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6:56:05

규범주의와 기술주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기술주의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만능주의에 대한 내용은 기술만능주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언어 규범의 정의
2.1. 언어 규칙과의 차이2.2. 도덕적 규범(morality)과의 차이
3. 규범주의와 기술주의
3.1. 기술주의를 추구하는 경우3.2. 규범주의를 추구하는 경우3.3. 기타
4. 예술에서5. 외부 링크6. 관련 문서

1. 개요

규범주의(prescriptivism)와 기술주의(descriptivism)란 언어 변화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규정할 것이냐, 쓰이는 것을 모두 포괄할 것인가에 따른 견해 차이이다.

2. 언어 규범의 정의

본 문서의 논의 대상이 되는 규범주의와 기술주의를 다루기 위해서는 언어 규범을 우선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언어 규범이란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형식을 뜻한다. 한국에는 맞춤법이라는 명문화된 형식으로 이루어진 규범이 잘 알려져 있지만 모든 언어에서 그런 명문화된 규범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넓게 보자면 사전 역시 언어 규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가령 명문화된 규범이 없다고 알려진 영어 같은 언어에서도 웹스터 사전과 같은 저명한 사전은 언중들 사이에서 표준이며 올바른 언어로 여겨졌다. 이러한 언어에서는 사전에 등재되어있는 형식들이 언어 규범에 따르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1] 사전 같은 책조차 없는 경우에도 언중들 사이에서 '옳다'라고 여겨지는 어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만 이러한 경우 규범적인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검증하는 것이 앞의 두 예에 비해서는 어려울 것이고, 시간에 따라 규범에서 이탈하는 형식이 더 잦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명문화된 규범과 언중들 사이의 인식적 규범이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면 언어의 사회성에 따라 다수가 쓰는 것이 언어 규범일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조금 다른 문제이다. 가령 영어에서 용인발음이란 '용인'(received)이라는 표현에서도 보듯 당시에 무난히 옳다고 여겨지는 부류의 음성 형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용인발음 화자가 영어 화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할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언어 규범은 대개 사회 중상류층을 기준으로 하고[2] 용인발음 역시 그러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소수의 엘리트층이 올바르게 사회를 이끌어나가리라는 엘리트주의적 믿음이 강한 곳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한편 현대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일반 대중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 규범에서도 대다수 언중들이 사용하는 어형을 규범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압력이 큰 편이다.

언어 규범 사이에도 규범적인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가령 2개의 어형이 병존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1개의 어형만을 규범으로 택하는 것은 2개를 모두 규범으로 택하는 것보다 더욱 규범적이라 할 수 있다. 사전이 규범의 역할을 하는 경우 가능한 어형을 여럿 수록할 수 있는 사전의 특성상 맞춤법과 같은 명문화된 규범보다는 규범성의 기준이 보다 덜 엄격하다고 할 수 있다.

본 문서에서 다루는 언어 규범은 대개 문법이나 어휘 차원에서 다루어지지만 표현이나 문장, 글의 흐름에도 언어 규범은 존재한다. 가령 한문은 문장 단위의 규범이 매우 강력했던 문자 언어 중 하나이다. 조선의 문체반정이나 근대 중국의 백화문 운동은 문장 규범에 대한 논의가 오간 예라고 볼 수 있다.

2.1. 언어 규칙과의 차이

언뜻 생각하기에 규범은 규칙과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언어학에서 두 개는 다른 개념이다. 규범은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형식을 뜻하며 규칙은 형식적인 면에서 도식화가 가능한 것들을 말한다.[3][4] 한국어의 언어 변화 가운데 규칙화(regularization)와 불규칙화를 논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 굴절형
    • 불규칙화: ㅂ 불규칙 활용은 15세기 시기 일부 ㅂ이 모음 사이에서 되는 규칙에 따른 결과이지만 의 상실과 음성 형식 변화로 오늘날에는 불규칙 활용으로 본다. 현대 한국어 규범에서는 ㅂ 불규칙 활용이 규범으로 인정된다.
    • 규칙화: 싣다[싣따]는 실어서[시러서] 식으로 불규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규범적이다. 그런데 근래에 [실따/실타] - [시러서] 식으로 비교적 규칙적으로 활용되는 형식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 모음조화
    • 불규칙화: 현대 한국어에서 모음조화는 이를 따르지 않는 어형이 매우 많아 사실상 소멸 직전의 규칙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불규칙형이 더욱 많아지면 아래 '규칙의 소멸'에 속할 것이다. 의성의태어에서는 그나마 따르는 어형들이 많은 편이다.
    • 규칙화: '깡충깡충'은 한국어 의성/의태어의 모음조화 규칙과는 달리 예외적으로 규범으로 인정된 예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깡총깡총'이라는 모음조화 규칙에 따르는 어형이 많이 등장한다.[5]
  • 경음화
    • 불규칙화: '효과'는 경음화가 일어날 요인이 없기에 [효과]로 읽는 것이 규칙적이다. 그러나 근래에 [효꽈]로 많이 나타나며 [효꽈]도 표준으로 인정되었다.
    • 규칙화: '안간힘'은 특정한 이유 없이 [안깐힘]으로 읽는 불규칙한 발음이[6] 규범에 규정되어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안간힘]으로 읽는 이들도 많다.
  • 표기의 변화
    표기와 음성 형식 사이의 전반적인 대응 규칙성은 표기 심도에서 더욱 상세히 다루고 있다.
    • 불규칙화
    • 규칙화: '설거지'는 동사 '설겆다'의 명사화 접사 '-이'가 결합한 형식으로 형태주의적 표기 규칙을 따르자면 '설겆이'가 규칙적이다. 그러나 표기법이 제정되던 당시 이미 '설겆다'가 소멸했기 때문에 현행 표기법에서 '설거지'라는 표기가 규범적이다. 한편 일부 언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설겆다'를 상정하여 '설겆이'라는 규칙적 표기가 나타나곤 한다.
  • 어휘
    기존의 파생법에 따라 형성되는 어휘들은 규칙적이다. 반면 외래어는 (도착 언어 기준으로) 완전히 불규칙적이다.
  • 규칙의 소멸
    규칙 자체가 소멸하면 그간 규칙에 의해 생성되었던 언어 형식들이 통째로 불규칙형이 된다.
    • 사잇소리: 대다수 사잇소리 현상은 중세 국어 속격 'ㅅ'이 사라진 흔적이다. ㅅ이 첨가되는 규칙은 중세 국어의 언어 규칙에 따른 것이므로 현대 국어 화자로서는 규칙을 찾기 매우 어렵다.
    • '-건대': 중세 국어에서는 ㄱ 뒤에서 ㅎ이 탈락했기에 '생각건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이 소멸한 현대 국어에서는 그냥 불규칙형일 뿐이다. 그래서 규칙적인 '생각컨대'라고 쓰고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위의 예에서 '깡총깡총'은 모음조화를 따르는 다른 의성의태어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규칙형이다. 그러나 언어 규범에 포함되는 형식은 아니다. 이를 혼동하면 "규칙적인 '깡총깡총'을 쓰는 것은 규범주의를 따르는 것이다"라고 오해를 빚을 수 있다.

세간의 인식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규범에 이탈하는 표기가 많이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게 불규칙한 형식도 오늘날에 더 많이 나타난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외래어의 유입, 고빈도 단어에서 불규칙형의 잦은 출현 때문에 그런 것이지[7] 규칙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신규 비규범 형식들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몇몇 경우에서는 언어 규범을 제정할 때 언어 규칙에 따르는 것을 위주로 할 때도 있다. 이것은 불규칙형을 제거하려는 언어 순수주의적 취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이유로는 규칙형이 불규칙형보다 외우기 쉽기 때문에 신규 학습자들을 지향하려는 취지도 있다.[8] 한국의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 해방 후 북한에서 불규칙 용언을 규칙 용언으로 만들기 위해 도입한 특수 자모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시도는 아주 드물게 성공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외면받는다. 언어의 사회성이라는 벽에 부딪힌 예라고 할 수 있다.[9] 때문에 아무리 규칙적인 규범을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규범을 제정하려는 시기의 불규칙한 형식들을 예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인공어를 만든다면 외우기 어려운 불규칙형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에 대다수 인공어의 규범은 규칙적이다. 단, 인공어의 목적이 자연언어의 불규칙성을 모방하는 데 있는 경우 일부러 불규칙하게 만들 수도 있다.[10]

2.2. 도덕적 규범(morality)과의 차이

본 문서에서 다루는 '언어 규범주의'(linguistic norm)는 '문법적 규범'을 뜻하는 것으로, '도덕적 규범'과는 다른 의미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욕설과 비속어, 혐오 표현들은 도덕적 규범에서 어긋나는 것이지, 문법적 규범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가령 '언어의 용법에 규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할 때 '욕설이나 혐오 표현도 용인하자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순 있어도 비문법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본 논의와 유사한 예가 나타난다. 어원과는 달리 비칭으로 전락한 표현을 평칭으로 되돌리는 것은 규칙화(어원에 따라 의미가 형성된다는 규칙)의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백정', '옥동자' 등이 이 예이다.[11] 그러나 이러한 시도도 위 규칙적 언어 제정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사회성에 부딪혀 좌절되는 편이다.

3. 규범주의와 기술주의

규범주의와 기술주의를 짧게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 언어의 사용에는 옳고 그름이 정해져 있고,
* 이를 규정해야 하며,
* 언중들은 규정대로 따라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규범주의'라고 한다. 규범주의는 언어의 기능적, 도구적 측면에 집중한다.
* 언어의 사용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 언어의 규칙은 당위적으로 규정한 언어 정책이 아니라 사용자들 간에 사회적으로 생성되고,
* 언어는 시대를 따라 쉴 새 없이 변화하며,
* 언어 정책은 언중들의 언어습관을 규정하기보다는 언중들의 언어습관 자체를 기록해야한다.
이러한 입장을 '기술주의'라고 한다.

3.1. 기술주의를 추구하는 경우

In language, the ignorant have prescribed laws to the learned.
언어에서는 무지렁이 백성들이 학자들에게 규범을 제정해 왔다.
리처드 듀파(Richard Duppa), Maxims (1830) no. 252
언어학 연구에서는 기술주의를 추구한다. 언어학의 주된 관심 주제는 언어의 구조를 밝히는 데에 있지, 언어의 어떤 요소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 현상의 수많은 변이들은 언어의 구조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 문법에 기반한 온전한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언어 변이 가운데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지, 선택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는 교육학사회학에서 다룰 영역이며 언어학에서는 이들 모두가 관찰 대상이다.

언어를 이용한 소통에 있어 인공적인 언어 규범이란 전혀 필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영어처럼 일관적으로 언어 규칙을 제정하는 집단이 없어도 잘 작동하는 언어가 있는데,[12] 특히나 대항해시대 이후로 팽창한 영어 사용 지역에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편이다.[13]

또한 단어에 관해서는, 그 유래나 뜻 자체보다는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견해가 짙다. 즉 국립국어원이나 국어기본법에 따라 절대적으로 정해지는 표준어의 기준 자체에 회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의성어, 의태어와 같이 어형과 의미 사이의 연결이 의미론적이지 않은 것은 규범주의를 채택할 당위성이 더 떨어지는 편이다. 아래 규범주의 문단에서 다룰 개념어와는 달리 의성어나 의태어는 본래 사람의 언어가 아닌 것을 언어로 자의적으로 모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몇몇 어형만을 규범으로 제한할 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 일례로 맞춤법 안내에서 "땀은 '송글송글'이 아니라 '송골송골이 맞다"#와 같은 글을 종종 볼 수 있는데,[14] 실제 "땀이 나오는 모양"은 [송골송골]이라는 음상과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자의적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여러 유사 형식 중 오로지 [송골송골]만을 규범으로 삼아야 할 당위성은 매우 약하다. 오히려 '누리끼리하다' 등 한국어의 다양한 색상 표현들은 의미와 직접적인 일대일 대응을 이루지 않지만 언어 사용자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간혹 노벨문학상 운운도 나올 정도로)[15] 언중들 사이에서 한국어의 묘미로까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감탄사 역시 마찬가지라서 현행 맞춤법에서 감탄사를 따로 규정한 바는 찾기 어렵다.[16]

보도의 경우는 21세기에 들어서는 트렌드를 반영해 기술주의를 취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IT 같은 첨단 기술 분야를 다뤄야 하는 일이 많고 정치권에서 패스트 트랙 같은 신조어를 쓰는 일이 잦아지면서 대세를 따르게 되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이를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국립국어원에서도 주기적으로 의견을 반영해 쉬운 고유어나 한자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보도 전문 채널에서 주기적으로 신조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런 내용을 담은 짤막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3.2. 규범주의를 추구하는 경우

일상생활과 밀접한 대한민국 법률·공공[17]·교육[18] 등에서는 규범주의를 추구한다. 원칙적으로 한국어의 어문 규정들(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이 '국어기본법'이라는 법적 근거에 따라서 제정되거나 개정되므로 규범주의를 따르고 있다. 이는 관련 문제로 공적 공방이 생겼을 때 법익적인 우위 효과를 점하는 장점이 있다.

일명 ‘학교 문법’으로 부르는 언어교육적 측면에서 규범주의가 다소 우세하게 나타난다. 대한민국 교육부의 유관기관에 검정된 국어 문법 관련 교과목 언어와 매체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매체의 파급력이 증대되면서 통속적인 언어생활이 보편화하는 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세대, 성별, 계층 간에 따라 달리 쓰이는 '사회 방언'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최근 들어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이 많아, 어느 정도 방지해야 할 필요는 있다.[19] ⋯(중략)⋯ 크게 사회적인 문제(분열, 갈등, 소통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2015 개정] 비상교과서 ‘언어와 매체’
위 인용문대로 젊은 세대나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은어 · 매체언어 · 단어선택 등)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안 하거나 직업·세대 특성상 관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낱말의 용례나 존재를 낯설게 느낀다. 또한 아무리 이러한 낱말들이 대중매체로 파급되더라도, TV 시청을 안 하거나 인터넷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계층·직업층에서는 계속 생소해할 것이다. 특히 근래에 스마트폰의 확산에 따라 유튜브와 같이 개개인에 맞춰진 매체들이 많아지면서 언어 분화는 더욱 급속히 나타나고 있다. 규범주의자 측에서는 이렇게 은연 중으로 다양하게 분열되는 언어 집단의 수가 늘어나는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처럼 규범주의적 언어 생활은 소통의 무질서를 바로 잡아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공익적인 측면이 있다. 올바른 단어 사용을 지키지 못하는 쪽은 '교정'이라도 해나갈 수 있지만, 언어를 이미 올바르게 쓰는 측에서는 그 '교정'을 수반할 필요가 없으므로, 단어를 잘못 쓰겠다는 권리는 단어를 올바르게 쓰겠다는 권리보다 상위의 공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잘못 쓰면 안 된다', '잘못 써도 된다' 같은 논쟁의 상향적인 해결책은 잘못 쓰는 걸 고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근대 국가의 형성 과정의 언어 교육에는 규범주의적 태도로 표준어를 제정하고 언어 통일을 추구한 국가들이 상당수 있다. 프랑스어가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어의 표준어라 할 수 있는 오일어는 오크어를 비롯한 지방 언어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는 근대국가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전 국민의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명분으로 지방 언어들을 탄압하였고, 오늘날에도 이로 인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시도들이 오늘날에는 지방의 문화를 탄압하려는 것으로 여겨져 지양되고 있다.

두 번째로 일본어 역시 근대화 과정에서 규범주의가 강하게 나타난 언어이다. 일본은 오랜 봉건제의 영향으로 언어 분화가 매우 심하게 나타났고, 메이지 시대에 이를 해결하고자 '국어'라는 개념을 강조하였다. 이연숙의 "국어라는 사상"은 근대 시기의 일본에서 규범언어로서의 국어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의 패전으로 국가 주도의 강력한 언어 정책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현대 일본에서의 규범주의 성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20]

대한민국한국어도 위의 두 나라처럼, 전반적으로 규범주의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언어이다. 옳고 그름이 언어 사용에 있으며, 이를 판단할 전문적인 주체가 있다고 많은 언중들이 믿고 있다. 한국어의 정서법을 규정하는 국립국어원이 한국어의 어문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국가의 공용어와 비교할 때 매우 강한 편이다. 한국어는 한민족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민족주의 및 한국어 어휘에서 한자어 또는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대체해야 한다는 언어 순수주의 등 한국어의 순수성에 대한 열망도 높은 편이라 실제로 언어 순화 운동이 상당한 호응을 얻는다. 이러한 흐름에는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에 따른 민족어 파괴의 위협, 그리고 상술한 일본에서의 '국어' 운동이 영향을 끼쳤다. 단, 한국은 전근대에도 일본만큼 언어 분화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21] 국어 담론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추상적 개념을 다룬 개념어들은 언중들 사이에서 설령 음상이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더라도, 어원을 표기나 음상에 반영한 규범적 표기가 의미의 이해에 좀 더 수월하다. 어원을 통해 개념어 구성 요소의 의미의 합을 표시하여 의미 투명성이 강화되기 때문이다.[22]

언어의 세력이 매우 미진하고 그마저도 여러 방언들로 분화되어 있는 경우, 각각의 방언들을 보존하는 것도 물론 인류학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지만 각 방언들은 너무 사용자가 적어 문화 컨텐츠를 만들거나 사전을 만드는 등 언어의 세력을 확장할 활동을 벌이기가 매우 어렵다. 다수 언어라면야 현상을 유지하고 이를 기술하는 데 중점을 두자는 기술주의의 입장을 취해도 알아서 잘 번성할 수 있겠지만, 소수 언어는 현상 유지를 했다간 인근의 거대 언어에 흡수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그 중에서도 세력이 가장 큰 언어 혹은 각지 언어를 조합한 새로운 인공어로 규범을 세워[23] 그나마의 세력이라도 확보하자는 의견이 종종 힘을 얻곤 한다.[24]

3.3. 기타

위와 같은 경향성은 사회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회 전반에 저차원적 욕구에 대한 요구도가 높으면 사회 구성원 사이의 욕구에 큰 차이가 없어 언어의 사회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차원적 욕구가 발달할수록 개인 차이가 커져 언어 변화도 더 빨라질 수 있다.

경제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기술주의를 추구하면 사전도 보다 더 많이 개정해야 할 것이다. 사전은 한 번 만들 때부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번역기를 만들려고 해도 언중의 언어 표현을 되도록 많이 수집해야 기술주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처럼 기술주의를 추구하면 다양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기 어려워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경제성을 이유로 규범주의를 우선하기도 한다.

교열, 교과서 쪽에서는 규범주의를, 오락물, 정보 매체 쪽에서는 기술주의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교열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너무 규범주의에 치중하여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사설 교열 자격증도 실제 취업에는 도움이 안 된다. 출판물이나 미디어의 대부분이 교과서는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술주의를, 곧 업계에서 정한 업계 내부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4. 예술에서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의 예술 작품을 창작할 때에도 기술주의를 추구하곤 한다. 예술 작품은 (특히 대중 예술은) 당대의 사회상을 상세히 묘사하는 것이 큰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25] 또한 예술 작품은 예술 대상층의 호응이 필수불가결하므로 규범보다는 대상층 특유의 언어 습관을 반영하는 것이 더욱 우선시될 때가 있다. 가령 청소년 드라마는 대상층인 청소년의 공감을 필요로 하므로 청소년들의 은어가 자주 들어간다.[26]

한편 규범주의를 추구하는 예술 역시 존재한다. 일반적인 국민의 양성을 교육하려는 취지에서 활용되는 예술 작품들은 다양한 신분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언어 역시 규범주의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5. 외부 링크

6. 관련 문서


[1] 사전 중에서는 이처럼 표준적인 언어를 등재하려는 규범적 태도를 지니는 것이 있는 한편으로, 실상에 쓰이는 언어를 가능한 모두 실으려는 기술적 태도를 지닌 사전도 존재한다. 규범에서 벗어난 은어나 비속어를 다루는 사전이 그러한 사전일 것이다.[2] 이는 비단 언어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규범들이 주로 지니는 속성이다.[3] 다만 형식적 유사성이 없어도 다른 형식들에서 많이 보이는 음운 변동을 규칙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출현 빈도가 높음 = 규칙이 되어 '규칙화는 불규칙화보다 출현 빈도가 높다'라는 주장은 순환론이 되어버리는 문제가 있다. Fertig(2013: 80-83)에서 관련 논의를 다루고 있어 참고할 수 있다. 참고할 만한 예로 한국어의 ㅂ 불규칙 용언은 ㅂ 규칙 용언보다 훨씬 많다. 다만 ㅂ이 ㅜ로 바뀐다는 음운 변동이 다른 말음 용언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규칙(용언 말음은 후행음절에 연음된다)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불규칙이라고 하는 것이다.[4] Fertig, D.. (2013). Analogy and morphological change.[5] 2021-12-21. 구글 검색결과 기준. " "의 경우 깡총깡총: 237,000개, 깡충깡충: 111,000개 / " "가 없는 경우 깡총깡총: 400,000개, 깡충깡충: 218,000개. 깡총/깡충의 경우도 깡총이 더 우세하다.[6] 엄밀한 의미에서는 '안'+'간힘'으로 분석되며 두 형태소가 수식 구조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사잇소리가 첨가된다는 규칙이 있다. 그러나 사잇소리 규칙은 중세 국어의 흔적으로 현대 한국어 화자가 규칙을 발견하기 매우 어려우며, 그런데다 '간힘'이 거의 쓰이지 않게 됨에 따라 더욱 규칙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7] 불규칙형은 별개로 습득해야 한다는 언어적 부담 때문에 빈도가 낮아지면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즉, 과거에만 썼던 말들 중 불규칙형인 것들은 아예 소멸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요즘 말에 불규칙형이 많아보이는 것이다.[8] 특히 비서구권에서 근대 언어 규범은 대개 언어 통일을 통한 국민 교육의 확대를 목표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습의 용이함은 큰 매력 중 하나로 작용한다.[9] 예외가 많아 습득하기 어려운 현재 상태의 언어에 적응했다는 점에서 '비효율의 숙달화'의 예로 볼 수도 있다('경로의존성' 문서 참고)[10] 가상 세계 속에서 설정상 자연언어인 언어를 만드는 때가 그 예이다.[11] 특히 '옥동자'는 본래 없는 용법이 유명인에 의해 생겨나고 언중이 이를 받아들인 드문 예로, 이러한 것을 후광반사효과라 한다.[12] 영국영미법에서도 보듯 법 체계 역시 성문화된 법문이 없는 불문법으로 유명하다. 영어에 명문화된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소통에 전혀 불편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고 영국의 이러한 문화적 전통의 영향도 있다.[13] 특정 인구 집단이 다른 곳에 이동하여 정착하면 해당 지역의 언어는 본토보다도 오히려 더 느리게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외래어도 비슷한 이유로 본래 외래어가 탄생한 곳보다 유입된 곳에서 어형이 더욱 느리게 변한다. 생물학에서는 이 현상을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라고 한다.[14] 빈도를 검색해보면 구글 큰따옴표 검색 기준으로 '송글송글'이 2배 더 많이 쓰인다(2023년 8월 기준).[15] 요약하자면 '누리끼리하다'의 번역이 어렵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사실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관련된 논의를 번역할 수 없는 표현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16] 한편 2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접촉한 상황에서는 감탄사 역시 규범으로 규정지어지곤 한다. 한 언어 내에서는 다양한 감탄사 형식 중 하나를 우선하기 어렵지만, 서로 다른 언어의 감탄사 쌍은 쉽게 변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아야!"라고 하면 혼나고 "이따이"라고 해야 했던 일화가 있다.#[17]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2017-12호 고시 어문 규정 한글 맞춤법 제1항 해설 참고.[18] 2015 개정 고시.[19] 일명 ‘사회 통합어’가 있어야 한다는 맥락으로 보임.[20] 가령 외래어 표기법에 있어서 한국은 대부분의 단어에 대해서 표준을 지정하는 규범주의적 방침을 따르는 반면, 일본에서는 표준이 되는 표기를 따로 정하지 않는 기술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다만 외래어 표기 분야에서는 일본어한국어보다 발음, 특히 모음 수가 적기 때문에 같은 단어에 대한 이표기가 좀 더 적게 발생하는 편이라는 별개의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21] 일본보다 한국의 국토가 좁고 봉건제 일본과는 달리 조선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제도를 통해 지방 인력이 지속적으로 서울로 이동하고, 중앙에서 수령이 파견된 것도 지역어 교류에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양반가에서 타 지역 며느리시집 오는 현상도 그리 드문 현상은 아니었다.[22] 많이들 틀리는 '반증'과 '방증'의 예를 들면, 명확히 다른 뜻을 지닌 두 단어("반대의 증명" / "간접 증명")를 구별해서 쓰는 규범을 따르는 것이 의미적으로 투명하다. '방증'의 의미로 '반증'이라고 쓴다면 '반증'이라는 단어의 글자 구성만으로는 의미를 추측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상태가 된다.[23] 두 방안 다 비판점은 있다. 전자의 경우 변방 언어(류큐어의 예로 치면 류큐어 중에서도 변방)로서는 타 언어(일본어)의 압력을 받든, 지역 중앙어(오키나와 본섬 언어)의 압력을 받든 마찬가지라고 느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방언간의 거리가 너무 멀면 그 누구에게도 생소한 인공어가 되어버리고 만다. 다수 언어 중에도 그리스어의 카사레부사, 노르웨이어의 뉘노르스크처럼 고유어에 좀 더 가까운 방언들을 조합하여 만든 언어가 있으나 인공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어가는 추세이다.[24] 류큐어 문서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소개되어 있다. 류큐어 각지 방언 화자들은 서로 소통이 어려우며 이들의 공통어는 일본어인 상황이다. 2014년 제정된 "제주어 표기법" 역시 이와 같은 입장에서 제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25] 다만 주의할 점이 사회상의 반영이 창작물의 최우선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당대의 사회상을 너무 그대로 묘사하면 작품 향유자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기에 당대 사회상 묘사를 목표로 하더라도 온전히 기술주의를 추구할 수는 없다. 창작물의 반영 오류 문서의 '창작물 반영 만능주의' 문단 참고. 핍진성 문서에서도 사실성과의 차이 문단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26] 단, 그런 경우에도 도덕적 규범(직접적으로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 규정)이라는 별도의 요인에 따라 욕설은 모자이크나 X 등으로 처리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