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5 23:07:18

3S정책

1. 개요2. 내용3. 평가4. 이야깃거리5. 관련 문서6. 관련 문헌

1. 개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던 시절, 즉 제5공화국 때 시행되었던 우민화 정책을 빗댄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 원래는 미국의 일본 점령기 당시 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탈피를 위해 GHQ가 의도적으로 실시한 정책에서 유래했다. 이름에서 3S는 S로 시작하는 세 단어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1980년대 운동권 사람들은 이 3S 정책을 "삼에스 정책"이라고 읽었다.

정통성 없이 집권한 5공이 전임 정부의 여러 제한을 풀고 정부 차원에서 3S정책을 장려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취한 대표적인 조치 중 하나가 컬러 방송 시행이었고[1][2], 이외에도 두발자유화교복 폐지 등 당시로선 상당히 획기적인 조치들도 여럿 시행되었다. 물론 정치적 검열을 완화시키는 일은 없어서 만화 검열제나 노래 검열은 이때에도 잔존했고, 방송계나 출판계, 문학계에서도 검열이 여전히 진행되었으며 특정한 이유로 방송출연이 금지되거나 한수산 필화사건처럼 소실이나 시를 썼다가 고문당하는 사건들도 당연히 있었다.[3]

그럼 이때 어떤 식으로 검열이 진행되었냐면 대머리주걱턱을 개그 소재로 삼는 것이 금지되었으며[4], 순자라는 여자 이름을 가진 배역이 비천하거나 웃기는 역할을 하는 것도 안 되는 식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김성환고바우 영감김수정의 아담과 이브가 대머리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었던 적이 있으며, 탤런트 박용식이 전두환과 외모가 흡사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당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5] 그리고 노동문제를 다루는 것도 얄짤없이 검열대상이었다.

그리고 당시 뉴스 프로그램과 신문들도 평일 메인뉴스의 경우에는 전두환과 이순자의 동정소식을 맨 앞에 다루는 것이 당연시 되었으며 신문들도 보도지침이라고 해서 검열당해야 했다. 당연히 당시 시사 프로그램들도 정치적인 소재를 비판적으로 다루는것도 암묵적으로 금지되었으며 그래서 당시 MBC 리포트나 레이다 11, 추적 60분같은 시사프로그램들을 보면 사회 비판적인 내용은 있기는 하지만 전두환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은 일절 찾아볼수 없거나 찾아보기 힘들다. 노태우 정권기의 뉴스비전 동서남북, MBC 리포트와는 비교해보면 내용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2. 내용

  • Screen (영상)
    영화 상영의 규제에 대한 검열이 과거보다 파격적으로 완화되었으며[6], 이에 따른 무분별한 저예산 에로영화가 영화관에서 집중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색영화 범람의 물꼬를 튼 것은 그 유명한 애마부인(1982년 2월)으로, 82년 극장개봉작 56편 중 무려 35편이 에로 영화였다. 아래의 세번째 S와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컬러 TV가 이 때 들어오기 시작했다.
  • Sports (스포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5공화국의 정당성을 세계적으로 입증하기 위하여 1981년 10월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모든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시기에 국가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논리로 모든 반독재민주화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7] 그리고 정권이 주도해서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 민속씨름 같은 프로스포츠를 급조하였다.[8] 세미프로리그였던 농구대잔치도 1983년에 출범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9]
  • Sex (성문화)
    1982년 1월 5일 야간통행금지가 폐지되어 그에 따른 여러가지 성 관련 산업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술집, 모텔, 유흥업소, 성매매 업소 같은 산업. 상술한 도색영화의 범람도 이 S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다. 더불어 유흥가의 급팽창으로 기생충처럼 따라붙는 조폭도 엄청나게 성장한다. 지금도 회자되는 3대 전국구 조직폭력배 OB 동재파(이동재), 양은이파(조양은), 서방파(김태촌)가 이 시절 이야기이다.

3. 평가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5.18 민주화운동을 거쳐서 집권한 제5공화국 정부가 정통성이 없는 자신들의 약점을 감추고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돌려서 반정부적인 움직임이나 정치·사회적 이슈 제기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대중 억압은 매우 심각했는데 야간통행금지,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등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많았다. 이에 집권한 5공이 삶에 염증을 느끼던 국민들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고, 국민의 '자유'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시행한 것이 이런 정책들이었고, 또한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 포기, 교복 폐지, 두발자유화 같은 경우에는 당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던 상황속에서도 올림픽 개최로 인해서 국제적으로 눈치를 봐야했던 상황이기에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어느정도 풀어주어서 독재에 대한 비판을 일정부분 희석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허나 덕분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중문화 산업의 기초가 만들어젔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특히, 프로 스포츠 같은 경우는 그 때 거의 기초가 완성되어 오늘날까지 성장한 산업 중 하나이다. 스포츠에 관해서는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영화 산업에 이 정책이 실질적으로 기여가 되었는지는 의문이 있다. 오히려 이 시기는 1970년대보다도[10] 외국산 영화의 점유율이 높았고, 성적인 규제만 풀렸을 뿐 정치적 규제는 여전하다 보니 내용상으로도 형편없는 영화가 많았다. 사회비판적인 영화가 나오기 시작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기는 노태우 정부부터이다.[11] 그러나 컬러수상기가 도입되고 보급률도 빠르게 상승하여 TV문화가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풍부해졌다.

다만 각종 규제검열을 다 풀었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데, 정부의 제약과 감시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유희 문화가 그나마 조금 도약했다고 보는게 정확한 말이다. 예를 들자면 금지곡 등 각종 대중문화 검열은 여전했고, 교복이 없어지고 두발도 일정수준까지는 허용되었지만 체벌이나 교련[12]은 여전히 잘 남아있고 과외는 금지되었지만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야간자율학습으로 학생들을 옥죈다거나[13] 에로영화를 허용했어도 음모는 안되는 것 등.[14]

4. 이야깃거리

우스개로 (酒, spirit/sake 혹은 SUL 혹은 Soju) 아니면 스파이(간첩 혹은 무장공비, Spy)를 가해서 4S라고도 한다[15]. 희석식 소주는 주정으로 값싸게 만들어낸 술이라 빨리 먹고 빨리 취해서 빨리 토해버릴 수 있었기 때문. 물론 몸에는 매우 좋지 않다. 그리고 간첩은 언제나 훌륭한 떡밥이었다.

Sorrow(슬픔, 한)를 주제로 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 또한 있다. KBS에서 1983년 방송했던 특집 프로그램인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두고 하는 이야기. 실제로 해당 항목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당시 5공 정권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대북 심리전에 이용하려는 전략이 어느정도 있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독재자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이와 거의 비슷한 정책으로 3F 정책을 썼다. 축구(Futebol : 포르투갈어로 축구), 종교(Fatima: 파티마의 성모 사건 참조), 파두(Fado :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역시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 종교, 음악으로 돌리려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다만 아이러니한건, 정작 파두 가수들이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는 것.1974년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 금지곡이었던 주제 아폰수의 곡이 흘러나왔는데 이것이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문명 시리즈를 하다보면 시민들의 만족 상태를 나타내는 수치인 행복도가 나오는데 이걸 올리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극장, 영화관, 콜로세움 등을 도시에 지어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전연령 게임이다 보니 맨 마지막 S까지 도입하진 못한 듯 싶지만 ScreenSports는 확실히 포함하고 있다. 스핀오프인 알파 센타우리에서는 먼 미래답게 Screen과 Sports(그리고 해석에 따라서 마지막 S까지)를 가상현실로 한방에 해결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연출을 보여준다.[16] 행복도가 떨어졌을 때 각종 반란과 생산성 감소 사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등장하는 두 원로원 의원들의 대화는 3S정책의 본질을 보여준다
GAIUS: Games! 150 days of games!
무려 150일 동안의 경기라니!
GRACCHUS: He's cleverer than I thought.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황제가 똑똑하군.
GAIUS: Clever? The whole of Rome would be laughing at him if they weren't in fear of his Praetorian.
똑똑하다고? 근위병이 두렵지만 않다면 모든 로마인들이 황제를 비웃을 것이네.
GRACCHUS: Fear and wonder. A powerful combination.
두려움과 호기심. 강력한 결합이야.
GAIUS: Will the people really be seduced by that?
사람들이 정말로 저런 것에 넘어갈까?
GRACCHUS: I think he knows what Rome is. Rome is the mob.
He will conjure magic for them and they will be distracted.
He will take away their freedom, and still they will roar.
The beating heart of Rome is not the marble of the Senate, it is the sand of the Colosseum.
He will give them death, and they will love him for it.
나는 황제가 로마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네. 로마는 오합지졸의 군중이야.
황제는 군중에게 마법을 부릴 것이고, 그들은 현혹될 것이네.
황제는 군중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것이고, 여전히 그들은 즐겁게 외칠 것이네.
로마인들의 고동치는 심장은 원로원의 대리석이 아니야, 바로 콜로세움의 모래이네.
황제는 군중에게 죽음의 경기를 보여주고, 그들은 그것 때문에 황제를 사랑하게 될 것이네

국내 프로 스포츠 중 3S정책으로 생긴 리그만 연고지 몰빵 문제에서 자유롭다. 야구야 워낙 지역에 잘 녹아들었고, 축구도 시민구단 폐해가 있긴 하지만 전국에 잘 퍼져 있다. 농구는 수도권과 부울경 2점 집중이[18], 배구는 수도권 집중이[19] 매우 심하다.

5. 관련 문서

6. 관련 문헌

  • 스포츠와 정치 - 고광헌 저. 푸른나무. 1988.


[1] 컬러 방송 시행 계획 자체는 당시 웬만한 강대국이었던 소련프랑스, 영국에 비해서도 조금 늦게 시행하는 셈이 되는 1960년대 말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컬러 방송을 시행하려 할 때마다 윗선에서 사회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딴지를 걸어서 결국 10년씩이나 늦춰지게 되었다.[2] 참고로 이날은 하필이면 언론통폐합 다음 날이었는데, TBC는 컬러 방송 한 번 못하고 폐국하였다.[3] 만화 검열이 실질적으로 완화된 것은 80년대 후반이 되어서부터였고, 가요 검열도 마찬가지로 80년대 후반에 어느정도 완화되었고 1996년이 되어서야 없어졌다.[4] 왜 대머리나 주걱턱이 문제였나 하면, 전두환이 대머리였고 이순자는 특유의 주걱턱이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5] 정작 전두환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한참 후에 박용식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사과했다고 한다.[6] 정치적 검열은 완화되지 않았다.[7] 5공정권은 정말 서울올림픽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권에 도움이 되라고 개최했던 올림픽이 오히려 정권의 명줄을 끊어놓았다. 자세한 건 1988 서울올림픽 항목 참조.[8] 구매력기준 1인당 GDP가 3만불이 넘어가는 현재도 KBO리그 구단들이 간신히 자생이 가능할랑 말랑한 정도의 수준인걸 감안한다면, 당시 경제 수준에 프로스포츠는 확실히 무리수였다. 이때문에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면세 혜택들을 부여하였고, 한국 프로스포츠는 수익을 내기 위한 스포츠산업이 아니라, 회장님의 취미생활 즉 펫 스포츠(Pet Sports)의 모습을 띄게 된다.[9] KBL은 15년 뒤인 1997년에 출범했다.[10] 이 때부터 외국 영화가 범람하여 국내 영화를 압도하기 시작하였지만, 1974년별들의 고향, 1975년영자의 전성시대1977년겨울여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외국 영화보다도 큰 흥행을 하여 국산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11] 다만 이전 시기의 후유증 때문인지 1인당 영화 관람 수나 외화점유율의 지표가 이때 더 나빴다.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고,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영화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12] 교련은 1990년대 들어서 점점 유명무실해졌다가, 2010년대 들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13] 물론 공식적으로 시행된것은 아니지만 편법으로 행해졌다. 당시에도 교육열은 엄청났기 때문에 일선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학으로 한명이라도 더 보낼려고 안달이었던것은 똑같았기 때문.[14] 참고로 음모는 영화 '꽃잎(95)' 에서 나왔고, 이후에는 영화 '나탈리(2010)'에서 나왔다.[15] 실제로 3S의 원산지인 일본에서 술은 사케다.[16] 동영상의 나레이터가 등장 지도자 중에서 가장 독재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인용구는 개인의 관점에서는 극기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 차원을 넘어서 모든 개인이 5감이 받아들이는 신호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이야기하고 있다.[17] 권용만옛날에 부른 노래에서 나온 입담.[18] 비 부울경, 수도권 구단은 강원도 연고인 원주 DB 프로미, 전북 연고인 전주 KCC 이지스.[19] 남자부 기준으로 비수도권은 충청남도권에 있는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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