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6 11:24:40

고증

1. 개요2. 오용3. 창작물에서의 고증
3.1. 고증과 작품성은 비례하는가?
4. 고증만능주의5. 현실적인 한계6. 기타7. 고증 완성도8. 관련 문서

1. 개요

考證
고증의 사전적 정의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이다.

사전적 정의만을 놓고 본다면 진품명품처럼 골동품이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거나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문헌을 통해 확인하거나, 과거의 경전이나 조각품에 쓰인 내용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울 때 그를 알아보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고증의 예시로 들 수 있다. 사전적 의미의 고증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단어로 고증학을 들 수 있다.

2. 오용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고증이라는 단어를 '창작물에서,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 상의 역사적, 기술적, 사회적, 혹은 과학적인 상황과 맥락 등을 원리나 실상에 맞도록 올바르게 반영 또는 재현하는 것'이라는 확장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단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잘못된 용법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에는 사용할 수 없는 단어이다.
곧이 고증이라는 말을 써야겠다면 '영화나 연극 따위에서 제재(題材)가 된 시대의 의상, 도구, 장치, 풍속 따위를 바르게 나타내기 위하여 조사하는 일'이라는 의미를 가졌으며 국어사전에도 등록된 '시대 고증'이라는 단어를 그나마 쓸 수 있겠지만 이 단어 역시 '옛 고'자를 쓰는 만큼 시대고증이라는 용어 또한 과거시대에 대해 사용하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즉 현재 인터넷에서 쓰이는 고증이라는 말은 고증 그 자체의 뜻이 아니라 연극영화학적 용어인 시대 고증의 의미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가상 설정의 정합성 등을 가리키는 의미로 비약되는 경우까지 있으므로 단어에 대한 누리꾼들의 올바른 이해와 사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쉽게 말해 창작물을 실제에 맞게 나타낸 것에는 고증이라는 단어 대신 '반영'이나 '재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며 '현실 고증'과 같은 말은 틀린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인터넷 이용자를 중심으로 모방사용의 사례가 있고, 일부 언론사 등지에서도 역사 영화나 과학 영화 등을 소개하며 '고증이 잘 되었다', '고증 논란이 있다' 등의 표현을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이러한 오용 사례를 접할 기회가 많은 누리꾼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아예 현실과 이렇다 할 관계가 없는 판타지 작품의 영역에서도 위와 같은 고증의 정의가 사용되기도 한다. 마법사들이 비행 마법으로 날아다니는 것을 현실적인 고증에 맞지 않다고 엉뚱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니고, 작품을 둘러싼 설정이 얼마나 치밀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한다. 즉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의 정합성이 '현실과 얼마나 비슷한지'에 있다면, 현실 배경이 아닌 작품들의 정합성은 '설정과 얼마나 비슷한지'로 대체되어 있으며, 이런 작품들에 대해 사용되는 '고증'은 작품이 핍진성을 얼마나 잘 확보하고 있는지와 그렇게 핍진성을 잘 확보한 설정에 맞추어 내용이 흘러가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필 여기 고증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판타지 세계관이 중세스러운 경우가 많은 것 또한 한 원인일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위의 경우도 용어의 의미에 맞지 않는 오남용 사례이므로 이러한 경우는 설정에 맞다/맞지 않다로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다

3. 창작물에서의 고증

창작물에는 여러 장르가 있고, 어느 장르이건 간에 팬이 항상 존재한다. 그 중에는 비교적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팬들 역시 많다. 가령 밀덕후로 지칭되는 군사 매니아들은 전쟁 영화에서 무기전쟁의 묘사에 매우 민감하다. 사극의 복식이나 제도, 정치적 상황이 허술하면 이번에는 역덕후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독자들의 몰입이 중요한 서사 예술은, 너무 허술한 상황 설정 때문에 독자가 보기에 너무 어색해서 집중이 잘 안 된다면 그만큼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악평을 듣기 마련이다. 고증은 이 점에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관객을 상대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일부 매니악한 팬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등장인물이 조선 시대에만 있었던 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일반인들은 어색해하거나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역사 전공자나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성가시게 느껴질 것이다. 순문학 같은 장르는 독자층이 폭넓지만, SF, 사극,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 역사 시뮬레이션 등은 그 특성상 한 우물만 판 수용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하며, 심한 경우 매니아층의 지지가 없이는 시장성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장르도 굉장히 많다. 그런 경우 작품의 고증에 대한 논쟁은 팬들 사이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화두이기도 하다.

전문가 집단이 창작물의 고증을 논하는 경우도 있다. 기황후시청률이 높아지자 역사학자들이 실제 사실을 알리고 잘못 묘사된 부분을 지적한 것, 인터스텔라의 개봉 이후 제작에 참여한 물리학자 킵 손이 인터스텔라 속의 과학을 설명한 책을 낸 것 등이 그 좋은 예시다. 학자들은 대중들과 소통하며 올바른 지식을 전달할 의무가 있고, 각종 창작물의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이 창작과 상상의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사실인 것으로 믿어 버리는 일도 자주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창작물의 고증적 오류를 논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창작자들은 팬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고증을 잘 지켜 어색함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고증이 낳는 생동감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동시에 잘못된 인식이 퍼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고증 오류를 범한다면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창작물은 창작물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정확히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작품의 성격에 따라서 주의할 점은 천차만별이다. 다큐멘터리와 같이 학술적 성격을 가진 작품은 오히려 오락보다도 정보 전달이 더 주된 목적이므로 잘못된 과학 정보를 포함했다가 큰 봉변을 치를 수 있다. 한반도의 공룡 같은 작품은 사실성이 없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다. 트렌디 사극을 표방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윤색하는 것 역시 어지간히 큰 왜곡이 아닌 이상 비난의 대상이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창작물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역비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역사에 충실한 정통 사극을 내세우는 작품이 정작 시대상의 조명에 소홀하다면? 말할 것도 없이 크나큰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과거 풋풋한 대학 시절을 보냈던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고자 한다면 그 때의 생활상을 정확히 꿰뚫을수록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처럼 작품에 따라서 고증의 중요도는 크게 달라지며, 고증을 하는 방식과 수용자가 고증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진다.

따라서 창작자들에게 고증 문제는 애써 만든 창작품을 관객들, 독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니 이게 왜 이렇지?' 하고 외면을 받지 않도록 완성도를 높이는 면에서도,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3.1. 고증과 작품성은 비례하는가?

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증과 작품성은 그 자체로는 인과관계가 없다.

고증은 분명히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끼치는 한 요소이고, 때로 작품의 평가와 직결되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사회적 의무를 배제하고 완성도 자체만을 따진다면 고증 역시 어디까지나 작품의 한 부분으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려하는 사항에 불과할 뿐 일순위로 고려할 이유가 없다.

서사창작물의 기본은 속된 말로 얼마나 미끈한 구라를 풀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미끈한 구라를 구성하는 것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가 포함된다. 우선 분명한 주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극적 합의에 의해 판타지나 심령적 요소, SF 요소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이런 요소들조차 처음부터 관객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했거나 극 진행 속에서 받아들일 만한 근거가 주어지지 않은 요소는 개연성을 저해한다.[1] 관객들은 바보나 머저리가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탄탄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좋은 작품'의 1순위 요소는 충실한 고증이 아니라 좋은 스토리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고증을 열심히 고려하면서 창작을 하다 보면 분명히 창작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 스토리가 그만큼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이라는 말을 '그럴 듯하다, 있을 법하다'라고 핍진성과 유사한 것으로 풀이한다면 고증이 섬세할수록 리얼리티가 증가하고, 개연성 역시 크게 증가한다. 그러나 고증이 작품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부피를 너무 늘리지 않는 선 안에서만 그러하다. 다시 말해 스토리 라인에서의 고증은 스토리 라인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해서만 작품의 질을 향상시킨다. 그러나 충분한 개연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고증이 없더라도 작품의 질은 우수할 수 있다. 반대로 스토리 라인에 직접 영향이 없음에도 고증에만 집착하거나 고증이 오히려 스토리의 개연성을 저해한다면 고증이 잘 되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두 번째 요소는 시청각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영상매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를 조합해야 하는데, 저마다 분명한 기능을 가지고 조직된 화면 안의 모든 요소를 '미장센'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시각적 요소에 대한 고증은 '미장센'의 영역이다. 영상매체에 등장하는 총이나 병기, 무기, 복식에 대한 고증 말이다. 그런데 미장센은 전술한 바와 같이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배열된 것을 의미하지 무의미하게 늘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띠돈 패용이 잘 고증된 장면의 띠돈도 연출자가 의도했다면 미장센이지만 의도하지 않았다면 미장센이 아니다. 그것은 비평적으로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 부분이다. 반대로 칼을 손에 들고다니는 그림도 연출자가 의도했다면 미장센이며, 이 미장센이 미학적으로 혹은 영상문법적으로 혹은 개연성 측면에서 왜 허술하고 나쁜 미장센인가를 비평할 수는 있지만 그런 미장센을 연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각적 고증의 영역도 잘 조직된 미장센의 관점에서 보아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시청각적인 부분이 잘 된 고증은 대부분 개연성을 높이고 사실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므로 미장센 안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증이 미흡한 부분도 미장센에 의한 것이라면 '고증이 미흡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이 미장센은 영상미학적으로 왜 허술하거나 효율적이지 못한가, 혹은 이러한 미장센을 만들어낸 의도가 작품 전체의 주제의식 등에 미루어 옳거나 효율적이었는가를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판타지 작품에나 등장할 법한 갑옷을 등장시켜놓고 한국사의 영광이나 한국 문명의 찬란함 따위를 주제의식으로 내세우고 있다면 "사실을 왜곡한 미장센이 한국사의 영광을 증거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 옳지 그것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토리를 잘 조직하고 미장센을 잘 구성하는 유능한 스토리텔러, 유능한 연출자라면 고증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사람들은 고증이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해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를 조직하는 능력과 미장센을 구성하는 능력이 딸리는 스토리텔러, 무능한 연출자라면 고증을 아무리 열심히 해보았자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고증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수단이지 작품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고증덕후라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만 임성한은 고증덕후가 된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줄리어스 시저는 시대 고증이 잘 되어있다고 하기엔 힘들지만 카이사르와 그를 암살하려는 이들의 심리와 행동이 매우 그럴듯하게 잘 나타나 있어 불후의 명대사들과 함께 위대한 고전으로 남았다. 반대로 삼류 극작가가 로마 공화정 말기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재미있는 연극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쥬라기 공원 역시 마찬가지의 예시다. 또한 완성도라는 개념은 매우 폭이 넓어서, 가령 만화의 경우에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솜씨도 완벽하고 고증 역시 필요한 만큼을 정확히 지키는 작가가 그림을 말도 안 될 지경으로 성의 없이 그린다면 그것도 완성도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즉 고증과 완성도는 정비례하지 않으며, 고증만으로 작품을 따지기에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그 요소들 중에서도 고증은 완성도의 변방에 자리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증에 눈이 멀어서 작품의 다른 구성 요소들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창작물을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며, 생산적인 창작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을 한심스러운 지적 유희에 그치도록 악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어떤 작가가 고증에 철저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고, 작품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되는 중요한 배경에 대한 이해를 원활히 하고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에 고증과 완성도 간에 약한 상관관계 정도는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생판 문외한이 제작을 하는 것보다는 사전 조사가 철저한 제작자가 스스로의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편이 완성도가 더 높은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물론 설정놀음만 일삼느라 제대로 서사를 전개하는 능력이 부족한 제작자가 수두룩하고, 일부러 고증을 필요한 만큼만 지키고 패스할 부분은 패스하면서도 명작을 뽑아내는 작가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의미한 상관관계라고 보기는 힘들다.

4. 고증만능주의

창작물의 고증에 대해 살피고 창작자들과 생산적인 논의를 한다면 창작자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원하는 바를 캐치하게 되어 좋고 수용자들 입장에서는 제작에 의견이 반영되어 몰입감이 배가된 작품을 늘길 수 있게 되어 윈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혹 작품의 가치를 오직 고증에만 두는 사람들도 있다. 고증오류를 지적하는 개인은 그럴 만한 지식도 있고 애정도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매니아 계층의 구성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고증덕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엄격하게 반응하고, 고증상의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드러내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도 한다.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창작물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미덕에 대해서는 쉽사리 둔감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문체가, 연극에는 연출이 중요한 것처럼 표현상의 형식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작품이 가져야 할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은 작품 전체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지엽적인 부분에서의 고증까지 마구 물고 늘어지지만, 그것이 비평적으로는 아무런 함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모른다. 창작물은 백과사전이 아니고 예술의 영역인데도, 지나치게 고증에 얽매이고 현실성을 따지는 나머지 창의성의 발휘를 억압하는 것이다. 마치 창작물이 현실의 모방에 불과해야 한다는 듯한 플라톤도 아니고 극사실주의 극혐? 오만한 태도는 예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도 완벽한 고증은 불가능하다. 고증은 근본적으로 현실의 재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창작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재해석의 폭이 가장 좁은 다큐멘터리 장르를 보자. 현실 세계의 전달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된다. 그러나 현실을 완벽히 모사하는 창작물은 존재할 수 없다. 뉴욕 시민들의 하루를 다루는 1시간 반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하자. 카메라에 찍힌 내용은 모두 실사 영상이기에 내용에 포함된 내용들은 고증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하자. 이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완벽히 재현한 것인가? 그러나 뉴욕 시민들의 삶을 말 그대로 정확히 재현하려면 그만큼의 시간공간 역시 재현되어야 한다. 즉 뉴욕 시민들의 하루를 오차 없이 모사하려면 뉴욕 전역을 24시간 동안 카메라로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 중 일부가 재미가 없어서 덜어낸다면 그 순간 현실의 뉴욕과 다큐멘터리 속의 뉴욕 사이에는 오차가 발생한다. 어떤 종류의 편집이든 하지 않고 창작물을 만들라는 소리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로 허황된 고증이 가능할 리가 없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것들까지 언급해 가면서 '이게 나왔어야 했다'하고 비판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담론에서 무의미해진다. 일제 시대 만주의 독립 운동을 다룬 사극에서 안창호 선생이 등장하지 않고 김좌진 장군만 등장했다면 이것은 잘못인가? 그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히 했다고 볼 여지가 없는 김구 선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잘못인가? 아예 만주라는 공간적 배경만을 카메라에 담은 감독의 선택이 잘못인가? 이런 문제는 무한히 소급되며 끝날 여지가 마땅치 않다.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작자가 전달할 주제 의식을 정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선별해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예술이 성립할 수 없다. 어차피 현실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이 가능한 것도 아닌데, 잘못 등장한 내용을 바로잡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런 내용은 더 들어가야 한다'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경우 너무 무분별한 의견이 나올 여지가 많다.

뿐만 아니라 고증이 여러 층위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에는 충돌할 수 있다. 가령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학원연애물 웹툰이 있다고 하면, 고증의 포커스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잘 반영했는지에 맞추어져야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당 만화에 맞춤법인 엉망인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내용이 있다고 해 보자. 국어 원칙을 제대로 고증하려면 이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 맞춤법이라는 원리가 판단 준거인 이상 그에 어긋나는 부분은 국어에 대한 고증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틀림없이 커다란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카톡에서까지 표준 맞춤법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학생들은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즉 맞춤법을 준수한다면 국어적 고증은 충족하나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고증에는 완전히 실패해 마치 국어 교과서를 보는 듯한 이상한 장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어 맞춤법 고증을 정확히 하라는 요구는 오히려 방해만 된다. 같은 의미에서 전쟁 영화에서 겁에 질린 군인이 총 쏘는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친 비판이다. 만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무너지는 인간을 그려내려고 했다면 총 쏘는 법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은 오히려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을 고증에 어긋난다고 무작정 배척하는 행위는 정작 작품이 말하려고 주제의식은 멀리하고 개별적인 장면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어리석은 행위다. 고증에 대한 편집증적인 도착은 오히려 작품을 작품으로 감상하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같은 수용자들 입장에서도 악질 고증만능주의자들은 아주 짜증나기 마련이다. 고증에 정말 무관심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다 믿는 사람들이 독자의 전부가 아니라, 고증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창작물을 창작물로서 즐길 뿐 그것을 정말 믿을지의 여부는 별개로 볼 수도 있다. 흥미가 생겨서 작품의 배경에 대한 더 정확한 지식을 알고 싶다면 관련 서적을 찾고 검색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고증이 잘못된 작품의 독자들은 창작물과 현실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제멋대로 판단한다. 재미있게 작품을 잘 보고 있는 사람들더러 잘못된 사실에 빠져선 안 된다며 다짜고짜 계몽주의자 행세를 하는 등 눈치없이 초를 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고증을 지키려는 행위에 대한 반감을 낳을 수 있다.

또한 고증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라고 그 분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으므로, 잘못된 고증이라고 지적을 했는데 오히려 지적하는 사람의 말이 틀리는 경우도 심심찮다. 특히 고증에 대해 지나치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인터넷 등지에서 활발히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정말 권위가 있는 전문가라기보다는 아마추어, 오타쿠의 영역에 해당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

5. 현실적인 한계

고증을 하는 드라마영화의 규모, 혹은 장르에 따라 고증 오류가 크게 지적받기도 하고, 그냥저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2] 일단 한국 드라마영화들이 이런 걸 잘 무시한다고 하며, 서양의 작품의 경우 동양사에 대한 일반상식이 부족한 탓에 동양에 관련된 고증은 개판인 경우가 많다. 고생물학 다큐에도 예외는 없어서 모든 고생물학 다큐의 교과서격으로 칭송받는 BBC공룡대탐험 역시 찾아보면 자잘한 오류가 꽤 된다. 개중에는 학설의 변화에 따른 오류도 있는 편.

또한, 학설의 변경 문제 외에도, 주류 학설의 다양성 역시 무시할 수가 없는데, 주류 학설에도 여러가지 대립되는 의견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창작물에서 그중 하나를 적용하면 오히려 다른 학설에 어긋나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특히 이 점은 고증오류를 지적하는 쪽에서도 자주 간과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고증을 완벽히 지키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깨지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악역인 독일군 장비는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 파괴되거나 스크랩되어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정말로 진본을 찾기 힘들면 웬만하면 비슷한 걸로 대체한다. 예를 들어, 티거중전차 같은 경우, 기동 가능한 실제 전차는 영국에 딱 한 대만남아있기 때문에 퓨리(영화)이전에는 T-34IS-2등의 다른 전차로 레플리카 차량을 만들어 촬영을 해야 했다. 더 퍼시픽도 펠렐리우 상륙 장면에서 후방램프가 없는 초기형 LVT를 구하지 못하여 멀쩡히 있는 LVT-4로 촬영했는데, 시치미 뚝 떼고 램프 개방 없이 해병들이 뛰어내린다. 고증을 지키려고 실제 독일군 장비를 복원하다간 영화 찍기도 전에 예산 부족으로 파산하기 쉬울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도 유사하게 자동차 고증오류를 자주 까는데, 소품커녕 리스토어마저 못 할 정도로 멸종된 차들이 많아서 고증이 불가능한 기계들이 많다. 이는 계획적 구식화와도 유관해 보인다.

고증의 발목을 붙잡는 또 다른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저작권과 상표권 문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아돌프 갈란트를 소재로 저예산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고증을 맞추려면 아돌프 갈란트가 비행기에 자주 그렸던 미키마우스도 그려줘야 하는데,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이 쥐의 몸값이 장난이 아니다. 저예산 작품이면 제작비의 몇 배를 이 쥐의 섭외(?) 비용으로 써야하는 상황도 올 수도 있다. 더 골때리는 상황도 있는데, 60년대 아이콘 가운데 여럿인 비틀즈의 노래들은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가도 저작권이 더럽게 꼬여있는 상황이래서[3] 누구한테 저작권이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거기에 일본 J리그의 경우처럼 상표권을 독점계약해놓은 경우도 종종 있다. J리그 선수들의 초상권은 코나미의 위닝일레븐과 독점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 축구 선수들을 등장시키는 다른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정작 선수들을 직접 등장시킬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각종 꼼수를 사용하는데, 이름이나 모양새를 살짝 비틀어 놓거나, 음악은 모창가수의 음악을 사용하는 식이다. 도무지 방법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작품에서 빼 버릴 수밖에 없다.

상업적으로 다루어지는 저작권, 상표권, 초상권 문제 밖에 명예훼손의 우려는 주의해야 한다. 실제 축구 선수들이 등장하는 피파 시리즈는 자기 능력치가 낮게 나온다고 농담삼아 항의를 하는 선수들도 있다. 스피드 능력치가 낮게 책정되면 자기는 이것보다 훨씬 빠르다고 SNS에 달리는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식. 이런 문제는 한국 사극 제작자들이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존 인물의 악행을 악행으로 묘사했을 뿐인데, 해당 인물을 조상으로 받드는 문중에게서 태클이 들어오는 불편한 상황을 자주 겪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라고 한다. 이러면 아예 등장인물을 개명하거나 역할을 바꿔서 논란의 여지를 없애는 고육책을 쓰기도 하며, 그만큼 고증에 문제가 생긴다. 문중에 의한 상습적인 법적 분쟁은 창작의 자유를 너무 크게 억압하다 보니 법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자주 지적된다. 위인이라고 해서 평생 선량한 행동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조상이 나쁘게 묘사되는 대로 실제 역사까지 바꾸어 달라는 항의를 하면서까지 비뚤어진 효를 실천하는 여러 문중의 잘못이 크다.

임진왜란 시기를 배경으로 한 대한민국 사극에서 조선군보다 일본군의 고증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다(…) 한국 방송사의 현실적인 한계 탓에 조선군은 벙거지+쾌자+당파의 삼종신기 소품밖에 없지만, 일본군 소품은 일본에서 양질의 중고품을 대량으로 싸게 구입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만 보고 후줄근한 복장에 삼지창만 달랑든 조선군이 깨끗하고 번쩍번쩍한 갑옷일본도, 조총 등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한편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고증을 할 수 있는 한 완벽에 가깝게 살리고자 하는 시도가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한 결과 또 다른 의미의 고증오류가 생기는 어찌 보면 황당하다 볼 수 있는 일도 있는데, 위에서도 언급한 임진왜란 시기를 배경으로 한 대한민국 사극이 좋은 예이다. 일본에서 양질의 중고품을 대량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어 뛰어난 퀄리티로 고증을 살릴 수 있는 일본군 쪽의 소품들은 오히려 그렇게 저렴한 비용으로도 뛰어난 퀄리티로 고증을 살릴 수 있는 점이 역으로 작용해서 아시가루갑옷에 쓸데없이 뻥튀기가 엄청 들어간 경우가 많은 등 되려 원래 역사와는 묘사가 달라지고, 그 때문에 의외로 조선군 쪽이 갑옷이 아예 없고 무기도 엉터리인 점을 빼면 원래 역사에 가깝게 묘사되는 사례도 는다. 조선군 병사는 현용 포졸복에 무기만 각궁 + 장창 OR 편곤으로 바꿔주고 쇄자갑이나 조끼형 갑옷(흉갑) 같은 가벼운 무장을 하면 얼추 고증에 맞고 아시가루의 갑옷은 현용 갑옷에서 비용을 많이 절감해서 여러 디테일을 빼는 등 단순하게 만들고 무기만 카즈모노로 바꿔줘도 돈도 아끼고 욕도 안 먹는다.

또한 현대인의 신체가 고증에 따른 소품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게 신발이다. 수많은 사극에서 밑창이 부츠처럼 굽이 나 있거나 하는 모습은 이래저래 풍자되긴 하지만 현대인의 발은 현대에 만들어진 신발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에[4] 실용성과 배우의 발 건강 문제가 더해져 의상 고증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 배우의 이미지 관리 문제 때문에 고증을 못 살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배우의 이미지를 고려한 부분인데, 당장 고증을 잘 살린 색, 계의 반응을 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액션에도 마찬가지로 있다. 당대에 사용되던 무술이나 전법 등을 충실히 고증하자고 해도, 경우마다 그 전법 자체가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하거나 위험해서 고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등자의 고증 문제로, 오늘날 같은 등자는 동아시아에서는 남북조시대, 서양은 신성로마제국 건국 즈음부터 사용한 물건이기에 이 이전 시대를 묘사할 때는 등자 없이 말에게 타는 것이 제대로 된 고증이다. 문제는 무등자 승마가 엄청나게 어렵고 위험한 것이다. 현대에는 승마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문데 여기에 고증 하나 때문에 허벅지 힘만으로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위험천만한 무등자 승마를 배우에게 강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부러 고증을 지키지 않는다. 글래디에이터에서 감독은 당시 로마 기병들은 등자를 쓰지 않았으므로 작중 등장하는 기병들도 등자를 쓰지 않게 하려 했으나, 스턴트맨들이 그건 너무 위험하다고 거부한 일도 있으며, 비슷하게 랜스 차지도 엄청나게 위험한지라 잘 고증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로한의 6천 창기병이 돌진할 때 안전 문제 때문에 랜스 차지가 아니라 평범하게(?) 칼이나 도끼 들고 돌격하는 장면으로 바뀐 일도 있다.

또한 고생물학 같은 현재진행형으로 학설이 바뀌는 분야이면 과거에 기껏 고증을 맞췄는데 학설이 바뀌어서 본의 아닌 고증오류가 되어 버리는 안습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 피해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스타 트렉장 뤽 피카드. 페르마의 대정리가 800년째 풀리지 않아서 자기 자신도 풀고 있다는 설정이 있었으나 앤드루 와일스 경이 이것을 증명해 버림으로써 본의 아니게 고증 오류가 돼 버린 것.

그리고 다들 신경 안 쓰지만 의외로 많이 나오고 또 많이 무시되는 것이 바로 언어 고증 오류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성서 시대 인물부터 미래 시대의 외계인들까지 모두 유창한 미국식 또는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도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동전사 건담. 창작물은 수용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이다. 여기에는 언어 변화 문제도 있다. 만일 미래 세계를 다룬 TV 시리즈에서 배우들이 만들어진 미래 언어를 사용하면 이는 사실상 작품이 이해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창작물의 기본 전제를 깨뜨리는 새로운 예술품으로라면 몰라도 작품 내용상으로는 아무런 언어적인 의미도 없을 것이다. 또 해당 국가나 시대의 언어 고증을 위하러 다른 나라 배우나 성우를 데려오고 언어학자나 역사학자를 고용하려면 제작비가 미친 듯이 상승할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 밖에도 게임이면 플레이어의 쾌적한 몰입을 위하러 어쩔 수 없이 고증을 포기해야 하는 사례도 있다. 에이스 컴뱃, H.A.W.X.프로젝트 고담 레이싱처럼 의도적으로 아케이드의 느낌을 주기 위하러 고증을 무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얼리즘 FPS라 해도 실제 총을 사용할 때처럼 탄속, 풍향, 풍속, 온도, 습도, 무게, 중력, 근력, 지구력, 정신력, 체력 같은 게 전부 구현되면 난이도가 대폭 올라가 버린다. America's Army, 스나이퍼 엘리트만 해도 이곳에 나열된 요소 가운데 일부만 채용하였는데도 접근 난이도가 훌쩍 뛴다. FPS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총알을 쏘며 즐기기 위하러 게임을 하는 것이지, 탄속을 계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철저한 고증은 오히려 쾌적한 플레이에 불편함을 주어 플레이어들에게 외면되는 요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를 막론하고 게임에서는 문학적인 연출 등의 영역과 별개로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하여 일부러 고증을 자제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러한 한계는 대부분 제작상의 현실적인 문제로 비롯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품과 배경 문제에 자유로운 비실사 매체는 이론적으로는 실사 매체보다 고증이 훨씬 뛰어날 수 있다. 삼국지를 배경으로 실사 사극을 찍으려면 후한 시대 건축 양식을 살리며 세트를 실제로 지어야 하겠지만, 소설을 쓰려면 건물 외형을 시대에 맞게 묘사하면 그만이고, 회화만화, 애니메이션이면 복원한 외형을 그리거나 3D 모델링을 하면 된다. 이것도 절대로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덜 수고스럽고,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싸게 먹힌다. 그러나 그럼에도 대개는 이런 작품들이라고 고증이 뛰어나다고는 일반화할 수 없다. 오히려 실사보다 다양한 표현을 하기 쉽기 때문에 고증이 더 엉망이 되거나 부각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장금이의 꿈은 원작 드라마 대장금보다 더한 고증을 보여준다고 평가받았음에도 비실사적인 만화적 표현 때문에 티가 거의 나지 않는다. 게임은 영화와 같은 매체만큼이나 많은 자본이 투자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실사를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아님에도 고증에 심혈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 고작 얼마 나오지도 않을 장면에 쓰일 소품에 시간과 비용을 희생하기 어려운 것처럼, 게임 역시 비중도 없는 소품을 구현한답시고 모델링이며 텍스처이며 새로 꾸미는 건 낭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모던 워페어 리마스터드의 튜토리얼이 그런 예다. 킹덤 오브 헤븐처럼 대단한 수준의 고증을 보여 주는 실사 매체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비실사 매체의 고증이 어지간하지 않는 이상 '배우들과 스탭들이 어마어마한 제약 조건 속에서도 저 정도로 고증을 해낸 작품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이 작품은 그렇게 고증이 출실하지 않네?' 하고 비교 대상이 되기 십상이기도 하다.

6. 기타

케이블채널 tvN에서 고증에 충실히 재현한 렛츠고 시간탐험대라는 프로를 만들었는데, 진짜로 고증 충실했을 뿐인데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능이 되어버렸다(...) 다만 이건 애초에 프로그램의 목표가 예능이라서 정말로 다큐가 되면 곤란했기에 일부러 예능으로 성격을 잡은것. 이 프로그램의 고증에 힘입어 다른 프로들도 고증도가 높아졌으면 하고 소망한 고증덕들이 많았다.

파일:gojung2.jpg

어린이 대상 위인전의 경우도 최근에는 고증이 뛰어난 편이다. 보다시피 고구려 왕의 백라관도 고증했고, 신라 왕도 무열왕 때 당나라 복식을 받아들인 후에는 신라 금관을 쓰지 않고 당나라의 복두와 단령을 입은 모습을 고증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적인 고증오류까지 고증을 보고, 거기에 더해 그것도 연구다. 예를 들면 성경을 바탕으로 한 중세시대의 삽화에서 성경의 배경인 중동이 아닌 유럽인의 복식을 한 그림을 보고 그 삽화의 연대와 시대상을 유추해 낸다. 소설이나 연극도 마찬가지라서, 적벽가에 뜬금없이 조총과 환도가 등장하지만 그냥 고증이 틀렸다고 매도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 조선의 군역제도를 연구한다.

7. 고증 완성도

  • 고증이 많이 이상해진 것들
    한마디로 말해 을 맞은 수준. 한국 사극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게 환뽕이다. 애당초 과거의 사실을 재현하려는 의도 자체가 비뚤어진 애국심 따위로 엇나가 있었던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비단 그렇지 않더라도 현재의 문화를 과거에 무리하게 적용시킴으로써 생활상의 제반 물자나 사회상의 분위기가 목적한 시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여기에 넣는다.
  • 고증이 조금 이상해진 것들
    눈에 띄는 옥의 티가 있는 수준. 불가피하지 않은 부분에서의 고증오류가 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체로 생활상의 제반 물자나 사회적 분위기에서의 오류가 여기에 들어간다. 말 그대로 알지 못해서, 어쩌다가 보니 고증상의 오류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이후 눈에 띄게 지적받거나 놀림감이 되어버린 부류.
  • 고증이 상당히 충실한 것들
    극의 내러티브 내 중요한 부분에서 충분한 고증을 보여주고 노력한 수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고증을 보여줄 수는 없다. 특히 시각적인 면에서는 고증에 힘을 썼지만 극의 흐름은 실제 역사와 다른 작품들이 좀 있는데, 이는 그것이 엔터테인먼트로써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극적 구성에서 각색한 부분은 있지만 근본적 지향은 합치되는 부류.
  • 고증에 매우 충실한 것들
    가능한 한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이 무색하지 않은 수준. 물론 차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가능한 한 모범적인 고증을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생활상의 제반 물자, 역사적인 내러티브만이 아니라 그 사회적 이면에 나타나는 시대적 발전 단계와 분위기까지 충분히 감안하여 재현한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 허구지만 고증이 사실처럼 이루어진 것들
    실재하지 않았던 허구의 문화를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창조해낸 수준. 허구라는 실드를 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놀랍게 느껴지지만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해도 충분히 놀랍다. SF의 경우에는 근미래의 기술혁신을 미리 예언했다던가 하는 게 이런 부류.

자세한 내용은 고증/작품별 고증 완성도 항목 참조.

8. 관련 문서



[1] 설국열차를 생각해보자. 관객들 중 상당수가 막판에 열차 문을 부수고 나간다는 제안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는데, 이는 영화가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여기에 동의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 장면 속에서 녹아가는 눈과 얼음이 충분히 제시되었다면 이런 거부감은 느끼는 사람이 없거나, 적었을 것이다.[2]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과학과 관련된 고증이다. 과학적 고증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작품성이나 효과를 내는 작품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레전드인것이 아닌것이다.[3] 일부 노래는 마이클 잭슨한테도 저작권이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4] 짚신을 신는 것조차 맨발로 신으면 절대 안된다. 실내화를 신고 그 위에 버선을 신고 짚신을 신어야 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