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0년대~1980년대에 걸쳐서 일본 아이돌 계에 나타난 괴조직.이름이 좀 이상한 팬클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상식을 넘는 괴이한 자들이었다.
2. 행태
픽션에서 예를 찾아보자면 만화 은혼의 시무라 신파치가 이들의 모습을 상당히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과장하지도 않았고 순화하지도 않았다. 그냥 똑같다.전성기의 아이돌 친위대의 행동은 심각한 또라이였다. 현재 생각하는 "일반적인 팬클럽"의 이미지와는 달리 오타쿠보다는 '강경파'에 속하는 청년/청소년들이 많았다. 사실 본래는 강경파 친위대가 주류에 선도자였으며, 점차 아이돌이 일반인 문화보다는 오타쿠 문화로 전락하면서 오타쿠들이 주류가 되고 이에 위화감을 느낀 강경파가 배제되는 수순을 겪었다고 봐야 한다.
친위대 활동을 하는 자들은 아이돌에 대해서 무슨 똥도 안 눌 것 같다(…) 정도는 아니겠지만(라고 믿고 싶겠지만) 말 그대로 팬클럽의 중심이 되는 '순수한 소녀'라는 판타지를 맹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판타지에 근거하여 자신들은 공주를 지키는 기사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 이들이 친위대 활동의 근간이다.
친위대는 아이돌 주위에서 호위나 경호를 자청하여 활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폭력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프로페셔널한 경호회사가 아닌 만큼 이들이 하는 소위 '경호'는 부작용이나 문제도 심각했다. 또한 서로 다른 아이돌을 추종하는 친위대와의 항쟁도 예사로 벌어졌다. 스포츠 구단간의 더비 매치에서 팬끼리 말싸움을 한다든가 짓궂은 장난을 했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패싸움을 벌이는 항쟁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면 무슨 라이트 노벨같은 데서 자주 본 설정처럼 보이는데 설정이 아니라 진짜였다. 애시당초 현대 애니메이션 등에 나오는 '학교의 아이돌 XX의 친위대'는 전부 현실을 반영한 것이 클리셰화된 것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는 강경파를 자칭하는 젊은 혈기가 끓는 열혈 청년들이 아이돌을 명분으로 삼아서 난동을 부리는 일이 일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용납되었던 것은 당시 일본 사회에 아이돌 문화는 극소수의 오타쿠 문화가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화였다는 것이 한 가지이다.
또한 당시 시대상 역시 스토커 같은 개념이 아예 없을 정도로 "젊은 혈기로 벌이는 젊은이의 사랑"에 대해서 상당히 관대한 분위기가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사나이가 사랑에 미치면 젊은 혈기에 좀 또라이스러운 짓도 벌일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시대로서, 이런 식의 사랑의 명분으로 하는 과격한 행동이 허용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상당히 막나가는 짓으로 여겨지기는 했다.
3. 역사
3.1. 발생
본래부터 '아이돌 여가수'의 '친위대'를 자칭하던 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조직화 된 것은 1970년대이다.1970년대 중반, 가요제나 공연장에서 이 각 아이돌 가수의 팬클럽 간의 마찰과 항쟁이 다발하던 가운데, 이시노 마코(石野真子) 친위대의 지도자 야나기 이세이, 시게키(柳一誠・茂樹) 형제가 관동친위대연합(関東親衛隊連合)이라는 조직을 구성했다고 전해진다.(...)
삿포로, 간사이, 규슈에도 이미 비슷한 조직이 있었으며, 비슷하게 친위대연합(親衛隊連合)을 자칭하게 되었다.
3.2. 전성기
1980년대, 아이돌 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와 동시에 친위대 문화도 전성기를 이룬다. 당시 '관동친위대연합'의 부대수는 약 50대, 총 구성원은 1,800명에 도달했다고 하며, 전국을 다 합치면 3,000명 이상을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돌의 이름을 붙여서 '~대(隊)'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던 듯 하다.그 중 마츠다 세이코 대가 전체 연합의 절반을 차지. 관동과 관서만으로 500명이 넘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983년 일본 무도관 콘서트에서는 홋카이도 지부에서 큐슈 지부까지 전국의 마츠다 세이코 대가 집결, 무도관의 대부분을 친위대로 채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