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2]
MP3 다운로드 이전 시대 한국에서 판매하던 불법복제 레코드판(LP, EP)의 통칭. 참고로 빽판이라는 이름처럼 레코드판에 국한된다.[3] 어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뒤(Back)에서 몰래 판다고 해서 붙였다는 설과 지금의 서민CD처럼 조잡한 라벨 때문에 ‘백반’(白盤)으로 불린 게 변형되어 빽판으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2. 특징
저작권 개념이 부족했고, 저작권법과 관련제도가 허술했던 당시 녹음용 레코드판에 음악을 녹음해서 팔던 레코드판을 뜻하는 말이었다. 개중에는 당당히 납세필증을 붙이고 파는 빽판도 있었다.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부족한것 말고도 공연윤리위원회 및 각종 방송사들에 의해 방송금지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판매도 완전히 금지하는 금지곡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된 곡을 유일하게 접할수 있는 매체 중 하나였다.특히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되기 전에 일본 대중가요는 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본 뮤지션의 음반을 구할수 있는 방법은 일본 현지로 가서 산 다음에 한국으로 들어오거나 세운상가 같은 으슥한 곳에 가서 일본 뮤지션 음반의 빽판을 구하는 것이었다.
제조방법은 LP판 제조방법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다. LP판을 제조할 때 요철이 반대로 된 금속재질의 마스터판을 만들고 여기에 합성수지를 녹여 찍어내는 방법으로 만드는데 이 완성된 LP판에 꺼꾸로 수지류 등을 부어서 마스터판을 다시 만들어 이것을 이용, 빽판을 찍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빽판은 정발판보다 음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반드시 그 원본이 되는 LP판(주로 해외
이렇게 대충 만들어진 빽판의 특징 중 하나는 완전히 평평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즉 책상이나 바닥에 빽판을 내려놓으면 밀착되질 않고 어느 부분이 뜬다. LP 레코드 플레이어는 그 픽업 암이 상하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구부러진 빽판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플레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할 경우 구매자들이 온돌에 빽판을 올려놓고 가열해 좀 더 평평하게 만들려고 시도하곤 했다.
이후 길보드 등으로 대변되는 번화가 리어카 등지에서 팔던 해적판 카세트테이프 또한 같은 기능을 했지만 이렇게 칭하지는 않았다.[4] 이시절 리어카 카세트의 주 판매품목은 금지곡보다는 인기가요 부틀렉들을 컴필레이션 앨범마냥 만들어 놓은것이 주류였다. 물론 LP와 금지곡도 저런 컴필레이션 부틀렉(?) 포맷으로 나온게 없지 않았겠지만... 심지어 대놓고 컴필레이션 제목에 금지곡을 붙여서 파는 것도 많았다.
1996년 사전심의제 폐지 등 검열 완화로 해외 수입음반 라이선스 발매 범위가 늘어났고, 2000년대 인터넷 대중화로 대중들이 어디 으슥한 데 갈 필요 없이 안방에서 국내 미정발본을 해외직구로 구입하거나 애플 뮤직, 스포티파이 등 음원 서비스 사이트에서 정당하게 지불해 다운받아 들으면서 빽판 같은 미디어매체 암거래는 줄어들었으나, mp3나 m4a 파일 등 디지털 음원 불법복제 파일이 빽판을 대신하고 있다.
3. 주요 빽판
- 금지곡 제도가 있던 시절에 나온 한국가요 중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들(대표적으로 일부 민중가요. 1987년 6.29 선언 이후 사회 민주화 분위기를 탄 후로 서서히 해금된 후[5] 1996년 음반 사전심의 위헌판정 이후 완전 해금상태) 단, 위 빽판 제조방법 관련상 원래 정식 LP판으로 발매된 일이 있는 경우에 한한다.[6][7]
- 미국과 유럽권의 가요(팝송, 유로댄스 등의 팝가요) 중에서 한국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들.[8]
- 일본문화개방 이전의 거의 모든 일본가요,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이시다 아유미, 미나미 하루오, 이시카와 사유리, 미소라 히바리 같은 엔카가수가 부른 노래(이시다 아유미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이시카와 사유리의 津軽海峡・冬景色 등)
- 콘도 마사히코, 체커스, 오카다 유키코,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오냥코클럽, 소년대, 소녀대, 안전지대 같은 80년대의 일본 아이돌 가수가 부른 노래(이를테면 마츠다 세이코의 青い珊瑚礁, 콘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 체커스의 줄리아의 상심(ジュリアに傷心)[9][10], 오냥코클럽의 セーラー服を脱がさないで 등)
- 위에서 예를 든 가요 이외의 거의 모든 일본어로 가창된 노래들[11]
- 금지곡도, 일본 같은 금지 국가 노래도 아니지만 국내에서 수요가 적어 정식 발매되지 않은 판들. 과격한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락 그룹의 판에 많았다.
- 반대로 너무 유명해 국내 수요가 많은 판들. 1980년대 빽판의 가격은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국내 수요가 많은 인기음반 같으면 라이선스판의 1/2 이하여서 음질 안따지고 싸게 사서 듣자는 수요도 제법 되었다.[12][13]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같은것도 빽판이 존재했던 이유.
4. 해외의 사례
- 카세트테이프가 보급되기 전, 소련에서는 일명 '료브라(Ryobra)'라고 불리던 빽판이 돌아다녔다. '료브라'는 갈비뼈라는 의미인데, X-레이 필름을 주워다가 둥글게 자르는 등 가공을 거쳐 만들었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다만 재료가 재료다보니 재생은 5-10회 정도가 한계였고 이후 카세트테이프가 들어오며 사장된다. 이런 사미즈다트나 료브라는 소련/동구권 록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레토(영화)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 타이완에서도 빽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다.
5. 관련 문서
[1] 위쪽부터 스콜피온스의 Lovedrive, 주다스 프리스트의 Killing Machine, 블랙 위도우의 Streetfighter, 걸스쿨의 Hit and Run, 아이언 메이든의 1981년 일본 라이브 EP(Maiden Japan)이다.[2] 스콜피온스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전갈이 그려진 표지로 교체되어 발매되었고, 주다스 프리스트는 저 앨범까지는 금지곡이 아니었지만 명반 취급되는 다음 앨범인 British Steel부터 Defenders of Faith까지 줄줄이 금지되었다. 아이언 메이든은 폴 디아노 시절의 초기 앨범들은 수입조차 되지 못했고, 브루스 디킨슨 시절의 Powerslave부터 금지곡 없이 수입되었다.[3] CD의 경우 빽시디라고 한다.[4] 오히려 이쪽이 해적판에 가깝다. LP 정발여부와 상관 없으니.[5] 그러나 노태우 시절 1991년에 민중연극 운동가 박인배(1953~2017)가 노동가요 테이프를 만들다 음비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고, 문민정부 시기인 1994년에는 노래극단 '희망새' 멤버들이 공연 도중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의해 영장 없이 강제로 연행/구속되는가 하면 SBS는 노찾사 5집 트랙 중 5곡을 방송금지로 묶었다. 1995년에는 합법음반 <노동가요 공식음반> 1집 역시 공윤 심의 후 발매 3개월 만에 판매금지 조처가 내려졌다.[6] 정발되었다가 유신시대 이후 금지곡으로 묶인 경우. 애당초 정식 발매된 일이 없는 민중가요들은 빽판이 아닌 해적판 카세트 테이프로만 돌아다녔다.[7] 빽판으로 들어왔다가 나중에 몇 곡을 빼서 냈거나 심사 기준이 바뀌어 국내 정식 발매 판이 나온 후에도 빽판으로 남아 상당 기간 필린 경우가 드물게 있는데, 그 이유는 정발판의 반값도 안 되게 쌌기 때문이다. 에를 들어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같은 건 더블판이라 정발판이 매우 비쌌다.[8] 그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로 금지곡이 많았다. “킬러”(살인자)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Killer Queen을 필두로 과격한 하드록/헤비메탈 넘버들은 물론이고 노래 중에 뭔가 깨지는 효과음이 들어있는것을 가지고 폭력적이라니, 영어 노래지만 일본어 가사가 몇줄(<Mr.roboto>라는 곡의 "도모 아리가또 미스타 로보또" 후렴구) 들어있다는 이유로, 가창력이 미흡하다던가 가사가 약간 저질스럽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빌보드 차트 1위곡 들이 1위 올랐을 시절 금지곡이여서 방송에서 제목만 소개하는 웃지 못한 일들이 많았고 궁금증 때문이라도 엄청난 빽판수요가 있었다. 물론 AFKN American top 40에서 다 들을 수 있었다는게 함정.[9] 실제 발음은 쥬리아니 하토브레크(해석하면 줄리아의 하트브레이크)[10] 컨츄리꼬꼬가 Oh, My Julia로 번안해서 부른 그 곡 맞다.[11] 일본문화개방 이전의 한국에서 거의 모든 일본가요는 금지곡였기 때문에 당시 오리콘차트 1위로 올라온 일본가요도 한국에서는 불법으로 복제된 해적판 카세트테이프나 빽판이 아니면 접할수 없었다. 일본문화개방이 된 현재도 당시에 나온 일본음반은 나온지 오래된 상태라서 베스트나 복각이라도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해도 복각베스트 장사하는 가수들이 어지간히 유명한 가수들이 아닌 이상 정식발매 역시 없다.[12] 당시 정식 라이선스판이 2,500~3,000원정도 할 때 빽판은 1,000~1,500원 정도면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전술한 국내 미발매판의 빽판은 회귀성에 따라 비싸긴 했다. 구조적으로 늘어날수밖에 없으며 원하는 곡만 듣는 랜덤 억세스가 무척 어려운 카세트 테이프 대비 빽판의 음질도 꽤 들어줄만 했으다. 게다가 당시 국내 몇몇 음반사는 음반제조기술이 떨어져서 수입 원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일부 빽판은 음반제조기술이 떨어지는것으로 유명한 모 라이선스 발매사의 정발판과 음질이 거기서 거기였다. 성음의 판과 O레코드사의 판은 막귀라도 구별 가능할 정도였다. 심한 경우 판 중앙의 구멍을 엉성하게 뚫어서 턴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카트리지가 춤을 추기도. 이러면 음질은 물론 판이나 카트리지 수명에 악영향을 끼친다.[13] 정말 음질 따지는 분들은 광화문이나 명동 가서 라이선스판의 4~5배 가격을 주고 미국, 영국 수입원판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