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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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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통극 쿠미오도리(組踊)의 한 작품인 니도티치우치(二童敵討, ニドーティチウチ)를 공연하는 모습

1. 개요2. 언어3. 의복
3.1. 전통 의상3.2. 카리유시 웨어
4. 식문화5. 건축6. 종교7. 전통공예8. 음악9. 스포츠
9.1. 전통 스포츠9.2. 무술
10. 마츠리11. 연간 행사12. 오키나와 붐

[clearfix]

1. 개요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의 하나의 으로 되어있지만 일본 본토와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독립국인 류큐 왕국으로 존재해 왔고 중국 등의 외국과 활발히 교류했었다. 또한 기후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일본 본토의 문화와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오키나와의 문화를 참프루 문화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다양한 나라의 문화들이 한데 섞여 오키나와의 문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류큐 고유 문화를 기반으로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정착했으며,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의 요소도 유입되었고, 현대에는 미국, 하와이, 남미 지역 문화도 들어왔다.[1]

가고시마현아마미 군도도 문화에 있어서 오키나와와 유사한 부분들이 많아 류큐 문화권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언어는 류큐어계통이 사용되고 악기도 산신을 많이 연주한다. 그러나 류큐 왕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츠마 번의 지배를 받은 세월도 길어서 차이를 갖게 된 부분도 많으며, 정체성에 있어서는 오키나와와 거의 완전히 분리되었다.

2. 언어

원래 오키나와에서는 류큐어를 써왔다. 류큐어를 일본어의 방언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본토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별개의 언어로 간주한다. 게다가 섬과 지역마다 여러 방언들이 존재하며, 멀리 떨어진 섬들 사이에는 방언의 차이가 커서 대화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보통은 류큐 왕국의 중심지였던 슈리를 기반으로 한 동시에 사용인구 규모가 가장 큰 오키나와어가 류큐어의 표준어로 간주되곤 한다. 류큐어로 된 노래가 인기를 끌기도 하는 등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유네스코가 지정한 언어소멸위기 단계 가운데 '위험'에 해당하며, 요나구니와 같이 작은 섬의 방언 같은 경우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는 다들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그 가운데 우치나 야마토구치 또는 오키나와벤(沖縄弁)이라 불리는 일본어의 사투리도 많이 쓰이고 있다. 우치나 야마토구치는 일본에 합병된 이후 일본에서 건너온 표준 일본어를 바탕으로 류큐어의 어휘들이 많이 섞인 방언이며, 미군기지를 통해 유입된 영어 어휘가 적지 않게 섞였다. 또한 지리적으로 가까운 가고시마가고시마벤의 영향도 받았는데, 이는 류큐 왕국이 가고시마의 전신인 사쓰마 번의 속국이 된 것도 있고 그 전에도 류큐 왕국으로 귀화한 야마토 민족 중에 사쓰마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표준 일본어와 차이가 크지 않아 본토의 일본인들과 의사소통하기에 무리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젊은 층일수록 오키나와벤을 잘 안쓰고 일본어를 많이 쓴다.

미군 점령과 지배(1945~72)의 영향으로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영어를 잘 하는 분도 계신다. 약한 영어라도 좀 하면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일본의 여타 지역과는 이 점이 다르다.[2] 그러나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영어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키나와가 소외받는 지역이다 보니 교육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보인다. 미군 병사를 자주 상대하는 상점가 같은 곳이 아니라면 영어실력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동쪽으로 340km나 떨어진 다이토 제도(大東諸島)는 류큐어 문화권이 아니다. 원래는 무인도였으며 19세기에 이즈 제도에 위치한 하치죠 섬에서 온 이주민들이 1900년에 상륙하여 개척한 곳이다. 때문에 이곳은 일본어파에 속하는 하치죠어(八丈語)를 써왔다. 정확히는 하치죠어의 다이토 방언(大東方言). 하치죠 섬도 워낙에 본토에서 떨어지 섬이었다 보니 하치죠어도 본토 일본어와 소통이 힘들며, 때문에 별개의 언어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치죠어 역시 현재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사멸 위기 언어이다.

3. 의복

3.1. 전통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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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비 및 귀족 부인 평상복(좌), 예복(우) 왕자 및 귀족 평상복(좌), 예복(우)
류큐왕국 말기의 풍속화가 히가 카잔(比嘉華山, 1868~1939)의 작품
오키나와의 전통 의상을 류소(琉装) 혹은 우치나스가이(ウチナースガイ)라고 부른다. 오키나와의 더운 기후 특성상 통이 넓고 통풍이 잘 되는 옷이 발달하였다. 본토의 기모노와 비슷하게 긴옷를 입고 허리띠를 두르는 것이 기본으로, 위의 왕자 평상복과 같이 띠의 너비는 무척 좁으며 매듭 역시 본토의 방식과는 달리 뒤가 아닌 앞으로 매었다. 여성의 의복의 경우에는 서민들의 옷차림과, 후술하는 빈가타의 옷자락을 들어올릴 때와 겉옷 안쪽에 맨 속끈을 제외하면 허리띠를 두르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이렇게 겉옷 아래 속옷 위에 띠를 두르고 그 안쪽에 겉옷의 옷깃을 넣어 고정하는 방식을 우신치(ウシンチー)라고 한다.

류큐왕국 역시 이웃나라였던 명나라청나라, 그리고 조선과 마찬가지로 계급에 따른 복식제가 나름대로 체계화되었는데, 상류층 같은 경우에는 한두겹 정도의 옷과 띠만으로 해결했던 서민들과는 달리 두진(ドゥジン)이라는 저고리와 같은 옷고름이 달린 긴 상의와 그 아래에 바지나 주름치마인 카간(カガン)을 입고 겉옷을 여러벌 덧입었다.

기본적으로 상류층 남성의 경우 두진과 바지 위에 포(袍)에 해당되는 여러겹의 겉옷을 두른 후 넓고 긴 허리띠를 둘러 옷을 고정했다. 여성 역시 두진과 카간 위에 겉옷을 걸치고, 상술한 우신치 기법으로 겉옷을 여몄는데, 류큐왕국 말기 기준으로, 조선의 상궁에 해당되는 궁중의 고위 궁녀인 우후세도베(大勢頭部(うふせどべ)들은 빨간 두진을, 그 아래의 궁녀들은 분홍색과 같은 옅은 색의 두진을 입었다. 그리고 왕비와 왕자비, 후궁 같은 왕실인물들의 평상복이자 귀족 여성들의 예복으로서 빈가타를 두진과 카간 위에 걸쳐입었다. 여기서 빈가타(紅型, びんがた)란 겉옷이라는 뜻 이외에도 예로부터 전해져 발달해온 전통 염색기법이기도 한데, 이걸로 만든 옷을 입는 이들의 대부분 역시 상류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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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어진에서도 볼 수 있는 통천관, 강사포, 사모, 단령조복 등을 보아, 명나라 멸망 전까지의 예복은 중국의 영향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명종실록 3권, 명종 1년 2월 1일 무자 첫 번째기사에서 언급된 류큐 왕국의 풍속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궁에서는 명나라의 제도를 따라 사모와 단령 일습을 갖추었다고 언급된다.

에도 막부가 세워진 이후의 풍속화나 쿠미오도리의 무대의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후리소데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중국식 의복과 통소매 이외에도 겨드랑이 아래에 소매통이 터진 후리소데 형태의 넓은 소매의 옷도 생겨났다. 그 후리소데 형태의 옷은 본토와는 달리 주로 어린아이들과 젊은 남자들이 입었다.

상술했던 것과 같이 신분제 사회였던 류큐 왕국에서는 남성의 경우 조선명나라사모에 해당되는 관[3]의 색깔과 비녀의 재질, 옷과 빈가타의 바탕 색과 무늬 등이 정해져 있어 이것으로 신분을 구분하였다. 상류층과 왕실관계자들의 예복에 쓰는 비단 등을 제외하면 옷의 재질 역시 신분에 따라 달랐는데, 사족(士族)은 무명이나 고급 삼베, 그 아래의 서민들의 경우에는 파초와 같은 식물섬유로 된 재질의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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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본토 식으로 목깃 뒷쪽을 느슨하게 빼서 입은 우치나스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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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전통 공연이나 고전무용, 결혼식 등에서 볼 수 있다. 관광지에서도 우치나스가이를 입은 직원들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며, 돈을 내면 직접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다.

3.2. 카리유시 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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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유시 웨어(かりゆしウェア)[4]하와이안 셔츠가 오키나와에 현지화된 형태이다. 1970년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었으며, 더운 기후에 알맞아 인기가 있다. 요즘은 냉방비를 아끼는 차원으로 관공서 등지에서 정장 대신에 많이 입는 추세라고 한다. 일종의 쿨비즈. 인터뷰 사진등에서도 종종 보인다.

4. 식문화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보니 본토 일본 요리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오키나와 요리가 발달하였다. 불교의 영향이 약해서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거나 하는 점이 큰 차이. 여기에 미군기지의 영향으로 스팸의 소비량이 많은 점도 있다.

오키나와에서는 초밥이나 우동 같은 일반적인 일본 요리는 파는 곳이 있긴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애초에 오키나와에서 본토 일본요리는 남의 나라 음식에 가까워서 식당도 그렇게 많이 있지는 않은 편이다. 초밥 같은 경우는 질 좋은 재료 수급이 쉽지 않다거나[5] 하는 점으로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 드물게 정말 잘 하는 집이 있다고는 하니 잘 찾아보자.

자세한 내용은 오키나와 요리 문서 참조.

5.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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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현립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오키나와 전통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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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가옥들에서 흔히 보이는 시사
전통 가옥들은 지역 환경에 잘 맞춰진 양식을 보이는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마루와, 거센 바람은 막고 부드러운 바람은 들여보내는 방풍림이 발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그 이전 시대의 오키나와 전통 가옥은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거의 전멸하다시피했다. 전통 가옥을 보고 싶다면 본섬에서는 테마파크나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본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전쟁의 참화를 비교적 비켜간 야에야마 제도 타케토미 섬(竹富島)에는 여전히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전통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사실 저런 기와 집은 사족들이 살았고 평민들은 지푸라기 집이었다. [6]

슈리성류큐 왕국의 궁궐이었던 곳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향이 들어간 독특한 양식을 보인다.

현대 건축은 태풍에 강하다는 이유로 철근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한다. 또한 오키나와 자체가 시멘트의 재료인 석회암이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벽돌통유리 구조는 잘 쓰지 않는다.

현대 오키나와의 주택들도 일본 본토와 다른 특색을 보인다. 의외로 한국 주거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거실이 개방된 평면구조 선호와[7] 바닥에 배수구가 있는 습식 화장실[8]을 들 수 있다. 단독주택 또한 목조주택이 주류인 일본 본토와는 달리 한국처럼 철근 콘크리트 단독주택이 주류이며, 외관 또한 박공 지붕 형태보다는 슬라브 평지붕 형태가 주류다 보니 1970~80년대 전형적인 한국 단독주택과 굉장히 유사하다. 또한 공동주택을 규모와 관계없이 아파트라고 부르는 용법도 한국과 똑같다.[9]

그 외에 특이한 분묘 문화가 있다. 전통적인 형태는 귀갑묘(亀甲墓)라고 불리며, 이름 그대로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다.[10] 전통적으로는 세골장(洗骨葬)이라 하여 시신을 풍화시킨 후 남은 뼈만 씻어서 유골함에 담아 안치했는데, 귀갑묘는 문중묘 역할을 하여 여러 사람의 유골단지가 안장되었기에 크기가 거대하다. 현재는 시멘트나 대리석으로 조그만 집 내지는 사당 형태의 무덤을 만들며 세골장도 화장으로 대체되었다. 무덤 앞의 마당이 널찍한 편인데, 청명과 같이 성묘를 하는 날에는 일가 친척이 피크닉 분위기로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어먹는다.

6. 종교

류큐에는 류큐 신토라고 불리는 전통 종교가 있었다. 또 류큐 왕국 시절부터 불교, 유교, 일본 본토의 신토 또한 전래되었으나 외래종교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모로 류큐 신토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일본 본토보다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오키나와 인구의 3% 정도로 물론, 1%인 본토의 3배이지만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미군과의 접촉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기독교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본토에 비해 적은 편이다. 심지어 원래 무종교였다가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도 있을 정도.

7. 전통공예

오키나와의 염색 기법을 빈가타(紅型)라고 한다.

직물로는 파초잎 섬유로 제조하는 파초포(芭蕉布)가 유명하다.

도자기를 오키나와어로는 야치문(焼物, やちむん)이라 한다. 그 중 츠보야야키(壺屋焼, 오키나와어로는 치부야야치)가 유명한데, 17세기에 사츠마 번에 요청하여 임진왜란때 포로로 끌려온 도공 장헌공(張獻功)을 초빙하면서 시작되었다.[11] 그 이전 구스쿠 시대에 사용된 고려 기와 등을 볼 때 이전에도 바다 건너의 도예 기술이 유입되고 있었던 것 같다.

오키나와에서는 인근 산호초에서 야광패를 채취할 수 있었는데, 그 껍질을 재료로 쓴 나전칠기 공예도 발달하였다.

유리공예인 류큐 글래스(琉球ガラス)도 유명한데, 오키나와 전쟁 이전에 일본 본토에서 유리 기술이 들어온 후, 미군 점령기 당시 군 기지에서 버려진 콜라와 맥주 병을 재활용해가며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독특한 유리 제품들을 생산하였다. 기포를 특유의 미적 요소로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8. 음악

오키나와/류큐 지방의 음악 문화는 일본 본토의 음악과 차이가 많이 난다.

원래 류큐에서 써오던 음계는 도미파솔시[12]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도레미솔라로 구성된 요나누키 음계[13]를 쓰는 본토와 구별되는 큰 차이이다. 또한 산신과 같은 오키나와의 전통악기를 쓰는 것도 특징이다.

전통극인 쿠미오도리는 대사와 연기에 류큐 음악과 무용을 조합한 종합 예능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열대지방 해변 느낌이 강하다는 감상이 많으며, 종전 이후 미군 기지가 주둔하고 있어서 미군이 즐기던 음악까지 수용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록 음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하이사이 오지상을 부른 키나 쇼키치[14] & 참프루즈 같은 밴드가 그런 류큐 지방 록 밴드의 선구주자로 유명하다. 지금도 류큐 록 밴드나 가수들은 일본 음악계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음악도 호소력 있고 모던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어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리메이크 되기도 한다.(섬사람의 보물, 시마우타, 눈물이 주룩주룩 등등.)

자세한 내용은 오키나와 음악 문서 참조.

9. 스포츠

오키나와를 연고로 NPB에 참가하는 야구구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시엔만큼은 엄청난 인기가 있다. 또한 겨울에도 온난한 기후로 인해 한국과 일본 야구 구단들의 스프링캠프가 이 곳에서 많이 열리기 때문에 2월에는 연습경기를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더러 있다. 정식 리그는 아니지만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겸해서 열리는 야구 평가전을 오키나와 리그라고 부른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정식경기를 퍼시픽리그 팀들이 오키나와에서 매년 1~2경기 정도 연다. 프로야구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가 높은 편.그런데 프로야구 경기는 파리그 팀들이 주로 열다보니 경기장을 찾아오는 팬들은 현지인보다는 본토에서 비행기 타고 오는 열성팬들(...)이 대부분. 특히 롯데.

축구팀으로는 3부 리그격인 실업 축구리그 JFL에 참가하던 'FC 류큐'[15]가 있었다. 2014년 시즌부터 새롭게 창설된 정식 3부리그 J3리그에 참가하게 되어 프로구단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2018시즌에는 11월 3일 자스파구사츠 군마전에서 4-2 승리를 하며 창단 첫 J3리그 우승 및 J2리그 승격에 성공했다.그리고 J2리그팀들은 오키나와 원정으로 골치가 아파졌다 그러나 2022년에 성적 부진을 겪고 이듬해부터 다시 J3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한편 2023년부터 JFL에서 활동하는 오키나와 연고 팀으로 오키나와 SV[16]가 있다.

농구팀으로는 B리그 '류큐 골든 킹스'[17] 가 있으며 오키나와현 내에서 농구인구의 증가와 함께 최고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에어컨이 나온다 B1 서부지구에서는 여섯 번이나 지구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으며, 2022-2023 시즌에서는 드디어 리그 종합 우승을 달성하였다.

미군을 통해 일찍이 골프 문화가 들어왔기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꽤 많은 골프장들을 볼 수 있는데, 겨울에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기도 하다. 미야자토 아이(宮里藍)나 미야자토 미카(宮里美香)같은 유명 골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일본 핸드볼 리그에서 활약하는 팀으로 우라소에시 연고의 남자팀 류큐 코라손(琉球コラソン)과 나고시 연고의 여자팀 더 테라스 호텔즈(ザ・テラスホテルズ)가 있다. 특히 우라소에시는 2004년에 "핸드볼 도시 왕국 선언"을 한 이래, 시내 소학교・중학교에 모두 핸드볼부가 있을 정도로 핸드볼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9.1. 전통 스포츠

오키나와 그래플링 스포츠로 시마(シマー) 또는 오키나와 스모(沖縄角力)가 있는데, 스모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씨름에 더 가까운 경기이다. 유도복과 같은 경기복을 입고, 서로의 허리띠를 붙잡은 채 경기를 진행하며,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는 쪽이 이긴다.

류큐경마(琉球競馬) 또는 은마하라시(ンマハラシー)라는 경기도 있었다. 경주마의 속도를 겨루는 일반적인 경마와는 달리, 특유의 걸음으로 달리는 우아함을 평가하여 승부를 가렸다. 류큐 왕국 시대에는 인기가 높았지만, 태평양 전쟁 시대에 말들이 군마로 징발당하면서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각고의 노력 끝에 오키나와의 동물원인 오키나와 어린이나라(沖縄こどもの国)에서 2013년에 다시 은마하라시 경기를 복원함으로서 부활하였다.

오키나와 섬 북부지역과 우루마시 등지에서는 소싸움도 매우 인기있는 스포츠이며, 소싸움 전문 경기장도 여럿 있다.

하리(ハーリー)는 남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드래곤보트, 혹은 나가사키의 페론(ペーロン)과 같은 보트 경주이다. 주로 음력 5월 4일 윳카누히나, 골든위크 시기에 경기가 개최된다.

보드게임으로는 츈지(チュンジー)가 있다. 중국의 샹치가 건너온 것으로, 한국의 장기와도 흡사하다.

9.2. 무술

해외에 일본 무술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가라테는 원래 류큐 왕국 시절에 중국 무술이 건너와서 만들어진 오키나와 테가 원조이다. 이후 일본에 합병되면서 나서 지금의 가라테의 모습을 갖추었고, 본토 및 해외에도 세계적으로 가라데가 퍼져 나갔다. 때문에 오키나와는 '가라테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알려진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선 이 때문에 뭔가 알려지지 않은 비장의 무술이나 격투기술은 오키나와에서 나오는 걸로 묘사하곤 한다(...).[18] 여러 유파가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유파인 고주류(剛柔流)는 일본 본토에 진출하고, 극진공수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만큼 세력이 크다.[19] 그래서 그런지 현지에는 극진공수도 도장도 적지 않은 편이다.

10. 마츠리

11. 연간 행사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달리 명절을 대개 구력(음력)으로 쇤다. 하지만 일본 본토의 영향을 받다보니 요즘은 나하시의 경우에는 설날을 구정이 아닌 신정으로 쇠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명절마다 불의 신인 히누칸(ヒヌカン)에게 공물을 바치며 안녕을 기원한다. 히누칸은 한국의 조왕신에 해당하는 신으로, 집안의 안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날짜 이름 설명
구력 1월 1일 소과치(ソーグァチ) 설날, 와카미지(정화수)를 떠서 새해의 안녕을 빌고, 나카미지루[20]이나 이나무두치[21]를 먹으며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한다.
구력 1월 3일 하치우쿠시(ハチウクシー)
농촌: 하치바루(初畑, ハチバル)
어촌: 후나우쿠시(船起こし, フナウクシー)
한해의 일을 시작하는 날로 풍작이나 풍어를 기원한다.
구력 1월 4일 히누칸운케(ヒヌカンウンケー) 불의 신인 히누칸(ヒヌカン)이 하늘에서 돌아오는 걸 맞이하는 날로 날로 쌀 등의 공물을 바친다.
구력 1월 7일 난카누시쿠(七日節句, ナンカヌシク)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소나무가지와 쥬시(雑炊)[22] 등을 부치단[23]이나 히누칸에게 바친다.
구력 1월 2일~13일 투시비(トゥシビー) 오키나와에서는 12년마다 십이지가 돌아오면 액이 끼는 해라고 하여 액을 몰아내기 위해 히누칸에게 안전을 기원하고 생일잔치와 같이 탄생을 축하한다.
구력 1월 16일 쥬루쿠니치(十六日祭, ジュールクニチー) 저승의 설날으로 부치단에 공물을 올려 선조들에게 공양한다.
구력 1월 20일 하치카소과치(二十日正月, ハチカソーグヮチ) 1월의 행사가 끝나는 날로 히누칸에게 스치카[24] 등을 바친다.
구력 2월 / 신력 3월 20일 경(춘분) 피안(彼岸) 불교 행사인 피안회(彼岸会)가 전해진 것으로 조상을 위해 부치단에 음식을 제물로 바친다.
구력 2월 15일 경 2월 우마치(二月ウマチー) 보리 이삭이 돋는 시기이며, 농사일을 쉬고 풍작을 기원한다. 쉬지 않으면 하브에게 물린다고들 한다.
구력 3월 3일 하마우리(ハマウリ) 여성들이 바닷가에 가서 몸을 씻으며 건강을 기원한다.
구력 3월 15일 3월 우마치(三月ウマチー) 보리 수확을 축하하는 명절이다.
신력 4월 5일 경 청명(清明, シーミー) 류큐 3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조상의 묘에 성묘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먹는다.
구력 4월 14~15일 아부시바레(アブシバレー) 농지의 해충을 구제 하는 연중행사이다.
구력 5월 4일 윳카누히(四日の日, ユッカヌヒー) 어촌에서는 풍어를 빌며 하리(ハーリー)[25] 경주를 펼친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기도 한다.
구력 5월 5일 군과치구니치(五月五日, グングヮチグニチ) 본토의 단오에 해당한다. 히누칸에게 건강과 안전을 기원한다.
구력 5월 15일 5월 우마치(五月ウマチー) 벼의 첫 이삭을 바치며, 풍년을 기원한다.
구력 6월 15일 6월 우마치(六月ウマチー) 쌀 수확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구력 6월 25일 6월 카시치(六月カシチー) 카시치란 찹쌀밥이란 뜻으로, 히누칸에게 수확을 보고하는 날이다.
구력 6월 1일~29일 푸리(プーリィ) 야에야마 일부 지역의 수확제로, 현재 무형민족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구력 7월 7일 칠석 조상의 무덤을 깨끗이 하며 오봉이 오는 것을 조상에게 보고하는 날이다.
구력 7월 13일 오봉 - 운케(ウンケー) 부치단에 공물을 바치고 향을 피워 조상의 혼령을 맞이한다.
구력 7월 14일 오봉 - 나카누히(ナカヌヒー) 부치단에 세 번 식사와 후식을 바치고 친척들을 만난다.
구력 7월 15일 오봉 - 우쿠이(ウークイ) 조상님의 혼령이 돌아가는 날로, 밤 늦게 가족이 모여 지전을 태우고 향을 피우며 배웅한다. 에이사[26] 행렬을 펼치기도 한다.
오봉 다음의 돼지(亥)의 날 시누구(シヌグ) 남자의 축제란 뜻으로, 재앙을 물리치고 오곡이 풍성하기를 빈다. 현재 무형민족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오봉 다음의 돼지(亥)의 날 운쟈미 (海神祭, ウンジャミ) 여성 중심의 풍작 및 풍어제이다. 시누구와 한 해씩 교대로 이루어진다. 현재 무형민족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구력 8월 8일 토카치(米寿, トーカチ) 노인의 88세 생일(미수)을 축하한다.
구력 8월 10일 경 팔월 카시치(八月カシチー) 찹쌀밥을 부치단에 바치고, 요괴와 잡귀들을 몰아내는 날이다.
구력 8월 15일 쥬구야(八月十五日, ジュゥグヤー) 히누칸에게 수확과 안전에 대해 감사하며, 달맞이를 즐기는 날이다. 겉면에 팥을 묻힌 떡인 후챠기(フチャギ)를 먹는다.
구력 9월 7일 카지마야(風車祭, カジマヤー) 노인의 97세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다. 97세가 되면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하며, 행진을 벌이기도 한다.
구력 9월 9일 치쿠자키(菊酒, チクザキ) 중양절이며, 사악한 기운을 쫓는 국화잎 세 개를 술잔에 띄워 마신다.
신력 9월 23일 경(추분) 피안(彼岸) 봄에 행해지는 피안과 거의 똑같다.
구력 10월 1일 카마마이(カママーイ) 아궁이와 집을 청소하며 재액을 쫓아내는 날이다.
구력 10월 1일~29일 탄투이(種子取, タントゥイ) 추수감사제이다. 야에야마 일부 지역에 남아있다.
신력 12월 22일 경(동지) 툰지(冬至, トゥンジー) 저녁에 동지 쥬시(雑炊)를 먹고, 히누칸에게 제물을 올리며 겨울이 왔음을 고한다.
구력 12월 8일 무치(鬼餅, ムーチー) 무치라고 하는 떡을 히누칸에게 바치고 가족과 나누어먹으며 건강을 기원한다.
구력 12월 24일 우간부투치(御願解き, ウガンブトゥチ) 히누칸이 일 년동안 집에 있었던 일을 하느님에게 보고하기 위해 승천하는 날이며, 집안을 청소하고 향을 피우며 한 해동안을 반성하고 감사한다.
한 해 마지막 날 투시누유루(トゥシヌユルー) 한 해 마지막 날을 가족들과 고기요리를 먹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명절은 아니지만, 양력 6월 23일은 위령의 날(慰霊の日)로, 오키나와 전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이다. 현에서 지정된 기념일로, 이날 현내 관공서들은 휴무한다.

12. 오키나와 붐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를 오키나와 붐(沖縄ブーム)이라고 한다. 1992년 슈리성이 복원되었고, 1993년에 류큐 왕국을 소재로 한 NHK 대하드라마류큐의 바람(琉球の風)》이 방영되었으며, 1995년부터 오키나와 출신 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큰 인기를 끌면서 '아무라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오키나와 붐의 끝으로 본다.


[1] 미국 문화는 주일미군의 영향이 깊고, 또 하와이와 남미의 문화는 근대시기 오키나와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을 때에 오키나와인들이 생계를 위해 해외이주를 하면서 교류가 이루어진 경우이다.[2] 실제 경험담으로, 국제거리에서 회전초밥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다수의 영어 대화음이 들렸다. 당연히 주둔 미군 및 그의 가족이거나 외국인 여행객으로 생각했는데 웬 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오키나와 어르신들과 좀 높아보이는 미군이라 카더라.[3] 하치마키(冠, ハチマキ)라고 하며, 일본 본토에서 하치마키는 머리띠(鉢巻)를 의미한다.[4] 카리유시(嘉利吉)는 '경사롭다', 혹은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하는 오키나와어 단어이다.[5] 따뜻한 곳에서 나는 물고기는 맛이 없다는 평가가 많은데 일본 본토쪽 생선들에 비해 지방질이 부족한 것이 이유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사시미보다 어묵의 형태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6] 농촌의 일반 백성들에게도 기와 지붕이 허가된 것은 류큐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서였다.[7] 일본 본토의 일반적인 단독주택들은 현관 - 복도 - 거실 및 방 으로 통하는 구조지만, 오키니와의 일반적인 단독주택들은 중간에 복도를 통하지 않고 한국의 일반적인 단독주택 처럼 현관 - 거실 - 각 방으로 통하는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 또한 한국과 비슷하게 대청마루가 있는 오키나와 전통가옥의 영향을 받은 평면구조다. 물론 최근에는 일본 본토의 평면 구조의 영향을 받은 신축 주택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8] 일본 본토는 건식 화장실이 대부분이라 배수구가 없다.[9] 일본 본토의 경우 '아파트'는 원룸이나 소규모 다세대주택을 가리키며 대규모 고층 공동주택은 '맨션'으로 부른다.[10] 푸젠성 지역에서 들어온 문화로, 대만과 매우 비슷한데, 대만은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편이지만 오키나와는 수수한 편이다.[11] 사츠마 번은 조선 포로들을 통해 도자기 사업을 펼쳐나갔으며 이들이 만든 사츠마야키(薩摩焼)는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쳤다. 참고로 일본 제국의 외무대신을 지냈던 도고 시게노리가 이 조선인 도공 가문 출신이다.[12] 현대에 작곡되는 오키나와풍 음악은 도'레'미파솔시의 6음계로도 만들어진다.[13] 엔카트로트에 쓰이는 그 음계이다.[14] 이 사람은 후일 일본 민주당 국회의원으로도 지내기도 했다.[15] 2008~2010년의 감독이 무려 전 일본대표팀 감독이던 필립 트루시에[16] 독일어로 읽어서 SV를 '에스파우'라고 읽는다. Sport-Verein의 약자이다.[17] http://www.okinawa-basketball.jp/[18] 잘 알려진 '톤파'역시 오키나와에서 쓰던 무기. 현재는 개량을 거쳐 경찰봉으로도 쓰인다.[19] 이는 창시자인 최영의 총재가 고주류 유단자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최영의는 쇼토칸류를 먼저 배웠기 때문에 쇼토칸류의 유단자이기도 하다. 거기다 친한 형 뻘인 기무라 마사히코에게 유도를 배워 4단을 따낸 종합무술인이다. 본인이 가라테가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활동했을 뿐.[20] 中身汁, 돼지 내장으로 끓인 국[21] イナムドゥチ, 고기, 버섯, 어묵 등 다양한 재료를 미소 국물에 넣고 끓인 국[22] 밥으로 지은 요리[23] 仏壇, 집 안에 두는 작은 제단으로 본토의 부츠단에 해당한다.[24] スーチカー, 염장 돼지고기[25] 아시안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드래곤보트와 비슷하다.[26] 오키나와에서 오봉 때 펼치는 북춤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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