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17:18:47

언어의 사회성

언어의 본질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16px -11px" 언어의 사회성 언어의 역사성 언어의 자의성 언어의 창조성
언어의 규칙성 언어의 필연성 언어의 반복성 언어의 기호성
언어의 분절성 언어의 독창성 언어의 보수성 }}}

1. 개요2. 예시3. 현황4. 언어의 역사성과의 관계5. 관련 문서 및 링크

1. 개요

파일:언어의 사회성.jpg
언어의 사회성을 표현한 몽미 만화.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그래서 그는 주위의 모든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옛날에 쓰는 언어를 거의 잊어버리게 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사람들도 그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페터 빅셀, 책상은 책상이다(Une table est une table) 중에서
언어의 사회성’은 의사소통으로 말미암아 언중들 간에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임을 뜻한다. 이는 언어에 대한 사회적인 약속은 어떤 개인이 임의로 언어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고[1],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할수록 언어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진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2] 단어의 변용을 개인이 바란다고 항상 모든 이들이 사용해 주지는 않는 것을 보여준다.

2. 예시

대표적인 예시는 '부탄', '게르마늄', '나트륨', '칼륨'이다. 대한화학회에선 미국식 영어 발음에 가까운 '뷰테인(Butane)', '저마늄(Germanium)'[3], 그리고 미국식 표현인 '소듐(Sodium)'[4], '포타슘(Potassium)'[5]으로 공식 표기를 바꿨지만, 일상생활에선 여전히 독일어식 이름인 '부탄(Butan)', 라틴어식 이름인 '게르마늄(Germanium)', '나트륨(Natrium)', '칼륨(Kalium)'으로 통하며, 정작 마트에서 "뷰테인 가스 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뷰테인 가스가 뭐죠?"라고 반문하기 십상이며, "소듐 섭취를 줄입시다.", "포타슘은 신장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좋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소듐·포타슘이 뭐죠?"라고 반문하기 십상이다. 결국 '부탄'과 '뷰테인', '게르마늄'과 '저마늄', '나트륨'과 '소듐', '칼륨'과 '포타슘'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등장인물 헤르미온느(Hermione)란 이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겨울 이야기의 등장인물에서 따온것으로 겨울 이야기에선 고전 라틴식으로 헤르미오네라고 읽고 현대 영어에선 허마이어니라고 읽는데 번역가가 잘못 번역한게 굳어지면서 20주년 기념으로 전면 재번역을 한 버전에서마저 헤르미온느가 되었다. 재번역을 한 번역자도 헤르미온느와 더불어 호그와트, 그리핀도르, 레번클로, 후플푸프, 슬리데린의 번역이 잘못된 걸 알고는 있지만 이미 대중적으로 잘못 된 번역이 굳어진지라 수정하는걸 포기했다고 서두에 언급했다.

3. 현황

개인이 사회적으로 정의된 단어의 의미를 바꿔 써봐야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인디 게임'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소형 개발사가 대형 회사의 지원 없이 제작한 게임'라고 정해져 있는데, 어떤 개인이 나타나 '인디 게임은 1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다'라고 의미를 바꾸거나 '상업적 목표를 두고 만든 게임은 인디 게임이 아니다'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6]

명칭이 바뀌었지만 전에 쓰던 명칭이 훨씬 더 많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사회복무요원',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사회복무요원은 이전에는 '공익근무요원', 줄여서 '공익'으로 불렀다가 2013년 12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공식 명칭이 변경되어 법적·행정적으로는 사멸한 개념이지만, 2024년 현재까지도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저는 사회복무요원이었습니다."보다 "저는 공익이었습니다.", '현역vs공익'이라는 식으로 '공익'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쓰인다. 마찬가지로 '행정복지센터'의 경우도 원래 '주민센터'였고, 그거마저도 원래 명칭이 '동/읍/면사무소'였다. 그래서 지금도 "동사무소 가서 서류 떼 와라."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공공적 성격을 띄는 분야에서 이와 같은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정착된 용어인 탓이 크다. 비슷한 사례로 국군방첩사령부의 과거 명칭인 국군기무사령부(약칭 기무사), 전북특별자치도의 과거 명칭인 전라북도[7], 잠실새내역의 과거 역명인 신천역(을 비롯한 수많은 역명[8] 등) 등이 있다.

세대에 따라 예전 명칭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는 1996년 3월에 '국민학교'에서 이름이 변경됐지만 노년층들은 여전히 '국민학교'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9] 그리고 국명도 기성세대들은 과거의 국명을 그대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중장년층은 러시아, 미얀마를 각각 '소련', '버마'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2022년에 국명을 바꾼 '튀르키예'도 실생활에서는 '터키'로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사실상 한 언어의 화자들이 같은 곳에서 대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어권 내에서 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예가 바로 사투리은어, 민간 어원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무수히 많은 낱말들은 제 나름의 사회성 검증을 통하고, 그 가운데의 몇몇은 다른 언중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위키에 등록된 각종 문체를 보면 한국어 화자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성을 충족하지는 못했어도 특정 집단의 사회성 차원에는 부합하는 언어를 볼 수 있다. 이는 거짓짝과도 관련 있다. 또, 규범상은 옳은 번역(정역)이지만 사람들은 잘못된 번역(오역)으로 오해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형용사 '없다'와 '있다'의 관형사형이 '없는', '있는'인 것처럼 어떤 말이 불규칙으로 활용되거나 '' 받침처럼 어떤 구조의 낱말 수가 적거나 '관하여', '불구하고', '위한'처럼 불완전하게 활용돼도 그런 말들이 자주 쓰이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어 문서에도 적혀 있듯이 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겐 복잡하고 어려워도 해당 국어 화자들은 거의 자연히 숙달해서 그렇게 잘 안 느낀다. 이는 '비효율의 숙달화'의 예로 볼 수도 있다.('경로 의존성' 문서 참고)

4. 언어의 역사성과의 관계

언어/낱말이 탄생하고, 변화하고, 사어가 되는 것도 언중들의 약속에 기반하므로 '언어의 역사성'과 연계된다. 단어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단어의 뜻이 달라지거나 단어에 다른 뜻이 더해져 사용되는 때에 사회성을 얻었는지 여부를 가리게 되고, 반대로 자주 쓰이던 단어가 다른 단어에 밀려 잊어진 때에는 사회성을 잃었는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어떤 개인이 임의로 언어 변화를 막을 수도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표준어가 아니던 '짜장면'은 나중에 그 사회성이 인정되어 표준어의 지위를 얻었고, '너무'는 부정의 의미를 나타낼 때만 쓸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나중엔 긍정과 부정을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말이 되었다.
  • 경칭이나 평칭으로, 또는 중립적으로 쓰이던 말이 비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부정적 느낌이 세서인지 그 반대는 드물다.
    • '당신', '양반'은 과거에는 경칭으로 쓰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하락하여 현재는 별로 듣기 싫어하는 호칭으로 통용된다.
    • '오타쿠' 및 '덕질'이 처음에는 '전문가'나 '마니아'와 그와 관련된 활동을 일컫는 용어였는데, 그것이 부정적 느낌으로 바뀌어 통용되다가 2024년 기준으로 본래의 뜻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게 다른, 어느 정도 중립적인 뉘앙스의 의미로 통용된다.
    • 특정 집단이 썼다고 금지어로 찍히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인민'이 있다. '인민'은 원래 법적 용어로 '자연인'을 대체하는 단어였지만 북한에서 국명 및 선전 도구로 쓰다 보니 남한에서는 아무도 '인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만약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누가 국민을 '인민'으로 지칭하면 종북주의자로 생각될 것이다.
  • 이름과 실제가 다르게 통용되기도 한다.
  • 어떤 말이 무의식적으로 자주 쓰이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옅어지면서 규칙대로이지만 불완전하게 활용되거나 어느 규칙에서 어긋나게 자주 쓰이게 되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더더욱 옅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문법화나 불규칙 활용이 생기기도 하고, 차용어도 귀화어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불규칙 활용형으로 널리 쓰이다 보면 그런 활용형에서 기본형이 거꾸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콩글리시재플리시가 생긴 까닭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동음이의어에서 밀린 등으로 말미암아 '강낭콩'의 옛말인 '강남콩'처럼 비표준어가 되었거나 '구축(驅逐)'처럼 여전히 표준어이지만 그다지 쓰이지 않는 낱말도 있고, 비표준어가 되었어도 다시 표준어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주작처럼 옛말 또는 사어가 되었어도 부활하는 경우도 있다.
  • 어떤 낱말이 다른 언어에는 외래어로 남기도 하지만, 자국어에서는 사라질 수도 있다.
  • 이런 변화로 말미암아 언어유희도 새로 만들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고, 현재는 표준어이건 비표준어이건 그다지 쓰이지 않으나 자전 등 사전 속 단어의 뜻풀이나 번역어로서는 계속 쓰이기도 한다.

언어의 변화에 따라 언중의 역사의식 수준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것도 참고하면 좋다.

이것과 참조해도 되겠다("언어는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생멸(生滅)을 거듭한다. 이 같은 언어의 역사성으로 인해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벤야민은 ‘번역 불가능성’보다는 ‘번역 가능성’에 주목한 철학자이다.").

5. 관련 문서 및 링크


[1] 예를 들어 누가 혼자서 "나는 '가방'을 '나강'이라고 불러야지"라고 생각하고 사람들 앞에서 '가방이 예쁘네요'를 '나강이 예쁘네요'라면 다른 사람들은 가방이 예쁘다는 의미임을 절대로 알지 못한다. 모신나강이 이쁜가?[2] 한 예로는 '옥동자'가 있다. 개그콘서트에서 알려지기 이전에는 그 단어의 존재조차 몰랐던 언중들이 대다수였으며, 없거나 드문 용법이 유명한 곳에서나 유명인에게서 나왔다고 수많은 언중이 편승해 뜻을 바꿔버린 흔치 않은 경우이기도 하다. 정작 당사자들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이 정도 영향력을 개인이 발휘하는 것도 어마무시한 건 사실이며, 정종철의 영향력이 너무 컸다.[3] 발음에 훨씬 가까운 표기는 '저메이니엄'.[4] 발음에 훨씬 가까운 표기는 '소디엄'.[5] 발음에 훨씬 가까운 표기는 '포태시엄'.[6] 실제로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트위터에 있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질책되었다. '인디 게임'이라는 단어가 가진 사회적인 정의를 무시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본인의 해석(제작 목적과 인디 게임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만 밀어붙이다가 봉변을 당한 셈. 이미 보편적인 뜻이 있는 단어를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고 '나는 돈만 보고 인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싫다.'라고 표현했으면 논리적 오류 없이 본인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7] 전북특별자치도의 설립 이후 엄밀히 '전라북도'라는 명칭은 폐지되었다. 역사적인 명칭일 뿐 더이상 행정구역명으로서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전북특별자치도'를 '전라북도'라고 부른다면 사회적인 합의 하에 '전라북도'라는 명칭 또한 유의미하게 '전북특별자치도'의 지칭으로서 실질적으로 존속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어의 사회성을 확인할 수 있다.[8] 성북역->광운대역, 휘경역->외대앞역, 뚝섬유원지역->자양역[9] 다만 '국민학교' 시절의 초등 교육 기관을 졸업한 사람도 교육업에 종사하거나, 애를 낳아서 초등학교에 보내거나, 하다못해 교육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하는 경우 '초등학교'라는 명칭을 빠르게 흡수하는 경우가 많다.

분류