루 도쿄학교에 입학했다. 이후로는 탤런트이자 요리연구가로서 활동하며, 2023년에는 롤케익 브랜드 maq bon을 설립한다.

2018년 2월 자신의 블로그에서 사진가인 하기니와 케이타(萩庭 桂太)와 결혼을 발표했다.

3.2. 하네다 에리카(羽田惠理香)

73년생, 도쿄도 나카노구 출생. CoCo가 음악 프로그램에서 인사를 할 일이 있으면, 그룹 대표 역할을 담당했다. 다른 4명 멤버로부터 태클이나 농락을 빈번하게 당하는 포지션이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것이 아니냐는 팬으로부터의 투서도 있었다. 당시에는 본인이 이를 부정했으나, 2016년 방송에 출연해 괴롭힘을 당한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2012년 8월 결혼과 임신을 발표했고, 동년 11월 첫째 아들을 출산했다.

CoCo 해산 후에도 연예계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첫째 출산을 계기로 예명을 히라가나로 풀어 쓴 はねだえりか로 바꾸었다. 현재는 연예계 활동에 병행해 부동산 관련 일도 하고 있다.

3.3. 오노 미키요(大野幹代)

CoCo 멤버중에는 유일한 74년생, 도쿄도출생. 그룹 내 최연소이자 최장신[5] 멤버였다. 미우라 리에코와는 히노데여자고등학교[6]선후배 사이이다.
목소리는 약간 저음이지만 안정감이 있어 곡 초반의 솔로 파트를 자주 맡았으며, 활동 초기에는 여동생 캐릭터를 담당하며 세갈래로 땋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3.4. 미우라 리에코(三浦理恵子)

73년생, 도쿄도 나카노구 출생. 오노 미키요와는 히노데여자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다.

아이돌다운 외모와 '캣 보이스'라고 평가되는 목소리[7]로 인기를 끌었다. CoCo 활동시에는 '인형 캐릭터'이미지를 정착시켰고, 세노 아즈사와 특히나 사이가 좋아 항상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91년 '눈물의 꽃망울들(涙のつぼみたち)'를 발매하며 솔로로 데뷔했다. 이후에는 그룹 활동과 함께 솔로 음원을 발매하고 콘서트를 개최했다. 1997년에는 RED WARRIORS의 보컬 다이아몬드☆유카이[8]와 결혼하나 2001년 이혼했다. 2015년에 일반인 남성과 재혼했다.

CoCo 멤버들 가운데서는 드라마 등에도 꾸준히 출연하며 현재까지도 가장 나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명계장 타다노 히토시의 레귤러 출연진으로 아는 사람도 꽤 있다.

3.5. 세노 아즈사(瀬能あづさ)

73년생, 카나가와현 아츠기시 출생. 팀의 센터이자 리드보컬을 담당했다. 높은 가창력 덕분에 곡의 후렴구에 이어지는 하이라이트나 솔로 파트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꿈인 가창력을 활용하여 솔로 전향을 이유로 1992년에 CoCo를 탈퇴했다.

1993년 5월에는 X JAPANToshi와의 교제가 보도되기도 했다. CoCo 탈퇴 후 야구선수와 결혼 하며 연예계를 은퇴했다[9] 그러나 결혼 후 얼마 안가 남편 이시이의 미성년자와의 불륜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2000년 이혼했다.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연예계 활동은 일절 계속하고 있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근황을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2003년에는 g-crew의 라이브에서 'AZU'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부른 곡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2004년에는 돌연 '주간 플레이보이'에 그라비아로 복귀해, 세미누드 사진집을 발매했다. 이후로는 활동다운 활동은 없는 상태로, 근황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4. 여담

  • 90년대 초반 아이돌 침체기에 나타난 마지막 정통파 여성아이돌이라 할수 있지만 현재까지의 아이돌 역사에 회자될만한 절대적 인기를 구가하지는 못했다. 활동기간의 최고 순위가 데뷔앨범의 2위, 싱글의 3위[10]로 어느 정도의 팬층은 있었으나 커다란 히트곡을 남기지 못했고, 리드보컬로 인기의 큰 축이었던 세노 아즈사의 탈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때문에 아즈사 탈퇴이후와 이전이 명확히 구분되며 올드팬들은 코코를 5인조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란마 1/2의 성우진들이 CoCo를 패러디한 유니트 DoCo를 결성하기도 했다.
  • 2017년 1월에는 하네다 에리카가 방송에 나와 미혼모로 사는 이유와 함께, CoCo 시절 파벌에 시달렸고 이지메의 주동자는 미우라 리에코였다고 언급했다. 2016년 11월 3일 출연분으로 보인다. (東京系で放送された「じっくり聞いタロウ~スター近況(秘)報告~」(木曜深夜0・12)に出演) 당시의 기사는 대부분 삭제 되었거나, 기한 만료로 찾아볼 수 없지만, 남아 있는 기사와 유투브 내용을 보았을 때 주동자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방송에서는 활동 당시 팀 내 이지메가 있었고, 2:2:1 또는 4:1 등으로 편이 갈렸으며 남아 있는 1명은 항상 에리카 본인이였다고 했으며, 그 주동자가 OOO다 라고 밝히는 순간 삐~ 처리되어 방송에서는 주동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고, 자막 상으로 '의외의 인물'이라는 표현이 쓰였다고 한다. 공연 당시 그 사람의 팬들로부터 날달걀 투척을 받거나, 악수회에서 안전요원의 눈을 피해 손을 부셔버릴 것처럼 꽉 쥐는 등의 테러가 있었다고 하며, 그룹이 해체 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의외의 인물' 에 세노우 아즈사를 제외한 맴버 전원이 거론되고 있었다.
  • 의외로 우리나라에도 인지도가 작지 않은데 과거 TV 채널로 나오던 일본방송을 통해 어느정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이혜영과 윤현숙이 결성한 듀엣이 같은 이름으로 활동을 하면서 일본의 코코에도 자연히 관심이 쏠리면서 인지도가 올라갔고[11] 90년대 PC통신 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본문화 팬들이 결집되고 자료가 공유되던 시기에 활동하던 아이돌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야마구치 모모에나 마츠다 세이코는 모르더라도 사카이 노리코는 아는 것과 같다.
  • CoCo의 존재를 알던 70~80년대생들이 지금도 CoCo를 추억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 하이텔 대중문화동호회(HDD)의 일본문화게시판 내 소그룹으로 CoCo 팬클럽인 'COCONUT' 이 있었다. (일본 공식 팬클럽의 이름은 ' COCONUT CLUB'이다) 국내 팬클럽인 COCONUT은 1975년생을 주축으로하여 1993년 결성되어 70~80년대 생들이 주로 활동하였고, 회원수가 200명이 넘었다. 한달에 한번 명동 또는 혜화에서 CoCo의 음악을 듣는 청음회나 뮤직 비디오, 콘서트 영상을 관람하는 상영회를 주최했다.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1994년엔 50명 이상이 오프라인 행사에 참가했다. CoCo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원정대를 꾸려 일본을 방문했지만 만남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 90년대 아이돌인만큼 과거 사진을 찾아보면 깜놀할 수가 있다. 멤버중 오노 미키요는 당시 대유행하던 전라 누드사진집을 찍었고 미우라 리에코도 헤어만 안나오는 강도높은 누드를 찍었다. 나머지 멤버도 노출만 덜 할 뿐인 그라비아 사진은 널려있다. 근데 그 시대에는 그렇게 큰 화제를 일으키는 일은 아니었다. 미야자와 리에 이후로 연예인들 누드는 봇물이 쏟아졌고 당시에는 10대 누드 사진집도 대놓고 나오던 시대라서. 여고생이 누드 찍는것은 일도 아니었기에.. 단지 98년쯤 유명한 아역배우 출신인 12세 학생이 전라 누드를 찍으면서 결국 99년 아동누드는 금지된다..


[1] 1990년대 초중반 일본에서 아이돌의 인기가 급속도로 사그라든 시기[2] 오토메쥬쿠는 후지에테레비에서 선발한 아이돌 지망생 집단으로, 이 시스템의 모델은 물론 오냥코클럽이며, 《파라다이스 GoGo》는 오냥코의 레귤러 프로그램이었던 유우야케냥냥의 벤치마킹이다.[3] 이 때 탈퇴멤버였던 세노 아즈사가 깜짝 등장해 마지막 무대로 데뷔곡인 《EQUAL 로망스》를 같이 불렀다.[4] 동시대의 다른 연예인, 특히 함께 방송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 타 아이돌들도 대부분 알고있을 정도였다고. 특히 멤버들이 한 남자를 두고 다툴때는 멤버들과 친해 자주 놀러오던 타 아이돌들도 접근을 못했을 만큼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한다[5] 169cm[6] 현재는 메구로니혼대학고등학교로 개칭. 야마구치 모모에 등 연예인을 다수 배출한 고교이다.[7] 정작 본인은 본인의 독특한 목소리를 싫어했다고 한다. 현재는 특징있는 목소리를 살려 성우 활동도 하고 있다.[8] 본명: 타도코로 유타카 (田所 豊)[9] 남편은 다름아닌 요코하마 베이스타즈프랜차이즈 스타 리드오프이자 1998년 우승 당시의 주전 멤버였다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은퇴한 이시이 타쿠로.[10] 모두 92년 이전.[11] 그래서 코코의 5인조 시절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