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5 13:48:48

3S정책

1. 개요2. 내용3. 평가4. 반론5. 이야깃거리6. 관련 문서7. 관련 문헌

1. 개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던 시절, 즉 제5공화국 때 시행되었던 우민화 정책을 빗댄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 원래는 미국의 일본 점령기 당시 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탈피를 위해 GHQ가 의도적으로 실시한 정책에서 유래했다. 이름에서 3S는 S로 시작하는 세 단어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1980년대 운동권 사람들은 이 3S 정책을 "삼에스 정책"이라고 읽었다. 사실 독재정권이 정치적인 이유로 스포츠를 장려했던것은 매우 흔한일이다. 비단 올림픽을 체제선전용으로 활용했던 나치 독일이나 월드컵을 체제선전용으로 써먹었던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도 있고, 중남미에서 독재정권이 축구리그나 야구리그를 활성화시켜서 사람들의 눈을 돌리게 만든다거나 하는일이 비일비재했다. 공산정권 시절의 동유럽에서 아예 트레이닝 시스템을 선진화, 체계화시켜서 애초부터 인구 세계3위를 차지했던 소련이나 나름대로 인구수가 많았던 폴란드뿐만 아니라 당대 기준으로도 인구가 많은 나라로 분류되지 않았던 동독,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이 줄줄히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는 모습을 보였다.[1] 따지고 보면 5공화국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서 이러한 기조에 발을 맞춘것이었다.

옹호하는 측에서는 전두환 정부의 3S정책 비판을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라고 주장한다. 서유럽 선진국의 영화산업과 성문화와 대중 스포츠 역사는 이미 1800년대 말부터 인기였고[2] 서양의 성 해방 운동으로 한국보다 이미 오래전에 콘돔이 장려되고 있었다. 3S정책을 비판하는 측의 논리에 따르면 서양 선진국들은 우민화정책의 선두주자요, 반민주적인 정책의 원조가 된다. 하지만 위의 경우에서 볼수있듯이 3S정책과 비슷한 정책을 편 독재정권들이 위낙 수두록했다는 점은 애써 빼먹는다.

정통성 없이 집권한 5공이 전임 정부의 여러 제한을 풀고 정부 차원에서 3S정책을 장려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취한 대표적인 조치 중 하나가 컬러 방송 시행이었고,[3][4] 이외에도 두발자유화교복 폐지 등 당시로선 상당히 획기적인 조치들도 여럿 시행되었다. 물론 정치적 검열을 완화시키는 일은 없어서 만화 검열제나 노래 검열은 이때에도 잔존했고, 방송계나 출판계, 문학계에서도 검열이 여전히 진행되었으며 특정한 이유로 방송출연이 금지되거나 한수산 필화사건처럼 소실이나 시를 썼다가 고문당하는 사건들도 당연히 있었다.[5]

이 때 어떤 식으로 검열이 진행되었는가 하면 대머리주걱턱을 개그 소재로 삼는 것이 금지되었으며,[6] 순자라는 여자 이름을 가진 배역이 비천하거나 웃기는 역할을 하는 것도 안 되는 식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김성환고바우 영감김수정의 아담과 이브가 대머리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었던 적이 있으며, 탤런트 박용식이 전두환과 외모가 흡사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당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7] 그리고 노동문제를 다루는 것도 어김없이 검열대상이었다.

그리고 당시 뉴스 프로그램과 신문들도 평일 메인뉴스의 경우에는 전두환과 이순자의 동정소식을 맨 앞에 다루는 것이 당연시 되었으며 신문들도 보도지침이라고 해서 검열당해야 했다. 당연히 시사 프로그램들도 정치적인 소재를 비판적으로 다루는것도 암묵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래서 당시 MBC 리포트나 레이다 11, 추적 60분같은 시사프로그램들을 보면 사회 비판적인 내용은 있기는 하지만 전두환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은 일절 찾아볼수 없거나 찾아보기 힘들다. 노태우 정권기의 뉴스비전 동서남북, MBC 리포트와는 비교해보면 내용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2. 내용

  • Screen (영상)
    영화 상영의 규제에 대한 검열이 과거보다 파격적으로 완화되었으며,[8] 이에 따른 무분별한 저예산 에로영화가 영화관에서 집중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색영화 범람의 물꼬를 튼 것은 그 유명한 애마부인(1982년 2월)으로, 82년 극장개봉작 56편 중 무려 35편이 에로 영화였다. 아래의 세번째 S와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컬러 TV가 이 때 들어오기 시작했다.
  • Sex (성문화)
    1982년 1월 5일 야간통행금지가 폐지되어 그에 따른 여러가지 성 관련 산업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술집, 모텔, 유흥업소, 성매매 업소 같은 산업. 상술한 도색영화의 범람도 이 S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다. 더불어 유흥가의 급팽창으로 기생충처럼 따라붙는 조폭도 엄청나게 성장한다. 지금도 회자되는 3대 전국구 조직폭력배 OB 동재파(이동재), 양은이파(조양은), 서방파(김태촌)가 이 시절 이야기이다.

3. 평가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5.18 민주화운동 등 명분없는 행위를 통해 집권한 제5공화국 정부가 정통성이 없는 자신들의 약점을 감추고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돌려서 반정부적인 움직임이나 정치·사회적 이슈 제기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대중 억압은 매우 심각했는데 야간통행금지,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컬러TV 금지 등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많았다. 새로 집권한 5공 정부가 세상에 염증을 느끼던 국민들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고, 국민의 '자유'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시행한 것이 이런 정책들이었고, 또한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 포기, 교복 폐지, 두발자유화 같은 경우에는 당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던 상황속에서도 올림픽 개최로 인해서 국제적으로 눈치를 봐야했던 상황이기에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어느정도 풀어주어서 독재에 대한 비판을 일정부분 희석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산업의 기초가 이 정책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프로 스포츠 같은 경우는 이 시기 거의 기초가 완성되어 오늘날까지 성장한 산업 중 하나이다. 이처럼 스포츠에 관해서는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영화 산업에 이 정책이 실질적으로 기여가 되었는지는 의문이 있다. 오히려 이 시기는 1970년대보다도[12] 외국산 영화의 점유율이 높았고, 성적인 규제만 풀렸을 뿐 정치적 규제는 여전하다 보니 내용상으로도 형편없는 영화가 많았다. 사회비판적인 영화가 나오기 시작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기는 노태우 정부부터이다.[13] 그러나 컬러수상기가 도입되고 보급률도 빠르게 상승하여 TV문화가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풍부해졌다.

다만 각종 규제검열을 다 풀었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데, 정부의 제약과 감시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유희 문화가 그나마 조금 도약했다고 보는게 정확한 말이다.

예를 들자면 에로영화를 허용했어도 음모 노출은 금지되었으며,[14] 금지곡 지정이 계속 되는 등 각종 대중문화 검열은 여전했다. 교육분야에서는 교복이 없어지고 두발규제도 일정수준 해제되었지만, 체벌이나 교련[15]은 여전히 남았다. 과외는 금지[16][17] 되었지만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야간자율학습으로 학생들을 계속 옥죄었다.

4. 반론

3S 정책은 일종의 썰이 사실인양 둔갑했다는 지적도 있다. 포르투갈 독재정권의 3F정책을 전두환 정권에 대입해 전두환을 비판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권이나 독재정권이 아니더라도 여론이 정치에 모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유도책을 쓴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이 국민 관심 회피용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같은 우민화 정책을 만들어냈다고 확신한다면 내용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정책의 입안 증거를 제시해야한다. 하지만 5공화국 정부의 정책에서 3S 정책으로 대변되는 우민화정책을 추진한다는 정책 문서는 발견된 적이 없으며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처럼 장관(당시 조윤선))이 인정한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두환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음모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선 스포츠는 당시 집권자인 전두환이 좋아해서 장려한 것 뿐이다. 프로 스포츠가 지역감정을 유도해 오히려 김대중의 정계 복귀를 빠르게 한 점을 생각해 보자. 오히려 국민 관심 회피용 혐의가 짙은 것은 프로 스포츠가 아니라 84 LA 올림픽, 86 멕시코 월드컵이었다.

스크린에서 야한 영화의 창궐은 단지 영화계의 흐름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야한 영화만 만들라는 지침이 정부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증거는커녕 영화인들의 증언도 나오지 않는다. 적은 제작비를 투자해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영화계의 상술이 마치 정부의 지침인 양 음모론이 만들어졌다는 것. 실제 저예산 영화의 창궐은 당시 우리나라 영화계의 흐름이다. 70년대에는 한달만에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이 흔했고 80년대에는 그나마 석달 정도의 제작기간인 영화가 많았는데 그런 영화에는 이같은 에로 소재가 적합했다. 그리고 정부의 선정성 검열은 엄청났다. 미성년자 관람가 영화에서는 젖가슴은 커녕 베드씬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국내 영화보다 노출도가 심했던 외산 영화의 경우 대부분의 선정적 장면은 삭제됐다. 선정성 검열 삭제한 것은 표현의 자유 억압이고 선정적인 영화가 나오는 것은 우민화 정책이고..

마지막 섹스 부분에 있어서는 일단 스크린과 동일한 내용이다. 영화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선정적인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전두환 시대인 80년대 초중반을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당시에는 여자 젖가슴이 드러난 사진도 보기가 힘들었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등도 세운상가에 가서나 몰래 구입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제한이 풀린 것은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다음 전두환 정권이 레임덕에 걸리면서 자유화 바람이 불었던 87년 하반기였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정적인 문화가 심했던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0년대 중반 여자 연예인들이 누드사진을 대놓고 찍을 때 였다.

즉 3S 정책이란 주창자들도 근거 제시를 하지 못하는 전두환 반대론자의 음모론 중의 하나이며 가짜뉴스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 본 문서에도 3S 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내용만 설명했으며 정책적으로 추진됐다는 근거 제시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내용이 3S정책과 상관없는 전두환 정권의 언론 탄압 내용이다.

5. 이야깃거리

우스개로 (酒, spirit/sake 혹은 SUL/SOOL) 아니면 스파이(간첩 혹은 무장공비, Spy)를 가해서 4S라고도 한다[18]. 희석식 소주는 주정으로 값싸게 만들어낸 술이라 빨리 먹고 빨리 취해서 빨리 토해버릴 수 있었기 때문. 물론 몸에는 매우 좋지 않다. 그리고 간첩은 언제나 훌륭한 떡밥이었다.

Sorrow(슬픔, 한)를 주제로 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 또한 있다. KBS에서 1983년 방송했던 특집 프로그램인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두고 하는 이야기. 실제로 해당 항목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당시 5공 정권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대북 심리전에 이용하려는 전략이 어느정도 있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독재자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이와 거의 비슷한 정책으로 3F 정책을 썼다. 축구(Futebol : 포르투갈어로 축구), 종교(Fatima: 파티마의 성모 사건 참조), 파두(Fado :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역시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 종교, 음악으로 돌리려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다만 아이러니한건, 정작 파두 가수들이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는 것.1974년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 금지곡이었던 주제 아폰수의 곡이 흘러나왔는데 이것이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문명 시리즈를 하다보면 시민들의 만족 상태를 나타내는 수치인 행복도가 나오는데 이걸 올리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극장, 영화관, 콜로세움 등을 도시에 지어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전연령 게임이다 보니 맨 마지막 S까지 도입하진 못한 듯 싶지만 ScreenSports는 확실히 포함하고 있다. 스핀오프인 알파 센타우리에서는 먼 미래답게 Screen과 Sports(그리고 해석에 따라서 마지막 S까지)를 가상현실로 한방에 해결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연출을 보여준다.[19] 행복도가 떨어졌을 때 각종 반란과 생산성 감소 사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등장하는 두 원로원 의원들의 대화는 3S정책의 본질을 보여준다
GAIUS: Games! 150 days of games!
무려 150일 동안의 경기라니!
GRACCHUS: He's cleverer than I thought.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황제가 똑똑하군.
GAIUS: Clever? The whole of Rome would be laughing at him if they weren't in fear of his Praetorian.
똑똑하다고? 근위병이 두렵지만 않다면 모든 로마인들이 황제를 비웃을 것이네.
GRACCHUS: Fear and wonder. A powerful combination.
두려움과 호기심. 강력한 결합이야.
GAIUS: Will the people really be seduced by that?
사람들이 정말로 저런 것에 넘어갈까?
GRACCHUS: I think he knows what Rome is. Rome is the mob.
He will conjure magic for them and they will be distracted.
He will take away their freedom, and still they will roar.
The beating heart of Rome is not the marble of the Senate, it is the sand of the Colosseum.
He will give them death, and they will love him for it.
나는 황제가 로마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네. 로마는 오합지졸의 군중이야.
황제는 군중에게 마법을 부릴 것이고, 그들은 현혹될 것이네.
황제는 군중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것이고, 여전히 그들은 즐겁게 외칠 것이네.
로마인들의 고동치는 심장은 원로원의 대리석이 아니야, 바로 콜로세움의 모래이네.
황제는 군중에게 죽음의 경기를 보여주고, 그들은 그것 때문에 황제를 사랑하게 될 것이네

국내 프로 스포츠 중 3S정책으로 생긴 리그만 연고지 몰빵 문제에서 자유롭다. 야구야 워낙 지역에 잘 녹아들었고, 축구도 전국에 잘 퍼져 있다. 농구는 수도권과 부울경 2점 집중이,[21] 배구는 수도권 집중이[22] 매우 심하다.

6. 관련 문서

7. 관련 문헌

  • 스포츠와 정치 - 고광헌 저. 푸른나무. 1988.


[1] 다만 이렇게 얻은 성과 상당수는 도핑으로 이루워졌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체제전환 이후로 경제문제로 예산이 대대적으로 삭감되면서 줄줄히 스포츠 강국에서 나가 떨어지는 안습함을 보여주었다.[2] 다만 스포츠의 경우는 자생적으로 클럽과 대회를 개최했으므로 정치권의 영향이 큰 한국과 비교하는 건 문제가 있다[3] 컬러 방송 시행 계획 자체는 당시 웬만한 강대국이었던 소련프랑스, 영국에 비해서도 조금 늦게 시행하는 셈이 되는 1960년대 말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컬러 방송을 시행하려 할 때마다 윗선에서 사회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딴지를 걸어서 결국 10년씩이나 늦춰지게 되었다.[4] 참고로 이날은 하필이면 언론통폐합 다음 날이었는데, TBC는 컬러 방송 한 번 못하고 폐국하였다.[5] 만화 검열이 실질적으로 완화된 것은 80년대 후반이 되어서부터였고, 가요 검열도 마찬가지로 80년대 후반에 어느정도 완화되었고 1996년이 되어서야 없어졌다.[6] 왜 대머리나 주걱턱이 문제였나 하면, 전두환이 대머리였고 이순자는 특유의 주걱턱이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7] 정작 전두환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한참 후에 박용식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사과했다고 한다.[8] 정치적 검열은 완화되지 않았다.[9] 5공정권은 정말 서울올림픽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권에 도움이 되라고 개최했던 올림픽이 오히려 정권의 명줄을 끊어놓았다. 자세한 건 1988 서울올림픽 항목 참조.[10] 구매력기준 1인당 GDP가 3만불이 넘어가는 현재도 KBO리그 구단들이 간신히 자생이 가능할랑 말랑한 정도의 수준인걸 감안한다면, 당시 경제 수준에 프로스포츠는 확실히 무리수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면세 혜택들을 부여하였고, 한국 프로스포츠는 수익을 내기 위한 스포츠산업이 아니라, 회장님의 취미생활, 즉 펫 스포츠(Pet Sports)의 모습을 띄게 된다.[11] KBL은 15년 뒤인 1997년에 출범했다.[12] 이 때부터 외국 영화가 범람하여 국내 영화를 압도하기 시작하였지만, 1974년별들의 고향, 1975년영자의 전성시대1977년겨울여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외국 영화보다도 큰 흥행을 하여 국산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13] 다만 이전 시기의 후유증 때문인지 1인당 영화 관람 수나 외화점유율의 지표가 이때 더 나빴다.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고,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영화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14] 참고로 음모는 영화 '꽃잎(95)' 에서 나왔고, 이후에는 영화 '나탈리(2010)'에서 나왔다.[15] 교련은 1990년대 들어서 점점 유명무실해졌다가, 2010년대 들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16] 하지만 5공 정권에서도 소위 돈있는 사람들, 힘있는 사람들은 다들 쉬쉬하면서 은밀하게 과외를 시켰다.[17] 물론 공식적으로 시행된것은 아니지만 편법으로 행해졌다. 당시에도 교육열은 엄청났기 때문에 일선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학으로 한명이라도 더 보낼려고 안달이었던것은 똑같았기 때문.[18] 실제로 3S의 원산지인 일본에서 술은 사케다.[19] 동영상의 나레이터가 등장 지도자 중에서 가장 독재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인용구는 개인의 관점에서는 극기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 차원을 넘어서 모든 개인이 5감이 받아들이는 신호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이야기하고 있다.[20] 권용만옛날에 부른 노래에서 나온 입담.[21] 비 부울경, 수도권 구단은 강원도 연고인 원주 DB 프로미, 전북 연고인 전주 KCC 이지스.[22] 남자부 기준으로 비수도권은 충청남도권에 있는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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